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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구토』를 통해서 본 ‘삶’의 의미

  • 작성일 2005-07-31
  • 조회수 1,398



 

밥 먹듯이 자주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때때로 우리는 “나는 도대체 왜 사는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갖게 됩니다. 특히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때 그런 생각이 들지요.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매일같이 똑같은 생활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면 그 다음 학원에 가고, 학원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 숙제하고 잠자고…… 또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월, 화, 수, 목, 금, 토, 매일매일 이런 식으로 살지요. 그러니까 자연히 지겨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더욱 자주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은 모두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으며, 게다가 살아야할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년모일에 자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태어나서, 어려서는 대부분 부모가 시키는 대로, 자라서는 친구나 다른 사람이 사는 대로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도대체 왜 사는가?”라는 의문이 선뜻 다가오면, 그때 우리는 크게 당황하게 되지요.

 

혹시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요? 그렇다면 이번 여름방학에는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소설 『구토』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나는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인가   

 

 

사르트르가 1938년 발표한 일기 형식의 소설 『구토』의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프랑스 어느 지방 도시에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젊은 역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얼마 전부터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때까지 로캉탱은 18세기에 살았던 롤르봉 후작이라는 어떤 무명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傳記)를 쓰는 데 몰두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 그러한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 두는데, 그러고 나자 그는 갑자기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껏 그가 자신이 사는 이유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하나의 과거, 그것도 롤르봉이라는 어떤 사람의 과거였는데,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이제 그가 살아야 할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삶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진심으로 나는 삶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텅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을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거북한 존재다. 어느 누구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모든 존재가 저마다 혼란한 마음과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스로를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계획이나 의미도 없이 그저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며 사는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실로 자신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낯선 모습이었어요.

그러자 로캉탱은 속이 뒤집히면서 모든 것이 허공 속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 즉 현기증과 구토증을 느끼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이때 로캉탱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공원도 도시도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알게 되면 속이 울렁거리고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토가 치민다.”

 

                                  삶은 ‘시지프의 형벌’인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로서 파악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설사 그가 지금 당장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세상은 그와는 아무 상관없이 잘 돌아갈 테니까요. 하지만 누구든 자기 자신을 이렇게 파악하고 나면, 더 이상 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따뜻한 햇살과 달콤한 즐거움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추위와 어둠 그리고 쓰디쓴 고통이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살아가야할 아무 이유도 의미도 찾지 못하고 그저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지요.

 

이처럼 살아야할 아무런 이유나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프랑스 작가 카뮈는 ‘시지프의 형벌’에 비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들의 미움을 사서,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가혹한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높은 바위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계곡으로부터 밀어 올리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바위는 시지프가 온 힘을 다해 밀어 정상에 올려놓으면, 바로 그 순간 제 무게로 인해 다시 반대편 계곡으로 굴러 떨어져 버리게 되어 있었지요. 시지프스는 바위가 항상 정상에 있도록 해야만 하기 때문에,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매번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계속해야만 했답니다.

 

시지프의 형벌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일이 가혹해서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카뮈의 말대로 인간에게는 “보람 없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라는 것을 신들이 알았던 거지요. 그래서 카뮈는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고통과 절망을 ‘시지프의 형벌’에 비유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종류의 고통과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아직 없나요? 아무튼,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은 바로 이 문제로 절망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는 어렴풋이 나 자신을 없애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남아도는 존재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라면서 자신의 무의미한 삶을 포기하려고도 합니다.

 

                                             탈출구는 어디에?   

 

 

그렇다면 자살이 시지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까요? 카뮈는 그의 명작 『시지프의 신화』에서 단호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인생이 살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이다. 그러나 너무나 자명하기에 아무 데도 쓸모없는 진리이다.”

 

그의 말인즉 자살은 죽음과 함께 문제가 되는 상황 자체를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살은 문제의 소멸일 뿐 해결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르트르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구토』의 로캉탱도 자살하지 않습니다. 자살을 생각하던 그는 우선 도망가듯 그 동안 살던 도시를 떠나려고 하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머지않아 사랑하는 그대는 내가 없어 외로우리!”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긴 재즈 음악을 듣게 됩니다.

 

순간, 그는 레코드판에 담겨 있는 음악은 이미 죽어 있었지만, 그것이 축음기에 걸려 돌아갈 때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지요. 그리고 이어 그 노래를 만든 작가와 가수는 자기처럼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로서 존재하는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레코드판의 음악이 축음기에서 재생되어 돌아가는 행위로써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지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로캉탱은 자신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전율과 기쁨을 느낍니다. 아마, 이때 로캉탱은 판에 박힌 듯 똑같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자신의 삶도 그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의미가 드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을 겁니다. 로캉탱은 이때 자기의 심정을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이었다. 일종의 기쁨이었다. …… 나는 눈 속을 걸어와 완전히 얼어붙었다가 갑자기 따뜻한 방으로 들어온 사람과 같았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해 오던 어떤 죽은 사람의 전기(傳記)가 아니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도록’ 인간을 깨우쳐 줄 ‘의미 있는’ 소설책을 말입니다.

로캉탱은 이렇게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부가한 글쓰기를 하면, 겉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조금도 없겠지만, 지루함이나 피곤함 그리고 부조리를 느끼는 일이 없을 것이며 구토도 치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소설 『구토』는 끝이 나는데, 사르트르는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가 있다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그저 주어진 대로 남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르트르나 카뮈 - 흔히 말하는 실존주의 작가들이 - 파악하는 한,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삶에는 아무런 고정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지요.

 

사르트르는 이 자유를 ‘저주받은 자유’라고도 불렀지만, 만일 우리의 삶에 어떤 정해진 의미가 있어서 단지 그것만을 쫓아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지도 않고 또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고정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삶을 매순간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카뮈는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을 ‘위대한 의식의 순간’이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위대한 의식의 순간’이란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자, 바로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을 매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유를 깨닫는 순간이며, 그렇게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비로소 알아차리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로캉탱은 축음기에 레코드판을 걸어 돌리는 행위가 레코드판에 박혀 있는 노래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을 보고 바로 이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아무리 무의미하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한다.’는 것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올 여름, 여러분들도 남들이 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말고, 학원을 다니든, 피서를 하든,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하여 실행함으로써 여러분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자신의 힘을 다하여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의미 있는 삶을 제외하면 삶에는 의미가 없다.”                                  

                                               - 에리히 프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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