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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는 얼굴

  • 작성일 2020-10-01
  • 조회수 2,960

[단편소설]



흘러내리는 얼굴



김유진




나는 물이 된 사람을 알고 있다.


성호를 만난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그는 4층짜리 건물의 불법 증축한 옥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그곳을 일관되게 작업실이라고 불렀기에 나도 그렇게 부르곤 했지만 그에게 다른 주거지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먹고 잤다. 아침은 주로 레토르트 낙지죽 따위로 해결했고 기분이 나면 후식으로 참외나 사과를 껍질째 먹었다. 나는 종종 개수대 한편에 버려진 과심을 발견하곤 했는데, 씨와 꼭지만 남은 앙상한 모양새를 볼 때면 그가 조금 궁상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생활은 대체로 여유가 있었다. 그는 주 4일 하루 여섯 시간 재택근무를 했고 일이 끝나면 30분가량 산책을 한 뒤 카페에서 히비스커스 차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두 벌의 청바지와 각기 색이 다른 세 벌의 반팔 티셔츠, 검은색 니트 한 장으로 세 계절을 보냈다. 그의 수입은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했기 때문에 재료비나 활동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종 재단의 창작 프로그램이나 예술가 지원 제도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는 요건이 맞지 않아도 지원서를 냈고 부지런히 포트폴리오를 갱신했으며 규칙적으로 SNS에 업로드 했다. 그 결과 그의 생애 첫 해외여행지는 암스테르담의 3개월짜리 창작 레지던스가 되었다. 그는 층고가 높은 작업실 구석 야전병원을 연상케 하는 철제 침대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새 추위를 견뎠다. 그의 방은 응달에 있어 낮에도 해가 닿지 않았다. 라디에이터를 고쳐 달라거나 작업실을 바꿔 달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무엇이든 견디는 것에는 자신 있었던 그는 전기 포트의 뚜껑을 열고 끓는 물의 수증기를 쬐며 그 방에서 늦가을과 초겨울을 보냈다. 도시에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새벽녘이면 운하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서른 해를 사는 동안 그토록 많은 물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성호는 말했었다. 나는 올봄, 그가 모처의 지원을 받아 전시회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전시회 준비에 가장 품이 많이 들고도 중요한 일은 사후 지급될 지원금 정산을 위해 영수증을 빠짐없이 모아 분류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딱풀 하나를 사더라도 꼭 영수증을 챙겼기에 늘 지갑은 지폐가 아닌 영수증으로 두둑했다. 밤이면 책상에 앉아 그날의 영수증과 세금계산서 따위를 정리했는데, 그 구부정한 뒷모습이 내 눈에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성경책을 짚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실한 개신교도 농부처럼 보였다. 그가 과거에 참여했던 전시가 몇 차례인가 잡지에 실리며 약간의 인지도가 생긴 듯했지만 다음 전시를 기약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노동 행위 중에서 자신이 바라는 삶의 형태를 기준으로 몇 가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것은 과감히 단념하기도 했다. 그는 보다 넉넉한 통장 잔고를 위한 장시간의 노동을 포기하는 대신 휴대폰의 계산기 어플을 켜고 매일 밤 지출 금액을 정산했다. 그가 알파문고에서 산 족저근막염 예방용 발 쿠션 영수증을 지출 내역에 포함시킬 때에는 조금 겸연쩍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산에서 제하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그의 그런 좀스러움이 삶에 대한 겸양으로 보였고, 그래서 도리어 고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젊음의 기세가 한풀 꺾인 여느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었고 그 모습은 자주 고상과 궁상 사이를 오갔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의 작업실 건물 1층에는 가죽 공방과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나는 그를 알기 이전에도 그 앞을 무시로 지나다녔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적은 없었다. 2층에는 당구장이, 3층에는 마사지 숍이 있었는데, 둘 중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양옆으로는 자동차 정비소가 있어, 소음이 심했다. 길가엔 늘상 결함이 있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범퍼가 나간 차나 전면 유리가 박살난 차, 반파되어 운전석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폐차 직전의 차들과 마주쳤다. 살아남았을까. 나는 자주 그 길을 지나며 그런 생각을 했고 찌그러진 차바퀴를,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주시하다가 시선을 거두곤 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그저 지나는 길에 지나지 않았다.
그를 소개한 사람은 대학 선배였다. 3개월 남짓 다닌 학교의 상급자도 선배라고 불러야 하나 문득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안을 생각해야 할 만큼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래도 K선배는 대학에서 만난 이들 중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유일한 사람이긴 했다. 그를 만난 곳은 과내 시학회에서였다. K선배는 담당 교수에게 부탁해 과제로 제출한 신입생들의 시를 받아 보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몇몇에게 학회 가입을 권유했다. 나는 호감으로 포장된 선배의 월권에 걸려든 순진한 신입생 중 하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몇 가지 장면이 연이어 떠오른다. 헛도는 과방 문손잡이를 돌리며 자연스럽게 욕설을 내뱉던 K선배의 뒤통수,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닳아 실밥이 튀어나온 인조 가죽 소파, 한쪽으로 기운 대형 책상 구석에 놓인 다도 세트, 음식물 쓰레기와 곰팡이가 뒤섞인 역겨운 지하실 냄새, 신입 환영 술자리에서의 헐거운 박수와 침묵, 피씨니 언피씨니 하는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어들, 일부러 채 썬 오이가 잔뜩 들어간 소주를 시켜 놓고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건져내며 낄낄대던 누군가의 위악적인 웃음소리 같은 것들. 지금 생각하면 그 학회는 내가 짧은 기간 대학을 다니며 느꼈던 어떤 격차와 부조화를 응집해 놓은 곳 같았다. 모든 축적되고 과장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고루한 이론과 취업 사이의, 육체적 성숙과 미숙한 내면 사이의 긴장 관계로 이루어진 촌스럽고 목표가 모호한 집결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회에 발을 끊게 되었다. 학회장이었던 K선배는 문집 제작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왔지만 내가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하지 않았기에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학교에 돌아가지 않은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학교에 돌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 역시 없었다. 나는 동기들에게 유대감을 느끼지 않았고 믿고 따르는 선배나 존경할 만한 교수도 만나지 못했다. 그즈음 30분짜리 만화영화 하나를 반복적으로 보았는데, 땅에 발을 붙일 이유를 찾지 못해 공중으로 떠올라 증발하려 하는 연인을 둔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의 연인은 점차 투명해지고, 목소리만 들렸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몸이 날로 가벼워져 자꾸만 뒤꿈치가 들리는 발이 화면에 부각될 때마다 콧날이 시큰거렸다. 등록금을 핑계로 일 년, 반수를 핑계로 또 일 년 복학을 유예하면서, 나는 서서히 돌아갈 이유가 퇴색되고 완전히 소거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러자 생활이 남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몇 년 뒤 플리마켓에서 엄마가 만든 손뜨개 가방을 팔던 중, 점심을 먹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던 K선배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 그는 근처 논술학원에서 계약직 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K선배는 그를 고등학교 동창이자 사진작가 겸 설치미술가라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얼굴을 다룬다고 말했다. 얼굴을 다룬다는 설명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사진작가 겸 설치미술가라는 길고 번잡한 직업이 다소 허황되게 느껴져 되묻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미술이나 사진에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대학을 한 학기도 채 다니지 않은 나와 그들이 지닌 교양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대학 졸업장과는 무관한, 일종의 취향이나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격차를 대학의 문제로 떠넘겨 버렸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호한 단어들을 모른 채로 내버려두었고 대화 사이사이 생겨나는 공란들에 점진적으로 소외되어 갔다. 다만 선배가 얼굴, 이라고 말했을 때,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성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조도가 낮은 술집 조명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의 얼굴이 마치 코가 썩어 뭉개진 병자같이 보여 자꾸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우리는 베이컨이 들어간 매운 토마토 수프를 가운데 두고 취하도록 맥주를 마셨다. 술집 열린 창 너머로 숲 구경을 나왔다가 골목으로 흘러 들어온 연인들의 속삭임 따위가 미지근한 밤바람에 실려 왔다. 성호와 나는 술기운에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누구도 선뜻 연락하지 않았다. 열흘가량 지났을 무렵, 그에게서 안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때 반가웠는지, 놀라웠는지, 의외로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성호의 작업실에 갔을 때는 여름 끝물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가도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내리쬐는 변덕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오래된 건물에는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의 옥탑으로 향하는 4층 계단은 철문에 가로막혀 있었다. 초인종이 보이지 않아 문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가 슬리퍼를 끌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내 뒤로 보이는 마사지 숍 입간판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문을 열었다. 계단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센서 등은 켜지지 않았다. 술 취한 사람들이 자꾸 옥상 문을 두드려서, 그는 주인의 허락을 받고 자비로 4층 계단 입구에 철문을 달았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앞뒤로 막힌 좁은 계단에 웅웅 울렸다. 눈이 어두워 난간을 짚었는데 까끌거리는 흙먼지가 만져졌다. 옥상 철문을 열자 곧장 그의 작업실이 나왔다. 방은 제법 컸다. 그는 원룸 가운데 책장을 두어 공간을 분리해 생활하고 있었다. 책장의 빈틈으로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침대와 옷걸이, 간이 책상, 선풍기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문 옆으로 싱크대와 전자레인지가, 정면에는 철제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뒤로 반쯤 열린 미닫이문이 보였는데 화장실인지 옥상으로 향하는 문인지 둘 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의 작업실은 견고한 두 개의 철문으로 둘러싸인 성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아늑하다거나 안전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절벽으로 퇴로가 막힌 고립무원의 처지에 더 가까워 보였고, 그 불안정함은 단출한 살림살이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에게 얼굴을 빌려주었다. 그는 기약 없는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대단치 않은 일이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거라며 그는 내가 우쭐해질 만큼 내내 고마워했다.


그의 작업실을 나와 집으로 향하며 보았던 풍경에 대해 말하고 싶다. 줄지어 늘어선 공장들과 소음에 대해, 잡풀이 무성한 공터, 담벼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나팔꽃, 시멘트에 꽂아 넣어 단단히 굳힌 사금파리들, 사금파리에 반사되어 눈을 쏘아대는 햇빛에 대해. 이제 막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과 오천 원짜리 한식뷔페 식당에서 이미 점심을 해결한 뒤 담배를 태우는 무리들, 가게 입구에서 보란 듯이 고무 다라이를 놓고 열무를 다듬는 식당 주인, 열무 잎에 호스를 대어 물을 붓자 생장하듯 부풀어 오르던 푸른 잎사귀에 대해.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이층짜리 카페, 색과 모양이 제각각인 솜사탕 같은 의자들과 막다른 골목에 세워 둔 전동 킥보드를 가지러 온 청년들, 잠금 해제를 알리는 기계음, 상대방의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같은 킥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던 포개어진 두 개의 웃음소리에 대해서. 움직이지 말아요. 성호는 사진을 찍는 동안 내게 반복적으로 말했다. 움직이면 안 돼요.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의 나이보다도 오래되어 보이는 카메라가 터무니없이 긴 노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동안, 나는 살아 있는 육체란 의지와 무관하게 쉼 없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몇 차례 A4용지만 한 유리판을 가져다 나르며 콜로디온 용액이니 질산은이니 하는 말들을 내뱉었다. 나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팔이나 목, 눈꺼풀 등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솜털에 불꽃이 튄 듯 볼이 따끔거리는 것을, 그래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지르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그가 드나들던 미닫이문 너머에 암실이 있구나, 짐작했다.
마침내 그가 현상된 몇 개의 유리판을 가지고 와 내 앞에 늘어놓았다. 사진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이런 걸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피사체가 왜곡된 것도 사진이라고 부르나. 나는 조금 웃음이 났다. 외곽선이 흐트러져 배경과 얼굴의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이 움직인 탓 같았다. 흑백사진은 시계추처럼 좌우로 진동하는 얼굴의 진폭을 추적한 기록지에 가까웠다. 머리통을 어딘가에 얹어 놓고 찍을까 봐요. 눈을 감고 있었다면 영락없이 시체 같았을 얼굴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래서 보통은 정물을 찍어요. 건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요. 나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 결과물이 촬영자의 의도인지 미숙함에서 오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조금은 더 선명해지는데……. 그는 여러 개의 유리판 중 그나마 얼굴의 형태를 갖춘 것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용액의 도포가 잘못된 것인지 표면에 물 자국이 나 있었다. 흘러내리는데요. 네? 얼굴이 흘러내린다고요. 그렇네요. 심상하게 대답한 그가 이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부숴도 될까요? 네? 버리려는 건 아니에요. 제 얼굴을 부숴요? 내가 놀라 되물었다.


나는 이 동네의 오래전 모습을 알고 있었다. 더 많은 공장들, 더 많은 가죽 공방들, 더 많은 폐차들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옆집을 하나씩 사들여 땅따먹기 하듯 규모를 늘려 간 콩나물국밥집에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테인리스 밥그릇 바닥에 달라붙은 수란을 크게 입에 떠 넣고 속을 달래며 일을 하러 가는 남자들을 자주 보았다. 육차선 도로 건너편에는 가족공원이 있었다. 원래 경마장과 골프장이 있었다는데 나는 본 일이 없다. 십여 년 전 시는 가족공원을 녹지와 생태 숲으로 단장했다. 숲 안쪽에는 사슴 우리가 있어 아이들과 연인들이 자판기에서 사료를 뽑아들고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습지에 가면 연잎 아래 몸을 숨긴 원앙이나 청둥오리를, 운이 좋으면 부리가 붉은 쇠물닭 몇 마리가 긴 다리로 얕은 물을 건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숲의 뒤편은 강으로 이어졌고 입구는 재개발이 되어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는 담장이 없어 얼핏 숲이 아파트에 딸린 거대한 정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아이 얼굴만 한 수국이 주렁주렁 달리는 실로 호화로운 정원이었다. 우리 집은 주상복합 너머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에 있었다. 골목은 좁고 낡았다. 예전에는 골목 어귀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더러 있었다. 골목과 골목을 무리지어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 넘어진다 잔소리를 하고, 가장 작고 가장 먼저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손에 박하사탕을 몰래 쥐여 주며 달래던 노인들. 골목 깊숙이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가족이 없어 진정으로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었던 노인들은 사라졌다. 그 대신 유럽식 비스트로와 스케이트보드 숍이 자리를 잡았다. 골목은 숲과 함께 변화를 맞았다. 새로운 거주자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에 익숙한 사람들과 돈 냄새를 맡은 부동산업자들이 동시에 골목으로 밀려들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길 건너 공장지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소규모 갤러리들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좀 더 많은 예술가들이 주변에 집을 얻었다. 성호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성호의 담백한 기세에 눌려 손쉽게 승낙하고 말았다. 그는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인화된 유리습판을 골라 헤어드라이어로 천천히, 완벽하게 건조시켰다. 성호의 말대로 건조 과정을 거치자 얼굴은 보다 선명해져서 이제는 한쪽 뺨을 얻어맞아 멍든 채 죽어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는 유리판 양쪽 면에 코팅지를 꼼꼼하게 부착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산산이 부서지길 원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신중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얼마 전 엄마가 해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엄마는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던 엄마는 억울한 마음에 누가 코를 고나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규칙적으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초코는 아니었어. 내 옆에 있었거든. 엄마는 모든 방문과 화장실, 다용도실, 창문과 현관문까지 열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혼자였다. 다시 침착하게, 부드럽게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알아?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나야 모르지. 엄마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저 항아리에서. 엄마는 세탁기 옆에 놓인 작은 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뭐가 들어 있는데? 팥. 장난해? 항아리 뚜껑을 여니까, 팥이 코를 골고 있더라고. 엄마는 그것이 착각이었는지 꿈의 연장선이었는지 끝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말을 끝낸 뒤 입을 꾹 다문 엄마가 짓던 모호한 표정과 배음처럼 존재하던 정적이 머리를 스쳐갔다. 왜 그 이야기가 생각났을까. 그때 성호가 턱 부근에 정을 대고 가볍게 망치질을 했다. 쩍,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유리 전체에 금이 갔다. 나는 부서진 사진을 보았다. 그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깨어지자 비로소 사진 속 인물이 나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호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순간, 내가 조금 상처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골목은 평일 낮인데도 여전히 번화했다. 숲 나들이를 나왔다가 끼니를 때우러 온 가족들, 대낮부터 노상에서 술을 마시는 대학생들, 외국인 관광객들,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을 찍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골목은 북적였다. 어딘가에서는 늘 공사를 하고 있어, 벽을 허무는 소리, 천장 무너지는 소리가 이 골목의 규칙적인 리듬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먼 곳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숲에서 나는 듯 아득하게 웅웅대던 매미소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내 골목을 가득 메울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사내아이 하나가 손에 매미를 쥐고 골목을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크게 우는 매미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사이렌 같았다. 골목의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은 듯, 작은 곤충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굉음에 모두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나를 지나쳐 옆 골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겁에 질린 매미의 비명이 아이를 따라 먼 곳으로 사라졌다. 누군가 그리운 광경을 목격했다는 듯 동행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웃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매미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지, 처형식을 치른 유리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 TV를 틀어 둔 채 자신의 방에 있었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 눈이 약해진 개를 위해서 불을 잘 켜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개는 핑계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휴학하고 방에 틀어박혀 똑같은 만화영화를 수십 수백 번 돌려 보았을 때처럼, 세상과 단지 유리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말하여지지 않는 부분을 애써 이해하려 한 적이 없었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끝난 지금에서야,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이 머문다. 엄마는 침대 위에 강아지 전용 펜스를 사다 둘렀다. 개가 눈이 어두워 침대 밑으로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밑에는 이불과 베개를 깔아 두어 만일에 대비했다. 일 년 전 산책을 시키던 중 개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골반에 금이 간 이후로 엄마는 개의 운신에 과민하게 굴었다. 개가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엄마는 늙고 병든 개를 불쌍하게 여겼다가도 때로 성가셔했고 이내 체념했다. 엄마는 개와 한 몸처럼 달라붙은 채로, 펜스가 쳐진 자신만의 안락한 성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가느다랗게 들이치는 빛이 겨울용 털실에 달라붙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털실, 그보다 얇은 개털, 먼지 따위가 빛줄기를 구성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방문 밖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밥 먹어, 라고 말했다.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작은 인형 같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손가방이나 방석을 생산하는 유능한 방직기계 같기도 했다. 계절과 불화하는 방식으로, 엄마는 성실히 노동에 임했다. 겨울에는 여름용 실크로 나뭇잎 모양 티코스터나 책갈피를 떴고, 여름에는 10호짜리 울 실과 대바늘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샘플 사진을 찍어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거나 플리마켓에 내다파는 일에 익숙했다. TV 아나운서가 말하는 ‘사과, 당근, 케일’이라는 단어를 따라하는 엄마의 입술을 보며 나는 정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정물을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정의 내린다면, 그것은 엄마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성호를 만나고 돌아왔을 때, 붙여넣기를 한 듯 어제와 같은 엄마를 순간 낯설게 대면하게 된 것은, 내일도 일 년 뒤에도 그 모습이 여전하리라는 것에 마음 어딘가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한다.


이제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성호와 자주 만났다. 주로 내가 성호의 작업실로 갔다. 짐작대로 성호는 습판 사진을 찍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콜로디온 혼합액의 비율이나 도포 과정 역시 수정 중에 있었다. 빛에 대한 과민한 반응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는 정물로 연습하는 대신 얼굴을 찍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는 습판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통제되지 않는 우연한 결과물에 재미를 느꼈다. 나는 그제야 처음 K선배가 그를 단순히 사진작가라고 소개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그에게 얼굴을 빌려주었다. 뭉개지고 일그러지고 왼쪽 절반이 사라진 얼굴을, 각도를 재어 가며 정밀하게 부수는 그의 손을 무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 건물을 오르내리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초인종이 없어 번잡할 것이라며 4층 철문 열쇠를 복사해 주기도 했다. 1층 입구 우편함이 언제나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 우편함 밑에 떨어진 3층 마사지 숍의 전기세 고지서를 보고 흠칫 놀랐던 것 따위가 기억난다.
우리는 함께 산책을 했다. 그가 매일같이 다니는 카페에 가보기도 했다. 그사이 몇 가지 성호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K선배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진데. 내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자 그가 덧붙였다. 그는 미대도 사진학과도 아닌 화공과를 나왔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서로 왕래는 없었다. 그는 명절에도 자신의 공간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내가 습관적으로 과거를 떠올리거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그는 가족이나 유년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듯이, 마치 외따로 나고 자란 사람처럼 굴었다.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자립해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것이 고행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가 물처럼 마시는 히비스커스차가 시디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는, 자신이 처음 본 콜로디온 습판 사진은 구한말에 찍은 기생의 반라 사진이었는데 지금은 그 사진을 그토록 자세히 들여다본 게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신 것을 먹지 못해 대신 시킨 뽕잎차는 시래기 우린 맛이 났다. 엄마가 온종일 물에 불려 한 시간이 넘도록 삶고 헹구기를 반복해야 겨우 씻어낼 수 있었던 묵은 나물의 비린내가 차에서 고스란히 올라왔다. 나는 그가 여러모로 나이에 비해 애매한 구석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가 구현하는 작업물 모두에 해당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중세시대 스페인 화가에 대해서 말했다. 평생 성직자의 고뇌에 찬 얼굴만을 다루며 성직자들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줄곧 생활고에 시달리다 비참한 말년을 보낸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예술적 성취와 개인의 영달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나는 그보다는 그 화가가 세 번 결혼하는 동안 두 번은 각각 열다섯 살, 열두 살짜리 아동과 결혼하여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사실에 더욱 관심이 갔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내 생각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가 그에 대해 꽤나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며 어떤 것은, 예를 들어 예술을 위해 삶의 일부분이 희생되는 것의 필연성 따위의 주장에는 뒤통수가 간지러워지는 것을 참기 힘들었지만, 그 감정이 나도 한때 시를 썼다는 알량한 자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할애하는 재택근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호는 꽤나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그는 산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냈다. 감추는 것도 가리는 것도 없었지만, 재택근무에 대해서만은 달랐다. 나는 그가 근무를 할 때 그의 옥탑에 간 적이 없었다.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이를테면 먹고사는 일이, 그의 유일한 사생활이라는 듯이.
올봄 그의 기획안이 모처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그의 기약 없는 전시회는 구체적인 일정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첫 단독 전시회가 될 예정이었다. 그의 신실함이 드디어 응답을 받겠구나, 인생이란 이렇게 조금씩 풀려 가는 것이구나, 관조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서히 막을 내렸다.


엄마가 숲에 가자고 한 것은 무척 오래간만이었다. 개가 더는 산책을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엄마의 외출도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개는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이는 바람에 잘 죽지 않는 것 같다고, 엄마는 농담처럼 말했다. 개가 죽으면 엄마는 어떻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지만 성호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이후로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 짐작하는 습관은 관뒀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엄마의 납작한 뺨에 닿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성호와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옥탑에 갔을 때, 성호는 그곳에 없었다. 마트에서 사온 자두 한 봉지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갔다. 이 집의 의외의 구석은 화장실이 옥상이 아닌 침대 바로 옆에, 계단이 딸려 있어 벽장인 줄 알았던 곳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변기와 나란히 놓인 세면대 위에 샤워기가 달린 작고 소박한 욕실이었다. 집이 무궁무진하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성호에게 웃어 보였던 것 같다.
옥상을 나서면 오른쪽에 알루미늄 새시로 된 문이 보였다. 본래 창고였을 그곳에 암실이 있었다. 나는 수차례 망설인 끝에 암실 문을 열었다. 그를 꼭 찾아야 하는 절박한 목적은 없었다. 그에게 문자를 보내 두고 집으로 돌아와 연락을 기다려도 됐다. 아니면 내일 보아도, 혹은 모레 보아도, 일주일 후에 본다 한들 우리는 이상할 게 없는 사이였다.
그는 당연히 그곳에 없었다. 겸연쩍은 마음으로 암실을 나가려 할 때, 발끝에 무언가가 채었다. 주물 트레이였다. 물이 들어 있었는지 발등에 찬 기운이 닿았다. 내려다보자, 그 안에 물에 잠긴 습판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나는 트레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코가 뭉개져 병자처럼 보이는 성호의 얼굴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는 평소엔 가지 않던 곳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자꾸만 길이 아닌 곳으로 걸어가려 해서 애를 먹었다. 엄마, 거기 밟지 마. 왜? 길이 아니잖아. 다리 아파. 그러니까 그만 걷자. 나는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계속 걸으려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 벤치에 앉혔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올 줄 몰라 물도 챙기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엄마는 말과는 달리 전혀 지치지 않아 보였다. 여기에 묻을 데가 없을까? 나는 그제야 엄마가 왜 새벽같이 숲에 왔는지 깨달았다. 엄마, 그거 불법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죽은 개를 이동장에 넣고 엄마와 숲을 헤치며 몰래 묻을 곳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숲은 멀리서 바라보면 한없이 울창하고 비밀스러워 보이지만, 막상 다가가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잘 조림된 밝고 환한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숲을 아무리 샅샅이 뒤지고 다녀도, 완벽히 인적이 끊긴 음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숲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에 묻어 주고 싶어.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렸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아주 오래간만에 귀여워 보여 젖은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내가 성호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누가 찍어 줬을까? 였다. 내가 아는 한 습판 사진은 셀피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누가 또 그의 옥탑에서, 그와 마주 보고서, 그의 응시를 견뎠을까.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은 옷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엄마, 사슴 보러 갈래? 나는 전에 없이 다정하게 엄마를 대했다. 엄마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다시 성호를 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내 질문이 얼마나 졸렬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어떤 날은 화가 치밀었다. 내 얼굴이 찍힌 유리습판과 유리 조각들을 모두 챙길 심산으로 그 집에 갔을 때, 나는 그와 전혀 닮지 않은 여동생과 마주쳤다. 때때로 그가 없는 그의 전시회에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중국 민담에 등장하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미인과 하룻밤 사랑에 빠졌다가 돌아와 보니 한 달이나 지나 있었다는 여행자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왔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성호는 예술이란 미리 실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창작자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로 미리 태어나는 것. 내가 성호에게 듣던 말 중 가장 공허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얼굴을 보니 그가 한 말 중 드물게 정확한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김유진
작가소개 / 김유진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단편집 『늑대의 문장』, 『여름』, 『보이지 않는 정원』과 장편소설 『숨은 밤』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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