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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군산 한길문고 (제1회)

  • 작성일 2021-04-01
  • 조회수 1,746

[책방곡곡]

 

 

 

군산 한길문고(제1회)

선데이북

 

 

사회자 : 김우섭
참여 : 박세영, 이수진, 이지혜, 이진우, 최다은

 

 

 

 

 

사회자 : 모임 전에 각자 책을 추천하고 투표에 부쳐 수진 님이 추천하신 『나와 아로와나』라는 소설이 선정되었는데요. 먼저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이수진 : 제일 밝은 느낌을 주는 제목의 책으로 골랐습니다.

 

 

사회자 : 그러면 각자 책에 대한 한 줄 평을 나눠 볼까요?

 

박세영 : 무난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읽었던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 이렇게 쓰는 것이 유행인지 의식의 흐름 기법 문체의 소설을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이지혜 : 소설인데 에세이 같은 느낌이어서 아쉬웠어요.

 

사회자 : 읽는 내내 작가의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에 대해 검색해 보니 책 속 주인공처럼 소송에 관련된 경험이 있더라고요. 또한, 작가님이 개그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최다은 : 맞아요. 딱딱하고 팍팍한 소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분위기를 다운시키지 않으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진지하지 않아서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고, 집중해서 생각에 잠기려 하면 산통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지혜 :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많았던 것 같아요. 작가님 자신이 사회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제기하고 싶어 했는데 깊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어요.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이진우 : 이야기 마무리도 별로였어요. 저에게는 ‘결국 노오력해라.’라는 느낌으로 들렸어요. ‘노오력해도 안 되지만 그래도 노오력해라. 그러면 해가 뜬다.’라는 느낌. 하지만 가독성은 좋았어요.

 

이지혜 : 맞아요.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책이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 저 그 말 안 좋아해요. 사람이 아프면 안 되죠. 참고 이겨내라는데 이겨낼 방법은 제시 안 해주는 그런 느낌.

 

박세영 :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 기승전결을 바랐는데, 주제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은 건 아닐까요? 장르가 에세이면 좀 나았을까요?

 

이지혜 : 예전에 ‘소설을 쓸 때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는 자기 정체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본인과 똑 닮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지 마라. 그러면 소설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어요. 그 대표적인 예 같아요. 본인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이야기로 삼았어요. 차라리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의 이야기로 녹였으면 괜찮았을 것 같아요.

 

사회자 : 아니면 저작권 소송 등 소재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에세이 장르로 작가 자신의 경험을 더 녹여서 진실성을 담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최다은 : 에세이로는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주인공 외의 나머지 인물들이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고 개그 요소도 많아서 수필로 쓰면 다채로운 느낌을 담지 못했을 거예요.

 

이지혜 :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도 다루다 만 느낌이 들었어요. 개성 강하고 좋은 이야깃거리의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인물 간 관계도 재미있었는데 충분히 써먹지 않고 그냥 버린 느낌이어서 아쉬웠어요.

 

이수진 : 저는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아서 오히려 재밌고 색다르게 느꼈어요. 여러 가지 주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술술 잘 읽히고 캐릭터가 생생하고 잘 그려져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사회자 : 늘 그렇듯 한 줄이 아닌 한 줄 평은 이 정도로 마치고,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해 각자 두 가지 정도의 질문을 준비해 오셨는데요.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죠. 첫 번째 질문은 ‘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이 가는가? 진정 우리네 청년들의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진우 : 저는 읽으면서 특히 ‘삼만 원이라도 주면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 찌꺼기를 먹겠다.’에서 ‘정말 우리 또래의 이야기인가? 정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사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저는 잘살진 않지만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그래서 깊이 공감할 수 없는 점이 있어서 이야기 나누기가 조심스럽네요.

 

최다은 :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각자의 삶이고 각자의 입장이고 의견이니까 괜찮아요.

 

이지혜 : 진우 님이 말씀하신 부모님의 지원에 대한 차이가 큰 것 같아요. 부모님의 지원 아래 20대를 보내는 삶과 오롯이 혼자 20대를 견뎌내는 삶은 땅과 하늘 차이예요. 진짜 달라요. 저는 현실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서울에 특히 많아요. 집값도 비싸고 기회가 많은 만큼 사람도 많으니 취업 경쟁도 치열해요.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출발선부터 다른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요.

 

박세영 : 저는 옥탑방, 반지하나 도서관에 어르신 많은 것 등은 경험해 봐서 공감이 가는데 주인공의 직업인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계 이야기, 소송 등은 잘 모르는 부문이어서 충분히 공감했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자 :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재 자체가 무거운 것들이라 오늘 이야기는 진지하게 진행될 것 같네요. 다음 질문은 ‘왜 아로와나였을까?’입니다.

 

박세영 : 다들 아로와나 물고기 사진 보셨나요? 심술궂게 생겼더라고요. 책의 뒤편에 아로와나에 대한 설명이 나와요. 몸의 길이가 1m까지 큰다고 했는데, 1m면 크기가 상당하거든요? 아로와나가 청춘을 대변하는 물고기라고 했을 때 ‘아로와나가 1m까지 성장할 수 있으니까 너희들도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아로와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이수진 : 책 표지를 보면 아로와나랑 나해수(주인공)가 껴안고 있는 모습 같아요. 나해수가 옥탑방에서 힘들게 하루하루 살고 있잖아요? 작은 어항에서 살 수 없는 아로와나가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더워 죽을 수도 있었고, 겨울에는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추워서 얼어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이 나해수의 상황과 비슷하게 보였어요. 또, 나해수가 아로와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또 아로와나의 가격이 몇 백만 원에서 몇 억까지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힘든 나해수에게 고가의 물고기를 제공하고 팔고 싶게끔 만들기 위해서 비싼 물고기를 일부러 설정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진우 : 주인공이 돈보다는 신념을 따라가는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지혜 : 작가의 말에 남편이 예전에 아로와나를 키웠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주홍글씨를 얘기하기 위해서 끼워 맞춘 것이 아닐까요? 아로와나를 키우는 것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정보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소설에서는 주홍글씨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로와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소설에서 아로와나의 존재감이 그렇게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A를 쓰고 싶은데 아로와나가 A로 시작하니까 가져다 쓴 것 같아요.

 

이진우 : 흔한 소재가 아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제목으로 쓰기에도.

 

박세영 : 나와 잉어. 나와 붕어. 이건 이상하잖아요. 나와 베스. 이것도 이상해요. (일동 웃음) 아로와나가 주는 어감이 여러모로 잘 맞은 것 같아요.

 

이진우 : 일단 작은 물고기가 아닌 큰 물고기인 것이 소설의 상황상 키우기가 까다롭다는 조건에 맞았던 것 같아요. 소설에서 냉동고기를 먹이로 주잖아요? 비용이 꽤 들었을 거예요.

 

이수진 : 벼룩의 간을 빼먹는 설정이죠.

 

이진우 : 지식백과를 찾아보니까 ‘인위적인 사육을 하면 아로와나는 안구가 아래쪽으로 향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라고 해요. 이것도 소설의 상황과 연관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자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나해수 본인의 나이를 ‘35 혹은 53’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와 함께 ‘나혜석을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자 : 나혜석 씨가 돌아가셨을 때 53세라고 하더라고요. 작가가 이 소설을 마감한 날이 2020년도인데 그때 35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연결고리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요?

 

박세영 : 주인공이 아로와나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처럼 나혜석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35세 혹은 53세라고 했던 것 같아요.

 

이진우 : 나혜석 씨가 여성 인권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 연관 지으려고 나혜석 씨를 소재로 가져왔다고 생각했어요.

 

이지혜 : 이 책을 읽으면서 좀 화가 났던 게 작가가 나혜석 씨를 페미니즘의 소재로 이용만 한 것 같았어요. 나혜석 씨의 주장이나 인권운동 하면서 겪었던 점들은 다 배제시키고 사적 스캔들만 이야기했잖아요. 그래 놓고 나혜석 씨가 돌아가신 나이랑 자신의 나이를 숫자상으로 연관시킨 것, 기분 나빴어요.

 

최다은 : 있어 보이니까 페미니즘의 소재로만 쓴 것 같고, 이용만 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지혜 : 깊이가 없다고 느껴졌던 부분들이 이런 점들이었어요. 조금씩 건드려 보고 실제로 아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최다은 : 작가 자신의 깊은 성찰이 있었나 싶어요. 던지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혜석 씨랑 동일시되는 것이 소송을 벌였다 정도인 것 같은데, 왜 굳이 나혜석 씨를 소재로 썼는지 모르겠어요.

 

이수진 : 영화사에서는 여성을 소재로 하는 시나리오가 흥행하지 않을 거라고 받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여성 관련 시나리오를 쓰잖아요. 마찬가지로 나혜석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까지 여성 해방을 주장했고요. 저는 작가가 나혜석을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혜석 씨를 소재로 쓰지 않았을까요?

 

이지혜 : 그런 목적이었으면 스캔들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했어야죠. 나혜석도 그 시절에 여성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페미니즘적인 글도 썼고. 그런데 사적인 스캔들 이야기만 나오지 않나요? 나혜석이 어떤 작품 활동을 했고 어떤 걸 이루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 주인공이 시나리오 작가다 보니 그런 건 아닐까요? 스캔들 같은 내용이 재밌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주인공은 승산 없는 소송이란 것을 알면서도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는 형편에 소송을 진행하였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최다은 : 앞으로 그 분야의 후배들이나 그 분야 자체에 꼭 필요한 의미 있는 소송이지만 결코 개인이 혼자 이겨내기 쉽지 않은데, 신념과 용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박세영 : 소설에서 보면 소송에서 패소해서 10개월 동안 35만 원씩 나눠서 낸다고 했으니까, 결국 소송으로 내야 하는 비용이 350만 원이겠죠. 저는 소시민이라 소설에 나온 삼겹살 기름은 먹을 수 있어도 이런 소송은 못 할 것 같아요.

 

이수진 : 저도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못 할 것 같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행동은 지양해요.

 

이진우 : 솔직히 굉장히 귀찮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작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매우 화날 것 같아요. 괘씸죄를 적용해서 한번 소송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박세영 : 그런데 주인공이 서명한 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있잖아요.

 

이진우 : 그게 너무 괘씸해요. 거대 기업의 횡포라고 생각해요. 계약서가 있지만 현대사회에 당연하게 인식되는 저작권을 가지고 사기를 친 거라고 생각돼요.

 

박세영 : 공모전 같은 경우 ‘출품작에 대한 권리는 행사 주최에 귀속됩니다.’처럼 계약서에 있는 내용이 이런 내용 아니었을까요? 계약서가 너무 확실하므로 저는 소송은 안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구적인 권리의 귀속’ 같은 내용을 포함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상황을 소설에 녹여낸 게 아닐까 싶어요.

 

이진우 : 전화 한 통 없이 뮤지컬을 개봉한 거잖아요. 그게 너무 괘씸해요. 법적인 측면을 떠나서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요. 몰래 쓴 거잖아요.

 

이지혜 : 저는 법적인 측면에서도 한번 제기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패소했더라도 나중에 이 소송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고, 주인공은 항소를 포기했으니까 이렇게 끝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행했으면 뭔가 바뀔 수 있잖아요. 백희나 작가님의 ‘구름빵’ 관련해서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결국 승소는 못 했지만, 여러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저는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다음 계약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고 피해자가 그만큼 줄겠죠. 물론 희생과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세영 : 제가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면, 뮤지컬이 잘나가고 있으면, 저거 내 것이라고 ‘치마의 모험’ 제가 쓴 건데 재밌게 보셨냐는 식으로 이용할 것 같아요. 소송은 차마 못 하고 계약의 불합리함에 관한 이야기가 슬며시 나오면 저의 견해를 밝히고 이슈화시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진우 :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한번 도전해 봐라’ 관련 글도 실어 주었고.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도움 없이 혼자 싸워야 한다면 힘들겠죠.

 

이지혜 : 저런 상황이면 돈보다는 주변에서 알아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수진 : 현실적으로 볼 때 소송에서 지면 내 변호사 비용과 반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감수해야 해서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패소할 것을 알면서 항소까지 한다는 것은 신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회자 : 저도 처음에 생각했던 게, 만약 내가 조금 더 젊었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 도전하고 바꾸고 싶은 마음에 소송했겠지만, 지금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소설 속 작품인 「나와 〈치마의 모험〉」에는 왜 치마가 한 번도 안 나올까? 입니다.

 

박세영 : 소설 속에서 ‘치마의 모험’ 작품 내용이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잖아요? 그냥 ‘치마의 모험’이라는 소설에서 치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언급만 있어요.

 

최다은 : 치마가 여성을 상징하는데 작품을 영화로 각색할 때 ‘바지의 모험’으로 바뀌면서 흥행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뮤지컬 제목도 ‘치마의 모험’인데 각색된 ‘치마의 모험’에서는 치마가 한 번도 안 나오는 것은 당시 남성 중심적인 이 분야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지혜 : 맞아요. 치마가 여성을 상징하고 여성을 지우려는 사회의 모습을 꼬집은 거 같아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주인공이 반지남에게 한 것처럼 나의 실수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의심했던 적이 있는가?’입니다.

 

박세영 : 어릴 때 내 물건을 잘 뒀는데 없어져서 괜히 엄마 탓을 했지만, 알고 보니 내가 다른 곳에 놔서 못 찾았던 경험 다들 있지 않아요?

 

사회자 : 저는 아버지 차를 빌려 사용하고 주차를 해놓고 늦게 잔 적이 있어요. 다음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차 위치를 물어보셨는데 비몽사몽 상태에서 위치를 잘못 말씀드린 거예요. 아버지가 계속 못 찾고 재차 물으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겨우 찾으셨어요. 그 이후로 비몽사몽 상태로 깨어 있지 않아요.

 

이지혜 : 저는 아이들 가르치다가 어떤 아이가 떠들기에 혼냈는데 알고 보니 옆 아이가 떠든 거였어요. 너무 미안해서 바로 사과했어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나의 송곳은?’입니다.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지혜 : 소설 속 송곳은 부정적인 의미인가요?

 

사회자 : 저는 긍정적으로 송곳이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지혜 : 저는 주인공이 모임 원들을 송곳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할 말을 바로바로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였거든요.

 

이진우 : 그런 의미도 있고, 책의 ‘무수한 시도의 좌절로 인해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송곳. 수많은 실패를 감추고 있는 송곳’이라는 문장을 보면 열등감, 신념이라는 의미 같아요.

 

사회자 : 저에게 생긴 송곳은, 서점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워진 것이에요. ‘한길문고’에 잘못하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끼칠까 봐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만들어진 제 송곳은 ‘친절함’인 것 같아요.

 

박세영 : 저는 대화할 때,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친한 척 대화를 하게 돼요. 직업상 상담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성격은 트리플 소심한 A형이어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물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좋은 송곳이지만 방향을 바꿔서 나를 찌르기도 하는 송곳 같아요.

 

이진우 : 저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저의 영역을 건드리면 송곳이 튀어나왔어요. 내가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는데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 길로 가면 돈도 적게 벌고, 가봐야 네가 생각했던 거랑 다를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송곳이 올라와서 누나와도 대판 싸운 적이 있어요. 제가 평소에 큰 소리를 잘 안 내는 성격인데 큰 소리를 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듣고 마음에 담는 편이에요.

 

이지혜 : 저의 송곳은 다 겉으로 드러나는 송곳이어서 저와 대화하다 보면 제가 송곳이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웃음)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송곳들이 다 마음에 드는데 딱 한 가지, 페미니즘 하면서 혐오가 생기더라고요. 혐오가 싫어서 페미니즘을 했는데 공부할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도 생기고 남자에 대한 혐오도 생기고. 이렇게 가끔 버리고 싶은 송곳이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최다은 : 저도 사회자와 비슷한 송곳인데 되도록 명랑하고 밝게 사람을 대하려 하다 보니 때로는 심적 에너지 소모가 있어요.

 

이수진 : 전 지금은 송곳이 없는 것 같아요.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전에는 언제든 찌를 듯한 송곳들이 둥글게 변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내 마음 편하게 하고자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네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만약 이 소설처럼 큰 물고기인 아로와나와 수족관을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집 앞에 놓고 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박세영 : 저는 어쩔 수 없이 키울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사전에 키워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거절할까 하다가도 인간 사회의 한 명밖에 없는 친구가 부탁한 일이라면 키워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최다은 : 어류는 어려워서 최선을 다해서 못 돌볼 것 같고 시늉만 할 것 같아요.

 

이수진 : 저는 전문가인 청계천 수족관 판매장 사장님께 맡길 것 같아요.

 

이지혜 : 저는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수진 님처럼 잘 키워 줄 수 있는 곳으로 보낼 거예요.

 

이진우 : 저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텐데 아로와나라면 키우겠지만 강아지라면 안 키울 거예요.

 

사회자 : 저는 아로와나는 못 키울 것 같고 강아지나 고양이는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2~3일이라면 아로와나도 키울 수 있고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책에서 나온 문장인 ’실패의 과정조차 반성하고 절실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입니다.

 

최다은 : 무언가를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에 실패는 했지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고, 자책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박세영 : 저도 어떤 경험이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해도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니 발판으로 삼으면 되지 실패해서 반성하고 내가 이만큼 절실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실패할 때마다 그렇게 반성을 하고 자기 성찰을 하면 삶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사회자 : 저는 실패에 관련된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실패도 하나의 경험이니 그 경험을 통해서 다음엔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라 생각해요.

 

이진우 : 저는 이상은 큰데 노력은 안 하는 스타일이어서 제 기준보다 못 미치면 반성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합니다.

 

이지혜 : 사람이 살다 보면 의도한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모든 과정이 무언가를 남긴다고 생각해요. 이 책에선 이 실패가 괜찮은 실패였어, 라고 증명하려면 그 과정에서 내가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걸 증명해야 하고 얼마나 절실했는지 어느 정도로 목숨을 걸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얼마나 절실했는지 굳이 따져야 하나? 실패 자체를 배움의 경험으로 삼았으면 굳이 증명이 필요 없고 이 소송에서 지더라도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 다음 질문은 “책에서 주인공이 ‘아직은’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표현했는데, 여러분의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입니다.

 

이수진 : 저는 ‘굿나잇’이요. 굿나잇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되게 설레고 좋아요. 굿나잇 해주세요. 저한테. (웃음, 일동 굿나잇 합창)

 

박세영 :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간적인 말이라고 생각하고, 이 단어 덕분에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 저는 요새 안부를 묻는 말, ‘별일 없었어요?’라는 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지혜 : 저는 ‘다채롭다’라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진우 : 저는 그거 좋아해요. ‘와~!’ 하는 감탄사. (일동 ‘와~’ 합창, 웃음) 스스로 ‘와’ 하는 순간도 좋고, 다른 사람이 ‘와’ 하는 순간을 보는 것도 좋아요. (일동 ‘와~’ 재합창) 아, 여러분 감사합니다. ‘와’ 많이 해주세요.

 

최다은 : 전 ‘화이팅’ 좋아합니다 ‘화이팅!’

 

 

사회자 : 다음 질문은 ‘내가 꾼 꿈 중에 가장 무서웠던 꿈은 무엇인가요?’입니다.

 

최다은 : 저는 3월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반 아이들이 꿈에 나와서 ‘선생님 싫어요!’ 하거나, 수업 중에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꿈을 생생하게 꿔요. 그런 꿈을 꾸면 힘들게 일어나요.

 

박세영 : 꿈은 원래 깨어나면 대부분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지는데 가끔 뇌리에 꽂히는 꿈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친구랑 물놀이를 하는데 물고기가 엄청 많았다든가, 술을 먹고 차를 찾는데 차가 도망 다니는 꿈 같은 걸 꿨는데 깨고 나서도 종일 기억에 남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그 해몽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게 돼요. 그래서 꿈꾸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는 걸 좋아해요.

 

이진우 : 저는 예전에 혼자 살 때 엄청 생생하게 꾼 꿈이 있는데. 제 옆방에서 사람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러고서 갑자기 누가 제 방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예요. 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도어록을 열고 칼을 든 채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서 제가 숨었어요. 그 사람이 제가 숨은 곳에 다가오는 순간 꿈에서 깼는데 깨고 나서도 한동안 그 사람이 혹시 집 안에 있지 않나 집 안을 돌아다니며 확인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저쪽으로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무서운 꿈이었어요.

 

사회자 : 저는 무섭다기보다 인상 깊은 꿈인데. 모든 사물이 갑자기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고 저도 크게 느껴지는 꿈을 몇 번 꿨어요. 무서운 꿈을 꾼 적은 없고 가위에 눌린 적은 있어요. 아주 어릴 때 자다가 깼는데 몸이 안 움직여서 무서웠어요. 그래서 엄마만 계속 부르다가 몸이 겨우 풀렸던 기억이 나요.

 

이지혜 : 저도 귀신 나오는 꿈 같은 건 종종 꾸는데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고, 기억나는 것 중에 가장 끔찍했던 건 바퀴벌레 나오는 꿈이었어요. 그 꿈 꾼 날 실제로 바퀴벌레가 나와서 아주 분명하게 기억해요. 너무 싫었어요.

 

이수진 : 저는 무서운 꿈은 잘 안 꾸고요, 그냥 평상시에 별로 보고 싶지 않고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인데 꿈에 나타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기분이 좀 좋지 않죠.

 

 

사회자 : 대망의 마지막 질문! ‘여성 감독, 여성 영화에 지원 및 공모전 기산점 부여’ 정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영화계 또는 사회 전반적인 부문에서 성 평등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눠 봅시다.
(참고자료 : 시사주간 임동현 기자 - 영진위 ‘성평등 지수 정책’, ‘희망’ 혹은 ‘역차별’)

 

사회자 : 참고자료 기사를 봤는데, 처음엔 여성들에게 기회를 더 줄 수 있는 좋은 정책으로 서술하는 것 같더니 점점 오히려 그로 인해 비판적인 딱지가 붙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안이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들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상대적으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혜택을 더 주는 것으로 가산점이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여성들 작품을 ‘너희들 가산점 제도로 우대받은 거지?’라고 여기게 만들고 또 다른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좋은 대책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요.

 

최다은 : 여성 서사를 다루는 작품들에 대한 가산점을 주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여성 작가나 여성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산점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벡델 테스트1)를 예로 들어 보자면, 그 테스트도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성별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내용 면에서 그 작품이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다루었는가를 판단하는 거잖아요. 단순히 여성 감독이나 작가에게 주는 가산점 제도는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판단할 때 가산점이 붙었기 때문에 당선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벡델 테스트에 가산점을 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1)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연재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들(Dykes to Watch Out For)》에서 고안한 영화의 성 평등 평가 방식.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지만 다른 매체를 볼 때도 적용할 수 있다.테스트는 세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이뤄진다.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3. 이야기의 주제가 남성에 대한 것 이외이다.

 

사회자 : 솔직히 남자든 여자든 능력이 있다면, 성별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제 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니까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다은 : 책과는 다르게 영화는 상영될 수 있는 스크린 개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제작된 많은 영화 작품을 다양하게 접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한 부분에서 성 평등 지수를 맞춰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무조건 여성 감독이라고 해서 그 작품 내용이 평등적인 것을 지향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여성 감독이라고 해서 혜택을 주는 건 맞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는 내용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진우 :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맞추려는 시도는 정치계에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내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비율부터 맞춰 놓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다은 : 정치는 그렇지만 영화는 작품 내용으로 대중이 충분히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작품이 계속해서 나오면 대중이 그걸 알아보고 점점 힘이 실리지 않을까, 이미 출판계는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대한 여성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냈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 출판계가 그러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건 출판 자체가 굉장히 쉬워졌기 때문이에요. 1인 출판도 쉬워졌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장르를 다양한 독자들이 접하는 게 가능했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이런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그러한 판 자체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는 찍기 시작하면 제작비부터 굉장한 부담이잖아요. 그래서 제작 자체가 힘드니까요.

 

이지혜 : 다은 님이 이야기하신 부분은 이미 이게 작품으로 나와 있어야 평가가 되는 단계인 거잖아요. 소비자들이 멍청하지 않다는 말에 저도 동의를 하는 게, 어떤 것이든 마지막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은 대중들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이러한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것인데. 애초에 작품 자체를 만들어낼 수 없는 구조적 차별이 너무 심하니까 제도가 생기고 이러한 제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에게 제작 기회가 똑같이 주어져야 그 뒤에 작품을 판단당할 기회 또한 동등하게 따른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시작부터 배제됐던 사람들을 위한 제도는 필요하다고 느껴요. 제작자 자체가 여성이면 투자조차 들어오지 않고, 이미 이 판의 감독들 등 남성 연대가 강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아무리 노력해 봤자 이 구조를 개인이 깨부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도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건데. 다은 님 처럼 이게 맞는가 의문을 품는 것, 이게 실질적인 효과가 있나 하는 논의 등이 더 이루어져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 제도 자체를 ‘역차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요. ‘차별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인 거죠. 이러한 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보호할 수 있겠어요. 여태까지 보호받지 못했던 그 창작자들 말이에요. 이건 제도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기회를 주는 것.

 

박세영 : 제게는 항상 너무 어려운 문제예요. 교양 수업으로 소수자 관련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성차별이든, 어떤 차별이든 소수자 입장이 되어 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이런 게 차별이구나’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여성 지원 제도들은 영화계뿐 아니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잖아요, 그런 걸 볼 때 그 강의를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나요. 차별인 줄 몰랐던 부분들을 차별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혜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이고 잘 적용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잘’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같아요.

 

이진우 : 남성으로서는 ‘여성 관련된 주제를 써본 적 없고 평소 관련 있는 분야를 만들지 않는데 이런 공모 사업을 봤을 때’ 그렇다면 나는 평소 쓰지 않던 장르를 써야 가산점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남성이니까 가산점을 받지 못한다면 합리적이진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다은 : 소비자에게는 공급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대학교 입학 당시 특정 성비가 70%를 넘지 않게 학생을 선발했습니다. 승진 심사에도 ‘특정 성비가 일정하게 치우치지 않는다’ 항목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공급이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평등하게 되어야 수요자가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역차별, 불합리라는 부분에서도 ‘내가 저 사람보다 점수가 높은데 왜 내가 불합격이지’라는 생각은 들 수 있지만, ‘역차별이다’라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성별의 교사를 만날 수 있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등 다수에게 적용될 순기능 부분에 집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면 “스크린도 남성 감독 70%라면 여성 감독도 30%를 차지해야 한다.”라고 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박세영 : 기존의 남자 감독이 기존의 규정대로라면 성공 가도인데 만약 이런 제도 때문에 성공을 못 한다면 그 사람으로서는 서운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성 평등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항상 회자되는 이야기이고 딜레마라서 우리 사회가 이것을 어떻게 풀어 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진우 : 이렇게 되면 남자로서는 피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역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감수하고 이 사업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지혜 : 성 평등을 처음 공부할 때 나오는 첫 번째 딜레마는 지금까지 남성들이 누렸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나옵니다. 그것을 깨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역차별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 감독이 남성 위주의 이야기만 쓰고 남성 배우만 섭외했던 것이 평등한 시선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맞는데 지금까지 계속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남았던 것이고, 그것을 깨야 하는 것이 성 평등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거 원래 내 것이었는데, 라고 생각하다 보니 반대쪽이 이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기울어져 있던 것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내려가 있던 것을 끌어올리기 위해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려가 있는 곳에 더 줘야 하는 것이 맞잖아요.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고. 공평한 것과 공정한 것의 경계는 공평한 것은 A와 B에 5씩 주는 것이고, 공정한 것은 애초에 A=-3, B=0이었다면 이것을 맞추기 위해 A에는 8을 주고 B에는 5를 줘서 결과가 맞아지는 것이 공정한 과정입니다. 공평은 과정의 평등이고 공정은 결과의 평등입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결과의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똑같이 줬어도 결과가 평등하지 않다면 모든 건 다시 반복됩니다. 이것은 끝까지 평등해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누렸던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쪽의 목소리가 이해됩니다.

 

이진우 : 이것을 머리로 인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에 실제 기존의 남성 감독이 아니라 이제 막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면, 지금까지 기득권 힘을 받은 상태가 아니라면, 하지만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 제도로 차별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선택 폭이 가산점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도 바늘구멍인데 나는 점점 더 무언가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봅니다.

 

이지혜 : 표면적만 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남성은 연대가 이루어진 윗세대가 있어 그 덕을 보기 훨씬 쉽습니다. 이미 그 시작부터가 차별의 시작입니다. 공모전 자체만 보면 진우 님의 의견이 맞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들도 이미 혜택을 받고 있어요. 그러므로 이런 제도가 없다면 기존의 연대구조로밖에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기 위해 이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자 : 방금 생각했는데, 남성 여성을 블라인드로 평가하면 혜택을 줬다 못 받았다 할 수 없잖아요. 모든 것을 블라인드로 평가하면 공평한 경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두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커트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지혜 :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블라인드 방식을 사용해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요.

 

이수진 : 둥글게 둥글게 받아들이면 안 될까요? 시대가 변했으니까 과거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소리를 낼 수 있고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상황이, 다른 제도가 생기고 바뀔 수 있으니까 저는 그냥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까 바뀌면 안 되고 나는 혜택을 못 받아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세영 : 저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이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타이밍이고 내가 어떤 감독 타이틀을 달고 대박이 날 수 있었던 것도 타이밍인데 진우 님의 예도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숙이 들어갔을 때 차별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 또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각자 타고난 시(時)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그렇게 가고 있으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이지혜 : 저는 남성들이 역차별이라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여성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쌓아 온 것을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쌓아 온 역사가 아니고 남성들이 쌓아 온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도 페미니즘 운동을 해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내가 가산점 받지 않고 똑같이 대우받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지 특별 취급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바닥에 있는 것을 끌어올리려다 보니 이런 제도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로 인해 꼬리표를 만드는 것도 남성이고 이런 제도에 불만이 있는 남성들이 꼬리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열띤 토론에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평소처럼 책의 총평을 내려 볼까요?

 

박세영 :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이렇게 가볍게 읽었거나 무슨 책인가 싶었는데 대화를 나누고 보니 이런 책이었구나 싶고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독서모임의 매력인 것 같아요. 책을 매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좋습니다.

 

 

사회자 :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으로 누가 있을까요?

 

이진우 : 물고기 키우는 사람?!!

 

이지혜 : 저 물고기 키우는데 이 책을 읽는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진우 : 3만 원에 돼지기름 먹을 수 있는 사람!

 

모두들 : 괜찮다!! 3만 원에 삼겹살 기름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박세영 : 여기다가 크게 의미 부여를 하면 안 됩니다. 돼지기름 딱 좋아요!!

 

 

사회자 : 이상으로 오늘 모임을 마칩니다. 다음 모임 때 봬요!

 

 

 

 

 

 

 

 

 

 

 

김우섭
사회자 / 김우섭

한길문고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는 중인 책방지기.

 

박세영
참여자 / 박세영

속기사.

 

이수진
참여자 / 이수진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 배움의 자세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지혜

참여자 / 이지혜

꿈꾸는 사람, 꿈 하는 사람으로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이진우

참여자 / 이진우

책이 주는 작은 깨달음들을 좋아합니다. 책모임이 주는 큰 즐거움은 더 좋아하고요.

 

최다은

참여자 / 최다은

이것저것 배우고 알아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경험을 긍정하고 주변에 좋은 기운을 주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문장웹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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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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