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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부산 영도 손목서가 2편

  • 작성일 2019-05-01
  • 조회수 1,605

[독자모임-책방곡곡]

 


※ 기획의 말
2019년 독자모임 코너 [책방곡곡]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서점들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문인 및 독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문학 생태계와 특수한 현안들이 곳곳에 계시는 독자들에게 서로 공유되어, 사유와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방곡곡 부산 영도 손목서가 2편

ㅡ 어른이 되어 어린이책을 읽다

 

 

사회/정리 : 유진목
참여 : 서은주, 오경옥, 최진경, 황선화

 

 

 

    어린이책을 읽다 보면 어린이가 되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나의 세계에서 어느덧 책의 세계로 훌쩍 건너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도 유독 어린이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감각하는 순간은 매번 처음인 듯 새롭다. 아니, 새롭다는 말보다는 깜짝 놀란다고 하는 게 나에게는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 어딘지 기묘한 기분이 되어서 내 마음이 왜 이럴까 하고 곰곰이 나를 살핀다. 살피고 살피다 보니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결국에는 슬퍼서라는 결론. 아이의 눈과 마음에 비친 어른들은 너무 화가 나 있거나 너무 무심하고 매번 너무 지쳐 있다. 어린이책을 읽다 무심코 아이가 되어버린 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지칠 대로 지쳐 무심해진 어른이 결국 나인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버리는 것이다. 내가 울면 아이도 울겠구나. 아이가 울면 나도 울음이 차오르는 것처럼. 내가 웃으면 아이도 웃겠구나. 아이가 웃어서 내가 울음을 참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한 사람이 우는데 다른 한 사람이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어린이책을 읽으며 다시 배우고 있다. 한 사람이 우는데도 다른 한 사람은 웃고 있는 어른의 세계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슬픔도 고통도 기쁨도 함께 바라보고 서로 물드는 감정이라는 것을 다시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최숙희의 <엄마가 화났다>와 앨리슨 맥기가 쓰고 피터 레이놀즈가 그린 <언젠가 너도>, 그리고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씩씩한 마들린느>와 이서영의 동시집 <소문 잠재우기>를 앞에 두고 모인 다섯 명의 어른들은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린 어린 시절과 자주 모른 척하고 싶은 지금 우리의 모습들을 조금씩 꺼내 놓으며 각자 자기 자신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가느라 종종 하던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유진목 : 저는 <엄마가 화났다>를 읽으면서 무심코 참 기묘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에서 엄마가 화나는 이유는 모두 굉장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들이거든요. 아이가 자장면을 먹다가 여기저기 흘리고 욕실에서 씻다가 비누거품에 정신이 팔려서 잔뜩 어지르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방바닥이며 벽지에까지 온통 그림을 그려 놓죠. 그럴 때마다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는데 화를 내는 엄마를 묘사하는 그림이 검은 괴물 같잖아요.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이 이렇구나, 맞아, 나도 어릴 때 그랬어, 너무 무서웠어, 생각하다가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서점 주인이다 보니 이 책을 아이가 골랐을 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해지더라구요. 음식을 깨끗하게 먹을 수 없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집을 어지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이의 특성인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피로하고 화가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어쩐지 엄마를 묘사하고 있는 이 그림이 원망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최진경 : 바로 그 지점이 제가 엄마들과 모임을 하면서 이 책을 함께 읽은 이유였어요. <엄마가 화났다>가 아이의 입장에서 그리고 엄마의 입장에서 묘하게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화를 내는 엄마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는 책이지만, 이 책이 분명하게 건드리는 엄마의 상처가 있거든요.

 

유진목 : 맞아요. 그래서 무심코 참 기묘한 책이다, 하고 생각했었나 봐요. 생각해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되기 쉬운 사람이 화를 내는 사람이거든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화를 낼 만한 사정이나 이유가 켜켜이 담겨 있는데 그 사정이나 이유라는 건 알고 보면 안쓰럽고 딱한 연유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화'로 표출되는 순간 '화'는 곧 그 '사람' 자체가 돼서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한 채 더 외로워지고 그래서 다시 또 화가 쌓이고 폭발하고······. 게다가 화를 내고 나면 자기 자신이 정말 싫어지잖아요.

 

황선화 : 맞아요. 저도 항상 화를 내고 나면 그 일을 겪은 아이도 상처를 받겠지만 우선은 화를 낸 제가 더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는 걸 느껴요.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받고 그렇다고 그걸 돌이킬 수도 없고 화해를 하고 서로 풀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상처는 그대로 남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인생을 찾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데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나 자신을 돌보고 내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갖자고 다짐을 해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결국에는 내가 나한테 준 상처들 때문인 것 같아요.

 

최진경 : 맞아요. 분명히 살펴보고 풀어 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잘 되지는 않죠. '엄마'라는 역할을 당연시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모성애'는 절대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유진목 : 그래서 궁금해진 것이 있어요. 고립된 엄마의 마음을 돌아보는 책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우선 제가 '엄마'의 삶을 살아 보지 않아서 <엄마가 화났다>를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도 같고요. '술 취한 아빠'나 '화난 엄마'가 등장하고 그래서 외롭고 무서운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부모의 기분, 부모의 마음, 부모의 고충을 들여다보는 책도 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아이에게 어른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일은 굉장히 위태롭고 조심스러운 일이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네가 엄마 아빠를 이해해라."였어요. 어른의 입장이 등장할 때는 꼭 제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였기도 하고요.

 

오경옥 : 저도 '엄마'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후회되고, 여러 가지 감정이 얽혀서 복잡한 심경이 되거든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언젠가 너도>를 읽으면서 위로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특히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아이가 들판에 누워 있는 그림을 보면서 하염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함께 이 책을 읽어 보자 생각했어요.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데 엄마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들 같고, 내가 내 아이들에게 가진 마음 같고, 마음 한구석이 굉장히 울컥하더라고요.

 

유진목 : 저는 <언젠가 너도>를 읽으면서 가슴 아팠던 순간이 있어요. 엄마가 첫눈이 오는 날 아이를 높이 안고 함께 눈을 맞잖아요. 언젠가 제가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의 첫 생일에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저는 '결혼식'이라든가 '돌잔치' 같은 형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식은 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었고, 마찬가지로 만약에 아이를 낳는다면 돌잔치 대신 아이와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아이의 첫 생일에는 아이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게 떠올랐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를 낳지 않았고, 이런 경험은 어쩌면 못해 볼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 가슴 한켠이 아프더라구요. 그러다 저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 언젠가 엄마가 되는 삶으로 순환되는 이야기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황선화 : 저도 그랬어요. 저는 제 딸이 저처럼 금방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살기를 바라는 입장이라서 책장을 넘기다가 그림책 속의 딸이 자라서 엄마가 되는 걸 보니까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이 되더라구요.

 

유진목 : <언젠가 너도>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앞으로 많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은 변화를 겪어냈다는 걸 일깨우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껏 당연하게 부여되었던 성 역할로부터 벗어난 삶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려 가는 삶을 환영하고 격려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그런 생각도 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할 준비를 마쳤는데 한국 사회가 그것을 못 따라오고 있다고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단계까지 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로 넘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막혀 있죠. 저는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생활동반자법과 동성결혼이 시행되면 좋겠어요.

 

오경옥 : 저는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이렇게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동성결혼은 저의 신앙적인 부분에서 아직은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앞으로 계속해서 이 모임에 나와도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유진목 : 사실 제가 어디서든 자유롭게 저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편이라서 정말 놀라셨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제가 이 모임의 주최자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고, 모임 장소도 제가 운영하는 서점이다 보니 훨씬 더 저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일 테고요.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여전히 지금처럼 제가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아닐 거예요. 저도 본능적으로 어딘가에서는 동성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성애'라든가 '이성애'라는 말이 하루속히 없어지길 바란다는 저의 생각을 말하기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혐오'와 '편견'은 굉장히 강력하고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용기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제가 앞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이 장소와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안전하게 여겼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을 안전한 상태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은 드물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오경옥 : 듣다 보니 저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예전에 촛불집회를 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잖아요. 그때를 생각해 보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것을 처음에는 주저했는데 점점 시간이 가고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과 그 집회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마음을 열고 저도 지지를 하게 되고 참여할 수도 있게 되었거든요.

 

유진목 : 맞아요. 저는 이곳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위험해지는 공간이 아니면 좋겠어요. 제가 다른 곳에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해서 위험해지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요. 그러면 결국 자기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은주 : 저도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단계는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를 직접 이렇게 해본 적도 아직은 없고요. 처음이지 싶어요.

 

유진목 : 저는 천천히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갈 거예요. 다양한 존재,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랑,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요.

 

황선화 : 저도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삶이 가능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누군가를 배제시키면서 소외당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래서 <소문 잠재우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도 했어요. 뭔가 유머러스하고 재미난 동시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왜 유독 '소문 잠재우기'라는 시를 표제로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최진경 : 따돌림이라는 것은 저희 때도 있었지만 요새는 핸드폰이나 인터넷 때문에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처음에는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소문 잠재우기'라는 시를 보는데 유독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유진목 :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 시에서 '알고 보니 민호 꽤 괜찮은 애더라' 하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아이도 친구들 사이에서 그럴 만한 입지가 있어야 하거든요. 나쁜 소문이 도는 친구 편을 들었다가 같이 배제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시였어요. 지난번 모임에서 읽었던 <평화란 어떤 걸까?>라는 그림책도 다시 생각이 났고요. 그 책에서 싫은 것은 혼자서라도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평화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현실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던 걸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이 모임을 통해서 이제 막 어린이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린이책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됐어요. 어린이책이라고 해서 은연중에 꽤나 단순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거죠. 그래서 추천해 주신 책들을 읽으며 잔뜩 복잡한 마음이 되어 있다가 <씩씩한 마들린느>를 읽고 저는 조금 당황했어요.

 

서은주 : 맞아요. 우리가 첫 모임부터 묵직한 메시지들을 던지는 어린이책들을 읽었다면, <씩씩한 마들린느>는 아이들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계속해서 어린이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렇게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도 많이 접하게 될 거예요. 저는 여기에 나오는 마들린느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이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들로 만든 인형도 모으고 있거든요. 오늘 보여드리려고 가지고 왔어요.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계속해서 파고들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제가 인형들도 수집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각자 풀어 보아야 할 생각들을 품고서 서은주 선생님이 가져오신 마들린느 인형들을 구경하고, 만져 보고, 다음에는 어떤 책들과 함께 마주 앉을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어린이책을 앞에 두고 결코 간단하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드러난 것보다 감춰진 것들이 더 많은 마음들, 소외된 사람들, 상처받은 경험과 상처를 준 기억들을 이야기하면서 각자 무겁고 어두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말이 없는 시간도, 어떤 말을 할까 망설이는 순간도, 첫 모임보다 확실히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지 않고 혼자였다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그대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자신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까? 우리가 서로에게 던진 질문들은 어디를 향해 가게 될까? 우리는 각자 자신을 데리고 각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될까?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린 아이들의 마음도 그러할까? 우리가 나눈 이 이야기들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모르긴 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린이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수많은 질문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당장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나는 전에 없던 나이기도 하다. 나는 더 많은 질문들과 함께 어린이책을 따라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계속해서 가보고 싶다. 우리가 끝에 나눈 "다음에 만나요"라는 인사가 여기서 질문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약속처럼 들렸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회, 원고정리 및 구성 / 유진목

시인. 서점 손목서가 주인. 책을 쓰고 책을 모으고 책을 팝니다.

 

참여 / 서은주

모든 아이들의 삶이 존중받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들과 전래놀이를, 엄마들과는 그림책을 읽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참여 / 오경옥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진정 예술적인 것은 없다" 는 고흐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 그래서 책 읽는 사람.

 

참여 / 최진경

영도마을교육공동체 사무국장.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부산지부 활동가. 영도에서 태어나서 51년째 영도에서 살고 있는 그림책읽어주는 할매가 꿈인 사람.

 

참여 / 황선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혹은 어른이 되지 못한 나를 살피고 다독이며 그림책과 함께 바다 곁에 살고 있습니다.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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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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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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