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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는 마른다

  • 작성일 2013-12-02
  • 조회수 1,609

가지는 마른다

이제니


너는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 있다
어째서 어째서냐고 나는 묻지 않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했다
부모는 오래전에 떠났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라는 체념이 너를 키웠다
주저함이 없지 않았지만 다짐하듯 너는 떠났다


그 언덕을 그 바다를 떠난 이후로도
세상은 온통 언덕과 바다였다


너는 너에게 탄생축하 카드를 보냈다
죽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라고


다시 태어난 너는 점점 말라 갔다


슬픔은 액체 같은 것
울고 나면 목이 마른다는 것


성탄일에는 크고 세모난 나무를 샀다
나뭇가지마다 은구슬 금구슬을 매달았다


은구슬 위에는 은 얼굴이
금구슬 위에는 금 얼굴이


밤의 나뭇가지에는 밤의 새들이 앉아 있었다
나뭇가지는 죽으면 천천히 말라 간다고 했다


기억이 너를 이끌지 않아도
너는 점점 더 흙과 가까워졌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이후로도 내내
물관을 가진 가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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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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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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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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