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질의 꿈을 꾸는가? <굿바이 레닌>
- 작성자 버틴
- 작성일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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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사회주의와 관련된 작품에 대한 글을 연달아 쓰고 있다. 그만큼 사회주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베를린 장벽은 허무하게도 말실수로 붕괴했고, 소련은 산산조각났다.
사회주의가 지금까지도 회고되는 이유는 아마 그 시절 사람들의 희망을 담고 었기 때문일거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가진 자들은 호화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반면,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일해야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선물해줬다.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노동자들에게 정말 달콤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렇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은 실패했다.
<굿바이 레닌>은 동독이 흡수 통일된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알렉스의 어머니는 열렬한 공산당원이었다. 그녀는 알렉스가 반정부 시위 중 동독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쓰러진다. 어머니는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그 사이 독일은 통일이 되어있었고, 그녀가 목숨 바치던 당은 없어졌다. 알렉스는 충격을 받으면 어머니가 사망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직 통일이 되지 않은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한다.
거짓말을 하는 알렉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알렉스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동독제 물품들을 구하러 다니고, 서기장과 닮은 사람까지 찾아가며 가짜 뉴스를 만든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이상하게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행복을 강요받는다. 소설의 사람들은 세계정부의 지배를 받으며 불행하지도, 늙지도 않으며 살아간다. 나는 소설 속 사람들을 알렉스의 어머니에, 세계정부를 알렉스로 비추어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진실을 알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나을까? 적어도 실존주의에서는 후자라고 말할 것이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극중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본다면 어딘가 가슴이 저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신념이 부정당할 때 슬픔을 느끼는 건 인류 공통이기 때문이다. 당장 자신이 자라왔던 나라가 망하고 아예 다른 체제의 국가가 세워진다고 상상해보라. 괜히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에서 이런 상황을 상정하는게 아니다.
신념은 본질과도 관련있다.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한지 수십 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항상 실패한다. 본질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 본질을 세운다. 국가, 인종, 종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오해한다. 알렉스의 어머니와 알렉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본질이 사회주의라고, 당에 충성하며 슬픔을 잊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그러나 이념은 사람에 우선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알렉스의 어머니는 레닌 동상의 철거를 목격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알렉스의 거짓말에 대해 알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알렉스에게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으며, 끝까지 알렉스를 믿었던 것처럼 연기한다. 이처럼 거짓말에 순응하는 건 또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직면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괜찮다. 인간은 회복할 능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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