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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서 괴작까지12] 설탕 코팅이 녹는 동안에

  • 작성일 2014-04-16
  • 조회수 358


[영화 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12]



설탕 코팅이 녹는 동안에


정세랑(소설가)




서구에서만 끔찍했던 게 아니다. 우리도 얼마나 끔찍한 20세기를 지나왔는가. 지독하게 끔찍한 이야기들은 종종 코팅이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만약에 십몇 년 전 <로얄 테넌바움>을 보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기네스 펠트로가 열연한 ‘마고’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단발머리, 그 아이라이너, 그 표정. 아직도 작가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마고를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래 좋아해왔기에, 웨스 앤더슨을 이야기할 때 미장센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조금 속상할 것 같다. 아주 독특하고 뛰어난 시각적 연출을 하는 감독이지만, 덕분에 ‘눈만 예쁘고 이야기는 심심하다’든가 ‘취향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끝’이라든가 오해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한 그의 영화들은 이를테면 입안에서 굴리기엔 조금 큰 사탕 비슷하다. 성급하게 깨물지 않고 조금씩 녹여야 진짜 맛을 알 수 있는. 종종 그 안엔 아주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어렵게 아물었지만 이상하게 유쾌해진 상처,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 그리고 나쁘면서 좋은 어른,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워서 계속 바라보게 되는 세계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맛으로 기다리고 있다. 완벽하게 갖춰 입은 옷 말고 그 조그만 머리에 든 세계관을 봐달라고 내가 대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그렇다. 한때는 화려하고 우아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가 이제는 비루해져버린 유럽의 호텔을 배경으로 로비 보이였던 호텔의 주인이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세기의 어떤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인물인 옛 지배인 구스타브가 연인이자 대부호였던 마담 D의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 구스타브를 돕기 위해 로비 보이 제로는 종횡무진 활약하는데 위트 있는 대사와 그림 같은 영화 미술 덕에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애써 탈옥을 한 구스타브가 마중을 나온 제로에게 향수를 들고 왔느냐고 묻는 장면이었다. 향수가 없다고 하자 구스타브는 폭발하고 마는데, 이런 구스타브의 허영은 답답하기보다는 애잔함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구스타브는 이런 사람인 것이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목격하고 항의할 때에 “그런 옳지 못한 일은 안 돼!”가 아니라 “그런 아름답지 않은 일은 안 돼!”라고 외치는 게 어울리는 사람. 물론 옳지 못한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은 분명 다르지만 아름답지 못한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예민하게 밀고 나가기도 한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다보면 폭력적인 세계에 적응을 좀처럼 못하는 애틋한 인물들을 가득 발견하게 된다. 전작 <문라이즈 킹덤>은 중간부터 내내 울었는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끝에 울컥했다. 조금 울었지만 그 이후로 마음은 계속 울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20세기의 끔찍함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너무 끔찍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감당이 안 되어서 핑크 박스에 베이비 블루 리본으로 묶어내는 방식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그러므로 웨스 앤더슨에 대해 ‘예쁘기만 하다’고 말한다면,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잊었을 확률이 높다. 서구에서만 끔찍했던 게 아니다. 우리도 얼마나 끔찍한 20세기를 지나왔는가. 지독하게 끔찍한 이야기들은 종종 코팅이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는 그러한 코팅의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는 영화다.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인 P.L. 트래버스가 디즈니와 영화화 계약을 위해 런던에서 LA로 향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계약을 하지 않으면 집이 넘어갈 위기이면서도 트래버스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고 날카로운데, 사실 <메리 포핀스>는 상당 부분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캐릭터가 디즈니의 손에 상업화될까봐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밝지만은 않다는 부분이다. 정말로 은행원이었던 트래버스의 아버지는 황량한 호주 벌판에 환상을 입힐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결국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상처를 주고 말았다. 결국 이 영화는 트래버스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참담한 현실이 어떻게 환상적인 이야기가 되는지 그 한 겹 한 겹 코팅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톰 행크스가 열연한 월트 디즈니 역시 눈 속에서 기절할 때까지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이 왜 쥐가 나오는 만화 영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해피엔딩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주 호탕하고 호감 가는 얼굴로 전한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이다. 동화책이 원작이라는데, 동화책이 자주 그러듯이 가장 절실한 진실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초등학교도 너무 늦다. 가장 중요한 시민적 자질은 가정과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 하고 말하면 정말 마음이 덜컹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어른과 아이 그리고 그 사이 나이의 모두가 봐야 할 작품이다. 증오와 오해로 얼룩진 두 종, 곰과 생쥐가 친구가 되기 위해 서로에게 “나는 네 꿈속의 괴물이 아니야” 하고 용기 있게 말할 때 세계는 변하기 시작한다. 어네스트는 음악가이고 셀레스틴은 화가인 것도 미소 짓게 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우정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예술가들이니까. 편견으로 세워진 법정이 곰의 도시와 생쥐의 도시에서 동시에 무너져 내릴 때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진실은 가끔 너무 농도가 진하거나 혹독해서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코팅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해해야 작품을 대할 때 코팅이 녹아내리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사랑스럽다고 해서, 달콤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세랑 (소설가)kim-hae-jun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역사교육학 전공. 2010년 판타스틱과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발간.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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