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여름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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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로 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같았다. 그것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이 도시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하필 도로 중앙에 피어난 꽃이라 차들이 한 번쯤은 밟고 지나갈 법도 한데 용케도 이 도로에서 너는 꺾이지 않고 제 모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떨어졌니?
-떨어졌어.
-속상하지 않니?
-속상하지 않아.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말들 속에서 슬쩍. 너의 노트북에 비춰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
대상 - 박규혁, <네가 없는 밤에>
최우수상 - 이세영, <여름 날, 우리>
박이현, <너는 내가 너라는 한 글자 때문에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모른다>
우수상 - 김소연, <울지도 웃지도 마>
김예령, <너는 내게 파도처럼 밀려와>
최이준, <여우>
장려상 - 성준, <우리의 일기장이 소설이 되면>
이화, <너는 웃었고, 나는 울었지>
이바다, <언젠가의 당신의 죽음으로부터>
최예림, <죽으려고 했으나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총 열 명. 열 명이나 되는 이 명단들 중에서 너의 이름 세 글자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의 글은 남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심오하며 낯설고 복잡했다. 그걸 너에게 말할 때마다 너는 그저 알아, 라는 두 글자로 말을 일축할 뿐. 너의 글은 여전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곧 고치길 마련인데. 여전히 너의 소신을 밀고 나가며 글을 쓰는 네가 신기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도로 한 가운데에 핀 들꽃 같았다. 아무도 손 댈 수도 그리고 손대지도 않은 그런 꽃. 그래, 흔히들 사람들이 아는 장미, 민들레, 안개꽃. 그런 꽃들도 아닌 그저 이름 모르는 들꽃 말이다.
그래서 한 편으론 네가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의 글은 정말 완벽했다. 그래, 남들이 원하는 그런 진부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글. 그런 글을 쓴다면 너는 단숨에 인기를 많이 받을 것이 뻔했다. 근데 너는 왜 쓰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너라면 진부하지 않고도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머리도 좋으니 금방 좋은 소재를 찾아 막힘없이 쓸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려고 했다. 좋게 말하자면 모험심이 있으며 줏대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세며 돈을 벌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런 네가 답답했다. 너의 재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그런 네 모습이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개 같은 편의점 알바도 때려치우고 너는 오롯이 글만 바라보며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는 그게 더 싫다는 양 말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애정결핍과 피해망상으로 똘똘 뭉친 내 입장에서 너를 보자면 너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가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술성을 논하는 너의 모습이란. 애초부터 글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내게 있어 상처로 돌아왔다. 자격지심이라는 것은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재능이 너에게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질투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가도 네가 쓴 글이 황홀하여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 다시 추락하며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요 며칠 사이에 계속 겪어야만 했다.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었다. 너에게 글을 쓰라고 제안한 사람은 바로 나인데. 왜 내가 너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나. 악문 이 틈새로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또 담배 피게?
-어.
-그만 피지.
-무슨 상관.
네가 구겼을 게 뻔한 담뱃갑을 한 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째려보는 너의 시선을 잔뜩 느끼는 이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너의 슬리퍼를 신은 내 발이 밉기만 했다. 너는 어제 비가 내렸으니 슬리퍼를 미끄럽다며 내가 슬리퍼를 신은 걸 어찌 아는 것인지, 나를 나무랐고. 나는 그런 너의 잔소리를 사랑하면서도 질투했다. 분명 너의 입이 벌어지는 것이 보이는데. 애써 너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밖으로 나섰다. 내 입김이 찬 공기와 섞였다. 나를 걱정하는 너의 모습마저 질투로 보는 내가 정말 바보 같았다.
그저 문 앞에 주저앉아 내 손에 들린 담뱃갑을 잔뜩 구겼다. 내게 담배를 알려준 그 사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요즘 담배 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왜 구기냐며 뭐라 할 것이 분명했지만 내 손에 들린 것이 그것 하나뿐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분명 너를 처음 만났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여전히 낡은 노트북 앞, 네 이름 석 자 없는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을 너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우리의 열아홉을 회상하기 위해, 끝없을 줄 알았던 여름날의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
-이영화, 명단 잘 써.
-네.
선도부.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을 규율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이끌거나 안내하는 부서에 속한 학생. 흔히들 모범생들이 많이 속하는 그룹이라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선도부였고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모범생이었다. 스스로를 모범생이라 칭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나 정말로 그러했다. 선생님에게는 예쁨을 받고 반 친구들에게는 늘 문제집 문제 질문을 받는 삶.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가 공부를 하고 끝나고 나면 집으로 가 그 공부들을 복습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누군가는 그리 살면 정신 나가지 않느냐고 질문했지만 글쎄. 나는 이 삶이 너무 익숙했다. 익숙한 것을 계속 반복한 이유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또한 할 줄 아는 것이 공부 하나밖에 없어서. 그것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오죽하면 나의 부모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영화야, 너는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공부라도 잘해야 해. 안 그러면 도태되잖니, 라는. 자식으로서 들었을 때 참 아팠던 그 말을.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말씀에도 몇 가지 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인간이었으며 그것이 죽도록 싫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맞는 거겠지.
안 그래?
그에 대한 답으로 무의식적으로 노트 한 구석에 두 글자를 썼다. 내가 쓴 것이 분명한데도 내가 내린 답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매의 눈으로 잡아내는 학생들의 학년, 반, 이름을 나란히 적으며 구석에 무의식적으로 적은 나의 답을 볼펜으로 직직 그어댔다. 잠시 선생님께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바라보셨지만 이내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 사이에 나는 볼펜으로 직직 그어진 검은색 잉크 아래, ‘아니’라는 두 글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왜 그렇게 썼을까? 여태 잘해오고 있었잖아. 정말, 열아홉의 때늦은 사춘기라도 온 걸까. 선생님께서 외치시는 학년, 반, 이름을 하염없이 쓰면서도 내 글씨체로 정갈하게 써진 ‘아니’라는 두 글자를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이래서야 오늘 수업은 잘 들을 수 있을는지. 수능도, 기말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제 와서 잡념에 사로잡힐 수 없었다.
-화...
-...
-이영화!
-아, 네. 선생님.
-왜 대답을 안 하니.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 했나 봐요.
-에휴, 네가 딴 생각도 할 줄 아는 구나. 됐고 너 멘토링 할 생각 없니?
멘토링이요? 라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단 한 글자, 응이라는 답변으로 내 입을 막으셨다. 멘토링이라고 한다면 전교권에 드는 내가 멘티 (조언을 받는 사람)가 될 수는 없으니 멘토라는 뜻이겠고. 그 말인 즉,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기가 막힌 말이었다. 이제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보고 공부를 가르치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시험 기간도 얼마 안 남아서 곤란할 것 같아요.
-생기부에 잘 써줄게.
-그래도...
-다른 애들은 한 학기 내내 하는 건데 너는 멘토링 한다고 하면 이번 한 달만 해도 써지는 거야. 응? 부탁할게, 영화야.
어쩔 수 없는 입시의 노예인지라 생기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솔깃했다. 이어 말씀하시기를, 멘토링 하는 기간에는 선도부 활동을 안 해도 된다고. 더욱 솔깃한 말이었다. 이 더운 여름날 매일같이 정문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몇 몇 아이들은 나를 빤히 노려보며 내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식으로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 여럿을 매일같이 마주할 바에 차라리 그런 아이 한 명만 보는 건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입을 꽉 짓물은 채, 무언가를 쓰고 계시는 선생님의 손만 빤히 바라보았다.
-네가 멘토할 애 학년, 반, 이름이야. 부탁할게!
-아, 네...네?
-멘토 선생님은 내 이름 쓰고. 그 애가 멘토링 하고 싶다고 한 거니까 이건 그래도 열심히 할 거야. 잘 부탁한다!
선생님은 내가 당연히 한다고 생각한 듯 나와 악수를 하셨다. 찐득한 땀이 내 손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찝찝함에 선생님 앞에서 얼굴을 잔뜩 찌푸릴 뻔했다. 간신히 웃은 것은 수년간 다져진 나의 인내심 덕분이리라. 그 이후로 한참을 선생님께서 설명하셨지만 어떻게 선생님께 말을 하고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 손에 그 친구의 학년, 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3학년 7반 백선하.
나도 모르게 그 글자를 또박또박 읽었다.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매일같이 선생님에게 복장 지도를 당하며 이름을 말할 때에도 삐실거리면서 태평한 자태로 인사나 건넨 놈.
날 지나쳐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한숨만 내뱉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함정에 단단히 빠졌다는 것을.
*
백선하, 그 아이를 한마디로 일축하자면...양아치, 더 나아가 사고뭉치라고 부를 수 있었다. 아니, 그 정도로 일축이 가능한가? 잘 모르겠네.
어쨌든 그 애는 꽤나 유명한 편이었다. 좋은 쪽으로나 안 좋은 쪽으로나. 처음엔 반반한 외모로 인해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그 다음엔 연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나 껄렁껄렁한 자세 때문에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했으며 그 뒤론 체육대회 날, 한 경기에 골을 여섯 번이나 넣었다는 이유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별난 애였다. 아침마다 명찰을 빼먹고 와서 내 옆에서 처벌을 받는 주제에 빼실빼실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초콜릿 하나를 내게 내밀면서. 그것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샌가 선생님이 나타나 아예 그 애를 교무실로 끌고 갔다. 매번 내가 초콜릿을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을 계속해서 내미는 것과 선생님이 눈치를 채신다면 교무실에 끌려갈 것을 알면서도 내게 말을 거는 그 용기란. 그거 하나가 참으로 인상 깊어 웬만해선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에게 제대로 인상이 박힌 아이였다. 물론 좋지 못한 쪽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만히 내 앞에서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들고 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벌써 몇 분 째.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이 아이를 바라보는 것을 선택했다. 점심시간. 모두가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을 간 사이 저 아이만큼은 잠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창가에 매미 소리만이 이 교실을 꽉 채웠다. 햇빛을 받은 연갈색 머리카락이 태양만큼이나 잔뜩 반짝거렸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저 아이의 머리카락 속에서 불꽃놀이라도 열리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 넘겼다. 부드러웠다. 음, 머리 관리는 하는 모양이네? 다시 한 번 머리카락을 살며시 만지려던 찰나에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만질래?
-아, 미안.
졸린 눈을 비빈 채로 그 애가 고개를 일으켰다. 아니, 자기가 멘토링 하고 싶다고 신청한 거라며? 근데 이렇게 자도 되는 거야? 급히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해야 할 멘토링 시간은 한 시간. 근데 현재 남은 점심시간은 많아도 삼십분.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자습실에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잠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교실에 남아 저 아이를 더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거짓말이라도 칠까?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꿈뻑.
저 때문에 내가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 마냥 저 아이는 그저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아, 정말이지. 저 아이라면 말할 것 같다. 내가 매일 한 시간씩 멘토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건 참 머리 아픈 일이었다. 생기부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인데 이 일로 오히려 파괴할 수 없지 않은가. 뭐가 그리 좋은지 씰룩거리는 입모양을 한 그 아이가 참 얄미웠다.
-학교 끝나고 내 교실로 와.
-왜?
-네가 잠자느라 시간이 다 가버려서 말이지.
-네가 깨우면 됐잖아.
하? 예상치도 못한 말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거는 네가.
-내 이름이 있는데 왜 계속 너라고 불러.
-뭐?
-백선하. 우리 엄마가 지어준 내 예쁜 이름으로 불러줘.
반달모양으로 자연스럽게 접히는 눈꼬리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 창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왜인지 내 코끝을 유난히 소란스럽게 스쳐지는 것 같았다. 찬 기운이 섞인 바람 냄새와 푸릇한 나뭇잎 특유의 향이 묘하게 났다.
그 이후로 표정 관리가 안 된 내 얼굴을 본 모양인지, 웃기다며 웃음을 터트리는 너와 그제야 표정을 갈무리를 하던 나. 참 묘한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의 멘토링을 말하자면...솔직히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생각이 매우 최악일뿐더러 딱히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름 풀라고 낸 숙제도 다 해왔으며 나름 이해도 빨랐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는 티가 났다. 기말고사를 보고 같이 채점을 할 때에도 생각보다 잘 본 시험이 많았다. 특히 국어, 문학을 정말 잘했다. 중간고사 때 60점대를 맞은 것이 기말 때는 90점대로 훌쩍 올랐으니까. 어떨 때는 나보다도 더 기발하게 풀어 놀랄 정도였다.
-모의고사도 문학은 다 맞추네.
-이 정도야, 뭐. 기본이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너는 태연스레 제 자랑을 늘어트렸다. 그 모습이 살짝 재수가 없었으나 정말 너에게선 재능이 있었다. 오래 전 부모님께 말했다 혼만 잔뜩 난 나의 어렸을 적 꿈과 같은. 그런 재능이.
전부터 어렴풋이 느낀 것이었다. 예를 들어 문학 수행평가로 내 주신 시 쓰기와 같은 과제에서 너는 남들과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재능을 묵히고 있는 건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말이 불쑥 튀어나간 것이었다. 내 뇌를 걸치기도 전, 오래 전부터 속으로만 품고 있던 그 말을.
-너, 글 쓰는 거 어때?
-응?
궁금했다. 나와는 달리 글에, 문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그것에 욕심을 갖고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써질까, 하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혹자는 그것을 호기심이라 부르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놀릴 것이었지만 그래도 정말로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다. 너 혼자 힘으로 쓴 글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글의 처음을 끊어준 사람이 나라면. 그렇다면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괜히 바싹 마르는 것 같은 입술만 계속해서 짓물었다.
마치 몇 년이 흐른 것만 같은 긴 정적이 이어지고. 그 후에 들린 너의 대답은 딱 두 글자에 불과했다. 좋아, 라고. 그리고 너는 이어 말했다.
“그 대신 너도 같이 써.”
“어?”
“너와 같이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낯간지러운 말을 뱉으면서 너는 잘도 내 손가락을 툭툭 건드렸다. 햇살이 해가 움직임에 따라 점점 너의 얼굴을 덮고. 심장이 고동쳤다. 분명 나와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은 너인데 더 신난 것은 나였다.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부정하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
그 해, 너는 논술로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다. 나는 원래 성적에 맞게 명문대 공학계열로 진학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의대로 가라고 하셨지만 육 년간 대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어 의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차라리 의대로 가서 눈 뜰 새 없이 바쁘게 산다면. 너에게 이런 알량한 질투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의대에 진학한다면 내가 자퇴하기도 전에 대학교에서 퇴학 통지가 날라 올 터이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인 것을. 나는 아직도 그 여름의 향기를 잊지 못하고 붙잡으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다. 나의 글은 찬란하지 않고 너의 글은 찬란하고. 네가 말하듯, 나 역시 내가 전부터 원하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 여름날에만 생각 가능했던 이야기들에 미련이 남았다. 혹자는 내가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달리 이름 모를 대학에 글을 쓰기 위해 입학을 했던 네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와 달리 난, 대학에 들어가서 네가 싫어하는 이런 것들만 배웠지.
바람 냄새와 섞인 담배 냄새가 사정없이 내 코를 찔렀다. 결국엔 아직 다 타지도 않은 담뱃불을 꺼버렸다. 네가 싫어하니 끊자, 끊자 하다가 결국 아직 끊지 못한 나를 보면 참 멍청하게 느껴지다가도 이것도 없으면 어디로 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지 싶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참, 울어야 하나. 아니, 아직 담뱃값이 인상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나.
사실은, 네가 너만의 글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오히려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네 앞에서는 한심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너의 그런 모습 덕분에 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 선생님께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백선하.”
백선하, 백선하.
참 신기하게도 너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특유의 나무 향과 함께 이상하게도 모래 향도 났다. 우리가 흔히들 밟는 그 모래 말고 바다 앞에 깔린, 그래 너의 머리색이랑 비슷한 그 모래사장의 향이 났다. 그게 무슨 향이냐고 네가 물으면 나도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곤 했다. 참 웃긴 일이지. 어리둥절한 너의 표정을 보며 나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그 상황 자체가.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중 너를 아는 친구 몇몇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입을 떡 벌릴 게 분명했다. 오히려 그 아이들은 너와 친구인 내가 더 아깝다고 생각하는 부류니까. 애초에 친구 사이에 누가 더 아깝고 왜 사귀었냐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만 뭐. 사람들은 대체로 오지랖이 넓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에는 내 친구들도 포함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네가 나를 동경하는 것이 아닌, 내가 너를 동경한다는 사실을 내 친구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나를 미친놈으로 취급하지 않을까. 이러한 망상마저도 나의 피해의식 이지만. 나는 정말로 네가 부러웠다.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자유로운 네가, 금방이라도 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것만 같은 네가. 내가 본 새 중에서 가장 자유로워보였다고 하면 너도 날 미친놈 취급할까. 담배 피우는 것은 사실상 핑계였다. 지금의 너를 보면 내가 오히려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저 평가하는 사람들은 안목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너에게 상을 주지 않는 것을 보며 엄청 욕을 하고 싶다가도 네가 상을 타지 않은 것에 안심하는 나를 보며 혐오하게 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연속되는 나날들에 꼭 숨을 쉬고 있는 와중에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사람을 숨을 쉬면서 그와 동시에 죽어간다고 했던가. 애초에 사람은 모순적인 동물이었다. 그저, 너에게도 질투를 하는 내가 너무 못나 보여서. 그 여름날에 머무르는 내가 미워서. 이 날도 어느 날의 미래에선 웃으며 추억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미워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눈을 꾹 감았다. 찝찝한 땀 냄새가 코끝을 가득 찌른다. 내 손에는 어느새 익숙하고도 커다란, 그렇지만 투박한 너의 손길이 느껴졌다.
“완전 울보네.”
“안 울어.”
“울면서.”
“안 운다니까.”
“떨어진 건 난데 네가 나보다 더 속상해 하면 내가 뭐라 해야 하냐.”
키득거리는 너의 웃음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너는 내가 단순히 속상해 한다고 생각하겠지. 이 눈물에 질투와 자기혐오 등 많은 감정이 들어있을 거라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나는 팔을 뻗어 너의 턱을 밀었다. 너는 내 힘에 따라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담배 핀다며.”
“안 필거야.”
“잘 생각했어.”
너는 옆에 구겨진 담배를 멀리 던져버렸다. 쓰레기통에 맞고 튕겨나간 담뱃갑은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구겨졌다. 요즘 담뱃갑이 얼마나 올랐고 네가 담배만 안 피우면 우리 생활비도 절반은 줄어들 거라는, 너의 헛소리를 들으며 나는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너의 눈동자는 너의 머리색과는 달리 검은색이었다. 밤하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검정색. 머리색과는 대조적인 색이라 괜히 너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도 너의 눈동자 역시 만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는. 이상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남들에게선 볼 수 없는, 나 역시도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이라 더 그런 거일지도 모르지. 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풋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다 너는 내 귀에 무언가를 쑤욱. 꽂았다. 처음엔 연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흰 꽃이었다. 이름은 도통 모르겠는 그런 꽃.
“뭐야?”
“꽃.”
“꽃인 건 나도 알지. 이름이 뭐냐고.”
“몰라.”
“아?”
“저기. 저기에 피어나고 있어서 꺾었어.”
네가 가리킨 곳을 쫓아 빼꼼 얼굴만 내밀어보니 깨진 도로 틈이 보였다. 그 아스팔트 특유의 칙칙한 색 가운데로 푸릇한 색감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옆에서 너는 그 무엇보다 푸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는 참 너 같은 것만 사랑했다. 지나가는 길고양이, 어렸을 적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낡은 구두, 용케도 돌아가는 깨진 시계와 내가 처음 사준 샤프를 아직도 쓰고 있는 너를 보며. 꽃을 왜 꺾었냐고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비가 다 갠 뒤, 푸른 하늘과 닮은 너는 참으로 여름, 그 계절 자체인 사람이라.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거일지도.
“하핫!”
그제야 나는 고개를 꺾고 마음껏 웃었다. 내 옆에 너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정말로 끝없는 여름에 빠진 게 분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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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를 키울 명분이 없어.”그 사람이 나를 고아원에 두고 간 날 (정확히는 버린 날), 원장님이 아이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냐는 물음에 한 말이었다. 내 나이 여덟.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모를 나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며 이혼 사유가 내가 그 사람의 핏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괜스레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 사람이 던지듯 준 나의 생일 선물, 그니까 아주 작은 곰인형만 만지작거렸다. 곰인형 등에 놓인 지퍼를 열면 보이는 나의 돌잔치 사진. 그 사진 속에는 그 사람도, 엄마라는 사람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축복을 받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아닐까. 그 사람이 원장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웃고 있었던 그 과거의 기억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으련만. 머리를 붙잡고서 기억을 더듬어봤자 내게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그 사람과 엄마라는 여자의 고함소리밖에 없었고. 그 고함소리의 내용들은 나는 이 애가 내 애인 줄 알고 키웠어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화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어깨를 씩씩거리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손을 뻗으면 안아주지 않던 그 모습에서, 그리고 오늘 어디 좀 가자고 말하며 내게 자장면을 사줬다는 그 사실에서. 나는 알았다. 오늘이 이 사람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매번 풍기는 술 냄새가 싫긴 했지만, 그 사람이 술로 인해 기절하듯 잠든 밤,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내고는 했었지만. 그게 헤어지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아니었는데.나도 모르게 떠나려는 그 사람의 셔츠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웃음 한 번 짓고선 나와 함께 자장면을 먹자고 말할 줄 알았다. 그 사람은 내게 미안한 일이 생기면 자장면을 먹자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자장면을 두 끼 연속 먹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장면 먹자는 말 대신, 안 돼 라는 단 두 글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건 미련 없다는 듯이 내 손을 때리는 손길. 찰싹, 경쾌하면서도 구슬픈 소리가 그 빈 공간을 울렸다.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나를 안아주고 있던 원장님은 이어, 그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나를 떠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내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 호칭이 역겹고 불쾌하며 듣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라는 아주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왜? 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뇌 속에 진득하게 남아 나를 콕콕 건드려댔지만 그 사람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를 떠나갔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눈물이 갑작스럽게 나왔다. 원장님이 내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주며 내 눈물을 그 주름 진 손으로 닦아줄 때까지 내 눈물은
- 난바다
- 2024-06-24
비가 오면 망할 반지하 방에는 물이 스며들어왔다. 비는 멈춘 지 오래이건만. 이미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을 푸는 와중에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며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역시 이 놈의 가난은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인지, 아니면 내가 흐르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 망할 가난은 물줄기와도 같아서 퍼내고 퍼내어도 끝이 없이 쏟아지고. 결국엔 이 방을 무슨 어항처럼 만들고는 우리를 다 익사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창문 바로 밑에 주전자를 두고 다시 테이프를 덧붙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동생이 풀어야 한다고 떼를 썼던 문제집과 내 소설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위 선반에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은 동생의 교복이 쫄딱 젖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그러면 불행이 너무 큰가? 알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또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아빠가 지어주신 민주라는 이름은 총명할 민慜에 모일 주輳가 아닌 망할 민泯에 살 주住겠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아니지. 주는 살 주住가 아닌 젖을 주澍인가? 물에 빠진 쥐새끼마냥 쫄딱 젖은 내 꼬락서니를 보면 말이야. 사실 잘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시궁창 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별로 상관할 필요도 없긴 했다. 어떨 때는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도 옛말. 지금은 시궁창 인생에라도 머무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물론 어렸을 때부터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고는 했었다. 태어나 보니 집은 반지하에 어머니라는 사람은 빚을 잔뜩 진 채로 내 나이 열하나에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다는 사실은 어지간히 운이 더럽게 없지 않고서야 일어나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나마 민환이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세상을 뜨셨다. 사인은 영양실조. 현대 사회에서 웬 영양실조가 사인인 경우도 있냐고 하지만 그 경우가 우리 가족이었다. 30대 청년이 아사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요즘 누가 영양실조나 아사로 죽냐는 댓글을 바라보며 그래, 그 경우 여기 있더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할 때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던, 삐쩍 말라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나마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지 못했다. 엉엉, 또 울면서 아빠, 아빠 가지 마요, 라고 떼를 썼다. 내 나이 열아홉, 민환이 나이 아홉. 영장사진을 겨우 드는 민환이의 손을 꾹 붙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네 손에는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누나가 민환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라고. 엉엉 우는 민환이의 귓가에 손을 대고 다짐과 같은 말을 뱉었다. 그 다짐, 아직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교복을 말리러 밖에 나선 이 순간에도 민환이
- 난바다
- 2024-06-15
언젠가부터 이 세계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도 현실은 개 같은 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나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꼬이고, 우울하며 히스테리 역시 많이 부렸지만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다는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이 개 같다고 느낀 것은 그저 내 성격이 남들보다 꼬인 것이 이유일 것이며 그럼에도 일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살기 나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슬픔도 느낄 줄 알았지만 사소한 행복도 감사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근데 지금은 정말 개 같았다. 너무나도. 정말, 정말. 너무나도 개 같았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접었다. 저번 달에만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간 숫자였다. 총 셋. 한 명은 나의 어머니였고 한 명은 나의 친우였으며 한 명은 나의 은인 격이 되는 선생님이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휴대폰 메모 앱을 켜 천천히 지난달의 그 비극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번 달, 첫 주.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심. (의식이 있으셨음.) > 그러나 하루가 지난 후에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 > 새벽,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정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등산을 즐겨 하시는 등 운동도 많이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죽음이 생길 수 있고 그것 역시 비극이나 한 번쯤은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채 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거신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그만...” 이라는 말과 함께. 검은 옷이 어색해지기도 전에 나는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반평생을 함께한 친구이건만. 이것 역시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삼일 전만 해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날 달래준 자식이었는데. 착한 놈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구석에서 엉엉 울다가 결국 진정되었다가. 다시 울다가를 반복하며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죽음이란 무게가 내게 너무나도 무거워 곧 나를 압사시키듯 날 덮쳤다. 하지만 이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번 달이 다 끝날 무렵, 생들에게서 받은 카톡이 뭐였더라? “선생님께서 암 투병 하시다 돌아가셨대.”였나. 아, 시발. 그 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절로 욕이 입 끝까지 차올랐다. 급히 휴대폰 앱을 끄고 내 입부터 틀어막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며 우주로 보자면 나는 얼마나 작은 미물이겠는가. 그럼에도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가에 대하여 울분을 감추긴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꼬이고 개 같고 히스테리도 부렸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신?,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여쭙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 난바다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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