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함께 읽을래]『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 작성일 2013-10-15
  • 조회수 957

[함께 읽을래]




『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 심윤경, 『 사랑이 채우다』(문학동네, 2013)



노대원



book-love


우리는 자주 소설의 이야기와 인물에,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사유에, 세계에 대한 폭넓은 시야에 감동 받습니다. 여기서 감동이란 말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이야기와 인물에 깊이 공감한 뒤의 정서적 상태를 일컫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작가는 신이 아니며, 소설은 무오류 - 무결점의 경전이 아닙니다. 소설은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설과 논쟁하거나 소설의 인물들이 못 다한 생각과 말들을 독자가 대신 해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 읽기란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독자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즐거운, 그리고 끝없는 대화와 향연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때로 소설에 쓰인 이야기와 주인공과 그 세계관에 대해 반발해가면서 읽거나 골똘히 고민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유익한 문학 체험이 됩니다. 소설을 읽는 방법과 태도는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공감하며 읽기와 비판적인 읽기는 가장 기본적인 읽기 방법입니다. 사실 공감과 비판은 읽기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대화가 대화다운 것이 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하는 핵심 요소일 것입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화이부동(和而不同)하기 위한 연습이 바로 소설 읽기입니다. 심윤경의 장편소설 『 사랑이 채우다 』는 대중적인 흥미를 만족시킬 만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몇 가지 비판적인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그 연습에 꽤 괜찮은 대상으로 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 역시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단순한 오락적 읽기에서 그치지 않도록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그 생각의 산물입니다.



연작 소설


『사랑이 채우다 』는 연작 장편소설입니다. 연작 소설이란 말 그대로 개별 작품을 완결된 것으로 보고 독자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인물 - 이야기 - 배경 - 주제 가운데 특정 요소를 공유하는 일련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기에 전체 이야기를 연속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연작 소설을 이루는 개별 작품마다 이야기는 물론, 간혹 인물이나 배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윤경 작가는『 사랑이 달리다 』(2012, 문학동네)에 이어 『사랑이 채우다 』에서도 설정은 전부 그대로 두고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작가가 할 말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편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이야기에 그만큼 애착을, 또는 깊은 애증의 감정을 가진 것이라고.
작가는 실제로 『작가의 말』에서 어느 독자가 제기한 『 사랑이 달리다 』에 대한 불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편이 지나치게 해피엔딩이었기에 인물들이 겪게 될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기로 작가는 다짐합니다. 하지만 이 연작 소설의 주인공인 ‘혜나’는 그런 작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달렸다고, 작가는 고백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작가가 창조해낸 가공의 인격체이지만 작가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고, 어느 소설 이론가가 주장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주장을 따르면, 작가와 주인공 역시 독자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관계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과 인물들은 제멋대로라 대화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철든다는 것


정말로, 『 사랑이 달리다 』와 “우리 집은 걱정거리가 언제나 삼천리 강산을 덮었다. 아빠와 작은 오빠와 남편, 내 남자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 뱃속의 잔멸치까지 누구 하나 골칫덩이 아닌 인물이 없었다.”(『 사랑이 채우다 』의 주인공 혜나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제멋대로’ 사고뭉치입니다. 혜나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우리 집은 걱정거리가 언제나 삼천리 강산을 덮었다. 아빠와 작은 오빠와 남편, 내 남자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 뱃속의 잔멸치까지 누구 하나 골칫덩이 아닌 인물이 없었다.”(『 사랑이 채우다 』, 134쪽) 이 연작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콩가루 집안 이야기입니다. 혜나의 아버지는 트럭운전사로 시작해서 사업에 성공한 부자인데 늦바람이 불어 이른바 황혼 이혼을 하고 젊은 여자와 결혼합니다. 혜나의 작은오빠는 늘 사고를 치는 바람에 수십억대의 빚을 지고 있고, 큰오빠 부부는 돈독이 오른 듯한 속물입니다. 주인공인 서른아홉의 혜나 역시 결혼했으면서도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난 사이에 산부인과 의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주인공과 이야기만 두고 보면 이 연작은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꽃띠문학(칙릿chick-lit)’의 기혼 여성 버전에 가깝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청소년 독자와 함께 읽는 소설로 적합한지 고민했습니다. 모범적인 삶만 소설로 쓰일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를 권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요. 이 글의 첫머리에서 공감과 비판을 모두 권하고 있는 것은 실은 그래서입니다. 과장된 캐릭터들의 유쾌한 난장(亂場)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못나고 때로는 못된 인물들의 매력을 십분 인정한다 해도 그들의 세계관이나 가치, 행동 들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의미에서의) 이중적인 태도야말로 소설과의, 소설 인물과의 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혜나의 고백처럼 혜나와 오빠들은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철없이 어린아이처럼 살았습니다. “삼 년 전까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살았어요. 나는 공부할 필요도, 일할 필요도 없었어요. 나는 아빠 딸이었으니까요. 돈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사랑도 지천이었어요.”(『 사랑이 달리다 』, 346쪽)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사랑과 돈벌이는 이혼과 혼외 연애, 금융사기 등의 형태로, 다시 말해 철저히 어른들의 세계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소재들은 ‘철든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재가 됩니다. 정말로, 철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이치에 길들여지는 것? 제도와 관습에 순응하게 되는 것?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철든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해 성찰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이 소설의 인물들의 ‘철없음’은 질풍노도의 일탈과 좌충우돌하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어린아이처럼 살아왔다는 혜나의 회고적 고백은 역설적으로 성장의 한 순간을 보여줍니다.



돈과 교육


이 소설의 인물들이 어른스럽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돈을 아버지에게 의존했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기본은 스스로를 책임을 진다는 것, 특히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다만 생물학적인 나이가 성년이고 돈 버는 재주를 갖추었을 뿐, 어떤 내적인 어른스러움의 덕목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의 취직이 어려운 사회가 된 지 오래라 경제적 독립을 이유로 어른다움을 따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려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다운 어른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네요. 어쨌거나, 이 소설의 인물들은 부유한 집안 환경 때문에 돈에 대한 현실 감각이 보통 사람들과 무척 다릅니다. 혜나의 작은오빠는 수십 억대의 사기를 치고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태평스럽고, 혜나의 큰오빠는 가족들에게도 좀스럽고 극도로 돈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들이 가진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과 별다른 것이라 말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기에 돈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절실합니다. 더욱이 돈과 행복을 거의 등가로 여기는 이 천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에 대한 교육 역시 가장 절실한 투자입니다. 이 사회의 과열된 교육열은 선비가 존경 받던 유교적 전통과 관련되지만, 사실은 부와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직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때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교육이란, 교육과정의 일부분이 아니라, 자주 교육의 참된 가치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기도 하는 ‘입시’라고 말해야 타당할 것입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랄까요. 어쨌든 입시는 부와 권력을 분배하고 정당화하는 제도입니다. 부와 권력을 상속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의 부모들은 입시-교육에 헌신적으로 ‘올인’합니다. 『 사랑이 채우다 』에서 고독한 유년을 보냈던 ‘정욱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 ‘전혜원’이 캐나다로 자녀 교육을 위해 떠난 것 역시 희비극적으로 이 사회의 세태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가 이들 가족을 생이별과 이혼으로 몰고 가게 하는 이유로 나오니까요.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맨얼굴입니다.



가족과 사랑


『 사랑이 달리다 』와 『 사랑이 채우다 』의 핵심 주제가 제목에서 지시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관심은 주로 결혼 바깥의 연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인물 내면의 섬세한 기록이나 세태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성찰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받기 쉬울 것입니다. 여기서 이 소설의 한계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인물에게 어떠한 도덕적 알리바이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인 척하기를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결혼한 여성인물의 자유와 욕망을 날것으로 긍정하는 미덕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의 사랑을 찾아나가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그 사랑 찾기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혹은 순진하게, 노인들을 예찬하는 데에서 끝날 것은 아니지요. 분명 이 소설에서 나오는 노인들은 부유한 자들이기에 그러한 적극적인 사랑 찾기 역시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해볼 만합니다. 이를테면, 최근 ‘삼포세대’니 ‘건어물녀’니 ‘초식남’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젊은이들의 경제적인 궁핍과 연애의 곤궁이 모종의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 역시 돈과 무관한 일은 아니라는 꽤 서글픈 생각에 이르고 맙니다.
한편, 정욱연의 딸 ‘희서’의 내면 풍경은 이 연작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섬세한 결을 지녔습니다. 어쩌면 희서의 관점으로 서술되는 이 대목이야말로 이 연작 소설의 순금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붕괴를 대면하는 청소년의 혼란스럽고 예민하고 우울한 마음의 풍경이 진지한 어조로 그려집니다. 폭력으로 뒤범벅된 정욱연의 불행한 유년기가 과장과 유머가 섞인 데 비해 희서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이 대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희서는 가족의 불행을 온몸으로 겪지만 냉정과 직관으로 그 상황을 통과해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희서는 이 연작 소설의 등장인물 가운데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러운 성격의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 끝나고서도 상상의 시공간에서 희서는 당당하게 살아나갈 것 같습니다. 희서의 냉정과 당당함은 서른아홉의 혜나가 마흔이 되어가면서 잃지 않는 어떤 명랑함과 좋은 짝으로 보입니다.
혜나는 아버지의 외도 탓에 불행을 느끼지만 스스로도 외도를 통해 결혼 제도의 바깥으로 탈출하는 이중적인 운명을 온몸으로 부딪혀나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과 선택을 밀고 나가지만, 이와 더불어 자신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욕망과 사회 제도와의 관계를 성찰해나가는 인물입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남편, 결혼, 부부,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을, 나는 정욱연과 바람이 난 뒤에야 깨달았다. 일상적이고 흔해빠진 그 단어들이 너무 일상적이라서 더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는 것도 알았다. 제도의 테두리 안에 안온하게 머문 사람들은 그 아픔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 채우다 』, 178쪽)
혜나가 새터민(탈북자)인 최영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그녀가 경제적 위기에 빠진 작은오빠를 돕는 것과는 다르게,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돕는 일입니다.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혜나가 윤리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스스로를 성찰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혜나의 선택과 삶에 대해 저마다 도덕적으로 다른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그녀의 삶 앞에서 당당해지려는 노력에 대해서만큼은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설에 대단원에 이르러 혜나는 “삶을 즐기고 너 자신을 사랑해”(『 사랑이 채우다 』, 279쪽)라고 노래 부르며 욕망과 사랑의 모토(motto)이자 삶의 모터(motor)를 작동시킵니다. 저 또한 소설책의 페이지를 닫으며 기원합니다, 그 모토와 모터가 멈추질 않기를…….




《글틴 웹진》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