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243

시
문장의 시선 더보기경계가 지워지는 사이 -비/인간과 타자 김웅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1) 1 비인간이 가진 속도가 빨라질수록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감응하기 위해 우리가 경유하는 코뮨적 신체는 그러나 공통된 목소리를 요청하진 않는다. 인간 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선(善)’이라는 보편성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의 총체적 시간 속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線)’을 만들고 있음을 주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에서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의 의미를 재삼 곱씹게 된다. 2000년대 시적 주체는 한국 사회―넓게는 인간 사회가 구축해 놓은 알고리즘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는 타자의 자리에 자신을 노정 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거나 보장받을 수 없음을 인지하고 실감하는 존재”2)로 변모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라는 중심점에서부터 시작된 시적 사유는 단순히 생리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사회체에 불과할 뿐 윤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관계를 방증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아이-화자는 시적 주체를 “‘부모-자식’이라는 수직적 차원에서 불화하는 관계”로써 “윤리적 모험”3)을 나서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이 아이-화자는 201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적 트라우마’를 흡습한 시적 주체로 전성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애도의 총량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실존의 차원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능력’”의 테제가 되고 그 무능력이 곧 “‘내면적 성찰’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를”4) 희망하는 고무적인 발화자로 시인을 이끄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복무해야 하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또 하나의 책무이자 윤리로 자리 잡는다. 이 같은 관점은 시민적 트라우마를 통감하는 주체로서 몸이 갖는 일종의 생활론적 윤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5) 그런데 2020년대의 시적 주체에게 윤리적 책무감은 역설적으로 더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고독감’을 불러왔다. 시민적 영웅이 되지 못한 인간, 소박한 일상조차 꿈꾸지 못하는 인간, 죽지 못해 살아 내는 몸의 형상은 시민적 트라우마 앞에서 내색할 수 없는 존재로 내세워졌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안온한 고립을 거부”하거나 “낮이라는 다스려진 영역을 다루는 임무 가운데 의연한 관계를 유지하는”6) 숭고한 고독과는 거리가 먼 고독감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개인주의
전쟁에 반대하며 ―고통과 쟁론 입론 박동억 1. 고통으로 향하기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은 1998년 초의 일이었다. 이 무렵 시인 허수경(許秀卿; 1964~2018)은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뮌스터 대학에서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며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차였다. 그해 말 NATO가 전쟁에 개입했고 공군을 동원하여 세르비아에 폭격을 개시했다. 허수경은 매스컴 보도를 보며 전쟁의 참혹함에 경악했고 두 나라의 고통받는 민간인을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다. 그의 석사논문 주제는 기원전 6,800년에 세워진 중동의 작은 도시 초가 미쉬(Choghā Mīsh)였다. 그는 반만년 전의 멸망한 유적지를 오가며 “도대체, 이런 아카데미의 고상한 놀이가 지금의 전쟁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잠겼다.1) 다행인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2001년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수 있었다. 군인들은 팔다리를 잃었고, 아이와 여자들은 고향을 잃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어로 열거할 때 단조로운 사실이 되어 버렸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실감할 수 있도록 허수경은 시적인 상상력을 활용했다. 그의 시집에는 전쟁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자르는 극적인 사건이나 난민이 된 여자들이 짐승 우리로 피난했다가 짐승과 교접하는 일화가 나타난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상은 언어화할 수 없는 전쟁의 잔인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코소보 전쟁은 그저 먼 나라의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아니었다. 허수경은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 가는 시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라고 썼다. 이러한 애도가 무색하게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시인은 2005년 네 번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의 서문에서 아예 자신의 시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반(反)전쟁에 대한 노래’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시인에게 시 쓰기는 그의 영혼이 저 먼 타인의 고통에 접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어떻게 그는 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영혼 곁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 그것은 그가 자임한 윤리의식이 역사적 복잡성이나 정치적 알력을 멀리한 채 성립된 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누가 가해자인가. 허수경은 전쟁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전쟁을 일으킨 자, 폭력을 수행하는 자를 고발했다. 누가 피해자인가. 그는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전쟁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평화주의나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한 문명을 비판하는 에코페미니즘으로 일컬어졌다. 나, 태어났어 추워, 라고 말하면 정말 추워서 이 세상을 떠도는 모든 먼지들을
점과 획의 시간 ― 한강, 『빛과 실』1)로 『바람이 분다, 가라』2) 다시 읽기 이지연 1. 코스모스의 정원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별의 자녀들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우주(宇宙)’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오늘, 위아래와 사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기원전 4세기경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 이 말은 천지만물(天地萬物)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아우르는 세상의 총체를 뜻하는 것이었다.3) ‘우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에는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세 가지가 있는데 각각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그중 ‘코스모스’는 혼돈, 무질서를 뜻하는 ‘카오스(χάος)’의 반의어로서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됐다. 1980년 칼 세이건은 천문학과 우주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목적으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거기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방영되자마자 전 세계 인구의 3%가 시청했다는 이 프로그램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면서 현재까지 1,0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칼 세이건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코스모스』가 처음 한국에서 번역된 것은 원본 출간 이듬해인 1981년이었다. 당시 번역자인 서광운은 ‘Cosmos’를 ‘우주’라고 번역했고, 이후 2004년 홍승수의 번역본에서는 원어 그대로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썼다.4) 그가 번역한 『코스모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5)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한 번에 오가는 ‘모든 것’의 이치가 우주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우주는 ‘스페이스’도 ‘유니버스’도 아닌, ‘질서’를 뜻하는 이름 ‘코스모스’로 불린다. 600쪽에 달하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세이건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나아가 모든 생명체는 그 탄생부터 소멸까지 모두 코스모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일부로서 코스모스의 자손이자 미래이다. 올해 4월, 문학과지성사는 한강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작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진행한 기념 강연의 제목을 땄고, 표지에는 그의 작은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흑백 사진이 실려 있다. 온통 까만 배경에서 유독 흰 사각형의 무늬가 눈에 띈다. 책에 수록된 산문 「북향 정원」에서 한강은 볕이 들지 않는 정원에서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울을 이용해 햇빛을 모아 주어야 한다고 썼다. 거울에 반사된 빛의 형상인 듯한 그것은 &lsqu
새로움의 경제 2(3) - 문학적 사용에 관한 비체계적 단상1) 강동호 1. 예술과 상품의 새로움을 구별할 수 있는 원리를 탐색하는 데 있어 ‘유용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한 출발점으로 보일 수 있다. 유용성의 관점에서 예술과 상품이 식별될 수 있다면, 양자의 새로움이 발휘하는 효과 또한 서로 다른 원리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품 경제에서 새로움은 도구성과 결부된 차별적 정보 가치로 통용된다. 새로운 상품은 대개 기능적 유용성(사용가치)의 측면에서 과거의 상품과 구별되며, 뚜렷한 비교 우위의 원리에 따라 그 가치가 측정되기 마련이다. 이때 새로운 상품에 부여되는 더 높은 가격이라는 차이적 가치(교환가치)는, 한층 개선된 사용가치의 우월성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 예술 작품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예술의 새로움 역시 과거와의 차이를 전제로 한 비교적 가치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가치를 정당화하는 비교 우위의 척도(사용가치의 명시적 우월성)가 설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새로운 예술 작품은 과거의 것보다 한층 매력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동시대의 감각에 보다 적합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과거 작품에 대한 일방적 우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유용성처럼 명확히 우열을 판별하는 기준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예술에서의 새로움을 더욱 복잡한 가치로 만드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2 예술의 자율적 가치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전통적 이론들은 대체로 유용성의 결여 또는 그로부터의 자유를 예술의 핵심 본질 중 하나로 파악해 왔다. 유용하지 않다는 점, 즉 그 어떤 실용적 목적이나 기능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때 유용성의 부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공통 척도의 결여를 통해 부각되는 교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이다. 주지하듯, 이러한 사유의 계보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적 전환점을 제공한 인물은 칸트이다. 『판단력 비판』에서 그가 제시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purposeless purpose)이나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과 같은 개념은, 예술을 시장적 가치 평가와 경제적 교환의 논리로부터 구분하는 철학적 근거에 해당한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가는 그 어떤 외적인 목적에 의해 지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생산해야 하며, 감상자는 이해득실과 무관한 순수한 향유를 통해 작품의 아름다움을 경험해야만 한다. 이처럼 예술의 자율성은 어떤 보상이나 대가에도 편향되지 않는 행위의 독립성과 무관심성에 깊이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수공업적 기예는 임금이라는 대가를 전제하는 강제적 노동이지만, 예술은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자유로운 행위로 간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이익과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적 주체(호모 이코노미쿠스)와 동일시할 수 없으며, 무용성은 이와 같은 비환원성,
네버랜드 탈출기 ― 김희준론1) 최다영 1. 신(新) 아카이브 프로젝트 선행 평론에서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듯 “근원이나 태생에 대한 감각”이나2) “원형 회귀본능”을3) 말하지 않고서는 김희준의 시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현상의 내밀한 원인을 해명하거나 김희준의 시적 작업이 내포한 고발과 대항 의식을 읽어 내기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키워드이기도 하다. 수록작이기도 한 ‘사기(史記)꾼’이라는 제목은 충실한 아키비스트(archivist)이자 교란하는 트릭스터(trickster)라는 상반된 함의를 모두 내포한다. 혹은 아키비스트의 본령이 트릭스터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기(史記)꾼’으로서 김희준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화와 성서, 동화 등 무수히 집적된 공동체적 기억의 편린을 환상적으로 중첩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비틀고 왜곡하는 지점에서 김희준만의 원형적 이미지가 접속 면의 틈을 찢고 출현한다. 그의 시의 근간을 형성하는 태(胎)가 익숙한 공통의 근원 서사에서 발생했을지언정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성교와 번식, 근친과 식인의 모티프는 공포스러운 재생 감각으로 연결되며 그만의 개인적 이미지로 일관되게 수렴하는 것이다. 바르부르크의 언급대로 이미지가 생물학적 필연성의 산물이라면, 김희준이 강박적으로 봉합하고자 한 거대 명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류는 종교,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방법을 경유하여 원초적 두려움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보호하며 종의 계승을 보존해 왔다. 출생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인간도 피해 갈 수 없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보편타당한 종의 운명 앞에서 이를 추상화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또 사회적 집단 기억을 대를 이어 계승함으로써 두려움을 봉합하고 파토스를 안정시켜 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희준은 그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를 개발하고 반복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이미지의 기원에 대한 대답을 동시대에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며 등장했다. 김희준에게 있어 기원을 더듬는 일은 그 계보를 추적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화적 세계관을 축조하고 공고히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때 감지되는 건 신화와 동화의 알레고리 이면에 자리한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고발과 저항 의식이며 더 나아가 발생과 소멸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엄윤채 (@90r1p) 2. 재생하는 네버랜드 김희준의 시 속에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은 주로 ‘소나기’이지만 때로는 “불”이기도 하고(「인류도감」) “아이”이거나 “유성”(「백색소음」), “사내”(「페스티벌」), “밀도 높은 당신” 혹은 “저녁”(「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테트리스 적응기」), &ld
새로움의 경제 2(2) 강동호 1. 새로움의 역설 광인은 입을 다물고 청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청중들도 입을 다물고,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그는 등물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등불은 산산조각이 나고 불은 꺼져버렸다. 그가 말했다. “나는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방황 중이다. 이 사건은 아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못했다.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하다. 별빛은 시간이 필요하다. 행위는 그것이 행해진 후에도 보고 듣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 니체, 『즐거운 학문』1) ‘새롭다’라는 말은 대개 ‘다르다’ 혹은 ‘최근에 생산되었다’라는 의미가 결합된 단어로 통용되곤 한다. 새로움이라는 개념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까닭은 그것이 대상의 특징적 차이를 지시하고, 그 특별한 가치를 강조하는 데 있어 가장 직관적인 기호에 해당해서일 것이다. 시장(market)은 이러한 ‘기호 가치’로서 새로움이 이견 없이 유통되는 대표적인 시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가령 어떤 자동차를 일컬어 ‘새로운 자동차’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해당 자동차가 여타의 자동차들과 다르며, 상대적으로 최근에 출시된 신상 모델이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자동차가 사람들로부터 더 큰 매력과 구매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새로움은 해당 제품의 기능적 우월성을, 그리고 그로부터 얻게 될 한층 차별화된 만족과 유용성을 표현한다. 여기서 새로움이라는 기호에 함축되어 있는 ‘차이’(difference)의 기제는 새로움이 일종의 비교적 가치라는 점을, 나아가 차이의 비교 우위를 정당화하는 원리가 발전·진보·개선 등의 시간적 내러티브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 시대에는 차이가 최우선의 높은 가치를 지닌다”2)는 바우만의 진단처럼, 새로움의 가치화 현상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차이의 경제(economy of difference)이다. 차이적 가치 혹은 가치로서의 차이야말로 교환·거래를 활성화하는 매혹의 원천이자, 시장의 혁신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원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차이의 경제는 예술 작품의 미학적 의의를 규명하는 과정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지하듯 예술은 작품들 사이의 차이를 판별하고, 원본성·독창성·창의성 등의 이름으로 작품의 새로움을 조명하려는 제도적 장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의 새로움이 차이의 논리를 통해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적지 않은 이견이 제기되어 왔다. 이를테면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새로움과 차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기형도 시인학교 ‘시 합평반’: 서윤후 작가와의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 전 에피소드가 궁금한 분은 큐알코드 또는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EP2. 문학창작지원사업 링크 : https://url.kr/5xihvs ‘기형도 시인학교’는 (재)광명문화재단이 문학 분야의 인재 양성과 지역 문학의 진흥을 위해 운영한 프로그램이야. 올해(2024년 기준)로 2회를 맞는 ‘기형도 시인학교’는 많은 시민과의 만남을 위해 다양한 계층과 예술 장르, 장소 등을 고려해 9개의 프로그램을 구성했지. 강의는 창작 수준을 고려하여 ‘기초반’, ‘창작반’, ‘합평반’, ‘동시반’으로 개설했어. 또한 기형도 시인의 문학 정신을 알리고자 시민문화플랫폼 공간에서 ‘학교 밖 이야기’, ‘한 뼘 교실’을 진행했으며, 그림으로 느끼는 기형도 시인의 작품 전시회 ‘시:리즈’도 선보였어. 그중, 문장이는 ‘시 합평반’을 신청했어. 총 7회차의 수업으로 구성되었으며 강사진은 이수명 시인, 이소호 시인, 서윤후 시인이야. ▲참가 자격 1. 자신의 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분 2. 시 창작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싶은 분 3. 시 쓰기를 사랑하며 등단을 희망하는 열의가 있는 분 ▲신청 방법 수강신청서 1부, 본인 창작시 1편, 이메일 제출 지정 양식 다운로드 : 기형도문학관 홈페이지 >교육 및 행사 > 예정 프로그램 이메일 : kihyungdomuseum@naver.com ▲선정 방식 기본기 및 충실성(20), 예술성 및 우수성(50), 기대 가치(30) ▲모집 인원 성인 15명 1~3회차는 강사별로 시 창작 강의를 하였고, 4~6회차는 그룹 합평, 마지막 7회차는 전체 합평 및 마무리 담화를 나누었지. 이수명 시인은 ‘시의 오해와 이해’를 주제로 시 창작 강의를 했어. ‘시에 대한 오해’, ‘시 쓰기에 대한 오해’에 대해 강연하며 이수명 시인만의 시론을 펼쳤지. 이소호 시인은 기형도를 비롯한 기성 시인의 작품을 낭독한 후, 수강생들과 함께 감상을 나눠 보는 시간을 가졌어. 또한 이소호 시인의 초고 작품을 읽고 문장을 지워보는 등 &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걸어서 책방 속으로 - 천안 지역 독립서점 소개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제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지역인 천안에는 구도심인 천안역을 중심으로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습니다. 천안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걸어서 구경해 볼 수 있어요. 수도권이나 중심지에 비해 상권이 발달하지도, 유동 인구가 많지도 않지만 오히려 주변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성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독립서점들이 어떻게 각자의 특색을 살리며 운영 중인지 살펴보고자 직접 천안역에서부터 걸어서 독립서점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책방지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천안역에서 출발, ‘책방 악어새’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버들로 22, 1층 SNS: 인스타그램 @crocodilebird.book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일전에 인터뷰 원고를 작성한 적이 있던 ‘책방 악어새’입니다. 천안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책방 악어새’는 시와 동화를 주로 다루며, ‘문학인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곳이에요. 책방은 성욱현 작가와 조민주 작가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욱현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으로, 202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조민주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현재 동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고 성욱현 작가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방에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방의 위치입니다. ‘책방 악어새’가 있는 천안역은 천안의 구도심이라서 이제는 상권이 매우 발달하거나 청년들이 자주 찾는 공간은 아니에요. 그런 구도심 중에서도 ‘책방 악어새’는 건물이 꺾이는 골목에 작게 위치해 있습니다.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자리에 ‘책방 악어새’가 있는 것처럼 다수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 예술가, 사회적 약자 등을 배변하는 캐릭터가 바로 ‘악어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악어새는 몸은 새이고, 머리는 악어인 환상의 동물인데 악어 무리에도 새 무리에도 섞이지 못하는 캐릭터예요. 이런 악어새를 닮은 사람들이 편안하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우리에게 필요한 책 틈 사이: 전주 도서관의 틈 문장서포터즈 김주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면, 그 커다란 에너지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지요. 공간을 기획하고 채우는 모든 요소,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나에 몰두하고 있다는 감각이 참 즐겁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전주 독서대전에서 가장 좋았던 점도 책과 독서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을 같은 정서로 잇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주시는 2018년부터 독서대전을 개최하여 올해로 7회를 맞았는데요, 올해는 ‘가을, 책 틈 사이로’라는 슬로건을 주제로 전주 페스타라는 큰 축제 안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었고, 저는 11일과 13일, 이틀 동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주 종합경기장에 방문했습니다. 그중 11일에 참여했던 전주 책 문화 답사의 경험을 꼭 나누고 싶었어요. 저는 행사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전주 도서관의 틈: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요, 전주 금암동과 서노송동 일대를 함께 걸으며 전주의 책 문화를 탐방하는 코스였어요.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걸을 생각에 걱정되기도 했지만, 중간에 자유롭게 중단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걱정보다 크기도 했고요. 집결지인 전북여성가족재단에 도착하니 해설사님과 인솔 스태프분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함께 답사를 진행할 참가자분들도 하나둘 도착했습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어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봉사자도서관’입니다. 전주시자원봉사센터에 속한 건물이었는데, 예쁘게 정돈된 무지갯빛 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번화가와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위치해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넓은 잔디밭이었고, 창가 쪽의 책상과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이 가진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도서관 내부는 넓고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봉사 관련 도서를 모아 놓은 코너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영풍문고 전주터미널점’입니다. 전주에는 대형 서점이 4곳 있는데, 영풍문고가 그중 하나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 3층에 위치한 영풍문고를 짧게 훑어보고, 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거북바위 등 이동 중에 보이는 미래 유산을 쭉 훑으며 계속 걸었습니다. 그리고 ‘전주시립금암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부로 세워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 현장 방문 및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20회 에 방문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공존으로의 여정’이었어요. 이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 밖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공존이란 단순히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타자를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으며, 나 역시 타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에서 출발해요. 문학과 예술,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대화하는 장이 바로 이번 이었습니다. 20여 곳의 출판사가 참여한 만큼,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도서 판매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기후 위기 등과 관련된 사회학 서적부터 다양성과 포용력을 주제로 한 동화책까지 다양한 도서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며, 업사이클링 굿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는 제10회 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컬러링 체험존도 한창이었어요. 이외에도 에서는 다양한 포럼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10월 12일 서교스퀘어에서 진행된 에 참여해 보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작가가 국경을 초월하여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협업한 앤솔러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를 출간했으며, 기념행사와 책 판매를 이번 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한국 작가 김멜라, 김애란, 윤고은, 정보라와 캐나다 작가 리사 버드-윌슨, 얀 마텔, 조던 스콧, 킴 투이가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들은 에서는 박혜진 평론가가 진행을 맡았으며 김멜라, 윤고은, 조던 스콧, 킴 투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의미와 힘,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먼저 「판사님」이라는 단편소설로 엔솔러지에 참여하신 킴 투이 작가의 이야기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킴 투이 작가는 난민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말씀하셨어요. “퀘백의 난민 캠프에 있던 어린 시절에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나는 아시안으로서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