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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계보

  • 작성일 2008-01-02
  • 조회수 3,144

영감의 계보

?유럽 여행기



권리




정열은 짧게 지나가고 사랑은 영속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 짧은 정열을 일생 동안 지니며 살아가야 한다. 바로 예술가들이 그러한 족속이다. 짧은 정열을 다른 말로 영감이라 해도 좋으리라. 영감은 빛과 같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지나가기 때문에 타율 좋은 예술가들만이 그 영감을 정확하게 때릴 수 있다. 더욱이 그런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는다. 따라서 영감을 받기 직전의 예술가들은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생 동안 여러 번 긴장할 기회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반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그림이 그려진 껌 종이까지 모았었다. <해바라기> <모나리자> <독서하는 소녀>등의 명작이 상업적인 제과 회사의 의도에 따라 조악하게 변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릴 때마다 마구 설레어서 어쩔 줄 몰랐다. 이때의 긴장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유지되었다. 그림 안에서 어떤 ‘진정성’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쉽게 그 작품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만일 진정성이 없다면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영감에서 탄생하지 않았으므로 깨끗이 그에 대해 잊어 버린다. 요컨대 나에게는 완벽한 영감에 대한 믿음이 있다. 가령 나는 카뮈가 『백경』을 읽고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페스트』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영감의 실체를 확인한다. 영감은 허먼 멜빌에서 알베르 카뮈로 옮겨 왔을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영감이냐, 아니냐를 가름할 때는 오로지 느낌에만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감이라는 것 자체가 뚜렷한 형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느낌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감은 화석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머물러 있다가 다시 떠난다.

나는 영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늘 궁금했다. 가령 가만히 길을 걷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이 생각은 대체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을까. 카뮈에서 허먼 멜빌에서 또 도스토예프스키로…… 하는 식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의 영감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진정한 기원은 음악이나 미술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인간의 연상 작용과 반대 순서로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내 영감의 계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2002년 9월에 유럽 여행을 떠났다.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 대신 기차를 선택했다. 속초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7박8일 간의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갔다. 일주일간 꼬박 열차에 갇혀 있으면서 내가 하는 일은 오로지 먹고 자고 볼 일 보는 게 전부였다. 나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두 발 달린 포유류 동물일 뿐이었다. (계속 자기만 하니까 배로 기는 포유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내가 한 일은 독일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었다. 그곳은 당시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게 첫 영감을 준 책은 『데미안』이었다. 어려서부터 세계 문학, 특히 유럽 문학을 끼고 사는 우리나라 소년·소녀들에게 유럽은 적지 않은 환상을 안겨 준다. 내게도 비슷한 환상이 있다. 나의 가슴을 항상 뛰게 하는 이들은 대체로 유럽인들이다. 또한 오랑이나 파리, 혹은 더블린이나 런던의 공기는 서울과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사대주의적인 환상이 있었다. 쾰른이나 프랑크푸르트도 분명 그 환상의 공기 안에 속한다. 그 여행에서 처음 만난 예술가는 괴테였다. ‘괴테 하우스’는 당시 작가를 꿈꾸던 사람이 순례해야 할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괴테가 살던 집에서 나는 그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과거에 누군가 살던 집이었고 괴테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 이후 나는 ‘무슨 무슨 하우스’라는 곳에는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대신 작품과 오롯이 조우할 수 있는 박물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녔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각별히 애착이 갔던 곳이다. 껌 종이에서만 보았던 작품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나는 6개월 만에 돈이 떨어져서 유럽을 떠나야 했다.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마음속의 유럽은 ‘라퓨타’처럼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2007년 8월에 다시 유럽을 밟게 되었다. 과거 여행에서 인연이 닿지 않았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토마토처럼 굴러다니다가 이번에도 우연처럼 독일에서 첫 영감의 대상을 만났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과는 달리 더 이상 독일어나 독일의 문학 작품에 별 흥미가 없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나 엘프리드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과도한 철학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몇 번이나 책에서 손을 놓았었다.) 그 대상이란 바로 케테 콜비츠다. 그녀는 양차 대전에서 아들과 손자를 잃고 반전 그림을 그리다가 히틀러의 억압을 받았던 인물이다. 특별히 그녀의 그림은 우울하고 슬프다. 죽은 아이와 한 침대에 잠든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가 모성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말해 준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강인하고 전투적이면서도 부드럽다. 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성에 대해 나는 절대적인 신비를 느낀다. 나는 그녀의 조각 작품 <피에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참담함보다 은은함이 담겨 있다. 많은 이들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언급하지만 나는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에서 더 많은 감동을 느낀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녀의 직접 경험(즉, 자식을 전쟁으로 잃어버린 것)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탓이다.

나는 독일을 여행하면서 『생의 한가운데』와 같은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왜 니나가 그토록 삶에 특별한 집착을 느끼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나는 니나의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행복은 어떤 것에 몰두할 때 나온다는 화자의 말을 보며 나는 여행에 빠진 나도 행복한 사람 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자주 듣곤 했던 이상은의 <생의 한가운데>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녀도 니나의 삶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타인의 영감을 받은 또 다른 타인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에 소개할 두 사람도 독일어권 작가에 속한다. 한 사람은 서른 이전에 짧은 생애를 마친 에곤 실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일흔이 넘도록 장수하다가 2000년에 사망한 훈데르트 바서다.

나는 에곤 실레에 대해 조금 반감을 품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한국에도 엄청나게 많은 팬을 갖고 있는 행복한 화가임이 틀림없지만, 나는 그 팬의 대다수는 실레의 그림보다 그 삶에 경도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을 종종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가리키는 수식어 가운데 ‘불꽃같이 짧은 생애를 살다 간’이란 말이 자주 쓰이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불행하다는 브레히트의 말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갤러리와 체코의 체스키 크루물로프에서 목격한 실레의 그림에서 나는 그에 대한 모든 반감을 확실히 떨쳐 버렸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보고 느낀 것은 ‘쥐어짜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쥐어짜낸 것이 아니라 가슴을 쥐어짜냈다는 의미이다. 작품을 그리면서 에곤 실레는 계속 꾸준한 고통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것은 순수한 20대 청년이 느낄 수 있는 고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린 여자애들을 발가벗겨 그림을 그린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이 항의할 때마다 느꼈던 반항정신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에곤 실레는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의 전형으로 읽힌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인물들에 대해 굉장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곤 실레의 그림은 얼핏 보면 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추함 속에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이란 내가 앞서 말했던 진정성이다. 진정으로 이 사람은 그림을 그렸구나, 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느낀다. 가장 내 가슴에 와 닿았던 그림은 <추기경과 수녀>와 <죄수>라는 그림이다. 대체로 어두운 그림을 많이 그린 그에게 반사회적인 테마는 아주 일상적이었으리라. <추기경과 수녀>는 말 그대로 추기경과 수녀가 마치 사랑을 하는데 계속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죄수>는 1급 지체장애인처럼 사정없이 꼬여 있는 죄수의 몸을 표현한 그림이다. 에곤 실레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비틀린 몸’은 내게 ‘영혼의 꼬임’과 같이 생각되었고 한동안 그 그림들을 본 충격으로 인해 모든 사고 활동이 멈추었다. 이탈리아의 바르베리니 미술관에서 <베아트리체 첸치>그림을 보고 쓰러진 스탕달 때문에 ‘스탕달 신드롬’이란 말이 생겼다고 하는데,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작품을 쓰려고 한다. 그것은 『달과 6펜스』처럼 예술가 소설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식이 담긴 소설이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는 내가 당분간 계속 붙잡고 싶어 하는 주요한 테마다.) 

 

 

에곤 실레는 설렘과 충격의 연속이었던 반면에, 훈데르트 바서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훈데르트 바서의 화집을 사 모으는 등 그의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그림과 건축물은 마치 한 편의 노래와 같다. 터치 하나하나에 율동감이 넘치고 경쾌하다. 나로서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을 때의 느낌이 든다. 그래서 유독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는 그 노래를 자주 듣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상실의 시대』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을 때마다 하루키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의 어떤 점에서 영감을 받아 그런 작품을 썼는지 궁금했다. 꽤 오래 전 어느 문학 사이트에서 여행 제안서를 공모한 적이 있었다. 만일 당선이 되면 실제로 그 여행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특혜가 주어졌다. 그때 나는 너무도 당당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거리를 작가와 함께 돌아다닌다는 내용의 황당무계한 계획을 짰다. 결국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고, 몇 년 후 나 혼자 그의 카페가 있었다는 곳에나 한두 번 찾아갔을 뿐이다.)

비틀즈의 노래나 하루키의 글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나는 바서의 그림을 본다. 동화적인 외피와는 달리 그의 작품 저변에는 철학적인 사상이 깔려 있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의 카페에서 나는 바서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고 오로지 곡선만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림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인간이 만든 의자와 책상, 텔레비전과 집들은 모두 딱딱한 직선으로 되어 있다. 직선이 가장 ‘편리한’ 형태라서겠지만, 그런 편리성을 추구한 인간에게 남은 것은 파괴된 자연과 생태계뿐이다.) 그래선지 그의 그림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린 듯 문어처럼 멋대로 생긴 사람이나 찌그러진 집, 원형으로 생긴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생전에 일본 여자와 결혼할 만큼 아시아를 비롯해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었다. 거친 경험을 하고 할아버지로 죽으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끝까지 간직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서 하우스에 온 사람들은 언제나 즐거운 마음이 된다. 그들은 훈데르트 바서의 동심을 고스란히 느끼고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라는 위로를 받고 그곳을 떠난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설명할 사람이 남았다. 이탈리아에서 다 빈치는 레오나르도로 불리지 않고, 라파엘로는 산치오로 불리지 않지만, 유독 이 사람만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부오나로티’가 아니라 ‘미켈란젤로’다. 이것만 봐도 이탈리아인들이 미켈란젤로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유럽 여행 두 달 만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았다. 두 달은 곧 내가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종교화를 보아서 이미 그런 그림에는 질릴 대로 질렸던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작품을 대한 10월 22일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혀서는 안 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보고서 나는 지난 29년간의 인생을 후회했다. 이런 그림을 이제 보게 된 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알 수 없었다. 바티칸 시티의 투어 가이드는 미켈란젤로를 ‘미친 젤로’라고 부르며 한 인간이 4년 동안 눈이 파이고 어깨가 돌아갈 때까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에 대단한 경외심을 표했다. 가이드 선생은 인간 미켈란젤로를 거의 신격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가이드가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몸을 하고 지상에 내려 온 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좀 더 냉정히 말해 미켈란젤로가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 모든 욕망을 잠재운 인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빚을 떼일까 봐 전전긍긍하던 사내였고 자신을 손가락질하던 사람을 자신의 그림으로 복수해 버린 가냘픈 인간이었다. 4년간 혼자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고집스러운 성격 탓에 아무도 그와 작업을 같이 하지 않으려 했던 탓이었다. 요컨대 그의 고난은 인간적인 결함, 즉 아집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십자가를 진 신의 아들의 고난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목이 부러져라 올려다보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람들은 그야말로 입을 헤벌린 채 천장을 올려다본다. 어쩌면 인간의 목이 천장으로 향할 때 입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라고.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목이 아파서도 아니었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떨어지는 게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석양의 하늘을 찬탄하고 고요히 두 손을 맞잡고 알 수 없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싶은 심정과도 같은 것이다.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를 그의 그림에 비유하면 될까. 아니면 아란 아일랜드의 순수한 바다와 하늘을 비유하면 될까. 도무지 1인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그의 그림을 500년이나 지난 뒤 보고 나서야 감탄하게 되다니. 나는 인정도 아니고 경외도 아니고 그저 감탄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유럽을 세 달 가까이 여행하면서 크게 느낀 게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현대 미술관마다 앤디 워홀 작품이 너무나도 많이 깔려 있다는 점과 또 현대 예술의 허구성에 대한 느낌이다. 현대 예술은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 없을 정도까지 무식함과 안이함의 극치까지 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머리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응석쟁이들이 근친상간과 자기 복제를 통해 카르텔을 형성하는 현대 예술. 500년 전의 그림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무조건적인 복종을 모던 아트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난 원래 바로크, 르네상스 등의 고전 예술을 배척하는 사람이었다. 그 답답한 형식주의에 질려 버렸고 현대 예술의 무형식과 자유로움, 그 변태적인 잘난 척 등에 경도되어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시기를 거치고 난 뒤 다시 미켈란젤로를 접하고 나자 나는 바다 한 가운데서 잠깐 의식을 잃고 막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세상이 온통 푸르게만 보인다. 인간의 치열함과 극한 정신은 늘 감동을 주는 모양이다.

가이드 선생은 바티칸 시티 투어를 마치고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거장은 500년 후의 평범한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요.”

나는 <피에타> 앞에서는 그다지 많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과거에 한 청년에 의해 테러를 당해 딱딱한 유리 안에 갇혀 있는 탓이기도 했고 케테 콜비츠에게서 이미 영감을 받은 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기억할 것이다.

아직도 언급하지 않은 예술가들은 많다.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를 하는 그래피티 예술가, 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예술가, 사진으로 그리면 훨씬 잘 표현될 것 같은 그림을 팔고 있는 예술가 그리고 연예인의 사진이나 관광객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서 먹고 사는 예술가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는 예술가는 곧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더 슬픈 일은 그런 류의 예술가들에게서는 어떤 ‘혼’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혼’대신 ‘재능’을 팔고 있다. 그 재능은 5유로나 10유로 값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예술 활동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의 활동만 보건대 그들이 개인 아뜰리에가 아닌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화가들만 언급했지만, 사실 그런 것들보다 내게 더 많은 영감을 준 사람들은 역시 작가들이다. (내게 그림은 이미 취미의 영역으로 갔지만, 글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과거에 읽었던 작가들을 다시 읽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생의 한 가운데』를 비롯해 카뮈의 책들에 나는 점점 빠지고 있다. 카뮈는 오래 전 『이방인』을 접했을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다. (예전에 한국 작가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1위에 뽑혔던 게 『이방인』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미 그 책을 다섯 번도 더 넘게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그리고 나이가 들 때마다 작품은 새롭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이방인』과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나는 작가가 된 이후로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그 질문은 내가 20대 내내 계속 탐구하던 질문이기도 했던 터라 나는 되는 대로 대답하곤 했다. 분명 다자이 오사무나 피츠 제랄드, 보르헤스도 엄청나게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카뮈의 작품을 읽으면서 점점 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해 온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도 내내 오랑과 알제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알제리에 가는 시점은 나의 긴 여행 일정상, 중동과 아프리카를 지나서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 닥쳐야 할 일이기도 하다. (2006년 ‘카뮈 전집’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이 알제리 여행기를 펴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야 보게 되었는데 내년에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꼭 읽어보고 싶다.)

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은 환상을 깨는 일과도 같다. 내가 꿈꾸었던 런던이나 파리, 더블린은 생각처럼 환상적이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오늘날의 그 도시들은 부랑자와 찌그러진 콜라 캔으로 지저분한 전형적인 코스모폴리스일 뿐이다. 환상이 무너져 가면서 나는 내가 지나치게 유럽의 도시들을 편애해 왔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29년간 자라 온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디에도 특별한 도시란 없다. 내가 특별한 의미와 시선을 갖고 대하는 곳만이 특별한 도시가 된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서울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곳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빈부격차는 심하고 욕설이 난무하면서 동시에 인정이 넘치고 화사하고 세련되고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늘 떠나고 싶기만 했던 도시가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성숙이란 것이 환상 대신 현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 나는 분명히 여행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을 경계로 한 이 기나긴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얼마 전부터 여행기를 바탕으로 결말을 알 수 없는 장편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소설을 쓰는 내 성격상 이런 식의 연재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은 인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험난한 파도이고 가파른 해협이고 좁고 비탈진 도로이며 세상은 언제나 과도기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영감의 계보를 찾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여행 내내 계속될 것이다.《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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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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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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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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