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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포로수용소 속 난민? 바로 우리라니깐!!”

  • 작성일 2008-11-26
  • 조회수 2,182





‘관타나모’, ‘아부그라이브’,‘아우슈비츠’ 그리고...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사진 왼쪽)를 기억하시는지요? 파키스탄계 영국인 청년 4명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갔다가 동족의 비참한 현실을 보려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게 되는데, 미군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한 청년은 실종되고, 나머지 3명의 청년들은 테러리스트로 몰려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2년 동안 모진 고문과 학대를 받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지요. 인종과 종교만으로 모든 이슬람인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단정하는 미국의 광기를 관타나모 수용소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알다시피 관나타모는 쿠바의 남동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이름입니다. 미 해병대가 관할하고 있는 한 마디로 쿠바 속의 미국이라고 할 수 있죠. 2001년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 관련된 비시민권자들에 대한 구금과 처우 그리고 재판에 관한 군사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이 테러와 관련된다고 의심될 때에는 고발조치 같은 별도의 절차가 없어도 바로 수감할 수 있는 권한을 국방부에게 준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치 때문에 2002년 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750명이 관타나모로 이송되었습니다. 기지라기보다는 수용소로 더 유명하고, 특히 고문과 불법감금으로 악명이 높아서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지요. 미국의 두 대통령 후보가 이 수용소의 폐쇄를 약속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군요.  

  또 하나의 수용소를 기억합니다. 몇 년 전 벌거벗겨진 포로들의 성기를 가리키며 웃고 있는 여군의 사진이 공개되어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던 그곳입니다. 이라크에 위치한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진 오른쪽)기억하시나요? 나체의 이라크인들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놓고, 그 풍경을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은 병사들의 추악함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원래 사담 후세인이 정적(政敵)들을 수감하던 정치범 수용소였는데,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 이라크 포로들을 감금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후세인의 퇴출 이후 이라크는 폐지했던 교수형 제도를 부활시켰고, 실제 이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다수의 사람들이 재판과정이나 증거의 공개 없이 사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비단 이곳들만이 아닙니다. 숱한 영화와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나치의 아우슈비츠, 솔제니친이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에서 보여준 볼셰비키의 수용소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수용소’를 핏빛 진실의 공간이라고 말하지요.



“아니 이 살만한 곳이... ...”


  
그런데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난민수용소라고 주장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소설 「스페인 난민수용소」(《현대문학》2008년 5월호)(사진 위)의 작가 최인석(사진 아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아니, 이 살만한 곳이 난민수용소라니!’ 하면서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소설의 제목은 분명 ‘스페인 난민수용소’이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스페인’과 ‘영천’이라는 지명의 차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곳이 ‘서울’이면 어떻고, 또 ‘부산’이라면 달라질까요? 작가는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수용소는 같은 곳에 붙여진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아니 우리가 사는 곳과 수용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듯합니다. 수용소는 감옥과 다릅니다. 수용소는 범죄자들을 구금하는 곳이 아니라 포로나 난민을 수용하는 곳이지요. 아우슈비츠를 상상해 보세요.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구요?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일반화한다구요? 그러면 1991년 이탈리아 경찰들이 알바니아 출신의 불법이민자들을 임시로 수용했던 축구 경기장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작년에 화재가 나 여러 명의 외국인이 죽었던 여수 외국인보호소가 과연 수용소와 다를까요?

  사전적인 의미로 난민(難民 refugee)은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 등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정치적인 문제를 인도주의적인 시선으로 은폐하고 있는 거짓이거나, 20세기의 전지구적 현상에 대해 침묵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상 난민은 자신이 발 디뎌야 할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고, ‘국민’의 자격이 없거나 선언할 ‘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같은 헌법적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항상 ‘인권’이라는 보편적 관념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그저 인간에 불과한” 존재들이지요.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대규모의 난민이 생겨났습니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난 유태인들이 그들인데요, 그들은 ‘주권’의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유럽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나치의 악랄함만이 아니라 ‘주권’이 없는 “그저 인간에 불과한” 존재들이 어떻게 취급되는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러니 선언할 주권을 갖지 못한 이들을 ‘인권’으로 돌본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논리입니다. 1789년의 인권선언은 ‘인간’ 전체에 해당되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존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사진 위는 2차대전 기간 유대인수용소로, 악명이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진출처:http://blog.naver.com/sonjson?Redirect=Log&logNo=140053694067

수용소란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수용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요소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데, 그것은 나라 없고 거처 없고 쓸모없는 ‘난민’이라는 요소입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장소를 잃어버린 자들의 장소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군요. 또 이상한 말이지만, 수용소는 법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동시에 법의 적용이 멈추는 곳, 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곳입니다. 앞서 보았던 여러 사례들이 과연 ‘법’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인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죠. 수용소는 감옥과 달라서 합법과 불법이 구별되지 않는 곳이고, 때문에 그곳에서 개인의 권리나 법적보호라는 개념은 무의미합니다. 법의 이름으로 불법이 행해지고, 초법적이지만 법의 내부에 있는 곳이 바로 수용소입니다.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이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는 칼 슈미트(carl schmitt)라는 독일의 법학자를 인용해서 법의 작동을 중지시킬 수 있는 이러한 힘, 즉 예외 상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자를 주권자라고 말했습니다. 수용소 난민들의 운명이란 결국 법이 아니라 그곳을 운영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착한가에 따라 결정되지요.



어느 날  동네에 난민수용소가 세워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상철과 상철의 아비지 원규가 사는 곳인 영천시에 몇 년 사이 난민수용소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영천시 외곽 47번 도로변에 스페인 난민수용소가 들어선 것은 7년 전의 일입니다. 식량이나 생필품을 보급하는 차량 외에는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수용소는 영천시 주민들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운영되었기에 수용소의 담은 본의 아니게 ‘난민’과 ‘시민’을 구분하는 경계선처럼 인식됩니다. 어느새 영천시에는 수용소에 관한 소문들이 무성하게 떠돌기 시작합니다. 타자란 항상 소문의 대상이지요. 지독한 냄새가 난다, 전염병 환자들이다, 아니다, 범죄자다 같은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고, 급기야 수용소 철조망 주변에서 죽은 스페인 태아가 발견되었다는 둥, 그곳의 여자들이 경비병들이나 직원들을 상대로 몸을 판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악성루머까지 판을 칩니다.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사람들은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는 미신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이 미신은 그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고, 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중국인들이, 혹은 우리의 조상들이 국경선 바깥의 인간들을 ‘괴물’, ‘야만인’, ‘오랑캐’라고 여겨 혐오했던 게 이와 달랐을까요? 이처럼 ‘타자’와 ‘우리’ 사이에는 국경선이 있고, 그 국경선 위에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때 영천 시민들의 유원지였던 그곳에 난민수용소가 세워지고 난 다음, 그곳에 발걸음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발걸음을 막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난민수용소는 영천시 주민들과 무관하게 운영된다는 말은 거짓인 셈이지요.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빼앗겼고, 더불어 행동에도 일정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어느 날 상철과 원규 부자는 낚시터에서 돌아오다가 이상한 차단장치와 팻말을 목격합니다. 그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난민수용소의 원활한 운영과 주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등산로를 폐쇄합니다. 우회로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수용소의 운영과 주민의 안전을 위해 십 분이면 도착할 길을 한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해야 했습니다. 또 한 번 거짓이 탄로 나는 순간이지요. 아버지 원규와 등산들은 자신들의 등산로인 감단산에서 휴대전화 전파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감단산에 세워진 페루 난민수용소 때문이라는 사실도 말이지요. 나이가 많은 학교 선생님은 “나쁜 정치가 있는 곳에서는 난민이 생기기 마련이다.”라는 말로 ‘우리나라’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할 것을 가르칩니다. 사실일까요?

  난민수용소가 생긴 뒤, 영천시에는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예고 없이 정전이 되고, 군인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아파트 광장으로 들어오고, 전력회사와는 전화마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튿날 영천 시민들은 간밤의 일들이 스페인 난민수용소에서 몇몇 난민들이 탈출해서 생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난민을 수색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던 것이지요. 얼마 후 그들은 또 하나의 난민수용소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성묫길에 나섰던 두 부자는 도로를 막아선 경찰들에 의해 저지당합니다. 수용소 때문에 길이 폐쇄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연히 그들의 성묫길에 끼어든 노인들은 난민 수용소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공공연하게 표출합니다. “풍속이 다르니 함께 살 수도 없고…혀서 그러는 거겠지. 쫓아내얄 거 아녀. 이것이 쫓아낸 것이나 한가지지. 수용소 지어놓고 여기다 가둬놓는 것이. 그것들이 순 도둑질에 살인에 마약이니 밀수니, 왼갖 나쁜 짓들은 다 하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여. 안 그려, 젊은 양반?” 노인들의 말 속에도 진실은 있습니다. 수용소에 가둬놓는 것이 쫓아내는 거나 한가지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항상 쫓아낸다는 것을 어떤 영역이나 경계의 밖에 버리는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권력은 종종 ‘안’에다가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안’에 있지만 결코 사회의 ‘내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경계의 ‘안’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처지에 있는 것 아니지요. 수용소란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요. 부자가 성묘를 다녀온 날 밤, 삼봉산에 산불이 났고, 산불 때문에 가려져 있던 알바니아 난민수용소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부터 산불의 발화자가 난민들이라는 소문이 퍼지지요. 경찰은 그것이 성묘객의 담뱃불 때문이라고 밝히지만, 과학은 결코 소문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알바니아 난민수용소에 불이 나 난민 삼십 여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러분은 누가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세요?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난민폭동사건이 있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군요. 어느 날 알바니아 난민들이 수용소를 탈출, 영천시내로 들어와 상점을 약탈하고 차에 불을 지르는 폭동을 일으킵니다. 나흘 동안의 그 폭동으로 시민 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상철의 어머니 승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슴께에 스페인 국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그러나 그녀의 스페인어 인사말에 한국말로 욕설을 퍼부은 그 난민들의 정체를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요. 아무튼 그 사건 이후 수용소의 운영방식은 조금 바뀌게 되고, 수용소 주변은 밭이 되거나 시장이 됩니다. 동시에 이집트 난민수용소 등의 수용소가 생겨나지요. 수용소 주변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난민들이 경비병들의 감독 아래에서 시장을 엽니다. 표면적으로 수용소가 더 이상 괴물의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음으로써 ‘난민’과 ‘시민’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흐려집니다. 난민과 시민의 경계가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어느 쪽으로 통합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괴물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한편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상철은 ‘단군청년단’이라는 민족주의 단체에 가입을 합니다. 개량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태껸을 배우고, 단군과 연개소문과 대조영과 김구와 안중근과 박정희의 초상화를 붙이고, ‘외국인’이 눈에 띄면 두들겨 패는 배타적인 민족주의자가 됩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분노는 왜 항상 민족주의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분노가 귀를 멀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를 잃은 상철의 심정이야 오죽할까요. 그는 “니 엄마를 죽인 것은 스페인 난민이 아니다. 괴물이 죽인 거다.”라는 아버지 원규의 충고 따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눈앞에서 이글거리는 분노의 힘만이 있을 뿐이죠. 상상할 수 있듯이, 종종 외국인에 의해 당한 죽음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미화되고 찬양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민족주의가 버티는 커다란 원동력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열사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급기야 상철 일행은 스페인 난민수용소를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작전에서 2명의 난민을 살해하고, 30여 명에게 중화상을 입히고, 경비병 5명에게 경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리지만,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맙니다. 물론 상철 일행의 행동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민족적 거사로 또 한 번 미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호송되는 그 순간에도 “만주 넘고 발해 넘어” 같은 고색창연한 민족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노래하는 ‘너’와 ‘나’, 즉 ‘우리’에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라는 그들의 구호는 결국 ‘그들’의 다른 표현일 뿐이지요.

  이 소설의 문제적 인물은 상철이 아니라 아버지 원규입니다. 그는 스페인풍 민속의상을 입고 경찰서에 수감된 아들을 면회하면서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고, “내 애인, 스페인 사람이다.”, “니 에미를 죽인 괴물이 무엇인지 이젠 알겠냐? 아직도 모르겠냐?”처럼 연신 이상한 말만 쏟아냅니다. 아내의 죽음을 복수한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는커녕 그는 ‘괴물’ 타령만 반복합니다. 그의 행동은 박애주의의 실천이나 종교적 신념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원규는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괴물’에게 있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괴물’이 괴물로 불리는 까닭은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힘과 음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괴물이란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에게 붙여진 이름 아닌 이름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 ‘괴물’이 이 세상을 수용소로 만들고, 수용소 안에서 인종과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끼리 싸우다가 죽도록 만드는 권력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괴물의 꾐에 빠져 눈앞의 이방인을 오직 ‘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권력’, ‘자본주의’, ‘세계화’, ‘주권’ 등은 모두 그 괴물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아버지 원규가 몸으로 보여주는 에로스(“내 애인, 스페인 사람이다”)가 이 괴물에 맞설 수 있는 무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인종, 피부색, 국적이 다른 존재들 앞에서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실감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외국어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좋은 핑계일 뿐입니다.

  상철이 서울로 압송되면서 목격한 입간판의 내용이 눈앞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질 않습니다. “영천 난민수용소”. 그렇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우리는 전쟁과 같은 예외적 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이 정상과 비정상(예외상태)을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해 있다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요? 호모 사케르(homo sacer: 신성한 삶)가 법(규칙)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배제되는 존재라면, 주권자는 법의 내부에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에 거주하는 존재입니다. 한때 히틀러가 맡았던 것이 이 주권자의 배역이었습니다. 오늘날 히틀러와 같은 주권자의 형상을 찾기는 어렵지만, 우리 시대의 공무원들이나 전문가 집단이 어느 정도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인 아닙니다. 그들의 사심 없는 노력 속에는 주권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는 언제든지 법(규칙)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도심 한 가운데에 버려지는 생명 아닌 생명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수용소입니다. 수용소에서 살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난민인 셈이지요.


*작품출처: 현대문학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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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최인석

소설가&희곡및시나리오 작가
 
1953년 전북 남원 출생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86년 월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며 소설 창작 시작
저서로 장편소설 <새떼> <안에서 바깥에서> <아름다운 나의 귀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소설집 <인형 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한 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서커스 서커스> <목숨의 기억>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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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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