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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보아요

  • 작성일 2008-12-30
  • 조회수 2,639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보아요

 

 

조해진

 

 

 

옛날, 아주 옛날 유리로 된 높은 산꼭대기에 황금과 유리로 지은 성이 있었다네. 그 성에는 마법에 걸린 아름다운 공주가 갇혀 있었다네. 공주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금은보석을 성의 지하 창고에 쌓아 두고 있었다네. 많은 기사들이 공주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성으로 가려 했으나 그 누구도 비탈이 심한 유리로 된 산을 오르지 못했다네. 공주는 산 밑으로 굴러 떨어져 날카로운 유리에 박힌 채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기사들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네. 어느 지혜롭고 총명한 젊은이 한 명이 시라소니의 발톱을 자신의 손과 발에 붙이고는 유리 산을 찾아왔다네. 깊은 밤, 유리 성을 지키는 매 한 마리가 젊은이를 공격하였다네. 젊은이는 시라소니의 발톱을 매의 다리에 박아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네. 매가 성 근처까지 올라갔을 때 젊은이는 단검으로 매의 다리를 자르고는 성 안으로 떨어졌다네. 젊은이와 공주는 곧 사랑에 빠졌다네. 그러나 그들은 성 밖을 나갈 수 없었다네. 성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매가 이미 다리가 잘려나간 채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네. 많은 금은보석을 써 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쌓아 둔 채 젊은이는 늙어 죽을 때까지 공주와 함께 성 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네.

―폴란드 민담, 「유리 城」

 

1

나는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

이 문장을 머릿속에서 슥슥 쓰고 나자 잠시 잊고 있었던 두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폴란드는 다른 나라보다 기압이 낮아서 두통을 모르던 사람도 무기력한 통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 여행 책자엔 적혀 있었다. ‘무기력한 통증’에 밑줄을 그으며 그 애매한 표현을 여러 번 되뇌었던 어느 저녁을 생각해 본다. 꼭 그 구절을 읽은 탓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가 탄 인천 발 바르샤바 행 비행기가 폴란드 국경으로 들어왔다는 안내 자막을 기내 스크린에서 본 이후부터 가벼운 두통이 시작되긴 했다.

'폴란드에서는 제3의 도시라는 P시의 중앙역은 생각보다 조약하고 낯익다'라고 나는 다시 쓴다. 이 도시가 여행객들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해 놓은 듯한 뿌연 저녁 안개가 그나마 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곳에 혼자 와 있다는 것을 가까스로 증명해 주고 있다고도. 주위를 둘러본다.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다시 길을 떠나는 빈 철로만 황량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 바람을 피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대합실 하나 없다. 그에게로 시선을 돌려 본다. 나는 그를 보고 있고 그는 이번에도 나를 보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는 역내 기둥에 붙어 있는 허술한 거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잡아 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한눈을 판 사이 은근슬쩍 그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온 정신을 거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거울이 아니라 거울 저편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치명적인 실수, 뼈저린 후회, 반복적인 고통을 우리는 어머니의 몸속에서부터 겨드랑이 안쪽에 품고 태어난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현재의 삶을 균열시키는,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 어리석음일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이 꼭 한 번씩 그를 돌아보고 있다. 게다가 그는, 이 도시에서는 거의 만나 볼 수 없다는 흔치 않은 동양인이다.

―여기는 동양인이 거의 없어요. 어디를 가나 시선 좀 받을 겁니다.

마침 강 교수가 보내 온 이메일 중 한 구절이 눈앞으로 자막처럼 깔린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기차 창가에 앉아서 안경을 고쳐 쓰며 슬쩍 나를 내려다보는 백발의 노부인을 한 컷의 프레임에 가두고 그 자막을 밀어 넣어 본다. 괜찮은, 그러니까 긴 시간 후 이날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려 봐도 좋을 장면 하나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안전하게 저장된다.

그 사이, 남자에 대한 또 다른 문장 하나가 만들어져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그는 거울 밖의 세상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몇 번이나 훔쳐보던 누군가의 시선을 어쩌면 영원히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문장. 그에 관한 한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그 문장에 내 기분은 금세 시무룩해진다.

시계를 내려다본다. 강 교수는 아무래도 약속 시간을 잊은 것 같다. 크게 상심하진 않았으나 무언가 피하고 싶었던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느껴지는 건 속일 수 없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벤치 쪽을 다급하게 쳐다본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거울은 단순하게 마주 보이는 세계만을 비출 뿐, 세월을 가르며 뜻하지 못한 무수한 불운을 묵묵히 견뎌 왔을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마침 철로를 향해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보이지 않았다면 결국 나는 쓰지 않았을까. K는 ……다. 언제까지고 ‘K는’과 ‘……다’ 사이가 공백으로 남아 있을 그 문장을, 안으로 잔뜩 몸을 굽힌 채 한 글 한 글자에 힘을 주어서. 물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악수를 건네고 있는 내 눈앞의 그는 K가 아니라 강 교수이다.

 

 

2

 

뒤늦게 약속을 생각해 내고 부랴부랴 나를 데리러 온 강 교수는 내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내 슈트케이스를 대신 밀어 주었고 호텔까지 가는 택시비도 미리 계산을 해 버린다.

강 교수는 A대학 기숙사 1층에 마련된 학교 손님용 호텔 리셉션에서 내가 열쇠를 받고 사인을 하는 것도 도와준다. 리셉션 직원은 조식은 제공하지 않지만 주방이 있기 때문에 요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해 준다. 호텔이라지만 기숙사와 구조가 같아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강 교수가 보내 준 이메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강 교수는 학과장이 소개해 줬다.

그가 한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A대학은 내가 지난 학기부터 전임 강사로 채용된 서울의 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내년에 있을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 학술 프로그램에서 나는 한국 민담과 폴란드 민담을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여행 겸 자료 조사를 위해 이곳에 오겠다고 신청했을 때, 학과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해 준 것이다. 그날 이후 강 교수와 나는 몇 번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맥주 한 잔 하고 주무시겠어요? 사인을 하고 돌아서는데 강 교수가 물어 온다. 나는 두 개의 슈트케이스를 호텔 침대 옆에 세워 둔 채 다시 방을 나와 그와 함께 P시의 밤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금요일이라서 그래도 사람들이 많은 편이에요. 여기는 하루를 일찍 열고 일찍 닫는 곳이거든요. 평일 이 시간이라면 도로조차 고요하죠.

그 말과 함께, 그는 자주 가는 펍(pub)이라며 간판에 바이올린이 그려진 술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문을 연다. 문을 연다. 이 문장을 쓰는 건 아직 내겐 쉽지 않다.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그는 가 버렸다'라는 문장은 되도록 아주 먼 미래에나 쓰고 싶다는 마음의 사치 때문일 것이다. 문이 열리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마치 내내도록 나를 기다려 왔다는 듯 한꺼번에 밀려 나온다. 누군가의 방문을 오랜 세월 기다려 왔다고, 그래서 스탠바이의 시간 동안 참으로 지루했었다고 호소하는 듯 사람들은 온힘을 다해 웃고 마시고 노래하는 것 같다.

주문한 맥주 두 잔은 곧바로 나온다.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강 교수가 보통의 중년 남자들보다 말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그의 성향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모국어가 그리워서였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는 이 낯선 나라에 와서 했던 고생과 공부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 그리고 지금의 교수 자리에 오르는 동안 치러야 했던 눈물겨운 대가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다. 몇 해 전 유럽 연합(EU)에 가입하면서 살인적으로 오른 폴란드 물가와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변화의 조짐에 대해서도 말했고 폴란드 정부의 친미 정책이 화제에 올랐을 때는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집시예요.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맨발의 여자가 코를 흘리는 갓난아기를 안고 펍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모습을 내가 주의 깊게 쳐다보자 강 교수는 심드렁하게 일러 준다.

―집시요?

―뭐, 유럽의 거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유럽인들, 집시라면 사람 취급도 안 하죠. 계시다 보면 알겠지만 외모부터가 백인과는 다소 달라요.

―합리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치사하게 구네요.

―어떻게 보면 그거야말로 합리적인 거죠. 도와줄 수도 없고 돕고 싶지도 않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든 수수방관하는 거 말이에요.

―매정하게 들리는군요.

강 교수는 설핏 웃는 것도 같다. 잠시 후, 우리는 추억이라 불러도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각자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 견고하게 문을 닫는다. 폴란드 맥주는 쓰고 찼다. 여독과 두통이 맞물려 취기는 금세 오른다. '문을 닫았다'라고 쓴 후부터는 더더욱 빨리 취해 가는 것 같다. 문을 닫았다, 이후엔 모든 문장이 시간 앞에서 절규하는 무력한 외침에 지나지 않다는 걸 15년의 세월은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침착하게 알려 주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와 있는 동안 한국어학과 학생들 좀 많이 만나 주세요. 한국 사람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는 애들이에요. 게다가 석사생들 중엔 한국 민담이나 고전 소설로 논문을 쓰려는 학생들도 많아요. 자료 제공도 부탁드릴게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학과 차원에서 도서 기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문의해 볼게요.

―그 건이 성사된다면 김 선생님은 여기서 귀빈이 될 겁니다.

강 교수의 그 말에 그제야 우리는 긴장감을 풀고 느리게 웃는다. 빛이 많이 들어간, 슬로우 셔터로 찍은 사진 한 장이 그 순간 15년의 세월을 건너와 내 머릿속에서 또 한 번 인화된다. 15년 전의 나는 젊었고, 세상의 위계적인 전언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든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울 수 있을 만큼 오만했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침대에 무방비로 앉아 유독 자음 알파벳이 많이 들어간 이국의 언어 책을 건성으로 훑어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다. K가 보인다. K는 방문 너머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불쑥 들어와 카메라를 들이밀며 '웃어 봐'라고 말했다. K는 사진 찍는 기술도 없었으면서 당시엔 고가라 할 수 있었던 일본제 수동 카메라를 덜컥 사서는 무턱대고 셔터를 눌러대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있었다. '웃어 봐'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웃지 않는다. 웃지 않는 나를 뷰파인더 속에서 바라보며 K는,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우리의 이별이 바로 문밖까지 와 있었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찍은 사진은 내게 배달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머릿속으로만 수없이 그 사진을 인화하여 들여다봤다. 너무 뿌예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 사진은 들여다볼 때마다 내 마음을 이유 없이 불편하게 했다.

웃음 후엔 조금 길다 싶은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그가 나를 데리러 오기 전 목격했던, 중앙역 철로 벤치에 앉아 뚫어지게 거울을 들여다보던 동양인 남자에 대해 말하려다가 이내 그만둔다. 강 교수도 침묵의 시간이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를 껴입고 있다. 술값을 계산하고 펍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정교하게 모서리가 깎인 설치 예술품처럼 더없이 부드러웠다. 나는 이 도시가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한 두 번째 야심작인 겨울비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3

 

폴란드의 12월은 오후 3시부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자주 비가 내렸다. 창가에 가만히 서 있으면 마른 나뭇가지가 툭툭,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그건 약하고 부슬거리는 비가 세상의 모든 모서리를 어루만지는 소리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펴졌고 좀처럼 소리를 내는 일이 없는 과묵한 새들이 무리를 지어 하늘을 배회하기도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린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묵는 호텔방에도 전화기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전화는 강 교수에게서 왔다. 그는 저녁에 함께 식사할 것을 권했고 요리에 취미가 없던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에 A대학의 언어학과 건물에서 만난 우리는 근처에 있다는 일식당까지 묵묵히 걷는다. 밝은 금발인 그의 아내는 우리보다 5미터 정도 뒤에서 남자 아이 두 명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강 교수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그들이 거기 있는지 확인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옆모습에 깃드는 어떤 안도감을 읽는다. 한없는 연민과 뒤섞인 애틋함의 표정, 지금까지의 시간만큼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함께할 거라는 순간적인 맹세에 고요하게 위로 받는 자의 얼굴.

일식당은 구시가지 중심에 있었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말과 함께 강 교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까지 곁들인다.

―주방장이 젊었을 때 잠깐 한국에서 살았나 봐요.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메뉴엔 없지만 특별 주문하면 매운탕 같은 걸 제법 그럴싸하게 끓여 줍니다.

내 앞에는 그의 아내와 두 아이들이 앉는다. 각각 여섯 살,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지금 막 구워 낸 도자기 인형들처럼 작은 티끌 하나 없이 그저 맑기만 하다. 카샤, 입니다.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말하며 그의 아내가 수줍게 웃는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적의 같은 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녀처럼 입가를 올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다. 카샤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며 언제 웃음을 거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마침 주방 안쪽에서 작은 키의 동양인 남자가 반갑게 웃으며 걸어 나오고 있다. 주방장인 모양이었다.

강 교수와 일본인 주방장은 폴란드어, 일본어, 한국어를 뒤섞어서 몇 마디의 대화를 한다. 강 교수의 소개로 나 역시 주방장과 얼토당토않은 영어로 인사를 나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의 아이들이 금세 주방장에게 달려가 무언가를 속달거리며 매달린다. 그 순간, 나는 본다. 주방 안쪽에서 얼핏 지나가는 또 다른 동양인 남자. 중앙역 철로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주방 쪽의 남자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고 있는 사이, 강 교수의 폴란드인 아내가 문득 내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영어로 묻는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카샤에게 나 역시 김치를 담가 먹진 않는다고, 그러나 원한다면 인터넷에서 찾아 영어로 정리하여 줄 수는 있다고 말한다. 허공에서 강 교수와 내 시선이 잠시 얽힌다. 강 교수는 이내 내 시선을 피해 아이들의 목에 냅킨을 둘러 준다.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어머니와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 밑에서'라고 시작될 그의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음식을 서빙해 주는 사람은 그 남자다. 정확한 나이는 가늠되지 않지만 어쨌든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미치도록 진지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는 나이는 지나 보인다. 그가 묵묵히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가자 강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말한다.

―북에서 온 사람이래요.

―북이요?

―유럽 쪽에는 간혹 있다고들 해요.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죠.

―그럼, 난민인가요?

―글쎄요. 아마 아닐 거예요. 지난번에도 여기 한국 대사관에 뭔가 좀 써 달라는 부탁을 하더라고요. 난민 자격이 있다면 한국 대사관에 보낼 게 뭐가 있겠어요.

―안 도와주셨나 봐요.

―어차피 도울 수 없다고 믿는 게 편해요. 괜한 기대를 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유럽의 집시를 말할 때처럼 강 교수의 말투는 틈 하나 없이 완고하다. 나는 그가 어떤 세월을 거치면서 그런 말투를 배우게 됐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음식을 먹고 거리로 나서자 사방에서 강풍이 몰아친다. 강 교수는 아내와 아이들을 우선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아직 P시의 지리에 밝지 못한 나를 위해 호텔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런데 왜 하필 이때 오셨어요?

한참을 걷다가 강 교수가 묻는다. '지금이 왜요?'라고 되묻지 못한 건 여행 책자 곳곳에 밑줄을 그으면서도 자주 다른 생각에 빠지곤 했던 서울에서의 여러 밤들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긴장감을 잠재울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잖아요. 그때 보시면 알겠지만 거리가 정말 텅 비어요. 문을 여는 상점이나 식당도 없죠. 미리 장 좀 보셔야 할 겁니다.

―강 교수님네도 어디 휴가 가세요?

―아내 친정이 크라쿠프라고 남쪽 도시예요. 거기에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 그런데 왜 민담으로 논문을 쓰려고 하세요? 전공이 현대 문학 쪽인 걸로 알고 있는데…….

―<유리 성>이라는 민담 아시죠?

―당연히 알죠.

―한국에 있을 때 그 민담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강 교수와 나는 이미 호텔 앞에 도착해 있다. 그가 좀 더 참을성 있게 추위를 견뎌 주었다면 나는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민담이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고, 매를 죽인 후 안온하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바로 발밑에 있다는 게 심장을 녹일 듯이 나를 고통스럽게 해 왔다고도. 바로 어제 저녁까지 수없이 써 온 그 문장을 나는 그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차근차근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렇게, 몇 초 정도 그를 마주 보며 서 있을 뿐이다.

―피곤하실 텐데 푹 쉬세요.

젊고 오만했을 때 만났던 K는 웃으며 헤어지는 데 인색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뭔가에 심통이 난 듯한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적당한 거리감이 편리하긴 하지만 상대의 격정에 찬 문장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때론 견디기 힘든 슬픔으로 남기도 한다는 걸, 짐작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단 한마디의 말만 남긴 채 마지막 전차를 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가는 강 교수를 나는 호텔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4

 

크리스마스 주가 시작됐다. 강 교수의 말대로 거리는 텅 빈다. P시는 그야말로 대폭발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재앙의 도시 같았다. 새들도 짐을 싸들고 어딘가에 마련해 놓은 안식처로 돌아갔는지 가끔씩 무리 지어 하늘을 떠돌던 까마귀 떼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식료품은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었지만 물이 부족했다. 생수 살 곳을 묻자 정 못 참겠으면 수돗물을 끓여서 식혀 마시라고, 미처 휴가를 떠나지 못한 리셉션의 직원이 친절하게 말해 준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고, 수돗물에 딸려 나오는 뿌연 석회도 익숙해지면 마실 만하다는 부연 설명까지 해준다.

리셉션 직원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오후에 호텔을 나와 문을 연 상점을 찾기 위해 무작정 걷는다. 교차로 진입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얽히곤 하던 전차들도, 줄지어 가판대 앞을 서성이던 행인들도 말끔히 치워져 있다. 언제나처럼 이 도시에서 어둠은 습기와 함께 찾아온다. 근처에 있는 바르타(Warta) 강과 말탄스키에(Malta?skie) 호수에서 밀려온 습기는 순박한 거인의 무해한 입김 같은 성긴 안개가 되어 뿌옇게 시야를 가려놓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방향 감각마저 상실된다. 그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니? 오랜만에 의문형으로 끝나는 문장을 써 본다. 대답을 찾을 틈도 없이 문장은 지워지고 나는 어느새 그 일식당 앞에까지 와 있는 스스로를 지켜보며 인상을 쓴다. 돌아갈까도 했지만 결국 저벅저벅 닫힌 문 앞으로 걸어가 몇 번인가 거칠게 문을 두드려 본다. 마침내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다시 쓰고 있다. '흔치 않은 동양인, 거울을 보던 남자 혹은 북에서 온 사람은 거기 서 있었다'라고.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그는 흠칫 놀란다. '큰 눈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그는 이내 이 도시의 유일한 일식당에 손님으로 온 적이 있는 그녀를 기억해 냈다'라고 쓰고 싶어 나는 조바심이 난다.

―오늘은 영업 없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걸 보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좀 더 용기를 내 본다.

―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마시는 물 말이오?

―수돗물은 정말 비위에 안 맞아서요. 생수를 구하고 있었어요.

―하…….

하, 그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발성으로 낮게 탄성한다.

―잠시 기다리시오.

다행히 그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매몰차게 '왜?'라고 묻지도 않았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삼사 분 후에 1.5리터짜리 생수 네 병을 쇼핑 가방에 담아서 가지고 나온다.

―저기, 저녁이나 같이 먹지 않을래요? 물도 얻었으니까 제가 초대를 좀 하고 싶은데요.

하, 그는 또 한 번 특유의 발성으로 그렇게 소리를 낸다. 그가 극구 사양하면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라고 말해 줄 참이었다. 그러나 일 없소, 한마디의 말로 강직하게 사양의 의사를 밝히며 돌아서는 그에게 내가 한 말은 방금 전의 다짐과는 조금 다르다.

―제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순식간이었지만, 나는 그의 등이 딱딱하게 굳어 가는 걸 똑똑히 본다. 그는 돌로 변하기 직전의 불우한 악사처럼 깊은 의심과 수없이 많은 망설임이 느껴지는 동작으로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서기 시작한다.

―폴란드어를, 잘하시오?

―아마.

―할 수 있소, 할 수 없소? 정확하게 말해 주시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할 수 있어요.

―그럼 됐소. 집이 어디요?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어요.

―그럼, 가 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일식당을 나와 문을 잠근 후 내 손에 들려 있던 쇼핑 가방을 낚아채듯 가져가서는 서둘러 골목 쪽으로 꺾어진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묵묵히 그를 따라간다. '진정 무책임하다'라는 문장은 불우한 악사를 돌아서게 만든 거짓된 언어 뒤에 숨어 호텔까지 걷는 내내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호텔에 도착한 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그가 소파에 앉아 초조한 듯 두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냉동실에 넣어 둔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꺼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여 팬에 굽는다. 맥주 두 캔을 따서 유리컵에 따랐고 피망과 송이버섯을 썰어서 고기를 구워 낸 팬에 다시 볶기도 한다.

소파 테이블에 음식과 맥주를 올려놓자 그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애초부터 음식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일단 폴란드 내무부와 접촉해 주시오. 난민은 사실 정치적인 용어일 뿐이지 우리 같은 사람은 여기서 그저 불법 이주 노동자로 취급됩니다. 내무부의 난민체류국에 혹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더 좋겠는데…….

―난민 신청을 부탁하는 건가요?

―난민 신청은 이미 했소. 바르샤바에서 만난 남쪽 선교사가 그건 해주고 떠났어요. 지금은 기다리는 기간이요. 그런데 아무래도 소식이 늦어지는 걸 보니 영 힘든가 봅니다. 체류 허가가 나올 수 있도록, 힘 좀 써 줄 수 있겠소?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 더. 중국에서 사람 한 명을 데려와야 합니다. 아니, 꼭 데려와야 해요.

―일단 얘기를 해주세요.

―뭘 말입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그늘진다. 그늘진 얼굴로 그는, 몸을 뒤로 무르며 팔짱을 끼운 채 눈을 감는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의 그 잊을 수 없는 진지한 표정이 어둔 얼굴 위로 오롯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나는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서 입 안에 넣으며 더디게 가는 시간을 야속하게 건너다본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이 모든 것을 한 컷의 프레임에 가두고는 가끔 생각날 때만 한 번씩 느긋하게 펼쳐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그러나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고,

―그쪽이 내게 최대한 많은 연민을 느끼게 하려면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소.

그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먹는 음식은 늘 맛이 없다. 냅킨으로 대충 입가를 닦으며 나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포크 하나를 그에게 내민다.

―먼저 좀 드세요.

―생각 없소. 확답이나 해주시오.

―고백할게요.

―…….

―사실 난, 폴란드어를 전혀 못 해요. 도와드릴 수 없어요.

―……?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는 그의 눈은 뜨겁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방 안 어딘가에 던져 놓은 머리핀을 찾기 위해 초조하게 서성인다. 그가 천천히 일어나 내 한쪽 팔을 잡는다. 이전까지의 다소 고압적인 말투 대신 간절한, 아니 간절한 말투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자신도 괴롭다는 듯 그의 목소리는 변해 있다.

―폴란드어는 못 해도 괜찮아. 영어, 영어는 좀 하겠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소? 공화국 사람은 여기 유럽에서는 난민 자격이 있어요. 서류만 잘 작성하면, 보증인까지 거들어 준다면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오.

―도와줄 수 없어요. 나는 곧, 여길 떠나요.

내 팔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헛된 줄 알면서도 작고 미약한 한마디의 말에 걸고 말았던 한 줌의 희망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을 그도, 나도 우울하게 지켜본다. 그는 천천히 소파 쪽으로 쓰러지듯 앉는다. 뒷걸음치던 내가 바닥에 내려놓은 리모컨을 밟고 지나간 모양인지 마침 그의 등 뒤에선 텔레비전이 자동으로 켜진다. 화면 속에선 아이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입을 크게 벌려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언어는 달랐으나 나 역시 숱하게 들어온 멜로디는 터무니없이 경쾌하여 오히려 불편하게 귓가에 감긴다. 소파에 구겨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그와 그의 절망을 말없이 읽는 내가 산타클로스가 찾아오기 전날 밤의 즐거운 기다림을 그렇게 묵묵히 들어 준다. 누군가 큐 사인만 내려 준다면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로 사죄할 수도 있었다. 논문을 쓴다는 핑계로 여기까지 왔지만 실은 노트북 한 번 켜 보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함께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게 가슴을 치며 잘못된 선택을 마음껏 후회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지 않는다.

그 사이 텔레비전 속 크리스마스 캐럴의 곡명이 바뀐다. 볼이 붉고 눈이 또랑또랑한 아이들은 이번에도 음정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코가 붉은 사슴과 함께 썰매를 끄는 산타클로스를 목청 높여 노래한다. 나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가 문을 연다. '문을 연다'라고 쓰는 건 이번에도 나를 더없이 비참하게 했지만 달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그가 뚜벅뚜벅 걸어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어 나는 더 깊이 고개를 숙인다. 강 교수가 곁에 있었다면, '그러니 우리 같은 부류들은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언제까지고 거울 밖을 서성이는 배경 같은 존재로만 남아야 하는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그랬다. 우리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조차 뜨겁게 젖은 손을 내밀지 않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보았지만 내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을 때 호텔방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5

다음날, 나는 곧바로 슈트케이스에 짐을 싼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리 끊어 놓은 3개월짜리 인천―바르샤바 간 오픈티켓을 이용하려면 연말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항공사 직원의 말을 듣고 호텔 방문을 다시 닫는다. 이제 내게 할 수 있는 건 나의 치명적인 실수를 인정하며 남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루하게 보내는 것 외엔 없다. K를 보낸 후에도 '그랬어'라는 문장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나는 남은 식료품으로 음식을 해먹고 북쪽 사람이 준 생수로 커피를 타서 마신다.

강 교수는 크리스마스가 끝난 다음 주 월요일, 내게 전화를 한다. 우리는 바로 어제도 머리를 맞대고 하루 8시간씩 같이 일해 온 사무직 동료처럼 건조하게 인사를 나눈다. 나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고 그는 휴가 동안 불편한 건 없었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먼저 모든 게 괜찮았다고 말하자 강 교수 역시 아내와 아이들 모두 외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노라고 대답한다.

저녁에 우리는 호텔 근처에서 만나 인테리어가 목가적인 작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바닥을 보일 즈음 나는 가방에서 프린트한 종이 몇 장을 꺼낸다. 김치 담그는 법을 영어로 번역할 글이었다. 그는 흐뭇해하며 프린트를 훑어본다. 나는 그런 강 교수를 바라보며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비행기 표를 구했으나 구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여기에 나오기 직전 항공사에서 표 한 장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이틀 후에는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숨도 쉬지 않고 연이어 말한다. 내 얘기를 묵묵히 듣기만 하던 그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에 수긍을 한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긍정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 배웅이 될 것 같다며 이번에도 호텔까지 가는 길을 동행해 준다. '마지막'이라고 문장을 시작해 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시작될 그 문장은 “K는 ……다”처럼 아마도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거라는 또 다른 문장만이 텅 빈 머릿속을 천천히 맴돌 뿐이다.

호텔 정문 앞에는 그 남자가 서 있다. 그는 허름한 파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시선이 엇갈리자 자세를 바로 한다. 나는 급하게 강 교수 쪽을 바라본다. 강 교수는 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긴 했지만 그에게 다가가는 나를 쫓아오진 않는다. 내가 바로 앞에까지 걸어갔을 때 그는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혀 있는 종이 한 장과 두께감이 느껴지는 봉투를 꺼내 함께 건넨다.

―주소요.

―주소요?

―내가 먼저 강을 건너 유럽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수소문했소.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아…….

아, 내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황해 하며 무력하게 서 있는 동안 그는 곧 준비해 놓은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인의 연민을 최대한 많이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한, 거울 속 저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늠이 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어쨌든 그 앤 지금 그 주소에 있어요. 불법인 그 애가 편지에 적힌 대로 좋은 사람들 만나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시원하게 알고 싶소.

―중국 옌지군요.

―알겠지만, 나는 여길 떠날 수 없어요. 여행 허가를 받는 것도 까다롭고 한 번 나가면 여기 정부가 다시 받아 줄지 장담을 못 하오.

―저를 믿는다는, 그 말인가요?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럼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죠?

―이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소.

나는 말없이 그를 건너다본다. 때때로 침묵은 편리한 언어가 되어 나를 지켜 주기도 했다. 침묵의 간편한 보호막 안에서 나는, 주소가 적힌 종이는 가방에 넣고 돈이 들어 있음직한 봉투는 다시 그에게 건넨다. 봉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짧게 눈을 맞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잠시 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 전차역 쪽으로 가는 그를 지켜보는데 어느새 다가온 강 교수가 ‘김 선생님’이라고 나를 부른다. 바로 내 곁에 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강 교수의 음성에선 도저히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

―저 사람을 정말 도와줄 생각입니까?

―그럼 안 되나요?

―좀 변했군요.

―누구나 그렇잖아요.

―하긴, 김 선생님이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긴 하죠.

이번엔 내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한다. 목이 아프도록 여러 번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그는 그동안에도 적당한 작별의 인사를 찾아내지 못한다. 나는 그의 이어질 대사를 이렇게 써 본다.

―그런데 김 선생님, 저 사람이 감당해야 할 기다림의 시간까지 책임지고 돕겠다고 한 겁니까?

예전처럼 냉정한 목소리까지 덧씌운다면 어떨까. 마치 거짓된 말을 하여 북에서 온 사람을 돌아서게 했던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밤의 내 몰염치한 행동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억하고 있다. 15년 전, 웃지 않는 나를 뷰파인더 속에서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가 했던 질문과 그 질문에 고개를 젓고 말았던 젊고 오만했던 나를. 그의 목소리가 그토록 냉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섣불리 너를 따라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화가 난 듯한 그를 남겨 두고 나는 가방을 챙겨 그의 방을 나와 아주 멀리, 긴 시간을 도망쳐 왔다. 이곳까지, K, 바로 너의 눈앞까지.

―어쨌든 사적인 만남은 더 이상 없겠군요. 편히 가세요.

아직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는데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쉽게 돌아선다. 이제 그는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수히 많은 문을 통과하여 그의 안온하고 풍요로운 안식처로 돌아갈 것이다. 금발의 아내와 도자기 인형처럼 맑은 아이들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의 과오를 사해 주는 그곳으로. 그도 가끔 이렇게 쓰곤 했을까. 서로를 죽이고 각자의 유리 성에 겨우 도달한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성을 나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에겐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일 거라는 그 문장을. 때로 그는, 그녀의 피 흘리는 고통이 보잘것없고 사소하다는 것에서 위안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호텔로 들어와 열쇠를 방문에 꽂은 채 나는 다시 쓴다.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그녀는 가 버렸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은 진정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6

P시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를 탑승하기 위해 철로로 내려오는데 가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이 도시가 나를 떠나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기차 안으로 들어가 슈트케이스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어둡다. 벌써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는지 성급한 어둠은 눈발로 젖은 대기 속으로 그새 느슨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창문이 밀폐된 기차 안 컴파트먼트(compartment)의 공기가 탁하고 무거워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온다. 복도 창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힘을 줘 보지만 오래전에 닫고 한 번도 열지 않았는지 창문은 끼익,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밖을 향해 가슴을 열어 보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창문이 겨우 한 뼘 정도 열렸을 때, 밖에서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을 바람과 눈발이 그 작은 틈새로 아우성을 치며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팔을 내밀어 눈의 감촉을 느껴 본다. 이번엔 ‘그가 남고 그녀가 떠나왔다’라고 쓰고 싶지만 어차피 그 문장은 나를 기만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터이다. 창문에 기대선 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낸다. 中? 延吉省 延? 朝鮮族自治州 延?路……. 안 돼……. 주소를 다 읽어내려 가지도 못했는데 그만, 종이를 놓친다. 안 돼, 속으로 또 한 번 외치며 손을 뻗어 보지만 종이는 이미 휘몰아치는 눈발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무춤하게 선 채,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한 사람처럼 쉽게 체념한다’라는 문장만은 쓰지 않기 위해 나는 안으로 인내한다. K가 곁에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여전히 너는 참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그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나는 또 한 번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창문엔 내가 있고 그 뒤편으로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어떤 풍경 하나가 인화된다. 그 풍경은 물론, ‘내가 먼저 강을 건너 유럽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수소문했소’라는 희미한 문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두만강 강변에서 가죽이 모두 해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초조하게 서성이다가 해질녘에야 정해진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하루만, 하루만 더, 사정을 하는 그의 눈가는 자주 젖었을 것이다. 일단 혼자서라도 유럽으로 가서 자리를 잡은 후 가족을 데려오는 건 어떻겠냐는 브로커의 말이 그 순간 어떻게 단 하나의 명확한 해답이 되어 자신을 움직이게 했는지 그는 지금도 모른다 했다. 떠나는 날엔 가는 비가 내리지 않았을까. 그와 일행은 브로커가 건넨 위조된 한국 여권을 가슴 깊이 넣어 둔 채 되도록 입술은 닫고 눈으로만 이야기하며 베를린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공항에 내려 게이트를 나오자 브로커는 일행 각자에게 겨우 한두 끼 정도만 해결할 수 있는 유로를 건네고 사라진다. 간단한 인사의 표현조차 외우지 못한 일행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영국으로, 프랑스로, 그리고 벨기에나 노르웨이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그는 혼자 남는다. 그제야 그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깨달음에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밤새도록 베를린 시내를 방황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폴란드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풍족했던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폴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는 게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노라고 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유년의 기억과 겹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하게 안으로 문을 닫아 건 듯한 사람들의 두터운 거리감이 자주 그를 주눅 들게 한다. 무작정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대사관은 그가 북한에서 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도울 수 없다는 답변을 돌려준다. 대사관을 나온 그는 어느 안개 낀 골목에 서서 한참을 운다. 어렵게 연결이 된 중국 쪽 소식통은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강을 건너는 데 실패하고 열여덟 살의 딸만이 구사일생으로 중국으로 넘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는 밤마다 한국인 선교사가 마련해 준 임시 거처에 누워 딸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가 완성될 때면 그의 입술은 너무 꽉 깨문 탓에 잔뜩 짓물러져 있곤 했을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은 부분, 담 높은 폴란드 정부에 난민 신청을 하게 된 과정이나 P시로 흘러 들어와 일식당에서 일하게 된 여로는 상상할 수 없다. 어느 날 밤, 그는 우연히 발견한 어느 동양인 남자를 무작정 따라가지 않았을까. 일식당에 도착한 그 동양인 남자에게 눈으로, 몸으로 사정하며 일자리와 잠잘 수 있는 곳을 얻기까지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도록 주문하는 거울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본 것일까.

마침 또 다른 컴파트먼트의 문이 열리면서 여자 아이와 중년의 여자가 걸어 나온다. 여자 아이의 목에는 장난감 아코디언이 매달려 있다. 철 늦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낯선 동양인이 신기한지 곁에서 엄마가 팔을 잡아끄는데도 꿈쩍도 않고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멜로디를 따라 흥얼흥얼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 준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고 엄마를 따라 화장실 쪽으로 걸어간다.

다시 돌아서서 창문을 본다. 그는, 없다. 대신 늘 봐 왔던 익숙한 그녀 혼자서만 지친 듯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웃는지 우는지, 아니면 그저 덤덤하게 창밖을 보고 있는 건지 도저히 그 표정까지는 읽어 낼 수가 없다. 터널이 시작된다. 터널이 끝날 때까지만 노래를 부르겠다고, 터널이 끝나면 또 다시 창문 밖을 서성이게 될 그녀를 위해 문장 하나를 써 주겠다고, 나는 다만 그렇게 다짐할 뿐이다.《문장 웹진/2009년 1월호》

 

 

 

* Warszawa. 폴란드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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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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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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