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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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망할 반지하 방에는 물이 스며들어왔다. 비는 멈춘 지 오래이건만. 이미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을 푸는 와중에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며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역시 이 놈의 가난은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인지, 아니면 내가 흐르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 망할 가난은 물줄기와도 같아서 퍼내고 퍼내어도 끝이 없이 쏟아지고. 결국엔 이 방을 무슨 어항처럼 만들고는 우리를 다 익사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창문 바로 밑에 주전자를 두고 다시 테이프를 덧붙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동생이 풀어야 한다고 떼를 썼던 문제집과 내 소설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위 선반에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은 동생의 교복이 쫄딱 젖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그러면 불행이 너무 큰가? 알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또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아빠가 지어주신 민주라는 이름은 총명할 민慜에 모일 주輳가 아닌 망할 민泯에 살 주住겠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아니지. 주는 살 주住가 아닌 젖을 주澍인가? 물에 빠진 쥐새끼마냥 쫄딱 젖은 내 꼬락서니를 보면 말이야. 사실 잘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시궁창 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별로 상관할 필요도 없긴 했다. 어떨 때는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도 옛말. 지금은 시궁창 인생에라도 머무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고는 했었다. 태어나 보니 집은 반지하에 어머니라는 사람은 빚을 잔뜩 진 채로 내 나이 열하나에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다는 사실은 어지간히 운이 더럽게 없지 않고서야 일어나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나마 민환이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세상을 뜨셨다. 사인은 영양실조. 현대 사회에서 웬 영양실조가 사인인 경우도 있냐고 하지만 그 경우가 우리 가족이었다. 30대 청년이 아사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요즘 누가 영양실조나 아사로 죽냐는 댓글을 바라보며 그래, 그 경우 여기 있더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할 때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던, 삐쩍 말라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나마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지 못했다. 엉엉, 또 울면서 아빠, 아빠 가지 마요, 라고 떼를 썼다. 내 나이 열아홉, 민환이 나이 아홉. 영장사진을 겨우 드는 민환이의 손을 꾹 붙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네 손에는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누나가 민환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라고. 엉엉 우는 민환이의 귓가에 손을 대고 다짐과 같은 말을 뱉었다. 그 다짐, 아직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교복을 말리러 밖에 나선 이 순간에도 민환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래도 누나 최선은 다했어,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붙은 대학교도 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던 삶이었다. 공장에서 보는 아줌마들의 반은 내가 학생 때 사고를 쳐서 어쩔 수 없이 공장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홉부터 애지중지 키운 민환이는 나에게 있어 자식과 같은 아이였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다. 크레파스로 가족 그림을 그려왔을 때 한 구석을 차지한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로 누나 최고!, 라고 쓴 글을 보며 역시 대학에 가지 않고 돈을 벌기로 한 내 선택이 옳았노라고 자화자찬을 했었다. 그 결정에 대해 이따금씩 후회하는 순간들이 오면 그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고 그 생각들을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말씀하셨지. 이제 이 집안 가장은 너야, 민주야. 환이를 잘 부탁해. 네, 아버지. 제가 환이 행복하게 해줄게요. 아빠는 그 말 한 마디에 굳어가는 얼굴 표정을 환하게 바꾸시며 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죽을 때에 청각이 가장 늦게 죽는다고 하니 엉엉 우는 내 목소리는 들으셨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름 평안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우리 아버지. 살면서 고생 많이 하셨으니 가실 때에는 편히 가셔야지, 라고. 아버지는 이미 눈을 감으신지 오래인데 그 앞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환이는 그 와중에도 내 다리를 꼬옥 안고 있었다.
스물아홉이 된 지금, 열아홉의 나를 되돌아보자니 가슴 아픈 일도 많고 후회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 최선은 다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빠가 말씀하신 대로 가장으로서의 일도 열심히 하고 환이에게는 부모 노릇, 누나 노릇 다 했다고 생각한다. 물에 젖어 무거워진 교복을 들고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현실은 여전히 반지하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도리어 더 가라앉지 않도록 헤엄치고 있는 중이라지만 내 딴에는 그것마저도 열심히 살아온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환이가 나를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원망은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몇 분. 어느 새 세탁소 바로 앞. 뒤를 돌아보니 물줄기가 내가 걸어온 발걸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탁소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최대한 교복의 물기를 짠 뒤 세탁소에 들어갔다. (그래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여전했지만.) 세탁소 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셨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어, 민주 왔어? 이번에 빨리 왔네.”
“아, 민환이 교복 빨아야 돼서 왔어요. 방금 전에 잠시 비가 좀 억수로 왔더니 반지하가 조금 잠겼어서...”
“그러게 말이야. 저기 바다 봐. 지금은 잠잠한데 방금 전에는 무슨 태풍 친 줄 알았어. 바람도 엄청 불었다니까?”
세탁소 아주머니의 손길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문득 내 인생도 바다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는 고요한 때라도 있지.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오다 보니 더욱 그런 것일까. 내 인생의 고요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민주도 민환이도. 우리 둘 다 물과 관련된 이름인데. (아버지가 지어주신 한자는 그 한자가 아니긴 하지만.) 우리는 바다처럼 못 사는 것 같았다. 인생은 바다와 같아. 이 곳에서 낳고 자라 바다를 동경했던 아버지가 했던 말씀. 응, 아버지. 그거 아닌 것 같아. 우리 바다는 너무 거친 곳에 있고, 바람도 너무 불어요. 속에서 꾸역꾸역 뱉어내려고 했지만 끝내 삼켜버렸던 그 말. 우리 바다는 파도도 너무 높고 바람도 셌다. 우리의 배가 금방이라도 침몰할까, 조마조마했던 나날들이 아직도 어렴풋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 조마조마함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도 했다.
“왜, 안 믿겨?”
“안 믿는 건 아니고요. 그냥 신기해서요. 금방 금방 이렇게 바뀐다는 게. 좋은 의미로 말이에요. 저는 너무 꾸준해서...”
“에이. 꾸준한 게 좋은 거지.”
탈탈탈. 돌아가는 세탁기 소음에 맞춰 세탁소 아주머니가 손을 저었다. 글쎄, 꾸준한 게 좋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꾸준함은 좋지 못한 것 같았다. 십 년 간 꿈도 저버리고 살았던 기억들은 이 꾸준함을 버리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 같은데. 이 꾸준함은 내 몸에 눅진히 달라붙은 채였고 아마 내가 죽더라도 내 사인은 아빠처럼 영양실조가 아닌 익사일 것이다. 반지하에 물이 가득 차 익사하든, 아니면 저 바다를 바라보다 바다가 나를 덮치든 간에. 어쨌든. 눅진하게 달라붙은 꾸준함을 어떻게든 떼어낼 수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살면서 사랑은 필수라고 말하던 노래 가사와 말과는 달리 그 필수도 외면한 채 살아온 삶 아니던가.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 원망 안 하세요? 어린 시절의 내가 아버지께 그리 말하자 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더랬지. 응, 안 해. 왜요? 그게 사랑인 거야.
그러면서 뭐라고 했더라 사랑은 물거품이라고 했던가. 물에 빠졌을 때 물거품이 쉴틈도 없이 피어오르는 것, 그리고 사라졌다고 믿었을 때 즈음. 다시금 피어오르는 것. 그게 사랑이라고 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뭐가 됐든 난 그 때부터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게 사랑이라니. 사랑이 뭐 저래.
사랑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던 낭만이 아니었다. 사랑은 현실이었고 현실은 곧 우리를 묵직하게 눌러오는 무게였고. 무게를 어느 정도 견디기 위해선 사랑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아빠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녀석이 그런 것이라면 없어도 좋았다. 사랑이라는 녀석이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무거운 짐과 불행을 던지고 지 혼자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마저도 용서해주는 것이라면 그 딴 녀석은 없는 게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가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 곳에서 나고 자라 평생 한 것이라곤 바다에서 배를 타거나 물고기 잡는 일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그 돈을 우리가 갚기 전에 꾸역꾸역 갚으신 데다 원망마저 하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에선 멋있는 사람이었고 어떤 의미에선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민환이는 우리 아빠를 보고 머저리, 바보. 혹은 병신이라고까지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 우리 아빠는 진짜 병신 같아. 왜? 지 혼자 원망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 그렇게 간 거잖아. 민환이는 바다를 구경하러 간 내게 담요를 둘러주고는 말했었다. 때마침 바닷바람이 불어 담요는 펄럭, 민환이의 머리카락은 살랑거렸다. 글쎄, 나는 우리 아빠가 참 안타깝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누구를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길 처지는 아니었지만. 눈을 살짝 감으면 암흑 속에서 홀로 웃음을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민주야, 민주야. 왜 계속 부르는데. 가뜩이나 알바를 끝내고 집이 아닌 병원에 가야 했던 게 서러워서였을까.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아빠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미소를 계속 짓고는 그리 답했었다.
“아, 그게 민환이는 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민주는 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거든. 그 사람, 갈 때도 자기 물건은 다 갖고 나가서 흔적이 네 이름밖에 없어.”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민주야, 민주야. 아빠가 부르는 민주는 좋았지만 그 사람이 지어준 이름인 민주는 미웠고. 아마 한 평생 나는 민주라는 이름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겠지.
민환아, 그건 병신이 아니라 그냥 미련한 사람인 거일 거야. 네가 다 크면 알게 될 걸? 누나, 나 이제 고3이야! 그리고 나는 그 병신보다 누나랑 내가 훨씬 더 불쌍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어깨를 씩씩거리곤 민환이는 돌아섰다. 그 와중에도 담요는 꼼꼼하게 매주는 것이 세심한 민환이의 성격을 보여주는 행동인지라. 그 자리에서 웃다가 바다를 보며 울곤 했다.
바다는 그런 나와 달리 고요했다. 이따금씩 발을 때리는 물소리만 찰싹. 철렁.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아빠가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조용히 세탁소 너머에 있는 바다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런 내게 세탁소 아주머니는 세탁이 다 끝났음을 알리는 삐이- 소리에 맞춰 넌지시 말을 던졌다.
“민주야.”
“네.”
“너도 이제 슬슬 시집 갈 나이 되지 않았니?”
시집이라니요. 어설프게 웃음을 짓곤 역으로 다시 물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사랑이라도 해봤으면 좋겠건만. 아빠를 보면서 배운 거라곤 사랑은 미련한 짓이라는 것과 인생을 살면서 사랑은 우리에게 사치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기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주머니가 말씀을 하시길, 참 결혼을 하면 현모양처가 될 것 같은데, 라며 꼭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글쎄요, 라고 말을 길게 늘어트리면서도 멋쩍게 웃었다. 다 마른 교복이 다시 구겨질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탁소에서 나갈 때쯤 급하게 확인해 보니 쭈글쭈글해져있었다. 그래도, 축축한 것보단 쭈글쭈글한 게 나으니. 민환이한텐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주머니한테 내가 뭐라 말했었더라. 기분 상한 티가 나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걱정이 들기도 했다. 여기 세탁소가 동네에서 제일 싼데. 다음에 갈 때 아주머니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실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모양처라니. 현모양처라... 어렸을 때부터 빨래니, 설거지니. 집안일은 곧잘 잘했으니 아주머니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에 기분 나빠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도 맞았다. 그래도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속이 답답했다. 아, 그냥 바다나 보러갈까.
이상하게도 집에 가는 길,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이 바다로 향하자 쉽게 떨어졌다. 바다 근처에 살면 이게 참 좋았다. 머리가 복잡할 때 바다를 보러 가고 그 앞에서 사색에 잠길 수 있으니. 지금처럼 늦은 시각엔 사람도 별로 없을 게 뻔했다. 내 예측은 역시 맞아떨어졌고, 오랜만에 모래사장 한 가운데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바다란 정말 걱정이 없는 존재처럼 거침없이 밀려들어왔다. 잠깐 발을 담가볼까 생각했지만 바다가 너무 차가울 것 같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교복이 물에 다시 젖을까 고이 안고는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바닷물이 이따금씩 종아리에 튀기긴 했어도 교복까진 튀지 않았다. 그래, 교복이 젖으면 정말 낭패지.
세탁소에서 봤을 땐 고요했지만 바다 근처에 서니 은근 쌀쌀했다. 역시 밤이 되어서 그런 걸까. 무의식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가 아무도 없음을 알고 벌렸던 입을 다시금 닫았다. 늘 바다엔 아빠나 민환이와 같이 와서 그런지 혼자 온 적이 별로 없어 아직은 낯설었다.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던 별들과 그에 빛나는 바다. 아빠는 바다에 오면 엄마가 떠오른다고 했다. 민환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처음 만난 제 여자친구가 떠오른다고 했고 전에 세탁소 아주머니께 여쭈어 봤을 때는 제 아들이 생각난다고 말씀하셨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나는 손을 뻗었다. 바다에 닿기는 턱없이 부족한 거리였지만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아빠도, 민환이도, 세탁소 아주머니도. 바다에 오면 떠오르는 것이 명확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떠오르는 것이 단순한 책 따위 같은 것이라 이걸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추상적이었다. 책 너머로 환이의 얼굴 역시 떠올랐지만... 가끔 가다 책을 보면 여전히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그게 후회를 안 하는 거라고 말할 수는 있을는지. 누군가 그렇게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요, 라고 답할 것이었다.
그래, 환아. 사실은 네가 나한테 대학 안 간 거 포기하는 거 후회하냐고 물었을 때 안 한다고 얘기한 거. 거짓말이었어. 너의 그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고 열심히 일했다가도 이따금씩 엉엉 울었어. 스물이 되던 해, 공장에서 일을 끝마치고 민환이가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집 밖에 나가 울었던 나날들. 꼬르륵 소리가 나도 내가 아니면 민환이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이 악물고 살았던 순간들.
어쩌면 아주머니가 나를 현모양처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 묘하게 거슬렸던 이유는 아마 이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놓인 선택지들이 떠올랐다. 바다 앞에서는 그것들이 모조리 기억이 났다. 아마 바다는 나 같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이 하나 둘 모여 바다가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빠가 바다를 사랑했던 건. 바다 앞에 서면 이런 순간들이 떠올려서 그런 거였을까... 종종 사람들은 말하지. 바다 앞에서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네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바다 위로 자그맣게 떠오르는 물거품을 바라보며 아빠 역시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했다.
내 사랑은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멀고, 사치이고. 그제야 알겠는 것은 아빠가 담았던 사랑과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다르다는 것. 그것 하나였다. 사랑이란 종류가 다양한 것이었다. 아빠가 했던 사랑과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너무 달랐다. 그런 부분에선 자신을 보면 저 역시 아빠랑 같이 미련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웃음이 나왔다.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는데 눈에는 눈물이 뚝뚝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나 역시 내게 있어 사랑은 그것보다도...
“아줌마, 여기서 뭐하셔.”
“그냥. 바다 구경.”
“눈물이나 닦고 얘기하지.”
“바닷바람이 시려워서 그런다.”
순간 그림자가 졌다. 환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고개만 들어보니 자연스럽게 교복을 가져간 환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앉았다.
우리 반지하 방, 물 찼어? 찼는데 다 뺐어. 누나가? 응. 교복은 세탁소 갔다 와서 빨았어. 입고 갈 수 있을 거야.
나름 제 생각해서 그리 말해줬더니만. 환이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여러 번 치고는 벌떡 일어섰다. 모래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누나는 왜 그렇게 살아?”
왜 그렇게 살다니. 그건 무슨 말일까. 입을 앙 다문 채 환이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아빠랑 누나랑 둘 다 똑같아. 둘 다 너무 미련하고 너무, 너무... 말하다 말고 환이는 하늘을 두어번 쳐다보고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눈이 가느다랗게 떠졌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물으니 환이는 그리 답한다. 누나 생각에 배려인 게 다른 사람한테 배려가 아니라고... 환이는 주저앉은 채로 머리를 털었다. 퍽 거친 손길인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환이 녀석, 요즘에 편의점 알바 한다고 신경질을 통 부리더니 오늘은 유독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저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환아. 난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
“뭘?”
“난 나름 아빠와의 약속도 잘 지키고 있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 말해도 여전히 환이의 얼굴은 붉었고 오히려 더 빨개져 있었다. 아예 목에 핏대가 선 것을 보니 엄청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다시금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니 환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바다가 울린다.
“난 누나가 누나 인생 살았으면 좋겠다고!”
표정은 잔뜩 화가 난 주제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깨를 씨익 씨익거리곤 환이는 이어 보지 말라고 말했다. 벙찐 내 표정을 뒤로 한 채 환이는 쏟아지는 폭포마냥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계속해서 아빠, 아빠...그 머저리같은 사람 때문에 누나가 이렇게 사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나만 생각하지 말고 누나도 좀 생각해. 누나도 바보야? 내가 누나 밥 먹여준대? 누나 인생은 결국엔 누나 인생이라고. 내 인생 아니라고! 정도껏 해야지 진짜... 불쌍한 사람처럼 왜 그렇게 구는데.”
눈물 때문에 목소리가 형편없이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다의 소음과 뒤섞인 목소리는 어찌 보면 처절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처음 든 생각은 날 불쌍하게 여기니? 였지만 왠지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난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 안 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도 어찌 보면 내 선택이야.”
솔직히 말해서 후회 안 한다는 거, 그건 거짓말 맞아. 그렇게 말하니 환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린다. 그럴 거면서 호기롭게 말을 내뱉은 환이가 불쌍하면서도 슬펐다.
“그렇지만 난 다시 돌아가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지금 내 인생 내가 선택한 것으로 이루어진 거고 물론 짜증나고 여전히 속상한 부분도 많지만 말이야.”
나의 사랑은 남들이 보기엔 복잡했다. 아빠는 사랑하는 것들을 많이 가지지 말라고 했던 주제에 그 무언가를 유독 너무 사랑했고. 나 역시 유독 사랑하는 것이 있었으나 그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나타났기에 그것을 포기했다. 유독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내 어깨에 달라붙어 가끔 가다 나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울지 말고 들어. 내 인생은 네가 불쌍하게 여길 게 아니야.”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린 내 동생이 더 눈에 밟혔다. 아홉 살, 아직 부모의 품이 필요할 때. 내 다리에 달라붙어 누나, 누나라고 부르던 너를 어찌 친척집에다 맡기고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르고 아직도 이 개같은 가난에서, 반지하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마찬가지이지만 말이야, 환아.
“그렇게 살았으면 더 후회 많이 했었을 걸.”
잔뜩 나를 머저리라고 욕했으면서 내 말을 듣자 환이가 엉엉 운다. 말 그대로 엉엉. 소설책에서나 볼 법한 그 행동에 미소가 가득 지어지면서도 나 역시 엉엉 울 것만 같았다. 기껏 세탁해 놓은 교복을 잔뜩 눈물자국으로 더럽히면서 우는 나의 동생을 품에 안아주었다. 아홉 살 때는 번쩍 들어줄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덩치가 산만하다.
아빠가 유독 사랑한 것은 아빠를 망쳐놓았지만 내가 유독 사랑한 것은 날 살게 만들어주었다. 사랑은 참 모순적이었다. 소설책을 쓰길 바랐던 내 손이 불어터지고 주름이 잔뜩 졌지만 통통한 볼 위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지금 이 손이 내게 있어 더 값진 것이었다. 그것을 너는 모르겠지만, 환아. 나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오랜만에 떡볶이나 먹자고 우는 애를 다독였다. 울음은 바다와 섞인 채로 서서히 사라졌다. 우리의 작은 반지하 방에선 작게 물거품이 피어올랐다.
*
“다녀올게.”
“잘 갔다 와.”
쭈글쭈글해진 교복을 입은 환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몰래 키득거렸다. 민환이는 그런 내 모습을 알았는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곤 반지하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경쾌한 소음과 동시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선반 바로 위에는 아직 젖지 않은 소설책이 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그 쪽으로 향했다. 곧 공장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지만 가방 안에 휴대폰 대신 그 소설책을 넣었다. 퇴근하면서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책. 묘하게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환이는 아빠를 바보, 머저리 혹은 병신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아빠 말이 맞았다. 물거품은 계속해서 피어나고 잊혀졌다 싶을 때 즈음 다시금 피어오르는 것.
우리의 반지하는 작은 어항 같은 게 아니었다. 작은 바다, 그 자체였다. 물거품은 피어오르면서 사그라들지만 또 다른 모양의 물거품이 계속해서 바다 위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나의 물거품도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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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를 키울 명분이 없어.”그 사람이 나를 고아원에 두고 간 날 (정확히는 버린 날), 원장님이 아이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냐는 물음에 한 말이었다. 내 나이 여덟.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모를 나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며 이혼 사유가 내가 그 사람의 핏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괜스레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 사람이 던지듯 준 나의 생일 선물, 그니까 아주 작은 곰인형만 만지작거렸다. 곰인형 등에 놓인 지퍼를 열면 보이는 나의 돌잔치 사진. 그 사진 속에는 그 사람도, 엄마라는 사람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축복을 받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아닐까. 그 사람이 원장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웃고 있었던 그 과거의 기억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으련만. 머리를 붙잡고서 기억을 더듬어봤자 내게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그 사람과 엄마라는 여자의 고함소리밖에 없었고. 그 고함소리의 내용들은 나는 이 애가 내 애인 줄 알고 키웠어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화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어깨를 씩씩거리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손을 뻗으면 안아주지 않던 그 모습에서, 그리고 오늘 어디 좀 가자고 말하며 내게 자장면을 사줬다는 그 사실에서. 나는 알았다. 오늘이 이 사람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매번 풍기는 술 냄새가 싫긴 했지만, 그 사람이 술로 인해 기절하듯 잠든 밤,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내고는 했었지만. 그게 헤어지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아니었는데.나도 모르게 떠나려는 그 사람의 셔츠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웃음 한 번 짓고선 나와 함께 자장면을 먹자고 말할 줄 알았다. 그 사람은 내게 미안한 일이 생기면 자장면을 먹자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자장면을 두 끼 연속 먹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장면 먹자는 말 대신, 안 돼 라는 단 두 글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건 미련 없다는 듯이 내 손을 때리는 손길. 찰싹, 경쾌하면서도 구슬픈 소리가 그 빈 공간을 울렸다.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나를 안아주고 있던 원장님은 이어, 그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나를 떠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내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 호칭이 역겹고 불쾌하며 듣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라는 아주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왜? 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뇌 속에 진득하게 남아 나를 콕콕 건드려댔지만 그 사람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를 떠나갔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눈물이 갑작스럽게 나왔다. 원장님이 내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주며 내 눈물을 그 주름 진 손으로 닦아줄 때까지 내 눈물은
- 난바다
- 2024-06-24
너는 도로 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같았다. 그것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이 도시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하필 도로 중앙에 피어난 꽃이라 차들이 한 번쯤은 밟고 지나갈 법도 한데 용케도 이 도로에서 너는 꺾이지 않고 제 모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떨어졌니?-떨어졌어.-속상하지 않니?-속상하지 않아.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말들 속에서 슬쩍. 너의 노트북에 비춰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대상 - 박규혁, <네가 없는 밤에>최우수상 - 이세영, <여름 날, 우리>박이현, <너는 내가 너라는 한 글자 때문에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모른다>우수상 - 김소연, <울지도 웃지도 마>김예령, <너는 내게 파도처럼 밀려와>최이준, <여우>장려상 - 성준, <우리의 일기장이 소설이 되면>이화, <너는 웃었고, 나는 울었지>이바다, <언젠가의 당신의 죽음으로부터>최예림, <죽으려고 했으나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총 열 명. 열 명이나 되는 이 명단들 중에서 너의 이름 세 글자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의 글은 남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심오하며 낯설고 복잡했다. 그걸 너에게 말할 때마다 너는 그저 알아, 라는 두 글자로 말을 일축할 뿐. 너의 글은 여전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곧 고치길 마련인데. 여전히 너의 소신을 밀고 나가며 글을 쓰는 네가 신기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도로 한 가운데에 핀 들꽃 같았다. 아무도 손 댈 수도 그리고 손대지도 않은 그런 꽃. 그래, 흔히들 사람들이 아는 장미, 민들레, 안개꽃. 그런 꽃들도 아닌 그저 이름 모르는 들꽃 말이다. 그래서 한 편으론 네가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의 글은 정말 완벽했다. 그래, 남들이 원하는 그런 진부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글. 그런 글을 쓴다면 너는 단숨에 인기를 많이 받을 것이 뻔했다. 근데 너는 왜 쓰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너라면 진부하지 않고도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머리도 좋으니 금방 좋은 소재를 찾아 막힘없이 쓸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려고 했다. 좋게 말하자면 모험심이 있으며 줏대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세며 돈을 벌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런 네가 답답했다. 너의 재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그런 네 모습이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개 같은 편의점 알바도 때려치우고 너는 오롯이 글만 바라보며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는 그게 더 싫다는 양 말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애정결핍과 피해망상으로 똘똘 뭉친 내 입장에서 너를 보자면 너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가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술성을 논하는 너의 모습이란. 애초부터 글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내게 있어 상처로 돌아왔다. 자격지심이라는 것은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재능이 너에게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질투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가도 네가 쓴 글이 황홀하여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
- 난바다
- 2024-01-30
언젠가부터 이 세계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도 현실은 개 같은 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나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꼬이고, 우울하며 히스테리 역시 많이 부렸지만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다는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이 개 같다고 느낀 것은 그저 내 성격이 남들보다 꼬인 것이 이유일 것이며 그럼에도 일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살기 나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슬픔도 느낄 줄 알았지만 사소한 행복도 감사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근데 지금은 정말 개 같았다. 너무나도. 정말, 정말. 너무나도 개 같았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접었다. 저번 달에만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간 숫자였다. 총 셋. 한 명은 나의 어머니였고 한 명은 나의 친우였으며 한 명은 나의 은인 격이 되는 선생님이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휴대폰 메모 앱을 켜 천천히 지난달의 그 비극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번 달, 첫 주.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심. (의식이 있으셨음.) > 그러나 하루가 지난 후에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 > 새벽,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정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등산을 즐겨 하시는 등 운동도 많이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죽음이 생길 수 있고 그것 역시 비극이나 한 번쯤은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채 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거신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그만...” 이라는 말과 함께. 검은 옷이 어색해지기도 전에 나는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반평생을 함께한 친구이건만. 이것 역시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삼일 전만 해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날 달래준 자식이었는데. 착한 놈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구석에서 엉엉 울다가 결국 진정되었다가. 다시 울다가를 반복하며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죽음이란 무게가 내게 너무나도 무거워 곧 나를 압사시키듯 날 덮쳤다. 하지만 이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번 달이 다 끝날 무렵, 생들에게서 받은 카톡이 뭐였더라? “선생님께서 암 투병 하시다 돌아가셨대.”였나. 아, 시발. 그 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절로 욕이 입 끝까지 차올랐다. 급히 휴대폰 앱을 끄고 내 입부터 틀어막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며 우주로 보자면 나는 얼마나 작은 미물이겠는가. 그럼에도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가에 대하여 울분을 감추긴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꼬이고 개 같고 히스테리도 부렸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신?,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여쭙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 난바다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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