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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서 괴작까지 7] 우리를 멈추게 하는

  • 작성일 2013-11-15
  • 조회수 502


[영화 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7]



우리를 멈추게 하는


정세랑(소설가)




라디오에서 틀어준 오래된 노래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노래가 끝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아본 사람에게는, 그런 노래 같은 영화들도 분명 몇 편 있을 것이다. 뭘 하고 있었든 멈추고 머물게 하는 영화들 말이다. 어떤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너무 소중해서 잠시 스쳐가는 화면만으로도 스톱 모션이 걸리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멈춰서, 보고 또 본 영화를 중간부터 다시 본다.
나에게는 그런 영화가 「첨밀밀」이다. 여명과 장만옥이 다른 영화에 나올 때도 늘 「첨밀밀」을 떠올리게 된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라, 엄마는 남동생을 임신했을 때 화장대에 여명 사진을 붙여놓고 태교를 하셨다. 뭐 별로 닮지 않은 녀석이 나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침대 밑의 상자들을 정리하니 여명 스티커가 가득 나오기도 했다. 지금처럼 이미지 검색이 편해지기 전에는 배우들의 사진이나 스티커를 참 많이 팔았던 것 같다. 이상한 입체감을 부여하던 유광 사진들이 기다란 비닐 포켓에 든 채 줄줄이 걸려 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초상권도 저작권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판 것이었겠지만 이제 와선 보물이 되고 말았다. 「첨밀밀」의 영상미도 영상미지만 등려군의 노래는 번안이 될 정도로 인기였었는데, 노래 한 대목으로 영화 전체가 되살아난다. 그것은 마치 두 주인공이 뉴욕 길거리 TV에서 멈춰 선 것과도 같은 효과를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전염시킨다. 그런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가슴 저리게 하면서 만족스러워하는 이들은 어쩌면 좀 가학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싱글즈」도 언제나 그립다. 러브홀릭의 「놀러 와」가 주제곡이었는데 귀여운 어깨춤을 추던 네 주인공은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2003년의 영화라니,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장진영이 연기한 나난 캐릭터의 그 상큼한 머리를 따라하다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머리를 말아 먹었을까? 장진영이, 그 예쁜 배우가 죽어서 그리운 것은 아니다. 장진영은 아주 발랄한 역할을 할 때도 어쩐지 좀 그리운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레스가 엄청 어울리는 배우였다. 나는 2004년 잡지에 실린, 녹색의 근사한 중국풍 드레스를 입은 장진영 사진을 보고 ‘장만옥만큼 근사하네!’ 하고 생각했던 게 생생하다. 멋진 배우들이 잔뜩 나온 정말이지 감각적인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나날을 세련되게 포착해냈다. 스무 살에 그 영화를 봤던 내가 딱 서른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사랑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두려워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나이여서. 영화가 내게 주었던 위안을 지금 글틴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엉뚱한 걸 그리워하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 「카모메 식당」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가본 적도 없는 핀란드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하얀 밤, 정갈하고 환한 가게, 여행하고 머무는 다정한 사람들에 대한 이 섬세한 영화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마저 이렇게까지 사랑받으리라는 건 몰랐으리라 싶을 정도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거리에서도 카모메라는 말이 들어간 식당이며 인테리어 숍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렇구나, 좋은 영화는 결국 간판이 되고 상호가 되는구나, 수많은 클래식 영화들이 레스토랑이 되고 술집이 되고 옷가게가 되었구나, 새삼 생각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반복을 너무나 재치 있게 활용하는데, 최근작인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그런 점이 좋았다. 천연덕스러운 연기의 가타기리 하이리는 「카모메 식당」의 뒷이야기와 더불어 당시 핀란드를 여행했던 기억을 「나의 핀란드 여행」이란 책으로 펴냈는데 이 책이 또 물건이다. 먹고 있던 음식을 뿜을 만큼 재밌다. 배우란 건 아무리 대본이 주어진다 해도 결국 자기 내면의 어떤 것을 밖으로 비춰내는 존재구나 싶다.
어째서인지 그리운 영화들을 꼽으니 한중일 영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편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동아시아의 정서가 통하는 데가 있어서일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삼국의 정치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또 증오심을 부추기는데, 문화인들을 서로를 흠모하고 찬탄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해답은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고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맡겨라 싶은 것이다. 물론 어떤 일도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만큼은 공통의 것을 그리워하는 우정에 가 멈춘다. 이국의 배우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이국의 작가들을 만나 그 나라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건 분명 이국적이면서도 그리운 일일 것이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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