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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 작성자 홍신
  • 작성일 2012-02-24
  • 조회수 821

 

 

나는 TV에 보도되는 악질의 범죄자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죽여야지. 저런 놈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을 할 수 있나.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했던, 인간쓰레기라고,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그들을 손가락질 했다.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고, 그들이 치를 대가는, 그게 맞는 거라고.

이런 생각들대로라면 나는 책 속의 윤수를, 사형수를 보면서 증오해야 하는데,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냐고, 살려주기라고 하면 안되냐고 울부짖는 유정이가 되어있었다.

 

 꽤 오래전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불현 듯 떠오른 그 글을 찾기 위해 오래된 자료들을 뒤적였다. 다시금 읽어보니 엉망진창이다. 분명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쓴 글인데, 어디에도 ‘올리버’가 없는 이상한 글이다. 그 대신 올리버를 괴롭히는 ‘빌싸이크스’에 대한 생각들만 가득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악질에서 교화되어 착한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빌을 나름대로 재조명 해보려고 한 것 같다. 대체 왜 이 글이 생각 난거지, 하고 읽어내려가다가 내 시선이 멈췄다.

 

그는 처음부터 악한 일을 일삼는 사람이었을까?

 

- 그것은 아니다.

 

이렇게 확고하게 단정적인 어투로 글을 써내려 갔는데도 나는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착한 인성과 악한 인성은 타고난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보면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을꺼야, 하는 추측성 짙은 생각들로 일관했다. 평소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뒷부분을 읽어 나갔다.

 

그는 처음부터 악한 일을 일삼는 사람이었을까?

 

- 그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그를 둘러싼 배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때, 쓰레기 통 옆에 앉은 윤수의 동생인 눈 먼 은수가 “형아...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지...?”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왜일까. 추운 겨울날, 먹을 것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그 형제에게 아무런 눈길도 보내지 않았을, 무심한 표정의 얼굴들이 마구 떠오르는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윤수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겨우 눈 먼 동생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년이었을 뿐인데. 사실은,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라도 좋으니까 한번만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하는 20대의 청년이었을 뿐인데.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때, 오직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머리보다는 마음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를 둘러싼 배경은 ‘우리’다. 우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범죄를 저질렀던 건 윤수고, 윤수가 주체자인건 맞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으로 점철된, 폭력으로 얼룩진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를 무조건 손가락질하고 욕하는건 왜인지 옳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조금은 어긋나는 말일지도, 종교적 신념이 굳건하지 않은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만, 아니, 사실은 불가능한건지도 모르지만. 정윤수,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해왔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해보자고. 수녀님이 쥐어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그건 접니다!’하고 외친 오레스테스 이야기를 하며 회개하는 그를 보며 주제 넘는 소리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보며 교화되었던 빌 싸이크스를 보면서 이런 흔한 관심조차 받아본 적 없었던 사람들에게 왜 그 기회마저 ‘사형제’로 영영 박탈시켜버리느냐는 생각도 했다. 너무 싫지만, 너무 밉지만, 우리 사회에 그럴 자격이 있는걸까. 죽음으로 그 죽음을 되갚는 것이 정의냐고 외치던 유정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는 듯 했다. 그래, 죽음으로 그 죽음을 갚는다. 결국, 뭐가 다른거지.

 책 속에서 윤수는 자신이 죽였던 피해자의 가족 면회를 하면서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나중에 윤수는 이게 최고의 형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가 저질렀던 죄를 회개하는 것이, 곱씹는 것이 최고의 고통인데. 왜 우리는 굳이 그를 죽이려 하나. 결국, 그도 죽는데. 그들이 치를 대가라는게 죽음인건가? 말이 안된다. 결국 모든 이들이 죽는데, 그게 왜 그들이 치를 ‘대가’가 될 수 있나.  정말 ‘사형’이란 건 죄에 의거한 집행이 아니라, ‘보복’인걸까. 나는 이제 정말 모르겠는 것이다. 그가 치를 대가는 어쩌면 그에게 남아있는 ‘삶’이라는 시간인데. 제대로 된 정의는 무엇일까. 정말 이제는, 모르겠는 것이다.

 

 

p.302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

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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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걸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어요, 죄를 지은 것은 그의 잘못이 맞지만 그 죄를 짓게 되기까지의 배경에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점철된 시선이 있었지는 않았나 하고요... 책속에서도 그런 배경에 영향을 받고, 안받고는 개인차가 있긴하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것같아요,그 문제는 저도 다시 생각해봐야 겠네요^^ 그리고, 제 글 읽고 좋은 생각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 2012-02-24 18:19:2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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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 글이 대체로 감상적으로 흐른다는 말은 저도 동의해요.

    • 2012-02-24 18:08:4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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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자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지만 도스도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쓴 까닭이, 한 가난한 청년이 부잣집 일가족을 살해한 것을, 변호사가 그의 환경이라면 당연했을 것이라고 변호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썼다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 상으로는요.

    • 2012-02-24 1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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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가요.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책에서 올리버의 환경도 악에 충분히 찌들 수 있지 않았던가요 나쁜 환경이라는 것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지만 모든 걸 정당화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대체적으로 글이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 2012-02-24 10:38:1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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