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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춘천 서툰책방 1편 ―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에 ‘꽈배기의 멋’

  • 작성일 2019-07-01
  • 조회수 1,414

[독자모임-책방곡곡]

 

 

책방곡곡 춘천 서툰책방 1편
―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에 '꽈배기의 멋'

 

 

사회/원고정리 : 정승희
참여 : 한주석, 김상아, 박은솔, 조성윤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혹은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콕 집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그때그때마다 좋아하는 책과 작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두루 읽고, 대개 지금 읽고 있는 책과 그 책을 쓴 작가를 사랑한다. 특정한 작가를 아주 좋아하거나, 어떤 책을 특별히 더 많이 좋아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우물쭈물하게 되는데, 결국 그 순간 떠오르는 작가나 책을 말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많은 순간, '최민석 작가님이요······'라고 답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최민석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에 대한 의문은 금방 나왔다. 재밌기 때문이었다. 최민석 작가님의 글만큼 내가 킬킬거리면서 본 책이 없었다. 특히나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최민석 작가님의 책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다. 그의 글을 보면서 굳게 닫히고, 아래꼬리가 축 처진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피식 나온 웃음이 피식피식 되고, 어느 순간 눈도, 입도 웃게 만들었다.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 책으로 도망가고는 했다. 누군가는 실제로 어딘가로 떠났을 테고, 또 누군가는 영화를 봤을 테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현실의 문제에서 조금 떠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으로 도망쳤다. 늘 그렇듯 책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고민에 대한 정답을 내려 주지 않았다. 다만 책을 읽을 때만큼, 그만큼은 도망치고 싶은 것에서 숨을 수 있었다. 답답한 현실과 수많은 걱정은 책을 읽는 순간 잠시 가려졌다. 내 세계는 책 속의 세계로 잠시 동안 대체되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 책 〈꽈배기의 멋〉을 함께 읽으면서 독서 멤버 분들이 도망치고 싶은 것에서 책으로 힘껏 도망치기를 바랐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 우디 앨런과 〈꽈배기의 멋〉

 

정승희 : 오늘 저희는 꽈배기를 하나씩 먹으면서 시작하는데요, 〈꽈배기의 멋〉 어떻게 보셨나요?

 

한주석 : 기대 없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꽈배기 맛있네요. 어디를 펼쳐도 어떤 에피소드에나 작가님의 생각이 들어 있어 좋았습니다.

 

박은솔 : 저는 에세이 좋아하는데요, 이 책을 읽으니까 제가 에세이 중에서도 삶에 대한 지혜가 담긴 글을 더 좋아하고 있구나,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은 교훈이라고 할 게 별로 없고, 남의 일기를 읽은 느낌이었어요. 편안하게 읽기는 좋았는데, 교훈은 별로 없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정승희 : 저는 오히려 교훈이 없어서 더 좋았어요. 그동안 책에서 어떤 교훈이 담긴 글이나 무거운 주제를 담은 글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작가가 이렇게 재밌게 쓴 책이 희소했던 것 같아요. 책을 정말 재미로 읽을 수 있었던 경험이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어요.

 

박은솔 : 이 책을 읽으면서 평이한 문장으로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게 만들 수 있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조성윤 : 맨 처음 봤을 때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정서적으로 부딪치는 게 있었어요. 말장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읽다 보니까 '아, 이 사람 진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고찰을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명히 힘들고 자기도 모르게 상처 받은 일도 있었을 텐데, 글은 유쾌하게 풀었어요. 표현은 유쾌한데, 진지한 느낌이 들었어요.

 

김상아 : 저도 그 말씀에 공감이 가는 게, 읽다 보면 중간 중간 작가와 소설 쓰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스스로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신 분 같았어요. 전반적인 느낌은 이분도 우디 앨런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비슷한 느낌이 많이 났어요. 우디 앨런 영화도 주인공이 계속 혼잣말을 하면 카메라가 따라가잖아요, 저도 혼잣말하는 작가를 계속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승희 : 이 책에도 그런 부분이 나오죠. '우디적 생존방식'이라고 해서 우디 앨런은 모두가 다 알지만, 그의 영화를 누구나 다 보는 건 아니잖아요. 상아 님은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공부도 했잖아요. 주변에 우디 앨런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나요?

 

김상아 : 네, 우디 앨런 초창기 흑백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매우 많아요. 대부분의 평론가는 우디 앨런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우디 앨런 영화를 접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정승희 : 최민석 작가님도 우디 앨런 감독의 예를 들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한 게 인상에 남아요. 우디 앨런이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감독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잖아요. 이분도 삶의 태도가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만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꽈배기랑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박은솔 : 엄청나게 성공하지 않아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행복한 사람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많은 대중한테 사랑을 받지 않아도 소수의 팬들은 계속 있잖아요. 자기 작품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조성윤 : 꽈배기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빵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꽈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빵이기도 하고요. 제가 '아무것도 아닌' nobody라는 닉네임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이유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거였어요.

 

한주석 : 정말 꽈배기는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정승희 : 맞아요. 꽈배기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고, 굉장히 오랫동안 자신만의 영역을 지킨 빵이지요.

 

김상아 : 꽈배기의 특성과 그 멋을 설명하는 '꽈배기의 멋'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위로가 많이 됐어요. 나도 어떤 기준에 맞춘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대로 잘 살아 나가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겠다, 생각했어요.

 

조성윤 : 내용보다도 주제나 소재를 보면 그런 느낌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자기만의 정서나 자기만의 생각 위주로 담아 놓은 것 같았어요.

 

 

 

* 무용한 것의 유용성과 즐겁게 살아가기

 

정승희 : 제가 이 책을 고른 이유 중 하나가 저는 무용한 것을 좋아하거든요. 최민석 작가님도 무용한 것의 유용성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다고 나와요. 우리가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무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쓸모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들이 있잖아요.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쓸모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성윤 : 코미디 프로를 봐도 한번 웃으면 그 프로그램은 목적 달성한 거잖아요.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느낀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 책이 직접적인 어떤 교훈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 작가님이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에요.

 

박은솔 : 저는 즐겁게 살려고 하는 작가님의 자세가 좋았어요. 요즘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나는 왜 못 그럴까?' 이런 강박에 갇히는데 저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아무리 무용해도 나는 나 좋으니까 할래, 이런 자세가 좋았어요.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요. 저도 요즘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아무리 좋아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좋아하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공감이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정승희 : 저는 최민석 작가님이 상황이 어떠하든 유머를 찾고, 즐거움을 찾는 모습이 글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정말 좋아해요. 이 책도 좋아하지만 〈베를린 일기〉라는 책도 좋아하는데, 베를린에서 90일 동안 지내면서 매일 쓴 일기예요. 겨울이라서 엄청 춥고, 자신을 국제 호구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안 좋은 일을 겪는데도 독자로 하여금 피식피식 웃게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의 태도가 너무 좋아요. 어려운 상황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하고 쓸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게 이 작가의 특징이자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조성윤 : 순탄한 삶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유쾌하게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죠.

 

한주석 : 자기 행동에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인상 깊었어요. 자기 삶을 잘 지키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휘둘릴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켰다는 점에서요.

 

박은솔 : 저도 그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취업 준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게 어렵고 잘 무너지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잘 지키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런 사람들 보면 부럽거든요, 요즘에.

 

 

*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기

 

한주석 :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면서 생활해 본 적이 있나요?

 

박은솔 : 저는 청소를 하려고 해요. 깨끗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정리정돈을 하려고 해요. 예전에는 이불도 안 개고 옷도 아무데나 벗어 두고 책상 위에 책을 널려 놓고 살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이불도 개고, 옷도 치우고, 책상 위도 보기 좋게 치우고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내 삶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승희 : 작은 내 방, 작은 공간을 정리정돈하고 청소하는 것은 나의 일상을 꾸려 나가는 행위잖아요. 최소한의 내 생활을 지켜 나가는 방식이라 생각해요.

 

박은솔 : 저는 제가 언제 무너졌는지 아느냐면, 방이 너저분해져 있을 때예요. 지쳤다는 것을 알고, 다시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그때 다시 정리정돈을 하면 생활도 마음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김상아 : 저는 취준생 시절에 운동을 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봉의산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밤에는 강변을 뛰었어요. 이렇게 하면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돼요. 생각이 많은 시기니까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서 루틴을 지킨 것 같아요.

 

 

 

*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김상아 : 신화를 20년 동안 좋아하면서 팬으로 계신 분이 있잖아요. 한시적인 게 아니라 그만큼의 애정을 계속 지킨다는 게, 그 힘이 대단한 것 같아요.

 

정승희 : 제가 고민하는 게 요즘 그거예요. 제가 지금 애정하는 것들을 40대에도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애정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박은솔 : 너무 앞선 걱정 아니에요?

 

조성윤 : 좋아하는 게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소설이나 문학작품은 잘 보지도 않으면서 '난 이거 안 맞아, 싫어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진짜 확 변하더라고요. 내가 모르는 뭔가를 접하고 변할 수도 있어요.

 

박은솔 :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게 다를 때도 고민이 많이 돼요. 그리고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를 때에도. 저는 재능이 없는 걸 알지만 하고 싶을 때 특히 더 고민이 돼요. 교수님이나 지인들은 좋아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거를 하라고 하니까요. 잘하는 거 하려고 하면 내가 재능이 있나? 걱정돼서 어려운 것 같아요.

 

정승희 : 좋아하는 걸 해야 하나요, 잘하는 걸 해야 하나요?

 

조성윤 : 전 둘 다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제일 못 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요. 이제 뒤늦게 글쓰기 모임도 하는데요, 책방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사실 책방을 했다는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젊은 나이에 생각했던 것을 실행한 게 부러워요. 이 책방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거기에 회의감이 들고,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는 거랑 저처럼 딴 일을 많이 한 다음에 이제 와서 해봐야겠어, 라고 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 같아요. 설령 실패했어도 잃을 게 크지 않고, 일찍 시작한 일이 경험이 되고 자산이 되니까요. 지금은 20대보다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워요. 더군다나 직장에 다니는 상황에서는 더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이든 잘하는 것이든 지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했는데도 잘 안 됐으면 잘하는 걸로 바꿀 기회가 아직 있으니까요. 그래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

 

박은솔 : 저의 유형이 관습적인 일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라는 거 하고, 정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예술형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재밌게 일하고 싶어요.

 

김상아 : 관습적인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프로젝트로 만들어서 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올 테니까 그때 전환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결국은 잘살고 싶다는 마음에 기인한다. 때때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거나 방법이 없을 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부끄럽지만 나는 자주 도망치며 살았다. 그러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냈다. 내가 하기 힘든 일들, 싫어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자주 피하며 살았다. 책도 회피 수단 중 하나였다. 책을 읽으며, 인생에 지혜를 얻기도 하고, 이야기의 바다에 첨벙 뛰어들기도 하고, 단순히 지식을 얻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도망치면 겁쟁이라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나처럼 문제에 직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조금 뒤로 물러서서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궁리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 위안을 얻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책에서 배운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이 나오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성큼성큼 전진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누군가는 뒤로 주춤거리며 천천히 살아갈 수도 있다. 살아가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세상이 정해 놓은 방법이 있을 뿐. 그 옆으로 조금 비켜가도 괜찮다고 알려준 건 책이었다.

 

    〈꽈배기의 멋〉을 읽으며 살아가는 데 또 다른 방법을 배운다. 나답게 살아가고, 유머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책 속에서 작가는 안전지대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안전지대처럼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 가는 가수. 시간이 지나면서 배도 나오고 주름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계속해서 음악을 하는 안전지대. 때때로 실망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안전지대를 찾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지. 꼭 완벽하지 않아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쓰는 작가가 있고, 작가가 어떤 글을 쓰든 응원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 이런 유대관계는 또 얼마나 멋진가.

 

    나도 책방을 오랫동안 계속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서툴지만, 천천히. 나만의 걸음으로. 가끔씩 책으로 도망치고, 또 좋아하는 작가의 오랜 독자로.

 

 

 

 

 

 

 

 

 

 

 

 

 

 

 

정승희

사회, 원고정리 및 구성 / 정승희

서툰책방 여주인장. 읽고, 쓰는 삶을 좋아합니다.

 

한주석

참여자 / 한주석

서툰책방 남주인장. 즐거움을 찾아 책의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김상아

참여자 / 김상아

문화기획자.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웃고 싶어요.

 

박은솔

참여자 / 박은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은 평범한 대학생.

 

조성윤

참여자 / 조성윤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과학을 전공했지만 비과학에도 흥미가 많아요.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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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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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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