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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화수분, 도스토예프스키

  • 작성일 2008-01-02
  • 조회수 2,372

 

영감의 화수분, 도스토예프스키




이나미




헤르만 헤세는, 도무지 삶이 비참하고 고통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삶 전체가 욱신욱신 쑤시는 상처로 여겨질 때, 절망만 가득하고 희망이 사라져 버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라고 했다. 비참한 상태에서 헤어나 고독하게 다리를 절면서도 삶을 거칠고 잔인하다기보다, 아니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렸을 때 비로소 이 끔찍하고 훌륭한 작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고도 했다. 그때서야 우린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련한 악마들의 가련한 형제가 되어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과 함께 숨죽인 채 삶의 소용돌이를 응시하며 영원히 돌아가는 죽음의 물레방아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고. 그런 다음에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로와 사랑에 귀 기울이게 되며 깜짝 놀랄 정도로 깊이 있는 세계, 혹은 지옥과도 같은 세계의 놀라운 의미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내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영감의 화수분이고, 고독하거나 글이 풀리지 않을 때 수시로 다시 읽곤 한다. 그러면 기꺼이 라스콜리니코프와 이반, 스타브로긴, 표도르, 무이쉬킨이 손을 내밀어 부조리한 내면의 분열을, 실존과 자학의 면면을 보여준다. 내가 인간의 양면성, 이중인격에 관심을 갖고 내 작품 속에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러시아 문학,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 사건을 보면서 나는 사이코 패쉬를 주인공으로 하는 범죄소설을 구상했다. 단순 살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다분히 유전적 기질을 타고 났으면서 환경에 좌우되는 인간이 한계 상황에 몰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근본 원인을 천착하는 과정이 담겨야 했다. 성선설을 믿는 나로선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 철저하게 계획된 악마의 장난이 아닌 다음에야 범인의 심층 무의식에  켜켜이 똬리 튼 증오와 뼈저린 고독, 성장 과정이 궁금했다. 범죄보다 그런 여러 가지 주변 상황에 초점을 맞춰 조각 그림 맞춰 가듯 써 보고 싶었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동안 자연스레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떠올랐다. 곧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오한 사상과 관념, 시대를 반영하고, 앞날을 예견한 작가적 혜안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휘청였다. 리얼리티가 번뜩이는 현실과 추상적인 관념의 내면이 교차되면서 인간의 무의식에 현미경을 들이댄 듯 탁월한 심리 묘사와 긴박한 구성, 하나같이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얼키고설킨 소설을 써낸다는 것이 나로선 불가능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어쨌거나 초안을 잡는 의미로 단편을 써서 발표했고 언젠간 장편으로 늘려 쓸 계획이며 구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천후 작가다. 간난장이 자녀가 질병으로 갑자기 죽었을 때 빼곤 늘 창작을 했다. 페체르부르크의 어두운 뒷골목이나 혹한의 시베리아 마룻방, 도박장이 있는 도시의 호텔방, 어디에서건 책상과 펜만 있으면 미친 듯 작품을 썼다. 궁핍과 간질, 도박으로 인한 빚 때문이든 악덕 출판업자와의 불리한 계약 조건 때문이든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이런 광기와 열정이 평생 괴롭히던 궁핍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작가로서 그는 매순간 행복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말년의 모습이 담긴 그의 초상화를 보고 있다. 평생 동안의 상처와 불화, 파멸을 감싸안은 채 죽음을 앞둔 그는 어딘가 음울하고 소심하며 그늘진 표정이지만 인간의 영혼을 투시했던 작가답게 상대를 꿰뚫을 듯 쏘아보는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다.《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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