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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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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이린아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양동이」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2024.09.12 이린아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2024.08.22 천운영
남지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2024.08.08 김언
최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단 한 사람』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2024.07.25 천운영
숙희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봬요」

봬요 숙희 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오로라 콜』(아침달, 2024)

2024.07.11 김언
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2024.06.27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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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소설 열등아

나의 열등을 마주하기는 항상 버겁습니다.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그 기준을 우등과 열등으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살갗을 스친 것만으로 미움을 사 밟혀 죽는 바퀴입니다. 그 시체는 하얀 천에 감싸져 아무렇게나 버려지겠죠. 우리는 존재가 혐오의 이유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우등한 부류에 속하는 자들 말입니다. 사실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의 입장에서 그들은 같잖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가식을 남발하기에 바쁩니다. 서로를 억지로 치켜세우고, 실수를 억지로 위로합니다. 하, 만약 그 상대가 나였더라도 그랬을까요. 나에게 경멸이나 보냈겠지요. 나는 그것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무리에서 낙오 당하지 않기 위한 재롱 말입니다. 분명 그들도 잠시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실은 서로를 못마땅히 여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심합니다. 나는 그들이 역겹습니다. 하지만 나도 압니다. 가장 역겨운 것은 다름 아닌 나입니다. 나의 열등은 언제부터 이어져 온 걸까요. 나는 언제부터 다른 이의 원망을 산 것일까요. 나는 누군가가 나의 열등을 언급하면 가벼운 패닉이 오고 맙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의 수많은 열등을 하나씩 돌아봅니다. 그것은 끔찍합니다. 가장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나는 그 악몽같은 회상 안에서도 선량한 시민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하자면, 나는 절대적인 피해자의 입장에 서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나는 미치고 맙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여 나의 속을 뒤집습니다. 그 감정이라는 것들도 대게 부정적인 속성의 것들 뿐입니다. 모멸감이나 자책 등등……. 나에게 그런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 중에서는,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별 거 아닌 것이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언젠가 내가 가지고 있던 갖은 심려가 폭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나의 열등을 지적하신 겁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해내기 싫습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달렸습니다. 무언가에게 쫓기듯이 말입니다. 나를 쫓는 것은 나의 그림자였습니다. 나의 열등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도망쳐도 계속해서 나를 쫓습니다. 나는 다리 위에 섰습니다. 다리 밑을 보았습니다. 푸른 강이 있었고, 푸릇한 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합니다. 안기고 싶다. 저 넓고 아득한 초원 위로 안기고 싶다. 사실 다리 아래에 풀은 딱히 넓지도, 초원으로 부를 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인지 그때의 나는 그 땅이 마치 아득히 넓은 대지처럼 보였습니다. 안기고 싶었습니다. 저 풀들은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았습니다. 나의 상처를 보듬어줄 것 같았습니다. 안기고 싶습니다. 안기고 싶습니다. 안깁니다. 안깁니다. 안깁니다. 안겼습니다. ……나는 난간에 안겼습니다. 그러고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나는 이런 면에서마저 열등한 겁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경멸하듯 봅니다. 저들도 우등한 부류

2024.10.05 미송리식토기
나는 별

나는 별도시 밤하늘 저멀리나 홀로 떠있는 별그렇다고 안쓰러워 하지 말아라그 구름 뒤에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지누가 알겠는가

2024.10.05 blue fish

그들의 길이는 아주 길다때때로아무 이유 없이아니면 이유는 있지만아무 이유 없는 것처럼선을 긋는다책의 인상깊은 문장엔절대로 선을 긋지 않는다긋는 순간 나의 정신은몇 십 년 전 고등학교그저선명상을 하듯아주 천천히순수하게선을 긋는다경복궁에 선을 긋고광개토대왕릉비에 선을 긋는다그리고 에펠탑에도어느새 뉴스엔 내가 나온다흑백cctv 화면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건물에 선을 긋고서둘러 도망가는 모습이그래서 오늘은흰 후드를 입고선을 긋는다성당의 하얀 돌벽울퉁불퉁한 돌 위로선을 긋는다선 속에서나는 성당과 잠시얘기한다넌 누구니?난 성당이야왜 이러고 있어?누군가 날 만들었어 다리 없이나한테 다리 좀 만들어줘이곳 너무 갑갑해다리는 만들 수 없지만선은 그어줄게빗소리도 없고발소리도 없이선 긋기 좋은 밤그어진 선 하나에말숙한 신사들은 가고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된다경쾌하게성당과 나는 왈츠를 춘다그것도 잠시사이렌 소리가 들리고là! arrêt하니도망친다

2024.10.05 임세헌
당신은 아는가

당신은 아는가당신은 아는가내 마음에 꽂힌 비수의 무게를이 비수의 본래 주인을당신은 아는가침몰되어 가는 내 마음을별 것 아닌 한마디의 무게를당신은 아는가당신은 알아차렸는가

2024.10.05 부살
풍화

풍화우리는 보았다. 천고의 시간, 굵던 자갈이 물살에 휩쓸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이루는 것을딱딱하고 각졌던 내 마음, 누군가에겐 부드럽고 따스한 한 줌하이얀 모래가 되기를.

2024.10.05 시샘
수필 탈출 탈피 벗어나기 도망 escape

나는 뭘까요. 저는 그냥 평범한 고교생입니다. 이 층짜리 주택에서 따뜻한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자살을 생각하고 공부를 하려다가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하지 않고 이에 대한 면죄부를 항상 머릿속에 끄적이는. 항상 적당하게 하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며 친 모의고사는 142 그렇게 잘한다기에도 못한다기에도 애매한 그런 성적을 받고 나름 괜찮다며 나를 달래는 그런 한심한 모습이 얼마나 추잡스러운 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글 짓기도 그렇습니다. 불행이 곧 작가라는 말처럼 불행이 글감이 되고 내 글을 더 풍부하게 해야 할 텐데 , 그런데 저는 뭘까요. 이 뜨끈한 밥을 먹고 안락한 삶을 향유하면서 오늘은 죽어야지 라며 웃긴 생각만을 하고 있으니 벌을 받는 걸까요. 저는 제 삶이 너무나 불행한데 막상 글을 써보면 무엇도 담기지 않습니다.평행선처럼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자꾸만 겉도는 이 글에 뭔가를 담을 수 있긴 할까요. 이 애매한 재능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뭔가가 될 수 있긴 한 걸까요. 성장할 수는 있을까요. 온갖 질문이 머릴 더럽히고 애써 그것을 덮어보려 덧칠하며 늘 하루는 흘러갑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혐오하면서도 제 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절망스럽습니다. 손목이 아니라 머리에 칼을 댔어야 했습니다. 저는 저를 탈출하고 싶습니다. 이상의 날개처럼 그렇게. 날아올라서 나를 벗어던지고 하늘을 날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저 끝내주는 바람결을 느끼며 숨을 정화시키고 싶단 말입니다. 그냥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단 절 탈출하고 싶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옥상에도 올라가 봤지만 난간 근처에만 가도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이 부들거려서 그냥 높은 곳의 공기나 마시고 온 사람이 되었고 밧줄도 구입해 봤지만 밧줄을 매달 곳이 없어 그냥 밧줄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닷가에 놀러 가 물속에 잠수하는 척 그대로 숨을 참고 주어야겠다 하고 호기롭게 물속에 들어갔지만 폐가 짖눌리고 목구멍이 꽉 막히는 그 기분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신 버둥거리다 눈물 콧물만 잔뜩 쏟고 빠져나왔습니다. 나를 탈피 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결국 답은 하나입니다. 죽음. 그리고 매번 실패하고 커터칼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처음엔 욕조에 들어가 손목을 긋고 죽어버릴 생각이었습니다만은, 집에 욕조가 없더군요.그래서 그냥 그었습니다. 죽으려면 동맥을 일자로 그어야 한다더군요. 힘을 주고 그 여린 살에 칼을 가져다댔는데 상상치 못한 고통이 쏟아졌습니다. 소름 돋게 아파서 눈물이 질금 났습니다. 그 차가운 쇠금속이 동맥을 뚫는 것은 아주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서워서 옥상에서도 바다에서도 결국 죽지 못한 제게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손목을 돌려 과다 출혈을 바라며 반대쪽 팔목에 힘을 주곤 대각선으로 직직 그어대고 또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다리 한 번 부러져본 적 없는 제겐 끝내주는 고통이었습니다만은, 이후에 알아보니 동맥은 힘줄보다도 깊은 곳에 있어서 그딴

2024.10.04 탈피

저기에 보여작고 반짝반짝한스타링크들

2024.10.04 임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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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ng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등단/미등단) 관련 안내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의 등단(미등단) 작가님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목표로 미등단 여성 작가님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의 흐름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등단 이력이 있는 작가님도 본인이 등단하지 않은 장르(시, 산문,아동문학에 한함)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참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ㅇ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 가능여부 안내 -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여성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등단 여성 작가님은 등단하신 장르로 참여는 불가하나, 다른 장르로는 신청이 가능합니다.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신청 예시 1. 산문(소설) 분야 등단 작가님 → 산문 부문 신청 불가(아동문학, 시 부문 참여 가능) 2. 아동문학 분야 등단 작가님 → 아동문학 중 세부 장르의 등단 분야 신청 불가(시, 산문 참여 가능) (예시 : 아동문학_동화 등단일 경우 동화 신청 불가, 동시로는 가능 / 반대일 경우도 동일) 3. 시 분야 등단 작가님 → 시(시조) 부분 신청 불가(소설, 아동문학 참여 가능) 4. 등단 이력은 없지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동일 장르 수상 이력이 있을 경우 참여 가능 여부 → 장원 수상 이력 외 참여 가능 위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추후 사업의 경우 현재보다 더 개선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10.02
공지사항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문학광장 문학집배원 김언 시인과 천운영 소설가가 문학주간 2024에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성래 시인의 『천국어 사전』과 윤이안 소설가의 『온난한 날들』을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며 문학집배원 두 분과의 대담까지, 모두 9월 27일 금요일 오후 2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신청링크 바로가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27217/items/6152716

2024.09.19
공지사항 [이벤트] 제4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글제찾기 이벤트 개최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글제를 찾습니다! 글제는, 순우리말 '글'과 한자 '題(제목 제)'가 합쳐진 말고 글의 주제 및 제목을 뜻합니다. 접수된 글제는 중복 글제와 백일장 성격과 상이한 글제를 제외하고 글제 추첨 대상이 되며, 글제는 행사 당일(10/8) 개회식을 통해 추첨할 예정입니다. 글제 이벤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백일장 글제로 선정되신 4분에게는 3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글제 작성 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접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일 글제 접수 시 가장 먼저 접수한 사람에게 상품이 지급됩니다. ㅇ 이벤트 기간 : 2024. 9. 11.(수) ~ 9. 30.(월) ㅇ 접수방법 : 위 이미지 내 QR 접속 또는 링크(https://moaform.com/q/bGpTzT) 클릭 후 글제 입력 ㅇ 당첨선물 : 글제 선정자 4명에게 3만원 상당의 상품권 증정 ㅇ 당첨자 발표 - 10/8(화) 오전 10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개회식에 발표 - 선정된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에게는 개별연락 예정 ㅇ 참고사항 - 중복 글제는 가장 먼저 해당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만 인정됩니다. - 글제는 1인당 1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제출 필수 ㅇ 관련문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plain@arko.or.kr

2024.09.11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접수 안내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위해 198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ST가 후원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어느덧 제42회를 맞이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이 올해도 여성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대회 취지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2024년에는 10월 8일 화요일,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사전 접수를 통해 미리 참여 신청해주세요. [사전접수 기간] 2024.9.6.(금) 18:00 ~ 9.27.(금) 24:00 [사전접수 혜택] ① 행사 당일 신속한 본인확인 ② 행사 관련 다양한 알림 수신(*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 필요) ③ 선착순 접수 인원 대상 기념품 증정 [사전접수 방법]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 접수 바로가기 ☎ 문의사항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061-900-2325)

20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