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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고르는 법

  • 작성일 2012-04-12
  • 조회수 920

 

[한국문학에 바란다!]

 

한국 소설 고르는 법

 

한윤정(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요즘 어떤 소설이 재미있어?”

  문학 담당 기자인 내게 주변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글쎄, 사람마다 모두 취향이 다른데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재미있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자신 있게 어떤 책을 권해 주기가 어려운 이유다. 결국 (지난해 같은 경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아직까지 안 읽었으면 읽어 보라든지, 『두근두근 내 인생』을 쓴 김애란이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든지, 정유정의 『7년의 밤』은 장르와 순문학의 경계를 해체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재미있는 소설을 권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다소 난감한 느낌과 함께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정말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지 모를 수 있겠다는 것.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일은 재미있다는 기대와 함께 가끔은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는 작가는 매우 한정돼 있다. 황석영 김훈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100만 부의 고지를 넘어선 적이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김영하 조경란 김연수 등으로 넘어가면 ‘알기는 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윤성희 편혜영 김중혁 등에 이르면 벌써 갸우뚱거린다. 박형서 김사과 안보윤 등의 이름 앞에서는 대략 난감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문학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70대 원로작가부터 20대 신인작가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각자 작품을 열심히 쏟아낸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문예지와 웹 사이트 등 발표 공간이 넓어진 덕분이다. 이들이 다루는 문학적 소재 역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 철학적 자아 탐색, 자유분방하고 발칙한 상상 등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 중 어떤 책을 고를지 선택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아예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마 학창시절에 받았던 문학교육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문학교육은 역사와 사회과학의 객관적이고 건조한 서술 속에 담기지 못하는 시대의 단면, 사람들의 심성이 소설에 고스란히 보존된다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시각을 가지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소설은 읽어 볼 만하다.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지 못한, 소수언어로 씌어지는 ‘변방 문학’이기는 해도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많고 활력이 넘친다. 최근 들어 예술성이 짙은 단편보다 대중성이 강화된 장편으로 무게 중심이 옮아오면서 장르와 작가의 개성 역시 뚜렷해졌다. 소설에 대한 호기심 내지 소설 읽기의 의무감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국 소설을 고르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1. 신간을 읽어라.

  패션에 흐름과 유행이 있듯이 소설에도 흐름과 유행이 있다. 무엇을 소설로 쓰는지, 나아가 어떤 시각과 플롯으로 접근하는지는 당대 사회의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의 명작들을 읽는 건 장차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문학 지망생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보통 독자들에게는 별로 필요 없는 일인 것 같다. 소설을 통해 동시대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사회적 의제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갓 나온 잉크 냄새 나는 신간에 관심을 갖고 눈을 돌리는 게 좋다.

 

  2. 기사와 홍보 문구를 너무 믿지 마라.

  소설책 뒤표지에는 동료 작가나 문학평론가들의 추천사가 적혀 있고, 인터넷 서점에는 책의 차례와 소개 글이 올라온다. 일간지 문학 면에 관련 기사가 실리거나 기사를 인용한 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갓 태어난 소설은 이렇게 포장돼 세상에 알려진다, 그런데 예의와 체면, 과장, 성급함이 섞여 있는 추천사나 소개 글, 기사를 액면 그대로 믿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경우 댓글이 달려 있을 것이고 책이 나온 뒤에는 부지런하고 눈 밝은 네티즌들의 독후감이 돌아다닐 것이다.

 

  3. 젊은 작가에 도전하라.

  평소 잘 알고 있던, 유명하고 노련한 작가보다 젊은 작가의 작품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겠다. 작가라면 누구나 계속 변화를 추구하지만 이미 형성된 세계관이나 문학 스타일은 잘 변하지 않는다. 전성기를 지난 노년의 작가들은 다소 동어반복적인 작품을 계속 내놓을 수도 있다. 소설 읽기는 자신이나 사회와의 대화일 뿐 아니라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 작가가 선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소설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4. 같은 작가를 두 번 이상 읽어라

  한 번 봐서는 아름다움과 깊이를 잘 모른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은 뒤 괜찮다고 느꼈으면 다음 작품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재미있다면 그 작가를 계속 따라 읽으면 된다. 바닷물의 맛을 알기 위해 바닷물을 전부 마실 수는 없다. 짜고 비릿한 맛을 전해 주는 한 스푼이 필요할 뿐이다. 독자인 우리는 소설의 수집가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세계를 보는 하나의 창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선택하는 안목과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5. 평론집을 참고하라

  소설은 한글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저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들이 힘들게 창조하는 서사예술 작품의 심층에는 구조와 철학이 들어 있다. 따라서 보다 깊은 독서를 위해서는 읽기의 지도가 필요하다. 이런 역할은 평론가들의 몫이다. 등산을 하기 위해 가볍고 질긴 등산화를 마련하듯이 평론가들의 현장비평을 참고해서 작품을 읽는다면 훨씬 넓어진 시야와 깊어진 시각으로 소설을 감상할 수 있다. 평론집은 전문가들 사이의 갑론을박이 아니라 독자에게 문학을 안내하는 안내서로서 가치가 있다.

 

  이런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좋은 소설의 선택은 독자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유행하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 주는 남자)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읽어 볼 만한 소설과 읽을 필요가 없는 소설의 차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처음 50페이지를 읽어 보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면 굳이 읽을 필요 없다. 자신의 짐작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는 기쁨을 빼놓고는 시간 낭비다. 둘째, 아무리 시끄러워도 읽을 수 있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소설이다. 쉽게 읽히면 그만큼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셋째, 읽으면서 자꾸만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 읽기를 중단해도 좋다. 작가 역시 어디선가 본 내용을 작품으로 옮겨 놓았기 십상이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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