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트위터리안

  • 작성자 강완
  • 작성일 2024-01-15
  • 조회수 406

소녀는 어두운 침대 위에 앉아 있습니다.


뜨다 만 목도리. 귀퉁이가 뜯어진 책. 몇 달째 같은 자리에 있는 지우개 똥. 모두 소녀가 과거 열띤 사랑을 쏟아부은 상대이지만 이젠 그냥 불청객일 뿐입니다. 방바닥 뿐만이 아닌 소녀의 마음 한구석 또한 점유하는, 빗자루로 쫓아내지 않으면 없어지지도 않는 불청객. 짝사랑이 영원할 수 없듯, 진전이 없는 작품들은 날이 갈수록 꼴보기 싫어지니까요. 


혼탁한 눈동자로 멍하니 방을 바라보던 소녀는 자신이 무척 피곤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물론, 진짜로 피곤하진 않을 겁니다. 오늘도 청소할 마음이 없는 소녀의 비겁한 변명이니까요. 그러나 이를 인지하기에 소녀는 너무 피곤합니다. 응. 확실히 피곤한 게 맞아. 방을 치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하구.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자는 게 낫겠어. 소녀는 생각합니다.


소녀는 침대에 눕습니다. 그러나 바로 눈을 감진 않습니다. 침대 위의 연필이 다리를 콕콕 찔러오는 탓입니다. 소녀는 연필을 침대 아래의 무더기 아무데나로 던져버리고 작품들이 보내오는 것만 같은 애처로운 시선을 애써 무시합니다. 언젠가는 끝낼 테니 치워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소녀는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의 유일한 빛 속으로 빨려들어가 자신을 위안합니다.


소녀의 위안은 별 것 아닙니다. 자신의 말에 가끔 눌리는 '좋아요' 표시들. 사실을 언제나 외면하는 소녀조차도 이가 딱히 건전한 밑거름이 아니란 사실을 압니다. 예, 알아요. 그러나 이는 어느덧 소녀가 돌려받는 유일한 사랑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뜨개질한테서도 받지 못했던 이 단순한 분홍색 표식에 소녀는 목을 맵니다. 오늘따라 하트 모양이 조금 삐뚤어져 보이는 건 왜일까요.


온라인 세상 속은 염세주의자들과 그보다 약간 강도가 높은 비관론자들, 그리고 겉멋이 든 관용구를 남발하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런데도 소녀는 그들의 프로필 설명란에 쓰인 무지개 표시, 'Inclusion' 심볼, 그리고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아슬아슬한 혐오 표현들을 보면서 그들이 완전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잖아요. 어차피 21세기에 일관성 있는 윤리란 있는 자들의 사치에 불과합니다(트위터 등지에 쓰여 있던 말들 중 하나). 소녀는 그들 중 대다수가 일상에서도 트위터에서만큼이나 시크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거라 제멋대로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관념을 모방하는 글을 쉴새없이 올립니다. 캬, 이게 예술이지. 아님 말고. 사실 소녀는 그들이 뭔 말을 하는지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기분은 좋습니다. 하늘을 날 것만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녀의 글에 좋아요를 남기고 갔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바닥에 나뒹구는 실타래와, 과거에는 분명 무엇인가였을 먼지들을 방 속 음영이 더 깊게 진 곳으로 몰아내며 심호흡을 합니다. 이제 잘 시간입니다. 어느덧 창밖에는 동이 터 옵니다.



나는 소녀가 그 빛에 매혹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소녀는 이제 예술가가 아닌 나방이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흔들리는 등잔의 빛을 따라 같이 몸을 비트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소녀는 그 빛에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눈부신 열망과, 극에 치달은 감정과, 생동감 있는 동적인 눈동자를 비롯한 모든 것을. 진짜 예술은 분홍색 하트 따위론 표현될 수 없으니까요. 소녀는 때때로 인공적인 하트 모양을 되돌려주는 직사각형 스크린이 아닌 바깥을 무정하게 비추는 달빛를 봤어야만 했습니다. 예술은 언제나 짝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짝사랑.


짝사랑에 지친 소녀는,

동이 터오는 아침과 함께

이윽고 온전한 트위터리안이 되었습니다.

강완

추천 콘텐츠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불은 켜지지 않을 거야

*(1)층계참은 차갑기만 하다. 항상 그랬지만.센서등이 켜질까 조마조마한 건 아직도 그렇다. 이젠 불이 켜진다고 해도 맞거나 하진 않지만.조금 어렸을 때는 궁금했었다. 혹시 저 불빛은 내 생각이라도 읽는 걸까. 분명 몸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환해지던 문가. 그와 동시에 날아오던 책. 볼펜. 마우스. 크고 아프고 많은 뭔가들. 그때만 유난히 일관되었던 감정선. 나한테 온 몸으로 보내던 축객령. 이 짓거리도 이제 육년째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들은 자장가랑 다를 바도 없다. 아마 내가 아는 유일한 자장가가 혀 아래에서 뾰족하게 튕겨오는 억센소리밖에 없어서겠지. 기억나는 부분을 불러볼 수도 있다. 이놈, 애새끼, 시발, 개새끼. 가끔은 안무도 있었고 그때 그사람 입에선 어김없이 단내가 났었지.어쨌거나 내가 탈 엘리베이터는 아니다. 내 몸은 항상 땅바닥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으니까. 무기력하게. 비참하게. 구차하게. 어렸을 때 한번쯤은 그 속에서 천사가 나와 나를 구원해주는 상상을 해봤던 것 같다.몸은 분명히 컸는데 닫힌 현관문의 크기는 똑같다. 똑같은 크기의 절망. 똑같은 크기의 단호함.구역질이 난다. 그사람도 내가 자기 지갑 속에 놓여 있던 빳빳한 오만원 두 장과 잔돈 천 오백원을 도둑질하지 않았단 거 쯤은 알 거다. 애초에 그런 뻔한 짓을 왜 해?그냥 이유를 찾고 싶었던 거겠지. 인생을 송두리채 가져가 버린 도둑놈을 세상에서 없애고 싶었던 거겠지, 점차 작아지고 투명해져서 결국 센서등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무의식이였겠지, 막연한 생각이지만.사실 센서등의 불이 켜진다는 게 곧 살아있는 걸 의미한다니, 그만큼 웃긴 소리도 없다.어쨌든 죽은 사람을 그 아래다 가져다 놓으면 불이 켜지진 않겠지만.눈 앞이 뿌얘져 온다.*(2)꿈 속의 나는 혼자 집에 있어. 혼자 집에서 빵 봉지를 뜯고 있어. 보들보들 부들부들 맛있는 빵. 뜯기는 어렵지만 맛있는 빵. 어디서 가져왔더라? 아무래도 상관없지. 빵 먹어야 응? 엄마 올 시간이다.나는 엄마를 마중하러 엘리베이터로 나가.기다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 기다리면 엘리베이터에서는 엄마가 내리겠지. 음음, 음. 내리겠지. 엄마가 오면 엄마를 꼭 안아줄 거야.엄마가오면오면오면..와! 엄마가 나와. 엄마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 엄마가 웃으니까 세상이 따라 웃어. 아마 나한테는 엄마가 세상이니까 그렇겠지.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가. 집, 집, 집. 혼자 있을 땐 슬펐는데 이젠 안 그래. 엄마가 있으니까.밤이 되니까 우리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와. 어? 빵이다. 아까 미처 못 뜯었던 빵이 신발장 앞에 있어. 엄마한테 뜯어달라고 해야겠어.마트로 가는 걸까? 아님 놀이터에? 사실 어디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엄마랑 있으니까. 난, 엄마랑 있어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해.조금 기다리니까 엘리베이터가 와. 행복해.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같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행복해. 엄마 눈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졌어.이제 엘리

  • 강완
  • 2024-02-13
아무튼 사다리가 최고였던 때도 있었어

큰 방을 지나서 한참을 걷다 보면 인적이 드문 통로가 등장해. 여기냐고? 아니. 우리는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야지. 통로의 끝까지 걸어가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몸을 꺾어. 그리고,한참 위쪽으로 치켜뜬 눈을아래로 내리면오, 아니조금만 더아래로내리면그래, 그제서야 조그만 문이 하나 보여.내가 큰 희망 품지 않는 게 좋다고 했잖아. 여기서부턴 조용히.동그란 노란 손잡이를 있는 힘껏 돌려. 더 세게. 조금만 더. 옳지. 소리 안나게 조심하고. 이제 문도 늙어서 조금만 오래 붙잡고 있어도 신음소리를 낸다니깐. 이제어두운 방 안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가. 거긴 밟지 말고. 먼지가 유독 많네.그럼 도란도란 들려오기 시작하는 말소리.한 사다리가 말해."요즘 애들은 너무 약한 재질로 만들어졌어."다른 사다리도."그래. 구멍 하나 뚫렸다고 아우성치는 꼴을 좀 봐."세번째 사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할 줄 아는 게 도통 없어. 구멍이 없는데 사다리는 뭔 얼어죽을 사다리야!""진정해, 마가렛.""당신이 먼저 꺼낸 주제잖아! 이래가지곤 드넓은 세상에 발 하나 내딛지 못하고 도망이나 칠걸!"나는 조용히 킥킥 웃다가 밖으로 나와. 물론 너도 데리고. 너는 당황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내게 말해."저분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라구요?"나는 너의 매끈매끈한 배를 쳐다보다가 이내 말해."그래. 저 먼지가 가득한 작은 방이 세상인줄 아는,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는, 몸에 구멍이 뚫려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 늙은이들. 이제 밖으로 나가자."우리는 푯말이 붙어 있는 방문을 마지막으로 한번 쳐다봐.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사다리들: 필요 없음'더 작은 글씨로는,'아부지 돌아가시면 폐기할 것.'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래된 목조 공방을 빠져나와 놀이터로 향해. 엘리?뭐시기 공장으로 바뀐다던데 그거까진 잘 모르겠고. 아무튼 미끄럼틀이 최고야.

  • 강완
  • 2024-01-1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배봄누리

    제목이 흥미로움. 지금은 초 단편이지만 여기서 끝내지 않고 더 끌어봐도 좋을 듯. 소설 처음 시작하는 거 잘 못하는데 제목이 너무 흥미로워 보여서 들어옴.

    • 2024-01-21 23:09:46
    배봄누리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