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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2-08-01
  • 조회수 1,194

 

[연재 에세이]

 

 

― 사막의 미학 3

 

김태형(글/사진)

 

 

 

 

 

 

   낙타는 지평선을 건너가지 않는다

 

   기운 햇살을 받은 데리스가 마른 잎을 반짝이고 있었다. 한 떼의 가축과 어린 목동이 말을 타고서 황금들판을 지나가고 나면 바람 소리만 남았다. 데리스의 앙상한 잎은 낙타만 먹는다. 겨울에 먹이가 부족할 때는 양과 염소가 눈 위에 솟아난 길쭉한 잎을 마지못해 먹기도 한다. 석양을 받아 지평선을 건너다보고 있는 낙타는 마른 데리스 빛을 닮았다.

 




   몽골 신화를 보면 원래 낙타는 아름다운 뿔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사슴이 잔치에 가기 위해 낙타의 아름다운 뿔을 빌려갔다. 멋진 뿔을 달고 한껏 뽐을 내던 사슴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낙타는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슴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얼핏 우스꽝스럽지만, 이 신화를 잊고서 낙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낙타는 기다림의 동물이다. 사막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은 그 기다림 때문이다. 낙타가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막은 온통 기다림으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가열한 사막에서 두 개의 혹을 달고 생존해야만 하는, 이 목이 긴 짐승의 슬픔은 사막을 기다림의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이제는 잊었을 것이지만, 어느덧 기다림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그 무엇이라도 기다려 본 자는 세월이 무참하게도 흘러가 버리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낙타는 세월마저 넘어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낙타는 저 지평선을 건너가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곳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사막에 있다. 잃어버린 것만이 이곳에 남아 있다.

 




   낙타는 도망치지 않는다. 탈주하지 않는다. 나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따라간 어느 낙타의 길은 오로지 또 다른 곳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잃어버린 그 무엇이 없다. 잃어버린 것은 지금 내 앞에 있을 뿐이다. 삶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나는 망각을 서슴없이 선택해 왔다. 기다림이라는 그 긴 시간의 고리를 끊고서 자멸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거룩한가. 낙타가 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이 충만한 시간은. 한없이 지연되는 살아 있음은. 이 황량한 아름다움은.

 

 

   바다의 묘지

 

   푸르공이 뒤쪽 언덕을 돌아 올라간 곳에서 거대한 묘지가 내려다보였다. 차강 소와락(Tsagaan suvarga). 오래 전 바다였다고 한다. 그래서 물고기 뼈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어디 이곳뿐이었으랴. 굳이 바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땅이 물결치는 듯 바다를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홍으로 물들어 단층을 이룬 석회암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파랑이 일어 주황과 갈색과 맑은 햇빛으로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장관이 펼쳐져 있다. 나는 이곳을 ‘바다의 묘지’라고 불렀다.

   바람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누군가 이곳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햇빛이었는지, 아니면 절벽에 선 어떤 발걸음이었는지, 파도 한 자락에 실려 온 물거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오랜 꿈이었는지 모를 그런 몸짓이 오랫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 절벽 끝의 어워에 그림자 하나만을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이십 년 전에 목이 길고 한없이 젊었을 때 세상에 내놓았던 내 첫 시집을 돌 위에 올려놓았다. 세상은 온통 빛바랜 하닥과 돌과 저 멀리 멈춰버린 갈색 풍랑과 구름과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뿐이었다.

 




   절벽 끝에 여행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바다의 묘지를 내려다보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그들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뛰어내려야 할 절벽이 아니었다. 새파랗게 일렁이는 천 길 절벽 아래 바다 위로 몸을 던질 때 그 죽음은 무엇보다도 간절한 삶의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바다의 묘지 위에서는 결코 죽음을 향해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그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굳이 파국을 맞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을 살기로 했다. 아니,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랜 원시부족의 ‘롱보’와 같은 악기가 없었다.(C. 레비-스트로스, 「죽은 자와 산 자」, 『슬픈 열대』) 빈손뿐이었다. 귀신이 찾아오며 내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먼 천둥소리를, 내 비어 있는 두 손으로는 그 죽음을 불러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두 귀뿐이었다. 바람소리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내 두 귀만이 나의 악기였다. 바람을 다스리는 푸른 하닥처럼, 나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러내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짙푸르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뛰어내려야 할 곳은 절벽 아래가 아니라 저 푸른 하늘이었다. 저 먼 남쪽 하늘에서 밤이면 은하수가 솟아오를 것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되는 일이었다. 밤새 지평선 앞에 서서 은하수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서너 걸음마다 지는 별을 볼 수 있는, 한없이 너른 들판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나는 염소자리

 

   저녁 들판은 광활했다. 어디를 보아도 지평선뿐이었다. 하늘이 뻥 뚫린 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은 그 어느 것으로 채우지 않고 비워 둔 적막한 시간과도 같았다. 한 줌의 물로 겨우 얼굴만 씻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식사는 만족스러웠고, 석양에 걸어 둔 텐트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텐트 안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이 세상 모든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든 발걸음들이 오로지 나를 향해서만 다가오고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언뜻 박쥐가 보이는 듯했고, 랜턴의 불빛을 따라서 온 들판의 날벌레들이 찾아왔다. 온갖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별이 뜨는 소리도 누군가의 탄성 속에서 멀리 들려왔다. 별자리를 찾아서 들판으로 걸어가는 발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내 별자리를 이어주기 위해서 한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 하룻밤의 집이며 사원이었다. 나는 작은 성소(聖所)를 위해 주문 하나를 완성하려고 했다. 그 문장으로 어둔 밤처럼 모든 것이 정화(淨化)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검은 휘장 하나를 둘러서 밤의 또 다른 세계를 불러내고 싶었다.

 

 

   다 저문 석양 앞에 겨우 무릎을 대고 앉아 있다

   내가 갈 수 없는 저곳에서

   저녁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갈색 염소와 어느 사내의 눈빛을 닮은 양들이

   작고 둥근 똥을 싸며 지평선을 건너오기 시작한다

   한평생 기른 가축들을 끌고 누군가

   밤하늘을 건너가려고 한다

   내겐 기르던 개마저도 떠났다

   종일 물 한 모금만으로도 배고프지 않았는데

   밤새 저 순한 가축들을 따라서

   초원의 풀들을 모조리 뜯어먹고 싶다

   내 텅 빈 눈빛마저 뿌리째 뜯어먹고 싶다

   짐승의 썩은 내장처럼

   찢어져 나뒹구는 타이어 조각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녹슨 쇠붙이와

   돌조각과 모래와

   천천히 제 무거운 몸을 끌며 지나가다

   문득 검은 비를 내리는

   구름이 있다

   지평선에 반쯤 걸쳐 있는 흐린 별자리가 있다

   나는 염소자리

   느릿느릿 풀을 뜯고 지나간 자리에

   이제 막 새로 생긴 검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 김태형, 「별」(《현대시》 2012년 1월호)

 




   나는 검은 밤하늘의 초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칠흑의 어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루 해가 길어서 지평선을 넘어간 태양이 여전히 밤하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6,000여 개에 이른다. 이곳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별만도 3,500여 개라고 한다. 6등성까지 모두 밝게 떠오른 밤하늘은 그저 짙은 검은색만이 아니었다. 검은색이 어떻게 맑은 빛을 품고 깊어질 수 있는지 이곳의 밤하늘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밤하늘 저편에는 이곳과 똑같은 세상이 있다고 한다. 별빛은 저편 세상의 목동들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펼쳐든 가죽천의 닳은 구멍 사이로 모닥불이 비쳐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밤은 낮과 달리 매우 추웠지만 별빛만은 따뜻했으리라. 아마도 저 먼 곳에서 피워 올린 모닥불의 환한 빛이 아니었다면 밤새도록 추위에 떨며 별을 올려다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평선에 은하수가 떠오르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한 떼의 양과 염소가 다른 지평선을 향해 밤새 건너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느 외로운 목동이 자기가 키운 가축을 모두 데리고 밤하늘을 지나가고 있었다. 은하수는 어느 사내가 한평생 기른 염소와 양들을 끌고 무릎까지 풀이 자라 오른 넓은 초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내 주문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남았다.

   “다른 초원에는 풀이 많을 거야. 그곳으로 가면, 너한테로 가면.”

   저 사내가 부러웠다. 더 이상 지킬 게 없어 기르던 개마저 떠난 탕자처럼 나는 은하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다른 초원에는 별이 많겠지.”

 

 

   황무지

 

   고도가 높은 땅 위에 흰 구름이 가까이 내려와 있고, 가끔 한 줌의 빗방울을 내려놓는 조막만 한 먹구름이 멀찍이 지나갔다. 구름 너머 역광마저 푸르게 잡아당기고 있는 드넓은 하늘과 그 아래 먼지 묻은 풀과 돌과 그리고 가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마른 배설물이 가득했다. 그러나 황무지를 지나치며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염소의 무리도,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낙타도, 말을 타고 가는 어린 목동도 아니었다. 찢어진 폐타이어, 죽은 동물의 뼈, 버려진 신발,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고철 덩어리, 빈 술병 등이 널려 있는 황무지는 차가 지나다녀 움푹 팬 길마저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점점 야생부추와 허브 향이 가득한 초원은 사라지고 듬성듬성 사막식물 하르간이 마른 바람에 굴러다니는 건초더미처럼 자라 있었다. 하르간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물기를 모조리 빨아들인 땅은 더욱 메말라서 다른 식물이 살 수가 없었다. 황무지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하르간이 자란 땅은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하르간의 뿌리가 깊이 내린 곳은 바람에 쓸려가지 않고 남아서 땅의 무덤을 이루었다. 이곳은 땅이 죽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죽음의 땅은 모든 것이 끝난 곳이 아니었다. 낙타 한 마리가 억세고 가시가 많은 하르간의 잎을 가지째 뜯어먹고 있었다. 어금니로 잎과 가지를 씹는 소리가 제법 경쾌했다. 주변의 물기를 모조리 빨아들여서 그런지 하르간을 씹는 낙타의 입속이 침과 수분으로 가득했다.

 

   고비,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는 이름은 혹독하다. 그렇지만 이 암석사막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끈질기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았다. 앞서 가는 푸르공이 연막탄처럼 황사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온 길을 지우고 있을 때도, 지워지지 않는 어젯밤의 사나운 밤이 자꾸만 뒤미처 따라올 때도, 나는, 잿빛의 알타이 산맥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사막도시를 지나서

 

   사막도시 달란자드가드(Dalanzadgad)로 가는 길은 그지없이 황폐했다. 며칠 전 마른 비가 지나갔는지 바닷물이 끊긴 죽은 개펄 같은 황량한 폐허만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나마 얼음계곡 욜링암(Yolyn Am)을 되돌아나오는 언덕 아래로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신기루는 아니었다. 지평선을 가리고 있는 웅장한 산맥이 너무 멀어 흐릿한 잿빛으로 보이면서 마치 눈앞에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그 바다 가까이 내려가자 여름 한철 지나가는 비구름이 거대한 암흑의 터널을 끌고서 나타났다. 순식간에 내리퍼붓는 빗물이 알타이 산맥을 타고 흘러내려 온통 붉은 흙탕물로 넘쳐나고 있었다.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터널을 지나온 듯이 곧 비가 그치고 나자 짙푸른 하늘과 붉은 진흙 세상이었다.

   한차례 비가 내려서 그런지 달란자드가드를 향해 가던 길과는 사뭇 다르게 알타이 산맥은 암녹색으로 장대했다.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지만, 아무리 바람을 가늠해 보아도 한나절 급변하는 구름의 방향을 알 수는 없었다. 오늘도 별을 볼 수 있을까. 한 사내가 밤하늘에 몰고 가는 푸른 눈을 가진 양과 갈색 염소의 무리를 만날 수 있을까.

 




   사막에서 물을 찾으려면 낙타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거센 바람은 모래사막 위에 난 희미한 발자국마저 이내 지워버린다. 더 이상 발자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주변에 남은 낙타 똥을 보고 물을 찾는다. 나는 유목민이 아니라 그저 이곳을 지나가는 자였다. 생수는 이틀에 한 번쯤 지나치게 되는 폐허 같은 마을 상점에도 가득했다. 나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겨우 한모금의 물을 마셨을 뿐, 사막에 들어서면서 붉은 모래 먼지에 목구멍 속 깊이 메말랐어도 목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은하수를 찾고 있었다. 양과 염소가 밤하늘을 지나가며 남긴 싱싱한 똥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자정 무렵 잠시 별이 뜨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술에 취한 어리석은 자와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 저녁 일부러 일행들로부터 벗어나 홀로 텐트를 치고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 미안해서 잠시 몇 잔의 술을 나누다가 나왔다. 밖이 소란스러워 다시 나오니 별빛 하나 없이 한 발짝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이었다. 누군가 랜턴도 없이 화장실을 찾아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별이 뜨지 않는 밤이라 홀로 잠들기도 쉽지 않아서 그랬는지 나는 다시 몇몇 일행들이 모인 게르로 들어갔다.

   내가 그 게르를 나왔을 때, 나는 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폐허를 뒤에 남겨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없이 일직선으로 걷다 보면 화가 풀릴 것이라는 어느 에스키모 부족의 오랜 지혜가 나를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작은 랜턴을 하나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한쪽 손에 들린 랜턴의 희미한 불빛은 오로지 내 그림자만을 붙들고 있느라 힘겨웠다.

   조그만 건전지 세 개가 들어 있는 랜턴을 끄고 그 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저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사악한 괴물이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먼 지평선을 타고 둥글게 온 세상을 잠식해 오는 것처럼 그 두려움은 내 걸음의 가파른 골짜기 가득 번지고 있었다.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라고 한 이는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칼 G. 융 외, 『인간과 상징』) 내 격정과 분노는 내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서 유일한 나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발가락이나 까딱거리듯 함부로 제 멱을 따고 있는 술 취한 돼지가 그대로 그 탈을 쓰고 있도록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를 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 내가 걸어간 어둠 속은 통째로 벗겨져 사막에 버려진 검은 염소의 가죽보다도 작았다. 나는 그곳에서 개도 짖지 않을 빈 웃음소리만을 헛헛하게 내고 있었다. 몸뚱이를 잃고 가죽만 남은 죽은 염소처럼.

   기어이 별은 뜨지 않았다.

 

 

   지나쳐온 구름

 

   작은 구름 하나가 언덕을 넘어갔다. 잿빛으로 무거워진 몸이 황무지에 가까이 내려와서 바람에나 휩쓸려가고 사라져버릴 한 줌의 마른 빗방울을 내렸다. 며칠 뒤면 그곳에 키 낮은 풀이 자라날 것이다. 주인도 없이 염소와 양의 무리가 낮은 구릉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내가 지나쳐온 구름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며칠째 황무지와 고원을 지나왔지만, 나는 지명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오래된 기억쯤으로만 남아 있는 이름들을 이미 나는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 낯선 이름들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한순간 영원처럼 뒤를 돌아보았던 어느 이름 하나만을 가까스로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 작은 구름 하나가 지나간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풀을 뜯으러 가고 있습니다

   몇 방울 비가 내린 자리에 잠시

   초원이 펼쳐지겠지요

   이름을 가진 길이 이곳에 있을 리 없는데도

   이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물어봅니다

   이름이 없는 길을

   한 번 더 건너다보고서야

   언덕을 넘어갑니다

   머리 위를 선회하다 멀찌감치 지나가는 솔개를

   이곳 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또 물어봅니다

   언덕 위에 잠시 앉아 있는 검독수리를

   하늘과 바람과 모래를

   방금 지나간 한 줄기 빗방울을

   끝없이 펼쳐진 부추꽃을

   밤새 지평선에서부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별들을

   그리고 또 별이 지는 저곳을

   여기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말은 발음을 따라하지 못하고

   개울처럼 흘러가는 소리만을 들어도 괜찮지만

   이곳에 없는 말을

   내가 아는 말 중에 이곳에만 없는 말을

   그런 말을 찾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나는 게 무엇인지

   아름다움에 병든 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그런 말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런 말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뿌리까지 죄다 뜯어먹어 메마른 구름 하나가

   내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길을 나는 이미 잊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인 듯 뒤에서 이름을 부른다면

   암갈색 눈을 가진 염소가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 김태형,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현대시학》 2012년 7월호)

 

        시·낭송: 김태형 / 첼로: 김태형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고비')

 

 

   어느 곳으로든 이름이 없는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사라지는 순간을 영원으로 이끌고 가려 했는지 모른다. 그 뒤를 검은 염소와 양의 무리가 따라가고 있었다. 곧 황무지만이 남을 것이었다.

   기다림의 외연을 이루는 것들은 대체로 상실감을 향해 기울어 있다. 오랜 동안 의식화된 상징들은 그 외연의 항목들을 무한대로 확장해 왔다. 기다림은 그래서 더욱 황량하다. 삶은 그렇게 잃어버린 어떤 것들을 대체하는 것으로서만 지속된다.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은 죄(罪)의 본질이다. 스스로 잃어버리기를 바라는 자는 그 무엇도 단죄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자는 이미 영원이라는 형벌을 받았다. 이곳과 저곳의 간극에서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기다림만이 남았다.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어제의 그 자리를, 한없이, 뒤에 남은 황무지처럼, 그 모든 것들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돌아오는 것들은 모두 침묵을 닮았다. 지평선을 바라보는 눈은 왜 그토록 슬프고 맑고 깊고 공허했던 것일까.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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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31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2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 김성중(소설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내 행동은 다른 영역에 끼어든 동물과 유사해진다. 우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고, 근거리에 화장실을 눈여겨봐 둔 후(문짝이 없는 화장실도 더러 있기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과 노점을 물색한다. 그 다음엔 반경 2킬로미터 내의 골목을 살살 다니며 지형지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활에 틀이 생긴다. 오전에는 아바나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하릴없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영화관에 간다. 주말에는 한국 사람을 만나거나 올드 아바나에 가서 중국 음식을 먹고 온다. 이곳에 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품과 미디어를 호흡하며 살았는지 알겠다. 쿠바에 와서 쿠바에 대해 알아 간다기보다 그동안의 내 생활에 대해 거꾸로 깨닫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다’라는 문장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여긴 마트가 없다. 없진 않지만 차를 타고 나가야 드물게 나온다. 그리고 물건이 없다. 있긴 한데 가짓수가 적을뿐더러 사고 싶은 상품은 거의 없다. 일례로 나는 이곳 가정집에서 ‘책상’을 본 적이 없다. 가구도 귀하고 케첩도 귀하고 모든 물자가 다 귀하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지만 배급으로 생존은 가능하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돈 쓸 일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하나 만들었다)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으니 달리 ‘욕망’할 무언가가 없다. 이국에서의 망망대해 같은 하루하루는 금세 일상이 된다. 1. 먹는 일 ‘꼬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멋진 바닷가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자들이 소설의 무대를 둘러보기 위해 온다. 그러나 내게는 이 해변이 ‘세계에서 삼겹살 구워먹기에 가장 좋은 곳’쯤으로 입력되고 말았다. 첫 주 주말에 나는 한국 교민의 초대를 받았다. 코트라 부관장 내외와 쿠바에서 7년간 지내 온 경화 언니네 부부다. 마을 건너편 해변에 차를 대고 숯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와 삼겹살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꼬히마르에 온 나는, 헤밍웨이고 뭐고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기와 김치와 파채(채소는 경화 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언니는 심지어 동치미까지 담갔다)를 정신없이 먹었다. 쿠바에 온 첫 일주일은 굶주림의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은 먹자마자 배가 꺼지는 거친 빵에 과일 약간이 전부. 심지어 달걀도 없다. 달걀은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열 개씩 배급받는데, 그나마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피해지역으로 모두 보내졌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은 40만 원 수준인데 이 돈으로 모자라는 달걀도

  • 웹관리자
  • 2012-12-26
바벨의 침묵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동의 내지는 항복을 받아냈으나,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부메랑을 맞은 기억이다. 대체로 그런 기억 속에서 상대방은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안일하게도 내 주장이 설득력 있게 그 사람에게 전달됐거니 생각했고, 나아가 어리석게도 서로 잠깐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쪽으로 우리가 함께 가게 됐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논쟁의 순간 정작 침묵함으로써 나를 공박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장 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깨달았다. 이를테면 침묵은 논쟁의 기술 중 매우 은밀한 힘을 가진 공격 무기였던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2012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 미디어는 물론 개인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SNS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의 양은 선거를 치르기 전 상태를 압도하지만,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단조롭다. 예컨대 당선자가 된 후보의 소감에서 시작해 당선 후 국민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 유력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과 당선자의 답사 등이 속속들이 전달되고 있다. 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선거 성공담이 거듭거듭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대한민국의 새 통치권자가 될 당선자에 대한 각계의 바람과 조언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그런 정치적인 말들과 비등한 양을 차지하는 말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담론이다. 최종 투표율 75.8%로 1987년 직선제 시행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였던 투표율이 처음 반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성적 예측을 깨고 어떻게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범주상 비슷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론 중 특히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자료가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기초로 전체 유권자 중 투표에 참여한 75.8%를 지역·세대·직업·학력·소득 등

  • 웹관리자
  •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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