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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공개인터뷰] 나는 왜 SF적 이야기에 끌리는가

  • 작성일 2015-09-13
  • 조회수 2,571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14회)

 

 

나는 왜 SF적 이야기에 끌리는가?

- 소설가 윤이형 편

 

 

정리 : 안희연(시인)

 

 

 

    그날은 낮부터 멈추지 않고 비가 왔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였을까요. 유난히 어둡고 흐린 날이어서, 많이들 안 오시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였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자리해 주셨더군요. 저 역시도 작가님을 처음 뵙는 자리여서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평소 남몰래 흠모해 왔던 마음을 감춘 채 윤이형 작가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지금껏 작가님은 어떤 질문을 품어 오셨는지, 요즘 품고 계시는 질문은 무엇인지,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속 시원히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어요. 대화를 듣는 내내 커다란 유리구슬을 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떨어지면 깨어질까 조심스럽고 자꾸 제 모습이 비쳐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정확한 무게였습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습니다. 그날의 대화를 아래에 옮겨 적습니다. 이 말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도 자주 목격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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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는 나를 계속 생각하면서

 

    ▶ 김미월(이하 김) : 《문장웹진》 공개인터뷰 [나는 왜] 시간입니다. [나는 왜]는 매달 한 분의 시인 혹은 소설가를 모시고 그분의 작품세계를 조망해 보는 시간이에요. 이번 달에는 윤이형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윤이형 작가님은 1976년 서울 출생이고,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과 근작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을 펴내셨습니다. 오늘 비가 와서 오는 길이 나빴을 텐데, 큰 박수로 맞아 주세요.

 

    ▶ 윤이형(이하 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 : 오늘 제가 준비한 질문은 “나는 왜 SF적 이야기에 끌리는가?”인데요. 제목을 정하기까지 고심을 많이 했어요. ‘SF적’이라는 말로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게 왠지 싫으실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대다수의 평자와 독자가 윤 작가님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이야기임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해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차차 나눠 보기로 하고요, 첫 질문은 가볍게 던져 볼게요. 이건 팬심으로 하는 질문인데요. (웃음) 작가님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궁금합니다.

 

    ▶ 윤 : 제가 굴, 해삼, 멍게를 못 먹어요. 어른들의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저까지 먹어야 하나 싶어요. 그것 빼고는 다 좋아해요. 이탈리아 음식, 면류를 특히 좋아하고요.

 

    ▶ 김 : 첫머리에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나요? (웃음) 작가님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혹시 요리 잘하세요?

 

    ▶ 윤 : 잘하지는 못하는데 좋아해요. 요리는 사람에게 즉각적인 방식으로 기쁨을 주고 그 과정이 단순 명쾌해서 좋아요. 소설은 안 그렇잖아요. 과정도 복잡하고, 오래 걸리고, 뭔가를 주긴 주더라도 그게 기쁨이 아닐 수도 있고요.

 

    ▶ 김 : 요리하는 거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웃음) 그럼 지금부터는 차근차근 작품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최근에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을 출간하셨는데요. 『큰 늑대 파랑』 이후 4년 만이에요. 신간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공백기가 있었는데, 이전의 왕성한 활동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하더라고요.

 

    ▶ 윤 : 글이 안 써져서 2년 반에서 3년 정도 쉬었어요. 문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소설도 그렇지만 간단한 일기조차 쓰기 힘든 상황이었고요. 왜 안 써질까 분석도 해보고 도움이 될 만한 책도 찾아 읽어 봤는데 큰 효과는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더라고요.
    저는 갑작스럽게 데뷔를 했기 때문에 따로 습작기랄 것을 거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습작기에 겪는 어려움이 데뷔하고 나서 찾아온 것 같아요.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늘 쓰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쓰는 저를 계속 생각했어요.

 

    ▶ 김 :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시간을 관통했기 때문인지 그 후 발표작들이 정말 눈부십니다. 아직 책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루카」라든지, 「러브 레플리카」, 「굿바이」, 「쿤의 여행」, 「대니」 등 발표할 때마다 유수 문학상 후보로 오르며 눈부신 성과를 냈잖아요. 공백기를 거치며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 윤 : 일단은 환상을 줄이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라면 여러 방식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실에 최대한 가까운 글을 써보자 마음먹었고요. 전에는 사소한 일들에 관해 쓰는 것에 대한 공포가 심했거든요. 이를테면 사랑이라든가 나이 들면서 느끼는 쓸쓸함 같은 것들이요. 왜냐하면 제가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런 감정들에 매몰되어서 자폐적이 될까 봐 스스로 경계하고 애를 써왔는데, 어느 순간 그런 작은 감정들이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관심사가 인간의 내면(정신, 마음, 무의식)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고요.
    소설에서는 자아보다 세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하잖아요. 그게 맞기도 한데, 곰곰 생각해 보면 외부에서는 전쟁 얘기가 오가는 것처럼 매일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데 개인들은 거기에 상응하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그저 충격을 흡수하고 적응하면서 한결같은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어요. 이렇게 충격적인 외부 상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다 보면 인간의 내면이 비틀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비틀림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로 다시 번져 나가게 되잖아요. 우리의 무의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주의 깊게 보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소설의 소재도 인간의 내면, 감정 등으로 옮겨온 것 같습니다.

 

    ▶ 김 : 역시 공백기를 거치기 잘하신 것 같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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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사로잡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 김 : 최근 출간된 『개인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소설은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한 남자가 과거의 연애를 회상하는 이야기인데요. 처음에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내가 11살이던 2022년……”으로 시작되더라고요. (웃음) 책 초반에 주인공이 기억에 의존해 「기억의 천재 푸네스」(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에 수록된 단편)를 적어 내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부분을 읽으며 집에 있는 『픽션들』 책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소설에 등장한 것과 다른 판본이더라고요. (웃음) 이 소설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 윤 : 말씀하신 대로 미래가 배경이긴 한데 전에 쓴 작품들과는 다르게 현실에 최대한 가까운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미래가 배경인 이유는 이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게 실재하는 증후군인데,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 의학적인 대처방안이 없고,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도 현재까지는 소수예요. 넘쳐나는 기억을 통제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죠. 이 증상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의학적인 대처방안이 나오려면 뇌 과학이 발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몇 십 년은 더 필요하겠다 싶어 그걸 계산해서 미래를 배경으로 하게 됐고,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어요.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이고 ‘기억’에 관한 제 나름의 고찰이기도 해요. 저에게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개인적인 화두였어요.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몇 년 전 일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게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더라고요. 기억은 존재 기반인데 딛고 설 땅, 고향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매순간 열심히 살긴 했는데 허망하고 불안한 거예요. 반대로 기억이 많은 사람은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그 사람은 세상 속에 있다는 확신이 들까?’, ‘불안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확신은 있으나 그 세상은 너무 작은 세상이라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이 소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어요.

 

    ▶ 김 : 저는 작가님이 기억력이 좋으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경험에서 나온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군요. (웃음) 윤이형 작가님 소설에는 SF적 설정이나 소재가 많잖아요. 이런 소설을 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억력도 좋으실 것 같았고요. 그런데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네요. (웃음)
    한편 오늘의 핵심 질문이 “나는 왜 SF적 이야기에 끌리는가?”잖아요. 첫 소설집만 해도 「피의 일요일」, 「판도라의 여름」, 「안개의 섬」처럼 SF적 상상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없지 않았지만 그때는 SF가 윤이형의 대표 수식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큰 늑대 파랑』에 오면서부터 이 작가가 SF의 서사기법에 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좀비, 사이보그, 가상공간, 시간이동 등 SF적 상상력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는데 이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윤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일단은 장르로서 SF를 좋아해요. 작가로서 ‘누가 봐도 SF소설’인 것을 아직까지 쓰지는 못하고 있고, 그래서 괴롭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걸 좋아하는 사람인 건 분명한데요. 좋아하는 이유를 대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것 같은데, 제가 감성이 강한 사람이어서 반대되는 것에 끌렸던 것 같아요. SF의 과학적인 사고, 논리적인 접근 태도, 경이감이 만들어지는 공정 같은 것들이 저에게는 불가능하면서도 너무도 매력적인 꿈이었고, 그래서 잘 안 돼도 자꾸만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실을 현실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잘 안 생기더라고요. 현실이 저에게는 거대한 장벽의 연속처럼 느껴져요. 거기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고, 제가 현실이라고 써놓은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제 생각에, 개인을 계속해서 억압하는 현실이라는 장벽을 그것 자체로서 계속 들여다보다가 거기서 어떤 의미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걸 충실히 그려내면 그게 리얼리즘이 되는 것 같아요. 반면 저는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 이 장벽 자체가 없으면 어떨까, 저 너머에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상상을 해서 돌파하려는 스타일이에요. ‘저 장벽이 없다면 행복할까?’, ‘저 너머에 나를 데려다 놓으면 행복해질까?’ 질문을 하는 거죠.

 

    ▶ 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안 하는 생각인 것 같아요. 윤 작가님 소설을 보면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싶은, 기발하고 독특한 설정이 많거든요. 「굿바이」에서는 인간의 몸을 지구에 두고 기계의 몸으로 화성으로 떠나간다는 설정이 있고, 「쿤의 여행」에서는 가상의 물질 ‘쿤’이 등장하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상상력들이 생겨나고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지 궁금해요. 주제를 먼저 생각하시나요? 혹은 한 줄의 문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요? 윤이형 작가님의 발상, 집필, 퇴고 과정이 궁금합니다.

 

    ▶ 윤 : 독특하다고 하시는데 별로 안 독특해요. (웃음) 독서 취향이 달라서 생기는 오해인 것 같은데 장르 문학 쪽에서 보면 너무 낡고 흔한 설정에 불과하거든요. 저는 새로운 상상력, 독특한 장치 등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설정 자체는 클리셰에 가깝더라도 그걸 저만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한 번씩 써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용이 먼저이고 형식을 그다음에 생각하는 건데, 그래서 장르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장르는 형식 자체가 조금 더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구상이 90%이고 쓰는 것은 10% 정도인 것 같아요. 질문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살아가면서 나에게 중요한 문제(화두)는 계속 바뀌잖아요. 「굿바이」를 쓸 때는 계급과 계층이 다르고 신념이랄까,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정반대인 사람들이 만났을 때를 생각했어요. 그 둘이 만나면 적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이었고요. 「쿤의 여행」을 쓸 때는 ‘나는 성장하지 않는구나. 도대체 어쩔 셈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질문이 생겨나면 질문을 가진 인물을 만들고 결정적 장면을 만들고 여백을 채우면서 소설을 써내려가요. 쓰는 건 빨리 쓰는 편이에요.

 

    ▶ 김 : 초고 완성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 윤 : 단편의 경우에는(가령 3개월이 주어진다고 할 때) 보통 2개월 반은 구상, 나머지는 쓰고 퇴고하는 시간으로 보내요. 그런데 작품마다 달라요.

 

    ▶ 김 : 구상이 큰 기간을 차지하시네요.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하지만 윤이형 작가님의 손을 거치면 익숙한 이야기도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질문 드렸어요. 아마 오늘 이 자리에도 소설가 지망생이 계실지 모르는데, SF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 윤 : 소설 쓰려는 분들에게는 자신을 믿으라는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어요. 소설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잖아요. 이를테면 입담이 좋은 작가, 캐릭터를 잘 만드는 작가,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 사유를 깊이 하는 작가, 세계관을 정밀하게 만드는 작가 등 개성과 장점이 각자 다를 텐데, 그중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놓지 말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파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옳은 것 같아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요. 부족한 것은 후에 채우면 되니까요.
    그리고 SF에 관해서는, 제가 SF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기 어려운데, 우선은 팬덤(fandom)에 대한 이해가 중요할 것 같아요. SF 팬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알고 그걸 따라 읽는 게 가장 빠르고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이에요. 저는 팬덤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뒤늦게 공부를 해야 해서 좀 어려웠어요.

 

    ▶ 김 :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 멀리 봤을 땐 중요한 조언인 것 같습니다. 윤이형 작가님 자신이 그 좋은 예인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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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의 시간, 마음에 들게 소설을 고칠 수 있는 기적

 

    ▶ 김 : 대화 초반에 잠깐 공백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요즘도 그런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오나요? 작품이 안 써질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윤 : 왜 안 써지는가를 생각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만약 제게 다시 그런 시기가 온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취재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소설 안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요. 지금도 그런 시기가 가끔씩 찾아오는데 요즘에는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써요. 나중에 ‘마음에 들게 고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 김 : 당장 마감이 없어도 출퇴근하듯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시는 편인가요?

 

    ▶ 윤 :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 김 : 오, 다행이다. (웃음)

 

    ▶ 윤 : 그런 사람들은 천재라고 생각해요.

 

    ▶ 김 : 저는 천재가 아니라 환자 같아요. (일동 웃음) 왠지 마음이 놓이네요. 윤이형 작가님도 청탁 받아야 가까스로 책상에 앉으신다는 거죠?

 

    ▶ 윤 : 말하자면 그렇죠.

 

    ▶ 김 : 정말 다행이다. 인간적인 작가셨어요. 정말 다행이네요. (일동 웃음) 그러면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지 않을 땐 주로 무얼 하시나요?

 

    ▶ 윤 : 최대한 의미 없는 일을 하려고 해요. 제가 지금 네 살짜리 아이 엄마거든요. 그래서 여유 시간이랄 게 별로 없어요. 여유가 생기면 휴대폰 게임을 한다든지 웹서핑을 한다든지, 소설과 가장 멀고 무의미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의미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으면 쓸 때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고요.

 

    ▶ 김 : 그게 노력이에요? 저는 원래 그런 일에 관심이 많은데. (일동 웃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어서 시간이 금방 가네요. 어느덧 제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음엔 어떤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 윤 : 현재 한 문예지에 『씨앗들』이라는 경장편 연재를 하고 있어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나오고, 마찬가지로 기억에 관한 이야기고요. 기억에 관한 화두를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아마 이 작품이 마지막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이걸 다 쓰면 다른 화두로 넘어가려고 해요. 그다음에 대해서는 더 있어 봐야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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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 그럼 이 자리에 오신 독자 여러분의 질문을 받아 볼까요? 육아 관련 질문도 좋고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 독자 질문 :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는지, 언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 윤 : 원래부터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잡지사에 취직해서 10년간 일을 했고요. 10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니 지치더라고요. 글을 쓰긴 쓰는데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글은 아니었으니까,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 소설 강좌를 수강했어요. 그때 숙제로 쓴 소설을 모아 응모했는데 운 좋게 등단이 됐죠. 그 전에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 독자 질문 : 저는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서울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회사에 반차 내고 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님 글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소설도 소설이지만 2015년 봄호 《문학동네》에 발표한 산문 「침묵의 그늘」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정치적인 내용의 산문도 잘 쓰시는 것 같은데, 혹 산문집을 내실 계획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 윤 : 세상에서 가장 쓰기 힘든 글이 에세이 같아요. 실제의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굉장히 어려워요. 차라리 소설이 더 편한 것 같아요.

 

    ▶ 독자 질문 : 소설집 뒤에 평론이 수록되잖아요. 혹은 계간지 등에 비평이 실리면 찾아 읽으시나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분석한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 윤 : 일단 보긴 보는데, 자세히는 못 읽고 눈을 가늘게 뜨고 후루룩 넘기는 편이에요. (웃음) 평론가도 일단은 독자잖아요. 모든 독자는 오독할 권리가 있고, 어떤 식으로 읽든 자유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미 그건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반면 제가 생각지도 못한 작품 속 의도나 무의식적인 면을 짚어 주실 때는 신기하죠. 그렇지만 비평이 다음 소설을 쓸 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창은 문학평론가 : 윤이형 작가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제가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재직할 때 잡지에 윤이형 작가님 단편을 수록한 적이 있어요. 그때 편집부 직원이 “이런 작가 처음 본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일인고 하니, 원고에 비문이나 오탈자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나름대로 편집 일을 오래 한 편집자였는데 이런 작가는 처음이라고, 이렇게 정성들여서 탈고한 소설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에피소드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윤이형 작가님은 퇴고를 오래 하시는 편인가요? 퇴고할 때 내러티브가 바뀐 적도 있나요? 퇴고할 때는 무엇에 주안점을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 윤 : 옛날에는 끝없이 고쳤어요. 퇴고를 여러 번 한 상태로 편집부에 넘겼는데, 교정쇄가 오면 또 고치고요. 그걸 멈출 수 없어서 편집자 분들을 많이 괴롭혔어요. 저도 괴로웠고요. 심지어 책이 나왔는데도 고치고 싶은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한 사람의 생각은 일정량의 시간이 지나야 크게 변하지, 아무리 이게 옳은지 아닌지 고민해도 어느 시기에는 큰 틀은 안 바뀌더라고요. 예전에는 퇴고할 때 결말을 확확 바꾸곤 했는데, 최근에는 크게 안 바꿔요. 어떠한 결론이 도출되었다면, 그대로 놔두는 편이에요.

 

    ▶ 독자 질문 : 『개인적 기억』을 읽다 보니 ‘남자들은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옛날 여자에게 불쑥 연락하는 건 굉장히 한심한 노릇이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작가님 생각이 그런지, 아니면 대다수의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김 : 불쑥 연락하고 싶은 분이 계신가 보네요. (일동 웃음)

 

    ▶ 윤 : 음, 일반적인 여성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고 우선 저는 그런 행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예의가 없지 않나요? (웃음) 기억은 항상 미화가 되거든요. 각자 가슴에 품고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데 지나간 것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면 타인의 현재를 배려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에 사랑한 사람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지만 사실 그건,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경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렇게 불쑥 타인의 현재로 들어오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

 

    그날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비도 오는데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우니까, 모두들 각자의 우산을 쓰고 총총히 근처 맥주 집으로 이동했지요.
    그날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그날의 우리는 각자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제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기억은 항상 미아가 된다.’는 작가님의 문장뿐입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휘발된 후에도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문장. 아마도 그 문장으로부터 윤이형 작가님의 이번 소설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부메랑처럼.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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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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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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