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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클럽

  • 작성일 2022-10-28
  • 조회수 75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크라잉 클럽




이언주






뭐가 불만인지 장인인 사장은 아침부터 사정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당장 때려치우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느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마리오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무실 분위기를 살피고는 다음에 오겠다며 돌아 나갔다. 그는 원룸을 계약하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나는 전화기만 집어 들고 얼른 그를 따라 나왔다.
크라잉 클럽 알아요?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내 표정을 살피던 마리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크라잉을 클라이밍으로 알아들은 나는 암벽등반은 언제부터 했는지 물었다.
난징루에서 우사모 정모 있어요.
우사모?
그건 또 뭐냐고 묻자 마리오는 우는 사람들 모임이라며 주먹으로 눈 주위를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웃고 말았다. 칠레 이민 3세인 그는 영어와 중국어 짧은 한국어를 섞어 되는 대로 말을 구사했다.


나는 이른 퇴근을 하고 난징루로 갔다. 고층 빌딩 사이로 난 좁은 길에 카페와 와인 바가 줄지어 있었다. 개화기 검은 벽돌집으로 이어진 골목은 집마다 난간이나 창턱을 장식한 모습이 엇비슷했다. 후통이라 불리는 미로 같은 골목에서 마리오가 말한 그곳이 어딘지 찾기 어려웠다. 벽이나 유리창에 네온이 켜지기 시작했다. 지나온 길을 몇 발짝 뒷걸음쳤다. ‘크라잉 클럽’ 이라고 쓰인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입구엔 브레이크 타임 팻말이 걸려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손을 붙이고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안쪽에서 저녁 타임을 준비하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른 천으로 유리컵을 닦던 여자가 턱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홀 안쪽은 보기보다 넓었다. 나는 홀을 지나 스탠드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왁자한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자가 손님들과 나누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일인용 공간은 안락의자가 몸을 푹 감쌌고 작은 무대 뒤로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오픈 시간이 되었는지 실내조명이 바뀌고 스크린이 켜졌다. 화면에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야생 체험 영상이 음을 소거한 채 흘러갔다. 굶주린 대원들이 닭을 발견하고 쫓고 있었다. 살집 없는 닭은 사람을 놀리듯 날렵하게 수풀과 돌무더기 사이로 피해 다녔다. 화면 속에서 탈진한 대원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그들의 표정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대원 중 한 사람이 숨어 있는 닭을 찾아냈다. 궁지에 몰린 닭은 엉겁결에 바다로 날아들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밴드 소리가 왕왕거렸다. 누군가 무대로 나와 코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몸을 흔들어 댔다. 나는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


지난가을 아내인 메이는 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아 몬트리올로 떠났다. 세 살 난 아들을 장모에게 맡기고 잠깐 다녀올 거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캐나다에 가고 몇 달을 보낸 메이는 현지에서 교환교수 신청을 했다.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나는 반대하지 못했다.
며칠 전 아내는 중요한 책을 잃어버렸다며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띵동, 우체국 안에서 번호 바뀌는 소리가 울렸다. 입구를 지키던 보안요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업무 속도가 느려 다음 벨이 울리기까지 27분이나 걸렸다.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일을 끝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알은체했다. 마스크를 내린 마리오가 웃었다. 마리오가 옆자리에 앉으려 하자 보안요원이 한 칸 띄워 앉으라고 했다. 벽시계가 여섯 시가 될 때까지 두 사람은 번호판만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업 종료 벨이 울리고, 접수번호를 받아 내일 다시 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어쩌겠냐는 듯이 마리오가 어깨를 들썩하고 일어섰다.
비가 지나간 가로수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상하이에서는 겨우내 푸르던 가로수가 새싹이 나면서 묵은 잎이 떨어진다. 발목까지 빠지는 벤저민 낙엽을 밟으며 나는 마리오에게 한국의 사계절을 이야기했다. 마리오는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자랐다는 그는 이곳이 춥지 않아 좋다고 했다. 길 건너편에 마라탕 간판이 보였다. 눈짓으로 마라탕 집을 가리키자 그는 커이, 하고 대답했다.
마리오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의자에 얹힌 택배 상자를 잡았다. 국제 특송으로 물건을 보내다 보면 매번 손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컨테이너로 칠레산 포도주를 들여오고, 상하이에서 의류와 전자제품을 실어 보내는 일을 했다. 마리오는 마라탕 때문에 중국을 떠날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가 물로 입을 헹구고 시자회이 근처 월세가 더 낮은 원룸은 없는지 물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친구의 포도 컨테이너가 석 달째 부두에 묶여 있다고 했다. 자신의 중개 수수료를 낮춰 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얼마 전에도 남미에서 온 친구 두 명을 소개했다. 나는 마리오에게 오늘 저녁 시간이 어떤지 물었다. 같이 술이나 한잔할 생각이었다. 마리오는 우사모로 갈 거라고 했다.
아, 그 크라잉 클럽.
며칠 전에 나도 그곳엘 다녀왔다고 하자 마리오는 웃으며 함께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좀 걷기로 했다. 혼잡한 거리는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사람들과 몸이 부딪쳤다. 소음 때문에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띄엄띄엄 이어지는 말로 그는 88년생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삼촌과 함께 오퍼를 했고, 독립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 카페 거리를 지나며 대화는 자연스럽게 우사모로 흘러갔다. 마리오는 내게 그곳의 느낌이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와인보다는 맥주가 더 어울리는 곳 같더라고 대답했다.
노 노, 칠레 와인 좋아요.
마리오가 정색하며 손을 저었다.
크라잉 클럽은 지난번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미러볼 조명이 돌아가고 밴드 소리로 스피커가 쿵쿵거렸다. 스탠드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마리오를 향해 손짓했다. 마리오가 둠칫거리며 내 팔을 끌었다. 닉과 자하르에게 주먹인사를 하고 함께 있던 나를 소개했다. 여자는 바에 두 손을 짚고 서서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몸을 숙였다 일으키는 여자의 가슴골이 슬쩍슬쩍 드러났다. 마리오는 순식간에 흥이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커진 그가 바텐더에게 마이크를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사회자처럼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와인을 마시며 마리오를 지켜보았다. 남미로 코이카 봉사활동을 다녀온 선배가 그곳 사람들은 몸이 비트박스라고 했다. 날 때부터 흥으로 차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대형 스크린에는 현란한 무대 의상을 한 여가수의 얼굴이 커다랗게 잡혔다.
아, 모르겠고. 아모르 파뤼.
마리오의 과장된 몸짓에 휘파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볼륨을 좀 더 키워 줄래요.
여자가 안쪽에 있는 바텐더에게 손짓했다. 사이키 조명에 볼륨을 높인 밴드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저녁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신기하게도 실내는 평온한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회원들은 음료와 다과를 가지고 빈자리를 찾았다. 마리오는 내게 알아서 편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파티션 하나를 차지한 나는 타이와 마스크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자리 표시등이 모두 사라지고 조명이 꺼졌다.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던져졌다. 한참 걷고 웃었던 터라 졸음이 몰려왔다.
파티션 벽에 설치된 모니터가 켜졌다. 구두 소리가 나고 여자가 무대 가운데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 있는 헤드셋을 쓰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무대 오른쪽에서 핀 조명을 받은 여자가 등받이 없는 높은 의자에 올라앉았다. 여자의 목선이 하얗게 빛났다. 길게 늘어진 검은색 시폰 원피스 자락 사이로 발목이 여린 꽃대처럼 보였다.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그게 뭐라고 수고했다는 말에 콧등이 시큰거렸다. 언젠가 로밍해 놓은 한국 휴대폰으로 내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지칠 때마다 나는 그 문자를 열어 보았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나는 모니터와 무대 위에 있는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고개를 약간 치켜든 여자는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둠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핀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실루엣이 조금씩 풀어져 형체가 뭉개지고 희끄무레해진 여자의 모습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헤드셋을 쓰고 있어 어두운 동굴에 혼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면 곧 다른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멍한 상태로 잠깐잠깐 졸았다.
열 시가 되자 실내는 다시 환해졌다. 개인 등이 켜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푹 쉬었다는 기분으로 몸이 개운했다. 자리를 정리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울음바다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런 반전도 나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 마리오는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위성방송으로 보는 뉴스는 서울이나 상하이나 하루가 그렇고 그랬다. 코미디 동영상을 찾았다. 웃기지 않는데도 연예인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휴대폰 신호음이 울렸다. 오픈 채팅방에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고독한 미식가 외에도 세 개의 오픈 채팅방에 가입했다. 일부러 장인 앞에서 실시간으로 쌓이는 붉은 숫자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고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채팅방은 하나같이 대화나 문자가 금지되었다.
고독한 조유리 방에 조유리가 대화를 시도하다가 강퇴당했다. 진짜 조유리라면 웃기는 일이다. 그녀가 다시 입장했다. 자신이 조유리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방장의 메시지가 떴다. 진실 찾기 게임으로 말이 없는 수다가 장난 아니었다. 언어가 사라진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라는 말인지. 스크롤 하지 않아도 화면이 쭉쭉 밀려 내려갔다. 있는 사람을 비워 내고 이름만 존재하는 궁정풍 사랑의 결말이 궁금했다. 마침내 조유리가 생방송에 출연했던 의상으로 침대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했다. 드디어 조유리가 조유리로 돌아왔다.
고독한 상담자 업로드 신호음이 울려 그 방으로 옮겨 갔다. 입장과 동시에 대화와 이모티콘을 금지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방장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짙은 스모키 화장에 두건을 쓴 사진은 크라잉 클럽에서 보았던 주인 여자였다.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나는 찬찬히 이미지를 훑어보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실루엣만 드러나게 찍은 흑백 사진들이었다. 이미지 아래로 #크라잉 클럽 #고독한 상담자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


메이와 나는 7년 전 처음 만났다. 상하이로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다가 건물을 향해 걸어오는 그녀를 무작정 따라갔다. 정장 차림에 백팩을 메고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중급반 회화 담당 교수였다. 나는 그녀의 눈에 띄기 위해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을 들었고, 3년을 연구실 앞에서 기다렸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무역회사에 입사한 후 메이에게 청혼했다. 부모를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는 그녀를 위해 상하이 지사 근무를 자원했다.
언젠가부터 메이는 부부가 함께 가야 하는 자리에 따라나서지 않았다. 상사의 부인들 가운데 아내에게 중국어를 배운 사람도 있었다. 그녀들은 메이에게 선생님이라면서도 자신을 사모님이라 부르게 했다. 자기들끼리 한국말로 나누면서 메이의 눈을 보고 웃었다. 웬만한 한국말을 알아듣는 메이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견뎠다. 본사 귀임 발령이 났지만, 임신과 출산 때문에 나는 주재 기간을 연장했다. 회사 규정상 귀임을 두 번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장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부동산 일을 함께하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주변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한마디씩 했다.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일 뿐이었다.
장인은 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했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우리는 서로가 이기적이라고 몰아붙이며 두 해를 보냈다. 외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는 나보다 조부모를 더 따랐다. 현도야 하고 내가 한국말로 이름을 부르면 뿌야오,라며 버둥거렸다.
뿌야오(不要). 부정과 거부를 드러내는 중국말이다.
침대에서 바라보는 회칠한 천장이 가슴 위로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거리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로 가득 찼다. 봉쇄령이 풀렸다고 해도 국경은 폐쇄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엄마가 혼자 서울에 있었지만, 한번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숨이 막혔다. 길 옆으로 프랑스 오동나무가 길게 이어졌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너울거리는 잎사귀 사이로 비쳐 드는 저물녘 햇살을 바라보았다. 우사모가 생각났다.
크라잉 클럽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어둑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스탠드에 기대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악이 없는데도 비트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다가 팔을 뻗고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굳이 감상을 묻는다면 별 미친놈이 다 있다는 정도였다. 십 분쯤 지나 여자가 들어왔다. 문에 걸린 팻말을 오픈으로 뒤집으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여자는 비파나무 가지로 와인 병을 쓸었다. 액막이 빗자루를 보고 나는 그녀가 중국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춤을 추던 남자가 등 뒤로 지나갔다. 오픈 채팅방 구독자라고 하자 여자는 정말요, 라며 엄지를 내밀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저요? 한국 사람이에요. 윤미오.
아, 하도 중국말을 잘하셔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사모에 아직 가입 안 하셨죠. 회원들은 저기 룸도 사용할 수 있는데.
여자가 하오쿠팡(好哭房)이라고 쓰인 방을 가리켰다. 혼자 울 수 있는 프라이빗 룸이라고 했다.
회원은 어느 정도?
오프라인으로 서른 명 남짓, 개인사업 하시는 분도 있고 주재원이나 유학생들도 가끔 와요. 전에는 서울에서 오시는 분도 많았는데….
아쉬운 듯 웃는 여자의 얼굴에 잡히는 잔주름 때문에 파운데이션이 들떠 보였다. 여자는 내가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말이 많아졌다.
나이 드신 사장님들이 여길 더 좋아해요.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잖아요. 웃기는 소리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애가 벙실벙실 웃고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람이 아프고 힘들 때만 눈물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좋든 나쁘든 어떤 감정도 쌓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야 숨통이 트이죠. 여긴 숨구멍 같은 곳이에요.
‘숨구멍’이라는 여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두꺼운 얼음판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까 그분은 영사님이세요. 가끔 이 시간 와서 혼자 춤추다가 가요. 몸으로 우는구나 싶어요.
그런 사람도 이런 데 와요?
영사라는 소리에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저녁을 크라잉 클럽에서 보내게 되었다. 문을 닫을 때까지 뭉그적거리고 있다 보면 윤미오는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밀크티를 내왔다. 뜨거운 차가 목을 훑고 내려가면 시원한 감이 느껴졌다. 차를 마셔야 하루가 끝난다는 그녀의 밀크티는 그녀만의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마시고부터 귀가는 더 늦어졌다. 아내의 랜선 잔소리가 시작하면 나는 와인 바 이야기를 했고, 고객 관리를 위한 업무의 연장이라고도 둘러댔다.
목요일 저녁에 있던 우사모 정모는 매일 밤 9시로 시간을 옮겼다. 그렇다 보니 개인 룸을 신청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어느 날인가부터 신청자 가운데 추첨으로 한 시간씩 방을 쓰기로 했다. 나도 몇 번이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룸은 약속한 시각에서 십 분 이상 지체하면 다음부터 신청할 수 없는 패널티가 주어졌다. 한번은 예정된 시간에 불이 꺼지고 한참 지났는데 들어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윤미오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안에서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났다. 열어 놓은 방문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왜 그 사람이 마리오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외근을 나갔다가 크라잉 클럽으로 가는 길이었다. 뒤에서 마리오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보이지 않아 연락하려던 참이었다. 마리오는 부탁했던 원룸이 필요 없게 됐다고 미안해했다. 못 본 사이 조금 말랐고, 평소와 다르게 초조한 표정이었다.
어디 아팠어요?
광복이가 집을 나갔어요.
광복이?
새요, 내 동생요.
말끝을 흐리는 마리오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제야 나는 이사할 때 그가 안고 있던 새장이 떠올랐다. 공원에서 주워 길렀다는 거무칙칙한 구관조였다. 새는 니하오와 꽝쑤 두 마디만 할 줄 알았다. 환기를 시키려 열어 놓은 창틈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됐어요.
뭐가요.
광복이까지 데려갈 수 없거든요.
마리오는 손을 들어 목울대를 꾹 눌렀다. 마리오의 기다란 목에서 꾸억, 하고 시커먼 새의 대가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위로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졌다. 상하이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리고 우리는 크라잉 클럽을 향해 달렸다. 깨진 보도블록을 잘못 밟아 물이 튀어 올랐다. 웅덩이를 피해 한걸음 건너뛰며 여기는 도무지 제대로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마리오는 잊은 게 있다며 이마를 쳤다. 나중에 다시 보자며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마리오가 크라잉 클럽에 얼굴을 내민 것은 한 달쯤 지나서였다.
우기가 시작되고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우산의 물기를 털어 내고 크라잉 클럽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몸도 마음도 다 질척거리는 느낌이었다.
롱 타임 노 씨.
윤미오와 마주 앉아 있던 마리오가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나는 의자를 당겨 마리오 옆에 앉았다. 그는 어깨를 한번 들썩하고는 별일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리오씨가 다음 주에 돌아간다네요.
냅킨을 건네주며 윤미오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언제쯤 돌아와요?
내가 묻는 말에 마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 웃기죠. 세상이 난리인데 여긴 이렇게 멀쩡해요.
윤미오는 의논 반 푸념 반으로 와인 바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리오가 떠나는 일은 벌써 잊은 듯했다. 그녀는 나와 마리오를 번갈아 바라보며 스페셜 룸을 늘리면 어떨지 물었다. 우사모 회원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어 보이긴 했다. 개인 룸을 늘이려 해도 공사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손님이 들어와 윤미오는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완전히 떠나는 겁니까?
내 말에 마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오의 집은 계약기간이 아직 반년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물었다. 나는 안 될 거라고 대답했다. 집주인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두 달 월세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 트집 잡을 때가 많았다.
하던 일은 어떡하고….
직원이 하겠다고 해서 그냥 그러라고 했어요. 생각했던 금액의 십 퍼센트 받고. 그게 자기네 법이래. 그래도 잘 끝났어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그의 등을 두드리는 내 기분도 착잡해졌다. 한 자리에서 계속해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쓸쓸함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나더러 중국인이 다 되었다지만, 중국인에게 나는 한국인이다. 언젠가부터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졌다. 출근 도장을 찍듯이 와인 바를 들락거려도 허전함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


진샤 지구 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한동안 크라잉 클럽에 갈 여유도 없이 바빴다. 어느 날 민항구 공안국에서 전화가 왔다. 한광수에 대해 참고인 조사할 게 있다고 했다. 장닝구 원룸에서 외국인이 고독사한 사건 때문이었다. 공안은 한광수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나라는데 모르는 이름이었다. 주변에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총영사관 남 영사는 공안에 다녀오면 내게 전화나 한번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오의 한국 이름이 한광수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공안국에서 나오다가 윤미오에게 전화했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찾아가도 와인 바는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만 붙어 있었다. 라이브 채널도 열리지 않았다. 구락부 문이 닫혀 있는 동안 교민 사회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여사장이 단속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고, 구속되었다고도 했다.
하루하루가 덧없고 지루했다. 그러다 돌아보면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채 바퀴 돌리듯 일과를 보내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술집을 찾아다녔다. 아내와의 감정은 지도상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벌어지기만 했다. 낮에 메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맨정신으로 있을 때 보내는 최후의 통첩이었다.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이다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메이는 나더러 짐을 싸서 당장 캐나다로 오든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홧김에 갓길에 세워 둔 차를 발로 걷어찼다. 사이드미러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숨이 막혔다. 손바닥에 힘을 주고 목을 꾹 눌렀다. 언젠가 마리오의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던 검은 새의 대가리가 떠올랐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허리를 굽혀 사이드미러를 주워 들었다. 거울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작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나는 그 글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주위의 건물들과 빽빽한 간판들이 거울 속으로 거꾸로 쏟아져 들어왔다. 눈앞이 핑 돌아 가로수에 몸을 기대고 섰다.
그래서 어쩌라고.
가로수에서 말매미가 목이 터지라고 소리 내 울었다.


남 영사가 한번 만났으면 했다. 낮에 선약이 있다고 하자 그도 저녁이 좋겠다고 했다. 난징루 근처 한국 식당에서 약속을 잡았다. 남 영사는 길이 밀렸다며 이십 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그는 물수건을 펼쳐 손을 닦고 목 뒤까지 닦았다. 그날따라 많이 지쳐 보였다. 옆자리에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한 테이블에 끼어 앉아 있었다. 떡볶이와 분식을 종류대로 시켜 놓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아이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며 띄엄띄엄 말을 흉내 냈다. 남 영사가 가리키는 구석으로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떠나기 전에 술이나 한잔하자고요. 그동안 신세를 많이 진 것도 있고.
남 영사는 곧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막상 돌아가도 답답한 일뿐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서울의 전세난 기사를 검색하고 나온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해서 어쩌지요. 형님처럼 의지하고 지냈는데.
인사치레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남 영사는 화제를 바꾸며 민항구 공안국에는 다녀왔는지 물었다. 나는 영사관으로 한광수가 누군지 문의했던 기억이 났다.
김 실장 전화 받고 다음 날 칠레 영사관에서 전화가 왔어요. 자기네 시민권자인데, 한국계여서 가족을 찾는다고. 공조하자기에 그런 줄만 알고 갔지…….
남 영사는 잠시 말을 끊고 앞에 놓인 소주잔을 비웠다.
현장엘 갔는데, 중국 쪽에선 손도 대지 않았더라고. 그대로 떠넘긴 거야. 하긴 외국인이니까 자기들은 상관도 없겠지만. 들어갔는데 기가 막히더라고. 유서나 메모 같은 것은 없었고, 요금 독촉장이 잔뜩 쌓여 있더라고요. 냉장고를 열어 봤는데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말이요. 양말에 손수건까지 각을 잡아 놓고 침대 밑에 실내화는 아침에 다시 신을 것처럼 벗어 놓았지 뭡니까. 구석에 여행 가방을 싸 놓았는데, ……섬뜩하더라고.
남 영사는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소주를 한 병 더 달라고 했다. 좋은 데가 있다고, 함께 가자던 마리오가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기분이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때 전화기 진동으로 테이블이 떨렸다. 크라잉 클럽이 문을 열었다는 알림 문자였다. 전화기를 확인하고 남 영사에게 한 잔 더 해야죠, 하고 물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어서들 오세요.
검정 카디건을 걸친 윤미오가 우리를 맞았다. 환하게 불을 켜 놓은 실내는 환기가 덜 되어 눅눅했다. 한쪽 구석엔 정리 안 된 빈 병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연거푸 재채기가 나왔다.
제습기를 돌렸는데도 이래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모르겠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보았는데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네요. 퇴폐 시설이라고 무조건 폐쇄하라는데 답답해 죽겠어요.
윤미오는 먼지가 앉은 와인 한 병을 꺼내 왔다. 아끼던 건데 송별회에 쓰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남 영사는 술을 섞어 마시면 취한다면서도 윤미오가 권하는 와인을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는 재킷을 벗어 등받이에 걸쳐 놓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취기가 오르는지 윤미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떻게 버틸 방법은요?
방법이 있으면 진작 찾았겠죠. 사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 왜 나한테만 이러는지.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흘깃 바라본 윤미오의 얼굴이 오래된 벽지처럼 누렇게 찌들어 있었다. 자기 세계에서 거부당한 그녀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필요 없어 보였다. 남 영사는 담뱃불도 끄지 않고 턱을 고인 채로 졸고 있었다.
김 선생님은 아내가 중국인이라고 하셨죠.
무슨 소린가 싶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좋으시겠어요.
윤미오는 남 영사의 손가락에서 담배를 뽑아 비벼 껐다.
미래의 전처가 중국인이긴 하죠.
재밌는 분이네요. 아직 같이 살기는 살고요?
윤미오가 피식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나는 아내가 혼자 캐나다에 갔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래의 전처라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통화를 못 한 지 며칠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서운한 마음 때문에 메이가 남처럼 멀게 느껴졌다.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윤미오는 따라 놓은 와인은 입도 대지 않고 잔을 빙글빙글 돌리기만 했다. 나는 치즈 한 조각을 들었다가 접시에 내려놓았다.
서울로 가시는 겁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갈 데가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돌아갈 집이 없네요.
집이라는 단어를 들은 남 영사가 아, 씨! 하고는 다시 푹 고꾸라졌다. 윤미오가 씁쓸하게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허공으로 연기를 뿜어내는 윤미오를 보며 나는 울적해졌다.
사업성 있어 보였어요. ‘우는 사람들 모임’ 매력적이잖아요. 타국에서 겪는 설움이나 애환을 풀 데가 있다는 게. 멀쩡한 사람들이 우는 장면, 상상만 해도 재밌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만 들여다보지 남의 인생 따위는 관심 없더라구요. 좋은 울음 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참 어렵다!
윤미오가 남 영사를 흔들어 깨웠다. 귀에다 대고 뭐라고 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와인 말고 다른 술은 없는지 물었다.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출입구 옆의 커다란 창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렸고,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유리창은 실내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졸고 있는 남자 옆으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 붉은 조명 때문에 손님 끊긴 정육점 정물화 같았다.
차를 한잔해야겠어요.
윤미오가 어색한 침묵을 깨뜨렸다. 그녀는 술은 된 것 같다며 주방으로 갔다. 나는 어딘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윤미오가 내온 밀크티는 표면에 응고된 막이 떠 있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나는 티스푼으로 둥둥 떠 있는 막을 건져 냈다.
회원들과 함께 파티를 해야겠죠.
윤미오가 실내 조도를 낮추고 스크린을 켰다. 크라잉 클럽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영상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회원들이 인사를 하고 포옹하기도 했다. 자하르와 주먹인사를 하는 내가 웃고 있었다.
움직이는 짤로 쓰려고 만들었던 거예요.
잠시 말을 끊은 윤미오는 오픈 채팅방에 올리려고 찍은 동영상이라고 했다. 물끄러미 윤미오의 눈을 보았다. 서늘한 눈빛이 주는 어떤 힘이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 빛을 잃은 사람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떠올랐다. 몸을 숙인 사람의 굽은 등이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턱을 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몸을 뒤로 눕히고 잠든 사람도 있었다. 일상이 주는 평온이 눈물 나도록 그리워졌다. 그때 등받이에 걸쳐 둔 재킷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어디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크라잉 클럽.
잘됐네.
뭐가 잘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결정했어?
메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집이건 뭐건 내가 가진 것들은 모두 메이의 것이었다. 아내는 나더러 무조건 백기 투항이라도 하라는 걸까. 메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디서건 행복할 수 있다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슬부슬 밤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가로등 불빛에 광섬유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이곳에 모여 울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유령처럼 웅성거리고 둘러서 있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후통 안쪽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리오를 닮은 것만 같아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세헤라자데가 밤새 지어낸 이야기처럼 이제껏 있었던 일이 정말 있었는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펜스 옆에 기울어져 있는 팻말을 바로 세웠다. 영문자는 흐릿하게 지워지고 구락부라는 한자만 남아 있었다. 숙취로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팠다. 들고 있던 전화기를 보았다. 낮에 아버지와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아직 전하지 못했다.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왜? 아내의 목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피스텔이나 알아보려고.
가슴속에 담아 둔 말이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낮에 의사가 했던 말로 얼른 상황을 얼버무렸다. 의사는 아버지가 완쾌되었다며 축하한다고 했다. 앞으로 육 개월에 한 번 경과를 지켜보자고. 메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만 침묵의 동굴을 뚫고 희미하게 건너왔다. 나는 전화기를 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줄기가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세먼지에 쌓인 하늘이 검붉었다.













이언주
작가소개 / 이언주

무영신인문학상, 강원일보 신춘문예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림자 극장>이 있습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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