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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집 가족

  • 작성일 2020-12-01
  • 조회수 1,868

[2020년 아르코청년예술가지원/단편소설]



굴집 가족



김동하




사내는 광부였다. 교도소를 졸업하고 시작한 광부 생활은 그가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할 때까지 이어졌다. 불안한 지질층의 일부가 천공기의 진동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의 다리가 깔린 사고였다. 그와 동료들이 구조되어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한낮이었다.


일주일 만에 접한 햇빛은, 찰과상 위로 땀이 흘러내릴 때처럼 쓰라리게 느껴졌다. 햇빛뿐만이 아니었다. 구조대를 둘러싼 기자들의 손에서 반짝반짝 플래시가 터졌다. 동공을 파고드는 다각도의 빛들 때문에 눈물이 났다. 그러자 더 많은 빛들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남은 기쁨에 겨운 나머지 울음을 터트린 것이라 추측했다. 혹은 살아남지 못한 동료들을 향한 슬픔 탓이라 말했다. 사내의 손은 두텁고 단단했으나 그 모든 빛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내는 탈진하고 말았다.(탄광에 갇혀 있는 동안에 어떤 사건이 있어야 한다)
깨어났을 때 사내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허전하다고 느꼈다. 다리를 내려본 그는 마취가 안 풀렸을까 하는 짐작이 틀린 것임을 알았다. 있어야 할 게 없었다. 그는 살았으나 그의 신체 전부가 살아남지는 못했다. 썩어 가고 있던 다리는 잘려졌다.
사내는 잘린 부위를 쓰다듬는 딸애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살인 딸아이의 손길을 통증으로 느꼈다. 잘린 게 머리가 아니라는 안도와 잘린 다리에 대한 씁쓸한 심정이 교차했다.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내는 스스로 낙천적인 편이라 여겼다.
그런데 왜 애들만 여기 있는 걸까. 아내는? ‘아내’가 ‘망할 년’으로 바뀌는 데는 긴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내가 의족을 차고 병원을 나선 날은 햇볕이 좋았다. 탄광에서 구조된 날과 같았다. 손으로 차광막을 만드는 사내에게 아내가 달아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사내는 ‘망할 햇빛’이라고 중얼거렸다. 달아난 아내를 쫓기에는 의족이 시원찮았다. 불현듯, 햇빛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 아들과 딸이었다. 교미 중인 두 마리의 나비가 어울려 날듯 두 아이의 손들이 그의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팔랑거렸다. 놀다, 웃다, 울다 했다. 망할 새끼들. 사내는 망할 새끼들이 앞장선 길을 절뚝거리며 따라나섰다.


사내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J시에 온 것은 십 년 전의 일이었다. 이사를 오던 해의 몇 달간, 사내의 집에서는 무지막지한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웃들은 찌푸린 얼굴로 소음에 대한 항의를 했다. 그때마다 사내는 실내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양해에는 기한이 있는 법, 머지않아 통장과 이웃한 집의 여자가 사내를 찾아왔다.
― 죄송했습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사내는 폴더폰처럼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무지막지한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이 년 뒤, 사내는 마을을 떠났다. 야간 이사라도 했으면 모를까 이사 차량 한 대 없는 이사였다.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다는 듯 이삿날조차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마을에는 낯선 사내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질긴 나무였다. 뿌리가 천장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 지 3년째.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마다 잘라냈지만 뿌리의 재생력은 무서우리만치 빨랐다. 흙으로 된 천장을 타고 방사형으로 산개된 잔뿌리들은 땅의 혈관들 같았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는 허벅지만큼 굵은 원뿌리들이 자라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땅속 허공을 맞아 미처 방향을 틀지 못한 원뿌리들은 비어 있는 공간을 단숨에 돌파하겠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생장했다. 장은 손도끼로 나무의 뿌리를 찍어댔다. 잘린 뿌리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잘린 뿌리들을 여동생인 담이 포대에 주워 담았다.
굴집에 들어왔을 때 장의 나이는 네 살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14년이 흐르는 동안 장이 집 밖으로 나간 건 단 한 번뿐이었다. 밤의 외출이었고 지상의 풍경은 그가 기억하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수많은 불빛들이 어둠을 파먹고 있었고 끔찍한 소음들이 뒤섞여 있었다. 장과 아버지 앞을 한 무리의 비틀거리는 남자들이 지나쳤다. 그들에게서 술 냄새가 물큰 났다. 입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무서운 낱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은 양 손바닥으로 두 귀를 막은 채 떨었다.
― 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지상은 지옥이에요.
― 그래. 이곳의 사람들은 악귀들이다. 지옥이란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웃고 다닐 수 있는 건 악귀뿐이지.
장은 팔을 최대한 뻗어 악착같이 천장의 뿌리를 찍어댔다. 악귀들, 악귀들.
잘려 진액이 흐르는 뿌리의 둥근 단면들은 악귀들이 정탐을 위해 보낸 감시의 눈 같았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지상에는 수많은 감시의 눈들이 있다고 했다. 장은 수직으로 도끼질을 해 뿌리의 단면들을 헤쳤다. 치밀어 오르던 불안과 분노는 뿌리들이 갈라져 퍼지는 걸 보고서야 조금씩 가라앉았다.
의자 옆에 쪼그린 담은 마지막으로 떨어진 뿌리를 포대에 담고 있었다. 땀이 흥건한 장과 달리 담은 덤덤했다. 장의 턱을 타고 떨어진 땀방울이 담의 가슴골 사이로 떨어졌다. 담이 장을 올려다보며 히죽였다. 장은 황급히 담의 눈을 피했다.

아내가 도망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를 잡아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내가 달아난 게 당연하다고까지 생각됐다. 사내는 자신도 아내처럼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라는 자문에 답할 수 없었으므로, ‘어디로’ 라는 자문을 이어 할 수도 없었다. ‘무엇’은 많았고 ‘어디’는 적었다. 그때 두 아이가 눈앞에서 팔랑거리고 있던 거였다. 노란색과 파란색 옷을 입은 두 아이가 놀다, 웃다, 울고 있던 거였다. 두 아이에게서 빛이 반사되는 것 같았다. 망할 햇빛이라 생각하는 순간, 무엇으로부터란 자문을 생략한 채 어디로라는 자문부터 하게 됐다. 그래. 이 망할 햇빛이 없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는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 — 그가 쓸 수 있는 대출은 4금융권밖에 없었다. 그는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해야 했다 — 을 끌어 마당과 뒤란이 딸린 허름한 전세주택을 얻었다. 반평생 그가 했던 일이라고는 땅을 파는 일뿐이었다. 탄광촌을 떠난 그에게 땅을 파는 기술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쓸모를 찾은 것이다.
사내의 집 뒤란의 담장이 높아졌고 그 뒤로 그의 뒤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로부터 이 년 뒤 이웃 중 누구도 모르게 사내의 이사는 끝났다. 뒤란에서 땅 밑으로 굴을 뚫기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마침내 지하 5미터의 공간에 15평 남짓의 굴집이 만들어졌다. 원래 살던 전셋집에서 전기와 수도를 끌어왔고 통로를 폐쇄했다. 대신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버려진 공장부지 쪽에 새로운 통로를 뚫었다.
굴집 안에는 천장 높이로 쌓인 각종 통조림들, 폐업처리 된 책방에서 가져온 수백 권의 책과 극화, 각종 의약품, 좁지만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 하수구로 연결된 화장실, 비상 배터리와 30와트 전등, 장판이 깔린 바닥 들이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감흥이 없는 세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계획이 생길 때까지라는 막연한 계획이 그를 계속해서 지하에 묶어 두었다. 세상의 발밑에 사는 동안에도 바깥에 진 빚들은 불어나고 있었다.
기술이라고는 천공 기술뿐이었던 사내에게 굴집 설계는 일종의 은신처 용도였다. 전셋집을 구하면서 끌어 쓴, 사채까지 끌어 쓴 대출의 이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었다. 다리가 아작 났지만 애초에 광부는 상해보험을 들 수 없었다. 굴집 밖으로는 그 이자를 받아내려는 무리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사내를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다리가 이 꼴인 데다 애들까지 달려 있어 장돌뱅이 생활도 무리였다.
다행이라면 감옥 생활과 탄광 생활로 단련이 됐는지 폐쇄된 공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단순 피신처 정도로 계획했던 굴집 생활이었지만 지내다 보니 나름대로 괜찮았다. 아들인 장은 사내를 하느님이라도 따르듯했다. 딸인 담은 장보다 애교가 없긴 했지만 특별히 거슬릴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을 우러러보는 존재가 있다는 게 그토록 황홀한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런 굴집 생활이 최대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담이 입덧을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체했거나 식중독이려니 생각했지만 분명 그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입덧이었다. 담이, 이제 16살인 딸년이 임신을 한 거였다.


멍청한 장.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지만 담은 장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속으로는 ‘멍청한’을 덧붙였다. 언제나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장, 멍청한 장. 하긴 굴집의 생활은 생각을 먼저 하나 행동을 먼저 하나 별다를 게 없다.
멍청한 장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 착각하고 있다. 저따위 나무뿌리를 잘라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걸까. 우습게도 장은 한낱 나무뿌리를 대단한 적으로 여겼다. 그 같은 태도는 장이 굴집을 사랑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담은 사랑이란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해서 사랑이란 말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담은 장의 눈동자도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장의 눈동자를 사랑했다.
장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담이 장의 막대 같은 성기를 농락한 후부터였다. 우습게도 그 일로 인해 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얻어터진 건 사건의 주범인 담 자신이 아니라 장이었다. 담은 아버지의 예민한 반응을 보고 자신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확신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혹여 마주칠 때면 몹시 흔들리는 장의 눈동자를 통해 보다 단단해졌다.
― 이제 괜찮겠지?
장의 멍청한 질문에 담은 제 면티의 목 부위를 늘려 보였다. 장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깟 나무뿌리쯤은 애초에 상관없는 거였다. 장은 나무뿌리를 구실로 굴집을 더 사랑하고 싶은 거다. 담은 나무뿌리를 절단하는 장의 행위가 그 눈동자를 사랑하기 위해 장의 성기를 농락하는 자신의 행위와 같다고 여겼다. 담은 또다시 장을 덮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담은 손끝으로 슬쩍 장의 성기를 건드렸다. 놀란 장이 균형을 잃고 의자에서 떨어졌다.
담이 장을 덮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임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 굴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임신이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장과의 섹스를 통해 담은 또 다른 이유 하나를 갖게 됐다. 바로 쾌락이었다. 비록 통증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그건 분명 쾌락이었다. 담은 책에서 본 것과 같은, 보다 많고 보다 다양한 쾌락을 원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임신이 되어야만 했다. 담은 아버지가 외출하고 없을 때면 주저 없이 장을 농락했다. 멍청한 장은 그때마다 이런 말을 지껄였다.
― 안 돼. 아버지가 눈치 채는 날이면 난 죽게 될 거야. 아니, 죽음보다 더한 벌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넌…….
― 난?
― 지옥에 떨어질 거야.
멍청한 장. 그 지옥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곳이야. 담은 두려움에 떠는 장을 마음껏 비웃었다. 사정을 할 때 몸을 떠는 장을 보며 또다시 비웃었다. 장은 쾌락을 느끼면서 쾌락을 두려워했고 제 쾌락을 눈치 챌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넘어진 채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장을 보며 담이 물었다.
― 장. 너 내가 무섭지?
― 아, 아니야.
―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두려워서 하는 행동이란 거야.
― 아니야. 난 담이 널 사랑해.
― 그래? 그럼 넌 날 사랑해서 두려워하는 거야. 아니면 두려워서 사랑하는 거든지. 멍청한 장. 잘 들어. 넌 뭐든 두려워서 사랑해. 아버지도 이 굴집도, 나도. 하지만 난 너와 달라. 두렵지 않아. 난 두려움을 사랑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나는 네가 나를 두려워할 때마다 사랑을 하고 싶어져.
― 넌 틀렸어. 우리가 또다시 섹…… 아니 나쁜 짓을 하는 날에는 아버지가 너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담은 제 반바지를 벗어던지며 생각했다. 아버지라. 과연 그럴까? 아버지는 이 굴집과 우리를 두려워서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두려움을 사랑하는 걸까. 어쩌면 아버지에게도 시험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담은 생각했다.


장은 담이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을 자는 담은 인형 같았다. 그러나 인형 같다는 표현을 책에서 보았을 뿐 실제 인형을 본 적은 없었으므로 장은 제 비유를 의심했다. 장이 책을 통해 아는 인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햇빛을 받은 적이 없기에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담의 피부는 눈, 눈으로 빚은 사람 같았다. 눈은 실온에서는 녹는다는데, 오랫동안 만지게 되면 동상에 걸린다는데…… 눈 역시 본 적이 없었으므로 장은 이번에도 제 비유를 의심했다. 담은 따듯한 눈이었다.
장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 일을 회상하고 말았다. 장은 불경스러운 생각을 떨치기 위해 성경을 펼쳤다. 최근 3년 읽고 있는 성경이었지만 한 번 정독을 한 후로는 속표지에 있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과 창세기만을 반복해서 읽었다. 장은 지금의 세상이 창세기이거나 혹은 창세기 직전의 단계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저 지상의 지옥을 정화시키고 나면 자신과 담을 불러낼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직접 한 말은 아니었지만 성경이 모든 걸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담과 같은 실수는 범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외출한 아버지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장은 아버지가 매일 조금씩 지상을 정화하고 있는 거라 믿었다. 오직 아버지만이 지상에 나갈 수 있고 아버지만이 악귀들 사이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지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장은 졸렸지만 잠을 쫓으며 외출한 아버지를 기다렸다. 지쳐 돌아오는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려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망할 놈의 병원 같으니. 사내는 아내가, 그러니까 된장을 발라버리고 싶은 년이 제 자식을 낳을 때도 들르지 않았던 산부인과를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딸년의 배 속에서 꿈틀대는 애를 낙태시킬 약을 구하려 했다. 의사는 산모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며 처방하지 않았다.
결국 데리고 나와야만 하는 건가. 사내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비록 이번에 장이가 일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장이라면 별다른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장이는 사내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잘 따랐다. 반면 담이는 속을 알 수 없었다. 대놓고 반항을 하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사내를 따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여우같은 년. 숙이년을 빼다 박았다. 어쨌든 담이가 애를 낳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내가 굴집의 철창문을 열자 쪼그려 앉은 채 꾸벅꾸벅 졸던 장이가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배알도 없는 놈. 어제 그만큼이나 쥐어터지고도 아버지랍시고 반긴다. 그런 아들놈이 싫진 않았으나 밖에서 상해 온 기분이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사내는 대뜸 안겨드는 녀석을 떼어내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장이가 다짜고짜 용서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통에 균형을 잃고 넘어진 사내는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다.
― 알았으니까 그 망할 손이나 좀 치워라.
― 저, 정말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분명 바보는 아닌데 바보짓을 하는 장이의 행동이 사내는 영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애비라고 폐업한 책방에서 이런저런 책들도 구해다 줬고 담이는 몰라도 장이는 그런 책들을 열심히 읽어댔다. 사내가 모르는 어려운 말들도 곧잘 해대는 장이었다. 한동안은 어려운 질문들을 쉴 새 없이 하는 통에 닥치라고 소리 지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따금 바보 같은 구석이 보였다.
― 그럼 아버지.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사내는 조금 전 따귀를 올려붙인 것도 있고 장이가 주물러 주는 어깨가 시원하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저 뿌리 말인데요. 어떤 나무의 뿌린가요?
그러고 보니 장이 녀석이 또 나무뿌리를 작살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얌전한 놈이 튀어나온 나무뿌리만 보면 지랄발광을 했다. 그때는 사내조차도 섬뜩할 정도여서 사내는 자신이 외출하고 없을 때만 뿌리 자르기를 허락했다.
― 그건 알아서 뭐 하게?
― 식물도감을 찾아봐도 줄기와 가지, 잎과 열매 따위밖에 안 나와요. 그건 다 지상에 있는 것들인데. 그런데 저 뿌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뿌리가 살아 있다면 지상의 줄기도 살아 있는 게 아닐까요? 아버지. 정말 이 세상에 살아남은 건 저희밖에 없는 게 맞나요?
― 내 말을 못 믿는 거냐?
― 아뇨. 전 아버지 말을 믿어요. 그런데 저 뿌리는 정말인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끔찍해요.
― 내가 전에도 말했지. 너는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지만 내가 다 대답해 줄 수 없다. 그건 내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니어서야. 그러니 장이 너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해야 한다. 하지만 조금 전에 네가 한 말 중에 맞는 것도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끔찍하지.


장이는 방금 전 아버지의 말이 좋았다. 묘하게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해가 될 말이기에 하지 않는 거다. 더군다나 오늘 아버지는 뿌리가 끔찍하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까지 했다. 장은 사랑해요라는 말로 질문을 대신했다.
그때 담이가 우웩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걸 입덧이라고 했다. 임신을 했다는 표시라고 했다. 장이는 어제 자신이 얻어터진 게 다 저 우웩 때문이란 사실을 상기하고 몸을 움츠렸다.
입덧하는 소리에 담이를 노려보던 사내가 곡괭이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 사내는 절룩거리며 담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대뜸 곡괭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장이는 역시 아버지는 알고 있던 거라고, 담이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건 내가 아닌 담이의 잘못이란 걸 알고 있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걸로 내려쳤다가는 담이가 죽고 말 거다.
― 아버지, 안 돼요!
장은 몸을 날려 아버지의 등덜미를 감싸 쥐었다.
― 이거 안 놔.
사내는 장이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뒤 패대기쳤다. 사내가 들었던 곡괭이는 담이가 아닌 방바닥을 찍었다. 장판에 구멍이 뚫렸고 그 밑에 가려졌던 흙바닥이 파헤쳐졌다. 사내는 방바닥에 방을 두 개로 나누는 선을 팠다. 그러고는 곡괭이로 천장에 붙은 나무뿌리들을 떼어내 뿌리 끝을 바닥의 팬 홈에 심었다. 그렇게 해서 발처럼 드리운 나무뿌리는 방을 둘로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드나들 만한 틈이 남았을 때 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버지 무서워요.
담이의 말을 들으며 장이는 담이가 두려움을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 아버지를 사랑한대요
통역을 했던 건데 아버지로부터 다시 한 번 주먹이 날아왔다.
― 담이 넌 이쪽으로 건너오고 장이 니가 저쪽으로 가거라. 장이 너 헛소리 그만 할 때까지 그쪽에서 꼼짝 말고 있어. 옜다. 니 구세주.
장이와 담이는 자리가 바뀌었다. 건너간 장이에게 아버지가 성경책을 던져 줬다. 장이는 그 성경책을 떨어지면 깨지는 날계란이라도 된다는 듯 온몸을 던져 받았다. 사내는 남은 공간을 마저 막았다.
장은 담이가 말한 무섭다라는 말이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처럼 드리워져 자신을 고립시킨 나무뿌리들은 살 떨리게 무서웠다. 뿌리들 주위에 돋아 있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실뿌리들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장의 두려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만 그 두려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은 처음으로 혼자가 됐다. 장은 담과 자신의 사이를, 아버지와 자신 사이를 갈라놓은 뿌리들이 두려워서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담을 불렀다. 담도 대답이 없었다. 결국 장은 잔뿌리들까지 확실하게 잘라내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굴집이 둘로 나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멍청한 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남자의 길〉 5권을 보다 잠든 아버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어 담을 불렀으나 〈花女〉 3권을 읽고 있는 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담은 새우잠을 자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모로 누웠다. 아버지도 담 자신을 두려워하게 될지 궁금했다. 그럴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담은 확신하고 있었다.
담은 이 집에서 제일 강한 건 자신이라고 믿었다.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이 담을 강하게 했다. 담은 굴집 밖에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 어렴풋한 기억이어서 확신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최근에 먹어 본 건포도로 인해 틀림없는 기억이 됐다. 건포도는 달고 쫀득했다. 그리고 분명 담이 아는 그 포도 맛이었다. 말라 쪼그라진 건포도였지만 포도에게서만 나는 향과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깥을 내다볼 수 없게 높은 담장이 마당을 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담장도 막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장마에는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고 겨울이면 눈이 내렸다. 여름에는 더웠고 겨울에는 추웠다. 지상은 변화가 잦았다. 담은 무더운 어느 날 마당에 있는 포도를 발견했다. 작지만 탱글탱글한 포도였다. 당시에는 그게 포도라는 걸 몰랐다. 하지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열매의 맛과 향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나 보았다. 며칠 전 먹은 건포도가 그 모든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쓰고 맛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버지는 포도나무와 싸워도 지고 말, 그저 외다리의 불구일 뿐이었다. 달콤한 포도의 기억은 담을 담대하게 해주었다.


장의 불안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제 나무뿌리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간밤에 장은 잠결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었다. 잠이 깨면 깰수록 장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그 소리는 장이 담에게 농락당할 때 났던 소리였다. 그 소리가 뿌리벽 너머, 아버지와 담이 있는 곳에서 넘어왔다. 그러나 장은 눈으로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나무뿌리가 두려웠고 그 나무뿌리 너머의 진실이 두려웠다. 해서 장은 나무뿌리에 대한 혐오를 키웠다. 저 나무뿌리가 자신의 눈을 막아 나쁜 상상을 하게 하는 거라고 우겼다. 그러나 아버지의 허락이 없었으므로 제거할 수 없는 나무뿌리였다. 장은 성경 속으로 달아났다.
장이 창세기 3장을 읽고 있을 때 뿌리벽이 벌어졌고 그 틈으로 푸룬과 옥수수 통조림이 들어왔다. 장이 그 옥수수 통조림을 잡아당겼으나 반대편에서 통조림을 쥐고 있는 손이 놓지 않았다.
― 장. 내 생각이 맞았어. 이제 아버지도 나를 두려워해.
― 거, 거짓말 하지 마. 아버지에게는 두려움이 없어.
― 비밀 하나 이야기해 줄까. 나는 곧 지상으로 나가게 될 거야. 배 속에 든 걸 제거해야 하니까. 그래서 더 이상 비밀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어.
― 됐어. 듣고 싶지 않아. 비밀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 실은 말야. 우린 지상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그곳은 천국이야. 이 따위 말라비틀어진 열매가 아니라 신선하고 새콤한 것들이 널린 곳이지.
― 아니야. 담. 넌 뱀을 만난 거야. 이 망할 뿌리들이 널 유혹한 거야. 이 뿌리들이 뱀이었던 거야.
― 큭. 뱀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나는 두려움을 사랑하니까.
― 다 내 잘못이야. 이것들을 다 없앴어야 했어.
그러나 여전히 장은 나무뿌리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허락이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끔찍하게 생긴 뿌리를 가진 나무에게서 달콤한 열매가 열릴 수는 없어. 아버지 말대로 그 열매들은 분명 쓸 거야. 지상의 악귀들에게 달콤한 열매가 허락될 리 없어. 장은 옥수수와 푸룬을 입에 쑤셔 넣었다.


사내는 간밤의 일이 꿈이었으면 싶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때의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그건 명백히 유혹이었다. 담이, 딸이 아비를 유혹한 것이다. 햇빛 한 번 받지 못하고 자란 통에 담이의 피부는 사내가 안아 본 어떤 여자보다도 투명했다. 18살. 젖가슴도 도톰히 올라왔고 엉덩이도 보기 좋게 부풀었지만 그런 담이를 취할 생각은 맹세코 해본 적이 없었다. 수치심을 모르는 담과 장이었기에 간간이 나체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옷을 입으라 명령했던 사내가 아닌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에서조차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담이의 손은 대담했다. 그런 담이의 손을 막아선 사내의 손은 축축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담이는 태연했다. 부끄러움은 없었고 오히려 더 당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내는 담이의 임신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 보게 됐다. 바보스러운 장이가 담이를 겁탈했다는 가정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꼴에 저도 사내라고 욕정을 이기지 못한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경우처럼 담이가 유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두 가지 심정이 동시에 들었다. 굴집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었다라는 후회와 굴집이어서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안에서만 지낸다는 전제하에 두 자식 놈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살아온 밖은 위험했고 외로웠으며 비정했다. 이제 사내와 자신의 혈육이 밖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놈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콩팥이나 떼일 거다.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이 굴집뿐이었다.
그날 탄광이 무너졌을 때부터, 애들 엄마가 달아났을 때부터 내일은 닫혀버린 거다.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내는 것뿐이고 그렇게 살아남다 보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간밤 담이의 행동을 본 순간 그 실낱같은 희망이 닫히는 기분이었다. 그저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했다. 담이는 자신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사내는 담이가 두렵게 여겨졌다. 이 모든 게 담이의 계획이라면 정말 섬뜩한 아이가 아닌가. 어찌 됐건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일단은 한시라도 빨리 담이를 수술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아버지가 담을 데리고 지상으로 나간 지 삼일째였다. 장은 삼일간 굶은 채로 아버지와 담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혼자가 되어 본 장이었다. 아버지가 없을 때라도 담이가 곁에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장은 불안했다. 흙을 붙들기 시작해 보다 견고해진 뿌리벽이 장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장에게는 성경과 손도끼가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손도끼로 뿌리벽쯤은 얼마든지 뚫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장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게 한 건 온종일 참아 왔던 소변이었다. 뿌리벽 너머에 있는 화장실을 떠올리자 요의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다. 장은 손도끼로 뿌리벽을 닥치는 대로 찍어댔다. 뿌리벽은 장의 생각처럼 견고하지 않았다. 손도끼에 잘리는 게 아니라 뿌리 끝이 뽑혀 나왔다.
요의를 해결한 장은 물을 마셨고 육포를 씹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창살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장은 육포를 질겅이며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를 찾아 나서야 할까. 아버지와 담이 늦어지는 이유는 뭘까. 생각보다 악귀들의 방해가 심한 걸까. 아니면 혹시?
굴집에 돌아올 이유가 사라진 게 아닐까. 마침내 아버지가 지상세계에 대한 정화작업을 끝낸 건 아닐까. 마침내 창세기가…… 장은 창살문을 밀어 젖혔다.


담은 처음으로 마취라는 걸 겪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애를 제거하는 데 정작 자신이 할 일은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수술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력했다. 자신에게 농락당한 뒤로 흔들리곤 하던 눈빛을 지상에서는 시종일관 보이는 아버지였다. 그렇게나 두려움에 휩싸인 모습을 보자니 어쩌면 지상은 악귀들의 세계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담은 자신의 자궁을 헤집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란 사람들도 수상했다.
그들은 별다른 대화도 없이 각자의 몸만 움직였다. 그나마 몇 마디 주고받는 말조차 담으로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언어였다. 담은 그 파편적인 언어들이 금속성의 다른 소리들보다 섬뜩하게 들렸다. 지상은 지옥처럼 뜨겁지도 천국처럼 달콤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가웠다.
수술이 끝난 담은 아버지와 재회했다. 아버지의 손에는 포도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한 손으로 담의 손을 붙잡고 병원을 나섰다. 여전히 두려움에 찬 눈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 따뜻함이 수술실에서 느꼈던 차가운 느낌을 얼마간 지워 주었다. 그러나 담의 결심은 무뎌지지 않았다. 아마도 굴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테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담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담은 아버지의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몸이 뜻대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달려야 했다.
얼마간 달린 뒤 자신을 쫓던 발소리가 반대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담은 뒤돌아보았다. 자신을 쫓아오던 아버지가 다른 사내들에게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쫓던 사내들 중 한 명이 담과 눈을 마주쳤다. 담은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눈동자가 떨린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자신의 눈동자 또한 그런 아버지의 눈동자처럼 떨리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 자자. 겁먹을 거 없단다. 너처럼 예쁜 애는 함부로 다루지 않아.
담은 자신의 손목을 잡아끄는 사내를 따라 아버지가 달아난 길을 걸었다. 사내의 검게 그을린 옆얼굴은 단단하게 다져진 찰흙 같았다. 담은 아무리 힘주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손아귀에 잡혔다고 느꼈다. 그러나 담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아버지조차 두려워하게 만든 비장의 무기가.
담은 사내를 가로막고 섰다.
― 괜찮아. 겁먹을 거 없대도.
― 포도 먹어 봤어요?
― 포도? 웬 포도?
― 먹어 봤어요?
― 물론이지.
― 그럼 됐어요.
담은 사내의 손을 잡았다. 담이의 손을 잡은 사내는 지금까지 걷던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통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주위가 더워지고 있었다. 장은 그 더위가 두려웠다. 지옥의 화염에 가까워지는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정화가 끝났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였다. 정화가 끝났다면 아버지와 담이 통로의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장은 기는 속도를 높였다.
눈부시고 뜨거운 세상이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열기에 장은 어질했다. 단 한 번 보았던 지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둠 속에서 점멸하던 불빛들 대신 거대한 불덩어리가 떠 있었다.
그것은 책 속에서 보았던,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던, 종말 전의 세상이었다. 장은 연약한 각막을 손으로 보호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의 허리에 차는 잡풀들이 자라 있었고 흉물스러운 폐공장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서 있었다. 그리고 잡풀 사이로 희미하게 길이 있었다. 장은 누군가의 발에 밟혀 쓰러진 잡풀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장은 얼마 못 가 멈춰서고 말았다.
거대한 담장이 길을 잘라먹고 있었다. 담장 아래로 기어서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개구멍이 뚫려 있었다. 장은 개구멍을 통해 담장 밖을 살펴보았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거대한 나무의 가지 아래로 기다란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장은 본능적으로 그 나무가 자신의 굴집을 침공하는 나무라고 느꼈다. 장은 손도끼를 힘주어 쥐고 개구멍을 통과했다.
가까이서 본 나무는 거대한 은사시나무였다. 바람이 불고 있어 은사시나무는 많은 소리들을 냈다. 잎사귀들이 흔들릴 때마다 햇빛을 튕겨냈다. 가지와 잎사귀들 사이로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장은 그 태양이 원래는 지상에서 불타고 있던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저만큼이나 떨어트려 놓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직도 동공이 따가울 정도로 눈부신 빛이었기에 장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장은 몇 번이나 굴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지 아래서 흔들리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얼굴은 원래 얼굴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부어 있었고 코와 찢어진 입에서 흐른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장은 죽은 아버지를 보며 슬펐지만 감격했다. 아버지는 마침내 악귀들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한 뒤 스스로 승천한 거였다.
아버지가 매달린 곳 아래의 풀밭에는 놀랍게도 포도송이가 흩어져 있었다. 거의 짓뭉개진 포도송이였지만 온전한 포도알도 남아 있었다. 장은 그 포도알을 집었다. 포도에서 건포도라고도, 푸룬이라고도 단정하기 어려운 향이 났다. 비유할 수 없었으므로 장은 포도 향이라 정의했다. 장이 포도알을 입에 넣었다. 포도알이 터지면서 입 안 가득 포도의 맛이 느껴졌다.
― 달콤해.
장은 제 입으로 말을 뱉고도 몇 초 뒤에야 자기가 한 말임을 깨달았다. 본능에 가까운, 무심히 뱉은 말이었다.
― 무섭게 달콤해. 아니, 달콤한데 무서워.
바람이 불었고 죽은 아버지가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장은 그런 아버지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성경에서 본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근소한 차이일 뿐이었다. 장이가 상상하던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가지에 매달린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빌린 육신이었을 뿐이므로 담이는 무섭지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운 건 장 제 손에 들려 있었다.
담이의 말이 맞았던 걸까. 장이의 상상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건포도가 부풀기 시작했다. 마침내 표면의 주름이 사라지고 탱글탱글해진 건포도는 정확히 지금 손에 들린 구체의 과일과 같았다. 문득 선악과가 떠올랐다. 만약 이 과일이 성경에 나오는 그 선악과라면 어떡하지? 책에서 본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과일의 맛을 상상해 보았으나 불가능했다. 장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포도알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갑고 매끄러운 질감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포도알을 문 치아에 힘을 주자 달콤한 과즙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 달콤해서 무서워.
담이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포기할 수 없을 그런 달콤함이었다. 백 개만 먹어 봤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장은 포도를 삼켰다.











김동하
작가소개 / 김동하

2012년 《광주일보》 신문문예에 단편소설 「녹」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펴낸 소설집으로는 장편소설 『운석사냥꾼』, 『피아노가 울리면』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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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쓴 글자 천운영 그녀는 발가락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발바닥 오목한 아치 부분에 저릿한 느낌이 올 때까지 발가락을 꽉 오므렸다가 활짝 펴기. 몸의 좋은 기운은 바로 그 오목한 곳에 모였다가 나간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스트레칭으로 잠기운을 지우고 나면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린다. 오전 일곱 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알람이 있는 게 아니라, 알람을 끄기 위해 그녀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두유 만들기. 전날 불려 놓은 검은콩에 호두, 아몬드, 단백질 분말, 오트 우유와 물 한 컵을 넣고 돌리면 두 잔 분량이 나오는데, 한 잔은 아침에 먹고 남은 한 잔은 저녁 식후에 마신다. 콩 불린 물은 따로 담아 머리 감을 때 헹굼 물로 쓴다. 두유가 완성되기까지 15분. 아침상을 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식사는 가볍게. 한 끼 분량으로 담아 놓은 채소 스틱과 아보카도 반 개, 달걀 두 개. 채소는 색과 식감을 고려해 조화롭게 구성하고, 달걀은 현미유를 사용해 프라이를 하거나 수란으로 먹는다. 입안에서 완전히 가루가 되고 곤죽이 될 때까지 적어도 오십 번 이상 씹어 넘긴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소화기가 약해 생긴 오랜 습관이다. 배변은 하루 한 번 아침 식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 내리기 전에 꼭 변 상태를 확인하는데, 색이나 냄새 단단한 정도가 아주 좋으며, 가끔은 그녀가 먹는 양보다 배출되는 변의 양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지 않아도 몸무게는 이십 년째 변함이 없다. 건강보조제는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들로 두어 가지 유행을 따라가지만, 단백질만큼은 꼭 산양유 초유 단백질로 넉넉히 쟁여 두고 먹는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치면 열 시 반. 집에서 노인복지관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 수업은 11시부터 시작된다. 월요일 수요일은 줌바댄스와 밴드 스트레칭. 화요일 목요일은 노래교실. 수강생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하는데, 다섯 강좌 지원에 셋 성공했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실버 줌바댄스는 40명 선발에 지원자가 123명이었다. 점심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 일반 5천 원, 65세 이상 4천 원, 기초생활수급자 무료. 그녀가 천 원 할인을 받은 지는 삼 년 남짓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반찬 구성이 다양하고 맛도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막 무친 겉절이가 그녀의 입맛에 맞는다. 주 고객층은 70세 이상 남성들로 일찌감치 몰려와 줄을 서는데, 그들을 가리켜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혼자서는 해먹을 줄도 모르는 불쌍한 노친네들’이라고 빈정거린 사람은 노래교실 선생이다. 그날 배운 노래의 흥으로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그녀는 그날 배운 노래는 그 시간에 바로 잊어버린다. 노래를 부른다고 흥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흥을 내려고 춤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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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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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백온유 0 세주가 다시 나타난 건 반년 만이었다. 그 애가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난 후 내가 분실신고를 하기까지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세주는 370만 원을 사용했다. 그 돈을 지금까지 분할해서 갚고 있는 내게 이번에는 현금 500만 원을 빌려 달라 찾아온 것이었다. 세주는 오만 원 권이 아닌 만 원 권으로 준비하라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퇴근하는 길에 ATM기가 있는 편의점에 들러 100만 원을 뽑았다. 세주는 화분 밑에 있던 열쇠를 용케 찾아내 나보다 먼저 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당장 가능한 건 이 정도야. 더 이상은 나도 힘들어. 미안해.” 내 눈앞에서 돈을 세어 본 세주는 피식 웃더니 서늘하게 뇌까렸다. “이럴 줄 알았어. 너는 항상 말로 때우려 하지.” 미안하다는 얘기말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렇게 하나마나한 말을 건넨 후에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세주는 내 얼굴에 돈을 던지며 악을 썼다.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하지 마. 정말 미안하면 네가 나한테 이래서는 안 되지. 무책임한 건 네 엄마를 닮은 거지? 네가 멀쩡하게 사는 건 다 내가 봐줘서야. 신랄하게 나를 모욕하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꺼진 것처럼 잠잠해진다. 감정의 낙차가 너무 커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지만 세주의 감정 변화를 따라 동요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새어 나가지 않게끔 최대한 웅크린 채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잠시 혼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던 세주는 곧 이성을 되찾았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근황을 얘기했다.(돈은 한 장 한 장 다시 주워 봉투에 담아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오늘 알코올중독 집중치료센터에서 퇴원했다고. “사실 강제 퇴소 당한 거지. 내가 치약 튜브에 몰래 술을 넣어 갔거든. 정말 필요할 때 한 모금 마시려고. 안 들킬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검사할 줄은 몰랐네. 이번에는 정말 포기하지 않기로 아빠랑 약속했는데 실망이 컸나 봐. 내 전화를 안 받아. 이제 아버지도 포기한 거겠지, 나를.” 나는 세주가 술을 마신 게 아닌지 의심했다. 언젠가부터 세주는 취했을 때보다 취하지 않았을 때 더 횡설수설했다. 오늘의 세주는 발음도 또렷했고 나를 마주 보는 눈빛도 차분한 편이었다. 세주의 상태를 가늠하듯 그 애를 살피다가 거실 테이블 아래에 빈 술병이 놓여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아버지 입장도 이해가 돼. 아버지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그때 그 꼴을 보고도 나랑 내 어머니를 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었어. 너희 엄마랑 너희 가족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겠지.” 삶에서 위독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 근원을 나와 내 어머니로 지목하는 세주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느낀 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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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전예진 나는 작년 가을에 태어났다. 세진이 막 취업 준비를 시작한, 피딱지의 말처럼 영 좋지 않은 시기였다. 오른쪽 코 안쪽에 몸을 늘어트린 피딱지는 세진이 한동안 코 파기를 멈춘 시절을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피딱지의 말에 따르면 세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코 파는 습관을 고쳤다. 고등학생 때 밤샘 공부를 하다 가끔,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코를 후비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자주는 아니었다. 코 파는 습관은 세진의 대학 졸업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학창 시절보다 3밀리미터 더 기른 무자비한 새끼손톱과 함께. 우리 중 누구도 피딱지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지 못했다. 피딱지는 세진의 손길에 조금씩 뜯어졌지만, 남은 손으로 피와 이물질을 그러안아 매번 되살아났다. 피딱지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촐싹거리며 점막을 두들겨댔다. 우리는 점막을 타고 울리는 피딱지의 말을 들었다. 피할 길이 없으니 듣는 수밖에 없었다. 무릇 코딱지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 실린 먼지와 세균을 거르며 생겨나는 존재다, 이 말이야. 이 한몸 바쳐 비강을 지키는 역할이라는 거지. 그러려면 세진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걸러 줘야 해. 공기에 바이러스가 있다? 그럼 잡아야지. 세진이 악몽을 꾼다? 그것 또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야. 피딱지는 사람의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비강 안쪽을 향해 소리치면 세진은 잘못 들은 소리나 이명 정도로 생각하고 애꿎은 귀를 후볐다. 기껏해야 늦었으니 일어나라, 자전거 조심해라, 같은 짧은 말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코딱지가 말을 한다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적어도 막 태어난 나에게는 코 아래 입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엔 혀가 돌아다닌다는 말만큼이나 놀라웠다. 피딱지는 심지어 아주 희미하지만 냄새도 맡는다고 했다. 콧속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고,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듯이 오래 버텨낸 코딱지는 냄새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피딱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또 들었다. 피딱지가 하는 모든 말이 흥미로웠다. 그러다 몇 번의 대학살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던 코딱지들이 몇 초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나는 더 이상 아주 작은 코딱지가 아니었고 피딱지의 말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의 잔소리로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피딱지는 말했다.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작고 그럼에도 또 중요한 존재인지. 그날 오후 피딱지는 새끼손톱에 뜯겨 나갔고 그 말은 피딱지의 유언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많은 코딱지들처럼 나도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이 쫓겨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콧구멍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털에 맺힌 먼지와 이물질을 싸잡아 몸집도 불렸다. 마침내 콧구멍과 비갑개 사이, 그러니까 콧구멍 가장 안쪽 천장에 자리 잡았을 때쯤 내 몸은 우리의 숙적 새끼손톱보다 두 배는 컸다. 어느새 나는 오른쪽 콧구멍에서 가장 크고 오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코끝에 붙은

  • 관리자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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