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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무도_15회]1인 장르는 어떻게 가능한가

  • 작성일 2013-11-15
  • 조회수 620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1인 장르는 어떻게 가능한가

-톰 클랜시와 테크노 스릴러



좌백




001

톰 클랜시(Thomas Leo Clancy Jr. 1947.4.12 ~ 2013. 10. 1)


지난 1일 미국의 작가 톰 클랜시(본명 토머스 리오 클랜시 주니어, 1947년 4월 12일 ~ 2013년 10월 1일)가 세상을 떠났다. 테크노 스릴러의 창시자이자 대가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작가로 살아온 66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법정 스릴러의 존 그리샴, 메디컬 스릴러의 로빈 쿡 등과 함께 80년대에 한국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위에 거명한 여러 작가와 더불어 1인 장르를 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즉, 혼자서 하나의 장르를 만들고 혼자서 그 장르의 소설을 써온 작가다. 다른 작가들은 감히 그를 흉내 낼 엄두도 못 냈고, 혹시 흉내를 냈어도 그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으로써 1인 장르는 성립된다.
원래 톰 클랜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험 영업자로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1976년의 어느 날 그는 스웨덴으로 망명을 시도한 소련 잠수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거기서 그는 자유를 찾아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소련 잠수함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실제로 일어난 것과 달리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의 모티브를 얻게 된 듯하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84년 바로 그런 내용을 담은 소설 『붉은10월』을 발표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이 작품은 또한 테크노 스릴러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한데, 스릴러란 추리소설의 현대적 한 발전 형태로, 따라서 테크노 스릴러란 첨단과학이나 전문기술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추리소설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말하자면 법정 스릴러란 법률적인 문제를 소재로 전개하는 추리소설이고, 메디컬 스릴러란 의학적인 문제를 소재로 전개되는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톰 클랜시는 테크노 스릴러의 특징인 첨단과학과 전문기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밀리터리, 즉 군사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그렇다. 그래서 그를 밀리터리 장르의 작가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주요 관심사가 과거 미, 소의 냉전시대를 전후로 한 군사적 대치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는 주로 스파이 활동이며 국지적인 충돌, 때로는 전면적인 전쟁이나 테러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을 다루는 미국의 정부기관인 CIA, FBI, 그리고 국방성과 백악관에까지 조언을 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잭 라이언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잭 라이언은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역사학 교수로 시작해서 CIA, 즉 미국 중앙정보부의 정보 분석가를 거쳐 부국장, 국장으로 출세하며 마침내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는 인물이다. 이러한 과정이 각각 그 시기의 중요한 국제적 문제들을 둘러싸고 그려지기 때문에 독자는 한 인물의 영웅담, 혹은 출세 이야기를 읽는 듯한 재미에 국제정세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는 재미, 나아가 007처럼 스파이가 활약하는 이야기와 전쟁이야기까지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잭 라이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연대기처럼 소개하기로 한다.잭 라이언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실제 작품 발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앞에 소개한 『붉은10월』(1984)이다. 이 소설에서 잭 라이언은 CIA의 요원으로 등장해 소련에서 망명하는 잠수함 ‘붉은10월호’에 관련된 일을 수행한다. 이후 작가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평범한 역사교수였던 잭 라이언이 CIA 요원이 되는 과정을, 영국에 대한 테러전을 펼치고 있던 IRA, 즉 아일랜드 공화국군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그리고 있는 『패트리어트 게임』(1987)을 쓴다. 그 다음해인 1988년에는 붉은10월호 사건 이후 소련 고위층 속에 숨어있는 스파이를 구출하는 내용인 『크레믈린의 추기경』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잭 라이언과 더불어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CIA의 첩보원 존 클라크도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후로 여러 작품을 통해 톰 클랜시는 잭 라이언이 CIA 내부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요원으로, 존 클라크는 CIA의 명령을 받아 직접 작전에 뛰어들어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1993년에는 다시 한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존 클라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첩보원이 되었는가를 그린 『복수』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마약 판매상을 처단하며 마피아와 전쟁을 벌이는 주인공 존 클라크를 추격하는 경찰로 잭 라이언의 아버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프리퀄, 즉 어떤 작품의 이전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로 『복수』가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 자체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제 작품 속의 시간적 배경을 순서로 톰 클랜시의 소설들을 나열해 보자.


『복수』(1993) - 잭 라이언 시리즈에서 큰 역할을 하는 CIA 첩보원 존 클라크가 애인을 살해한 마약 판매상, 나아가 그 배후에 있는 마피아와 부패한 경찰들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잭 라이언의 아버지가 경찰로 등장한다.



004

『패트리어트 게임』,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패트리어트 게임』(1987) - 잭 라이언이 CIA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 사건을 다룬다. 「애국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판본도 있다. 평범한 역사 교수인 잭 라이언이 영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IRA의 테러 공격을 받는 영국 황태자 부부를 구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마침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대 테러전쟁에 뛰어들어 CIA에 합류하게 되는 이야기다. 필립 노이스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002-3

붉은 10월』, 숀 코네리가 라미우스 함장, 알렉 볼드윈이 잭 라이언 역할을 맡았다.
알렉 볼드윈이 꽃미남이던 시절.


『붉은10월』(1984) - 소련 잠수함의 망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 이 다음 작품인 『크레믈린의 추기경』에 등장하는 소련 고위층 속의 스파이인 암호명 ‘추기경’이 여기에서 먼저 등장한다. 자국의 핵미사일 잠수함이 미국으로 망명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련은 이 잠수함이 미국 해안의 핵미사일 공격을 하려 한다는 역정보를 미국에 흘려 미국의 힘으로 침몰시키려 하는데, CIA 정보 분석관 잭 라이언은 잠수함을 지휘하는 라미우스 함장의 경력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망명 의사를 알아내고 소련의 추격으로부터 잠수함을 빼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존 맥티어난 감독, 알렉 볼드윈, 숀 코네리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크레믈린의 추기경』(1988) - 소련 내부의 고위층 속에 있는 정보 제공자인 추기경을 미국 대통령의 수행원으로 모스크바에 간 잭 라이언이 국외로 빼돌리는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활약으로 소련의 국민적 영웅인 추기경이 왜 나라의 극비 정보를 미국에 넘기는 스파이가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과 서술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구 소련 정치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005

『긴급명령』, 해리슨 포드가 이번에도 잭 라이언 역할을 맡았다.


『긴급명령』(1989) - 콜롬비아에서 마약상들과 전쟁을 벌이는 특수부대를 구출하는 이야기, 존 클라크가 특수부대를 교육시키는 교관으로 등장하고, 이후 존 클라크의 파트너가 되고 나중에는 그 딸과 결혼하여 사위까지 되는 딩 차베즈가 특수부대원으로 활약한다. 잭 라이언은 이 작전이 진행되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직접 헬기를 타고 특수부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필립 노이스 감독이 해리슨 포드와 윌렘 데포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006
공포의 총합』, 911 직후에 개봉되었기 때문에 당시 미국민의 감정을 더 격화시키지 않을 목적으로 원래 아랍테러리스트가 테러를 벌이는 내용이었지만 신나치주의자가 그러는 것으로 바꾸었다.


『공포의 총합』(1991) -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 잠입해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경기장에 핵폭탄을 설치한 후 터뜨림으로써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음모를 잭 라이언이 해결하는 이야기다. 테러리스트들이 제작한 핵폭탄이 과거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핵폭탄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전문서적 몇 권과 안경렌즈를 가공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 수준만으로도 핵폭탄이 제작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작가는 현대 세계가 직면해 있는 핵무기에 의한 위험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2002년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필 알덴 로빈슨 감독, 밴 애플렉,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제작됐다.


『적과 동지』(1994) - 시리즈 전편인 『공포의 총합』에서 대통령과 싸워 퇴직한 잭 라이언이 CIA부국장으로 재입성했다가 국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국장으로 승진한 이후 비행기를 이용한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각료들이 전멸하자 대통령의 지위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 소련의 패망으로 냉전시대는 종식되었지만 국제관계는 더욱 복잡해져서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제무역을 둘러싸고 궁지에 몰린 일본이 미국을 도발한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톰 클랜시는 테러진압부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FPS(1인칭 슈팅) 게임 『레인보우 식스』와 사이버 테러를 다룬 쪽으로 관심을 돌려서 여러 작품들을 내는 한편 잭 라이언이 등장하는 소설 또한 여전히 써서 출간했다.


『행정명령』(1996) - 대통령이 된 잭 라이언이 국제적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내부적으로는 그의 대통령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격에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는 위기를 겪는다.



007

『레인보우 식스』 게임 타이틀.


『레인보우 식스』(1998) - 존 클라크와 딩 차베즈가 테러진압부대인 레인보우식스를 만들고 훈련시켜 활약하는 이야기. 잭 라이언은 이들을 후원하는 미국 대통령으로 나온다. 여기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부각되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을 경고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나 분리독립주의자도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으며, 그 수단 역시 전통적인 폭탄이나 전쟁이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008

『베어 & 드래곤』 표지.


『베어 & 드래곤』(2000) - 중국과 러시아의 전쟁을 그리고 있지만 잭 라이언이 미국 대통령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제적으로는 개방이 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냉전시대의 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영토인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황금과 석유를 노리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냉전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을 그림으로써 국제적 위기가 이데올로기, 즉 이념의 갈등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갈등이 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이후로도 작가는 여러 작품들을 써내지만 잭 라이언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작가가 타계함으로써 이 소설이 잭 라이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톰 클랜시는 백악관의 전략 자문으로 활동할 정도로 탁월한 전략분석가의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로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재능이 있었고, 그걸 작품으로 잘 풀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첩보 작전과 국제 분쟁의 전략적 상황에 대한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재미의 대상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인간적 면모들, 나아가 미래에 대한 고민과 제언들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단순한 전쟁놀이의 묘사에 그치는 여타의 밀러터리 소설, 혹은 전쟁소설과 차별화된 가치를 담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스릴러 소설은, 특히 이런 첨단과학과 전문기술분야를 다루는 장르의 소설은 자칫 그 분야에 대한 기술적 묘사에 치중해 소설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고, 그 가장 중심적인 관심사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을 놓치기 쉬운데 톰 클랜시의 소설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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