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세계 문학축제 특집] 영국 에든버러, 찬란한 문학 도시로의 초대

  • 작성일 2016-07-05
  • 조회수 3,176

[세계 문학축제 특집]

 

 

영국 에든버러, 찬란한 문학 도시로의 초대

 

 

백교희

 

 

사진1

 


    매년 여름이 되면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에든버러 프린지,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 등 여섯 개의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총 열두 개의 축제로 이루어진 에든버러 축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이래 매년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수백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1983년 격년제로 시작된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는 에든버러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축제로 성장하였다.

 

사진2

 

에든버러의 문학적 자산

    에든버러는 수많은 문인을 배출해 낸 문학적 토양이 비옥한 도시다. 『셜록 홈즈』를 쓴 아서 코난 도일, 『해리 포터』를 쓴 J. K. 롤링 등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이 도시에서 글을 썼다. 또한 1725년 최초로 대출이 가능한 시민 도서관을 설립한 도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국립 도서관, 스코틀랜드 시문학 도서관, 스코틀랜드 출판사 협회,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등 책과 관련된 주요 기관들이 지역의 문학 창작부터 시민들을 위한 독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스코틀랜드 문학 활동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2004년, 에든버러가 가진 문학적 자산과 이를 위한 노력을 인정하여 최초의 유네스코 문학 도시로 선정하였다. 이후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도시 기금이 설립되어 에든버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학을 진흥시키고자 신진 작가 발굴, 시민들의 독해력 강화, 문학 관광 개발, 다양한 협력 관계 개발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3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축제는 다채로운 문학 활동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에든버러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국제 책 축제 외에 다양한 주제를 가진 여섯 개의 책 축제가 개최된다. 진보 서적 박람회, 독립 출판 서적을 소개하는 책 프린지, 중고책 축제 등이 에든버러 문학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는 매해 22만여 명의 관객과 8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매년 십여 개의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그에 맞는 전 세계의 책들을 독자들과 출판업계 관계자들에게 소개한다.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에서 한국의 출판시장도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2012년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 2015년 『채식주의자』의 한강 작가 역시 이 축제에서 소개된 뒤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다음 달에 열리는 축제에서도 이민, 사회 변화, 음악, 중동의 미래 등 열네 개의 주제가 선정되어 토론, 토의, 저자와의 대화 등 720여 개의 행사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사진4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는 연령, 관심사 등에 따라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들이 청중들과 함께 국제적인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포럼 행사는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또한 아동 서적 작가와 삽화가들을 소개하는 세계적인 쇼케이스 무대로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는데, 스토리텔링, 작가와의 만남 등으로 어린 독자들은 책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에든버러 책 축제에서 처음 소개되는 영국 신진작가나 영문으로 번역되어 영국에 처음 소개되는 해외 작가에게 ‘First Book Award’ 상을 시상하기도 한다. ‘First Book Award’는 독자들의 온라인 투표로 수상을 결정짓는데, 수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투표 캠페인으로 독자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아울러 독자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축제 프로그램과 지역 내 커뮤니티의 연계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베일리 기포드 스쿨 프로그램’은 매년 스코틀랜드 지역 내의 만여 명의 학생들과 연계하여 축제 기간 중 워크숍과 이벤트에 참가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교육 전문가, 교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하여 축제 후에 학교에서도 독서 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여러 지역에서 개최되는 저자와의 대화, 워크숍, 장기 독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일 년 내내 기획하여,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놀랍게도 에든버러 책 축제는 비영리 자선단체로 운영되지만 시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 축제는 매년 자가 보유 기금의 80%를 경신하는 수익을 내고 있는데, 이는 모두 축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재투자한다. 에든버러 시 정부의 축제 전략 보고서를 검토하면 시 정부가 책 축제에 지원하는 지원금은 약 2,000만 원에 불과하다.

 

한국에서의 책, 독서

    언뜻 ‘영어’라는 강점을 가진 영국의 출판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영국 출판시장의 규모는 5조 원대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유통되는 책의 25%가 문학, 25%가 사회과학 서적으로 전체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에서 유통되는 서적의 65%가 수험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사치로 여기거나 수험서와 실용서 외의 책을 ‘쓸모없다’고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의 출판시장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많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책을 접하지만, 주로 목적과 효율을 중심으로 한 독서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적 없는 독자 개발과 다양성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없는 독서교육은 되레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 받지 못하고 효율만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비옥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될 수 없다. 영국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출판되는데, 이는 비단 출판시장뿐만 아니라 취향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국민성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은 인프라를 고려했을 때 독서 환경이 열악하지 않다. 전국적으로 800여 개의 도서관이 있고, 서점과 출판사의 개수, 출판시장의 규모 면에서도 영국에 뒤지지 않는다. 그동안 도서관을 짓고 출판시장을 확장하는 데 주목해 왔다면, 이제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정책가들은 사람들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책을 읽지 ‘못하는지’ 고민하고, 시민 스스로 독서활동에 대한 목적을 설정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영국의 ‘팔 길이 원칙’은 거의 모든 정부 정책에 적용된다. ‘팔 길이 원칙’은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유지하여 민간이 하는 활동에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실행 주체인 민간의 독립성을 지켜준다는 것으로, 책 축제를 지원하는 데도 드러나고 있다. 에든버러 도시 문화 정책에서도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시 정부가 문학 진흥을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수행하기보다는 민간 조직과 지역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학 진흥과 접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하고, 개발된 프로그램을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지역 공동체에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도서관, 출판업계, 지자체, 시민단체 간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준다. 이는 시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를 관 차원에서 기획, 실행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정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의 경우 일상에서 책을 읽는 문화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 지자체, 민간단체들이 독서 행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원기관에서는 민간에서 가능한 프로젝트가 자율적으로 행해질 수 있도록 여러 조직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민간단체가 할 수 없는 사서 교육이나 독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교사 연수, 번역가 개발 등 보다 장기적인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 ■

 

 


자료 출처

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 website
https://www.edbookfest.co.uk/
Edinburgh City of Literature website
http://www.cityofliterature.com/
Evening Standard - Get London Reading
http://getlondonreading.vrh.org.uk/
England's youth ‘worst at literacy & basic math’ in developed world - report
https://www.rt.com/uk/330633-england-literacy-numeracy-worst/
The City of Edinburgh Council
http://www.edinburgh.gov.uk/ http://www.edinburgh.gov.uk/downloads/download/994/cultural_policy_and_strategy_documents
Creative Scotland
http://www.creativescotland.com/what-we-do/annual-plan
The Publishers Association
http://www.publishers.org.uk/services-and-statistics/statistics/
The Creative Industries
http://www.thecreativeindustries.co.uk/industries/publishing
Publishers Weekly ‘Facts and numbers on the Korean Book Market: Digital Publishing in Korea 2014’
http://www.publishersweekly.com/pw/by-topic/digital/content-and-e-books/article/61577-facts-and-numbers-on-the-korean-book-market-digital-publishing-in-korea-2014.html
2 Seas Agency ‘Korea: A Publishing Market Focus’
http://2seasagency.com/korea-international-publishing-market-focus/
전남일보 - 작가 한강과 에든버러, 그리고 국립한국문학관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65311600498861063
영국의 독자개발: 개관 및 사례 보고서
http://www.arko.or.kr/data/page2_6_list.jsp

 

 

 

 

◆ 구성 및 작성 / 백교희

- 영국 King’s College London 에서 경영학(BSc Business Management)을 전공하고 이어 영국 University of Warwick 에서 국제문화정책과 예술경영 석사(MA International Cultural Policy and Management)를 졸업하였다. 현재 서울 프린지네트워크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영국 런던에 위치한 문화컨설팅 회사 BOP의 프리랜서 연구자로, 조직 내 예술가를 파견하는 '예술적 개입' 개념을 활용한 조직문화 컨설팅 회사인 아츠인잇(Arts in it)의 설립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문장웹진 2016년 7월호》

추천 콘텐츠

산책과 가을의 일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