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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조각

  • 작성자 검은뱀
  • 작성일 2024-03-15
  • 조회수 309

 아주 오랫동안 숙성한.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 조각을 꺼내들었어. 이 기억 조각을 담았던 그때는 이걸 언제쯤 먹어야 가장 맛있을까 고민하고. 그냥 먹어버릴까도 고민했던 거 같은데...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이 기억에 대한 기억조차 흐려질 정도로 바빠서 잊어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오늘. 청소를 하면서 발견했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해.

 이게 무슨 기억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거든. 무슨 맛일지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망설이게 되네. 이보다 더 어렸을 때라면 아마 고민도 하지 않고 입에 넣었을 텐데. 지금은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그때 가장 용감했던 건 나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나도 그저 겁쟁이일 뿐이네. 그래도. 먹어보는 게 좋겠지?


  ​ ...첫 입은 좀 씁쓸했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쓰더라. 너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었어. 맞아. 초면부터 피 터지게 싸웠던 그날. ​


 두입 째에는 달콤했어. 기분이 좋네. 먹어보길 잘 한 것 같아. 너와 같이 웃고 떠들던 일상의 기억 이더라. 항상 비슷했던 평범한 나날들 말이야.


 ​ 그리고 마지막 입은... 언젠가 돌아올 너를 위해 남겨두었어. 마지막도 달콤했으면 좋겠네. 너는 달콤한 것들을 매일 달고 살 정도로 좋아했잖아.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해. 마지막은 어떤 맛이었을 지도 궁금하고.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금방 잊어버리고 말겠지? 그리고 또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열어보게 될 테고. 그때는 네가 내 옆에 있어서 같이 맛볼 수 있다면 좋겠어. 죽기 전에 다시 한번 열어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검은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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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찾아 올 때까지

텅 빈 그릇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폭신한 방석이 깔린, 편하고 따뜻한 의자가 자리 잡은 건너편에는 온기가 떠나간 지 오래인 도자기 그릇이.방석이 깔리지 않은, 불편하고 차가운 의자를 지키는 내 앞에는 음식이 담겼던 흔적조차 없는 나무 그릇이. 누군가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지키는 일.몇천 년이고 해온 일임에도 그만둘 수 없는 지루한 일이다. 먹지도 않을 수프를 혹여 누군가 찾아올까 끓이고 대우다 또 하루를 흘려보내고. 바뀌지도 않는 풍경을 보며 지나간 기억을 더듬는다. 그렇다고 누군가 찾아와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나와 마주한 이들이 처음 짖는 표정은 여전히 싫다. 삶에 미련이 남아 백여 년을 떠돌다 마지막으로 보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동안 무뎌졌던 마음을 무너뜨리기에는 너무나 충분할 테니까. 또, 얼굴은 같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니까. 더 슬프겠지. 물론 이유가 표정뿐만은 아니다. 내게 하는 말들도 싫다. 불륜, 학대, 폭력.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 그래도 사랑 이야기는 나쁘지 않다. 불륜 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해 미련이 남은 이의 이야기는 그나마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너무 외롭다. 이 방은 식탁과 의자 두 개. 숟가락 두 개. 그릇 두 개. 가마솥과 불. 차가운 돌바닥. 그뿐이다. 너무 지루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간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제는 내가 미련이 생길 것 같다. 나는 내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 채로 남의 어두운 이야기나 듣고, 위로의 말 조차 해주지 못한 채 그들을 무로 돌려보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아, 또 하루가 지나간다. 여전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라도 좋으니 누군가 찾아오면 좋겠다. 날 보고 울고불고 때 써도 좋으니. 누군가... 또 수프를 만들고 대운다. 누군가 찾아올 때까지.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우주가 오늘따라 더 외롭고 춥게 느껴진다.

  • 검은뱀
  •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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