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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vol.240

2025년 4월호
2025년 4월호
문장웹진

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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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5.04.01
너희가 신처럼

너희가 신처럼 이승우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장 1-6절, 새번역성경) 1.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신이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게 정말이냐?” 지나치게 기다랗고 몸에 털이 없는 뱀은 동산의 어떤 생물과도 같지 않았다. 여자는 그렇게 느꼈다. 하기야 동산의 모든 생물은 다 달랐다. 모습과 소리와 걸음걸이와 습성이 제각각이었다. 모든 생물은 그렇게 지어졌다. 다른 이와 다르다는 것, 고유하다는 것, 그것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있음’을 담보하는 것이 고유함이다. ‘나’는 ‘나’ 외에 누구도 아니고 ‘나’만 ‘나’이다. 있음은 선언이 아니라 상태다. 모든 있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남다르다. 나는 남과 다르고 남은 나와 다르다. 남다르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말과 뜻이 같다. 그러니까 있음의 상태는 다른 있음, 즉 다른 남다름에 의해 보장된다. 한 고유함/있음은 다른 고유함/있음에 의존한다. 한 고유함/있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고유함/있음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있는 것들은 홀로 있지 않고 더불어 있다. 그러나 뭉쳐 있지 않고 따로, 다르게, 고유하게 있다. 뱀은 동산의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길고 매끈하고 또 은밀했다. 그것이 뱀의 남다름, 뱀의 고유함이었다. 뱀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고 소리 내지 않는 것처럼 소리 냈다. 그래서 뱀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기까지, 심지어는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듣기까지 여자는 뱀이 곁에 온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뱀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였고 소리 내지 않는 것처럼 소리 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동산 안에는 나무들이 많았다. 나무들은 줄기가 가늘거나 굵고

소설 2025.04.01
흰옷 빨래의 날

흰옷 빨래의 날 안담 오늘은 마지의 기일이니까 흰옷을 모아 빨래를 한다. 마지가 유니폼처럼 자주 입던 크림색 티셔츠도 잊지 않고 꺼내서 빤다. 아마도 처음 살 때는 흰옷이었을 거다. 내가 애용하는 독일 브랜드의 캡슐 세제는 성능이 뛰어나다. 이 티셔츠에서는 마지의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나도 마지의 냄새를 잘 떠올릴 수가 없다. 꽤 강한 냄새였는데, 그런 냄새가 잊히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가끔 그 냄새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4년 전 마지와 내가 처음 만났던 장소인 모둠 전집에 간다. 전을 굽는 작업대가 가게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 포장 손님도 많은, 반은 노점인 그런 가게. 튀는 기름을 막기 위해 조리대 틈새와 철판 모서리에 은색 호일이 덧대어져 있고, 그럼에도 철판 가장자리나 작업대 위 처마에 쌓이는 기름때를 막을 수는 없다. 조용히 질색하며 지나치는 행인들, 저 시커먼 데서 맛이 나오는가 보다고 농담하는 손님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를 맡는다. 이 냄새와 비슷했던 것 같아. 열과 기름과 사람이 합쳐서 내는 냄새. 전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냄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내 동거인의 냄새, 홍제천 스리룸의 주방 맞은 편 작은 방의 냄새, 마지의 냄새. 앞으로는 누구와 같이 살 생각이 없다. * 윤석열 나이로 스물아홉이 되던 2021년 겨울, 나는 당근마켓을 통해 홍제역 인근 스리룸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마지는 그 글을 보고 연락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좋은 집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련산과 홍제천이 코앞이고 인왕산이나 북한산도 비교적 멀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프라랄 게 없는 집. 인적 드문 가파른 언덕에 있고 북향이라 볕이 잘 들지는 않으며 어떤 역에서든 멀었다. 낡은 건물인데 월세는 70만 원으로 센 편이었다. 월세를 제외하면 그 집의 여러 요소는 내게는 장점이었다. 크고 힘 좋은 내 개와 오를 산이 있고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는 게. 스리룸에 방들이 크고, 연식이 오래된 집의 컨디션을 의식한 집주인이 못 박기를 포함해 여러 변화를 허용해 준다는 점도 좋았다. 나부터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흡연자도 좋았다. 내가 대형견과 산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장점이고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단점이었을 테다. 내 개는 순하다 못해 맹한 편이었지만, 글에는 남자나 키 큰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보인다고 적었다. SNS로 하메를 구하는 여자에게 피곤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는 줄 아냐고 으름장을 놓은 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인 소개가 낫지 않냐는 조언도 숱하게 들었지만, 지인의 지인이 길거리에 다니는 아무개보다 더 좋은 사람일 거라는 전제에 동의가 잘 안되었거니와, 하우스메이트가 맘에 안 들었을 때 소개해 준 지인의 체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의 구인 글은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이런 형태가 되었다. ‘홍제역 인근 스리룸 하메 구합니

소설 2025.04.01
성한 입

성한 입 이현석 아기 앓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박명이었고 아직 분유 먹일 시간은 아니었다. 어두운 잠귀를 이유로 밤 당번을 자처한 것은 나였으나 의지와 달리 본성은 강했다. 아내가 자리끼 컵을 산산조각 냈을 때도 세상모르고 코만 곯았다는데 율이와 둘이 잔 뒤로는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금방 뜨였다. 바닥에 깔아 둔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아기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율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오물거렸다. ‘아빠가 또 속았네.’ 잠은 설쳤어도 흐뭇했다. 이 작은 목숨이 간밤을 또 무사히 넘겼구나. 그 마음을 얹고 도로 몸을 뉘었는데 다시 잠에 들지는 못했다. 아기방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거슬렸다. 창문은 밤새 돌린 가열식 가습기 탓에 부러 흩뿌린 것처럼 흥건했다. 문득 재건축 조합 단톡방에서 보았던 잡담이 떠올랐다. 유명 로펌을 다니느라 바쁜 딸과 얼마 전 개원한 의사 사위를 대신해 손주 둘을 보느라 겨우내 가습기를 틀었더니 옷장 안에서부터 피어난 검은 곰팡이가 벽면 한쪽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시황 따라 일이 억은 우습게 에누리하는 아파트에서 곰팡이 걱정이라니. 직면한 현실과 지난봄 우리 부부가 치른 비현실적인 가격 사이의 뚜렷한 차이에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현실만 따지면 놀랍지 않았다. 아파트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삼화토건 회장 도예종, 매일신문 기자 서도원,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여정남 등 여덟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으로 사형을 선고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을 집행했던 바로 그해에, 여의도의 다른 구축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명령으로 완공됐다. 반세기가 넘은 건물이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곰팡이는 당연했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아도 놀랄 것이 없었고, 개수대에서 썩은 내가 올라와도 그러려니 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여름밤에는 통통하니 살이 오른 쥐가 아파트 복도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기함할 듯 놀란 나와 달리 아내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빠, 견뎌. 이게 실거주 투자의 현실이야.” 아내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나는 그 말을 묵직이 받아들였는데 싱글일 때부터 정석대로 자산을 늘려 온 아내의 투자 이력을 알아서였다. 현관문을 잽싸게 닫은 나는 만삭이 된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충성충성”이라고 촐싹댔다. 사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 벌레나 쥐가 부르는 본능적인 혐오도 자산 증식이라는 대명제 앞에선 한낱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곰팡이조차 농담일 수 없었다. 집에는 율이가 있었다. 가습기를 끈 나는 전날 벗어 둔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율이가 깨지 않게 까치발로 창문에 다가갔다. 물기를 닦고서 창문을 미세하게 열었다. 서늘한 외풍이 실낱처럼 들어왔다. 재건축 단톡방에 상주하는 어르신들은 아침에 잠깐씩 이렇게 해 두면 곰팡이도 예방하고 아이

소설 2025.04.01
입생로랑 낭떠러지

입생로랑 낭떠러지 김엄지 1 E는 걸으면서 여자 친구를 떠올린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지갑을 선물하리라. 메탈릭 컬러의. E는 결정했다. 메탈릭 컬러가 여자 친구의 취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거리에 눈발이 날리고, 때늦게 웬 눈인가. 인도로 걸어야 하는데 보도블록을 까뒤집어 놓은 날이다. 찬바람에 흙먼지가, 눈보라가 휘날린다. 이런 날씨에 무슨 공사를. 보도블록과 공원 터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다. 중장비 두 대가 덩그러니 멈춰 있다. E는 카페로 가는 또 다른 길, 크게 우회하여 걷는 경로를 떠올린다. E는 천변으로 내려가 물을 따라 걷기로 한다. 2 축복이라는 건 그저 그런 상황에서 주시는 게 아니야. 핑크빛, 막 그런, 좋고, 그런 게 아니라. 코너로 몰아. 사람을 몰고 몰아서. 상황 중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 보증된 건 천국이라는 자리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거. 여기서의 생활이 너무 괴로우니까. 갈등이, 사람을 끝까지 몰아가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얼마 전에 급식 봉사하는 분 간증을 들었어. 오늘 밥 열심히 나눠 주고, 내일 밥할 돈을 또 구해야 하는 게 너무 큰 고난인 거야. 밤새 기도를 한대. 내일 밥값이 없습니다. 내일 밥값이 없습니다. 그럼 신기하게 다음날 딱 급식할 밥값만 입금되어 있대. 넉넉하게 편안하게 안 해 주는 거야. 하루만 딱. 항상 하시는 일이 그거인 거야. 딱 그거. 하루치. 너무 신기한 거야. 신기한 가운데 이틀치 주시면 안 되나요, 싶은 거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때는 사용할 그만큼만 하시는 거야. 하나님 음성 듣는다고 행복하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내가 열성분자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아. 내가 교회를 못 갈 일이 생기면, 오늘은 교회에 오지 말고 모임에 나가라, 하신다고. 내가 하나님 모를 때는 팝송도 듣고, 이거저거 다 들었는데, 하나님 알고 나서는 찬송가만 들었어. 그랬더니 어느 날 하나님이 네가 듣고 싶은 것 들어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알게 됐지. 아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구나. 하나님이 너무 응답해 주시니까 신학대학에 가려고 했거든. 신학대학 가기 전에 히브리어 띠고 가는 게 좋다고 해서, 히브리어 시작하려는데 그때 또 들렸어. 그 길은 네 길이 아니다, 음성이 들리더라고. 그래서 신학대학원은 안 가기로 했어. 하나님 왜 그러시냐고 물을 때는 답이 없으셔. 사람은 모르는 거야. 하나님만 아시는 정확한 때에. 정확한 방법으로 딱 그만큼만 알려 주시는 거야. 내가 구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알려 주시고, 들려주시는 게 아니야. 성령이 임한다고 마냥 핑크빛이 아닌 거야.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내 몸으로 보여 주셔. 물집이 똑 떨어지고 그 자리에 반점이 생기는 거야. 나 심장도 멈춰 봤어.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멈추면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 나를 그렇게 움켜쥐고 있던 게 내 숨이었던 거야. E는 카페에 앉아

소설 2025.03.01
파 프롬 홈

파 프롬 홈 강지원 데이팅 어플에서 매칭된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재이는 가장 마음에 드는 상대였다. 주고받는 대화의 간격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적절한 간격을 터득한 것 같았고 민주와는 달리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머리 길이나 성향을 묻는 등 소상한 신변잡기에 심취하지도 않았다. 이따금 주고받은 일상 사진으로 추측건대 취향도 대강 비슷한 것 같았다. 민주는 취향을 가늠하기에 가장 보편적인 질문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다. 각자의 별 다섯 개짜리 영화와 이런저런 퀴어 영화를 나열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아가씨〉와 〈캐롤〉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한 감상이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는 감명 깊었고 언젠가 그런 영화처럼 대단한 인연을 만나길 바란 적도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실감과는 다소 동떨어진··· 여느 판타지 영화나 다름없다는 이야기. 재이가 덧붙였다. 그런 건 이제 〈아이언맨〉 시리즈처럼 보는 거죠. 여러모로 호기심이 동하는 사람이었다. 화면 속 인력이 민주를 자꾸만 끌어당겼다. 얼마 전, 전 여자 친구인 보영을 만난 참이기도 했다. 헤어지고 한 달 만에 연락을 하더니 이사할 적 챙기지 못한 짐을 가져다주겠다며 대뜸 선언한 것이다. 이제 와서 대체 뭘? 뾰족한 말이 불거졌으나 그것을 부러 꺼내어 겨누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버려 달라며 부탁해도 보영이 한사코 고집을 부리는 탓에 속수무책이었다. 얼굴 보고 대화도 할 겸. 보영의 연락에 마지못해 응하고서는 근처 역 이름을 말했다. 간만에 본 보영의 얼굴은 어딘가 누추하고도 조촐한 몰골이었다. 두고 왔다던 짐만 챙길 심산이었는데··· 정작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뭔가 헛헛하네. 간소한 세간을 보자마자 보영이 중얼거렸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으면 그럴 수도 있지. 곧 눈치를 살피며 수습했다. 기껏해야 다섯 평일 방은 냉전을 치르는 동안 급하게 구한 곳이라는 걸, 함께 살던 집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형편에 맞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전 여자 친구 앞에서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현관 앞에 짐을 둔 보영이 머뭇거렸다. 돌이키기에는 지나치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거운 찬장을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다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던 맥주캔을 대접했다. 1인용 좌식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선 안부와 근황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듬성듬성 이어 갔다. 내밀한 공간은 마음가짐을 신중하게 만들었다. 싸구려 가벽 너머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와 앞집 커플이 주고받는 욕설 따위가 들렸다. 밤만 되면 불거지는 것들이었다. 씨발! 한 번 더 욕설이 떨어지자, 보영은 놀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앞에 커플이 사는데, 자주 저래. 민주는 별 대수롭지 않은 척 굴었다. 너는 저게 괜찮아? 보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 동

소설 2025.03.01
이름 쓰기

이름 쓰기 문지혁 1 1994년 봄에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방배중학교는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언덕 위에 위치한 학교로, 작고 아담한 운동장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아마도 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수업 중에 갑자기 앞문이 열렸습니다. 평상시에는 대체로 일어나지 않는,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을 때 생기는 일이지요. 문지혁, 나와. 저를 호명한 사람은 학생주임 선생님이었습니다. 머리가 꽤 많이 벗겨진 데다 웃을 때마다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치열 때문에 〈개구쟁이 스머프〉에 등장하는 ‘가가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분이었지요. 본업은 음악 교사였습니다. 주무기는 끝을 다듬은 하키채였고요. 당시 선생님들에게는 저마다 그런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과거형과 과거 완료형의 차이를 가르치던 영어 선생님이 말을 멈췄습니다. 졸던 아이들이 눈을 떴습니다. 체크무늬 양복을 입은 학생주임 선생님이 저를 손으로 지목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저에게 쏠렸지요. 학생주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는 앞문으로 곧장 나가야 할지, 아니면 뒷문으로 돌아 나가야 할지를 두고 아주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수업 중인 영어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복도로 나가 뒷문을 닫자 학생주임 선생님도 앞문을 닫고 먼저 걷기 시작했습니다. 설명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계단 쪽으로 걸어갔고 저는 우리가 교무실로 향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직감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교무실은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교무실에 가는 것을 지옥문을 여는 것처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반장 혹은 부반장이었고 전교 학생회의 임원이었으며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모범생이었으니까요. 심부름을 비롯한 다양한 용건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교무실에 드나들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저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네가 문지혁이구나. 용무를 마치고 나면 몰랐던 선생님도 제 초록색 명찰에 새겨진 하얀 이름을 눈여겨보며 말했습니다. 마치 도감 속에 나오는 동물을 실제로 본 어린아이처럼요. 이번엔 무슨 일일까? 교실이 있던 3층에서 교무실이 있는 1층까지 내려가는 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부름이라면 매우 중대한 일이거나 아주 급박한 이유일 거라고 짐작했죠. 이를테면 상을 받는다거나, 학교 대표가 되었다거나, 당장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거나··· 그것이 나쁜 일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이 계단을 다 내려가면 제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제 만으로 겨우 열넷인 소년에게 세계란 그토록 단순하고 안온하며 순진한 것이기 마련이니까요. 학생주임 선생님이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소설 2025.03.01
빛의 한가운데

빛의 한가운데 정이현 만약 아무것도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자신이 낳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과는 다르다. 안희는 몇 해 전 이토록 모순적인 마음을 미령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은 미령에게만 할 수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미령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진심, 나도. 어깨에 얹힌 타인의 무게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안희와 미령은 경쟁하듯 토로했다. 그들은 한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안희의 아들과 미령의 딸은 동갑이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이 있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 때문에 알게 되었으나 그들은 그와 상관없이 가까워졌다. 비슷한 일들이 어디서나 일어난다. 아이들이 진급할 때마다 안희와 미령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이제 몇 년째, 라고 헤아리곤 했다. 10년이 되던 해에 내년엔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겠다고 안희가 말하자 미령이 그럼 발가락으로 세면 된다고 말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올해 초, 안희의 집에 놀러 온 미령이 귤을 까려다 말고 갑자기 한쪽 양말을 벗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부터 카운트를 시작하자면서 맨발을 꼼지락댔다. 그녀만큼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안희를 웃겨 준 사람은 없었다. 또 없을 것이다. 언니가 늘 귀엽게 봐 주니까. 미령은 안희를 언니라고 불렀고, 안희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미령과의 관계에서 안희는 어떤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나이가 몇 살 어린 친구라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미령이 상대방에게 지금 친구랑 노는 중이라고 말했던 때부터인 것도 같았다. 그런 말들은 연장자가 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이가 어린 쪽에서 하면 꽤 근사하게 들린다. 안희가 보기에 미령은 근사한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같이 노는 사이가 친구가 아니면 친구는 누구란 말인가. * 안희는 미령을 처음 본 순간을 기억했다. 혁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학교에서 신입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가 열렸다. 3월 초, 아직 스웨터 아래 히트텍을 벗기 힘든 날씨였다. 안희는 두꺼운 머플러를 동여매고 그 속에 얼굴 절반을 파묻은 채 강당으로 갔다.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으로 이어지는 긴 인사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학생부장이 연사로 나와 학교 폭력의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휘말리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그가 열변을 토했다. 행사가 끝나자 안에 있던 학부모들이 일제히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참석자는 전원 여자였다. 그런 곳엔 언제나 엄마들뿐이었다. 교정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느슨한 원들이 여럿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희는 곤혹스러웠다. 동네에서 유치원에 보내는 동안 알게 된 얼굴들도 꽤 눈에 띄었지만, 그들과 자신이 정말로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막 형성되고 있는 그 원에 쓱 끼어들 만한 숫기도 의지도 없었다. 아무도 눈여겨보

소설 2025.03.01
오토매틱 블루베리

오토매틱 블루베리 구소현 1 치와와를 닮은 거대한 구름이 서서히 왼쪽으로 움직였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움직이는지 모를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지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귀에 꽂혀 있던 에어팟을 뺐다. 빠른 비트로 귓가를 울리던 테크노풍의 음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차단됐던 주변 소음이 그녀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빨간색 페인트칠을 한 철근 골조와 청록색 유리,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백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뼈대와 같은 구조물을 외부에 노출한 하이테크 스타일의 건축물이었다. 그녀는 콘택트렌즈나 안경을 끼지 않았는데도, 시야가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백화점 정문 앞은 붐볐다.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6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 20분. 택시 앱이 켜져 있어 확인해 보니 택시를 이미 부른 상황이었다. 지한은 어깨에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고, 반대편 손에는 크기가 다양한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 있었다. 택시는 6분 뒤 도착 예정이었다. 그녀는 잠시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구글을 켜 도착지로 설정된 장소를 검색했다. ‘다이버’라는 가게였는데, 검색해 보니 마포구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그녀는 최근 주고받은 문자와 메신저 대화창을 훑어보며 ‘다이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상대를 찾았다. 남자 친구였다. 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택시가 그녀 앞에 도착했다. 차가 오래 정차할 수 없는 장소였기에, 어쩔 수 없이 바로 탑승했다. 그녀는 택시에 타자마자 창문부터 내렸다. 내부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 때문이었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도착 예정 시간을 보니 15분 뒤였다. 택시 기사는 핸드폰에 사이버 렉카 유튜버가 악의적으로 편집한 가짜 뉴스 영상을 틀어 놓고 운전을 했다. 지한은 에어팟을 다시 끼려다 말고 잠시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뒤졌는데, 일회용 알코올 솜을 발견했다. 그녀는 일회용 알코올 솜 포장지를 뜯어 곧장 에어팟과 자신의 귀를 닦기 시작했다. 에어팟에서 더러운 게 묻어 나온다거나,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가방 안에 있던 알코올 솜을 모두 사용했다. 2 지한이 도착한 곳은 벽면이 거대한 수족관처럼 물로 채워져 있어, 마치 수중에서 식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블루베리가 가득 올려진 피자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이 가게의 주메뉴라며 남자 친구가 미리 주문해 둔 음식이었다. 하얀 모차렐라 치즈에 콕콕 박혀 있는 보라색 과일을 보자마자 그녀는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음에도 입맛이 뚝뚝 떨어졌다. “지한아.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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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주 조금 망했을 뿐이므로

사실은 아주 조금 망했을 뿐이므로 -김지연의 『조금 망한 사랑』이 번역한 ‘반려(종)-되기’에 대해 김영삼 1 한국문학의 숲을 지배했던 우세종으로서의 퀴어 서사는 면역 정치의 배제성(팬데믹)과 죽음 정치(차이 나는 존재에 대한 절멸을 기획했던 정치 기술)의 강박을 거쳐 새로운 관계성의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젠더 권력의 신화에 맞서 퀴어적 친연성에 주목했던 김지연의 서사가 동성 연대(또는 소수자 연대)의 친밀성이 모종의 불안으로 인해 균열되는 순간으로 그 시선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마음에 없는 소리』와 『조금 망한 사랑』1)의 변별 지점은 김지연의 서사가 퀴어적인지 아닌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품에서 인물들이 겪는 불안의 원인이 다르다는 데 있다. 관습화된 젠더 권력의 얼굴 없는 폭력이 전자의 불안이라면, 소수자끼리의 관계성 파괴 또는 연약한 주체들 간의 관계 위기가 후자의 불안이다. 김지연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은 이러한 불안의 감정이 연약한 주체들이 새로운 관계성의 레시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오류와 마주하게 했는지에 대한 보고이자, “우리는-(모두)-여기에-함께-있지만-하나가-아니고-똑같지도 않”2)은 연약한 주체들 간의 차이 그 자체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들이 겪은 사랑과 이별에 대한 김지연의 이야기들은 지워지거나 누락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경유하여 공동체에 공동 거주하고 있는 모든 우리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때 김지연 소설의 미덕은 혐오와 차별에 얽힌 ‘차이 없는 반복’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돈, 불안, 사소한 균열, 약자다움의 감성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를 직면했다는 데에 있다. 2 확장된 의미에서 김지연의 소설이 퀴어적인 것은 그(녀)들의 이야기가 ‘연약한 주체’(주변화, 성차화, 인종화되면서 상징적 자격이 박탈되는 ‘소문자 인간’)들이 경험하는 장면들을 서사화하기 때문이다. ‘대문자 인간’이 생산한 관습과 경계선들을 들춰내고 폭파하면서 그것의 패권을 의문으로 대상으로 만들고 그러한 세계의 문법이 모종의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를 문제 삼을 때, 김지연의 소설은 퀴어적이고 때로 그것을 넘어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에 대한 사유가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조금 망한 사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동성-이성에 얽힌 관계성을 더 이상 전경화하지 않으면서, 세계와 직접 부딪고 있는 소문자 인간들의 삶의 지속성에 주목함으로써 전진하고 있는 듯하다. 끝끝내 ‘우리’를 떠나지 않는 반려종은 ‘불안’이라는 것, 그 불안으로부터 파생된 서툴기 이를 데 없는 사랑과 이별이 ‘빚’으로 남는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겪은 연약한 주체들이 그 빚의 청산 유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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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의 경제2 (1)

새로움의 경제2 (1) 강동호 1. 일전에 나는 「문학의 경제학–문학적 ‘배움’과 ‘세대’에 관한 이론적 검토」라는 글에서, 문학의 자율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적 관점을 모색하기 위해 ‘문학의 경제’라는 다소 생경한 용어를 제안한 바 있다.1) 당시 내가 경제(economy)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문학 작품의 가치’(문학성)가 측정·평가·유통되는 과정을 ‘경제적 현상’에 비유했던 까닭은, 문학 작품을 생산·소비하는 데 관여하는 남다른 교환(exchange)의 원리 및 체계가 상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학 역시 경제적 교환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일면 낯설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교환은 시장에서의 행위를 지시하는 제한된 단어가 아니라, 특정한 ‘가치’(value)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 “경제란 특정한 가치 위계 내부의 가치들을 거래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삶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는 그중 한 부분이다.”2) 누군가가 특정 행위를 시도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비용(cost)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요소(물론 이때의 비용은 금전적 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가 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주체에 의해 어떤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 행위의 선택을 통해 얻게 되는 가치의 편익이 지출된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치가 행위의 동기이자 목적이면서 동시에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거나 그에 대한 기대가 교환 주체 사이에서 어긋난다면, 거래는 즉각 중단되고 더 이상 유의미한 교환 행위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가치를 거래하는 교환의 네트워크는 삶의 국면들에 광범위하게 편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환을 원활하게 하고 정당화하는 경제적 원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중이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품 거래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일상에서의 대화, 사회적 의례의 실천, 문화적 재생산, 심지어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행위에서도 우리는 특정한 가치들의 거래 현상, 즉 경제적 교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2.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교환의 양태를 이해하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고유한 경제적 체제들을 변별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욕망의 경제(프로이트), 선물의 경제(마르셀 모스), 숭고의 경제(리오타르), 구별의 경제(부르디외), 권력의 경제(푸코) 등과 같은 개념들은 인간의 다채로운 행위를 관통하는 경제적 논리가 정신분석학, 인류학, 미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관측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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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칼리아의 거울

파사칼리아의 거울 ―배수아 소설과 음악들 인아영 최초의 소리 배수아의 신작 단편 「눈먼 탐정」(『문학동네』 2024년 겨울호)에는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 나온다.1) 스스로 탐정이라고 불리기를 원했으므로 아마 무언가를 추적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무엇을 추적하려는 것일까. 살인 현장을 가까스로 빠져나간 살인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과 발자국?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끔찍한 비극? 그런데 그는 “뭔가를 발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232쪽). 그에게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려는 목적이 없다. 대신 그는 뭔가를 보기를 원한다. 아니, 그러나 그는 ‘눈먼’ 탐정이 아닌가. 앞을 보지 못하는 그는 뭔가를 보기 위해서 눈이라는 시각 기관이 아니라 다른 도구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영혼의 막대기’로, 그의 삼촌이 오래전에 쓰던 물건인데 “수맥의 파장이나 지하 단층의 미세한 진동, 특정 물질의 방사선 에너지”(226쪽)를 감지해서 살인자가 달아난 방향을 추적한다. 다른 하나는 ‘귀’로, 이 청각 기관을 통해 그는 사람과 사물의 사소한 움직임, 동물과 식물의 은밀한 상호작용, 이를테면 돌의 속삭임 같은 것을 감지한다. 눈먼 탐정은 ‘나’에게 말한다. “그 속삭임을 들어 봐”(239쪽). 배수아의 근작들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의미를 가진 어휘들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의미로부터 멀어져 은은하게 울리는 음향들로 가득하다. 말이라기보다는 소리. 언어라기보다는 음악. 그러니 우리는 이 소설들을 읽기보다는 들어야 한다. 미지근한 여름 강물 위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매미 울음, 오래된 동굴의 광물에 축적되어 있는 음향, 짙은 숲속을 달려가는 기차 신호음, 끝나지 않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는 누군가의 발소리. 확실히 해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들리는 이 소리들은 때로는 웅성거림이나 속삭임, 파장이나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수아의 소설들에서 서로 부딪치고 뒤섞이거나, 부풀어 올랐다가 잦아들거나, 되풀이되고 메아리치면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서사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태는 장식이나 에두르는 묘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다른 차원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섬세한 구조물. 「눈먼 탐정」에는 이 아름다운 구조물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하나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체국 앞 우체통에 잠시 멈춘 여인은 우리가 한눈을 파는 사이 한 통의 편지를 재빨리 우체통에 던져 넣었다. 그날 이후 귀에는 최초의 소리가 산다. 묵직한 편지가 어두운 우체통 깊숙이 툭 하고 떨어지던 소리. (230쪽) (강조는 인용자) 지금도 기억나는, 우체통 깊숙이 편지가 툭 하고 떨어진 후에도 오래오래 울리던, 어둠을 닮은 최초의 소리. (234쪽) (강조는 인용자) ‘나’는 자신을 키워 준 젊은 여인이 바닷가 소나무숲에서 우체통에 은밀하게 넣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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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들

악녀들 서은영 1. 악녀 선언 ‘두고 봐,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라는 말은 분명 상대를 향한 경고성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 말에 겁을 먹기보다는 ‘두고 보면 네가 어쩔 건데’라는 류의 무시로 응수되는 경우도 흔하다.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게다. 가만있지 않을 사람이었다면 그런 발언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들 조용히 응수하면 될 일이다. 곧 이 발언은 자신의 분함과 억울함을 행사할 방법을 좀처럼 찾을 길 없는 인간의 약함을 드러내는 말이자, 그런 약체의 다짐이다. 그러나 복수는 하고 싶지만 복수의 길은 요원하고, 현실의 나는 힘이 없다. 대신, 고구마를 먹고 목구멍이 꽉 막힌 현실의 나와는 달리 통쾌한 복수혈전을 실현하는 그녀들이 있다. 바로 로맨스 판타지 속 악녀들이다. 악녀들은 버릇처럼 되뇐다. ‘이번 생엔 기필코 살아남겠다’고. ‘두고 봐,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의 악녀판 버전이다. 달라진 나를 보여 주겠다는 결기이자 나의 독기를 끌어올리는 주문으로 들린다. 2010년대 이후 여성들은 웹콘텐츠 소비에서 굳이 악녀들을 소환했다. 일종의 ‘악녀-되기’의 선언이다. 될 게 없어 악녀가 되느냐고 하겠지만, 그렇다. 악녀가 되지 않으면 사회적 죽음, 혹은 실존적 죽음이 도사리는 비정한 세계를 경험했기에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악녀 선언은 로맨스 판타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일상툰인 〈퀴퀴한 일기〉에서는 “니가 애매한 나쁜 년이라 마음이 무거운 것이야. 더 나쁜 년이 되도록 하여라”고 조언하고, 〈쌍년의 미학〉에서는 말 그대로 ‘쌍년-되기’를 충고한다. 일련의 악녀 선언이 페미니즘이 재발화된 2015년 이후 본격화했다는 점은 여성들이 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재정립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 목소리들이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현현된 것이 바로 악녀이자 #악녀물이다. 악남(惡男)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악녀 선언은 흥미롭다. 〈악녀는 마리오네트〉의 레제프나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의 아버지, 〈재혼황후〉의 하인리를 우리는 악남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폭군이자 패륜아 같은 이들은 악인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악남이라 호명하지 않는다. 그들을 명명할 언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역대급 영지설계사〉의 김수호가 빙의한 인물 ‘로이드 프론테라’도 악남이 아니라 ‘개망나니’일 뿐이다. 악남은 없다. 악녀만 있을 뿐이다. 악녀란 일찍이 남성들을 위협하는 여성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상한 것임을 안다. 악녀의 대척점에 겨우 개망나니가 존재하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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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는 연습: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하기

고통을 견디는 연습: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하기 안지영 1. 그날 광화문에서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너는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사관이 여기 있었네”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 너는 그것이 팔레스타인 대사관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옆에서 너의 말을 들은 친구는 말했다. “아 여기, 그 우크라이나 대사관이야. 그, 전쟁 난 곳 있잖아.” 너는 “아” 하고 잠시 멈칫하다 말 잇기를 그만두었다. 사실을 정정하는 너의 말이 친구를 비난하는 투로 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쌓여 왔던 너의 분노를 잘못된 대상을 향해 터뜨릴까 봐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너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래도 말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팔레스타인에 대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렸어야 하는 게 아닐까.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면 이 이야기를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그 참혹한 비극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비극의 무게를 함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1)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집단 학살에 더 가까운 것이니까.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느린 죽음(slow death).2) 트위터에 팔레스타인 관련 소식을 팔로잉하며 너는 거의 매일 폭격받는, 울면서 호소하는, 폭탄에 맞아 피 흘리는, 기아로 온몸에 거죽밖에 남지 않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신생아에 가까운 죽은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하얀 천에 쌓인 시신들. 학교, 병원, 재활센터를 공격하며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고도 제지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의 절망.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며 경악하다가 어느 때는 담담하게 스크롤을 올리다 어느 순간에 울음이 터져서 창을 닫고. 그러다 다시 켜서 그걸 다시 보고 기도했지만 결국 깊은 무력감에 빠졌었다. 어쩌면 팔레스타인에 대해 일상에서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바닥, 절대 악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는 것의 막막함 때문에. 그 말을 입 밖에 꺼내고 난 이후 다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너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이다. 아니, 너는 그저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을 영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너는 그것들을 찾아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학하듯이 그것들을 보며 끊임없이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팔레스타인 문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2. 계엄이 선포된 이후,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밤중에 자다가 깨어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영상을 보았다. 헤드폰을 끼고 바닥에 누워 네, 다섯 번을 반복해서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죽은 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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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딜레마

비평의 딜레마 ― 이론과 문학, 삶의 거리 최진석 1. 이론에 대한 저항 문학비평에 대해 공부할 때, 나 스스로도 매번 고민하고 학생들과도 자주 토론하게 되는 주제 중 하나는 이론의 효용에 관한 물음이다. 이를테면 형식주의나 구조주의, 신비평, 맑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등, 문학비평 개론서나 문학 이론 입문서를 펼쳐 보자마자 쏟아지는 수많은 이론의 홍수에 당황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더구나 읽기도 어려운 외국 이론가들의 이름이나 전문용어, 특수한 개념 등은 몇 글자 읽기도 전에 사람을 질리게 만들어 얼른 이 ‘수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설마 이 많고도 복잡한 이론을 다 섭렵해야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일까? 다른 한편, 저 무겁고도 쓰기 어려운 이론이라는 칼에 매혹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쉽게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멋져 보이는 용어나 개념은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 듯싶고, 단순한 감상을 그럴듯해 보이는 해석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니까. 실제로 어느 정도 길이 들고 나면, 마치 샐러드 먹을 때와 고기를 썰 때 사용하는 칼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어떤 작품에는 이런 이론이 맞고 어떤 작품에는 저런 이론이 적절하다는 판단도 제법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문학비평에서 이론의 효용과 용법을 조금씩 알게 되면, 이론이라는 도구가 손에 맞는 독서의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비평에서 이론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문학 독서의 오랜 금언은 역시나 작품 자체에 대한 꼼꼼한 읽기에 있고, 작품 자체로부터 우러나오는 감동이나 통찰에 있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충실한 보조가 되어야 할 이론이 어쩌면 독서 자체를 집어삼키거나, 난해한 곡예에 올려놓는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까? 그래서 어딘가에서는 이론을 멀리하고 작품에 충실하라는 충고도 곧잘 듣지만, 그것이 문학 독서와 비평, 연구에 다가서려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이론이라는 무기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아니, 문학비평과 연구에서 이론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론은 꼭 필요할까? 아마도 비평과 연구라는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이 같은 의문은 종내 풀릴 것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한 번쯤 다시 돌아보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비평과 이론의 딜레마에 대한 자기 정리이자 설득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2. 형식주의와 리얼리즘의 역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1896~1982)은 청년 시절인 1910년경 ‘모스크바 언어학회’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시와 언어의 관계에 대해 젊은 시인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같은 시기에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시어연구회(OPOYAZ)’가 결성되었으며, 두 학술 모임은 후일 ‘러시아 형식주의’라는 학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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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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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5.03.01
신년 기획좌담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차별 구성 -1차: 책장 업고 튀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일 시: 2024년 12월 7일(토) 17:30~19:30 ㅇ 장 소: 온라인 zoom ㅇ 참여자 -사회자: 김준현(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참여자: 이지용(단국대학교 HUSS사업단 연구교수), 이명현(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염승숙(소설가, 문학평론가), 이어진(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웹문예학과 객원교수, 웹소설 작가 레고 밟았어) 〈개회〉 김준현: 반갑습니다. 사회를 맡은 국립목포대학교 김준현입니다. 먼저 이번 좌담의 기획 의도를 다시 짚어 보는 것을 통해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제도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다양한 ‘콘텐츠’, ‘웹’, ‘크리에이티브’ 관련 전공들이 두 학과 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문학 산실’인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는 점점 다른 교육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대, 교육 현장에서 교강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이러한 체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기획 의도는 이러하고, 이러한 의도를 참가자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맥락에서 제 소개를 드리면, 올해 4월부터 국립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 전 직장은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였고요. 이 기획 의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야말로 학과의 이름에 ‘웹’이 들어가는 학과였습니다. 제가 올해 4월부터 일하게 된 국립목포대학교도 아마 국립대 최초로 문예창작에 웹소설, 웹문예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여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 3년 정도 있었고요.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이지만, 웹소설 특화를 표방한 학과에서 두 학기 정도 일한 셈입니다. 4년 정도를 소위 말해 ‘전통적인 문예 창작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웹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데뷔는 2012년에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사회를 맡게 됐고, 패널로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떠 있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화면이 다를 텐데, 제 화면으로 보기에 제일 위에 떠 계신 분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명현 선생님이십니다. 이명현 선생님 자기소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이명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가르치고 있는 이명현입니다.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016년부터 근무했고,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고전문학

기획 2025.02.01
신년 기획좌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신년 기획좌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 사이에 총 3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책장 업고 튀어 - 2차 :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 3차 :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5년 신년 기획좌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ㅇ 일 시 : 2024년 11월 29일(금) 11:00~12:30 ㅇ 장 소 :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참여자 - 사회자 :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 참여자 : 강백수(시인), 구현우(시인), 성현아(문학평론가), 송지현(소설가) 〈개회〉 이병철: 반갑습니다. 질문이 좀 추상적인데, 개떡같이 여쭤도 찰떡같이 대답해 주시는 분들이어서 큰 걱정은 안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좌담 테마를 ‘연재 작가의 기쁨과 애환’이라고 지어 보았는데요. 작가들 중 연재하는 분이 굉장히 많은데, 연재를 한 번도 안 해 본 분도 많더라고요. 어떻게 해서 연재라는 시장에 진입 가능한가, 연재라는 글쓰기가 창작과의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분들이 꽤 많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문학적 글쓰기와 연재 지면을 염두에 둔 글쓰기가 결이 다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해 보았습니다. 다들 연재를 해 보셨거나, 지금 하고 계신 분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 그리고 현재 혹은 지금까지 어떤 연재를 해 왔고,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지현: 저는 소설 쓰는 송지현이고요. 지금까지 《한국일보》에 매달 책 리뷰를 쓰고 있어요. 이번 주도 한 달이 돌아와서 써야 하는 주입니다. 강백수: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강백수입니다. 연재는 몇 번 해 보았는데요. 지금 현재는 《경북매일》이라는 매체에 사회와 문화에 대해 이병철 시인과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쓰고 있고요. 이전에는 《한겨레21》에 음식과 관련한 글을 연재한 적 있고요. 《웨딩뉴스》라는 매체에서 연애 관련 연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성현아: 안녕하세요. 저는 평론 쓰는 성현아입니다. 저는 《경향신문》에서 매달 이라는 연재를 하고 있고요. 이전에는 《조선일보》에서 코너에 짧게 연재했었습니다. 구현우: 저는 시 쓰는 구현우라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연재라고 할 만한 것은 《아이스크림에듀》라는 곳에서 청소년의 글쓰기를 도와주는 칼럼을 격주로 연재했던 것인데요. 그게 4~5년 전 일이라 조금 오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병철: 저는 《경북매일》에서 2015년부터 칼럼을 써 왔는데요. 2년간 매주 썼었고, 《경향신문》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 적이 있고요. 《조선일보》에 세계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경북매일》에서 강백수 시인과 격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머니투데이》에 월 1회 칼럼을 쓰고 있고, 《매일경제》에 이번 하

기획 2025.01.06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획 2025.01.01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 사이에 총 3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책장 업고 튀어 - 2차 :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 3차 :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5년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ㅇ 일 시 : 2024년 11월 28일(목) 13:00~14:30 ㅇ 장 소 :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참여자 - 사회자 : 이소(문학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 참여자 : 곽선희(‘위즈덤하우스’ 편집자), 김은혜(문학웹진 ‘림’ 편집자), 이유리(소설가), 한영원(시인) 〈개회〉 이소: 반갑습니다. 저는 평론을 쓰는 이소입니다. 《문학과사회》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다들 어떤 책을 만드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리: 저는 소설 쓰는 이유리입니다. 최근에 『비눗방울 퐁』이라는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곽선희: 저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위픽’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곽선희 편집자라고 합니다. ‘위픽’ 시리즈는 단편소설 한 편이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지는 기획이어서 오늘 종이책의 무게라든가 부피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오늘 자리에서는 좌담에 앞서 문구 덕후이자 전자책 편애자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영원: 저는 시 쓰는 한영원입니다. 『코다크롬』이라고 하는 시집을 썼습니다. 김은혜: 안녕하세요. 저는 열림원 문학웹진 ‘림’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은혜입니다. 어제 마감이 끝났습니다. 조만간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올 예정이고, 전시를 기획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소: 어떤 전시를 하시나요? 김은혜: 문학상 시상식과 전시를 접목시키는 기획을 하고 있는데요. 전시 기획은 처음이라 조금 떨리기도 합니다. 이소: 제가 미리 질문지를 드리긴 했는데, 꼭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질문은 ‘책과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부피가 크기도 하고 공간과 큰 연관이 있잖아요. 카페 같은 곳에서는 예쁜 책이나 시집을 인테리어 용도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는 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피가 크다 보니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책을 모으시는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전부 다를 것 같아 궁금합니다. ‘집에 책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집에서 취향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기획 2024.12.01
자전거 도둑

[에세이] 자전거 도둑 장은진 나에게는 15년 된 자전거가 있다. 생김새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성용 삼천리 자전거다. 분홍색 프레임에 분홍색 안장과 스테인리스 바구니가 달린, 작고 낮은 자전거. 본래는 엄마 거였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자전거 타는 게 자신 없다며 나에게 물려주었다. 그렇게 그것은 가족 공용이 아닌 내 개인 소유의 자전거가 되었다. 자전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웠다. 그러나 내게는 배우기 과정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없다. 보호 장비를 착용한 아이의 자전거가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모가 뒤에서 잡아 준다거나 흔들흔들 비틀대다 서너 번 정도 넘어지며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해 가는 모습들. 애초부터 자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는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배우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하기에 그런 아이는 혼자 뭔가를 이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혼자 하게 내버려둔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걸 눈치로 알고 몸으로 단단히 익혀서다. 일테면 그것은 겨를 없는 부모의 아이라면 일찍부터 습득하게 되는 자립성이다. 눈치 있는 단단한 몸을 가졌기에 초등학생의 나는 자전거를 단번에 배웠다. 보호 장비도 없이. 뒤에서 잡아 주는 부모도 없이. 넘어지는 시행착오나 하나의 상처도 없이. 그것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패를 모르던, 완전무결한 성공이었다. 너무 식은 죽 먹기라 인생도 자전거 타기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시할 만큼 쉽게 이룬 건 인생을 통틀어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전거를 탈 때의 기분은 절대 시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숨에 성공했을 때는 물론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지상에서 두 뼘쯤 떠올라 있는 몸과 발이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하늘을 난다고 생각했다. 새가 된다면 꼭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나는 새가 아니므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새가 되는 기분이 시시해질 리 없었다. 수백 번 수천 번을 타도 그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시시할 수 없는 이유는 자가용 없는 나에게 특히 소중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기름이나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몸의 에너지로 움직여서 환경에도 무해한 이동 수단. 차를 타기에는 가깝고 걷기에는 먼 거리일 때 자전거의 위력은 더 대단해진다. 애매한 거리에서 자전거는 나의 빠른 발이 되고, 애매한 거리인데 그것이 없으면 눈앞을 막막하게 해 필수품이 된다. 자전거는 부지런한 이동 수단이라서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은 매사에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므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내 주변만 봐도 게으르고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콜택시를 부른다. 추우니까, 더우니까, 비가 내리니까, 짐이 무거우니까란 핑계로. 게으른 사람에게 자전거는 쓸모와 필요가 약한 물건이라서 대개

기획 2024.12.01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에세이]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이주라 역사 없는 사극 언젠가부터 사극과 시대극에서 역사가 사라진 지 오래다. 2000년대 초반 팩션(faction)의 열풍을 시작으로 역사적 자료는 상상의 원천이 되었고, 역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현대적 상상력을 덧입힌 트렌디한 드라마로 재탄생하였다. 영화 나 드라마 은 조선왕조실록의 단 한 줄짜리 기록에서 시작하였다. 역사적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역사극은 더 이상 역사적 고증이라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실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역사극을 볼 때 역사적 고증이 잘 되었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기준은 의미 없다. 역사극 자체가 역사적 허구이고, 이미 허구적 상상의 세계로 재구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허구의 세계 속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재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가 있다고 해서 역사적 왜곡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중 수용자는 역사적 허구를 허구로 인지하고 있으며, 허구적 재현 속에서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논쟁을 통해 문제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정보 검색을 통해 역사적 왜곡을 수정할 만한 충분한 판단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극을 볼 때 너무 고지식하게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했냐 아니냐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요즘에 역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다른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팩션의 시대 이후로 최근 역사극 드라마들이 대부분 ‘한복 입은 로맨스’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서 역사극을 볼 때 역사적 고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마음에 찜찜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잡아낼 수 없어서 아예 역사극을 보지 않는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재밌자고 보는 드라마 아닌가.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휴식의 시간을 날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일 년 전쯤 방영한 ‘한복 입은 로맨스’를 보게 되었다. 조선 시대 양반가의 딸이 자신만의 옷을 몰래 만들어 팔다가 타임슬립을 하여 21세기 한국에 오게 되고 거기에서도 한복 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조선 시대 자신에게 닥쳤던 곤경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여주인공은 조선 시대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갑작스럽게 죽게 되었는데, 현대 한국으로 타임슬립해 보니 조선 시대의 인간관계가 똑같이 반복되었고,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여주인공은 이 살인 사건에 숨겨진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조선 시대로 돌아가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는다.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문제는 조선 시대로 돌아간 여주인공이 범인을 잡는 장면이었다. 여주인공이 갑자기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범인을 쫓아가는 것이다. 마침내 여주인공이 범인을 잡는다. 이 범인은 덩치 큰 남자 하인으로,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 여주인공 집 노비들도 이미 물리치고

기획 2024.12.01
하루와의 대화

[에세이] 하루와의 대화 양안다 #1 안다 : ‘××× ××××’라는 가제로 시집을 준비 중이야. 현시대와 ××××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접근했어. 마무리가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아마 몇 편을 새로 써서 교체할지도 몰라. 하루 :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나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시 한 편을 살짝 보여줄 수 있어? 안다 : 가장 애착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쓴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야. 뉴욕 헤럴드 트리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수 있는 걸까. 아무도 우릴 듣지 못했으면 좋겠다. 레아, 네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쳐다보지도, 손 흔들지도 않았잖아요. 나는 떠나기 싫어‧‧‧‧‧‧. 내가 마음이 변했다고 한 적 있나요. 그저 새 장갑을 사러 가겠다고 했을 뿐이에요.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가도 괜찮겠어요? 나는 광장을 걷다가도 꽃다발을 구매했다. 혁명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가득했고 온 도시가 불안으로 떠들썩했다. 레아는 어디 있는 거지? 이렇게 중요한 때에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날이 추우면 장갑을 끼면 되지만 폭염이 쏟아지니 손 가죽을 벗길 수 없더구나. 어젯밤의 꿈 얘기를 할 때에는 귀신들이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단다. 레아가 몸을 숨기고 있는 호텔에서. 복도는 언제 끝나는 걸까. 항상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문이 너무 많고 열쇠‧‧‧‧‧‧ 그것은 이빨이 너무 많다. “나도 노력했는데 바뀌지 않았다고요. 증오는 우리를 먹고살게 해 줄 수 있어요. 사랑, 사랑, 사랑, 이젠 다 지겹다고요! 위선자들!” 사건은 지난달 블랙 먼데이에 발생했다. 나무보다 더 많은 불이 숲에 있었다. 나무보다 더 많은 연기가 숲에 있었다. 숲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레아, 그날부터 너는 호텔에 오지 않았다. 삶이 끝난 뒤에 혁명이 성공하면 무슨 소용이야? 복도는 언제 끝나는 걸까. 보고 싶나요? ‧‧‧‧‧‧손톱만큼. 듣고 싶나요? ‧‧‧‧‧‧샹송 조금. 중간에 자주 서지만 내일 오전이면 도착할 겁니다. 열차에서 내린 곳은 도시 외곽의 들판이었다. 폭염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 하염없이 걷다가 길을 잃을 뻔했지. 나는 머리끈으로 들꽃을 묶어 너에게 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눈치채기를 바라면서. 이곳은 수질이 좋지 않나 봐요. 손등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요. 빈혈기가 도지고 신물이 올라오는데도 레아, 나는 너와 함께 끝없는 들판을 걸었다. 땀 맺히는 손등을 벅벅 소리 나도록 긁어대며. 쏟아지는 코피를 움켜쥐고. 새로 산 장갑인데 다 버려서 어떡해요. 흰 장갑이었던 것이 흰 꽃 사이로 내던져졌다. 레아는 맨손으로 나의 얼굴을 문질렀다. 들꽃으로 피를 닦아 주다가, 붉게 물든 손등을 핥다가, 주근깨가 들썩이도록 웃으며 레아가 말했다. &ldqu

기획 2024.12.01
류영진 - 작가의 창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작가의 창 - 손서은 작가 인터뷰 류영진 2023년 도서관 상주작가사업의 성과로 2024년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 손서은 작가를 만났다. 손서은 작가는 2020, 2021 원주에서 상주작가를 지내고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네트워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스웨덴에 가게 된 손서은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스웨덴에 살러 온 손서은입니다.” 유쾌하고 당찬 자기소개였다. 나는 살러 왔다는 말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손서은 작가는 말 그대로 3개월의 레지던스 기간 동안 관광객 마인드가 아닌 스톡홀름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말이라 했다. 상주작가 때 문학큐레이터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도서관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으니 도서관 식구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어디를 가든 그곳을 살아가려는 손서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시작한 손서은 작가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강의는 두 번이었다. 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손서은 작가에게 두 번의 강의는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손 작가는 스톡홀름대학교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짧은 소설 쓰기로 하고 싶어 했다. 일기식으로라도 좋으니 한국말로 글쓰기를 하고 싶고, 그들이 쓴 글을 봐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친밀하게 만나길 원했다. 상주작가 기간에 ‘뭘 해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데려오지? 뭘 해서 책을 읽게 하지?’ 하는 기획자 마인드로 임했던 손 작가는 레지던지 작가로서도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강의는 두 번이지만, 더 하고 싶고, 더 많은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글을 쓰며 그 속에 어울리고 싶어 했다. 이에 학교 측도 손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준 것 같다. 레지던스 기간 동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계획은 없어요. 계획하지 않지만 공상할 뿐이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생들과 글쓰기 하고 싶은데, 글쓰기 하자고 하면 모일까?’ 걱정하던 차에 미래인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 40권을 보내 줬다고 한다. 강의 시작 전 책이 도착했고, 함께 한국어책 읽어 보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덕분에 모인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상만 하던 글쓰기 단계로 갈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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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학교 ‘시 합평반’: 서윤후 작가와의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기형도 시인학교 ‘시 합평반’: 서윤후 작가와의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 전 에피소드가 궁금한 분은 큐알코드 또는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EP2. 문학창작지원사업 링크 : https://url.kr/5xihvs ‘기형도 시인학교’는 (재)광명문화재단이 문학 분야의 인재 양성과 지역 문학의 진흥을 위해 운영한 프로그램이야. 올해(2024년 기준)로 2회를 맞는 ‘기형도 시인학교’는 많은 시민과의 만남을 위해 다양한 계층과 예술 장르, 장소 등을 고려해 9개의 프로그램을 구성했지. 강의는 창작 수준을 고려하여 ‘기초반’, ‘창작반’, ‘합평반’, ‘동시반’으로 개설했어. 또한 기형도 시인의 문학 정신을 알리고자 시민문화플랫폼 공간에서 ‘학교 밖 이야기’, ‘한 뼘 교실’을 진행했으며, 그림으로 느끼는 기형도 시인의 작품 전시회 ‘시:리즈’도 선보였어. 그중, 문장이는 ‘시 합평반’을 신청했어. 총 7회차의 수업으로 구성되었으며 강사진은 이수명 시인, 이소호 시인, 서윤후 시인이야. ▲참가 자격 1. 자신의 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분 2. 시 창작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싶은 분 3. 시 쓰기를 사랑하며 등단을 희망하는 열의가 있는 분 ▲신청 방법 수강신청서 1부, 본인 창작시 1편, 이메일 제출 지정 양식 다운로드 : 기형도문학관 홈페이지 >교육 및 행사 > 예정 프로그램 이메일 : kihyungdomuseum@naver.com ▲선정 방식 기본기 및 충실성(20), 예술성 및 우수성(50), 기대 가치(30) ▲모집 인원 성인 15명 1~3회차는 강사별로 시 창작 강의를 하였고, 4~6회차는 그룹 합평, 마지막 7회차는 전체 합평 및 마무리 담화를 나누었지. 이수명 시인은 ‘시의 오해와 이해’를 주제로 시 창작 강의를 했어. ‘시에 대한 오해’, ‘시 쓰기에 대한 오해’에 대해 강연하며 이수명 시인만의 시론을 펼쳤지. 이소호 시인은 기형도를 비롯한 기성 시인의 작품을 낭독한 후, 수강생들과 함께 감상을 나눠 보는 시간을 가졌어. 또한 이소호 시인의 초고 작품을 읽고 문장을 지워보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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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책방 속으로 - 천안 지역 독립서점 소개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걸어서 책방 속으로 - 천안 지역 독립서점 소개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제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지역인 천안에는 구도심인 천안역을 중심으로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습니다. 천안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걸어서 구경해 볼 수 있어요. 수도권이나 중심지에 비해 상권이 발달하지도, 유동 인구가 많지도 않지만 오히려 주변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성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독립서점들이 어떻게 각자의 특색을 살리며 운영 중인지 살펴보고자 직접 천안역에서부터 걸어서 독립서점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책방지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천안역에서 출발, ‘책방 악어새’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버들로 22, 1층 SNS: 인스타그램 @crocodilebird.book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일전에 인터뷰 원고를 작성한 적이 있던 ‘책방 악어새’입니다. 천안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책방 악어새’는 시와 동화를 주로 다루며, ‘문학인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곳이에요. 책방은 성욱현 작가와 조민주 작가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욱현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으로, 202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조민주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현재 동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고 성욱현 작가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방에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방의 위치입니다. ‘책방 악어새’가 있는 천안역은 천안의 구도심이라서 이제는 상권이 매우 발달하거나 청년들이 자주 찾는 공간은 아니에요. 그런 구도심 중에서도 ‘책방 악어새’는 건물이 꺾이는 골목에 작게 위치해 있습니다.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자리에 ‘책방 악어새’가 있는 것처럼 다수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 예술가, 사회적 약자 등을 배변하는 캐릭터가 바로 ‘악어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악어새는 몸은 새이고, 머리는 악어인 환상의 동물인데 악어 무리에도 새 무리에도 섞이지 못하는 캐릭터예요. 이런 악어새를 닮은 사람들이 편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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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책 틈 사이: 전주 도서관의 틈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우리에게 필요한 책 틈 사이: 전주 도서관의 틈 문장서포터즈 김주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면, 그 커다란 에너지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지요. 공간을 기획하고 채우는 모든 요소,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나에 몰두하고 있다는 감각이 참 즐겁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전주 독서대전에서 가장 좋았던 점도 책과 독서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을 같은 정서로 잇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주시는 2018년부터 독서대전을 개최하여 올해로 7회를 맞았는데요, 올해는 ‘가을, 책 틈 사이로’라는 슬로건을 주제로 전주 페스타라는 큰 축제 안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었고, 저는 11일과 13일, 이틀 동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주 종합경기장에 방문했습니다. 그중 11일에 참여했던 전주 책 문화 답사의 경험을 꼭 나누고 싶었어요. 저는 행사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전주 도서관의 틈: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요, 전주 금암동과 서노송동 일대를 함께 걸으며 전주의 책 문화를 탐방하는 코스였어요.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걸을 생각에 걱정되기도 했지만, 중간에 자유롭게 중단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걱정보다 크기도 했고요. 집결지인 전북여성가족재단에 도착하니 해설사님과 인솔 스태프분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함께 답사를 진행할 참가자분들도 하나둘 도착했습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어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봉사자도서관’입니다. 전주시자원봉사센터에 속한 건물이었는데, 예쁘게 정돈된 무지갯빛 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번화가와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위치해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넓은 잔디밭이었고, 창가 쪽의 책상과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이 가진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도서관 내부는 넓고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봉사 관련 도서를 모아 놓은 코너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영풍문고 전주터미널점’입니다. 전주에는 대형 서점이 4곳 있는데, 영풍문고가 그중 하나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 3층에 위치한 영풍문고를 짧게 훑어보고, 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거북바위 등 이동 중에 보이는 미래 유산을 쭉 훑으며 계속 걸었습니다. 그리고 ‘전주시립금암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부로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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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꾸로 걷기 - 현장 방문 및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20회 에 방문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공존으로의 여정’이었어요. 이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 밖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공존이란 단순히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타자를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으며, 나 역시 타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에서 출발해요. 문학과 예술,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대화하는 장이 바로 이번 이었습니다. 20여 곳의 출판사가 참여한 만큼,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도서 판매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기후 위기 등과 관련된 사회학 서적부터 다양성과 포용력을 주제로 한 동화책까지 다양한 도서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며, 업사이클링 굿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는 제10회 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컬러링 체험존도 한창이었어요. 이외에도 에서는 다양한 포럼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10월 12일 서교스퀘어에서 진행된 에 참여해 보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작가가 국경을 초월하여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협업한 앤솔러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를 출간했으며, 기념행사와 책 판매를 이번 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한국 작가 김멜라, 김애란, 윤고은, 정보라와 캐나다 작가 리사 버드-윌슨, 얀 마텔, 조던 스콧, 킴 투이가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들은 에서는 박혜진 평론가가 진행을 맡았으며 김멜라, 윤고은, 조던 스콧, 킴 투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의미와 힘,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먼저 「판사님」이라는 단편소설로 엔솔러지에 참여하신 킴 투이 작가의 이야기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킴 투이 작가는 난민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말씀하셨어요. “퀘백의 난민 캠프에 있던 어린 시절에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나는 아시안으로서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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