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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갱신제도

  • 작성일 2005-09-13
  • 조회수 662

 

결혼갱신제도

 



[등장인물]

김우석 35세 변호사

박성은 32세 김우석의 부인, 동화작가

임성구 40세 음식점 경영

전혜란 33세 임성구의 부인

김이다 5세 김우석의 딸


[때] 2004년 가을, 9월 말.


[장소] 김우석의 집


[무대] 중앙에 소파가 있고, 좌측으로 출입문, 우측으로는 테이블과 주방이 있다. 그리고 소파와 테이블 사이의 무대 뒤편에 방문이 있다. 벽에 걸린 그림과 디자인들은 집주인인 성은의 성향이 드러나도록 동화같이 귀엽고 깜직하다. 소파와 탁자 사이에는 이다의 장난감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김우석의 집. 암전인 상태에서 초인종 울리며 무대가 서서히 밝아진다. 초인종은 이어져 울리지만 그다지 다급하지는 않다. 이다는 무대 중앙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성은은 테이블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글 쓰는 작업에 열중이다. 이다는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핑크색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고, 왕관도 쓰고 있다. 성은은 긴 머리를 치켜 올려 묶고, 색이 조금 들어간 안경을 쓰고 있어서 약간은 강한 느낌이 든다. 자주색 남방에 베이지색 조끼를 겹쳐 입고, 남색 면바지를 입어서 단조롭지만 깔끔해 보인다. 초인종이 계속 울리지만 성은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며 음악 감상과 글 쓰는 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초인종 소리가 점차 빨라지자 그제야 일어서서 문을 쳐다보는 이다. 문 쪽으로 황급히 달려간다.


이다 : 아빠!


(브라운 계열의 깔끔한 양복을 입은 우석. 이다를 들어 안는다)


우석 : 어이구, 우리 공주님. (볼에 입 맞춘다) 오늘 잘 놀았어? 엄마는 또 음악 듣고 있지?

이다 : 응.

우석 : 내 그럴 줄 알았지.


(우석. 이다를 안은 채 성은에게 다가선다)


우석 : 나왔어.


(성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 음악듣기에 열중한다)


우석 : 우리 엄마 놀래 줄까? (이다를 내려놓고) 하나, 둘, 셋 하면 엄마 놀래키기다!


(우석과 이다. 성은에게 에게 한걸음씩 다가간다)


우석, 이다 : 하나, 둘.

성은 : (돌아보며) 왔어?

우석 : (놀라며) 에이, 깜짝이야. 당신 듣고 있었어?

성은 : 맨날 당하면서 그 장난을 아직도 하냐? 당신은 분명 둘 중 하나야. 기억력이 완전 붕어거나 (우석 붕어 흉내를 낸다), 아니면 의지의 한국인이거나 (우석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든다). 솔직히 말해. 당신 변호사 돈 주고 샀지! 우리나라는 이 부정부패 없어지기 전에는 선진국 못된다니깐. 이런 게 변호사라고…….

우석 : (발끈하며) 이런 거!

성은 : 그래, 이런 거.

우석 : (더 큰소리로) 이런 거!

성은 : (머리를 우석에게 들이대며) 그래, 이런 거!

우석 : (바닥에 납쭉 엎드려 이다에게) 이런, 거…북이 타봤어? (이다에게 타라는 손짓하며) 야! 타! (이다 타고, 우석 성은 발밑으로 기어가 성은 발에 입 맞춘다)

성은 : 지저분한 짓 하지 말고 언능 씻고 밥이나 드셔. 당신 기다리느라 아직 밥도 못 먹었으니깐.

우석 : 왜, 먼저 먹고 있지. 오늘 좀 늦는다고 했잖아.

성은 : (우석에게 안기며 콧소리로) 당신이 차려줘야 먹지. 내가 뭐 아나.

우석 : 꼭 이럴 때만! 으이그! 근데 이다는 밥 먹었지?

이다 : 아직 밥 못 먹었…

성은 : (이다 입을 막으며) 얘가 아빠 오면 같이 먹는다고 그렇게 조르더라고. 내가 밥 먹으라고, 먹으라고 해도, 안먹는다고. 안먹는다고 해서. 그치 이다야?

이다 : (한숨쉬며 고개 끄덕인다)

우석 : 그래? 알았어! 오늘도 아빠가 솜씨 한번 발휘하마! 주방장 변신!

성은 : 예썰! 위이이이잉


(경례하고 앞치마를 가져다 우석에게 입힌다)


  성은과 이다, 소파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우석은 주방에서 조리를 한다. 주방기구가 맞닿는 소리와 이다의 웃음소리로 집안이 요란하다.


우석 : (뒤돌아보며) 근데 요즘 쓰는 동화가 뭐야?

성은 : 음. 우리 집처럼 화목한 가족 이야기야. 아빠는 살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엄마는 쇼핑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아이는 공부 열심히 하고…….

우석 : 그게 화목한 가족 이야기냐?

성은 : (웃으며) 왜. 이 정도면 충분히 화목하지 않나? 더 들어봐. 아빠는 돈도 잘 벌고 굉장히 가정적이야.

우석 : 딱 나네.

성은 : 웃기네. 거지들 꽁짜로 변호해주면서……. 다른 변호사 집 보면 아주 돈을 쌓아놓고 살더만.

우석 : (째려보며) 여보.

성은 : 알았어. 소심하기는…. 당신은 A형인 게 너무 티나. 그러니까 변호하다가 맨날 흥분하지. 연애할 때 당신 변호하는 거 보고, 야. 저렇게 변호하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들더라. 상대편이 좀 험한 말만 하면 얼굴 벌개져서는 ‘저, 저 이, 이의 있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열 받아서 인상 팍 쓰고 앉아갖고…… (우석 쳐다보며) 이거봐. 이거봐. 또 삐졌잖아. 좀 웃고 살 수 없냐? 나처럼 (이다에 볼과 자신의 볼을 맞대며) 우리 이다처럼.


(성은. 우석을 바라보지만 우석은 아무 말이 없다. 일어서서 우석에게 다가간다.)


성은 : 여보. 삐졌어? 진짜 삐진거야? 장난이잖아. 소심하기……(입 막으며) 아니, 미안해. 여보. 인상 쓰면서 음식 만들면 맛이 없어지잖아. (콧소리로) 여봉. 내가 잘못했어용. 한번만 용서해주세용. 네? (그래도 아무 말이 없자, 엉덩이를 토닥이며) 어이구, 우리 애기 아직도 삐졌어? 엄마가 안아줄게 이리와. (팔을 내밀어 안으려고 한다)

우석 : 됐어.

성은 : (표정 변하며) 진짜 삐졌네. 계속 이럴거야. 진짜?

우석 : 뭘!

성은 : 지금 나한테 큰소리 친거야? (아무 대꾸 없자 손바닥을 펴들고 손가락을 하나씩 꼽는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셋! 넌 죽었어.

우석 : (정색하며) 아, 아냐아냐. 그만할게. 내가 잘못했어. 장난이야.

성은 : 뭐? 장난? 이게 진짜. 미안하다고 할 때 못이기는 척 받아줄 것이지.

우석 : 알았어. 근데 너무 심하게 약 올렸잖아. 내가 언제 얼굴이 벌개져서 ‘저, 저 이, 이의 있습니다’ 그랬냐?

성은 : (말없이 우석을 바라본다)

우석 : (더 얘기해도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맨날 이런 식이잖아. 나 약올려놓고, 말 안하면 삐졌다고 또 약올리고. 그래도 말 안하면 하나, 둘, 셋 세고. 윽박지르고.

성은 : (표정 변하며) 그래서.

우석 : (비굴하게 웃으며) 아니, 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얘긴 아니고. (화제를 바꾸려) 그래서 뒤가 어떻게 되는데?

성은 : 알 거 없잖아.

우석 : (아양 떠는 목소리로) 여보. 내가 잘못했어.


(우석. 성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성은은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무대 중앙까지 온다. 우석은 성은을 간지럼 태우고, 참다못한 성은은 소파에 눕는다. 우석은 계속 간지럼을 태우며 성은 위에 올라탄다. 곁에 있던 이다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


성은 : 그만해, 여보. 배 아퍼. 그만.

우석 : 이제 화 풀린거지?

성은 : 그래, 풀렸다. 풀렸어. 속 넓은 내가 참아야지. 언능 일어나기나 해. 이다 보잖아.

우석 : (이다 바라보며) 괜찮지?

이다 : (한숨쉬며) 뭐 하루, 이틀인가? 근데 밥은 안 먹어?

우석 : 아니, 먹어야지. 그래.


(우석과 성은 일어선다)


우석 : 근데 동화 뒷얘기는 어떻게 되는데?

성은 : 동화? 음…… 어디까지 했더라?

우석 : 아빠는 돈도 잘 벌고 굉장히 가정적이다 까지 했어.

성은 : 그래. 근데 행복하던 그 집에 어느 날 누가 찾아오는 와. 인상도 험악하고, 마치 괴물같은…….


  이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띠이잉동” 여리고 느리게 울리는 소리. 초인종 소리에서 소심함이 느껴진다.


성구 : 계셔요.

성은 : (문 쪽으로 다가서며) 누구세요.

성구 : 아, 지 앞집 사는 사람인디요. 아실랑가 모르겄네요.

성은 : (문 열어주며) 아, 안녕하세요.

성구 : (안으로 들어오며) 안녕하싱게라. 지 앞집 사는 임성구라고 허는디.. 쩌그 ‘벌교식당’ 하는…… 헤헤. 이짝은 지 마누라쟁이고. (뒤를 돌아보며) 뭐혀! 싸게 안 들어오고.

혜란 : 아, 들어가고 있어요. (작은 목소리로) 저놈의 승질머리 하고는…

성구 : 당신 지금 뭐라고 혔어.

혜란 : (정색하며)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제가 무슨…… (성은을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앞집 살면서도 인사도 제대로 한번 못하고. 저희가 식당 일을 해서 워낙 바쁘다보니까…….

성은 : 아니에요. 저희도 마찬가진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성구 : (이다를 바라보며) 아이고, 니가 아다구나. 으미. 많이 커부렀네. 아새끼덜 나이 쳐묵는데 오뉴월 하루볕 달브다더니만. 그란디 아 이름이 와 아다다냐.. 참 요상시럽네. 아다. (부인을 쳐다보며) 아다가 거 뭐시여, 한 번도 (손바닥을 마주대고 움직여 소리를 내며) 요거 모단걸 말하는 거 아닌감?

이다 : 제 이름은 이다에요. 김이다!

성구 : 아, 이다. 우짠지 이름이 참, 색시럽고, 요상타했다. (멋쩍게 웃음)

우석 : 여보! 누구 왔어?

성은 : 어, 앞집 분들. 어머, 내 정신 좀 봐.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세요.

혜란 : 네, 그러면 실례 좀 할게요.

성구 : (아내를 막으며) 아이고, 아니어라. 금방 있다가 갈건디요. 그라고 우리는 노상 허는 일이 서서 허는 일이라, 서 있는 게 편허요. 안그런가, 여보.

혜란 : (마지못해) 네.

성은 : 아, 그러시면…….

성구 : (성은의 말을 가로채며) 정 그러시면, 실례지만 잠깐 앉을게라. (자리에 앉으며) 으미. 소파 솔찬히 폭신폭신 해부르네. 비싼 건갑네잉. 당신도 와서 좀 앉제?

혜란 : 아니, 전 괜찮아요.

성구 : 앉으라면 앉을 것이제 뭔 말이 많어. 지금 여사님 성의 무시하는겨? 팍! 그냥.

혜란 : (작게) 이랬다저랬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성구 : 당신 시방 뭐라고 혔어. 자꾸 혼잣말 궁시렁거리면 주둥아리를 찢어…… (성은 눈치보고는) 입을 밖으로 쪼오까 당겨버릴랑게.

성은 : 근데 어떻게…….


(우석. 앞집 내외와 눈인사를 나누고는 소파에 앉는다)


성구 : 아. 거, 뭐시기냐. 다름이 아니오라. 거…… 날이 솔찬히 추바졌소. 폴새 가을이제라. 이러다 금방 겨울 돼버리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 나가 서울 올라온 지 올해로 딱 한다스가 돼 부르는디. 요놈의 날 추바지는 거는 적응을 모다겠다니께요. 벌교서는 여적지 멱감고, 빤쓰만 입고 다닐틴디. 혹시 두분다 서울서? 그라모 지 야그가 믿기지가 않겄네요. 지가 긴지 아닌지 벌교에 전화 한통 넣어볼까요? 만득이가 여적지 거그 사는디.. 만득이 모르시제라. 금마가 지 똘마니였는디, 지금은 마을서 이장해묵고 있다네요. 참, 우리 동네가 우짜 될란지.

성은 : 아니, 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성구 : 아, 용건요. 하먼이라, 용건을 말씀 드려야제라. 그 뭐시냐, 그 등, 등.

혜란 : 등기이전.

성구 : 그려, 등기이전. 그 등기이전을 (혜란에게 손 들어 위협하며) 근디, 이 여편네가 뒤질라고 내 앞에서 아는 척이여. 확, 뼉다구를 뽀사서 고아묵어뿔라. 긍께네, 등기이전을 하러 동사무소에를 갔는데라. 다른 목적은 전혀 없이 걍 등기이전을 하러 갔었제라. 근디 거그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기. 거, 뭐다냐 (혜란 쳐다보는데 아무 대꾸 없자) 이 여편네가 남편이 물어보면 싸게싸게 대답할 일이제, 이 심지뽑아후려잡쳐먹을년아. 니가 요새 뼉다구가 슬슬 근질근질 허제?

혜란 : 아, 아니요. 겨, 결혼갱신이요.

성구 : 그려, 맞어. 결혼갱신. 긍께네, 올 10월에 받는 사람덜 확인처. 하고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질 않겄소. 그라서 나가, 등기이전하는 김에, 거글 한번 가봤제라. 뭐, 동사무소에 사람도 없고, 식당에는 손님도 없고 혀서……. 오해 마시씨오. 지가 그것땜시 일부러 찾아간 거이 절대 아닝께로. 지는 그냥 등기이전 하러 갔다가 겸사겸사 혀서…….

혜란 : 어이구, 답답해라. 그냥 말해요. 이집이라 우리 집이랑 바뀐다고.

성구 : (혜란에게) 아니, 이 여편네가 진짜. 너 이따 집에 가서 보자잉. (다시 성은에게) 긍께네 저으 집하고, 여그 집허고 결혼갱신을… (혜란에게) 니 땜시 말이 제대로 안나오잖여! 이 년이 뒤질러고 서방 이약허는디 껴들어서는.. (다시 성은에게) 아, 죄송헙니다. 긍께, 이 집 여사님허고, 저허고, 우리 집사람하고, 여그 사장님허고…… (혜란에게) 야이, 빙신 겉은 년아. 니가 껴들데가 따로 있지, 워디서 지랄이여, 지랄이! (일어나서 혜란을 때리려고 한다)

성은 : (일어나서 말리며) 아니, 왜 이러세요.

성구 : 아니여, 이런 여편네는 개 패듯이 패야 정신을 차리지라. 이 무식헌 년이 슬슬 기를 살려준께 이제 지 서방 머리 꼭다구 위에 설라고 그러네.

성은 : 뭐요? 아니, 뭐 이딴 사람이 다 있어! 아, 기분 나뻐. 여보, 뭐해요. 어서 안 내보내고.


(우석 일어나서 성구에게로 다가간다.)


성구 : 뭐시여? 이딴 사람? 내보내? 어허. 그짝이 나한테 이라문 안될틴디. 나가 앞으로 그짝하고 5년을 함께할 서방인디 말이여.

성은 : 뭐요! 이거 정말 미친 사람 아냐? 여보 뭐해!


(우석. 성구를 밀어내려 한다.)


성구 : 허허. 건들지 마소. 나가 내 발로 나갈텡께. 근디 나가 나가기는 허겄는디. 후회헐 것인디. 나한테 이라문 진짜 후회헐 것인디……

우석 : (밀어내며) 이봐요. 어서 나가라고 하잖아요!

성구 : 알았소. 나가겄소. 근디 (비꼬며) 똑똑허신 여사님, 그라고 사장님. 이거이 동사무소서 받아온 증명선께 읽어보소. 여보, 싸게 갑시다. 이 드런 집구석 더 있으라도 안 있겄소(문 쪽으로 돌아선다).

우석 : (받아서 훑어보고는) 잠깐만요. 이거 동사무소에서 받아 왔다고요? (성은에게 건네주며) 여보, 이거…….


(성은. 기분 나쁘게 낚아채지만 읽지는 않는다)


성구 : (돌아서며) 더 서 있어야겄소?

우석 : 아니요. 일단 앉으세요.

성구 : 아따 진작 그랄것이지. 여보, 앉지. (성구. 소파에 앉으며) 여그는 뭐, 주스도 과일도 안묵고 살제? 아니면 우리가 그지 깽깽이로 보여서 그라는가.


(이다. 음료수와 과일을 들고 온다)


성구 : 으미. 우리 아다, 아니 이다 다 커부렀네. 보육원에 맽게도 잘 지내겄네.

성은 :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깐.

성구 : 그라모 키울라고 혔소. 우리 식당일이 그리 수월치 않을틴디.. 아 봐가문서 헐 수 있겄소?

성은 : (우석에게) 아니, 이 미친 사람을 왜 안 내쫓는 거야. 됐다. 내가 경찰 부를게.

우석 : (성은을 보며) 잠깐만 여보, 먼저 서류부터 읽어봐. (다시 성구를 보며) 그럼 당신들이 이번 갱신에 우리 부부와 바뀌는 부부라는 건가요?

성구 : 이제야 팍! 필이 꽂혀뿐 모양이구만이라잉. 근디 이 여사님은 표정을 본께로 잘 이해가 안디야가본디. 여적지 386 쓰요. 버퍼링이 요리 느리게..

성은 : 그, 그럼 (서류를 읽다가 성구를 바라보며) 악! (머리를 감싸 안는다)

성구 : 아니, 그 짝이 나보다 가방끈 쪼까 길기로서니 사람을 이래 벌거지 취급헐 수가 있소? 나가 무슨 문등병이락도 걸렸소. 그리 낯짝을 일그라부르게.

(성은. 우석에게 안겨 흐느낀다)


우석 : (혜란을 보며) 잠깐만요. 그럼 이분은 내…… (혜란 부끄러운 척 몸을 비비꼬며 우석에게 윙크한다. 우석은 헛구역질을 하고 다시 성은을 보며) 여보, 괜찮아? 저리 가서 냉수 한잔 마시자. 저 잠깐 실례할게요.

성구 : 그라소. 우리야, 뭐. 신경 끄소. (과일 먹으며) 으미~ 똑똑헌 집은 과일맛도 똑 뿌러지는구마잉. (혜란 보며) 언능 먹어, 이거 비싼건게.


  성구와 성은. 무대 오른편으로 이동하고, 그 쪽의 조명이 꺼진다. 이제 무대 위에는 성구와 혜란, 이다만이 있다.


혜란 : 꼭 일을 이렇게 만들어야겠어요?

성구 : 아니, 뭘!

혜란 : 좋게좋게 얘기할 수도 있었잖아요.

성구 : 아니, 이 여편네가 증말. 니 오늘 와 그러냐. 이제 을매 안남었다, 이거여? 결혼갱신되는 그 날꺼정은 나가 니 서방잉께 어디 한군데 뽀사지기 싫으면 조심허더라고. 그라고, 뭘 잘못했다는겨, 시방?

혜란 : 저 사람들 놀래서 가는 것 좀 봐요. 저러다가 저 사람들이 결혼갱신 안하겠다고 반대하면 어떡해요.

성구 : 놀래서 가는 건 지들 사정이고, 결혼갱신은 나가 다 알아봤응께 걱정을 말어. 저 사람들만 반대혀서는 아무 것도 되는 게 없당께. 그라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제. 나가 도박을 하냐, 술을 마시냐, 돈을 못 벌어다주냐.

혜란 : (작은 목소리로) 패니까 문제지.

성구 : 아니, 이 년이 진짜. (때릴 듯이 손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말이 나왔응께 허는 말인디, 니 동사무소에다가 내가 패니 우짜니 말하문 이번 갱신 파탄 나고, 니랑 나랑 5년 더 같이 살든지 해야됭께 입단속 잘혀라. 아, 뭐. 나랑 5년 더 살고 싶음 살든가.

혜란 : 아이고, 내가 미쳤어요? 당신이랑 더 살게.

성구 : 긍께 입단속 잘 혀라고, 이년아. (사이) 아니다. (한숨쉰다) 니 증말 고생 많었다. 낮에는 식당일 허랴, 저녁에는 집안 일 허랴, 밤에는 얻어터지랴. 그랴. 내 다 안다. 결혼갱신허는 날 오기만을 을매나 기다렸겠능가. 내 이제 니 안 때린다. 걱정말고 니 맘대로 씨부리라.

혜란 : 진짜 안 때릴거에요.

성구 : 당연하제. 붕알 달린 사내가 한입 갖고 두말 혀는 거 봤능가.

혜란 : 정말로 안 때릴거죠?

성구 : 참말이랑께. 속고만 살았나.

혜란 : 맨날 속았죠, 뭐. 근데 진짜 안때릴거죠?

성구 : (손을 들어 때릴 듯이) 아니, 이 여편네가 증말 뒤지고 싶응가.

혜란 : (몸을 피하듯 웅크린 채) 이거봐. 이거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깐.

이다 : 아저씨, 거짓말쟁이.

성구 : (손 내리며) 알겄다알겄다. 안 때린다. 드럽고 치사혀서 안 때린다. 근디 아 참말로 똑똑허네. 당신 이 아 키워 볼랑가?

혜란 : 상관없죠, 뭐. 이 집에서는 특별히 할 일도 없을테고. 그리고 이 집 아저씨가 그렇게 부인한테 잘한다고 소문이 쫙 나있더라고요. 옆집 희수 엄마도 엄한 놈 만나서 5년 동안 고생고생 하더니만 이제 팔자 펴나보다고…… (멈칫하고 성구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성구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 결혼갱신…… 진짜 걱정 안 해도 되죠?

성구 : 걱정 허덜덜덜 말랑께. 나가 폴새 다 손 봐놨응께.

혜란 : 당신은 정말.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한다니까요. (웃는다)


  성구와 혜란이 앉아있는 중앙의 조명이 꺼지고, 우석과 성은이 있는 오른쪽의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 우성과 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다.


우석 : 좀 괜찮아?

성은 : 응.

우석 : 너무 놀라서 그랬을 거야.

성은 : 응. (사이) 어떡할거야?

우석 : 뭘?

성은 : 결혼갱신.

우석 : 할 수 없잖아. 동사무소에서 이미 결정 난 걸.

성은 : 뭐?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 당신 나 안 사랑해?

우석 : 사랑하지. 사랑해. 근데 법이 그런 걸 어쩌겠어.

성은 : 알아. 그건 나도 안다고. 그래도…… (한숨쉰다) 근데 어느 정도 수준은 맞아야 살 거 아니야. 난 저런 인간하고는 단 하루도 못살아. 상스런 욕하고, 툭하면 손 올라가고… 안돼. 절대 안돼. (애원하듯) 당신 동사무소에 아는 사람 많잖아. 당신이 힘 좀 써봐. 결혼갱신은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좀 괜찮은 사람하고 살게 해주면 안돼? 꼭 전문직이 아니어도 돼. 일반 샐러리맨이라도… 많은 거 안 바래. 나 일 안하고 집에 있어도 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이면 돼. 물론 어느 정도 나랑 대화도 통하고…. 아무리 그래도 식당 주인이 뭐야. 알잖아. 나 설거지도 잘 안하는 거.

우석 : 알았어. 내가 알아는 볼게. 근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동사무소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성은 : 사실대로 말해봐. 당신 지금 속으로 좋아하고 있지! 맨날 집에서 놀면서 일만 시켜먹는다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석 : 아니야. 당신 정말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 내가 알아본다고 하잖아.

성은 : 기대하지 말라며. 그게 안 된다는 얘기지, 뭐야.

우석 : 됐다. 그만하자.

성은 : 뭘 그만해. 솔직히 말해봐. 당신 지난 5년 동안 살면서 이 날만 기다린 거 아냐? 나랑 이혼할 날만 기다린 거 아니냐고.

우석 : 그래! 그랬다! 맨날 이혼할 날만 기다렸다. 동화 쓴답시고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피곤한 사람 일 시켜먹고, 그러면서도 미안하단 생각, 고맙다는 생각 한번도 안하는, 그런 당신하고 이혼하게 돼서 정말 행복하다. 이제 됐어? 그리고 당신 지금 결혼갱신 맘에 안 들어 하는 게 나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지금처럼 편한 생활 못하게 될까봐 겁나서 이러는 거 아니냐고. 뭐? 샐러리맨 정도만 되도 된다고? 그따위 생각하니깐 저런 남자가 걸리는 거 아니야.

성은 : 뭐? 당신 정말 말 다했어?

우석 : 아니. 아직 덜했어. 당신 처음 나랑 결혼할 때 뭐라고 했어. 단 5년 동안만 사는 거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행복하게 잘 살자고 했잖아. 근데 당신 나 도와가면서 산 적 있어?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오로지 당신 위해서만 살아오지 않았냐고. 이 생활이 평생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성은 : 그래. 나 그렇게 계산적이고 이기적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하고 이제 안 살게 되니까 좋겠구만. 입이 아주 귀에 걸리셨네.

우석 : 그래. 좋다. 내 말 잘 듣고, 집안일도 잘하는 살림꾼이랑 살게 돼서 너무 행복해. 행복하다고!


(무대 중앙에서 이다 걸어온다)


이다 : 아빠. 싸우지마. 엄마. 왜그래.

성은 : 응. 엄마, 아빠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대화하는거야.

우석 : 그래. 이다야. 엄마, 아빠 안 싸워. (성은에게 낮은 목소리로) 이따 더 얘기하자.

성은 : 아니, 당신하고는 더 할 얘기 없어. 아, 그리고 이다는 내가 키울거야.

우석 : 안돼. 저 사람이 아까 하는 얘기 못 들었어? 보육원에 맡긴다잖아.

이다 : 엄마, 보육원이 뭐야?

성은 : 잠깐만 이다야. (우석에게) 그건 내 사정이고, 당신이 신경쓸 거 없잖아. 그리고 이다는 보육원에 안 보낼게. 대신 그 이상은 신경쓰지마. 내가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든, 이다가 쟁반을 나르든.

우석 : 여보!

성은 : (무시하며) 이다야. 엄마랑 같이 그림 그리고 놀까?

이다 : 응. 근데 정말 싸우는 거 아니지?

성은 : 그럼. 아빠하고 싸울 일이 뭐 있겠니. 저렇게 끔찍이 가족을 아끼시는 위인인데……. 어서 그림 그리고 놀자.


  성은과 이다. 무대 중앙으로 이동하고 조명이 모두 들어온다. 우석 마지못해 성은을 따른다. 소파에는 성구와 혜란이 과일을 먹고 있다.


성구 : (혜란과 함께 일어서며) 아이구, 여사님. 우째, 몸은 좀 괜찮으신지 모르겄네요. (비꼬듯이) 집에서 일 안허고 글만 씅께 몸이 그리 약혀지지. 안 그렇소, 여보?

혜란 : 예, 예…….

성은 : 할 얘기 끝났으면 그만 가주세요.

성구 : 사장님헌테 할 야그가 있응게, 여사님은 잠깐 빠져주소.

성은 : 뭐요!

우석 : 무슨 말씀이죠?

성구 : 저…… 다름이 아니라, 우차피 이래 결정이 난거, 서로 왕래 해감서 친분을 좀 쌓는 게 앞으로 살 때 편허지 않겄나 싶은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신지…….

우석 : 그 문제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기로 하죠. 뭐, 아직 확실히 결정한 것도 아니니까.

성구 : 뭐시 결정이 안난다요. 이미 동사무서에 떡 허니 붙어있는디. 아무튼간에 빠른 시일 안에 연락 줬으면 좋겄소. (혜란을 가리키며) 이 여편네 좀 무식허긴 혀도, 집안일 하나는 끝내주게 하제라. 복 받은 줄 아소. 여보, 이만 갑시다. 아, 여사님. 맴 각다분허고 드소. 호랭이헌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챙기면 사는 법잉께. 나가 호랭이도 아니고, 물려가는 것도 아닌디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겄소.

성은 :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이 없다)

우석 : 여사님은 끝꺼정 내를 무시허는구마잉. 나 진짜 가니께 나오지들 마소. 아다야. 잘 있어잉.

이다 : 이다에요.

우석 : 잉. 그려, 이다. 참 똑똑허네. 여사님을 닮아서 이래 똑똑헌가. (성은을 보며) 나가 노파심에서 한말씸만 더 드리겠는디……. 시상 사는게 뭐 별거 있는 중 아요. 아, 막말로 아줌씨가, 아니 여사님이 내랑 사는기 워디 뻘밭에 빠진 것맹키로 생각하나본디... 아, 뻘밭에 빠졌으면 이빨 응등물고 나서서 그 뻘밭에 앞발 빠치기 전에 뒷발 널빤지 옮겨감서, 그 진창에 돌멩이 하나씩 징겨감서 사는 것이제. 그리 살다보문 5년 후딱 지나고. 그러면 또 아요. 지금 남편맹키로 훌륭헌 사람 만날지. 안 그렇소? 특별한 방도가 없으문 그냥 즐기는기 상책이제라.

성은 : (계속 다른 곳만 쳐다본다)

우석 : 어이구. 9월인디 폴새 찬서리가 내리는갑네. 아이고 추버라……. 저희 진짜 갑니다잉. (혜란보며) 뭐혀! 빨랑빨랑 안나가고.

혜란 : 알았어요. (우석 보며) 안녕히 계세요.


  성구와 혜란 나가고, 무대 위에는 우석과 성은, 이다만이 남는다. 셋은 한참동안 서로 말이 없다.


이다 : 엄마. 그림 안그려?

성은 : 어, 그래. 그림 그려야지. 종이랑 색연필이랑 가져와.

이다 : 응.


(이다. 방문으로 나간다)


우석 : 여보. (대답이 없자 다시 부른다) 여보.

성은 : 당신하곤 할말 없어.

우석 : 여보. 아깐 미안했어. 내가 잘 알아볼게.

성은 : 아니, 내가 알아 볼거야. 당신은 재산 분배할 거나 신경 써.

우석 : 당신 정말…….

성은 : 당신 정말, 뭐. 당신이 나한테 할 말이 있어? 어차피 결혼갱신 될 날만 기다리면서 살았다면서. 고생 참 많았어. 집안일 잘하고 말 잘 듣는 여자랑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아. 아니다. 어차피 5년이지? 5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 5년 후에 나 같은 사람 안 만나게 조심하고.

우석 : 아까는 홧김에 한 말이야. 미안해. 내가 힘닿는 대로 손 써볼게.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려보자 우리.

성은 : 지가 무슨 힘이 있다고.

우석 : 여보!


(이다. 방문에서 나와 성은 옆에 선다. 손에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고 있다)


이다 : 가져왔어.

성은 : 응. 우리 이다. 잘했네.

이다 : (스케치북을 펴고 앉으며) 근데, 그 아까 말한 동화 뒷내용은 어떻게 돼?

성은 : (같이 앉으며) 뭐? 동화? 음… 괴물같이 생긴 사람이 찾아온 얘기까지 했지? 그 사람이 엄마를 잡아갔어. 엄마는 아빠한테 살려달라고 막 소리를 쳤지. 그런데 아빠는 들은 체도 안하는 거야.

이다 : 못됐다, 정말.

성은 : 그치? 아빠는 겉으로는 굉장히 자상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엄마가 사라지면 아빠는 다른 좋은 여자 만나 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괴물같이 생긴 사람은 엄마를 잡아가서 죽도록 일만 시키고, 때리고, 먹을 것도 제대로 안주고 그랬어.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하던 딸도 공부는커녕 맨날 일만하고, 혼나고, 유치원도 못 다니는 힘들 생활을 하게 됐지.

이다 : 불쌍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성은 : 아직 거기까지 밖에 안 썼어. 이다랑 그림 놀이 다 하고 나서 쓸거야.

이다 : 응. 그 불쌍한 아줌마랑 딸이 괴물한테서 풀려났으면 좋겠어.

성은 : 그래.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5년 동안 그런데서 살면 엄마는 정말 미쳐버릴 테니깐.

이다 : 응?

성은 : 아니야. 그림 그리자. 뭐 그릴까?


  성은과 이다. 그림 놀이를 하고 우석은 소파 뒤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