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괴물로 자라난다 –영화 ‘괴물’을 보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2-11
  • 조회수 508

*감상에 앞서, 본문에는 최신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 노래와 함께 감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

다음

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

다음

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

다음

괴물은 말야 시끄럽게 기침을 하고 사람을 먹어

 

다음

 

괴물은 말야

……

괴물은 말야

……

 

긴 침묵이 지나고

하나둘씩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너 왜 울어?

모두가 그 애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흙을 파내려가는 뾰족한 손톱을 생각해 상처 입은 무릎을배고파 잠이 오지 않는 매일 밤의 뒤척임을빛이 머리를 관통할 때의 저린 통증을 생각해

 

백은선진짜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네가 좋아할 것 같아올해 여름일본에서 유학 중인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언니는 일본에서 우선 개봉한 영화를 보고 내게 연락한 것이다그 메시지는 내가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 것이다나는 여러 예술 중에서도 영화와 시를 가장 사랑하는데아무래도 각각 카메라로언어로 특유의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더불어 영화는 러닝타임 내로시는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두 작품 모두 함축과 비유가 가득 담긴다이로써 관객과 독자에게는 극대화된 이미지가 다가오는데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아름다운 서사가 진하게 농축된 풍경이 보이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제한된약 2시간이라는 시간 내에서 가장 영리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드러내는 영화이다단순히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영리하게’ 주장하는 것이 포인트이다카메라의 이동시점편집과 같은 영화적 요소와 시놉시스와 대사 등 서사적 요소가 결합되어 진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만드는 영화그런 것이 좋다특히나 나는 그 무엇에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영화가 좋다나는 사람의 가장 주된 원동력이 분노나 우울이기보다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다른 감정들도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결국 우리가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누군가를또 어떤 것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주면서 가지는 기쁨인 듯 하다그리하여 이 차가운 오늘날어쩌면 혐오와 냉소로 21세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하여 말하려는 영화가 좋다.

 

나는 언니가 말한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괴물이라는 영화의 정보를 나름대로 찾아보려 했다하지만 예고편과 간략한 줄거리를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고이건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화겠거니생각했다어떤 시집을 요약해보라고 했을 때면 난데없이 장황하고 난해하게 말하게 되지만직접 읽을 때면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그렇게 비슷한 영화들도 있으니나는 직접 보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그리고 2023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고대하던 괴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그날은 시월의 밤이었고비와 바람이 무섭게 불어왔지만영화 극장의 관객들 모두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고레에다 감독과 아역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할 때면 박수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고 모두가 영화에 대하여 마치 나처럼두근거리는 마음을 지닌 채 모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쏟아져 나오는 박수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나는 내가 흘린 눈물보다는 눈물의 구성 성분그러니까 눈물을 흘린 이유에 집중하는 사람인지라 계속해서 궁금했다내가 그 무엇 때문에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그러나 그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11월의 끝자락에서국내 정식 개봉된 괴물을 다시금 보고 느꼈다잠잠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고민하지 말자고더 시간이 지나버리기 전에 내가 느꼈던 그 최초의 감각들을 기록해 두자고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짤막하고 파편적인 메모들과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이 났던 백은선 시인의 시 두 편을 남겨 두었고그 이야기들부터 이 글은 탄생하였다나의 사랑을 듬뿍 담아서그리고 어떤 말할 수 없는 비밀들과 그럼에도 사랑을 하겠다는 마음을 시로 잘 나타내는 백은선 시인의 시를 빌려서.

 

나의 감상에 말하기 전, ‘괴물은 이러한 영화다싱글맘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하고용기 내어 학교에 찾아간 날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름을 감지한다그리고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를 찾아가는데그가 다른 아이들과는 무언가 다름을 어렴풋이 인지한다미나토와 요리의 담임 선생님은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고사오리는 요리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뿐 자신의 아들은 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따돌림을 당하는 요리를 도와주고곁에 있는 사람이 미나토다미나토는 요리를 좋아하고 있고그 마음의 농도는 무척이나 진하다요리 또한 그런 듯 해 보인다이렇게 얽힌 관계를 풀어내고그 풀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영화이다.

앞서 나는 영화의 이미지가 영화의 기술적인 요소와 영화의 서사적인 요소에서 탄생한다고 했는데내가 남긴 메모들도 각각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바로 구조와 인물영화가 어떻게 지어졌는가 그 골조를 살펴보는 부분은 영화의 기술적인 요소에 해당할 수 있고그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숨을 쉬는가 읽어내는 부분은 아마도 서사적인 요소에 해당할 테다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케이크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내가 느낀 것을 찬찬히 나열할 뿐이다다만 내가 이 영화의 풍경들이그로부터 내게 다가오는 이미지들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느꼈으므로 그 아름다움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영화는 각각의 부로 나눌 수 있다최근에 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나 헤어질 결심과 같이 여러 개의 장으로 구성된 영화를 본 적 있다전자는 아예 영화 속에서 막이 바뀜을 알려주고후자는 굳이 제시하지는 않지만 감상할 때 관객들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영화 괴물은 헤어질 결심과 같이 관객들이 암묵적으로 부를 나눌 수 있다각각 0, 1, 2, 3부로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괴물이 다른 점은이 영화는 경유의 형식으로 각각의 부가 전개된다는 점이다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이 전개되는 장소에 따라 끊어주는 것이 아니라영화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살피며 테이프를 되감듯 구성되어 있다. 0부는 요리로 추측되는 남자아이가 잠시 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1부는 주인공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입장으로, 2부는 요리와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 호리의 입장으로, 3부는 마침내 미나토의 입장으로 한 사건에 대해 각자가 바라본 것을 영화로써 전개한다나는 이것이 과감하면서도 영리한 구조라고 생각했다어떻게 보면 한 번 벌어진 영화의 사건을 각자의 시선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관객은 3번씩이나 같은 장면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이는 지루함이나 굳이 반복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줄 수 있다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유연하게 장면들을 변주하며개인의 오해와 착각을 경유하여 영화를 진행시킨다이를테면 사오리는 미나토의 신발 한 짝이 없는 것을 보았고호리 선생은 요리의 신발이 뺏긴 것을 보았고마지막으로 우리는 요리의 신발이 같은 반 아이들에 의해 버려져 함께 하교하는 미나토가 요리에게 신발 한 짝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이렇듯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부수고 나가는 과정에서관객들은 구조에서 오히려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또한 이 영화에 절대적 진실은 없다각자의 진실이라고 믿는 각자의 입장만 있을 뿐이런 입장들을 경유하며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타인을 대했는지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얼마나 함부로 타인을 재단해왔나알지도 못한 채 수면 위로 살짝 떠오른 면만을 보고 감히 내 멋대로 생각해 왔을까이렇게 말이다속이는 듯 말해주지 않는 경유’ 구조는나에게 깊은 감동과 동시에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이 영화는 같은 사건을 세 번씩 보여줌으로써 장면 간의 함축은 적은 편이다대신나는 이 영화의 비유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이 비유들이 내게 다가오는 영화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이 비유는 앞서 말한 인물의 형태를 빌려 존재한다.

첫 번째로 1부의 주인공인 사오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사오리는 미나토에게 좋은 엄마다가령 사춘기에 접어들어 들어오지 마시오’ 팻말을 방에 걸어둔 것을 보자다그치기보다는 베란다에서 나와 보라고 한다거나 등굣길에 물통을 놓고 가려 하자 집의 바깥까지 나와 미나토에게 물병을 쥐여 준다거나그런 엄마가 사실은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정도는 클리셰적인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그러나 내가 집중해서 본 것은 사오리의 또 다른 면이다사오리는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의도치 않게 압박을 준다이를테면 사오리는 미나토와 함께 걸으며 선 밖으로 걸으면 지옥에 가.’ 그렇게 말한다이는 우리가 어릴 적 했던 놀이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보도블럭을 밟으며 걸을 때, ‘노란 블록 밖으로 걸으면 으악죽는다!’ 같은 놀이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이 대사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나는 이것이 후에 등장하는 사오리의 대사와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집으로 가는 차에서 사오리는 미나토에게 말한다아버지처럼 여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가장이 되라고이에 미나토는 충동적으로 차 바깥으로 몸을 던진다나는 이 장면이 굉장히 함축적이고비유적이라고 생각했다지금 미나토는 같은 반 남학생인 요리에게 마음을 지니고 있다그런 미나토에게 여자를 만나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가정을 꾸리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올까 싶었다. ‘선의 바깥으로 가면 지옥에 간다는 엄마의 농담은단순히 농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알게 모르게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바라는 사오리의 말이미나토에게는 하나의 강박적인 선으로 다가온다고 느껴졌다이 상황에서 미나토는 어머니인 사오리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겼을 것이고자신을 괴물이라 인식했을지도 모른다나는 처음에 영화의 제목이 왜 괴물일까의아해했으나 영화를 보는 동안 천천히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2부의 주인공인 호리 선생에 대하여다호리는 겉보기에 좋은 선생님으로 보이지만어쩐지 이상한 면 또한 보이는 선생님이다음침한 속내를 숨기고 있다기보다는 덜 성장한미성숙한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다출판된 책에서 오타를 찾아내 출판사로 연락을 하는 취미를 지녔다던가자신의 아이가 학대당한다 생각하여 학교에 찾아온 사오리를 편모 가정의 어머니는 과보호가 심하다며 이야기하다사과할 때 어리숙하게 말하며 이야기 도중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탕을 먹는다던가그럼에도 반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며 따돌림을 당하는 요리까지 챙겨주려 애쓴다그리고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변기에 버리려 하지만차마 그러지 못한다그는 분명히 좋은 선생님이지만알 수 없는 사람이다나는 이런 이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호리 선생의 캐릭터성이 굉장히 좋았다그 이유는어쩐지 호리 선생이 미나토를 만나지 못한 요리요리를 만나지 못한 미나토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들을 사랑하지만아들의 진정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압박을 주는 사오리 같은 어머니또는 일찍이 아들의 성향을 알아차리고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미나토를 보고요리는 자신도 그런 적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아 추측하건대너는 인간이 아닌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과 아내가 이혼한 것 또한 아들의 탓이라고 가스라이팅하는 요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호리 선생도 작중에서 아버지가 없이 자랐다고 하는데그런 보호자 아래에서 자라지 않았을까그리고 호리 선생 역시 홀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다가 어른이 된 것 아닐까자신을 사랑해주는 미나토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한 채자신에게 두근거림과 소중한 순간들을 안겨주는 요리를 만나지 못한 채 말이다어리숙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사회에서는 이상하고 음침한 사람으로 치부되는한쪽이 무너져 내린 채 자라서 그것이 기이하다 느껴지는 괴물로 자란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괴물이 큰일을 하는데바로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요리와 미나토의 관계를 알아챈다출판된 책에서 오자를 찾아내길 좋아하는 습관을 토대로 말이다요리가 미나토를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쓴 암호를작문 시험지에서 두 사람의 관계성을 읽어낸다그리고 폭풍이 들이닥치는 날 미나토의 집 앞으로 가서 사과한다. ‘미나토 미안해선생님이 잘못 알았어너는 잘못한 게 없어.’

 

3부는 이렇게 호리 선생이 미나토의 집 앞에서 사과하는 장면 다음으로 시작한다미나토는 자고 일어나 눈물을 흘린다이것이 3부의 첫 장면인데이후 사오리의 설명이 이어진다미나토는 어릴 적부터 자고 일어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꿈을 꾸었다고러닝타임 내내 무뚝뚝해 보였지만사실은 누구보다도 여리고 사랑에 진심을 다하는 아이였음을관객들은 그제서야 알게 된다그런 미나토는 요리를 좋아한다같은 반의 남자아이들이 대놓고 요리를 괴롭힐 때그 상황이 싫어서그리고 나설 수 없는 자신이 미워서미나토는 분노를 발산한다역시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여’ 타인에게 미나토는 괴물이 된다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교장 선생님과 단둘이 있을 때미나토가 고백한다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그 애와 행복해질 수 없는 걸 알아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이렇듯 내면의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 미나토를 분노와 슬픔에 찬 괴물로 만든다나는 이 영화를 보며 진정한 괴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사람을 죽이고때리고피해를 입히는 이들은 괴물이 아니다그저 인간 이하의 나쁜 것일 뿐이다. ‘괴물이란 타인에게는 두렵고 이상하게 보이며 자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그런 슬픈 존재라고 생각했다그리하여 나는 이 영화에 괴물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중후반부에서는 요리와 미나토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오래된 기차 속에서, ‘괴물은 누구게’ 게임을 하는 것이 나온다하나의 생명체를 그려 카드를 만들고그 카드를 이마에 붙여 서로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게임이다그렇게 설명을 듣다 자신의 카드를 알 것 같을 때 정답을 외치는 게임인데게임 속 생명체는 느릿한 달팽이공격을 받아치지 못하는 나무늘보그리고 아버지에게 자주 세뇌당하는 돼지 등 대개 요리를 나타내는 동물로 등장한다그러나 딱 한 번이 영화에서 정말로 괴물이 그려진 카드가 등장한다그리고 그 괴물은 검은 색 하트에팔과 다리가 달려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그건 그저 평범한 사람팔과 다리가 달려 있다-과 사랑-하트의 형태이다-을 가장 닮은 형태인데특별할 것 없이 그 무엇이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요리와 미나토는 영화의 엔딩에서아지트 밖으로 나와 자신들만의 천국으로 향한다폭풍이 들이닥쳐 두 사람을 찾는 어른들은 뒤로 하고두 사람은 길고 좁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들판으로 향한다요리는 우리 다시 태어난 건가?’ 하고 묻지만 미나토는 그대로라고 말한다이에 대해 요리는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고두 사람은 빛 사이를 질주하며 영화가 끝난다나는 이 엔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는 빛과 점차 밝아지는 화면이 내게는 두 사람이 축복 받는다는 이미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더불어 요리와 미나토의 대사도 인상 깊었다다시 태어나지 않아도그러니까 돼지의 뇌를 가졌건 내가 괴물이건 어떠한가우리는 비록 길고 좁고 어두운 터널을 지났지만결국 아름다운 들판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서로가 있다그곳에서는 마음껏 뛰놀고 웃으며 사랑할 수 있다. ‘괴물은 나쁜 존재가 아니라 슬픈 존재이므로, ‘괴물이 마주하는 엔딩은 역시 아름답다영화의 해석에 따라 두 사람이 언덕에 간 것이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는 갈리겠지만결국 요리와 미나토가 두 사람만의 천국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 큰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괴물은 누구게?’ 예고편에서그리고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물음이다이 물음은 관객석에 앉아 있던 나에게도 깊게 다가왔는데괴물은 결국 앞서 느낀 것과 같이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녔던 사람들이다그런 이야기를 껴안고 앓고미나토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괴물로 자라난다고 생각했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숨겨야만 하는 비밀 같은 마음아직은 꺼내놓기 어려운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웃으며 달려 나가는 엔딩을 맞이하는 괴물그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덩달아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주변에서 또 가족 이야기를 할까?’라는 농담을 들었을 만큼평소 감독은 가족 서사에 충실하다그러나 이때까지 만들어온 작품들에 안주하지 않은 괴물이 나에게는 특히나 깊이 있게 다가왔다이것은 정상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더 다양한 사랑을 노래하며,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나 역시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한 것처럼영화를 보고 난 뒤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집으로 가는 동안메모를 작성하며 미나토의 마음을 되새겼다또 한 번 미나토가 지나온 순간들을 살펴보기도 하면서과연 무슨 마음이었을까 떠올려 보았다이건 미나토를 괴물이라고 만들 만큼 슬프고 비밀스러운 사랑이었지만그건 사랑을 버릴 수 없을 만큼자신을 괴물로 만들 만큼 끝까지 끌어안고 싶었던 소중한 마음이었을 거다또한 미나토와 그 순간들을 공유하던 요리를 떠올렸기도 했다더불어 한때 호리 선생에게도 그런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고사오리나 교장 선생님에게도 꼭 특정한 누구를 사랑하는 순간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마지막으로 이 지점에서 지나온 나의 사랑들을 겹쳐볼 수 있었는데이런 마음들로부터 오늘날의 내가 있구나나는 괴물이었지만 그건 아주 슬픈 일이 아니었다는그런 생각을 하며 마침내 집에 도착하였다.

나는 이 글을 역시 백은선 시인의 시로 닫을 것이다반 아이들에게 외계인이라고 놀림 받던 요리를 생각하며외계인을 사랑하는 미나토를 생각하며.

 

 


너랑 나는 화단에 앉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다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틀고 그걸 다시 녹음하고 녹음한 걸 다시 틀고 다시 녹음해서 또 틀고 또다시 녹음하고 이런 식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어떤 음파 뿐이래그래 그건 정말 사랑인 것 같다. (중략)

 

바다에서 떠내려온 닳고 반짝이는 유리조각을 주웠다.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은선사랑의 역사」 


추천 콘텐츠

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 모모코
  • 2024-01-08
기꺼이 모험하고 사랑하는 도로시 – 권누리의 『한여름 손잡기』를 읽고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 도로시. 어느 날 태풍에 휘말려 마법의 대륙 오즈에 떨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 이야기를 펼친다. 이것이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 근처에도 도로시가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누워서 입안 훑어내면 거기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니팅레이스」) 있을 만큼 이 별은 크고 넓으므로,만약 당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기꺼이 권누리 시인의 『한여름 손잡기』를 내밀고 싶다. 도로시가 다른 동료에게 내민 손처럼. 이곳에는 ‘내 미래의 수신인은 단 한 번도 나인 적 없다’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씩씩하게’ 걷는 (「한여름 손잡기」 79p) 시적 화자들이 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여운 원피스 입고 만나’자며 명랑하게 인사하면서도 ‘불온한 신뢰’와 ‘불신’으로 (「도로시 커버리지」) 이루어진 얄팍한 세계를 달려 나가는 도로시들이 살고 있는 『한여름 손잡기』.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에게 각각 세 번의 손을 내민 것처럼, 이 시집에서도 세 번의 ‘한여름 손잡기’가 등장한다. 제목이 같은 각각의 시들은 고유한 온도와 리듬을 지니고 있다. 마치 사람의 손바닥에 머무는 온기처럼, 가슴팍에 살고 있는 심장 박동처럼. 그리고 이들이 맞잡고 껴안을 때면 타인들에게 전염되듯이 시 속의 요소들 또한 ‘나’에 머물지 않고 시 곳곳에 배치된 ‘너’ 또는 ‘우리’로 번져 가려 한다. 가령 ‘너’의 옆에 나란히 누워 ‘너는 행복할 것’이라 속삭이는 것처럼. (「한여름 손잡기」 39p) ‘사랑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책임’하지만 ‘그래서’ ‘내내 그것만 열심히’ 한 것처럼. (「한여름 손잡기」 79p)시인의 말에서 ‘그러니까 이제 아무도 죽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등장할 만큼, ‘불쑥 자라나는 유령들’ (「카메라옵스큐라」)들이 거리에 나타나고 ‘조금씩 슬퍼지는’ (「소유」) 병을 앓게 되는 세상. 『한여름 손잡기』 속 도로시는 태풍처럼 발목을 휘감고 먹구름처럼 그늘을 만드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층층이 나의 흔적을 남겨두는’ 일을 하는 (「초월」) 도로시. 그가 등장하는 시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시와 권누리 시인의 시적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된다. 여름, 타바코 나는 이해할 수 있는 문장만 쓰고 싶어 리타가 타바코를 굴리며 말했지 하지만 어떤 인간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깨닫고 인정하는 법 알기를 쉽게 포기했어 하지만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은 필요하니까 풀밭 위에 자리를 펼쳐 놓고 아무것도 걸지 않고선 내기를 시작했다 나는 칭찬받을 수 있는 거짓말만 하고 싶어 빛의 총량이 서서히 닳아가는 이곳에도 최소한의 낙관은 남아 있어 우리 원하는 만큼 잠들어 있자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랑만 하고 싶어 타바코가 굴러가고 여름은 등을 돌리고 리타는 아름다운 것을 끌어모아 잿더미로 만드는 취미가 있었고 그건

  • 모모코
  • 2023-10-30
이제는 다른 속옷을 입을 수 있었으면 –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고

먼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 모모코
  • 2023-10-2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