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입니다.
- 작성자 윤별A
- 작성일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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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202
졸업한 지도 거의 5년이 흘러 갑니다. 와중 원래 계정 비밀번호는 찾을 수가 없어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어요.
윤별이란 필명으로 불리던 것이 익숙한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낯설어진 걸 보니…… 참 많이 무뎌졌다 싶습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조금 넘게, 이곳에서 글을 썼어요. 그러고 보니 글틴을 알게 된 지는 10년째네요. 징그럽게.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올리다 나중에는 2주에 한 편씩, 습관처럼 꼬박꼬박 써냈습니다. 그렇게 모인 글이 202편이란 건 또 처음 알았네요. 참 많이도 썼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지만, 부끄럽게도 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쓰기 시작하는 행위가 두려웠다, 정도로 정리해 둘까요.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언어를 잃게 되더군요. 이곳에 있을 때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활자들을 다루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예요.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퇴보한 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아서, 본가에 모든 시집을 두고 상경해 놓고선, 그럴 바엔 차라리 어디에 버리든 팔든 해서 미련을 지워 버리지, 그럴 용기도 또 없어서……
이곳에서의 저는 글을 쓸 때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단어를 응시할 때마다 꿈에서 깨는 것만 같아 슬퍼지기도 해요. 꼭 맞지 않는 조각보를 기워 놓은 것 같아서 한 바닥을 썼다가 전부 지워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제가 쓴 시들을 오랜만에 둘러봤어요.
그땐 충분히 솔직했고 그만큼도 저를 과하게 내보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손미 시인님께서 하고 싶은 말을 돌리지 말고 하라시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만 같습니다. 그걸 아는 데 참 오래 걸렸네요.
이제 저는 스물 다섯 살입니다. 청소년 문학광장에 와서 이러고 있는 게 참 주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옛날엔 스물다섯이라 하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먼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어린 나이더라고요. 내 몸 하나를 책임지려면 얼마나 더 살아가야 할까요?
그런 생각도 가끔 해 봐요.
내가 중간에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하는 그런 의미 없는 생각들 말예요.
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나가는 지금의 지루한 글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안정감보다는 차라리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선호하던 이전같은 글을 썼을까요?
…….
이러나저러나 많은 일들 중 하나의 결과로, 저는 다시 입시를 선택했고, 다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두 번째 전공도 글과 관련없는 전공이에요. 여전히 시를 즐기냐 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네요.
이전처럼 쓸 수 없어 슬프다는 것은 결국 여전히 제가 글을 좋아한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감정이니까요.
대학에서 우연히 문예창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시 펜을 쥐는 것이 두렵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자 시간이니 놓칠 수 없었어요.
아직도 많이 목말라 있나 봅니다. 욕심은 참 우스워서, 다시 한 번 글을 쓸 수 있다면, 하는 기대감마저 갖게 합니다. 상실은 기대를 수반할 수 없는데도 말예요. 상상할 수 없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언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
말이 길었네요. 사실 어색해서 그래요.
하고 싶은 말이란 정해져 있고, 사실 그것만 남기고 가면 되는데, 청소년기의 저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또 많이 가르쳐 주었던, 어쩌면 고향 같은 곳이라서, 원래 가장 낯간지러운 게 이런 거라잖아요.
글이란 걸 사랑하게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런 애증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그래도 글틴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또래 친구들과 글을 쓰고, 그 당시엔 문학캠프도 열리지 않았던 관계로(정말 가고 싶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맘 맞는 졸업생/재학생 글틴들끼리 파티룸을 빌려 늘그니 파티라는 걸 하고, 어디에서도 받아 볼 수 없었던 평을 받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과분할 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낭만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청소년기의, 유일한 낭만이었어요.
그 때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들을, 그 때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감각들을, 그 때가 아니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감정들로 온통 범벅이 되어 살던 날들이 이따금 떠오를 정도로요.
지금의 저도 지금의 제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들이 궁금해지기라도 했나 봅니다.
글틴지기님께도, 글틴을 거쳐가신 많은 멘토님들께도,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가끔 적적할 때 놀러올게요. 언젠간 다른 글로, 다른 곳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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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안녕하세요, 윤별님. 저도 글틴에서 활동했던 학생인데요, (제가 현재 글틴에 글을 기고하지 못하는 나이인 것은 아니지만) 매너리즘이랄까 싶은 것들이 몰려오고 어느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옅어지더군요. 그리고 글틴과는 조금 동 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같이 어린 사람의 글들은 언제나 '미성숙'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제 글을 읽으며, 또는 글틴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의 글을 읽으며 기성의 글을 읽는 듯한 만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글틴에 글을 기고했던 분들, 무수히 많은 졸업생들이 자신의 과거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저 스스로 되새김질 한 적도 있지요. 과연 내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들 말이에요. 그럴떄면 저는 쉽사리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글 좋아하는, 이도저도 아닌 학생이니깐요. 윤별님의 글을 읽으며 저 스스로를 경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는 저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진하게 퍼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의 윤별님의 이 글 처럼 너무나도 사무치는 글을 쓸 수 없겠지요. 저는 제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살아오며 읽었던 모든 글 중에서 이토록 심장에 박히는 글을 읽어본 적 없었습니다. 저에게 부족한 건 진정성이었을까요? 윤별 님의 이런 글이 제게는 너무 보석같아서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답을 속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쨋든간에,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지금의 우리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윤별님을 응원할께요. 저는 이 감사의 표시를 작게나마 하기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