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공개인터뷰_나는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최민석 편)

  • 작성일 2014-06-09
  • 조회수 2,642

 

연속기획 공개인터뷰_나는 왜(제3회)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

― 소설가 최민석 편

 

정리 : 황현진(소설가)

 

 

 

 

    소설가 최민석 하면 으레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유머와 해학을 떠올린다. 작가는 자신을 가리켜 생각보다 지질하지 않고 의외로 섬세한 사내라고 설명했다. 그 말 또한 옳은 말이다. 그가 굉장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의 소유자임은 역시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겐 호쾌한 농담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생생하게 들러붙어 있다. 특히 최근 출간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2014. 창비)를 읽어 보면 더욱 그러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금 그의 노골적인 자기소개에 동의하게 된다. 그는 우스갯소리에 능하지만 논리와 과학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보다 가면에 가까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최민석, 당신은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 건가요?

 

cms1_10

 

    *

 

 

    실물이 훨씬 젊어 보이는 소설가

 

    ▶ 김미월(이하 김) : 《문장 웹진》 주최, <나는 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제까지 낸 책으로 이미 개성적인 역량을 보여주셨지만 앞으로 낼 책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큰 작가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나는 왜>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 최민석(이하 최) : 그다지 젊지 않은데, 젊은 작가라고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 : 아직 불혹이 안 되었으니까요. 근데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젊어 보여요.

    ▶ 최 : 아, 그 사진 찍을 때 장염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식사를 거의 못 했거든요. 그 바람에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요.

    ▶ 김 :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오만해 보이기도 해서 소설이랑 잘 어울리긴 합니다. 제가 최민석 작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작가에게 케케묵은 질문밖에 하지 않는 걸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제가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아, 이런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 최 : 바로 그런 질문들이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죠.

    ▶ 김 : 총 네 권의 책을 발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한 권의 책이 더 있다고 작가님께서 오늘 정정을 해주시더라고요.

    ▶ 최 : 제가 옛날에 구호단체에서 일할 때, 『바람의 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이 한창 유행했어요. 저도 그런 콘셉트의 책을 준비하던 참에 그럼 나는 바람의 서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출판사에서 욕을 먹기도 했던 에세이 책입니다.

    ▶ 김 : 제가 그 책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해 봤는데요, 작가 소개에 다른 책과는 전혀 다른 글이 있더라고요. “오지여행 전문서적인 줄 알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인생항로를 급선회했다.”라는 문장을 보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최 : 그 책은 슬픈 현실에 대한 보고서이자 기록이기 때문에 소설 쓰는 투로 글을 쓸 수는 없었어요. 그 책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진지한 버전으로 쓴 책이고요. 소설의 경우는 비교적 익살스럽게 쓰는 편이죠.

    ▶ 김 : 최민석 작가의 진지한 면을 알아보기 위해서 집에 가서 그 책을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 : 보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 김 : 저 후회하는 거 좋아합니다.

 

 

    첫 번째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출간 후

 

    ▶ 김 :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가 며칠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통산 다섯 번째 책이지만 소설집으로는 첫 책입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 최 : 소감이랄 게 딱히 없어요. 2010년 말에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등단하고, 2011년 1월에 소설집 한 권 분량을 이미 다 썼거든요. 만 삼 년이나 지난 거죠. 그때 이미 몸을 한번 쥐어짰기 때문에 그동안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죠. 그래서 크게 설레거나 이건 아니야, 라는 식의 자책도 크지 않고, 그냥 담담합니다. 때가 되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더 큽니다. 물론 장편소설을 낼 때와는 기분이 상당히 다르죠. 이번 소설집 속 작품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쓴 것도 있고, 하루 이틀 만에 쓴 것도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담담해요. 앞으로 단편을 더 쓸지 모르겠어요.

    ▶ 김 : 전 최민석 작가의 단편을 장편보다 더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꼭 단편을 계속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 최 : 그래요? 아, 그럼 내가 장편을 정말 못 쓴 거구나.

    ▶ 김 : 그게 아니라 장편은 장편 나름대로 재밌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단편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거든요.

    ▶ 최 : 수습하시는군요.

    ▶ 김 : 진심입니다. 《문장 웹진》과 최민석 작가와 인연이 깊더라고요. 문장의 소리 라디오 진행도 하고 계시고, 2012년 8월 《문장 웹진》에서 <2000년대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을 주제로 좌담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책을 출간하기 전이었는데 그때의 마음가짐과 지금, 혹시 달라진 게 있나요?

    ▶ 최 : 글 쓰는 자세는 크게 변한 게 없고요. 뭐랄까 책을 낼 때의 심정은 좀 달라졌죠. 그 당시엔 제가 첫 소설을 내지 않은 상태라……. 첫 소설을 내기 전까지 굉장히 많은 열정과 노력과 에너지와 포기와 시간을 거쳐서 내잖아요. 하지만 첫 소설을 낸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진 않거든요. 변화는 거의 제로라고 봐야죠. 일단은 제가 직업이 소설가이다 보니까 책을 안 낼 수 없어요.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컨츄리 꼬꼬가 앨범을 내는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컨츄리 꼬꼬가 가수잖아요. 그래서 앨범을 안 낼 수는 없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그들을 가수라기보다는 방송인으로 기억하죠. 저는 에세이를 많이 써요. 사람들은 제 에세이를 많이 봐주지 소설을 찾아서 봐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글 쓰는 자세는 변함없어요. 근데 책을 낼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실망하지도 않고요. 열심히 쓰자, 그런 마음이죠. 갑자기 컨츄리 꼬꼬한테 되게 미안해지는데 사실 저는 그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요즘 불미스러운 일로 활동을 못 하고 있지만, 그 두 사람의 재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 김 : 컨츄리 꼬꼬는 가수로든 입담꾼으로든 많은 사람이 좋아하잖아요. 작가님도 아마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가 될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세 번째 질문을 드릴게요.

 

cms1_15
cms1_01

 

 

 

    구어로 쓰고 문어로 말하는 작가

 

    ▶ 김 : 최민석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혹은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 과장과 익살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단편 「부산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에서 주인공 부르스가 ‘한국어는 쓰는 문자와 말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테면 작가님 작품이 바로 그 구어를 애써 문어로 옮겨 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특히 저는 「국가란 무엇인가」 이 소설을 좋아해요. 굉장히 재밌어서 우울할 때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근데 거기 보면 언어유희, 말장난이 특히 많이 나와서 이 소설은 절대로 번역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 최 : 그렇긴 하네요. 실패했네요.

    ▶ 김 : 저는 한국 작가로서 번역하기 힘든 작품을 쓰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거든요.

    ▶ 최 : 그래도 번역은 되어야 좋은 거 아닐까요?

    ▶ 김 : 외국어와 한국어 사이의 접점을 잘 찾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 이 책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번역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저는 감히 가져 봅니다. 작가님은 입말을 활자로 바꾸는 데 그 거리를 상당히 조절을 잘하는 작가랄까요, 특히 작가 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를 만들어내는 데 굉장히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일종의 소설적 전략인가요?

    ▶ 최 : 전략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죠. 가독성 높게 쓰자,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제가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오래 못 읽어요. 그래서 책을 좀 펼쳤다가 덮는 편이거든요. 제가 책을 많이 읽었다면 문어체에 익숙하겠죠. 저는 대부분의 정보를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섭취하다 보니까, 저 역시 글을 쓸 때 문어체 위주가 아니라 구어체 위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은 제 경험치이자 단점의 결과이기도 한데, 애써 그걸 부인하기보다 기왕 그렇게 된 거 구어체처럼 잘 읽히게 쓰자, 염두에 두고 퇴고합니다.

    ▶ 김 : 이제 보니 말씀은 문어체로 하네요.

    ▶ 최 :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제 말을 받아쓰다 보면 다시 구어체가 되더라고요. 이런 말, 제 입으로 하기 쑥스럽지만 말과 글의 혼연일체라고나 할까요.

    ▶ 김 : 작가의 말을 보면 사람들이 의외로 나를 보면 지질하지 않아서 놀란다, 점잖아서 놀란다, 횡설수설하지 않아서 좋아한다, 라고 되어 있어서 사실 기대했거든요. 작가님의 소설이 구어체의 향연이라면, 작가님의 평소 말씀은 아주 차분해서 굉장히 낯설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 사실 이건 멋있게 표현한 말인데, 이런 겁니다. 왜 주인공이 작가인 사람을 소설 속에 자주 등장시키는가? 소설을 읽어 보면 아예 나는 작가입네, 나는 최민석입네, 라고 대놓고 얘기를 하거든요.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만을 토로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익살을 떠는, 최민석 작가만이 가진, 전매특허를 낸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근데 사실 모든 소설가들의 소설이 자전적이라 말할 순 없거든요

    ▶ 최 : 당연히 「독립운동가 변강쇠」가 자전적일 순 없죠.

    ▶ 김 :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작가를 주인공으로, 최민석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지.

    ▶ 최 : 맥 빠지는 대답일 수 있으나 대단한 의도나 문학 외적인 논의를 작품에 끊임없이 투입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어서가 아니고요, 저는 그냥 그렇게 글 쓰는 게 재밌어요. 제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은, 글 쓰는 제자신이 스스로 재미있어야 되기 때문이거든요. 동시에 읽는 사람도 함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내자, 하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소설책에 작가의 말 쓰는 걸 굉장히 꺼려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작품 안에서 다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작품 안에 작가가 개입하기도 하죠. 자연스레 너스레와 풍자를 떨게 됩니다. 작가의 말이 제일 부담스러워요. 많은 독자들이 서점에서 작가의 말을 먼저 펼쳐 보거든요. 그게 재밌으면 책을 사고 그게 재미없으면, 이 사람은 이 짧은 글도 못 쓰네 싶어서 책을 안 읽거든요. 심지어 제가 어느 에세이에서 나는 작가의 말을 쓰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고 해놓곤 그 2주 뒤에 작가의 말을 썼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하는 수 없이 작가의 말에 그에 대한 변명을 썼어요.

    ▶ 김 : 전 그런 부분이 재밌었어요. 전 작가님의 솔직함과 융통성이 최민석이란 사람에 대한 매력을 높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최민석 작가님의 책에서 작가의 말을 읽으면 반드시 책을 사게 될 것 같아요.

    ▶ 최 : 작가의 말만 읽고 안 살까 봐 걱정입니다.

 

cms1_19
cms1_02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

 

    ▶ 김 :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 이외 작품에는 오히려 엉뚱하고 독특한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원숭이 인간, 부산 사투리를 쓰는 외계인, 키르기스스탄 용사의 후예 등등. 물론 세상의 모든 소설에서 인물은 곧 그 소설 자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지만, 최민석 작가님 소설에서는 그런 점이 특히 부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이 소설을 끌고 가는 기운이 승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인물을 먼저 정해 놓는 편인가요?

    ▶ 최 : 쓸 때마다 다른데요. 『쿨한 여자』를 쓸 때는 목표가 하나였어요. 서정적인 분위기를 몰고 가자. 『능력자』는 끊임없는 장광설로 소설을 이끌어 보자. 「시티버스를 탈취하라」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써보자, 라는 게 목표였어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정해지면 소설의 캐릭터와 분량 등등도 함께 정해지죠. 예컨대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 백 년인 경우는 장편소설로, 이 인물이 굉장히 고독하다 싶으면 연애소설에 걸맞죠. 인물이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 문체가 장광설의 소설이 되기도 하죠. 어떤 경우는 한 문장을 쓰고 문장에 문장을 덧붙이면서 쓰기도 해요. 그렇지만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캐릭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은 소설은 읽기 힘들어요.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는 것은 누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거든요.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지만, 구성상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뒷받침하는 것은 인물이죠. 구성도 탄탄하고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주제의식도 명백한 소설, 앞으로 그런 소설을 쓰려고요. 다음부턴 그렇게 할게요.

    ▶ 김 : 첫 책 『능력자』로 큰 상을 받으셨는데, 가장 먼저 출간된 이 책이 실은 가장 늦게 쓰였습니다. 단편집 ‘작가의 말’에 책들의 집필 시기와 출간 시기가 역순이 되면서 독자들에게 최민석의 문학적 수준이 나날이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어쩌나 걱정하셨는데, 그렇다면 『능력자』가 2014년 5월 현재 최민석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나요? 혹은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최 : 그런 시가 있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제 이름을 떳떳하게 박을 수 있는 작품은 아직 안 나왔다고 생각해요.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쓰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은 『쿨한 여자』의 1부에 해당하는 단편이고요. 2·3·4부는 제가 새로 이어 쓴 부분이고요. 소설집을 묶으려고 보니『시티버스를 탈취하라』의 전체 맥락과 『쿨한 여자』가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쿨한 여자』를 소설집에서 뺐어요. 쓰고 난 뒤에 후회했어요. 내가 괜히 덧붙여서 아꼈던 『쿨한 여자』의 매력을 떨어트린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나중에 혹시나 개정판을 낼 일이 생기면 공사를 좀 하려고 합니다. 보너스 트랙으로 실려 있는 「누구신지…」라는 소설도 책 전체와 결이 안 맞거든요. 그래서 앨범 식으로 구성을 한 거죠. 가수들이 보면 정규 앨범에 넣기 애매한 곡들을 보너스 트랙으로 넣잖아요. 「누구신지…」도 제게 그런 작품입니다.

    ▶ 김 : 전 결이 안 맞는다는 생각 못 했어요. 『쿨한 여자』가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 최 : 이미 늦었네요.

    ▶ 김 : 『쿨한 여자』는 표지에 아예 연애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만, 제주 강정마을 일화 때문인지 저는 그것을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 최 : 작가가 책을 내면, 백 프로 자기 고집을 주장할 순 없죠. 출판사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게 ‘최민석 연애소설’이라는 문구였어요. 그래서 저도 강력하게 주장한 바가 있는데 『쿨한 여자』의 표지를 2도 인쇄로 해달라는 거였어요. 근데 많은 독자들이 책 겉표지를 안 벗기고 소장해서 잘 모르더라고요. 표지의 색이 상징하는 바가 초콜릿에 박힌 민트거든요. 이런 깊은 뜻을 누가 알려나요.

    ▶ 김 : 도서관에 가면 겉표지를 벗겨서 진열을 합니다만.

    ▶ 최 : 몰랐어요.

    ▶ 김 : 정말 책을 안 읽으시는군요.

    ▶ 최 : 그럼 『쿨한 여자』는 도서관용 도서로 명명하겠습니다.

    ▶ 김 : 『쿨한 여자』를 읽으면서 결말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환상적이랄까요 이른바 열린 결말이더라고요.

    ▶ 최 : 원래는 이 소설의 결말 부분, 즉 별표 이후 덧붙인 부분 때문에 앞에 했던 이야기의 내용이 완전 뒤바뀌죠. 원래는 그 부분이 없었는데, 그렇게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써서 보냈더니 편집자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상태로 책을 냈는데 지나고 보니 덧붙인 부분을 빼고 싶더라고요. 별표 이후 부분을 빼면 『쿨한 여자』는 시리즈로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어요. 이 주인공도 더블린으로 여행을 가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는 거죠. 함께 여행하고, 술 마시면서 반복되는 이별 속 얽히는 에피소드. <비포 선라이즈>처럼 계속 연장되는 거죠. 그런데 제가 결말을 덧붙이면서 독자들의 위대한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한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cms1_11

 

 

    기초체력 훈련과도 같은 에세이 쓰기

 

    ▶ 김 : 원래 등단하기 전에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결국 소설가가 된 후 바라 왔던 대로 에세이집을 출간하셨는데 지금도 정말 쓰고 싶은 글은 에세이라는 데 변함이 없나요?

    ▶ 최 : 전 등단 시스템을 몰랐어요. 신춘문예라는 말을 들어 보긴 했지만 제대로 몰랐어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서 채택되면 책이 나오는 줄 알았어요. 저는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시를 써서 밥벌이를 할 만큼 잘 쓸 자신은 없었고, 그나마 쓸 수 있는 장르가 무얼까, 생각해 보다가 소설을 쓴 거죠. 지금도 에세이에 대한 애정이 커요.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고 있거든요. 야구선수가 아무리 배팅 연습을 많이 해도 기초체력 훈련은 해야 되잖아요. 제게 에세이는 기초체력 훈련과 같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문장 연습도 하고 스타일도 익히는 거죠. 소설은 거짓말이잖아요. 내가 아무리 정치적인 소신을 소설 속에 밝혀도, 누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어, 라고 물으면 내가 한 말이 아니니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죠.

    ▶ 김 : 식상한 질문인데 어쩌다 작가가 되셨나요?

    ▶ 최 : 원래는 직장인이었어요. 부서이동을 하는데 도저히 그 부서에 못 가겠어서 말을 했어요. 그래도 발령을 내더라고요. 그래서 사표를 냈어요. 자네 뭐 할 건가? 상사가 묻기에 글을 쓸 겁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아, 자네 그럴 줄 알았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사표 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라고요. 그때 제가 첫 번째 에세이『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쓰고 있었거든요. 석 달 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뭘 할까 생각했어요. 독립영화를 한 편 찍으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글밖에 없겠다, 일단 소설을 써보자, 대신에 육 개월 안에 결과가 안 나오면 다시 구직활동을 하자, 생각했는데. 운 좋게 데뷔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죠.

    ▶ 김 : 듣고 보니 작가가 된 경위가 다른 작가들의 경우보다 훨씬 극적이고 소설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 최 :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 영화감독을 꿈꾸던 사람이었고, 영화감독도 결국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지라 원래 꿈에서 약간 변형되었다고만 생각해요. 당연히 어릴 때부터 소설가나 시인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겠죠. 저도 크게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에요.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글쓰기

 

    ▶ 김 : 이런 질문을 이미 100번쯤 받아 보셨을 것 같아 여쭙기 죄송하지만, 작품을 쓰다가 글이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좀 전에 글쓰기는 일단 자신에게도 재밌어야 하는 작업이다, 라고 말씀하긴 했지만, 늘 즐거운 건 아니죠?

    ▶ 최 :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잖아요. 풀어서 말하자면 남의 고통을 보고 내가 즐거워한다는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말이죠. 한마디로 이율배반적인 즐거움이 있는 거죠. 소설 쓰는 즐거움은 마라톤 할 때와 비슷해요. 제 경우엔 4킬로 넘으면 몸이 가뿐해지면서 즐겁게 뛸 수 있어요. 근데 그 전까진 엄청 힘들어요. 소설도 내가 생각한 바가 의도한 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엄청 괴롭고 힘들죠. 근데 소설 쓰면서 재밌고 즐거운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글이 써진다고 느낄 때죠. 그런데 그 과정은 굉장히 큰 고통을 수반한 즐거움이죠.

    ▶ 김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최 : 딱히 계획이 없습니다. 여태 너무 바쁘게 쓴 것만 같아서 올해는 좀 충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장편을 쓰고 싶고요. 『시티버스를 탈취하라』가 영화화될 예정이라 제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해야 합니다. 8월에는 『풍의 역사』라는 장편소설이 나옵니다. 요즘은 그 소설을 퇴고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는 베를린의 레지던스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를 예정입니다. 거기서 맥주를 많이 마시고, 연구도 좀 해서 맥주에 대한 소설을 쓸까 합니다.

 

 

    최민석 작가는 구상 중인 맥주에 대한 소설을 꽤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듣기에도 굉장히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용을 글로 옮기진 않겠다. 추후 나올 그의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베를린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쓴 소설이라며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날이 온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웃지 않을 수 없겠으나 통쾌한 기분 또한 맛보게 될 것이다. 예상한 바지만 최민석 작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청중석에선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탓일까. 독자 분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 독자(이하 독) : 『청춘 방황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먼저 읽었는데요. 그 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께서 생선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 최 : 엄청 좋아합니다.

    ▶ 독 : 생선에 대한 사유가 우주에 대한 비유로 확장되어 가는 걸 보면서 재밌지만 진지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그 책에 B급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더라고요.

    ▶ 최 : 베스트의 약자입니다. 농담입니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A급 이른바 훌륭한 주류문학이라는 것은 치밀한 구성과 버릴 것 없는, 결이 아름다우면서도 무게감 있으면서 훌륭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주제의식 또한 누구나 고민하지 않았으나 정말 필요한 문제를 담고 있어야 하면서 너무 명징하게 드러나거나 흐릿하게 감춰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문학을 할 여력과 내공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문학, 내 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써내려가는 것, 지금 제 나이에서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A에서 시작하지 않고 B에서 시작해서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나아가는 동안 A급으로 발전하고 싶습니다.

 

    ▶ 독 : 작가님에게 글쓰기의 의미는 즐거운 소통이라고 말씀하는 걸 어디선가 봤어요. 작가님이 의도하는 소통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 최 : 저는 소설 쓸 때 대단한 목적을 가지지 않아요. 제 소설로 인해서 사회나 독자가 변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작가가 그걸 염두에 두고 쓴다면 그건 작가가 독자를 너무 푸시하는 느낌이 들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만약 독자가 책을 읽고 난 후, 일상이 조금 바뀌었다면 그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독자나 사회의 변화를 의도하는 글은 기사나 연설문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소설이란 게 킬링타임용이 아닌지라 어떤 의식이나 의도는 포함해야겠죠. 하지만 그 자체를 염두에 두진 않습니다.

 

cms1_06

 

 

    평론가 오창은 선생님의 질문도 이어졌다.

 

    ▶ 오창은(이하 오) : 소설에서 인물들이 중요한데, 예외성이나 의외성 또는 범상한 것과 평범한 것에 기반을 두고 캐릭터를 포착하는 기준이랄까요, 어떤 효과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쓰는지 궁금합니다.

    ▶ 최 :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소설에 씁니다. 어떤 소설에선 굉장히 뻔한 인물들이 나와요. 『쿨한 여자』의 주인공은 고전문학의 전형적인,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고독형 인물이죠. 『풍의 역사』에 나오는 주인공은 허풍쟁이인데 그 인물도 굉장히 뻔하죠. 반면에 외계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는 다르죠. 저는 뻔하면서 약간은 다른 인물, 극단적인 인물이 아니라 ‘뒤섞인 인물’을 선호합니다. 독자의 생각과 계속 호흡하면서 움직이는 인물들, 이를테면 설마 죽는 거 아니야, 독자가 추측했을 때 정말로 죽어버리는 것처럼 독자와 보이지 않는 탁구를 치는 거죠. 이야기라는 공을 놓고 독자와 계속 감정선을 주고받는 것과 같죠. 뻔한 캐릭터와 뻔하지 않은 이야기, 뻔한 이야기와 뻔하지 않은 캐릭터를 뒤섞어 가면서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 독 : 평소의 인간관계랄까, 사람을 대할 때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하는지요?

    ▶ 최 : 견딥니다. 소설을 쓸 때도 뻔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을 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더 뻔뻔하게 씁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저는 글을 쓰면 사람을 거의 못 만나요. 매일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되잖아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나갈 수가 없어요. 술도 마실 수 없어요. 마감한 날 혼자 한두 잔 하죠. 제게 사람 만나는 시간은 중요해요. 그래서 되도록 견딥니다.

    ▶ 독 : 『능력자』를 읽었는데 화자가 작가라고 하긴 했지만, 주인공이 최민석은 아니잖아요. 상상과 달리 작가님이 의외로 점잖아서요. 혹시 그런 자신을 깨고 싶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작가님과 반대의 캐릭터를 갖는 건 아닌가요?

    ▶ 최 : 그런 것도 없잖아 있겠죠.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어요. 중간쯤인 사람이 또 있는데 저는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혼자 소설을 쓰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더라고요.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글로 실현하니까, 말하고 싶은 욕망이 줄어들더라고요. 혼자 쉬고 싶더라고요. 전 저 자신을 완전히 깨고 싶지도 않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 것 같긴 해서…… 제 정체성에 대해 늘 혼란스러워합니다.

 

    ▶ 김 : 작가님의 진짜 성격은 뒤풀이 자리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오신 최민석 작가님께 감사드려요.

    ▶ 최 : 저 가까이에서 왔습니다.

 

cms1_13

 

 

 

   《문장웹진 6월호》

 

추천 콘텐츠

산책과 가을의 일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