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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읽고 기쁨에 사로잡

  • 작성자 다이모니온
  • 작성일 2007-06-17
  • 조회수 507

  요즘 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에 읽었었지만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읽었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내용의 어렴풋한 윤곽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전혜린의 에세이집인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전혜린이 <데미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것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감동이 전해져 온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전혜린에 푹 빠져 있을 그 무렵 한 친구가 <데미안>을 들고 다니며 읽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읽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데미안>은 내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팠다. '후벼 팠다'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도 내 느낌에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평소 생각만 하고 정리해보지 못한 나의 내면의 소리들을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 한 구절, 한 구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나의 속살을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오, 데미안! (나는 '오, 로미오!' 대신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대는 내가 가슴 깊은 곳에서만 묻고 소심하게도 드러낼 줄 모르는 나의 사상과 번뇌와 고민을 그대로 구현해주셨습니다."

  나도 싱클레어와 같이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갈팡질팡 해왔다. 그러한 나 자신이 이중적으로 느껴져 진정한 내가 누군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러한 괴로움이 나를 둘러쌀 때 나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할 일에 충실하여야만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새로운 삶을 향한 재탄생. 바로 지금 나는 알을 깨고 부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다르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알에서 자라나고 있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과거에도 나는 끊임없이 성장해왔으나 이번 해만큼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를 체험해본 적은 없었다. 난 지금 세상이 노래하는 '밝은 세계'로부터 반기를 들고 나만의 세계를 찾아나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데미안>을 봐서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알을 깨야 한다. 알을 깨지 않은 새는 세상의 본질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불행한 존재일지니.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일전에 내 꿈에 대해 글을 쓸 일이 있었을 때 내가 말하고자 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법률가, 피아니스트, 배우, 정치가, 선생님 등이 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나는 나를 찾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 묻혀, 집단에 묻혀 다른 이들과 동일시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끔찍하다면 끔찍하리만치 고독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면서까지 나 개인의 운명을 전체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고독해야만 한다면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내가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고독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해진 것을 피부로 느끼지 않았던가. 나의 내면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다른 사고 체계를 지니고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방식으로 내면화하는데 어떻게 내가 아닌 남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아주 온전히. 가끔 뼈에 사무치도록 외로울 때면 나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해보려고 시도를 해볼 뿐이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글로 쓰고 또 글로 쓰면서…….

  처음에는 고독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고독을 벗어날 길이 있다면 기뻐하며 그 길을 가겠다. 그러나 없을 것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든 나의 사상과 내면을 오롯이 세워 소신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만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의 미래요, 나의 삶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가슴 깊이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자기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한 확신, 믿음으로 가득 차 그 운명을 빗겨나게 될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 운명의 길에서 결코 탈선하지 않을 수 있다. 곧 자신이 바라는 성공적인 삶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왜 실패를 하는가. 그들은 자기 운명에 대한 확고한 관념 체계를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지극한 열망, 자신의 운명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간단한 진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진리 속에는 위대한 삶에 대한 열망과 자기 확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다이모니온'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생각이 내 머릿속에 정리되는 순간, 정수리로부터 분출되는 희열에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은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데미안>을 읽다가 이 진리가 떠오르는 순간, 엉덩이를 더 붙이고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지금 내가 얼마나 큰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약한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피스토리우스의 말처럼.

  참, 오만일지도 모르나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의 관계를 보면서 한 선생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사실 깊은 사제 관계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나는 그분의 가르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분의 수업시간은 나에게 무한한 즐거움과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내가 그 분의 생각이나 지도 방식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 분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주제에.

  <데미안>을 통한 사색과 깨달음은 내 삶을 한층 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오후 내내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 나는 일반적으로 다니는 언덕길이 아닌 국궁장을 지나는 언덕길로 올라왔다. 그 길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오늘도 아름다웠다. 구불구불한 언덕길 양쪽의 나무들에서는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회색빛으로 흐린 하늘에는 희미하고도 영롱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고 , 바람은 세지만 부드럽게 불고 있었다. <데미안>을 통한 기쁨에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인한 기쁨이 더해져 내 마음은 한없이 밝아졌다. 그래서 언덕을 올라오는 10분 내내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더욱 좋았다.

  오늘만 느끼고 생각한 바는 아니지만 <데미안>을 통해 내 삶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날이다.

  친구가 말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넌 데미안이고 난 싱클레어라고 생각했어."

  기분 좋은 말이면서도 내겐 너무도 과분한 말이다. 욕심이 많긴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데미안이, 또 다른 이에게는 싱클레어가 되어보고 싶다. 오, 데미안. 내 삶에서 나의 데미안을 만날 날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데미안이 내 곁에 이미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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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작년 11월 즈음에 쓴 글이에요.^^

마구 휘갈겨 써놓은 것을 문단도 정리하고 약간의 수정을 보아서 올립니다.

정신없는 고3이 되어서 예전에 써놓은 글을 보니 저 자신에게도 참 새롭게 다가오네요^^;

 

그리고,, 항상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ㅡ^

다이모니온
다이모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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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모니온
  • 200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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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데미안 전체의 글에서 제일 많이 각인되는 구절이지요?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트리고 나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 속에 있음도 알지 못하는 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알을 깨고 나와 힘찬 새의 날개짓을 펼치길 바랍니다.

    • 2007-06-17 22:27:39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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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데미안 좋죠! 전 싯다르타랑 수래바퀴 아래서가 더 좋은 ㅎㅎ

    • 2007-06-17 16:15:3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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