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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세계에서 성장은 유예된다-드라마 '하이라키'를 보고

  • 작성자 사즈
  • 작성일 2024-06-17
  • 조회수 307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하이라키' 비평으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상시 유의해주세요. '하이라키'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싶으시다면 유튜브에서 하이라키 몰아보기 영상 등을 감상하는 것도 권장드립니다 :)



작년 이맘때 청담국제고등학교라는 드라마를 봤었다사실 나는 계급과 학교를 결합한 종류의 드라마를 싫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예리가 주연으로 나온다기에 정주행을 시도해봤던 거다드라마의 줄거리는 정말 내 예상대로 뻔했고자극적이었으며 소위 말하는 상류계급’ 캐릭터들에게선 오만과 독선이 분 단위로 뚝뚝 묻어나왔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저런 대사를 치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를 남발함은 물론이었고그런데도 예리 연기는 너무 보고 싶어 친한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징징거리면서 결국 끝까지 봤다(친구야 미안하다!). 그런데 한날은 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예전부터 이런 드라마 싫어하더라근데 왜 싫어해?”

 

그 말을 듣고 내가 여태껏 이런 드라마를 싫어하면서도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당시에는 곰곰이 생각을 해 봐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이라고 얼버무렸다그렇지만 친구의 질문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의 물음표로 남았고 피라미드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학교와 계급 갈등(을 곁들인 학교폭력)을 결합한 류의 작품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올해 6월에 노정의와 이채민이 주연이라는 말을 듣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하이라키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그동안 사회문화니매체 윤리니학교에서 뭔가를 배우기는 했어서 그런 지식을 토대로 물음을 해소하려 해봤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이런 류의 작품들 중 몇몇 작품을 보며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는데왜 잘못되었는지무엇이 잘못되었는지잘못되었다는 것은 애초에 어떤 건지 대답할 수가 없었다답답했다단순히 윤리적이지 못해서’, ‘자극적인 소재로 수익만을 추구하니까라고 답을 내기에는 꼬리 질문이 계속해서 쌓였다사람마다 윤리의 기준은 다르지 않나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이런 작품을 비판하면윤리적인 작품만 칭찬받아야 하나그냥 사회 통념적으로 그러니까라기에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 않나너는 항상 작가와 감독이 수익성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할 뿐이라고 비판하지만진짜로 사회비판을 목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나나를 완전히 질리게 만든 질문은 그리고시험이 3주 남은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였고이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냥 집어치우고 공부나 해야지하는 삐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사회문화 수행평가 준비를 위해 김창남 교수님이 쓰신 대중문화의 이해의 마지막 챕터를 읽던 중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게 되었다내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부분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어야하며우리가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때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함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문화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한다고 할 때 필수적인 것은 좋은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다사실 우리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문화를 좋은 문화로 변화시켜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문화에 대한 기준은 하나뿐일 수는 없다하나의 잣대만으로 좋은 문화를 정의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문화는 나쁜 문화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선이다그것이 무엇이든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문화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좋은 문화가 창조될 수는 없다. ‘좋은 문화에 대해 윤리적이거나 미학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닐 뿐 아니며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이 향유하고 실천하는 문화가 얼마나 삶을 풍요롭고 복되게 하는가이다내 자신의 삶이 고립된 삶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일진대 당연히 그 문화는 사회적으로도 좋은 문화여야 한다나 자신의 삶을 위해 좋은 문화라는 것이 어떤 개인적 쾌락이나 이기적 욕심을 충족시키는 문화라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앞서 문화정치의 개념과 관련해서도 이야기한 바처럼 좋은 문화는 필연적으로 좋은 정치적사회적 결과를 수반한다.

 

-‘좋은 문화란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그런 문화여야 한다결국 그것은 단지 문화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고 사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의 기본자세와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내가 불편함’, ‘싫음을 느꼈던 이유는 하이라키’, ‘청담국제고등학교와 같은 드라마가 정치적 함의를 가지면서도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복되게 하는 좋은 문화가 아니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조금만 더 저 질문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기로 했고혹시라도 내가 감독과 작가의 기획 의도를 삐딱하게 오독했을 수도 있으니 기획 의도를 참고해 답을 내보기로 했다주관적인 그냥 내 느낌이 그러니까’ 대신 최대한 객관적으로정확한 단어를 써서 근거를 붙여가는 것은 물론이고우선 하이라키 감독과 작가는 기획의도와 여타 하이틴 계급물과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하이라키의 핵은 서툰 청춘들의 성장이며처음 마주한 혼란과 감정의 파고를 통해 소중한 것을 깨닫고 이를 지키기 위해 어른들이 만든 하이라키를 스스로 깨고 나오려는 미숙하고 서툰 청춘들의 이야기

 

어른들이 만든 단단한 계층 사회 안에서 각자가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갖고 싸우는 이야기

 

계급 간의 갈등을 다룬 동시에 이들의 성장을 포인트로 담는 것에 집중했다사건의 발생과 해결이 아닌 캐릭터들의 성장과 감정의 파고를 다뤘다.”

 

내가 보기에 하이라키는 감정의 파고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어른들이 만든 하이라키를 스스로 깨고 나오려는 미숙하고 서툰 청춘들의 이야기’, ‘청춘들의 성장을 그려내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다그리고 내 기준에선 좋은 문화도 아니다그 이유를 성장과 계급두 가지 키워드를 두고 살펴보겠다.

 

 

1. 성장하지 못한 청춘

 

성장이란 무엇일까성장의 사전적 의미는 미숙한 존재에서 성숙한 존재로의 변화'이다이때의 성장은 육체적내면적 성장 모두 일컫지만 여기서 나는 인물의 내면적 성장에 집중하고자 한다그런데 나는 성장에도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우선 '의 내면 성찰과 욕구 인식 및 실현에만 집중하는 1단계 성장, ‘우리'의 관계를 고려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서도 피상적이고 나와의 관계 중심적인 이해에 그치는 2단계 성장, ‘우리'가 아닌 ’, 즉 나와는 접점이 없는 제 3자의 사정까지도 헤아리고 도우려 나서는 3단계 성장으로차이를 눈치챘는가내가 분류한 성장에서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에서 제 3'로 이해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 핵심이다.

개인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라면 인물들이 성장할 때 지향해야 하는 쪽은 3단계지만작품이 다루는 소재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1단계 성장까지만 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그러나 학교폭력처럼 ’ 혹은 '가 제 3의 세계를 파괴하는 소재를 다룰 때에는가해자 캐릭터가 3단계까지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가해자가 3단계 성장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면 가해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결말이어야 한다그마저도 아니라면 사회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해당 소재를 차용한 것임을 작품에 잘 녹여내 사람들을 설득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다 쓴 게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다시 말해 자극적인 소재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사회의 어두운 면을 사람들에게 알리고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이이는 비단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성폭력가정폭력 등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모든 소재에 해당된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이는 창작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그저 내가 이렇게 소재를 다루는 것이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창작자로서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이런 방식으로 소재를 다루는 창작물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방향성을 갖고 비평을 전개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라키는 학교폭력을 수단으로, ‘상류층들의 화려한 세계를 목적으로 삼은 드라마다하이라키를 소개하는 넷플릭스의 공식 티저 예고편에서는 호화로운 파티와 원나잇을 연상케 하는 장면학생들이 발레와 펜싱같은 소위 말하는 상류층 운동'을 즐기는 모습스포츠카 경기를 벌이는 김리안과 정재이를 보여준다누가 봐도 상류층의 화려하지만 난잡한 생활을 조명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중간 중간 비밀을 밝히겠다는 나레이션이 삽입되긴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기 보다는 상류층의 생활을 다룬 작품처럼 보인다.

공식 예고편은 어떨까?공식 예고편과 줄거리 설명을 보면 더 여실히 느껴진다넷플릭스는 하이라키를

 

상위 0.01%의 소수가 질서이자 법으로 군림하는 주신고에 비밀을 품은 전학생이 입학한 후 견고했던 그들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라며 소개하고 있다여기에는 이야기를 끌고가는 원동력인 학교폭력으로 인한 강인한의 죽음이 드러나지 않는다시청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서사를 거칠게 뭉뚱그려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로 점철해놓는 한 줄 줄거리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이는 제작진도 (혹은 넷플릭스 측도하이라키가 학교폭력'보다는 소수가 법으로 군림하는 주신고'와 그들의 세계에 발생한 균열에 주목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듯 하다.

 

물론 작가와 감독이 상업적인 수익을 위해 학교폭력을 필두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소재를 써먹었다고 말했더라도 나는 이 작품을 비판했을 것이다앞서 말했듯이 그건 학교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적제제'에 열광하는 시류에 편승해 별 고민없이 수익을 창출하려는 행태는 창작자의 도리를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인데다학교폭력을 수단으로 써먹는 것은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감독은 서툰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 ‘각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른들이 만든 하이라키를 스스로 깨고 나오려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며 하이라키를 소개했지만정작 캐릭터들의 성장을 지극히 평면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주인공 강하가 주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목적은 쌍둥이 형 강인한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다강인한을 직접 폭행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괴롭힌 인물은 박찬민과 최윤석을 비롯한 그들 무리지만그들에게 폭행을 사주한 것은 김리안과 그의 친구 이우진이다윤헤라는 때때로 박찬민을 조롱하는 방관했고정재이는 강인한을 향한 김리안의 폭력이 잘못되었다는 것자신의 남자친구 김리안이 자신이 강인한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강인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했다물론 주신고등학교의 선생님들다른 학생들도 모두 방관자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강인한을 폭행하고강인한의 죽음에 간접적이나마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박찬민과 최윤석김리안이므로 이들은 처벌을 크게 받거나 진심어린 반성을 해 3단계 성장까지 도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았고진심 어린 반성도 하지 않았다.

 

우선 최윤석최윤석은 김리안의 사주를 받고 장학생이 아닌 주신고등학교 학생 중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강인한을 폭행했다강인한뿐만 아니라 강하를 비롯한 다른 장학생들을 괴롭히고재벌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재벌 아버지와 화류계 종사자 어머니 사이의 혼외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박태호를 폭행하는 데에도 가장 적극적이다드라마 초반부김리안과 최윤석이 라커룸에서 강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장학생에 대한 인식과 두 사람의 관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각할수록 열받네 장학생 새끼

 

그러게 내가 치우랄 때 치웠으면 좋았잖아

 

나야 치우려고 했지

 

(중략)

 

그러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치워

 

그래그렇게 정리된거면 나야 좋지안 그래도 강하 그 새끼 때문에 덩달아 장학생들 제멋대로다 싶었거든이참에 기강 정리 시원하게 하지.”

 

김리안이 최윤석에게 내가 치우랄 때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대등한 듯 보이던 김리안과 최윤석의 관계가 사실은 수직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돈이 절대적인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주신고등학교에서재율그룹의 외동아들인 김리안에게 최윤석도 자세를 낮춰야하는 것이다또한 이들에게 고가의 학비를 내지 않고 무료로 학교에 다니는 장학생은 쓰레기처럼 치워야 할’ 존재이자 기강 정리 해야 할’, 즉 야생에서 우두머리 늑대가 부하 늑대들에게 서열을 각인시키듯이 기강 정리해야 하는 존재이다장학생을 자신들과 같은 대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나보다 서열이 낮은’ 동물더 나아가 쓰레기'와 같은 객체로 인식한다그렇기에 이들은 사람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우두머리 늑대가 부하들에게 서열을 가르치겠다는데준법정신을 가진 시민이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겠다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정상적인 윤리관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이들에게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최윤석은 극의 후반부에 가서야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되고, ‘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있냐'며 박찬민을 포함한 네 명과 함께 양복 입은 어른들에게 추궁당하는 장면이 잠시 나온다그 뒤로 최윤석이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지진심으로 장학생들에게 사과했는지진정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했는지 알 수 없다그러나 마지막화에 장학생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웃는 모습을 잠시 보여주며 최윤석이 장학생들과 화해'를 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강하가 경찰에 주신고등학교 학생들의 실태를 고발한 때와 별로 멀지 않은 때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괴롭힌 최윤석이 멀쩡히 학교를 다닌다는 점은 최윤석이 미미한 처분을 받았거나 아예 받지 않았음을심지어 학교 측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이는 최윤석 같은 상류층'은 폭력을 저질러도 권력으로 무마 가능하거나 비교적 쉽게 용서받는다는 함의를 내포한다상호간의 화해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식의 스토리 전개는 두 인물이 1. 대등한 관계에서 2. 가볍게 다퉜는데 3. 서로 잘못을 한 상황일 때 납득 가능한 전개다최윤석과 장학생들처럼수직적 관계에서 폭력과 욕설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행사한 경우와는 다르다이런 경우라면 최윤석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충분히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구하는 모습을 공들여 담아내야 감독이 말한 미숙한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 도식이 성립한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학생들과 갑-을의 관계였는데 화해'를 하고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는다는 점은 개연성이 없을 뿐더러 최윤석이 과연 앞서 말한 ‘1단계의 성장조차 제대로 이루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김리안은 최윤석에게 폭행을 사주한 인물이다. 폭행을 사주한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여자친구 정재이가 장학생 강인한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김리안의 세계는 정재이를 중심으로 돈다정말로재이에 의해재이를 위해재이와 함께.

 

그래서일까사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김리안이라는 인물을 관찰하면서 상당히 불쾌했다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나는 성별과 사회적 지위를 떠나 누군가가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무섭다그렇기에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한 대목이자 인물이기도 하다김리안은 자신을 주신의 후계자’, ‘완벽한 아들’, ‘나의 전부로 부르면서도 정작 튜터만 열 명을 붙여놓고 일 년에 한 번 얼굴 마주보고 밥 먹을까 말까 하는 등 자신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애정을 갈구한다그렇지만 어머니는 따스한 사랑 대신 하버드 교수의 국제 정세 직강 스케쥴을 잡아주고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결핍된 애정은 고스란히 여자친구 정재이에게로 쏟아진다그런데 정재이에게 쏟아붓는 김리안의 애정은 섬뜩할 정도로 맹목적이다작가와 감독이 이런 상류계층 고등학생 물에서 클리셰처럼 쓰이는, ‘퀸재이(실제로 인물들이 정재이를 퀸재이라 부르며 칭송한다.)’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는 순정파 애인의 지위를 김리안에게 부여한 것 같은데김리안은 순정파라기엔 소름끼치도록 정재이에게 집착하며 집착하는 이유 또한 자기중심적이다. ‘순정파'이면서도 낭만적인인 킹이 되려면 우선 (재이를 지속적으로 퀸재이라 칭하며 칭송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퀸의 대응어로 킹을 사용했다.)’의 남자친구'여야 한다남자친구가 아니라면 퀸이 킹이 이런 순정파 행동을 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어야 하며만약 퀸이 킹의 이런 행동을 싫어하더라도 제 3자가 보았을 때 짝사랑의 범위에 머물러 대체로 용인 가능한 수준(사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이어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가며 둘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둘이 연애 당시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는 점을 강조하지만정재이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해서 혼란스러워 한다며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만 이건 정말 대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가부장제의 화신이자 예비 데이트폭력범이 따로 없다그나마 정재이 본인이 김리안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리안의 안위를 위해 억지로 이별을 통보했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었기에 수용 가능한 대사들이었지만약 정재이가 정말로 싫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건 낭만적 로맨스가 아니라 범죄에 가깝다교제폭력 문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과연 이게 로맨스로 포장되어도 되나우려된다.

 

예를 들어정재이의 별장에 찾아온 강하와 주먹다짐을 하다 둘 다 그만하라며 비명을 지른 정재이를 회상하며 이우진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는,


 

김리안: “정재이 그렇게 놀라고 겁먹은 눈빛은 처음 봤어

 

이우진: “무슨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김리안: “이유가 뭐였든 안 중요해지금부터는 딱 하나만 생각할 거야.”

 

이우진: “정재이절대로 내 옆에서 안 떨어뜨려내가 지킬 거야.”

 

정재이와 강변을 걸으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이유에 대해 캐묻자 정재이가 너와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다 망치는 느낌이 든다그게 나 때문인지 너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이 관계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자

 

 

아니남은 사람들다 망쳐도 상관없어난 정재이 하나만 지키면 돼.”

 

이만큼 떨어져 있으면서 수도 없이 생각해 봤어과연 정재이랑 내가 헤어질 수 있을까?”

 

아니절대 못 해그게 내 결론이야무슨 수를 쓰든 너 내 옆에 둘 거야사랑이야 이거.”

 

 

극 후반부에서 정재이와 단 둘이 식사를 하다 강하에게 사과할 것을 부탁하는 장면에서는

 

 

망치지 말자.”

 

이렇게 앉아서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간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서 제법 괜찮거든오늘 내 기분이.”

 

 

이렇듯 김리안은 정재이가 그렇게 겁 먹은 모습은 처음 봤다'고 말하면서도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왜냐어차피 정재이를 절대로 내 옆에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 모두 망쳐도 상관없고정재이랑 본인은 절대로 헤어질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옆에 둘 거다왜냐그게 사랑이기 때문이다정재이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에는 간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참고로 김리안은 초반부에도 이별을 통보하는 정재이에게 본인이 너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으니 망치지 말라고 얘기한다내 기분이 좋은데 그걸 정재이가 망치려하기 때문이다정재이를 향한 인식 자체도 뒤틀렸지만 김리안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옮길 실질적인 힘이 있기에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쯤 되면 김리안에게 정재이는 어떤 대상인지 심히 궁금하다내가 그러고 싶으니 항상 옆에 끼고 다녀야 하고걔는 본인 몸도 지킬줄 모르기에 내가 항시 지켜줘야 하고이 괴정에서 정재이는 끊임없이 거절 의사를 표하지만 어림도 없다앞서 언급한 김리안과 최윤석의 대화로 짐작하건데 김리안에게 정재이는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맹목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하는 생각이 든다사실 정재이는 엄마처럼 집에서 내쫓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위압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인물이다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정재이가 자신을 옭아매면서도 기업의 성장을 위한 사과상자쯤으로(수단취급하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그런 아버지의 압박에서 벗어나 정재이로서’ 웃을 수 있던 이유가 김리안과의 데이트였으니 김리안이 정재이의 아버지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그런데 김리안과 정재이 아버지두 사람은 어디가 그렇게 다른가?

 

어쨌든 김리안은 정재이를 향한 집착을 그만두고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야 했다장학생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사과를 하거나 강력한 처벌을 받았어야 한다또한 어머니에게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무조건 복종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났어야 진정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리안은 1.5단계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우선 정재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마지막화에서 정재이와 김리안은 강인한의 빈소를 찾아 추모를 한 뒤 대화를 나눈다이때 재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바로 잡아보자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장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방관한내려진 벌 같은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고 말한다정재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리안은

 

우리 이대로 정말 끝인 거야?”

 

라며 묻는다강하에게도 사과를 할 거냐는 정재이의 물음에는

 

할 게그러니까 가지마 정재이

 

라고 말하며 정재이를 붙잡는다이 대화를 통해 김리안은 여전히 정재이에게 극도로 집착하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김리안과 정재이가 서로에게 과도하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성장환경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도 그렇다왜냐하면 비슷하게 김리안에게 의존적인 태도를 보였던 정재이는 서로에게 힘들 때 기대어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복할 때 다시 만나자'며 정신적 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장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거나 처벌을 받았는가사실 처벌을 받았는지의 여부조차 명확하지는 않지만 최윤석과 박찬민 무리의 처벌을 의논하는 위원회가 열렸을 때 김리안이 저도 가해자인데요라며 위원회장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기는 하니김리안에 대한 처벌 얘기가 오가기는 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게다가 김리안은 드라마가 끝나기를 고작 30분 앞둔 시점에서야 강하에게 사과를 한다라커룸에서 강하에게 미안하다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으며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면서사과의 내용만 보면 김리안이 성찰을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사과를 하기 전 정재이와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인지애초에 자신이 뭘 잘못한지 알기는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더 아리송하게 만드는 지점은 강하가 우리 형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데너는 사과 한 마디면 되는거냐절대 용서 안 해 줄테니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달라고 말한 뒤부터다김리안의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풍요를 활용해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것 까지는 안 가더라도강하가 저런 말을 했다면 최소한 속죄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그런데 사과 장면 바로 다음에는 정재이와 김리안이 웃으며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이래서는 김리안이 정재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던 태도를 버리고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정재이에게 자신과 정재이가 성관계를 하는 영상을 보내 협박한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대목에서다. ‘후계자의 무게’ 운운하는 어머니에게 김리안은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것이며 자식 노릇은 몰라도 후계자 노릇은 그만할 것이라고 선언한다내적 성장을 이뤄내긴 했으나 의 내면성찰과 욕구실현에만 충실했다는 점강하에게 사과를 한 까닭이 정재이에 의해서 였다는 점에서 1.5단계 짜리다김리안의 성장은 '의 세계에만 국한되어 있다. ‘우리'만의 세계에서 성장은 유예되고야 만다.

 

그렇다면 박찬민은 어떨까절망적이게도 박찬민은 1단계의 성장조차 달성하지 못했다폭력을 행사해온 사실이 발각되고 처벌을 두려워하며 화장실에서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그때 박찬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때렸지만 때린 것이 아니니 괜찮다'며 변명한다박찬민이 김리안의 위압에 의해 폭행을 한 것은 맞지만 파티장에서 강인한을 폭행하며 웃는 모습이 몇 번 비춰졌고무엇보다 같은 장학생들에게까지 군기를 잡는 모습이 묘사되던 인물이다강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박태호와는 대조적이다애초에 사람을 폭행했으면 누가 시켜서 그랬는지 여부는 차차하고 미안함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또한 마지막화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장학생들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준 최윤석김리안과 달리 끝까지 장학생 후배들에게 군기를 잡는 모습으로 나온다박찬민은 단 1g도 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자신의 이복누나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던 정재혁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도 않는다아버지에게 그 사실이 밝혀져 먼지나게’ 맞았는지아니면 반성하지 않고 어머니와 호의호식하는지 조차도.

 

따라서 가해자 삼인방 모두 제대로된 성장을 하지 못했으며앞서 청춘들의 성장을 그려내는 데에 실패했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하이라키는 학생들이 스스로 무너뜨린 게 아니다.

-하이라키가 계급론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된 이유

 

물론 우리의 주인공 강하는 상대가 김리안이든 최윤석이든 박찬민이든 상관없이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만드라마는 은연중에 가해자에도 이 있다고 강조한다장학생 계급’ 가해자 박찬민을 우습고 비겁한 인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앞서 말했듯이주연 4인방의 사주를 받고 강하를 '패겠다'며 덤비는 박찬민은 드라마를 통틀어 제일 우습고 비겁한 인물이다. '힐링 포레스트'로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을 때박찬민은 강하를 잡아 족치겠다며 강하의 숙소 근처에서 한참을 기다린다왜 안 오냐며 나무를 붙잡고 매달리다 떨어질뻔해 호들갑스럽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장면은 박찬민의 '하찮고 우스운캐릭터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박찬민은 장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상층 계급인 김리안과 최윤석에게는 한없이 약해진다장학생을 폭행하고 후배들에게 군기를 잡다가도최윤석의 심기가 상하면 후배들 바로 앞에서 마찬가지로 후배인 최윤석에게 구타당한다심지어 자신이 괴롭히던 강하가 정재이의 남자친구가 되자박찬민은 강하를 체육관으로 불러다 이렇게 말한다.

 

"야 너 그냥 나 한번 팰래?"

 

"몽둥이몽둥이 필요해이걸로 뒤지게 한 번 패고 재이한테 나 나쁘게 말하지만 말아주라."

 

몽둥이까지 가져와 자신을 패라며 종용하고아예 체육관 바닥에 납작 엎드리기까지 한다강인한의 사망으로 조사를 받을 때도다른 학생들은 변호사를 대동하거나 홀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임하지만 장학생인 박찬민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말을 더듬는다또한 교장이 박찬민의 바로 뒤에서 서 있지만 선배로서 충고해줬을 뿐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니라고 답한다드라마는 이런 박찬민의 강약약강’ 행동과 낮은 계급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쟤도 가해자긴 한데계급 앞에는 대증없구나’, ‘가해자라도 장학생이면 우습고비굴하고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유도한다.

물론 1장에서 말했듯이최윤석도 김리안에게 어느정도 비굴하게’ 굴고 비위를 맞추기는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윤석은 친구들 앞에서 김리안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지 않으며육체적으로 어느정도 대등한 위치에서 강하와 치고받는 것이 전부다. ‘비굴함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게 묘사된다.

 

그러면 여기서 리안이나 윤석우진은 왜 우습게 묘사되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든다나는 이쯤에서 하이라키가 사실은 기획 의도보다는 예고편과 줄거리에서 잠시 보여줬던 것처럼 상류층의 세계와 계급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박찬민이 극도로 비굴하고 최윤석은 김리안과 표면상으로는 친구처럼 묘사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바로 계급이 흔들리기 때문이며 그러면 굳건한 그들만의 세계와 위엄을 조명하겠다는 목적 자체가 흔들린다사실 행동대장 격인 최윤석을 박찬민처럼 웃기게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면 드라마의 분위기도 한결 풀어졌을 것이고.그런데 그러면 폭행을 사주한 김리안의 권위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을 거고그런 측면에서 같은 가해자라도 장학생은 우습게상류층은 위압적으로 묘사한 의도는 다분히 고의적이다.

 

그리고학생들이 진정으로 계급을 깨고 나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하이라키의 정점에 위치한 김리안을 설득하는 사람은 정재이가 아니라 강하와 같은 장학생이어야만 했다혹은 설득하는 사람이 장학생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악행이 최소한 범법행위로까지 치닫지는 말았어야 했다그래야 마지막화에 나온 정도의 사과와 화해만으로 계급이 무너진다,는 개연성이 무너지는 불상사 없이 수습이 가능하다그런 의미에서 하이라키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김리안의 캐릭터 자체가 학교에서 별명이 '주신의 폭군'일만큼 너무도 냉혹하게 설정되어 있었고주신고의 분위기 자체가 장학생을 천민 취급하고 멸시하는 분위기다부모와 선생님은 거기서 한 술 더 뜨면 떴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옛날 같았으면 눈도 못 마주칠 천민 새끼가 웃네?”

 

난 응원해신분을 뛰어넘는 격정 로맨스

 

이제부터 퀸재이 아니고 퀸헤라네그럼.”

 

하이라키에 실제로 나왔던 계급 관련 대사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재산의 차이에 따른 계급의 존재그로 인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장학생들을 조롱하는 대사는 이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장학생을 멸시하고 천민 취급하던 상황에서애초에 주인공 강하부터가 형 강인한의 죽음의 비밀을 파해치고 가해자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주신고에 들어왔다형이 죽었는데거기서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너를 용서한다고 너그럽게 이야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사과를 받아주기에는 너무 일이 커져버렸다는 말이다.

 

물론 하이라키가 계급으로 인한 상류층들의 사회만을 조명한 것은 아니다마지막 화에서 강하가 장학생들을 설득하는 장면에서장학생들이 어차피 성공할 리도 없고걔들 말마따나 우리는 돈 안 내고 다니니 이런 처우를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반문하자 이런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사회에 나가서도 어차피 걔들 밑에서 일할 거니까, ‘당연한 대우구나’, 감사라도 하면서 당할 생각이야걔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거그게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거학교도선생님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지금 참으면 앞으로도 계속대학에 가고 어른이 돼서 아니평생을 참아야 돼그래도 정말 상관없어?”

 

솔직히 이 대목에서는 나도 좀 감동했다그래도 하이라키가 계급 박살이라는 기획 의도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구나하는 생각이 이 장면을 보며 들었다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명확하다이렇게 탈계급적인’ 강하마저 형의 죽음에 일조했을지도 모르는 정재이에게 사랑에 빠져 사랑을 갈구하고반장(심지어 반장도 박찬민과 비슷한 느낌이다드라마 내내 반장이 존재감이 없는 이끼 같은 존재이며 반장부터가 그걸 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이는 1장에서 말한 성장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권력의 구심점인 김리안 무리 혹은 가해자인 최윤석박찬민의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진정으로 하이라키를 깼다고 말할 수 있다.)을 제외하고는 가해자권력자들의 도움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

 

차라리 김리안이 정재이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도 어느정도 관용적인 인물이었다면 하이라키가 강조한 계급 박살내기'와 미숙한 청춘들의 성장이 성립했을지도 모른다이렇게 계급 박살’ 보다는 계급’ 자체에 주목한다는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기획의도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며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김리안의 정재이 바라기’ 측면을 감안했을 때하이라키에서 계급론은 자극적인 소재로 상업적 이문도 챙기고겸사겸사 김리안 개인의 성장을 돋보이게 하고 정재이와 김리안의 러브스토리를 장식하는 데코쯤으로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나로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주신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청춘'을 갖다 붙이다니 열심히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궁금하다.

 

 

3. 좋은 드라마란 무엇일까?

-당연한 걸 당연하게 다뤘을 뿐인데이게 왜 문제가 될까?

 

 나의 비평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보이지 않는 계급 있는 거 모르는 사람 있냐고그 당연한 걸 드라마화 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됐냐고초등학생들까지 흙수저 금수저 나누며 수저계급론이란 말이 유행했던 거알면서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하는 것 아니냐고사실 이건 비평을 구상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었다실제로 수저계급론 진짜였나.. 금수저-흙수저첫 월급부터 격차(데일리팝, 2023.01.27.)」 같은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물질에 따른 계급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뒤집어 말하면많은 사람들이 수저 계급론에 동의하고초등학생들도 개근거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마당에 천민 새끼니 태생부터 다르다니 신분을 뛰어넘는 격정 로맨스노골적으로 계급 의식을 갖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잘 사는 사람들의 것’, ‘좋은 것이라고 은연중에 암시하는 드라마가 대체 우리 사회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데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어른들이 만든 하이라키를 스스로 깨고 나오려는 미숙하고 서툰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기획의도를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계급론 자체를 다루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오히려 이런 문제는 지속적으로 매체에서 다루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하는 좋은 드라마는 초반부에서 언급했듯이 자극적인 소재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는 드라마다사회의 어두운 면을 사람들에게 알리고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드라마한편으로 이런 드라마들은 물질적 풍요를 무기로 자신들만의 '청담국제고등학교', '주신고등학교'를 짓고 그 얕은 세계 안에 갇혀 다른 이들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차별하거나 '200'이니 '빌라거지'니 조롱하는 행태를 조롱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그게 진정한 풍자이자 해학이다.

이젠 앞에서 열거한 모든 이유들 때문에즉 하이라키는 나의 좋은 드라마’ 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나는 하이라키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고 친구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계급론이 주는 자극적인 소재에만 몰두해 좋은 문화 형성에 일조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하이라키만의 문제가 아니다요즈음 나오는 몇몇 드라마들에선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계급제도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보인다아니요즈음도 아니다. 2013년에도 상속자들꽃보다 남자 같은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내면에는 계급제도에 대한 환상구체적으로는 상류계층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는 것 같다상류계층에 대한 동경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더 많이 갖고 싶고 타인보다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 어쩔 도리가 없을뿐더러우리나라가 이만큼 번영을 이룬 것도 잘 살고 싶다는 욕구 덕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누군가는 와닿지 않는다고 불만을 성토할지라도헌법에 누구든지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국가의 시민이다무엇보다도 우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양해온 도덕관념은 인간은 평등하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계급을 나누고 사람을 차별박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해주고 있다한국의 노비들은 물론이고 범위를 넓혀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었는지그리고 얼마나 많은 국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피를 흘렸는지, ‘신분제라는 고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는지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경각심 없이 이런 드라마를 생산하고 시청하는 것은 조금 과격하게 말해서 신분제의 올무 속으로 우리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평등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를 마지막으로, 비평을 마무리 짓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1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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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즈

    중2 때부터 글틴 활동을 했지만 감상과비평 게시판에는 처음 글을 올립니다! 어려울거라 예상은 했지만.. 비평은 진짜 어렵네요 쓰는 내내 머리 쥐어뜯은것 같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긴한데 이대로 끌어안고 있는것보단 풀어놓는게 더 나을것같아 아쉽지만 방생(?)합니다. 확인해보니 글틴에 글을 올리는 것도 자그마치 일 년 만이네요. 작년 6/16에 글틴에 글을 올리고 올해 6/17 글을 올리게 된 걸보니 뭔가 주기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쿨타임(?)이 찼나봅니다ㅎㅎ +) 맞춤법 검사기로 맞춤법을 체크해야하는데 컴퓨터가 먹통이 된 관계로 부득이하게 오류투성이인 글을 올립니다ㅠㅠ 조만간 수정하겠습니다.

    • 2024-06-17 02:08:11
    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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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즈

      사실 유혈이 낭자한 폭행장면/고등학생의 불법촬영/미성년자와 성인의 연애/학생들의 마약 투약 등 극 진행에 필요도 없는 과도하게 자극적인 장면을 집어넣는다거나, 복수를 다짐하던 강하가 뜬금없이 정재이에게 사랑에 빠진다거나, 장학생들을 조롱하던 인물 중 한 명인 윤헤라의 집안이 몰락해 장학생들의 심정을 잠시나마 겪어보는 장면, 가해자 4인방(?) 중 정재이가 그나마 3단계의 성장을 이룬 부분이라든지.. 다루고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시간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저의 역량부족으로 인해... 집어넣으면 집어넣을수록 비평이 산으로 가는듯해 모조리 쳐냈습니다....

      • 2024-06-17 02:20:27
      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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