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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3

  • 작성일 2023-03-01
  • 조회수 2,187

[비평연재]

2023년 비평연재는 두 명의 평론가가 3회씩 연재하며, ‘시대와 작품을 가로지르는 비평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보다 확장된 문제의식을 펼쳐 보인다.





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3




양재훈



사회적 믿음 창출이라는 과제


한국문학사에서 1980년대는 그것이 지나가자마자 일종의 증상을 유발했던 시대다. 1990년대에 이 증상은 후일담 문학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는 1990년대가 일종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말은 1980년대적 문학이 유효성을 상실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테마는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때문에 1990년대 문학은 ‘후일담’이라 불리는 특이한 형태로 출발한다.

후일담 문학은 1980년대 문학과의 단절을 통해 그것을 남겨 두는 역설을 내장한다. 후일담은 지나간 시대를 기념하는 것도 단순히 청산하는 것도 아니다. 후일담은 그 이야기가 속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그럼에도 지난 시간 속에 남겨 둘 수 없는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드러내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1990년대 후일담 문학의 속출은, 1980년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그것이 온당하게 정리된 적이 없음을 증명하는 문학사적 증상이었다. 증상이 주체의 정상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이듯, 후일담은 1990년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1990년대적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속해 있는 시간이었던 1980년대를 억압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1980년대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1980년대를 돌아보는 것은 그 시기가 진보 내지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 의해 움직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조건 중 하나가 동유럽 사회주의 세력의 존재였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독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이념적 거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가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안적 질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주의 이념 혹은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가 이곳과는 다른 질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1980년대가 그토록 쉽게 지나가 버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합이 해체되자, 한국 사회 내부에서 성장해 왔던 사회운동과 그에 기초한 문학이 사그라져 버렸던 것이다. 실상 한국 사회는 오히려 1987년의 개헌을 통해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었고, 따라서 이념적 다양성을 회복하기에 더욱 유리한 상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서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한국의 사회운동은 함께 몰락해 버렸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당대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주의 이념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주된 이념적 거점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당대 운동의 동력은 한국 사회의 변혁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 열망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와 그 이념 안에 욱여넣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의 공간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젝은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실증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공산주의 체제는 공포와 비참을 야기한 침울한 실패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떤 공간, 유토피아적 기대의 공간을 열어 놓았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를 평가할 수 있게 해주었다”1)


1) 지젝, 『시차적 관점』,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574쪽.


라고 말한다. 당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반체제인사들이 “현존하는 공산주의 정권을 본래적 인간 연대를 위하여 비난할 때”,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공산주의 자체에 의해 열린 자리에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세력의 존재가 중요했던 진짜 이유는 그것이 역사의 합목적적 발전 형태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가 ‘전부는 아님(not All)’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믿음과 관련된 문제다. 지금 우리가 한국 사회를 보며 답답해진 것도 그런 문제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개별적 실천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때문에 어떤 실천에 나서고자 하더라도 그 의미와 결과에 대해 생각하면 무기력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어떤 사회적 믿음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비하자면 우리가 현재의 생태적 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커피 브랜드를 선호한다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종이 빨대를 쓰는 내 행동이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변화를 강요하는 강력한 압박의 일환일 수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전자는 어차피 바뀌지 않을 세상이지만 나만이라도 세상에 죄를 좀 덜 짓자는 태도를 넘기 어렵고, 후자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행동에 담긴 믿음에 있다. 물론 그것은 세상과 단절된 믿음일 수 없고, 때문에 개인적인 믿음일 수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과제는 이 사회적 믿음을 어떻게 다시 창출해 낼 것인가에 있다.


새로운 후일담


1980년대를 다루는 작품들을 다시 보는 것은 이러한 믿음의 문제와 관련된다. 1980년대에 우리 문학을 채웠던 열망은 199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사그라졌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체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의 해소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1980년대를 건너온 주체들은 떠나가 버린 1980년대를 보낼 수 없었다. 그들이 지녔던, 이제는 불가능해진 열망을 대신해서 새로이 동일시할 대상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1980년대에 품어 왔던 열망의 가능성이 폐쇄되어 버렸다는 현실 인식과 그것을 간단히 포기해 버릴 수 없는 주체성의 분열을 견뎌야 했다. 이 분열이 1990년대 문학을 후일담으로 채우게 된다.

1980년대적 열망의 좌절이 반드시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익히 알려져 있듯 당대의 문학이 사회적 변혁에 대한 거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듣지 못했던 사소한 중얼거림들을 비로소 듣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거대한 과제에 밀려 한국 문학의 주변에 머물러야 했던 작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나 더 이상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 인식이 전제되어 있는 한 거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이 어떤 가능성의 공간에 대한 믿음을 폐쇄해 버렸다는 것은 1980년대 문학의 명확한 한계를 보여준다. 정신분석학 용어로 말하면 그것은 욕망의 윤리학을 넘어서서 충동의 윤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나타낸다. 욕망이 특정한 대상을 향하는 것과 달리 충동은 그것으로 채워지는 빈자리를 향한다. 욕망의 대상은 충동의 진정한 대상인 공백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미끼에 해당한다. 1980년대의 문학이 충동의 윤리에 도달하지 못했던 탓에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들어선 1990년대의 문학은 사회주의가 사라진 곳에서 그 빈자리에 머무르지 못했다. 때문에 그것은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한 승인이냐 좌절이냐의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물러나 다른 선택지를 찾아나서는 데 실패했다. 1990년대의 후일담은 그러한 좌절의 문학적 표현이었다. 때문에 그것은 죽어버린 1980년대에 대한 애도의 실패를 증언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당대의 대표적인 후일담 중 하나인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나간 시대에 대해 ‘열무싹 같은 슬픔’을 토로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이 당대에 대해 따져 물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지나가 버린 시대라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잊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충분한 애도와 숙고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뿐이었다.

1990년대 후일담의 한계는 대상이 되는 시기가 너무도 가까웠다는 데 기인한다. 그로부터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양진채의 「패루 위 고래」는 이런 다른 기억을 보여주는 새로운 후일담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도저히 포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자리한 ‘똥바다’라 불리는 조그마한 포구를 배경으로 작은 어선에 실려 들어온 고래를 통해 1980년대의 기억을 형상화한다. 주인공들은 같은 서클의 선후배 사이로서 변혁운동에 투신했던 남녀학생이다. 그들은 각자 위장취업 했던 공장에서 일하며 매주 늦은 밤에 만나 자료를 읽고 토론을 했다. 서술자의 자취방에서 토론을 하다 그곳에서 자는 일도 많았고, 서로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술자는 “운동이라는 대의가 성적 욕구를 누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그 무엇이 있었을까”2)


2) 양진채, 「패루 위 고래」, 『푸른 유리 심장』, 문학과지성사, 2012, 234쪽.


하고 묻는다. ‘그 무엇’의 정체는 변혁에 대한 열망과 이를 불온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불안의 합작품이었다. 그것은 서술자가 자취방 마당에 열렸던 앵두를 입에 넣고 “무슨 맛인지 모를 때까지 앵두씨를 빨고 또”3)빠는 행위로 표현되는데, 운동의 대의를 위해 성욕을 절제하는 의식이 아니라 감각적 수준에서 성욕을 초과하는 열망과 갈증이었다. 이 갈증이 해소되지 못한 채 1980년대가 지나가 버리고 만다.


3) 같은 글, 235쪽.



막차가 떠나간 뒤 사회는 급변했다. 우리가 두 손을 꼭 쥐며 가슴 조이며 싸웠던 사명은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이 되었다. 우리 가슴에 남아 있던 그때의 어떤 얘기도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다 후일담이라는 구정물에 처박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순정들이 강간당한 기분이었다.(235쪽)


6월 항쟁과 6・29선언의 합작을 통해 타협적 민주화를 이룬 데 만족했던 이른바 1987년 체제와 그 이후 한국 사회가 변혁운동을 대하는 달라진 시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은 대목이다. 1990년대는 1980년대의 열정을 ‘후일담’의 형태로만 다루며, 여전히 성취되지 못한 변혁의 서사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막막함을 견디며 사회와 동료에 대한 순정을 지켰던 주인공들은 스스로가 순정을 바치던 사회로부터 배반당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썰물 때 물이 다 빠져나가고 남은 갯벌 가운데에 패어 있는, 밀물 때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물길인 ‘골씨’를 타고 들어온 어선에 잡혀 온 고래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작 1미터 남짓한 고래의 초라한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앞에 무력해진 변혁의 열망을 시각화하는 메타포다. 고래는 보신탕 대용으로 15만 원에 팔린다. 서술자는 이 고래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을 투사한다.


고래는 저주파를 보내 서로 교신하는데 대형 선박의 엔진 소리가 그 주파수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래가 아무리 주파를 보내도 그 주파를 듣지 못한 다른 고래는 답을 해줄 수가 없다. 고래는 끝없이 넓고 깊은 바다에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막무가내로 뭍으로 와서는 죽어버린다. (중략) 동해나 남쪽에는 고래고기 전문점이 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겨우 15만 원에 보신탕 대용으로 팔린다니.4)


4) 같은 글, 239~240쪽.



동해나 남해였다면 제 가치를 인정받았을 고래가 인천의 작은 포구에 온 탓에 보신탕 대용으로 팔리는 오욕을 당했듯,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시간에 끼워진 존재가 된 듯한 이질감과 모욕감을 감수하며 1990년대 이후를 살아야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의 존재를 걸고 나섰던 투쟁이 몇 년을 사이에 두고 무의미했던 것으로 판명된 상황에서, 이들은 1980년대의 진지하면서도 고됐던 시간을 잊어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1990년대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존재 증명이 이루어지던 시대는 1980년대였다. 이것이 바로 서해의 작은 포구에 잘못 찾아온 초라한 고래의 메타포가 필요했던 이유다.

이것이 전부라면 「패루 위 고래」는 단지 20여 년 늦게 쓰인 후일담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두고 다시 쓰인 후일담으로서 이 작품은 새로운 후일담의 존재 가능성을 묻는 데로 나아간다. 1990년대의 후일담이 이미 지나간 시대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는 것이었다면, 「패루 위 고래」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더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1980년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주체에게 잊힌 채 각인된 1980년대의 기억이라는 증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행해진다.

1980년대의 기억이라는 증상은 서술자에게서 어린 시절 굴 껍데기 무덤에서 얻은 상처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이 상처는 서술자가 잊고 있던 것으로, 선배와 함께 횟집에 들어가기 전 고래를 만져 보다가 재발견되고 다시 기억된다. 1980년대적 열정의 메타포인 고래를 통해 발견되고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상처는 1990년대의 주체가 잊어버렸던 1980년대의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상처를 얻게 된 강렬한 경험이 왜 기억되지 못했을지 의아해하는 서술자에게 선배는 말한다.


우리 뇌는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기억을 변형시킨다는 거야. 그렇든 그렇지 않든, 너를 있게 해.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것도,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다 너이기 때문이지. 희미해도 자국은 남잖아.5)


5) 같은 글, 231쪽.




이 말은 1990년대 이후 그것이 무의미해진 세계 속에서 잊어버렸다고 해도, 1980년대의 경험이 주인공들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장면은 1990년대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 잊어야 했던 1980년대의 증상적 기억을 되살려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양진채는 증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1980년대를 재의미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선배의 간 이식 수술 경험담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의사 말이 간만 이식하는 게 아니라 영혼도 이식한다는 거야. 내 영혼은 빠져나가고 간과 함께 영혼도 새로 들어온다는 거지. 의사 말이 끝나자마자 내 영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데 그게 묘해. 영혼이 한순간 휘리릭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내가 잡고 있던 내 삶의 중심들이 하나씩 내 몸을 떠나기 위해 나서지. 나는 놓아 줄 수가 없어. 그건 내 존재 증명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니까.6)


6) 같은 글, 236~237쪽.



결국 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움켜잡았던 내 생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게 돼. (중략) 내가 잡고 있던 마지막 삶의 끈까지 놓고 나니까 그제야 편하게 숨을 쉴 수가 있게 되더라고.7)


그런데 이제 몸이 좀 괜찮아지니까, 미안하더라. 내가 끝끝내 붙들지 못하고 놓아버린 내 생의 것들한테 말이야.8)


7) 같은 글, 237~238쪽.

8) 같은 글, 238쪽.



1980년대가 자신의 존재를 구성한다는 통찰과 1990년대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놓아버렸다는 미안함이 ‘똥바다’의 메타포를 통해 제시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고래답지 않게 작고 장소를 잘못 찾아든 탓에 보신탕 대용으로 쓰이게 될 운명이라 해도 고래는 여전히 고래다. 이 고래가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고래라는 데 어울리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감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똥바다로 불리는 작은 포구에도 여전히 배가 드나든다. 한번 뿌리내린 기억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좁고 얕은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온다는 사실은, 억압된 1980년대의 열정이 초라한 형태나마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 속에 살아 있음을 뜻한다.

서술자의 상처와 선배의 간이식 수술에 이어 두 주인공은 포구의 골씨가 메워지지 않도록 길을 내는 ‘준설선’이라는 배에 대해 언급한다. 이 준설선은 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이미지이거니와 이를 통해 1990년대 후일담과 이 작품 사이의 변별점이 드러난다. 1990년대의 후일담은 이제 막 지나간 1980년대와의 단절 속에서 쓰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에 쓰인 「패루 위 고래」는 오히려 1980년대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시간 속에서도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골씨가 메워지지 않도록 해 초라한 포구의 얕고 좁은 골씨로 배가 드나들 조건을 지속시키는 준설선의 메타포는, 1980년대의 기억이 우리에게 되살려지고 재활성화될 수 있는 길을 내는 글쓰기로 나아가리라는 다짐을 드러내는 듯하다. 1980년대와 현재 사이의 단절된 시간을 다시 접속시키며, 이루지 못한 채 묻혀버린 1980년대의 꿈을 지금 이 시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재사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재접속


「패루 위 고래」 이후 양진채의 소설에는 ‘후일담이라는 구정물’ 속에서 1980년대를 건져 올리고자 하는 의지가 담기기 시작한다. 1986년 인천 5・3항쟁의 기억을 2008년 광화문 촛불집회와 연결한 「플러싱의 숨쉬는 돌」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5・3항쟁에 참여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항쟁에 참여한 이유는 변혁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그가 연모하던 여학생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후 사회운동이나 그 유산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2008년 광화문 광장에서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난다. 근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서술자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단하지 않니? 여기 있다가 집에 가면 집에서도 함성소리가 들려. 예전에 우리는 뭐든 조직하려 했고, 이끌려 했고, 선동하려 했는데 참 많이 변했어. 제일 많이 변한 건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이지. 저 아줌마 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야. 그들이 거창하게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제 생각을 한두 마디 하는 것뿐인데 그 말들이 더 가슴을 파고들어. 엄마, 미친 소고기 안 먹을래요. 이런 구호가 얼마나 소박하면서 진실되냐는 거지. 이런 정치 상황이 개그 소재가 되고 패러디가 되고 또 구호 대신 노래 가사가 돼. 요즘엔 그야말로 집회가 아니라 문화제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 참 많이 변했어.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은 맞는데, 펜으로 쓴 기록만 기록인 건 아니지. 아주 조금씩 물살이 바뀌면서 도도하게 흐르는 물이 있는 거잖아

(중략)

내 꿈이 뭔 줄 알아? 이 광장에 나와서 사람들한테 싸고 맛있는 잔치국수를 파는 거야. 다시마랑 양파랑 멸치 잔뜩 넣고 끓인 육수에 차진 국수 가락이랑 김치도 몇 점 들어간 잔치국수 말이야. 배고파서 먹든, 맛으로 먹든 한 그릇씩 사서 서서 후루룩 면발과 국물을 들이켠 다음 광장으로 가는 거야. 촛불을 들든, 깃발을 들든, 노래를 하든 다 같이 모여 춤추는 곳으로. 그러면 나도 앞치마를 풀고 같이 춤추는 거지.9)


9) 양진채, 「플러싱의 숨쉬는 돌」, 『검은 설탕의 시간』, 강, 2019, 169~171쪽.



「패루 위 고래」에서 20대 남녀의 성욕마저 배제하던 지나치게 진지하고 과열된 투쟁의식이 자유로운 축제의 형태로 갱신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양진채는 1980년대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 보이지 않게 잠복하고 있다가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는지 함께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에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2008년 광화문 광장의 자유로운 투쟁을 통해 갱신된다. 그러나 이는 1980년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재접속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갑작스럽게 어떤 가능성의 공간이 닫혀버렸던 1990년대 이후로도 1980년대에 쌓아올린 자산은 모두 허물어지지 않은 채 잠복해 왔다는 것이다. 이전에 열려 있던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울리지 않는 시공간에 잘못 흘러 들어온 고래처럼 왜소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오랜 근대사를 통해 그러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동학 혁명과 3・1운동, 4월 혁명, 6월 항쟁과 1987년의 개헌 등 실패했거나 성공했지만 이내 배반당했거나 적당히 타협해 버린 탓에 의미가 퇴색한 듯 보이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타올랐던 희망은 이내 사그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명 한국 사회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우리는 그렇게 쌓인 자산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6년의 촛불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를 상당 부분 진전시키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적당히 타협하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건만 촛불은 배반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루었던 정치적 진전은 어느새 터무니없이 되돌려졌고, 우리의 마음과 일상에 남아 있는 불씨들은 강력한 백래시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하고 사라진 듯 보였던 과거의 사건과 열망들이 늘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었고, 어떤 계기를 만나면 어김없이 되살아나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끌어왔다. 2016년의 촛불 역시 꺼지지 않고 남아 끝내 우리 사회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토대로 가능한 실천들을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믿음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길이다.











작가소개 / 양재훈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대표평론 「새해가 오게 하려면」, 「반박귀진의 하수들과 철없는 바틀비들」 등.


《문장웹진 202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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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386세대와 패배하지 못한 혁명들의 시차 임세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퇴근 후에 넥타이를 존나 풀고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 곡 워어어어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투쟁도 혁명도 이제는 모두 봄날의 꿈 그리웠던 혁명동지 돈을 꾸러 찾아왔네 골프채로 쫓아내니 마음속이 허전해 내일은 미스 김의 보지 냄새 맡아야지 밤섬해적단, 〈386 Sucks〉, 《서울불바다》, 2010. 1. 중단된 혁명 이제는 진부한 제재처럼 감각되는 ‘후일담’의 환멸과 자조 이후 한국 문학에서의 386세대 재현은 익숙하지만 낯선 ‘진정성’의 풍광들을 펼쳐 보인다. 이른바 ‘포스트-진정성 체제’1)에서의 속물들의 세계상은 기실 그 문제적 주체로 호명되었던 386세대뿐만 아니라, 386세대에 의해 다시 지목당한 ‘20대 개새끼론’의 대상이었던 ‘88만원 세대’에게도 벗어내기 힘든 혐의였다.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20대 빈곤의 원인이 세대 간 착취에 있다는 통찰 가운데 던져진 “토플책을 덮고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2)라는 조언을 (귓등으로) ‘학습’했던 새 세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었고, 어디로 향하였는가. 타 세대에 의한 명명 대신 “나는 씨발 존나 멋진 이십대 청춘”3)이라며 타락한 386의 ‘흘러간 청춘’을 조소하던 20대는 어느덧 MZ세대의 선봉으로 싸잡아 묶여진 채 40대의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화’라는 ‘명분’ 위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모두 쟁취한 것처럼 조롱되는 386세대에 대한 냉소는 오늘날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라는 강력한 시대정신”4)을 따르겠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의 취임사로 구현되며 동세대 정치인들의 반발과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5)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386세대가 이룩한 ‘민주화/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오염되고 폄훼의 대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민주화 시키다’라는 표현은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던 20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강제로 억압하다’는 조소의 뜻을 지닌 채 활용되었다. 입으로는 ‘케케묵은’ 투쟁의 추억을 타령하며 실제 삶에서는 동지를 배신하고 돈과 섹스의 욕망을 좇는 운동권 세대를 저격한 〈386 Sucks〉의 면면은 새로울 것도 없는 386의 전형(stereotype)을 노래한다. 그런데 이 오래된 냉소의 역학 속에서 눈

  • 관리자
  • 2024-07-01
오염, 오류, 오독

오염, 오류, 오독 - 소설이 수행하는 ‘다시’ 황유지 마들렌을 먹으며 과자 부스러기와 차 한 모금이 어우러진 달콤한 환기 속에서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일은 마르셀에게 행복을 준다. 그러나 발벡의 호텔방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문득, 할머니가 신을 벗겨 주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일, 그것은 “고통스러운 소멸”을 확인시킬 뿐이다.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이 일화는 과거를 부르는 일이 각기 다른 정서를 환기함에 대한 예시로 내밀어지며 ‘기억’에 착종되는 다양한 감정이 주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넌지시 묻는다. 소멸의 확인도 그렇지만 미완, 불완전, 불만족인 채로 내버려둔 사건에 대한 기억의 소환 역시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건 엄연히 그 일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라 모종의 감정적 자원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다시’는 레트로로 나타난다. Retrospect, ‘추억’에 뿌리를 둔 이 말은 패션, 음악, 영상부터 먹거리, 금융상품에 이르기까지 그 반경을 확대하며 과거로 우리의 기억을 끌고 간다. 과거의 소환은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환각제이자 자본주의라는 무한한 기계적 힘에 대한 제동, 그 중단의 본능적 발현이다. 이런 레트로는 과거에 대한 향수, 노스탤지어의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노스탤지어란 ‘되돌아가는 일(nostos)’을 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아픔(algos)’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레트로는 돌아갈 수 없는(가본 적도 없는) 시절을 향한 자본주의적 환각제이다. 프루스트의 위대한 주제가 사물들을 처음 경험할 때의 무능력이라 파악하는 프레드릭 제임슨은 진정한 경험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의도하는 동안, ‘눈가’를 통해 온다면서 그 가능성을 글쓰기에서 찾는다. 기어이 돈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환각성 추억과는 달리 기억을 통한 글쓰기는 상실한 것을 복원하려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랄 수 있다. At the corner of eye, 거기가 바로 진정한 경험이 되돌아오는 자리로 가장 의도적인 두 번째 경험, 글쓰기는 그 형식이 된다. 2) 글쓰기는 행해짐과 동시에 복수의 행위자를 탄생시킨다. 쓰는 자와 읽는 자,3) 이는 시차(時差)와 함께 탄생하며 텍스트가 현실과 맞닿은(혹은 결별한) 그 부위에 필연적으로 틈을 만든다. 대체로 모든 문제는 이 ‘틈’에서 태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틈은 이미 분리, 분절된 것으로 존재하면서 거기에 무엇을 메우든 결코 원본의 형태를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 원본처럼 복원한 것조차 복사본일 따름이라 틈은 그 자체 오류가 되는 것이다(가령 원본이 틀린 것이라 할 때도 제대로 수정된 본은 오류가 된다. 틀린 원본에 대해 기어이 맞추어진 진실

  • 관리자
  • 2024-07-01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이소 1.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피해자의 억울함에 몰입하고, 많은 경우 나를 포함하지 않은 채 ‘어른들’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 2014년 4월 16일,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어른의 자리에서 사건을 경험했다. 아이의 자리가 아닌 해운회사의 직원이나 공무원이나 인솔 교사의 자리에 서 있었다. 항해사나 해경보다 교사인 나를 떠올리기가 더 쉬웠다. 누구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전문가를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그 배에 탔다면 안내 방송을 충실히 따르며 어른들과 시스템을 믿으라고 아이들을 다독였으리라는 걸 알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완벽히 어른이었다. 굳이 괴로웠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그때는 모두가 괴로웠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음해 문학을 전공하러 대학원에 들어갔다. 누군가 공부라는 게 어떤 실천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답변도 떠올릴 수 없다. 나부터가 그런 희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전처럼 살 수 없을 뿐이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습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내게는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했다. 딱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2. 지금도 교사인 나를 상상해 본다. 항해사나 해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과 위치가 내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사고실험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과 달리 미성년인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흔히 이중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 전교조와 교총을 교대로 인터뷰하는 기사의 관례처럼, 전통을 수호하는 보수적인 교사와 변화를 추동하는 진보적인 교사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그려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제도가 부여한 의무와 규범을 학생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만큼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명의 교사를 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이 경우에도 그의 심리적 갈등은 그의 교육방식에 딴지를 걸 더 완고한 교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전위적인 존재에 도달할 순 없지만, 마땅히 후위의 역할은 초과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교사만 그럴 리는 없다. 모든 직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용범위 안에서 가까스로 변주를 시도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며 유사한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는 자신의 의무를 익히 아는 어른의 상징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점점 학생보다 교사에게 더 쉽게 이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오래되고 흔한 방식의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이 더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시대가 변한 줄 모르는 늙은 교사들은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없다. 보수적인 교사와 진보적인 교사의 대립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갈등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재생산 메커니즘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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