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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속삭임 | 조용우「세컨드핸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2025.03.06 김언
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2025.02.20 천운영
나는 단골이고 싶지 않아서 | 조해주 「단골」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2025.02.06 김언
전성태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2025.01.23 천운영
이자켓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복어 가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2025.01.09 김언
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2024.12.27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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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폭풍우 치는 새벽에 - 등굣길2

짙은 안개, 물웅덩이 자욱이 깔린 등굣길 대각선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교복 바지가 다 젖었다 첫 차를 타면 새벽에 내렸을 축축한 흙냄새가 버스 안에 가득했다 버스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양 한 마리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으로 젖은 바지를 짜냈다 정왕역 4호선으로 가는 버스 제대로 내리려면 정신 똑바로 붙들고 있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졸 때쯤 버스 안을 가득 채우는 하얀빛 소리는 한 박자 늦게 들어오고 젖은 눈망울로 양은 꼿꼿이 허리를 피고 있었다 너는 잠깐의 그 흰 세상에서 어떤 냄새를 맡았을까 무슨 향이 너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을까 바를 정, 갈 왕 정왕역처럼 바르게 망가진 허리로 남의 집 배관을 고치는 할아버지와 오 년 전 암수술을 받은 할머니의 기대 삼시세끼 그걸 먹고 그걸로 씻은 양은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멈추지 않는 손 살짝 힘을 주어 잡으며 말한다 괜찮아 그냥 번개일 뿐이야 그냥 번개

2025.04.26 카페라떼
소설 인간찬가령

도롱뇽은 사람을 본다. 지긋이. 계속 쳐다본다. 그런 도롱뇽을 쳐다보는 타자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따라서 키보드 위에서 손을 내려놓고, 머리를 도롱뇽의 눈속에 비집고 들어가 한 번 도롱뇽이 되어보도록 하겠다. ---타자는 사람을 관찰한다. 사람이 보이는 의식적인, 무의식적인 행동을 전부 관찰한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코를, 벌겋게 상기된 귀를, 흉하게 뻐끔거리는 입을, 상대를 부정하듯 깜빡이는 눈을, 그 모든 행동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팔을, 그 뻔뻔하기에 자랑스러운 팔의 전설적인 몸종, 손을, 어느 체형의 인간이든 풍만하고 오만방자해 보이는 배를, 사람의 혐오와 쾌락을 부르는 고간을, 비극을 주변으로 흩뿌리는 다리를, 그런 다리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는, 가장 선하기에 상처를 입기 쉽고 무슨 이유에선지 사람들이 가리고 다니는 발을. 관찰자가 된 타자는 사람을 십자가의 가운데에 맞추고 계속 바라보았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을 관찰로 보내던 도중, 어느샌가 타자의 십자가에 갑자기 빛이 번뜩였고 그 순간부터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타자의 주관에서도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다.사람이 신경쓰이며 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존재라면 타자의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그래서 사람을 모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방으로 이루어진 모조품은 꿈을 꿀 수 없는 법. 따라서 사람을 도작하기로 했다. 사람을 박제하고는 무용하게도 그 박제를 관리하는 사람을 훔치는 짓을 하는 것이다! 나의 완벽하고 미끈거리는 몸을 불안정하고 꺼끌거리는 사람의 몸으로 바꾸었고, 사람의 행동을 훔쳐 하나는 머리에 슬쩍, 하나는 가슴에 자랑스럽게 넣고, 그 누구도 모르는 남은 하나는 구멍이 뚫린 주머니 속에 다급하게 집어넣었다. 머리를 한번 긁고 타자는 가로등이 비추는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간 것이다. ---사람을 훔친 지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아침의 일이다. 타자는 다리를 긁고 현관문과 태양을 등지고 선 채 복도 끝에 보이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오래전부터 간직해왔던 의문을 더듬으니,그 손길은 어딘가 익숙해보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말 못할 깊고 깊은 우울감을 내비치고 있었다.예컨대 불륜녀를 아쉽다는 듯 더듬는 충실한 남편의 손길과 닮았으니,그런 그의 모습은 과연 어느 누가 오더라도 어찌 쉽게 말을 걸 수 있겠는가?하지만 예외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니 법. 저기 굳게 닫힌 문이 열리더니 갑작스럽게 뛰쳐나온 그의 몸종은 타자 앞에 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치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이 굴던 그는 타자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자기자신조차 망각의 바다로 밀쳤는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타자는 그 의문을 주는 어떠한 현상을 그런 몸종에게 설명을 하니, "나는 누구인가? 사람인가? 사람이다. 그렇고 말고 내가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비록 얼마 전까진 젖은 발로 바위 위를 기어다녔다만 당신들도 아는 나의 사랑스러운 내면 속 강도는 사람을 아주 완벽하게, 완전무결하게 훔친 것 아닌가? 그 누구도 부정 못 할 테지. 그야말로 진짜보다 완벽한 가짜란

2025.04.25 dls
감상&비평 『ASSEMBLE24』 감상평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나는 K-pop 음반에 대한 감상을 쓰기에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특히 4세대나 5세대라고 불리는 아이돌들의 음악은 친구들이 알려주거나 SNS에서 마주하지 않는 이상 따로 찾아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24인의 다인원으로 화제가 된 tripleS의 첫 완전체 정규 앨범, 「ASSEMBLE24」는 나에게도 소식이 닿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고 내 취향에 맞았다. 나는 K-pop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도 그들의 음악을 즐길 방법을 제안하며 이 앨범을 리뷰하려고 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트랙의 사운드와 앨범의 구성이다.[사운드]나는 음악 감상에서 세계관이나 내러티브를 덜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그들이 팀을 결성한 경위와 지금껏 겪은 역경 등에 대한 가사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나에게 흥미롭지 않다. (이것은 앨범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구분된다) 대신 사운드의 디테일을 추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좋은 음색과 적절한 볼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압축과 (스테레오 오디오에서) 악기의 배치, 공간감의 변주 등의 완성도를 기대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는 음악의 장르와 뮤지션의 스타일에 따라 얼마든지 느슨해질 수 있지만, 요지는 그 타이트함과 루즈함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사운드의 관점에서 「ASSEMBLE24」를 바라보면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본 앨범의 7번 트랙 「24」를 예시로 들겠다. tripleS는 다인원 그룹이고, 데뷔 후 2년 만에 발매한 첫 완전체 앨범의 무드를 웅장하게 가져가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런데 「24」는 웅장함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 다소 미숙했다. 「24」의 벌스에 사용된 드럼은 완전히 앞에 나와 있다. 벌스에서는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몇 가지의 효과음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공간이 압축되고 집중되는 효과가 생긴다. 프리코러스에서는 킥을 빼고 스네어만 연주하고 있어 타격감이 줄어든 드럼이 코러스에 달해서는 아예 사라지는데, 이때 베이스는 저음역대를 부스트하고 박자를 쪼개서 드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동시에 공간감의 확장을 위해 신스와 브라스, 그리고 여러 플러그인이 도입되는데 이들이 음역대의 관점에서 보컬과 부딪힌다. 웅장함보다는 밀도만 높은 지저분한 음악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보컬의 역량이다. 24인의 다인원 그룹의 멤버들이 (특히 앨범명 ‘assemble’의 의미를 고려하여)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게 파트를 분배하려면 많은 더블링과 코러스, 애드리브가 필수적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보컬의 볼륨이 작고 파워가 약하다. 이것은 공간감에 있어 뒤로 빠진 소리가 난다는 의미이고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첫째로, 원하는 소리를 명료하게 구현할 수 없다. 보컬보다 뒤에 배치되어야 하는 악기들과 보컬이 충돌하며 소리가 정돈되지 않는다. 둘째로, 멜로디의 임팩트가 없다. 물론 풍성한 코러스는 음악의 높은 완성도에 기여하지만, 적어도 「24」에서 표현된 보컬은 멜로디를 코러스가 받쳐주는

2025.04.25 joomen
귓바퀴 등교 - 등굣길1

교복을 입고 헤드셋을 쓴다 내 방 한구석 아직 귓바퀴에 누워 있는 너 희미한 숨소리가 방을 채운다 교복은커녕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그렇게 누워 있는 너 아무도 너의 숨소리를 듣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는 보고도 못 본 척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소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고 어디까지 가는 걸까 소리가 꿈이라면 작은 손떨림 울리지 않는 핸드폰 그곳에서부터 소리는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헤드셋을 벗고 귓바퀴 옆에 앉는다 꿈을 꾼다는 것은 다른 세계의 우리를 바라보는 것 너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귓불을 만지며 헤드셋을 바라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헤드셋 나는 가만히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2025.04.25 카페라떼
장마

장마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와하늘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지금 하늘이 울고 있다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리도 서러운 건지 참 슬프게도 운다 비를 내리며 소리 지른다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목이 터져라 울고 있다내가 위로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무엇을 해야 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까마음 같아서는 힘껏 뛰어올라 어루만져 주며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나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이야기해 줄 뿐이다 모든 것들은 다 때가 있느니라고 너도 이렇게 암울한 시기를 겪고 나면분명히 빛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매일같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2025.04.25 하랑28
Rockin' a parrot

날개뼈는 발음하고 싶은 소리를 가진 소실. 날 개 뼈, 하고 발음될 때 울음은 오독의 한 방식이 되지. 앵무새는 백지 위에서 발음된 대로 운다. 몸 안의 돌덩이를 뱉어낼 때까지 울고 또 운다. 메리, 네 목소리의 반쪽을 저 멀리다 두고 왔어. 여기에는 반으로 갈라진 존재뿐이야. 존재의 절반을 훔쳐먹은 게 기분 나빴다면 내가 미안해, 메리.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메리. 메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메리의 금 간 육성은 풍화된 돌덩이처럼 바스러진다. 분명 발음된 대로 울었는데. 어째서 흐느낌은 멈추지 않는 거고. 새 안의 반쪽. 새 안의 돌덩이. 모든 돌덩이는 새가 아니므로 쉼없이 발음한다. 돌덩이 밖의 새는 뒤틀린 울음을 토해내고 또 토해낼 뿐. 날개 돋친 듯 저 멀리까지 날아가는 돌덩이. 돌덩이를 매단 듯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새. 추락과 비상은 눈물 한 끗 차이라고들 하지. 광란의 로큰롤 레드 제플린을 듣는 밤. 로큰롤은 이해하지 않고 오해하려 드는 법이지요. 음과 음 사이를 오해할 만한 단락으로 남기고. 새의 울음에 아무리 예쁜 육성을 덧입혀도 영원히 로큰롤일 듯한 예감. 돌덩이는 백지 위에서 잘못 읽힌다. 몸 밖의 부리가 부러질 때까지 읽힌다. 네가 뭔데 그런 소릴 해? 네가 메리에 대해 뭘 아는데? 나의 메리는 날 미워하지 않아. 저주하지도 않고. 나는 메리를 죽도록 사랑해. 메리를 몇 번이고 소멸시켰다고도 장담할 수 있어. 나의 메리는...... 심한 멀미로 몇 번이고 구역질했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새는 몇 번이고 나를 게워내려 했다. 결국 뱉어내진 못했어도. 나는 껍데기 속에 숨어서 발음하고 너는 피눈물을 흘리고. 우리는 존재의 개념으로 결박된 반쪽이었다.

2025.04.24 김예성
기억 왜곡 계절

여름그것은기억 왜곡 계절김은 눅눅해지고몸은 끈적해지고불쾌지수는 치솟고빨래는 마르지 않고연신 부채질을 해대고열대야에 잠 못 이루고습한 공기에 코를 찡그리는그런 날들이 구 할인데문득 바라본파아란 하늘과 적란운초록이 넘실대는 창문비 온 뒤 흐르는 내음그런 사소한 것들이여름밤 콕콕 박힌 별처럼기억에 새겨져언젠가그 계절을 회상할 때에아름다움을 추억하게 되는 것은이 때문인지기억 왜곡 계절그것은여름

2025.04.24 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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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ng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협성마리나G7)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호텔프린스)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남이섬)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2025년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