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소년, 마음속에 가득한 그리움
- 작성자 밥공기
- 작성일 200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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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752
열여섯 소년, 마음속에 가득한 그리움
책을 덮고는 슬며시 눈을 감아보았다. 가슴 속에서 여운이 내내 맴돌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학유가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는 외침이 귀에 들릴 것만 같다.
나에게 있어 <다산의 아버님께>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서적과 논문을 참고한 완성도 높은 글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학유와 같은 나이에 그와 같은 일을 겪었던 작가의 가슴속 애틋함이 이 책에 그대로 묻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내가 그들과 같은 열여섯의 나이에 이 책을 읽었기에 나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마치 실제로 학유가 흘린 눈물로 써 내린 것처럼 작가의 문체 마디마디에는 학유의 눈물이 스며들어서 내 가슴을 적셨다. 그의 세심하면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글은 독자로 하여금 작게는 소내에서 강진까지. 넓게는 당시 조선시대로 인도하여 독자를 이끄는 힘이 있다.
나는 스물셋의 학유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설레는 발걸음처럼 설레는 눈과 가슴으로 학유의 뒤를 따라가 보았고, 7년 만에 아버지를 뵙고는 한없이 흐르는 학유의 눈물이 흐르고 흘러 나에게 이어지기도 하였다. 학유는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는 위대해 보이기만 했던 다산의 초라한 모습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다산의 그런 육체적인 초라함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의 맑은 눈빛과 흔들림 없는 신념 앞에 학유에게는 언제나 한결같이 곧고 강직한 ‘아버지’였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지아비였으며,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존경하는 인물 ‘다산 정약용’그대로였다.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막힌 것이 아니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거나 위대한 학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느냐? 하고자 하려는 성의만 있다면 어떤 난리 속에 있더라고 발전이 있는 법이다. 너희들이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를 포기하려 하느냐? 앞으로도 이렇게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본문 191쪽에서.
이렇게 아들들에게 꾸지람을 주는 다산 역시 마음이 편할 리가 있을까. 다산은 유배지에 가있는 몸이지만 언제나 아들들이 잘 되길 바라고, 언제나 자신보다 아들을 먼저 걱정하고, 자신의 행복보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그의 모습은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때는 섣달, 천지 모두 얼음인데
눈서리 찬 기운에 수심만 더하오고
깜박이는 등불 아래 홀로 앉아 있오라니
그대와 이별 칠 년, 만날 날은 아득 또 아득
-<강진 유배지로 보냅니다>, 홍씨 혜완
천리 밖 두 마음 옥인 듯 맑고 찬데
애처로운 사연 보니 그리운 맘 더욱 깊소
나 그리는 그대 생각에 잠이 들고 잠이 깨고
그대 그리워하다 보니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아내가 보낸 시의 운을 빌어>, 미용(정약용의 자)
-본문 159쪽에서.
무려 18년간 소실을 두지 않고 언제나 하나의 여자만을 사랑하고 한 여자만을 그리워하는 다산의 모습은 지고지순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학유에 대입시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함은 다산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텐데, 나는 왜 학유와 같이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하는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여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내게 주어진 여건은 신유박해 이후의 다산의 일가만큼 어려운가. 또 나는 그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는 노력을 학유만큼 해보았는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내게 <다산의 아버님께> 는 많은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아마 다른 내가 어른이 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면 지금의 감동과 여운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며, 내게 이처럼 많은 의미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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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찾아 읽었군요. 인상깊은 구절도 가슴에 다가오구요. 어쩌면 많은 줄거리 소개나 독후감쓰기보다 한 두 구절 마음에 닿은 부분을 짚어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둡고 힘겨운 삶 속에도 빛나는 등불처럼 길을 이끌어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힘차게 살아가는 계기가 되는 독서경험이 되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