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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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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김언 - 강우근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환한 집」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작성일 2024-06-1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45상세보기 -
시배달 이수명 - 김소연의 「내리는 비 숨겨주기」를 배달하며작성일 2023-12-2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91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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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황인찬의 「겨울빛」을 배달하며작성일 2023-12-1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299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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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김도의 「그래도 네가 있다」를 배달하며작성일 2023-11-3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68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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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서호준의 「팔각정」을 배달하며작성일 2023-11-16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365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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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황유원의 「needle in the hay」를 배달하며작성일 2023-11-02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85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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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정재율의 「컴컴한 것과 캄캄한 것」을 배달하며작성일 2023-10-19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549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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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백은선의 「생의 찬미」를 배달하며작성일 2023-10-0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694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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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김복희의 「긴 줄 넘기」를 배달하며작성일 2023-09-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53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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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이수명 - 김영미의 「대치」를 배달하며
대치 마당 그네에 앉아 다리를 흔든다 다리를 흔들 때마다 그네가 간지럽고 간지러움처럼 구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먼 산에서 시작한 비가 가까운 산으로 온다 천변으로 온다 멀리서 가까이로 비가 다가온다 담 너머까지 도착한다 그네 앞까지 오면 얼른 뛰어가야지 손을 머리에 얹고 찰박거리며 도망가야지 하지만 비는 담 너머에서부터 더 다가오지 않는다 이상한 비야 힘껏 구르면 발끝이 젖을 것도 같지만 비의 세계에 닿을 것도 같지만 비와 나는 마주보고만 있다 김영미,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 아침달, 2023
작성일 2023-09-07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515상세보기 -
시배달 이수명 - 유계영의 「새로운 기쁨」을 배달하며
새로운 기쁨 그런 나라에는 가본 적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본 적 있어요 나의 경험은 아침잠이 많고 새벽에 귀가합니다 잎사귀를 다 뜯어먹힌 채 돌아옵니다 안다고 말하고 싶어서 차바퀴꿈은 많이 꿉니다 황봉투에 담긴 얇고 가벼운 꿈인데 낮에는 구청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감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까치가 까치밥을 쪼는 것을 보고 밤에는 하염없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트빌리시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그런 도시에는 가본 적이 없고 까치가 나뭇가지를 툭 차면서 날아가는 것은 낮에 본 것 미치지 않고서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는 것같이 팔이 떨어져라 흔들리는 잎사귀들이라면 밤에 본 것 나의 경험은 내내 잠들어 있습니다 다시는 일어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죽어서도 보고 있다면 죽은 것이 아닌데 자꾸 보고 있습니다 유계영,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아침달, 2021
작성일 2023-08-2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605상세보기 -
시배달 이수명 - 오은의 「그것들」을 배달하며
그것들 주머니는 감싸준다 실수할 때마다 주머니를 찾았다 아침에 나갈 때면 꼭 동전 몇 닢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카드만 쓰지 않아? 친구가 물었다 들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으로 말을 삼켰다 고개를 끄덕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짤랑짤랑 소리가 얼마나 안심되는 줄 아니 머릿속에 서릿발이 서고 가슴속에 빗발이 칠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식초 안에 벗어놓은 얼굴 입가에 묻은 흰 날개 자국 구리, 니켈, 아연, 알루미늄...... 원소가 빛발이 되어 주머니 속에서 반짝였다 나갈 때 주머니는 하고 싶은 말들로 두둑했지만 돌아올 때 주머니는 상처투성이일 적이 많았다 속엣말이 불거지지 않게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매일 밤 상처를 입고 옷을 벗었다 매일 아침 상처 입은 옷을 입었다 온기를 내뿜으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동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들을 감싸 쥔 손에 땀이 가득 맺혔다 짤랑짤랑 아침은 매일 찾아온다
작성일 2023-08-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85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