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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의 토요일

  • 작성일 2010-07-16
  • 조회수 2,009

 

가가의 토요일

조명숙

 
 

*

이것은 부산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수영역 2번 출구 앞 부산은행 모퉁이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파는 한 남자의 토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158센티미터의 키에 60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사십대 후반의 이 남자는 코가 낮고 손이 두툼했다. 겸손한 입매를 가졌으나 작은 키를 의식해선지 턱을 바짝 치켜든 자세여서 고집스러운 데가 있었다. 다리는 짧고 팔은 길어서 전체적으로 덜 진화된 듯한 몸피를 가진 그를 사람들은 가가(呵呵)라 불렀다. 날씨가 어떻다든가, 시절이 어떻다든가, 기분이 어떻다든가 하고 대화를 시도했을 때 그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가가’뿐이었기 때문이다.
가가의 ‘가가’는 낮거나 높고, 음울하거나 경쾌하며, 짧거나 길었다. 가가의 ‘가가’는 부정적인 중얼거림이거나 긍정적인 대답, 동조의 한숨이거나 감탄이었다. 듣기에 따라서 ‘가가’는 ‘네, 그렇군요’, ‘저런 쯧쯧!’, ‘어쩌나요, 안타깝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가가의 가게는 조그만 바퀴 네 개가 달린 수레였다. 가로 세로 1미터쯤 되는 수레 한가운데는 반질반질하고 네모난 주물 프라이팬이 장착되어 있었다. 수레 아래쪽에는 소형 LPG통이 있었다. 슬라이스 식빵, 달걀, 우유, 마가린 같은 토스트의 재료는 오른쪽 선반에, 달걀과 우유를 섞는 플라스틱 용기, 뒤집개와 거품기, 종이냅킨 외에 분말 주스, 탈지유, 율무차, 꿀차, 커피믹스, 종이컵, 빨대 같은 비품들은 왼쪽 선반에 비치되어 있었다. 비품들의 배치에 따라 가가는 손을 뻗거나 내리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펴고, 몸을 앞으로 내밀거나 옆으로 돌리면서 효율적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냈다.
가가의 프렌치토스트는 달걀과 우유를 섞어 만든 반죽에 슬라이스 식빵을 적셨다가 팬에 지지는 것으로 완성되었으며, 고객의 주문에 따라 설탕이나 케첩이 추가되었다. 주 재료인 슬라이스 식빵은 헬기로 살포된 농약을 흠뻑 뒤집어쓴 수입 밀가루에 몇 가지 첨가물을 더해서 자동반죽기와 오븐을 거쳐 대량으로 생산 유통되는 제품이었다. 그러니 알갱이가 밤톨만 한 옥수수로 짠 기름으로 만든 마가린, 대규모 양계장에서 비위생적으로 생산되었을 확률이 높은 무정란과 항생제가 듬뿍 가미된 배합사료를 먹은 젖소가 공급하는 우유를 쓴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길.
재료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가가의 프렌치토스트는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가슬가슬하고,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달콤한 데다 최소한의 이익창출을 감안한 가격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가가의 수레를 찾는 고객은 아침을 제대로 챙겨먹을 겨를도 없이 헐레벌떡 수영역으로 달려와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당장의 허기를 신속하게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가가의 수레가게를 찾는 고객들 중 몇몇은 가가의 프렌치토스트에 중독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 해도 비웃지 마시길. 실제로 가가의 프렌치토스트로 아침을 먹다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간 어떤 사람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적어 보냈다. 또 어떤 사람은 가가의 토스트를 먹으려고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오는 호들갑을 떨고는, 작은 수레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극성도 부렸다. 그래서 길모퉁이 수레가게는 항상 북적거렸으며, 가가에게는 프렌치토스트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려는 가가의 신중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의 결실이라고나 할까.
또한 가가는 이른 4시부터 8시까지 딱 네 시간 동안만 장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철저한 가가의 영업 원칙을 어줍잖게 여기지 마시길. 정각 8시에서 단 5분만 지나도 가가는 냉정하고도 단호한 ‘가가’로써 주문을 거절했다. 토스트뿐만 아니라 분말 주스, 율무차, 탈지유, 꿀차 같은 품목도 마찬가지였다.
융통성 없는 이 원칙 때문에 어떤 고객은 울화를 터뜨리며 발길을 딱 끊어 버렸다. 또 고작 3분이 늦었을 뿐인데도 조금의 이해심도 발휘할 줄 모르는 우직한 가가에게 화가 치민 나머지 수레를 박살내 버린 고객도 있었다.
가가는 영업시간만큼이나 공공질서도 잘 지켰다. 그 무렵 부산은행을 비롯해 건너편의 약국과 꽃집과 병원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으며, 신발이나 바퀴벌레약을 파는 난전과 푸성귀를 파는 난전도 열리지 않아서 얼마든지 넉넉히 공간을 점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가는 딱 수레 하나를 세울 만큼의 공간만 조심스럽게 이용했다. 그리고 영업을 마치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처럼 경건하고도 엄숙하게 주변의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움으로써, 공공의 재산을 네 시간 동안 사용하는 데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

2005년 11월 18일 이른 3시. 문제의 토요일 새벽에 가가는 언제나처럼 잠이 깼다. 졸음이 가시지 않는지 희미하고 늘어진 ‘가가’와 함께 전등불을 켰다. 그리고 방에 놓인 몇 가지 사물들처럼 조용히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마당을 밝혔다. 좁은 마루를 지나 부엌으로 간 가가는 10리터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기울여 커다란 양은주전자에 붓고 그것을 연탄불에 올렸다. 불구멍을 활짝 연 가가는 빈 물통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대문에서 여섯 걸음 왼쪽으로 걸은 뒤 오른쪽으로 꺾어 쉰 걸음 되는 지점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둠이 알싸한 새벽 공기와 어깨를 겯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가가는 용맹하게 전진해서 초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비상급수대에 도착했다.
물통을 채운 가가는 조심스럽게 이쪽 저쪽을 살피면서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연탄 아궁이에 올려 둔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가가는 수레를 덮은 천막천을 걷고, 커다란 보온물통에 끓는 물을 붓고 뚜껑을 잘 닫았다.
냉장고에서 슬라이스 식빵을 꺼내고, 충전식 배터리를 챙긴 가가가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선 시각은 3시 20분. 그로부터 20분 뒤 부산지하철 수영역 2번 출구 앞 부산은행 모퉁이에 도착했다. 수레 지붕에 비끄러맸던 비닐휘장을 끌어내리고 프라이팬을 데우는 등의 장사 준비를 하는 데 20분, 이른 4시가 되자 가가의 첫 번째 토스트가 탄생했다.
가가의 첫 번째 토스트를 먹는 사람은 노래연습장의 미즈 장, 호프집의 성 마담, 안마시술소에서 청소 일을 하는 안 여사, 수산물공판장에 다니는 강 씨, 인력시장에 일을 구하러 가는 미장공 도 씨, 야간 근무 때면 으레 들르는 경찰관 허 씨, 성도 이름도 모르는 학원강사, 각종 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10년을 보내고도 여전히 시험을 치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고시생 등이었는데, 그날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안 여사였다.
반가움의 표시로 보내는 가가의 ‘가가’에도 불구하고 안 여사는 쌀쌀맞은 태도로 토스트를 주문했다. 말이 많은 편에 속하는 안 여사는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기 전에 수레가게에서 호떡을 팔았는데, 소심해 보이는 작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허리만큼이나 튼튼한 신경줄을 가졌는지 웬만해선 인상 찌푸리는 일이 없었던 것이고 보면, 가가는 걱정이 됐다.
그래서 시르죽은 안 여사에게 우려 섞인 ‘가가’를 정중하게 보냈다. 그러나 안 여사는 첫 번째 손님에게 주어지는 공짜 율무차까지 사양하고, 총총 가 버렸다. 가가는 대략난감했으나 전날 첫 번째 손님이었다가 그날 두 번째 손님이 된 경찰관 허 씨가 나타나는 바람에 안 여사에 대한 걱정은 일단 접었다.
허 씨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지구대로 복귀하던 중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가가를 찾은 참이었다. 불퉁스런 어조로 토스트와 꿀차를 주문한 뒤 허 씨는, 그렇잖아도 인원 부족으로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판에 또 비상이라고 투덜거렸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경찰이라고 허 씨는 탄식을 덧붙였다. 경찰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가가였으나, 허 씨의 탄식에 동조한다는 의미의 낮은 가가를 보내고 부지런히 토스트를 만들었다.
허겁지겁 토스트와 꿀차를 먹어치운 허 씨가 돌아간 뒤에도 속속 손님이 들었다. 대체로 낯익은 사람들이었으나 낯선 사람도 있었다. 가가는 토스트로 시작될 그들의 하루를 위해 정중하고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

8시 30분이 되자 가가는 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가가의 집은 부산은행 모퉁이에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수레를 밀거나 끌고 가야 하는 가가의 걸음으로 20분, 가가보다 힘이 세고 걸음이 빠르거나, 딱 가가만큼의 힘을 가졌지만 수레를 끌지 않는 사람에게는 12분이나 15분이면 충분할 거리였다. 다른 사람보다 5분이나 7분 더 느리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타박타박 걷던 가가는 수영사적공원 앞에서 멈췄다. 열두 폭 스란치마처럼 넓고 풍성하던 잎은 다 떨궜지만 그만큼의 잔가지를 뻗은 푸조나무와, 먼 동쪽바다 외딴섬을 두고 이웃나라와 감정대립이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장군의 동상이 고요하게 서 있었다.
푸조나무와 장군의 동상을 향해 기원을 담은 눈길을 잠시 보낸 가가는 다시 수레를 끌고 25의용단(義勇壇)을 지났다. 거기서부터는 야트막한 오르막이었다. 힘껏 수레를 끌던 가가는 오르막 꼭대기에서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임진왜란 때 성주가 버리고 간 성을 지켜낸 의로운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스물다섯 개의 빗돌이 줄지어 서 있는 마당이 환히 보였다. 가가는 짧은 다리와 긴 팔로 수레를 힘껏 당기며 내리막을 내려갔다.
가가는 축대 아래 매미처럼 붙어 있는 허름한 슬레이트 집 앞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연하늘색 외짝 대문에 열쇠를 꽂고 수레를 마당으로 들인 가가는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욕탕 굴뚝처럼 쌓아올린 성당의 탑이 가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군인과 군인 가족을 위해 국방부가 지은 그 성당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나 주검을 만져 본 뒤에 믿게 되었다는 성인 도마의 이름을 빌리고 있었다. 주변보다 높은 곳에 자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엄숙함이나 장엄함보다는 군수용품처럼 실용성을 강조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성당을 지을 때 쌓은 축대에 여섯 채의 작은 집들이 달라붙을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자비로운 데가 있었다.
기원을 담은 눈으로 잠시 탑을 바라본 뒤 마루에 앉은 가가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어렸다. 성당을 에워싼 오래된 나무와 축대가 조성하는 그늘 탓에 우중충하고 습한 기운이 느껴지기는 해도, 일요일이면 머리 위에서 군인과 군인 가족이 입을 모아 부르는 찬송가가 우박처럼 떨어지는 그 집에서 가가는 18년을 살았다. 수레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마당 한켠에는 연탄창고를 겸한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고, 좁지만 마루도 있었고, 부엌 추녀에서 시작해 화장실 추녀에서 끝나는 빨랫줄에는 이불과 바지, 셔츠, 속옷까지 충분히 널 수 있었다.
이윽고 가가는 전대를 겸해서 둘렀던 앞치마를 끌러 마루에 놓고 부엌으로 갔다. 가가의 부엌은 천장이 낮았다. 두 단의 앵글 선반에는 분말 주스, 탈지유, 율무차, 꿀차 같은 것들과 종이컵, 빨대, 휴지같이 장사에 필요한 여러 비품 꾸러미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연탄불 위에 얹힌 양은 양동이와 부뚜막에 앉은 360리터 용량의 구형 냉장고를 제외한 취사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앞으로 두 걸음, 다시 뒤돌아 두 걸음, 필요에 따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두 걸음 움직이면 완전 점거될 만큼 좁았다. 가가는 그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따뜻하게 데워진 양동이의 물을 떠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었다.
9시, 가가는 방으로 들어갔다. 벽지와 천장에 빗물 자국 몇 줄기, 3단 서랍장 위에는 잘 개켜진 이불이 얹혀 있는 작고 단출한 방이었다. 신문지를 바른 사과상자 위에 낡은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고, 가슴팍 넓이만 한 창문이 달린 작은 방 한가운데 앉아서 가가는 앞치마를 펼쳤다. 한쪽 주머니에서는 지폐를, 다른 쪽 주머니에서는 동전과 비닐봉지에 싼 프렌치토스트 두 쪽을 꺼냈다.
가가는 지폐와 동전을 한곳에 모은 다음, 한쪽 손에 프렌치토스트를 들고 조금씩 베어 먹으면서 다른 쪽 손으로 지폐와 동전을 셌다. 돈을 세는 속도와 프렌치토스트를 먹는 속도를 조절하는지, 토스트의 마지막 조각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돈 세기도 끝났다. 서랍장에 돈을 잘 넣고 가가는 이불을 깔았다.

*

정오에 가가는 일어났다. 누운 채로 기지개를 세 번 켰다. 느릿느릿 ‘가가’를 하고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를 들여다보았다.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고, 연탄 한 장을 가져와서 능숙하게 갈았다. 연탄재는 마당 구석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양동이의 물을 떠서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얼굴을 닦은 수건을 빨아서 널고 라면 한 봉지와 한 컵의 물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TV를 켜고 방 한가운데 앉은 가가는 라면 봉지를 뜯었다. 토요일 한낮의 뉴스가 흘러가는 화면을 힐끔거리면서 라면 봉지를 뜯어 분말수프를 꺼냈다. 분말수프를 봉지에 쏟고 주둥이를 잘 오므린 뒤 딱 여덟 번 그것을 두드렸다. 왼손으로 네 번 탁 탁 탁 탁, 오른손으로 네 번 탁 탁 탁 탁. 그런 다음 봉지를 잡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빠지 빠지락 빠지 빠지락.
가가는 수프가 고루 섞인 생라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뉴스는 어제부터 시작된 사건과 몇 달 전부터 계속되는 사건과 불과 네 시간도 지나지 않은 사건을 두루 망라해 전하고 있었다. 어제 노래방에서 불이 났는데 오늘은 불에 타 죽은 사람의 가족이 침통한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몇 달 전 주가 조작 혐의가 밝혀져 외국으로 달아났던 인사는 몇 시간 뒤 떠들썩한 환영행사와 함께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미국에서는 고장난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조종사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탑승객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감동으로 떨리자, 가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무나 당연한 일에 감동을 먹은 앵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철새는 그냥 날았을 뿐일 텐데 비행기가 철새의 길을 막은 거라고 말하지 않는 뉴스나, 불경기로 연탄 소비가 늘어나자 불량연탄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뉴스는 정말 새로운 소식이라는 듯, 가가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뉴스가 끝날 무렵 가가는 생라면 한 봉지를 말끔히 먹어치웠다. TV를 끄고 마당으로 나간 가가는 수레를 덮은 천막천을 걷었다. 짧고 굽이가 많은 동선(動線)을 펼치며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 사용된 용기와 비품들을 닦기 시작했다. 때때로 손이 시린 듯 입김으로 손을 녹였다. 찬물에 맨손을 담그기에는 아무래도 서글픈 11월의 중순이었다.
대대적인 설거지가 끝나자 가가는 용기와 기기들을 커다란 채반에 받쳐 놓고, 수레 이곳저곳을 말끔히 닦았다. 닳아 빠진 나무 빨래판을 꺼내 양말과 앞치마, 장갑과 바지, 운동화까지 깨끗이 빨아서 널었다. 그리고 마루에 앉아 심호흡과도 같은 ‘가가’를 했다.
두툼하고 갈라터진 입술을 반쯤 열고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확인할 수 없는 어떤 곳에서 전해지는 전파를 수신하려는 듯 탄력을 잃은 눈꺼풀 아래서 눈동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눈과 코와 입술, 뜬금없이 움찔거리는 귀는 제각각 따로 놀고 있었으나 가가는 한동안 움쩍도 하지 않았다.

*

시간은 켜를 만들며 쌓여 갔다. 늦은 2시가 되자 가가는 물기가 가신 용기들을 부엌으로 옮겼다. 그리고 선반에서 분말 주스를 비롯한 각종 음료의 재료와 설탕, 휴지 같은 것들을 닦은 용기에 일부 옮겨 담았다. 능숙하고도 재빠르게 용기들을 다시 수레에 배치한 가가는 방문 앞에 붙어 있는 전기 콘센트에 휴대용 배터리 충전기의 플러그를 꽂았다. 그리고 충분히 안정적인 ‘가가’와 함께 자신의 수레 앞에 가서 섰다.
엄숙한 표정으로 수레 이곳저곳에 배치된 용기들을 하나하나 점검한 가가는 아직 자리에 놓이지 않은 식빵을 시늉만으로 네모난 프라이팬에 얹었다. 그 옆에는 역시 아직 놓이지 않은 달걀과 우유의 빈 자리가 있었다. 역시나 시늉으로 달걀을 집어 왼쪽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가져와 깨뜨리고 우유를 붓고 소금을 약간 뿌리는 시늉을 한 뒤에 거품기로 휘젓는 동작까지 가가는 실제와 다름없이 실행했다.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담고 보온물통의 물을 따라 절반으로 쪼갠 나무젓가락으로 잘 저은 다음 고객에게 정중히 건네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외에도 가가는 영업을 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동작을 차근차근 실행했다. 왼손으로 휴지를 건네면서 다른 손으로 커피믹스 휘젓기, 오른손으로 슬라이스 식빵을 뒤집으면서 왼손으로 물 따르기, 두 손으로 프렌치토스트를 종이냅킨에 싼 뒤 재빨리 달걀 깨뜨리기, 왼손으로 빨대 꺼내면서 오른손으로 분말 주스 휘저어 녹이기 등등.
여러 가지 동작을 아주 빠른 속도로 재현한 뒤 가가는 만족한 ‘가가’를 하고 수레를 잘 덮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돈을 챙긴 뒤 반듯하게 접은 장바구니를 쥐고 집을 나섰다.
수레를 끌고 왔던 길을 거슬러서 수영사적공원에 도착한 가가는 스란치마처럼 넓게 가지를 펼친 푸조나무를 지나 낡고 낮은 홍예(虹霓)를 통과했다. 씨족사회와 부족연맹을 거쳐 국가적 기반이 닦이던 시대에 장산국(?山國)과 거칠산국(居漆山國)의 경계였으며 해운포라 불리던 때, 해산물이 풍부한 포구를 방비하던 성의 홍예였다.
오래 전에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성벽의 석재를 민가의 주춧돌이나 담장, 하수구의 담벼락으로 써버리는 만행이 있었다. 두 마리 박견(?犬)과 두 개의 우주석(隅柱石)과 함께 간신히 남겨진 홍예를 거친 흑갈색 껍질에 싸인 노거수(老巨樹) 곰솔 두 그루가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가는 포구를 지키는 병영이 설치되고부터 군신목(軍神木)이었다는 곰솔을 올려다보았다. 중간쯤에 덧붙이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솔잎이 미니멀하게 동강낸 하늘이 가가를 미니멀하게 내려다보았다. 성주신당(城主神堂) 쪽에서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아련한 그리움이 실린 눈으로 성주신당을 바라본 가가는 천천히 시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장은 홍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턱을 치켜든 자세로 가가는 갖가지 물품과 물건 사이를 산책하듯 걸어갔다. 식재료 도매가게에 도착한 가가는 다음날 영업에 필요한 물품을 바구니에 담아서 신중하게 계산을 치렀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시 낮은 홍예와 푸조나무와 곰솔과 송씨할매당이 연출하는 고색창연한 풍경을 통과한 가가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짧고 성마른 초겨울 해가 서쪽으로 제법 기운 시각, 골목은 스산하다 싶을 만큼 한산했다. 이따금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가느라 소란을 떨기는 해도 혼돈과 혼란 가운데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질서에 편입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골목이었다.
연하늘색 대문이 저만치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기까지 가가의 걸음걸이는 침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가는 문득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대문 앞에 쇠파이프를 든 남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연한 사태에 직면한 우리의 가가는 반사적으로 머릿속을 헤적였다. 작년이나 재작년, 10년이나 20년 전, 프렌치토스트를 팔기로 작정하고 수레가게를 연 것 외에는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한 가가는 두려움 대신 궁금증을 가져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법적이고도 비합법적인 일에 연루되었는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먼저 가슴을 꽉 채웠다. 당혹스러운 ‘가가’와 함께 가가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걸음은 멈춰지지 않아서, 쇠파이프를 비껴들고 서 있는 남자들 앞에 도달해 버렸다.
튼튼하고 안정감 있는 운동화에 두툼한 겨울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비슷비슷한 차림의 남자들은 열 명이 넘었다. 하나같이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가렸고, 나머지 절반을 가리려는 듯 캡을 꾹 눌러쓰고 있었다. 나랏님이 성주를 부임시키던 시절에는 아전과 하급 관리가 살았었다는 성의 북쪽길에 느닷없이 도래한 폭력의 기미였다.
그들은 가만히 가가를 쳐다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로 뭐라고 말했다. 마스크 저 쪽에서 하는 말이 꼭 ‘가가’처럼 들려서 가가는 너무나 놀랐다. 설마 ‘가가’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것은 아닐 거라고, 모든 사람이 ‘가가’라고 말하는 세상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스크와 캡이 마음에 걸렸다.
예상 가능한 몇 가지 경우를 상상하자 그만 온몸이 얼어붙었고, 장바구니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때 남자 중 하나가 한 걸음 다가들었다. ‘가가!’ 하고 가가는 겁에 질려 소리쳤다. 남자는 이윽히 가가를 쳐다보더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장바구니를 주워 가가의 손에 들려주었다.
침착하고 적의가 없는 그 동작에 의아해하면서 가가는 장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남자는 얼른 몸을 돌려 동료에게 돌아갔고,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러자 대문을 가로막은 남자들이 몸을 비꼈고, 틈을 놓치지 않고 가가는 대문에 열쇠를 꽂았다.
대문을 꼭 닫은 가가는 장바구니를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두 손을 왼쪽 가슴에 댔다. 쿵덕쿵덕 소리를 내는 심장을 힘껏 눌렀다. 심장이 제법 안정을 되찾은 뒤에야 가가는 대문 옆에 놓아 둔 쓰레기통을 밟고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다. 쇠파이프를 움켜쥔 남자들이 여전히 삼삼오오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풍물 소리와 함성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소리를 향해 귀를 세우는 사이, 쇠파이프를 든 남자들은 일제히 반대쪽 골목을 향해 달려갔다.
가가는 쓰레기통에서 내려와 대문을 열었다. 남자들은 사라졌으나 그들이 조성한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기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함성과 풍물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턱을 바짝 치켜들고 큰길로 이어지는 골목 저 쪽을 바라보는 가가의 눈이 미명처럼 밝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지배당한 듯 가가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가가는 서두르지 않고 성실하게 걸었다.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았고, 구멍가게와 철물점, 미장원을 지났다. 세탁소를 지날 때 마네킹처럼 붙박여 서서 다림질을 하고 있던 세탁소 주인 대신에 그의 머리 위에 걸려 있던 시계가 4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공습경보처럼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었다. 사이렌은 길게 이어지다 점점 사라졌다. 사이렌이 끝난 뒤의 교교한 침묵이 대지를 한껏 압축해 버린 듯, 가가는 금세 우유대리점과 약국을 지나 아크릴로 만든 지붕이 날아갈 듯 가벼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붐비던 정류장이 텅 비어 있었다. 정체로 몸살을 앓던 큰길도 차 한 대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가가는 정류장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서 큰길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시간이 갑자기 툭 끊어진 듯, 조잡한 장부처럼 보잘것 없었으나 아귀가 잘 맞았던 하루가 으스러져 버린 듯, 기분이 이상했다.
사이렌처럼 높은 함성이 큰길의 오른쪽에서 길게 솟구쳤다. 가가는 자라처럼 머리를 내밀고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가로 세로 깃발과 만장, 불쑥불쑥 솟은 크고작은 피켓을 든 거대한 사람의 무리가 뱀처럼 꿈틀대고 메아리처럼 여운이 긴 함성을 내뿜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가가는 날카롭고 쇠된 ‘가가’를 터뜨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구와 방패, 무릎까지 올라오는 두꺼운 각반으로 무장한 철갑병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저만치 포진해 있었다.
가가는 작은 콧구멍을 힘껏 벌름거렸다. 진군하는 오른쪽과 방어하는 왼쪽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가 동시에 후들거렸다. 자라처럼 내밀었던 머리를 자라처럼 집어넣었다. 굽이치며 다가오는 물결이 시간의 저 쪽에 잠겨 있던 기억을 울끈불끈 솟아오르게 했다.
그 토요일에서 18년 전의 그때. 가가는 함성과 외침과 사람의 물결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경적처럼 외마디 ‘가가’를 외치면서 팔을 뻗으면 가슴이 뭉클했었다.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다시 혼자가 되었고, 여전히 ‘가가’밖에 말할 수 없었지만 서럽지 않았었다.
어떠한 ‘가가’로도 감당할 수 없는 파도를 가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처럼 넘실대는 사람의 파도가 가가 앞에 도달해 있었다. 파도는 가가 앞에서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포말처럼 많은 ‘가가’ 아닌 말들이 우렁우렁 지축을 흔들었다. APEC NO! BUSH NO! NO BUSH! NO APEC!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 반대. 경제파탄 주범 신자유주의 반대. 그들만의 잔치 아펙 반대. 반대, 반대, 반대…….
반대와 반대들이 어깨를 겯고 행진하고 있었다. 몇 시나 되었는지, 가가는 문득 궁금했다. 지금이 그때와 같은지 다른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처럼 말할 수 없어서 ‘가가’만을 했지만 ‘가가’만으로도 충분히 말이 통하는 세상이 오리라 기대했던 그때가 다시 온 것인지 궁금했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팔던 가가는 도저한 시위대의 물결에 휩쓸려 서면로터리까지 행진했었다.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함성과 외침 속에서 어느 순간, 태어날 때부터 까무룩 잠긴 귀가 열렸었다. 어리둥절하고 놀라웠다. 소리를 모르던 세계에서 소리를 아는 세계로 나아가게 되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감격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그때가 다시 온 것인가? 기원을 담은 눈으로 환호와도 같은 ‘가가’를 하고, 가가는 망설임 없이 사람의 물결에 몸을 실었다. 우쭐우쭐 어깨가 춤을 추었다. 저녁을 향해 흐르던 11월의 차가운 대기가 훈훈하게 데워져 있었다.
분명하고도 힘찬 ‘가가’와 함께 가가는 힘껏 팔을 뻗었다. 아펙에 반대하고, 부시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외침의 한가운데서 가가는 ‘가가’에 반대하며 ‘가가’를 외쳤다. 세찬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조각배에 실린 듯 몸이 울렁거렸다. ‘가가’ 아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말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가가는 열심히 생각했다.

*

6시에 가가는 강 앞에 도달해 있었다. 사람과 차가 분주하게 건너다니던 다리를 몇 겹의 컨테이너가 가로막고 있었다. 산처럼 높고 쇠처럼 완강한 바리게이트였다. 강의 이 쪽과 저 쪽을 오가며 헬리콥터가 날았다.
가가는 잎을 다 떨군 버짐나무 아래 앉아서 강 저 쪽을 바라보았다. 강 저 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사코 건너려는 강을 향해 도움닫기를 하듯 시위대는 숨을 고르는 듯 보였으나 가가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합류할 때만 해도 우렁차고 높았던 함성과 외침이 한 개의 로터리와 몇 개의 횡단보도를 지나는 동안에 조금씩 잦아들어서, 강 앞에 도달했을 무렵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외치고 있었고, 힘차게 뻗는 팔처럼 외침은 함성으로 솟구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해가 사라짐과 동시에 몸을 숨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낸 함성과 외침을 삼켜서 잔뜩 배를 불린 하늘은 묵묵했다. 애절하고도 쇠된 ‘가가’와 함께 두 손으로 귀를 감쌌다. 두툼하고 빠닥빠닥한 두 개의 귀가 손 안에서 구부러졌다 펴졌다. 간절하고도 막막한 ‘가가’와 함께 두 개의 검지를 귓구멍에 쑤셔넣었다.
바람처럼 찾아왔던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아프도록 귓구멍을 후비고 나서 가가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켓을 든 어떤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품이, 전의를 독려하는 것 같았다.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은 알겠는데, 가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낮고도 침울한 ‘가가’와 함께 가가는 문득 펄쩍 뛰었다. 펄쩍 뛰고 또 펄쩍 뛰면서 처절하고도 깊은 ‘가가’를 했다. 개헌에 반대하고 독재에 반대했듯이 아펙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기적처럼 찾아왔던 소리는 해가 지는 속도로 천천히 사라졌을까, 솟구쳤다 가라앉는 함성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을까.
허공으로 사라진 소리를 붙잡으려는 몸짓으로 가가는 다시 몇 번을 더 펄쩍 뛰었다. 그리고 목청껏 ‘가가’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바리게이트를 넘어 전진하기 직전의 상황,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가운데 가로 세로 깃발과 만장과 피켓처럼,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스팔트에 나무로 박혀 있었다. 나무들이 이룬 숲에 갇혀서 가가는 허둥거렸다. 펄쩍 뛰어올랐을 때처럼 문득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고 결단성 있는 ‘가가’와 함께 가가는 턱을 바짝 치켜들었다. 다리는 짧지만 팔은 길어서 나무와 나무를 건너는 일은 아주 쉬웠다. 가가는 긴 팔을 뻗어 한 나무를 붙잡았고, 그 나무를 붙잡은 힘의 반동을 이용해 다음 나무로 옮겨갔다.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나무들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으나 가가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나무들을 건넜다.
굴뚝처럼 높은 성당의 탑이 저만치 보이는 지점에서 가가는 잠시 쉬었다. 푸조나무와 곰솔과 성주신당과 25의용단을 차례로 지나서, 골목 쪽으로 난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는 옛 성의 북쪽 길이었다. 누군가 늦은 저녁을 차리는지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났다.
가가는 코를 벌름거렸다. 소리가 사라져버린 골목을 고등어 냄새가 채우고 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가 가가를 앞질러갔다. 그 소리가 요란한지 조용한지 알 수 없는 채로 가가는 주먹을 꽉 쥐고 턱을 바짝 치켜든 자세로 걸었다.
연하늘색 외짝 대문 앞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9시. 가가는 연탄불이 데워 놓은 따뜻한 물로 양치질을 하고 손발을 깨끗이 씻었다. 구식 브라운관 TV를 켜고 이불을 깔았다. 비스듬히 누운 채로 가가는 화면을 주시했다.
먼 나라에서 온 대통령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자세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가가는 거대한 사람의 파도가 컨테이너를 무너뜨리고 강을 건넜는지, 낡은 운동화를 신고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은지 궁금했다.
끄응 소리를 내며 가가는 TV를 껐다.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거울처럼 맑아지는 머릿속으로 희미하게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가가는 낮고도 낮은 소리로 가만히 ‘가가’하고 중얼거렸다. 가가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며 차갑고 스산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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