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인자에게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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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이 세계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도 현실은 개 같은 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나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꼬이고, 우울하며 히스테리 역시 많이 부렸지만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다는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이 개 같다고 느낀 것은 그저 내 성격이 남들보다 꼬인 것이 이유일 것이며 그럼에도 일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살기 나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슬픔도 느낄 줄 알았지만 사소한 행복도 감사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근데 지금은 정말 개 같았다. 너무나도. 정말, 정말. 너무나도 개 같았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접었다. 저번 달에만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간 숫자였다. 총 셋. 한 명은 나의 어머니였고 한 명은 나의 친우였으며 한 명은 나의 은인 격이 되는 선생님이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휴대폰 메모 앱을 켜 천천히 지난달의 그 비극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
저번 달, 첫 주.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심. (의식이 있으셨음.) > 그러나 하루가 지난 후에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 > 새벽,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음.
』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정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등산을 즐겨 하시는 등 운동도 많이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죽음이 생길 수 있고 그것 역시 비극이나 한 번쯤은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채 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거신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그만...” 이라는 말과 함께. 검은 옷이 어색해지기도 전에 나는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반평생을 함께한 친구이건만. 이것 역시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삼일 전만 해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날 달래준 자식이었는데. 착한 놈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구석에서 엉엉 울다가 결국 진정되었다가. 다시 울다가를 반복하며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죽음이란 무게가 내게 너무나도 무거워 곧 나를 압사시키듯 날 덮쳤다. 하지만 이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번 달이 다 끝날 무렵, 생들에게서 받은 카톡이 뭐였더라? “선생님께서 암 투병 하시다 돌아가셨대.”였나.
아, 시발. 그 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절로 욕이 입 끝까지 차올랐다. 급히 휴대폰 앱을 끄고 내 입부터 틀어막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며 우주로 보자면 나는 얼마나 작은 미물이겠는가. 그럼에도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가에 대하여 울분을 감추긴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꼬이고 개 같고 히스테리도 부렸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신?,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여쭙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라고. 이 말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건만. 아마 나의 개 같은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내 말은 무시한 채 내 운명을 계속해서 써 내려갈 것이 분명했다. 넥타이가 내 목을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거칠게 풀어헤쳤다. 숨이 내 목구멍을 통해 폐로 넘어갔다. 나는 이렇게 숨 쉬고 있는데. 아직 잘 살아있는데. 손을 굽혔다 다시 폈다. 내 의지였다.
괜스레 더듬거리며 내 목 주변을 손으로 매만지기도 했다. 핏줄은 뛰고 있었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 풀 향, 소리.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맞아, 나는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호흡이 급하긴 했어도 괜찮았다. 내가 하고 싶은 뜻이었다. 지금껏 네가 해온 모든 것들이 네 뜻일 텐데 왜 이리 나의 의지에 집착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음. 뭐라 말해야 할까. 아니,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눈을 꾹 감은 채 턱을 쓸어 내렸다. 머릿속을 꽉 채운 어렸을 적 기억들이 범람하듯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참, 언제부터였는지는 이젠 나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글쎄, 기억이 안 나네. 어느 순간부터. 내 기억에서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는지. 나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 나를 조종하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는지 말이야. 머리를 움켜잡았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첫 번째 사건만을 말하자면, 그래. 내가 이제 막 중학교로 진학하기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 날은 내가 어머니와 백화점에서 옷을 보고 있었고 우리는 저녁을 그 근처에서 해결할 작정이었다. 오랜만에 모자끼리 단 둘이서 나온 만큼 그 시절의 나는 꽤나 들떠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매우 바쁘신 데다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고 그만큼 어머니의 애정이 고팠으니. 그 시절의 모든 이들이 다 그러지 않은가. 어머니의 애정을 바라고 시선을 고파하며 그 짧은 순간에 모든 행복을 느끼는, 그런 단순한 모습을 지닌 채로 살아가지. 뭐, 나도 그런 단순한 인간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많이 꼬인 데다 우울하다만. 그 때는 그랬다.
그래서 그 날은 내게 퍽 특별한 날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기억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암전. 마치 내 정신이 콘센트마냥 뽑힌 듯 어떠한 기억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닌, 명백하게 없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엔 엄마와 이미 집에 돌아왔을 때였고 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엄마에게 왜 여기 있느냐 물었을 때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네가 밖에서 먹기 싫다며. 집에서 배달 시켜 먹고 싶다고 얘기했잖아.
아니, 난 그러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엄마는 집에 오면 곧 일을 하러 나가실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또 홀로 남을 테니. 나가려는 엄마의 손을 잡고 아니다, 싫다 울며불며 애를 썼지만 엄마는 애가 왜 이래, 라는 말 한 마디만 남긴 채 집을 나가셨다. 불어터진 자장면과 딱딱하게 식은 탕수육만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그 이후로 사소하지만 내겐 사소하지 않은 그 기억 상실이 반복되었다. 정말 내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정신 병원도 꾸준히 다니고 있지만 의사는 이쯤 되면 내가 의도적으로 정신을 지우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냐며 나를 의심하곤 했다. 하긴, 내가 무슨 끔찍한 살인 현장을 눈앞에서 본 것도 아니고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으니 의심할 법도 했다. 내겐 몽유병이나 이중인격. 그런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 의심해 보았으나 몽유병은 잠 잘 때만 일어나는 병이라 하였고 이중인격이라고 하기엔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정말로 나는 꾸며내지 않았다. 이러한 기묘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마치 내가 인형극에서나 볼 법한 인형이 된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근데 이제는 비극마저 나를 덮쳐오니 내가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내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시발, 장난하냐.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니면 내가 정신과 약을 안 먹었나? 아니, 먹었어. 우울증 약도? 응, 먹었지. 꼬박꼬박 의사가 말하는 주의사항도 다 지켜가며 먹었어. 근데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모든 불행이 내게 쏟아지는 느낌. 피해망상 시발, 그딴 게 아니었다. 진짜 그랬으니까. 나름대로 사소한 행복도 감사하며 살았건만.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정말. 울분을 토하고 싶었지만 울분을 토할 때도 없었다. 이미 나만큼 주변도 우울했으며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신을 믿지 않은 것에 신께서 화라도 나셨는지. 지금이라도 종교를 만들어 볼까, 생각했지만 그러다 사이비에 빠지면 더 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만 관두기로 했다.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답이 없었다. 이미 집 안에 수북이 쌓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더러웠다. 내 집이 이리 돼지우리가 된 것은... 아, 까먹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네. 음, 그건 바로 내가 지난달에 마침 직장에서도 잘렸다는 것이다. 참 개 같은 일이지, 그치? 물론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 돈은 아직 있지만... 그래도 다시 직장을 구하긴 해야 하는데. 나태한 내 몸뚱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집 안에 있는 모든 책들을 다 보기 시작했다. 내 특별한 습관 중 하나가 하필 지금 도져서 큰일이었다. (습관은 바로 우울할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책을 읽는 것.) 그렇게 한 달. 지난달부터 시작된 독서는 결국 집 온갖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손이 근질거렸다. 이 손이 근질거리는 것이 작년에 이미 끊었다고 생각한 담배 때문인지, 아니면 책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담배를 다시 피우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속상해 할까, 싶어 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울한데, 나가야 하나? 근데 이러고 있으면 더 우울한데. 시발, 뭐 어쩌라는 거야.
머릿속에 가득 찬 잡념이 꿈틀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절로 눈이 감겼다. 왠지 모를 기시감에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온갖 힘을 썼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이 망할 내 정신머리.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게야.
암흑, 그래 어둠 그 자체였다. 내 몸이 그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렸으나 쓸모없는 짓에 불과했다. 지금 이게 몇 번째일까. 잘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이 짓은 점점 많아졌고 그에 더 익숙해지는 내가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다. 암흑 속에 놓인 기분을 설명하자면, 우주 한 가운데에 나 홀로 놓인 느낌이었다. 죽음만을 기다리며 내 몸을 조여 오는 압력을 버티고 버티다. 우주쓰레기에 맞아 심해 깊은 곳에 추락하는. 그런 기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입에서 욕이 마구 터지는 것만 보아도 당신이 알 수 있는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속으로 한 일흔 여섯 번째 욕을 내뱉고 있을 때에, 드디어 눈이 떠졌다. 내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고 내 옷차림을 보아 이미 집 밖을 나갔다 들어온 것 같았다. 시발, 내 몸.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누군가 내 정신 버튼을 누른 것 마냥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내리 두드려보았지만 소용없는 짓거리였다. 그저 처음 보는 이름의 작가와 「나의 살인자에게」라는 어찌 보면 섬뜩한 제목의 책만이 내 옆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읽어보기라도 하라는 양, 선풍기 바람에 스스로 넘어가는 책을 보며 나 홀로 눈을 찌푸릴 뿐이었다.
도대체, 내 무의식은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걸까. 조심스레 종이 한 페이지를 넘겼다. 첫 서두는 이랬다.
-언젠가부터 이 세계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등이 오싹해졌다. 온 몸에서 소름이 끼쳤다. 첫 서두부터 써져있는 글자까지. 모두 나의 감정과 나의 일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책이었다.
-시발, 시발... 저, 저게 뭐야.
나도 모르게 선풍기가 있는 곳으로 책을 힘차게 던졌다. 선풍기와 부딪혀 책이 떨어졌다. 책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벌벌 떨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는 살아있는데, 나는 살아있어. 나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어...
이 다리, 이 팔. 이 몸뚱이 모든 게 다 내 것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이 현실이 기가 막혔다. 넥타이도 메지 않고 있는데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직장도 잘려 집에만 박혀 있었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갑자기 트루먼 쇼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근데 왜 나를? 세상이 내게 그렇게나 관심이 많았나. 턱턱 막히는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이미 자그만 점으로 보이는 내 집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무서웠다. 저 집에 무언가 숨겨져 있는 걸까. 정확히는, 저 책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다. 급히 바지를 뒤졌다. 지갑이 없었다. 휴대폰 역시 책 옆에 두고 도망가 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말 맨몸이었다. 시발, 시발. 이 상태론 어디 가.
천천히 사그라지는 정신 속에서 나는 다시금 욕을 내뱉었다. 망할 이 무의식은 나를 또 그 망할 집에 데려갈 것이 뻔했다. 싫다고, 싫어... 길거리에서 미친 망아지 마냥 외칠까, 생각했지만 그 전에 이미 내게 펼쳐진 것은 암흑이었다.
어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아, 밤을 좋아하니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었다고 해야 하나. 근데 지금은 시발. 너무 싫었다. 제발 이 어둠이 내 삶에서 사라지길 몇 십번을 기도했다. 신은 없는 것이 확실했다. 내 소망을 들어준 적이 없으니까. 겨우 다시금 눈이 떴을 때에는 역시나 내 집이었다. 방금 전과 달라진 점은 별로 없었으나 눈에 띄는 것은 책상 위에 놓인 종이였다.
『
무서운가?
』
미친, 이건 또 뭔 짓이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끄덕거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 밑에 글이 다시 써졌다.
『
무서운가?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
그럴 의도?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이 글이 써지는 것 자체가 공포인 이 순간에 글자가 내 눈에 들어 올 리는 만무했다. 그런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양, 글이 더 써졌다. 지금까지 내가 여러 번 외치고 외쳤던. 그리고 의심했던 그 말.
-나는 너의 창조주다...
창조주. 그니까 나를 만든 사람. 아,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나. 이건 보통 신이라고 그러지? 맞지? 잘 돌아가지 않는 정신 속에서 오롯이 창조주, 그 세 글자만이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지금까지 내게 일어났던 모든 것들이 이 모를 창조주 때문인가. 내가 의식을 잃는 것도? 뭐, 내 주변 사람들이 그리 죽어 나갔던 것도. 이게 무슨, 뭔, 뭔 말이야.
창조주? 뭔 창조주. 이 세계의 창조주? 뭐 성경에 나오는 인물, 그런 거야? 근데 왜 하필 나한테 시발, 왜 하필 나한테 그러는데.
울분이 차올랐으나 숨이 턱턱 막혀 울음소리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나의 불행은 저 모를 전지전능한 이에게 그저 하나의 유희거리였나, 싶어서. 굳이 내게 왜 알려 주었나 궁금하기도 했다. 굳이 책이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매개체를 통해 나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나. 내가 절망하는 사실이라도 보고 싶었나? 온갖 의문들이 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창조주는 그런 나의 의문들을 다 알기라도 하는 양, 한 마디를 다시 남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답하겠다.
참으로 오만한 대답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답변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다가도 나의 삶을 이리 만든 자라고 생각하니 실로 어울리는 대답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거짓이라 생각했으나 일단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답변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제일 궁금해 하는 것에는 답변하지 않고 지가 대답하고 싶은 것에만 대답을 한 것이 좀 아쉽긴 했으나 상관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조차 원하지 않았던 이 세계의 진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
무료하게 휴대폰 메모 앱을 켰다. 종이에 써진 글자만을 바라보다 그대로 그 글자를 옮겨 썼다.
일단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정리하자면.
『
1. 이 세계는 창조주가 구축한 세계이다. > 아마 「나의 살인자에게」 그 책이 아닐까?
2. 창조주가 사는 세계와 다를 바 없다.
3. 창조주가 이 세계를 만든 이유는 자신이 살기 위해.
4. 창조주는 전지전능한 무언가가 아니다. > 오히려 신과 나 중 나와 더 비슷하다고 함.
5. 내가 주인공이냐는 질문을 두 번 했으나 그에 답하진 않겠다고 함. > 일단 인물인 듯.
』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알아낸 것은 이 다섯 가지였다. 혹자는 이 세계의 비밀을 너만이 알게 되어 가슴 떨리지 않냐고 말하겠으나... 글쎄. 뭐가 떨릴까. 내가 이것으로 떨리는 사람이긴 했던가? 내게 이것으로 뭐가 남지?
나의 고뇌가 담긴 메모들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만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이 세계의 비밀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나를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나의 수 십 년의 발버둥이 오롯이 그 창조주의 밥벌이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못내 역겨웠다. 정신과도 가고 일부러 모임도 많이 가고. 나의 이 우울한 성격을 고치려 활동적인 일도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이 망할 암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하지만 내 정신이 이리 뜨문뜨문 끊긴 것도, 암흑에 갇힌 것도. 그저 창조주라는 작자가 나를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하기 위해 내 의지를 잠시나마 차단시켰음을. 그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창조주께서는 아마 나의 이러한 발버둥 또한 자신의 글자에 담지 않겠지. 그저 미물에 불과한 자신의 창조물이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날뛰는 것에 오히려 분노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정말로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창조주는... 자신을 ‘작가’라는 겉만 화려한 말로 자신을 꾸미지 않을까. 책이라는 매개체로 내게 이 세상을 알려주었으니 더더욱 ‘작가’라는 명칭이 잘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작품’일 테고 나는 거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려나. 온갖 시련을 다 당하다 결국엔 자신의 생을 끝내는 인물. 주인공일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인물 1일까. 그것조차 알 수 없는 현실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내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간을 얼마나 주었을까. 내일 미치광이로 몰려 돌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현실에 웃음과 눈물이 나왔다. 미칠 것만 같았다. 한 달간의 당신과의 대화는 나를 더더욱 미치게 만들어.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내가 미치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게 이 세상이 당신께서 만든 하나의 작은 세상이고 나는 그보다도 더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인가.
벌레가 기어오르는 듯 느낌이었다.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던 건 ‘작가’의 대답이었다. 그 중, 신과 나 중에 나에 더 가깝다는 말. 나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당신은 자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말. 나도 너와 같이 그저 감정을 느끼고 이 세상에 약간의 싫증을 가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는. 그저 그런 이라고 말했었지. 그럼, 당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그럼...내 곁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은 무엇이 돼?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어? 죽음이 당신에겐 하나의 유흥거리였어? 돈벌이? 당신도 나와 비슷한 세상을 산다며. 죽음이 얼마나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는지 알잖아. 아니면 그저 매개체, 아니. 정말로 나는 오롯이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였어?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 와중에도 나의 망할 ‘작가’께서 내게 또 무슨 짓거리를 할 모양이다. 아니, 내가 깨트렸나? 정말 모르겠네. 우습게도 사람이 미치고 슬프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휴대폰 앱이 깜빡거렸다. 내가 애써 쓴 정리 글이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사라지는 글자를 보며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정말이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너무 사랑했다. 그 작품 속 인물도 미치게 만들 만큼. 작가는 너무나도 자신의 작품들에 애정을 가졌다. 그게 정말, 정말로... 날 미치게 만들어.
당신의 그 애정이 나의 불행을 탄생시켰다는 게. 그게 너무 역겨워서.
난 살아있는 게 아니었나? 나는 무엇이었나. 난 그저 그런 인물이었나. 나의 어머니는? 내 친구들은? 나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그럼 무엇인가? 당신들은 그것조차 설정해 두지 않았을까. 당신은, 당신은...
-하, 하하.
책상에 놓인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영 요란스러웠다.
...당신이 내게 유일하게 베풀어준 것일까. 볼펜이 간절히 원하니 어느 새 종이 옆에 볼펜이 생겼다. ‘작가’, 당신. 보고 있는가? 나의 이 미친 짓거리들을?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미쳐가는 나를? 지금껏 품었던 의문과 생각, 그리고 말들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당신은 나의 죽음을 원하고 (비록 아직 살아있지만 당신이 나를 곧 죽이겠지.), 나의 불행을 원했다.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내 불행을 어디에다 팔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나의 불행을 사는 사람들 역시 나의 불행을 원하는 것이 맞겠지. 그러니 이 부분을 당신이 자체적으로 삭제할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살인자에게, 그리고 살인자의 추종자들에게 고한다.
『
당신은 이 글이 흥미로웠는가.
이 세계에서의 죽음은 당신에게 그저 유흥에 불가하였는가.
죽기 전, 당신에게 고한다.
당신은, 재밌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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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를 키울 명분이 없어.”그 사람이 나를 고아원에 두고 간 날 (정확히는 버린 날), 원장님이 아이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냐는 물음에 한 말이었다. 내 나이 여덟.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모를 나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며 이혼 사유가 내가 그 사람의 핏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괜스레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 사람이 던지듯 준 나의 생일 선물, 그니까 아주 작은 곰인형만 만지작거렸다. 곰인형 등에 놓인 지퍼를 열면 보이는 나의 돌잔치 사진. 그 사진 속에는 그 사람도, 엄마라는 사람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축복을 받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아닐까. 그 사람이 원장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웃고 있었던 그 과거의 기억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으련만. 머리를 붙잡고서 기억을 더듬어봤자 내게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그 사람과 엄마라는 여자의 고함소리밖에 없었고. 그 고함소리의 내용들은 나는 이 애가 내 애인 줄 알고 키웠어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화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어깨를 씩씩거리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손을 뻗으면 안아주지 않던 그 모습에서, 그리고 오늘 어디 좀 가자고 말하며 내게 자장면을 사줬다는 그 사실에서. 나는 알았다. 오늘이 이 사람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매번 풍기는 술 냄새가 싫긴 했지만, 그 사람이 술로 인해 기절하듯 잠든 밤,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내고는 했었지만. 그게 헤어지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아니었는데.나도 모르게 떠나려는 그 사람의 셔츠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웃음 한 번 짓고선 나와 함께 자장면을 먹자고 말할 줄 알았다. 그 사람은 내게 미안한 일이 생기면 자장면을 먹자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자장면을 두 끼 연속 먹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장면 먹자는 말 대신, 안 돼 라는 단 두 글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건 미련 없다는 듯이 내 손을 때리는 손길. 찰싹, 경쾌하면서도 구슬픈 소리가 그 빈 공간을 울렸다.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나를 안아주고 있던 원장님은 이어, 그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나를 떠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내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 호칭이 역겹고 불쾌하며 듣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라는 아주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왜? 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뇌 속에 진득하게 남아 나를 콕콕 건드려댔지만 그 사람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를 떠나갔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눈물이 갑작스럽게 나왔다. 원장님이 내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주며 내 눈물을 그 주름 진 손으로 닦아줄 때까지 내 눈물은
- 난바다
- 2024-06-24
비가 오면 망할 반지하 방에는 물이 스며들어왔다. 비는 멈춘 지 오래이건만. 이미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을 푸는 와중에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며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역시 이 놈의 가난은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인지, 아니면 내가 흐르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 망할 가난은 물줄기와도 같아서 퍼내고 퍼내어도 끝이 없이 쏟아지고. 결국엔 이 방을 무슨 어항처럼 만들고는 우리를 다 익사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창문 바로 밑에 주전자를 두고 다시 테이프를 덧붙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동생이 풀어야 한다고 떼를 썼던 문제집과 내 소설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위 선반에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은 동생의 교복이 쫄딱 젖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그러면 불행이 너무 큰가? 알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또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아빠가 지어주신 민주라는 이름은 총명할 민慜에 모일 주輳가 아닌 망할 민泯에 살 주住겠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아니지. 주는 살 주住가 아닌 젖을 주澍인가? 물에 빠진 쥐새끼마냥 쫄딱 젖은 내 꼬락서니를 보면 말이야. 사실 잘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시궁창 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별로 상관할 필요도 없긴 했다. 어떨 때는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도 옛말. 지금은 시궁창 인생에라도 머무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물론 어렸을 때부터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고는 했었다. 태어나 보니 집은 반지하에 어머니라는 사람은 빚을 잔뜩 진 채로 내 나이 열하나에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다는 사실은 어지간히 운이 더럽게 없지 않고서야 일어나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나마 민환이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세상을 뜨셨다. 사인은 영양실조. 현대 사회에서 웬 영양실조가 사인인 경우도 있냐고 하지만 그 경우가 우리 가족이었다. 30대 청년이 아사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요즘 누가 영양실조나 아사로 죽냐는 댓글을 바라보며 그래, 그 경우 여기 있더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할 때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던, 삐쩍 말라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나마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지 못했다. 엉엉, 또 울면서 아빠, 아빠 가지 마요, 라고 떼를 썼다. 내 나이 열아홉, 민환이 나이 아홉. 영장사진을 겨우 드는 민환이의 손을 꾹 붙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네 손에는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누나가 민환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라고. 엉엉 우는 민환이의 귓가에 손을 대고 다짐과 같은 말을 뱉었다. 그 다짐, 아직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교복을 말리러 밖에 나선 이 순간에도 민환이
- 난바다
- 2024-06-15
너는 도로 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같았다. 그것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이 도시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하필 도로 중앙에 피어난 꽃이라 차들이 한 번쯤은 밟고 지나갈 법도 한데 용케도 이 도로에서 너는 꺾이지 않고 제 모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떨어졌니?-떨어졌어.-속상하지 않니?-속상하지 않아.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말들 속에서 슬쩍. 너의 노트북에 비춰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대상 - 박규혁, <네가 없는 밤에>최우수상 - 이세영, <여름 날, 우리>박이현, <너는 내가 너라는 한 글자 때문에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모른다>우수상 - 김소연, <울지도 웃지도 마>김예령, <너는 내게 파도처럼 밀려와>최이준, <여우>장려상 - 성준, <우리의 일기장이 소설이 되면>이화, <너는 웃었고, 나는 울었지>이바다, <언젠가의 당신의 죽음으로부터>최예림, <죽으려고 했으나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총 열 명. 열 명이나 되는 이 명단들 중에서 너의 이름 세 글자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의 글은 남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심오하며 낯설고 복잡했다. 그걸 너에게 말할 때마다 너는 그저 알아, 라는 두 글자로 말을 일축할 뿐. 너의 글은 여전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곧 고치길 마련인데. 여전히 너의 소신을 밀고 나가며 글을 쓰는 네가 신기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도로 한 가운데에 핀 들꽃 같았다. 아무도 손 댈 수도 그리고 손대지도 않은 그런 꽃. 그래, 흔히들 사람들이 아는 장미, 민들레, 안개꽃. 그런 꽃들도 아닌 그저 이름 모르는 들꽃 말이다. 그래서 한 편으론 네가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의 글은 정말 완벽했다. 그래, 남들이 원하는 그런 진부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글. 그런 글을 쓴다면 너는 단숨에 인기를 많이 받을 것이 뻔했다. 근데 너는 왜 쓰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너라면 진부하지 않고도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머리도 좋으니 금방 좋은 소재를 찾아 막힘없이 쓸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려고 했다. 좋게 말하자면 모험심이 있으며 줏대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세며 돈을 벌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런 네가 답답했다. 너의 재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그런 네 모습이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개 같은 편의점 알바도 때려치우고 너는 오롯이 글만 바라보며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는 그게 더 싫다는 양 말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애정결핍과 피해망상으로 똘똘 뭉친 내 입장에서 너를 보자면 너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가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술성을 논하는 너의 모습이란. 애초부터 글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내게 있어 상처로 돌아왔다. 자격지심이라는 것은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재능이 너에게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질투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가도 네가 쓴 글이 황홀하여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
- 난바다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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