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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작성일 2009-02-24
  • 조회수 3,321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예술위원회 선정 2008 ‘올해의 시’ 수상자 특별 대담

 

 

대담 문인수(시인)

진행?정리 이선우(평론가)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이선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선우입니다.

문인수 반갑습니다. 문인수입니다.

이선우 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가 선정한 2008 ‘올해의 시’에 선생님의 시집『배꼽』(창비, 2008)이 선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금메달을 타게 되셨는데,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인수 축하 고맙습니다. ‘올해의 시’는 매분기별 리그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상인데요. 많은 문인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상이어서 다른 상에 비해서 좀 더 다른 고마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선우 ‘올해의 시’ 뿐 아니라, 그동안 여러 상을 타셨거든요. 살펴보니까 그동안 아홉 번이나 상을 타셨습니다. 96년 대구문학상을 시작으로, 2007에는 미당문학상을 비롯해 상을 네 번이나 타셨어요. 그래도 그때마다 기분이 다르고 색다른 심회가 있으실 것 같아요.

문인수 상은 탈 때마다 기쁘죠. 상은 일종의 칭찬 아닙니까. 격식을 갖추고 상금이 있고 상패가 있는, 박수가 있는 공식적인 칭찬이서서 기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괜히 갖추어서 하는 대답이 아니라, 탈 때마다 민망합니다. 과연 내가 탈만한 사람인지, 작품에 대한 자기반성과, 약간의 가책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도 동반하는 기쁨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선우 어깨가 무거우시겠지만, 상을 주시는 분들은 그만큼 시가 좋아서 드린 것이니까 가책을 느끼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선생님 시집을 꼼꼼히 다시 읽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시편들이 참 많습니다.

문인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시를 떠나 시와 함께 시로 돌아오다

 

 

이선우 상복이 많다고 말씀드렸지만, 등단을 85년에 하셨어요. 그러데 처음 상을 타신 것은 96년이고, 본격적으로 상을 타신 것은 2000년대 들어서거든요. 그러니까 처음 10여년 정도는 상을 못 타셨고, 물론 평생 상을 못 탄 시인들도 많이 있지만, 주목도 많이 받지 못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등단도 늦게 하신 편인데, 한동안 주목도 받지 못하셨으니 외로운 시간이 길었을 것 같습니다. 힘들지 않으셨나요?

문인수 글쎄. 저는요. 대답을 멋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상이라고는 염두에 전혀 없었습니다. 시 쓸 수 있는 기능이, 약간의 능력이 저에게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대만족이었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혼자서 작업할 내용이 있다는 것 그 능력만 해도 힘이었고, 시와 함께 뒹굴면서 시를 즐겼다고 할까요. 시와 함께 노는 세월이, 문학외적인 상이라든지 영광이라든지 이런 것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시 쓰는 것이 좋았고 보람 있었기 따름이었죠.

이선우 어릴 때부터 계속 시를 써오셨던 건가요?

문인수 네. 아주 어릴 때부터 시를 썼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썼으니까요.

이선우 학창시절에 이미 『학원』 같은 잡지에 발표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등단은 왜 그렇게 늦게 하신 건가요?

문인수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왜 그랬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후회스러운 대목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의 거름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남들 다 겪는 문학 소년시절, 문학 청년시절을 제대로 겪었지요. 그런데 군에 입대하던 20대 초반부터는, 글쓰기는 했습니다만, 문학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라든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든지 이런 것으로부터 일정하게 멀어졌어요. 그러다보니까 문학하고는 관계없는 일들에 종사하게 되었고, 문학하는 자신의 내적 부추김이 없이 ‘옛날에 내가 글을 썼었지’하는 향수만 있었지 문학적 환경에서 멀어져 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글쓰기를 깜깜 잊어먹고 또 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갈망을 까먹어버리고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서 그야말로 늦깎이로,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데뷔하게 됐습니다.

이선우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잊고 사시다가 어떻게 다시 시를 쓰고 데뷔를 하게 되셨나요. 포기를 안 하시고요?

문인수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엉뚱한 방향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문학을 계속 하는 분들은 대다수가 제때 학업을 마치고 문학과 인접해 있는 직장을 얻습니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국어선생님이 된다든지, 신문사에 들어가 문화부 기자 노릇을 한다든지, 잡지사나 출판사에 들어간다든지. 글쓰기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면서 문학판에서 발을 빼지 않고 문학에 대한 열망이나 데뷔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면 대개 다 이루어지는데요. 저는 군 입대와 더불어 글쓰기를 등한시하다가 군 제대와 더불어 엉뚱한 직업직종에서 헤매는 통에 본격적이고 진지한 문학을 놓쳐버렸죠. 헌데 그것이 오히려 저한테는, 제때 데뷔를 하지 못한, 순전히 내 탓인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동안 열심히 하지 못했던 글쓰기에 더욱 분발해서 매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선우 주위에서 혹시 등단을 해라, 시를 계속 쓰라고 부추기신 분이라도 있으신가요?

문인수 - 문단, 문학판, 문학적 환경으로부터는 스스로 내뺐습니다만, 소위 골방문학이라고 얘기하는, 혼자 꿇어 엎드려서 뭔가를 끼적거리는 생활은 계속 했었고, 그래서 가족들이, 구체적으로 제 와이프가 독려를 했습니다. 어느 날 혼자 글을 쓴다고 앉아있었는데, 퇴근한 와이프가 대구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을 한 부 내 앞에 던지면서 ‘당신도 글 쓴다고 늘 그렇게 혼자 앓지만 말고 이런 사람들처럼 신문에도 나보고 그러시오’ 하는 겁니다. 내가 시인이 되면 자기에게는 더 큰 기쁨이 없겠다고요. 그 신문에 와이프의 동료 교사가, 제 와이프가 초등학교 교직에 있습니다, 여성생활 수기에 당선돼 글이 실렸어요. 일반인에게는 큰 영광이죠. 그래, 그럼 나도 시인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투고를 했는데 당선 통지를 받게 된 거죠. 사실 한 번 낙선을 했어요. 낙선했을 때나 당선했을 때나 와이프에게는 투고했다는 말을 안했어요. 84년도 투고를 했는데 85년도 연초에 당선통지를 받고, 와이프와 제가 합창으로 ‘만세’를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이선우 사모님께서, 다른 분들은 남편이 시를 쓴다고 하면 다 말리실텐데, 독려를 하셔서 시인이 되셨군요. 사모님께 감사를 해야겠네요. 저희가 이렇게 좋은 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다 사모님 덕이니까요. (웃음)

문인수 오늘 받게 될 금메달도 와이프 목에 걸어주기로 이미 예약이 돼있습니다.

 

 

시인에게 폐경기란 없다

 

이선우 등단하신 얘기를 들었는데, 그 때가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입니다. 『배꼽』이 어느덧 일곱 번째 시집인데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좋은 시인들도 연세가 드시면, 연륜은 깊어지지만 시적 긴장이라든가 언어에 대한 감각은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가 약간 느슨해진다고 할까요. 그런데 선생님 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젊은 시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늙은 시다, 젊은 시다 하는 것은 사실 가르는 기준도 모호하고 이런 표현 자체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만, 선생님 시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깊어졌지만 시적 긴장도 강렬하고 언어에 대한 감각도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함축과 생략이 많아서 읽는 이가 오히려 긴장하게 되는 시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선생님을 가리켜 ‘폐경기를 모르는 시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시적 긴장을 계속 유지하시는지요?

문인수 예. 제 시가 그렇게 읽혔다면 저로서는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누구든 나이를 의식하고 나이에 걸맞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저는 저절로 나이가 의식이 잘 안됩니다. 이제 이만한 나이가 되었으니까 이 나이에 걸맞는 시를 쓰자, 이렇게 마음 먹어본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어떤 중진시인이, 시도 조금씩은 자연 연령 따라가는 것이 덜 징그럽다고 그랬던가, 그런 충고를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써서는 내 입맛에 도무지 맞지가 않아요.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쓰려고, 느슨하게 쓰려고 시도를 해봤습니다만 도대체 제 스스로 만족을 할 수 없었고. 갈고 닦는 과정, 열심히 귀 기울여야만 얻어지는 문장이라야만, 자체검증이라고 할까요, 나 자신한테 됐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절차탁마했다 싶어야 시 한 수 썼다는 자족감이 생깁니다. 자기검열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는 시를 쓰기가 많이 불안하죠. 시적 긴장이 느껴졌다면, 아마 자기검열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한 결과일 겁니다.

이선우 퇴고를 많이 하시는군요?

문인수 네. 많이 합니다.

이선우 그래서 이런 시들이 나오게 된 거군요. 선생님 시집에는 곱씹어 볼 만한 시들이 참 많은데요. 그 중에서 「만금이 절창이다」(『배꼽』)를 보면,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이라든가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라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연륜이 만들어낸 언어들이기도 하겠지만, 사물을 깊게 바라보시고 생각을 오래 하신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집을 펼친 김에, <문장 웹진> 독자들을 위해 낭송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문인수 목소리를 좀 가다듬겠습니다. 시를 읽기 전에 이 시에 대해 좀 말씀드리자면, 저는 주제를 정해놓고 주제를 머리 위에 띄워놓고 그것에 매달리는 시는, 관념이나 사물을 작정해놓고 시를 풀어갈 때는 시가 좀 안 풀리고, 어떤 현장을 직접 목도했을 때, 그 현장에서 보편적인 삶과 내 삶을 동시에 읽어냈을 때 시가 참 잘 됩니다. 이 시도 새만금 갯벌 현장에서 지은 내용인데요.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금이 절창이다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은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전업시인에게는 아내가 있다

 

 

이선우 지금 선생님께서 읽은 시도 그렇지만, 『배꼽』에는 전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선생님 시세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근황에 대해서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문인수 네. 요즘 별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에는 생활이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만. 조금 바빠졌습니다. 이런 저런 상을 탄 후유증이라 그럴까요. 그런 결과로 이리저리 불려 다녔습니다. 여행도 갈 기회가 많았지만, 강연회라든지 심사라든지 예전에는 하지 않던 일들, 초청받지 않던 일들에 불려 다니느라고 좀 바쁜 생활을 했어요. 바쁜 게 저한테는 참 안 맞는 옷 같고 해보지 못한 일들이어서 낯설고 서툴렀습니다만, 어쨌든 조금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최근 들어와서 조금 조용해져서 다시 글쓰기에 몰두를 해볼까 그러고 있습니다.

이선우 등단 전에는 여러 직업을 가지셨다 하셨고, 등단하시고 나서는 한동안 <영남일보>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이후로는 전업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건지요?

문인수 98년에 <영남일보>에서 나온 이후 별로 직업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했고….

이선우 시 쓰시느라 일부러 안 가지신 건가요?

문인수 아니요. 나이가 있고 하니까. 98년도에 <영남일보>를 나올 때 이미 쉰 나이가 되었으니까 일거리가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죠. 이리저리 문화센터 등에서 강좌를 몇 개월 한 것 이외에는 생활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을 하지 못했어요. 늘 와이프 혼자 고생을 했죠. 저는 뭐 그저 쓰는 일, 쓰는 걸 염두에 두고 여행을 한 일, 이런저런 문학행사에 나가서 논 일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이선우 그러면 생활은 주로 사모님께서……. 그래서 “나는 문득 /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 이리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말라붙은 손―인도소풍?(??쉬??, 문학동네, 2006)중에서) 같은 시를 쓰셨군요.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참 많으시겠어요. 그런데, 또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더 좋은 시를 많이 쓰실 수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는 자기용서다

 

이선우 시 쓰시는 게 참 재미있으신가 봐요?

문인수 네. 시 쓰는 일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신명이 나지 않고 재미가 나지 않으면 저는 못했을 겁니다. 시를 쓸 때 문학적 성과, 여기서 성과라는 것은 이런저런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만, 저는 성과에 대한 기대 없이 그저 썼습니다. 시하고 놀았죠. 누구는 시하고의 연애라고 그럽디다만 시 쓰는 일이 재미가 없었으면 저는 못했을 거예요. 어쨌든 성과 여부는 상관없이 재미있으니깐 여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선우 여섯 번째 시집 『쉬!』의 ‘자서(自序)’에도 “재미라는 말에 인생 전부, 전반을 놓고 우겨넣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본다면 나는 아직 시 쓰려는 궁리, 쓰는 노력보다 더 그럴듯한 일이 없는 것 같다” 고 쓰셨습니다.

문인수 사실입니다.

이선우 즐기는 일의 위대함을 선생님께 배우게 됩니다. 저도 한 때 시를 썼던 적이 있는데, 전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시인들만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어려운 걸 즐기면서 하신다니 정말 축복인 것 같고, 천직이시다 싶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시를 쓰고 계시고 시 쓰기를 즐기시는데, 그럼 선생님께 시란 무엇입니까?

문인수 글쎄, 아까 제 여섯 번째 시집 ‘자서(自序)’에 말 해놓았습니다만, 시는 내가 사는 삶의 재미 같은 겁니다. 이 재미란 말을 우리는 상당히 자주 쓰고 있습니다만, 또 상당히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긴 한데, 자세히 적었다시피 재미라는 말 안에다가 인생 전부, 전반을 집어놓고 하는 말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점잖게 말한다면 재미이되 시를 쓸 때마다 아, 시는 ‘자기용서’다, ‘자기구원’이라고도 말합니다만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기는 싫고, ‘자기용서’라는 말을 저는 가슴에 모시게 됩니다. 시를 쓸려고 궁리하는 시간, 시를 쓸려고 끙끙대는 시간, 시하고 관련된 모든 시간에는 시라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내용이 저를 걸러주는 듯한 느낌이 들고, 저를 바로 앉혀놓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시는 이러저러 해야 된다는, 그 모든 시어로서의 규범을 놓고 보면 거룩함인데, 나라는 시는 전혀 거룩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형적인 속물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 쓸 때만큼은 자정능력을 갖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는 자기용서다’라고 나름대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다

 

 

이선우 선생님을 흔히 ‘길 위의 시인’이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길?, 「길이 길을 삼킨다」, 「길을 수놓다」, 「묻힌 길」, 「길의 끝」 등 ‘길’이라는 말이 들어간 시편들이 여러 편입니다.『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처럼 아예 시집 제목에 ‘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다른 시들도 정주보다는 유랑이 지배적이거든요. 그 모든 유랑, 떠돎이 두 번째 시집 제목처럼 집, 고향, 어머니, 유년의 그리움 등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네 번째 시집인 『홰치는 산』에도 고향과 부모님, 가족이 많이 그려져 있고요. 길과 집, 어쩌면 상당히 이율배반적인데 선생님 시집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고향이 이제는 가닿을 수 없는 시간의 아득한 저 편”(??홰치는 산?? 자서 중에서)이기 때문인가요? 계속 떠돌아다니면서도 집을 그리워하고, 그러면서도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문인수 네. 뭐 어렵게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단순한 공간의 길을 봐도 틀림없이 길은 집에서 시작되고, 집에서 끝이 난다고 봅니다. 여행이라는 것도 집에 돌아올 것을 전제로 길을 떠나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길을 다 헤매봐야 그 세상 모든 길은 결국 집으로 간다는 거죠. 집과 길은 이율배반인 거 맞습니다. 집 밖에 길이 있고, 길 끝에 집이 있는 이율배반이 맞습니다만, 그렇지만 이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의 이쪽과 저쪽과 같이, 서로 물고 있는 끈의 양단을 놓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겠죠. 그런데 살아있는 한은 소위 이 길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길’이라는 외자 단순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풀이가 아홉 가지가 됩니다. 단순히 사회 기반시설의 길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의 도리라든지, 꿈이라든지 모든 것들이 길로 얘기되고 있는데요. 이 길 안에, 길과 집이 각각 양 끝을 물고 있는 이 내용 안에 사람의 인생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이선우 길 위에 생이 있고, 삶이 곧 길이라는 세계인식은 선생님 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생이 곧 길”이라도 구절이 있고요. 그런데 그 길이 고향이나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결돼 있다면, 궁극에는 집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가을통화?(『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학의 전당, 2006)라는 시에 보면 “이 섬엔 돌아올 사람 없습니다, 어머니”라고 쓰셨어요. 돌아가지 못한다기보다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문인수 그럴 수도 있죠. 고향을 보면, 지금도, 다시 물어도, 그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고향이란 내가 태어난 적이 있는, 산 적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실 거기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이지요. 현재 몸이 고향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개념의 고향이 아닌가. 우리가 공간을 그리워할까요? 아닌 거 같아요. 아득한 유년시절이라든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전신으로 느꼈던 어떤 시절, 시간이지, 내가 뛰어놀던, 흔히들 이런저런 노래가사에는 공간적인 이미지와 의미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공간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것인데 그립다는 것은 언제나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또는 곳이기 때문에 그립다는 거죠. 돌아갈 수 있으면 그립지가 않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공간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아니죠. 돌아갈 수 없는 곳은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 시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선우 그 시절이 그리우시다면, 유년시절이 행복하셨나요?

문인수 그랬죠. 제가 45년도 해방둥이인데 40년대, 50년대, 60년대 초까지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의 환경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극빈, 인간모독적인 어떤 극빈 속의 삶들이었죠. 그 속에서 삶이 가난한 만큼 불행했다 이런 게 아니고, 기억하기론 저는 다행히 그 시절 농촌에서 태어나고 보니깐 상당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자랐죠. 그래서 굶는다 배고프다 초근목피다 보릿고개다 하는 것을, 기억하건대 구경만 했지, 어쩌면 손해를 보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참혹한 가난을 겪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선우 그렇다하더라도 요즘 말하듯이 아주 부유하게,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란 건 아닐 텐데요.

문인수 그렇죠. 지금과 비교를 하면, 문명, 문화의 측면에서 다르죠.

이선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셔서 그런지, 보통 작가들이 부모님을 추억하는 글들을 보면,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리움이 강한 반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억이라든가 대결의식이 짙은 경향이 있는데 선생님 시에서는 그런 게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아버님도 똑같이 그리워하시고. 든든한 산으로 버텨주셨던 아버님에 대한 믿음 같은 게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산 같은 아버지의 여린 모습, 힘들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그린 시편들도 보이고요. 아버님에 대해서도 상당히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 가 봐요.

문인수 글쎄요. 특별한 아버지, 특별한 어머니가 아니라, 여기서의 특별하다는 것은 왜곡되지 않았다는 거죠, 내게 아버지는 철저한 아버지, 철통같은 아버지, 참 사내다운 사내, 내가 겪은 모든 사내 중에 가장 굳센 사내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로 각인이 돼 있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다행이다 싶은데요.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지나고 보니까, 같이 자라던 또래들, 이웃의 몸이 굽은 노인네들의 삶의 내용을 지금 와서 돌이켜 파악을 해보면 큰 고난이었고 큰 상처들을 껴안고 살아간 모습들이구나 싶죠.

 

 

길 위에서 시를 만나다

 

이선우 삶이 곧 길이다, 그리운 것들이 많아서 늘 떠돌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시도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보다는 본 것들이 더 잘 씌어졌다고 하셨고요. 그래서인지 선생님 시에는 기행시가 많은 편이거든요. 특히 강원도 정선, 영월, 동강, 인도 갠지스 등을 떠돌면서 많이 쓰셨는데,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신 거 같아요. 보통은 사람의 감정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에 많은데, 선생님 시편에서는 사물이나 자연풍경을 사람이나 동물의 몸, 인간의 문명 등에 빗대어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늘의 덧니, 저 맑은 낮달”(?덧니?), “입 꾹 다문 바위들”(?고인돌 공원?), “종이 뭉치에서 웬 관절 펴는 소리가 난다”(?꽃?) 같은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물론 시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자아화’니까 이 역시 화자의 내면과 무관하지 않을 테고 엄밀한 의미에서는 객관적 상관물이겠습니다만, 자연을 객체화하지 않고 주체화한 것이라든가 전통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을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의 마음과 통찰은 사물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만 감정의 과잉이 없고 또 그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측면이 없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은 오히려 감정이입이 더 잘되는 것 같고. 이런 점 때문에 선생님 시를 생태시로 높이 평가하는 평자들도 있습니다.

문인수 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합니다.

이선우 생태시를 의식하고 쓰신 건 아니죠?

문인수 아뇨.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말의 안타까움은 있었습니다만, 그것을 구태여 주제로 내세워 쓴 시는 몇 편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생태문제를 물론 관념적으로 안타까워는 합니다만, 살다보니 기쁘고 살다보니 절망스러웠다고 하는 것처럼 쓰다 보니까 저절로 생태문제에 접근된 경우도 더러 있었겠죠. 생태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길에 관해서 좀 더 말씀 드린다면, 사는 곳에서는 제대로 시로 보여 지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선우 너무 낯익어서 그런가요?

문인수 네. 그런데 길을 나서면, 여행을 나서면 살면서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여행지의 경관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길 위에서 살던 곳에서의 삶의 내용들이 보인다는 거죠. 비애라든지, 한이라든지, 상처라든지, 고통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바로 살던 곳을 떠나서 길 위에서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자꾸, 길이 시작되는 집을 나섰고 길 끝에 매달려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쳤는데요. 길을 나서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자연 경관을 보게 되고 자연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게 되는데 자연 속으로 단순하게 나있는 길을 갈 때, 내 몸이 가는 거죠. 차가 굴러가고 비행기가 이륙해서 나는 건지는 모르지만 먼 길이든 가까운 길이든 삶이라는 한 뭉텅이, 뭉쳐진 내 몸이, 꿈틀거리는 한 마리 자벌레가 한 뼘의 거리를 온 몸으로 힘껏 구부리며 가는 것처럼 여행이라는 길 위에 내 몸이 꿈틀거리며 가는 것 같고, 내 몸이라는 것은 내 삶의 접목, 바로 그 때 밀려닥치는 고양된 감정, 시뻘건 정서 같은 것이 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연경관, 산천초목을 만났을 때 근본적으로 안기는 그런 것들이 생태문제를 심정적으로 건드렸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선우 네. 몸이 자연과, 혹은 공간, 사물과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 저 위에서 대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눈이 젖어도 눈물 흘리지 않다

 

이선우 선생님 시작(詩作)의 또 하나 주요한 태도가 ‘젖은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같은 사물을 봐도 선생님은 사물의 그늘을 보고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어디서든지 물기를 찾아내시는 게 아닌가. 이 물기는 젖이라든가 샘, 강 같은 생명과도 연결이 되지만 동시에 비, 눈물, 슬픔,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음까지도 연결이 되거든요. 사실 젖어있는 것은 선생님의 눈이고, 마음이고, 그 마음이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기억일 텐데요. 그렇게 보면 ‘슬픔의 계보’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김영랑 이래 김종삼과 박용래와 박재삼으로 이어지는 찬란한 슬픔의 미학, 그 드문 계보를 아슬아슬하게 잇고 있는 시인”(이승하, ?아버지와 아들의 풀뽑기?, <현대시학>, 97년 11월호), 한국적인 서정, 한국적인 미학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는 시인이라고도 평가합니다.

문인수 과찬에 관해서는 늘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 신명에 겨워서 내가 내 한에, 아픔에 함몰되어서, 그렇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쓴 것이 내 시인데요. 어떤 대상을 봤을 때 다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 내 눈에 들어와서 가슴 속에 들어와서 안기는 것들, 그것들이 참 측은하게 와 닿을 때 비로소 시가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마는. 글쎄, 측은한 것들, 측은하게 거기 서 있거나 흘러가거나 놓여있는 것들에게 나는 말을 걸고 싶고, 말을 걸고 싶은 그 사물이 나에게 대답하고 또 내가 되묻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한편의 시가 이뤄지는데, 그 상관물이 나 아닌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곧 나더라, 나 자신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시의 기본이요, 누구나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철저히, 적어도 내 스스로 만족하는, ‘아이고, 됐다’ 싶은 시들은 대상이 나 자신과 한 몸이 돼서 꿈틀거려지는 것들이죠. 그럴 때야 ‘아, 시 한편 썼다’는 자족감이 생깁니다.

이선우 네. ‘한국적인 서정’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도 말씀드렸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한국적 서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인수 저는 한국적으로 쓰자고 한 번도 의도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이런 것은 있습니다. 대구의 어떤 시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무슨 바람꽃인가, 아주 미약한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가느다란 몸, 줄기 끝에 겨우 맺혀있는 그런 꽃이 있었는데, 우리 야생화를 전문으로 키우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이 시인은 그 작고 앙증맞은 꽃을 보면서 단추 같다고 얘기했고, 나는 바람에 아주 가늘게 흔들리기에 눈물 같다고 했었습니다. 왜 꼭 눈물 같으냐고 하니 그게 한국적인 것 아니냐고 내가 대답했어요. 근데 눈물이 왜 꼭 한국적인 것이냐고 하면 설명을 잘 못하겠습니다만 그래야만 한국적일 것 같아요. 높은 대궁에 미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그것을 단추라고 해서는 우리 것이 아닌 것 같고, 눈물 같다고 그래야 한국적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시를 쓰면서도 번역투의 말이라든지 서구적 정조와 가까운 그런 말은 의식적으로 피하려고는 하지만 일부러 한국적으로 쓰자고 작정을 하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이선우 네. 방금 하신 말씀이 세 번째 시집『뿔』의 해설에도 나옵니다. 이하석 선생님과 나누신 대화시죠?(웃음) 그런데 선생님 시를 가만히 읽어보면,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저 할머니의 슬하?,??쉬??,문학동네, 2006)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명과 죽음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슬픔과 기쁨도 함께 껴안는 혜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읽으면 아, 가슴이 아리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담담해지는 그런 시편들이 참 많습니다. 최근작으로 오면서 초기시의 물기는 더 줄어드는 것 같은데요, 상대적으로 담담한 시선은 더 많이 보이고요. 급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만, 시에 조금씩 변모가 느껴집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신가요?

문인수 글쎄요. 참 말조심을 많이 해야 되는 것이 시 쓰기인데요. 말조심이라는 것은 달리 점잖은 말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슬프다, 눈물 난다, 기쁘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면 오히려 독자들의 김을 뺄 것 같아요. 그걸 쓰지 않고도 그렇게 읽어야 된다고 봅니다. 독자들이 그렇게 읽지 않을 때는 다른 책임져야 할 문제가 시인에게 있겠죠. 소통의 문제를 등한시한 우를 범하는 건데. 세월이 갈수록 감춰야 될 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방금 말했듯이 직접적으로 감정을 노출하는 말투들, 조심을 해도 잘 안됩니다만, 그렇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피하려다 보니까, 전보다 좀 더 조심하려다 보니까 좀 더 드라이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선우 예, 선생님 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한층 더 단단해지고 젊어지고 독자들에게 깊이 와 닿는 시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이선우 『배꼽』을 보면 ‘시인의 말’이 인상적인데요. 기억나시지요?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 구경일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시를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이고 관심이구나 하는 생각을 근래 들어 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론을 하지만 원래는 시나 소설도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왜 못 쓰나 생각을 해 보니, 문장력이니 구성력이니 그런 것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어쩌면,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게 아닌가. 문학이란 결국 사람살이를 쓰는 것인데, 그게 보통의 애정과 관심을 가져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말고, 타인에 대한. 그러니까 이타심 그런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 그 속에 다른 생명체나 사물, 심지어 자기애까지도 포함되는 그런 관심 말이죠. 평론하는 분들을 비하해서 하는 말씀은 아니고요, 제가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분들도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문학은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저도 평론을 하면서 그걸 새삼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배꼽』은 문학의 본령을 더욱 잘 드러낸 시집이 아닌가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 구경”이라고 하셨지만 ??배꼽??은 다른 시집에 비해 특히 사람에 대한 시가 많습니다. 그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주변에 있지만 미처 못 보고 지나치는 그런 사람이고요. 반면 ‘길 위의 시’는 좀 줄어든 것 같고. 여전히 이곳저곳 다니시기는 하는데 동네 주변을 거니시는 것 같거든요. 요즘엔 여행을 안 다니시는 건가요?(웃음)

문인수 제가 2003년도까지 여행을 많이 했었습니다. (음성 없음. 54분 33초~55분 10초)->문인수 선생님께서 작성을 해주셔야 할 듯 합니다. 여행지를 더 도는 것이 맞고, 어느 산간벽지에 가서 틀어박혀 살아보는 것, 그게 좋은 여행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2003년도 이후 여행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국내여행을 더러 다녔죠. 자주 가지는 못했어요. 자주 가지 못하다 보니까 소위 ‘여행시’로 불릴만한 것이 크게 없죠. 비교적 여행을 자주 다녔을 때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 여행을 다닐 때보다 시가 훨씬 덜 써진다는 것, 또 써져도 우선 나 자신에게 덜 만족스럽습니다. 다시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만, 길을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저절로, 필연적으로 길 관련, 사람구경 관련 시는 덜 써지게 되고, 사람살이, 그러니까 시간이 무엇이다, 고통이 무엇이다 하는 사람살이에 대한 풀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이선우 사람살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잘 짚어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뫼얼산우회의 하루」(『배꼽』) 같은 시도, 어언 육십객이 된 고등학교 동기들이 산우회를 결성해 점심도 먹고, 모여 앉아 어떤 친구들은 바둑을 두고, 어떤 친구들은 고스톱을 치고 그런 광경들을 묘사해 놓으신 건데, 이 말만 들으면 그런 게 무슨 시가 되겠나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친구들 얼굴에 주름살 몰린 데가 제각각이라는 것을 압니다. 턱 주름이 유독 자심한 친구를 보고는, 그가 얼마 전 참척의 슬픔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해내지요. 하지만, 그래서 안 됐다, 슬프다, 이런 말은 일절 없습니다. 그냥 풍경처럼 묘사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살이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름을 읽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담담하면서도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애정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이런 시선을 가져야 시를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배꼽』도, 선생님께서는 덜 만족스럽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여행시는 줄어들었지만 저는 참 좋게 읽었습니다.

 

 

시를 여행하다

 

이선우 지금까지 선생님 시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 들어서 이런 저런 문학상 심사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럼 젊은 시인들의 시도 좀 읽어보시는지요. 젊은 시인이 아니어도 최근에 읽은 시집들 중에 인상 깊은 작품들이 좀 있습니까.

문인수 저는 젊은 시인들의 시가 참 좋습니다. 솔직히 배울 게 있어요. 깜짝깜짝 놀랄만한 아, 이런 게 젊은 세대들의 예리하고도 신선한, 새로운 인식이구나 싶어서 놀라고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신용목 시인, 최강진 시인(?), 심보선 시인 이런 젊은 사람들의 시집을 접하고, 정끝별 시인이라든지, 정끝별 시인은 젊지만 이미 고참이 됐죠, 살아있는 퍼득이는 싱싱한 어법들이 참으로 부럽고 아득해요. 거기서 많이 배우죠. 이게 바로 신감각이구나. 새롭되 그게 그렇다라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그런 상상력들을 참 부러워해요. 좋은 여행입니다. 읽는 여행이죠.

이선우 그 시인들도 아마 선생님의 시를 보면서 배웠을 겁니다. 신용목 시인의 시 중에 「봄산」인가, 제목이 정확한 지는 잘 모르겠는데, 봄산의 나무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시인데, 「홰치는 산」을 읽다가 ‘이게 그거잖아’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물론 시 자체는 전혀 다른 이미지인데, ‘홰치는 산’이라는 제목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시겠지요.

이선우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시는 번역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선생님 시도 우리말결이 잘 살아있는 시라 안타깝게도 번역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번역된 작품들이 좀 있으신가요?

문인수 한 일곱, 여덟 편 정도는 됩니다.

이선우 한 권이 통째 번역된 것은 아니고요?

문인수 네.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번역된 것들도 따로 모아뒀다든지 따로 컴퓨터에 저장이 돼 있다든지 그러질 못합니다. 잡지에 번역돼서 발표된 대로 있고.

이선우 세계를 향해서 내 시를 번역해보겠다 이런 야심 같은 것은…?

문인수 (웃음) 그런 엄청난, 혹은 재미없는, 얘들 말로 웃기는 생각은 못해봤습니다.

이선우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해서 번역이 잘 되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인수 아이구, 몰라요. 그 내용에 관해서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네요.

이선우 저도 사실은, 그렇게 번역을 염두에 두고 시를 쓰게 되면 과연 시에 우리 말결이 잘 살아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문인수 네. 금방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렇게 써서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우선 우리말을… 그러기보다는 바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아예 바로 외국어를 써버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꼭 번역을 걱정한다면 영어면 영어, 소위 노벨상이라든지 하는 걸 타려면 영문으로 쓸 때가 가장 유리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만, 영어공부를 해서 바로 영문시를 열심히 쓰는 게 훨씬 빠를 거 같은데요.

이선우 제가 갑자기 뜬금없는 얘길 꺼내서. (웃음)

문인수 우리는 번역을 해야지요, 또 번역에 맞추다보면 시가 막 삐걱거릴 거 같은데요. 이상할 거 같은데요.

 

 

어제처럼 오늘을 살다

 

이선우 장시간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아직 새해 연초입니다. 계획이 있으실 텐데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연초에는 항상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아직 어리긴 합니다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대선배님으로서 저희 같이 어린 문인들에게 나이듦의 의미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문인수 연초 계획은 뭐 달리 크게 없습니다만, 요즘 시를 잘 못쓰고 있습니다. 시가 잘 안 써지고 있고, 또 써도 나 자신이 검열해서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 이거, 왜 이래?’ 조금은 불안합니다. 해서 한 바퀴 도는, 남해로 해서 서해로 해서 다시 동해를 거쳐서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해볼까 하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루어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길을 나서야 뭔가 보이는, 제대로 보이는, 또 제대로 보인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이 습관이 고쳐져야 하는데 큰일인 것 같아요. 어쨌든 한 바퀴 도는 여행이 새해 계획이라면 계획이고.

이선우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신가요? 건강하셔야 그런 여행도 가능할 텐데요.

문인수 아직 건강에는 뭐, 술 담배를 무지막지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건강은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올 한해는 시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방치를 해 둘 작정입니다. 누구랑 약속한 게 있어서 동시를 한 5, 60편 써야 되는 숙제가 있습니다. 이 숙제를 해야 될 거 같고, 여행을 해야 될 거 같고, 따라서 시는 조금 미루었다 써야 될 거 같아요. 올 한해는.

이선우 동시 쓰시면서 시도 쓰시고, 여행 다니면서 시도 쓰시고 하시겠죠.

문인수 나이듦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나이 먹어야죠. 나이 먹을 수밖에 없고, 먹으면 먹으세요, 라고 하고 싶고. 그렇지만 나이를 의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냥 흘러가면 될 거 같습니다.

이선우 의지로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가면 나이를 먹는 거고요.

문인수 그럼요.

이선우 어제처럼 오늘을 살면 되는 거겠네요.

문인수 맞습니다. (웃음)

 

 

숨은 문재를 발굴하는 평론가가 필요하다

 

이선우 몇 편 쓰지는 않았지만 제가 평론을 하고 있습니다. 좀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을 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문인수 아니, 딱딱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이선우 시인으로서 평론가에게, 제가 아니더라도 평론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한 말씀 해주시면 제가 앞으로 글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문인수 평론가들이 참 고생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집 지어놓으면 흐뭇하듯이 자족감에 한동안 그냥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작품 하는 사람들은 잘 쓰든 못 쓰든 한 편 썼다는 만족감이 있습니다만, 평론하는 분들은 재미도 없는 글들을 읽어야 되는 경우도 많고 별 하고 싶은 말도 없는데 어쨌든 원고지를 다 채워야 하는 고역도 있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평론이 그 작품의 재현, 재생산의 역할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평론가들이 배후에서 고생하는 분들이다 생각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선우 덕담만 하지 마시고요.

문인수 아이, 평론가들에게 잘 보여야 되는데 덕담만 해야죠.(웃음) 그런데 평론가 분들이 발굴을 좀 하는 욕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작가를 한 평론가가 손을 들어줘서 떠들썩해지니깐 나도요, 나도요 라고 손들고 같이 대열에 합류를 하는 그런 태도보다, 그렇다고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마는, 따라갈 수밖에 없을 때는 따라가되, 바로 발굴해내는 그 성격상, 태도의 문제, 자기관리의 문재를, 숨어있는 문재는 드뭅니다만, 훌륭한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숨어있기가 힘듭니다만, 가끔 지역에 살다보면 공부도 충분히 돼 있고 작품도 이만하면 괜찮은데 평가가 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발굴한다는 애정을 갖고 살펴볼 필요도 있지 않나, 그게 평론으로서의 큰 역할이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이선우 예, 새겨듣겠습니다. 더 부지런히 찾아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여행 많이 다니셨으니 여행 중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나 해주시겠습니까.

문인수 대담 내내 버벅거리고, 중언부언해서 이 면을 어지럽혀 놓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준비를 할 걸 하는 후회가 되네요. 어쨌든 메달로 된 상을 처음 받는데요. 그것도 순금 메달입니다. 상패라든지 상장은 간직하기가 버겁고 처치 곤란할 때가 있는데, 금메달로 된 이 상은 잘 간직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허허, 잘 간직하도록 하고, 한솥밥을 먹는 문인들이 주는 상이어서 저로서는 훨씬 정답게 간직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선우 네, 고맙습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다시 한 번 수상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오래오래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라겠습니다.

문인수 고맙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문장 웹진/2009년 3월호》

 

 

* 문인수, ?불가촉천민―인도 소풍?(『배꼽』, 문학동네, 2006) 중에서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뿔』『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쉬!』『배꼽』 등이 있다. 대구문학상(2000), 노작문학상(2003), 한국가톨릭문학상(2007), 미당문학상(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시(2008) 등을 수상했다.

 

이선우 197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신화의 죽음과 소설의 탄생­‘사람의 아들’과 ‘에리직톤의 초상’을 중심으로」으로 등단했다. 2007년 서울문화재단 ‘서울 속 문학투어’, 문화관광부 ‘신경숙의 ’리진‘ 문학투어’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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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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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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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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