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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書서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379

   침묵의 書서


백은선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봐왔던 것. 나의 출처. 어둠에 몸을 담그고 비좁게 나는 떨고 있었죠. 검은 엄마가 검은 쌀을 검은 손으로 씻어 검은 밥을 지어 주었어요. 밤 냄새가 났고 피맛이 났어요. 내 살을 씹는 맛.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은 상상할 수도 없어, 온통 어둠뿐인 불속에서 나 흐르는 꿈을 꾸었죠. 세계의 모든 검정이 흐느끼며 반짝이는. 거울 심장 가위 모자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면 노래가 시작되고 나는 웃고 또 웃느라 시간이 멈춘 줄도 몰랐죠.


   엄마와 옷장 속에 누워 잠들 때마다 심장을 움켜쥐던 검정의 귓속말을 어떻게 내가 잊겠어. 깨어나 그림자를 꺼내 입을 때, 앞도 뒤도 없는 양면 종이 같은 이 납작한 어둠. 매일이 같아서 새로워지는 세계에 대해 어떻게 증언할 수 있겠어.


   비스듬히 쌓인 돌탑의 끈질긴 균형을 누가 다 알 수 있나요. 엄마, 엄마 하면 생겨나는 흙냄새 밤이 타는 하늘의 냄새 속에 있었던 사람만 아는 질서. 비밀의 무게에 복무한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지. 두 손이 빨갛게 부풀어 펑 터질 것 같은 단단한 침묵. 


   결국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첫 문장인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서 발목까지 환해지는 간지러움. 언젠가 돌아갈 거라고 믿어서 삶이 전부 기다림이었다고 하면 믿을래요? 말도 안 되는 절망을 내내 노려보고 있었다고. 그걸 다 보느라 평생이 지나갔다고.


   지금도 거느리고 다녀요. 등 뒤에 매달린 그림자. 시간의 입구이자 영원의 출구. 가리키면 투명하게 사라지는. 난 그걸 뭐라고 부를까 골몰하다가 문득 검은 손을 빨며 놀던 밤이 생각나면 사무치게 그리운 게 있어요. 나조차 믿을 수 없는 마음, 그 지옥이 사람을 내내 세워 놓을 수 있다는 게 믿겨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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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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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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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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