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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 작성일 2013-02-01
  • 조회수 893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이글거리는

 

   이준규

 

 

 

 

   이글거리는 불면의 밤이 진행한다
   두꺼운 안개가 나뭇잎을 땅 쪽으로 조금씩 밀고 있고
   나는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리라
   요란한 치장을 하고 문을 나서는 휴일의 모든 창녀처럼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 감각의 보푸라기를 일으키는
   무너져 내리는 시간의 나선형 계단에서
   소름끼치게 너를 다시 만나리라
   너의 출렁이는 싱싱한 육체의 밤
   무한히 커지며 이지러지고 물방울 돋치는 새벽
   뒤통수에 뜬 달
   그러나 아주 작은 별 하나도 없다
   어찌 자연의 광휘를 노래하리
   새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나
   이상한 기계들의 숨가쁜 눈빛
   아직도 밤하늘을 배회하는 어색한
   기쁜 신의 종족들
   결코 상이 되지 못하는
   어슬렁 배회하는 느낌들
   너라고 불러 보는 부름의 짖음의 명확한 끝
   밤의 차가운 기운을 쥐어짜는 허리 삔 공간 속에서
   투명하게 언어를 움직이고자 하는 불가능한 기획의 막바지
   언제나 출발선에 있고 언제나 문 밖에 있는
   당신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뜨거움
   자살 같은
   벼락같은
   마약의 시공 같은
   그러나 나는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리라

 

– 『흑백』(문학과지성사, 2006)에 수록

 

 

   추천하며


   시인은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일에 대해서 쓴다. 시를 쓰는 일을 주로 ‘시를 짓는다’고 하는 연유를 이 시에서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시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백지와 연필이거나, 작은 커서가 깜빡이는 모니터와 키보드일 수 있겠으나 그 모든 도구들이 일단은 무용해 보인다. 당겨 말하면 이 시인은 활자를 나열하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활자의 반대편에 있는 듯한, 형언할 수 없고 그리하여 사로잡히지 않는 어떤 이미지들과 격조 없이 어울려 듦으로써 ‘시’라는 시공을 짓고 있다.
   “불면”이나 “마약의 시공” 같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라는 이름의 세계가 명료한 의식이나 감각과는 다른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시가 겨우 그려내 보이는 몇 가지 흐릿한 이미지들을 조합해 볼 때, 여기서 시라고 불리는 시공은 이미지를 초과하는 촉각의 소여들로 이뤄진 듯하다. “결코 상이 되지 못하는/ 어슬렁 배회하는 느낌들”은 명확하고 명료한 것의 극치에서 그 극단과 만나버린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시각적인 차원에서 어떤 대상을 최대한 선명하게 보고 명확하고 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할 언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시인은 어렴풋하게 제 주위를 배회하는 느낌들 속에서 그 한순간을, 벼락과 같은 그때를 노려보고 있다.
   한 편의 시는 이렇게 최대의 의도와 최선의 무의도가 맞붙는 지점에 처한 시인의 몸으로 스며들고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겠다”는 저 시인의 문장은 시작(時作)의 선언이자 후언이라고 하겠다. 시인이 의도한 때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때까지를 한순간으로 갈음하는 시간을 짓는 일이 곧 시를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2월호》

 

 

 

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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