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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 작성자 조셉 고든 레빗
  • 작성일 2013-01-27
  • 조회수 949

1.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구병모.
기실 그 데뷔작의 완성도는 청소년소설의 범주를 벗어나 기성작가들의 장편소설과 비견해도 압도적인 힘을 갖춘 작품 ㅡ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히 배합하여 조율해낸 완벽한 서사와 꾸준한 습작을 거쳐 능수능란하게 장문을 구사하는 솜씨가 그러하다. 연이어 발표한, '아가미' ,  '고의는 아니지만' 등 에서도 전혀 녹슬지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내공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2.
많은 어휘를 포괄하는 장문을 구사하지만, 단순한 단어의 배치, 나열로서가 아닌 흐트러짐없이 잘 가다듬어놓은 악기의 선율처럼 리드미컬하고 매끄럽다. 짧게 탁탁 끊어내어 운을 형성하고 일말의 긴장을 함축한듯한 단문의 그것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나, 대곡의 웅장함을 연상시키는, 어휘와 조사의 합이 밀도있게 촘촘히 짜여진 구병모의 장문은 문장의 운문에 있어서 더욱이 월등한 위치에 놓여있다. 타고난 문장력으로 여러 기교를 부려가며 독자의 눈을 어지럽히기 보다, 꾸준한 습작을통해 손에 베인 안정되고 탄탄한 문장력으로 가독성은 물론, 심심한 각본의 영화에 살을 덧붙여 영화를 포장하는 연출자의 능력처럼, 우직이 이야기만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재치있는 비유, 탁월한 묘사 또한 선보이며 단조로움을 영리하게 피해간다.

3.
현학적인 어투를 최대한 배제한채, 다방면에 걸친 수많은 전문지식을 쉬이 이야기에 녹여냄은 물론, 순문학의 테두리안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에 서있으면서도, 장르소설의 대가 못지않게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이언매큐언의 담담한 필치, 군데군데 빛을 발하는 날카로운 심리묘사가 연상됨과 더불어,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내는, 입가에 머금은 조소를 연상시키는 냉소섞인 통찰력의 은희경을 닮은듯한 시선으로 사회의 이면, 현실의 어둠을 예리하게 관철해낸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통찰력이, 비극적일화, 현실의 일상을 그려내는 이야기에서가 아니라, 상상력이 가미된 판타지적 이야기를 항상 주된 서사로서 내세우는 그녀의 소설들에서 더욱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건은 그녀가 단순히 방 한칸에 자리해,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에만 얽매여 있는게 아니라, 충분한 사회적경험을 통해 축적된 넓은 식견 또한 갖추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를테면 단편인 '타자의 탄생' 속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어느날은 얼굴만을 드러내놓은채, 자신의 몸 전체가 콘크리트 바닥에 묻혀지게 되는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던 이 인지라, 그러한 일이 발생한 이유를 찾을 수 없고, 더욱이 가관인 것은, 마치 원래의 그 땅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신이 거기에 매몰되어졌다는 주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접하는 보편적인 소설들이라면, 이러한 일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밝혀내는, SF적 색채가 씌워진 장르소설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나, 주인공의 내면을 철저히 묘사하여 심리적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소설의 갈피를 잡겠지만, 구병모는 이러한 비현실적 사건에 얽혀진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현실적인 사회상을 반영하며 차갑게 전개해나간다.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콧방퀴만 뀌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호기심과 동정을 표하며 관심을 보이지만, 그것은 순간저긴 감정의 표출일뿐, 금세 등을 돌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가 있다. 자신의 황당한 처지가 매스미디어에의해 조명되며 적극적인 구원의 손길을 받는가 싶지만, 언론매체들은 단순히 사건만을 보도하기에 바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며, 또 다른 화제거리에 목마른 대중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간다. 나랏일을하는 공무원들조차 이런저런 궤변만을 늘어놓을 뿐, 책임을 전가한다. 이렇듯, 사회의 모순적인 단면을 여과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엄청난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풍자소설이 지닌 본질과도 많은 부분이 닮아있는 것이 그녀의 소설들의 특징이다.

4.
아직까진 문단의 신예로서 취급받는 신세지만, 김애란, 김성중과 함께 한국문학의 주축이 될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조셉 고든 레빗
조셉 고든 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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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셉 고든 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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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셉 고든 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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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물과 현상에 있어서도 정의내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조롭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논리와 치밀한 관찰 끝에 얻은 결과에 따라 사물과 모양을 지각하고 그 뜻을 규정해보지만, 이내 외관 속에 머물렀던 본질이 비어져 나와 막힘없어보였던 당연한 이치를 부정하는 순간이 더러 있기에, 어떤것에 정의내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일임이 명백하다. 서로간의 관계에 정의 내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상대방을 지탱해주었던 관계속의 끈끈한 인력은 몇마디의 실언과 잠깐의 실수로도 어느새 서로를 거부하는 척력이 되어 짦게나마 공유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조차 염증을 느끼게 만든다. 친구와 가족의 관계라고 명명하고 금세 우리의 사이를 단정짓지만 그 관계속에 도사리고 있는 타인의 심상과 감정을 결코 눈으로는 목격할 수 없기에 쉽사리 부서지고 허물어내리는게 관계이다. 권여선은 이것을 포착해낸다. 이제는 복구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도태되어버린 인간관계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처사따위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문학으로 담아내며 흉터를 씻어지울 수 없듯,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속의 흔적을 남기고 간 당신이라는 타투를 지긋이 응시한다.   2.   똑같은 사물을 대면하고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나와 타인의 생각이 동일한 범위에 속해있다고 단언할 수 없듯, 같은관계를 공유하지만 이 관계에대한 상대방의 의중 역시 결코 수를 세는 것 마냥 쉬이 헤아릴 수 없다. 우선 작품속으로 들어가보자. 주인공은 어느덧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패인 노파(오여사)로,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자기나름의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그녀에게 걸리는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얼마전까지도 자신의 집에서 동거하다가 갑작스레 훌쩍 떠나버린 심여사와의 관계이다. 비록 심여사가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였지만 그녀 자신은 심여사에게 단 한번도 '눈치를 주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한일이 없었'으므로, 꽤나 괜찮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딸네 집으로 간다는 통고 한마디만 남긴 채 연락을 끊어버린 심여사의 행동에 오여사는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벌써 반년이 지나갔다. 계속해서 자신의 비위를 건드리는 딸들의 전화를 받고 문득 울화가 치민 오여사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지속했던 심여사를 그리워하며 기필코 그녀를 한번 만나보리라 결심한다. 유려하지만은 않은 과정을 거쳐 심여사가 머무르고 있다는 요양소에 당도했지만, 그녀가 기대했던 환대와는 달리 심여사의 얼굴엔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대화가 계속될수록 거북함과 불편함만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돈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아니, 이런 얘긴 안 하는게 좋겠어요. 아니 얘기해봐요 심여사.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제가 일본에 있는 딸네 집에 가기 전에 말이지요 몇날 며칠을 두고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간다는 얘길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오 여사님 앞에만 가면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왜 그런가 했더니 오 여사님이 절 못 가게 붙들까봐 그런 거 였어요. 오 여사님

  • 조셉 고든 레빗
  •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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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조셉 고든 레빗...잘생긴 연기파 배우죠.

    • 2013-03-13 23:30: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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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골든 레빗님의 글에는 쉼표가 너무 많아 문장이 너무 길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같아요.

    • 2013-02-03 17:28:3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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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고든레빗님이었군요ㅎ

      • 2013-02-03 17:29: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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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雪

    구병모의 작품이 리드미컬하고 매끄러운 이유, 그의 장문이 운문보다 위에 있는 이유. 이러한 이유들에 대해서 적절한 문장을 인용했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 하네요.

    • 2013-01-27 20:45:59
    韓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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