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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의 밥 자리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25
  • 조회수 557

  평소와 다름 없던 평범한 주말을 지세웠다. 배가 아파서 급하게 찾아온 7세 남아, 독감에 걸려 힘들어하는 9세 여아, 고열로 고생하는 65세 할아버지 그리고 두드러기가 온 몸에 퍼진 할머니까지 주말 저녁에만 해도 많은 환자들이 왔다.  이들에게 있어 우리 병원은 천국이다. 특히 영유아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소아과를 다녀야 하는데 저녁과 주말에 여는 소아과도 없고 대학 병원도 소아과 의사들이 없으니 그들에게 있어 우리 원은 사막 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 중 하나이다. 내가 24시 병원을 차린 이윤 최소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밤에 눈을 키우는 그런 사람들이 없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오늘 의사 협회 대표에서 연락이 왔다.  "김백철 원장님 이종시 의협 대표입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내게 다가왔다. 나는 갑자기 의협에서 연락이 와서 당황을 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그러자 이종철 의협 대표는 내게 신기한 충격을 주는 말을 했다. 


 그 충격적인 말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종시는 내게 큰 언행으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원장님도 돈벌이가 옛날보다 줄어들게 될거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따를 수 없었다. 그러나 호응은 대충 해줬다. " 그렇긴 하지만 옛날보다 소아과 의사들도 늘어나고 야간에 생기는 병원이 늘어난다면 환자들이 밤을 무서워 하지 않겠군요."그러나 이종시는 나에게 어의 없는 말을 했다 생각했는지 무시하는 말투로 "무슨 원장님이 슈버이처에요? 헌신과 사랑? 요즘 간호사들도 나이팅게일이 없는 것처럼 의사도 슈바이처 없어요." 나는 순간 그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없어요. 환자를 깊게 생각하면 그 의료인이 슈바이처고 나이팅게일이지. 우리 원에는 그런 선생님들 많아요."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소리를 키우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의 옹아리는 계속 입에 올렸다. "슈바이처도 나이팅게일도 모두 밥은 먹을 수 있어야죠. 원장님처럼 그렇게 일하면 사직 하는 우리는 뭐가 되요. 최소한 밥 자리는 지켜야죠." 나는 그의 작은 옹아리에 크게 놀랐다. 작았던 옹아리는 산보다 더 큰 파장을 만들었다.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석번 외쳤다.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그런 내 마음을 이종시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내게 작지만 강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결국 난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가 파업하면 아픈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어르신들은, 병자들은 누가 치료하나요?" 이 물음에 이종시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가 끊난 후 나는 다른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이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정은 쌤아,  형주 쌤아 의협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직 동참할거니?"  정은 쌤과 형주 쌤은 무음의 대답을 눈으로 주고 았다. 그렇게 한참 둘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은 쌤이 입을 열었다. "원장님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형주 쌤이 입을 열었다. "저는 노동자의 단체 교섭권을 사용을 해야 겠어요. 전 파업할게요. 거의 지난 20년간 노력의 결과를 제대로 보장 받고 싶어요." 나는 그런 형주 쌤이 미웠지만 미운 표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를 보내줬다. "그래, 네 권리니 주장을 해야지. 지난 20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어.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집중반에 들어가 힘들게 싸웠으니까."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보내준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막는 것은 그의 권리를 침해하고 내 주장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기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은 쌤도 말을 꺼냈다. "슈바이처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저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나는 그녀 또한 이해를 한다. 나도 고등학생 딸아이가 있는 것처럼 정은 쌤에게는 이제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초5 막내와 중2 첫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선택을 응원한다. 그러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까지 이 병원을 닫으면 많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밤은 이제 다시 무서움의 계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니 마누라와 딸이 있었다. "여보, 당신은 저거에 참여할거야?" 의사 사직에 대하여 뉴스를 보며 지현이가 말을 했다. 이를 본 수정이는 "아빠도 이번에 푹 쉬면서 미래를 생각하자."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묵묵히 물을 한잔 마시고 지현이와 수정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의견을 목으로 박았다. "난 협회에서 이 일 끝날 때 까지 월, 수만 빼고 쭉 병원에 나갈거야." 그 말을 들은 수정이는 놀라며 말을 했다. "아빠, 밥 자리는 지켜야지. 슈바이처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것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생명을 담보로 오는 우리의 미래가 과연 행복할까?" 그러자 수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현이가 "여보 김쌤과 황쌤은?" 이라 물었다. 나는 목을 저으며 "둘은 참여해."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지현이가 푹 앉으며 내게 옹아리를 계속 했다. 나에 대하여 걱정하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지키고 중요시 생각 하는 것은 가족과 내 명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불편한 밤의 그 누군가가 내 가족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길을 이어갔다.


 시위가 시작 되고 협회에서는 계속 휴원하라는 전화가 계속 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시위를 하는 우리 병원 선생들과 의사들 그리고 협회를 미워하지 않는다. 밥 자리도 생존이랑 이어지고 아늑한 밤도 생존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슈바이처 선생같은 의사가 되려면 모든 이들을 이해하고 생명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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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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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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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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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위 소설은 현재 의사 협회의 시위를 주제로 다룬 글이지만 그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고 정치적 색도 피어나지 않아 글틴에 글을 올려요.

    • 2024-02-25 17:19:49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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