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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기

  • 작성자 사즈
  • 작성일 2024-06-17
  • 조회수 123

*정끝별-회복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소설로 개작 해보았습니다. 동아리 시간에 '시를 소설로 바꾸기' 활동을 하며 써뒀던 글인데, 수정해서 올립니다 :)


회복기-정끝별

 

아침 햇살이 슈거파우더처럼 내려앉은 이월의 소파에서 그루밍하다 사르르 잠이 든 고양이

 

조금 전에 나는 저 소파에 기대앉아 신열에 젖은 속옷을 식히며 남산타워 뒤로 떠오르는 해를 맞았어

열이 내렸을까 겨드랑이로 파고든 고양이가 가르릉가르릉 불러주는 골골송을 선잠인 듯 듣다 일어나 고양이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밥을 주고는

수란을 띄운 말간 순두부를 끓여 늦은 아침을 먹는 내내 계란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무심한 척 내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 조그만 심장이 어찌나 쿵쿵거리던지

설거지를 하고 다시 식탁에 앉아 연한 커피를 마시면서 슈거파우더 뭉치가 된 소파의 고양이를 보고 있어

 

이제 봄이겠구나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봄이 다디단 이유일거야.

 

 

-

회복기

 

 소파에 기대앉아 바라보는 창밖은 공연 시작 전 작은 조명 몇 개만을 켜놓은 무대처럼 어둡기만 하다. 지혜는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을 멍하니 응시하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작게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온 서늘하고 깨끗한 겨울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는 생각을 했평소 불면증이 심해 잠에 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고 겨우 잠에 들어도 수면의 질이 나빠 중간에 자주 깨 뒤척이기 일쑤였다설상가상으로 사흘 내내 야근을 해가며 일을 쳐낸 탓인지아니면 최근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해 왔던 데다 절연한지 오래인 부모가 어떻게 알고는 전화번호를 알아내 돈을 내놓으라 행패 부렸던 일 때문인지지혜는 분명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려 있었다몸살 기운이 있더니 어제 점심 무렵부터는 아예 오한 때문에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몸 상태가 너무 나빠 해열제를 먹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뉘었다근육 하나하나가 저리고 뻐근한 느낌인 데다 잠마저 오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리며 앓다 잠에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지혜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삼십 분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밤새 식은땀을 흘려 온몸과 이불이 축축했지만 오랜만에 깊이 잔 덕인지 몸만은 한결 가뿐했다이불 빨래나 샤워 같은 현실적인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에지혜는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거실의 소파로 향해 몸을 기대고 앉았다다만 일출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스물일곱 생애 단 한 번도지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애초에 2023년 12월 31일의 해나 2024년 1월 1일의 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해돋이를 보러 가족이나 연인과 정동진이나 호미곶까지 가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지혜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 전체를 좋은 대학 취업 잘 되는 과에 가기 위해 모두 바쳤고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학비를 벌고 공과 대학 특유의 무자비한 공부량을 쳐내기 위해취업하고 나서는 야근과 불면증회식이 돌아가며 찾아온 탓에 항상 문제집을 풀다전공 서적을 들이파다불면증으로 뒤척이다 저만치 떠오르는 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그렇기에 지혜에게 일출은 편안함을 안겨주기보단 치열히 일상을 살아내며 생긴 각종 상흔을 비추며 봐네가 이렇게 살고 있어라고 말해주며 뿌듯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자연 현상이었다.

하지만 크게 아프고 겨우 아침을 맞자일출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들이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봄이면 움트는 냉이처럼 솟아 올라서였고그게 바로 지혜가 새벽 다섯 시 삼십분에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이유였다.

 

 열어둔 창문 탓에 추웠는지 고양이 모카가 캣타워에서 뛰어 내려와 슬그머니 지혜의 품을 파고들었다털이 보송하고 따끈한 모카는 지혜의 무릎에 몸을 뉜 채로 골골거리기 시작했다지혜는 모카를 신생아 안듯 조심스레 안아 올리고는 창문을 닫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지혜는 무릎에서 골골거리는 모카를 쓰다듬다 눈가를 두드린 햇살을 느끼고는 창밖을 바라봤다가을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하늘이 점차 붉어져 가고 있었다저만치 해의 머리 꽁지가 설핏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지혜는 멍하니 창밖만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남산타워가 햇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는 모습도주홍빛 햇살이 앙상한 겨울나무를 포근히 감싸안는 모습도하늘이 고등학교 미술 시간 팔레트에다 흰색과 남색빨간색을 뒤섞었을 때처럼 이리저리 바뀌는 모습도 모두 지켜보았다무언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스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을 채우는 것을 느끼며 지혜는 그렇게 창밖을 응시했다자신을 힘들게 하던 모든 것들은 과거에 두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낙관이 잠시나마 마음속에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전에는 없던 종류의 즉흥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는 것을 보고난 뒤, 지혜는 일어나 모카의 화장실을 치우고 물을 갈아주고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줬다오로지 모카만을 위한 일들이었다


이제는 '나'를 위한 일을 할 차례다. 지혜는 냉장고 문을 덜컹 열어본다. 밑반찬은 물론 배달 음식 먹다 남은 것조차도 없는 텅 빈 냉장고의 선반 한 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순두부 팩과 계란 몇 알이 눈에 띈다예전에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 세일 문구만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던 게 지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두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건 왜 샀던거지?”

 

지혜는 순두부 팩을 집어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그러니 괜히 충동 소비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겠어.”

 

팩을 뒤집어 유통기한을 보니 유통기한은 지난 지 오래지만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다르다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과 충만함이 마음속에서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순두부로 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요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계란을 넣은 순두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계란을 좋아하는 모카가 순두부의 계란 냄새를 맡았는지 밥을 먹는 내내 지혜의 무릎 주위를 맴돌았다따끈한 순두부는 잦은 기침으로 상한 식도를 달래주며 부드럽게 넘어가고절반쯤 그릇을 비웠을 때 모카는 결심이라도 한 듯 지혜의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와 털썩 주저앉아 몸을 말고 가만 잠을 청한다딴에는 고고한 척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지만그에 반해 무릎 위로 느껴지는 모카의 심장은 세차게 뛰며 나는 지금 살아있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지혜는 밥을 다 먹고는 믹스커피를 한 잔 태워 식탁에 앉았다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컵과 2월의 햇살을 받고 털이 설탕 코팅이라도 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슈거파우더 뭉치가 된 모카를 번갈아 보는데뜬금없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단 계절적인 의미의 봄만이 아니었다막 병에서 회복되고 난 다음이라서인지 업무 스트레스나 실연의 아픔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이제 봄이겠구나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번져갔다지혜가 마시던 커피의 내음이 거실 전체를 향긋하게 채우듯이그렇게 오래도록 따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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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다경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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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즈
  • 2021-05-16
소리

그 일은 아주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아주 우연히 일어났고 아무도 의도치 않은 일이니 어쩌면 실수에 더 가까울 일이었다. (거짓?)   우린 너무 어렸다. 열여섯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에겐 해야 할 공부가 있었고 꾸려가야 할 미래가 있었다. 그 미래에 출산은 단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사항이었다.  (확실한 진실)   -   열여섯 생일날 서로의 몸이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졌던 것은 결코 서로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현지유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으려 애썼다. 초콜릿 케이크 때문에 약간은 달착지근했던 세 번째 키스와 조금은 야릇했던 좁은 방의 분위기도 결코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의도된 것일지도 몰랐다. 지유는 '남자친구가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 준성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구절절 더 많은 얘기를 덧붙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둘은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버려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지유는 남자친구와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했다. 우린 발에 채이는 보통의 중학생 커플과는 다르다고. 단지 그런 생각 때문에, 그리고 달아오른 이 분위기를 깼다가는 어색한 그 후의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심결에 저지른 일이었다. 지유네 반 담당 도덕 선생은 청소년 관계가 문란한 학생만 하는 것이며, 그, 조그만 쾌감 하나 느끼려다 미성년 부모라는 딱지가 붙는다고 했다. 현지유는 조그만을 아주 힘주어 말하던 도덕 선생의 눈동자를 좇으며 자신이 저저번주 저지른 일에 대해 생각했더랬다. 그녀는 청소년 낙태가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결과라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무책임했던가? 인터넷에서 피임법을 보고 실천했고 (그 피임법이 실패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건 현지유와 김준성 둘 다 몰랐다.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계 후 한 달째 되던 날, 임신 테스트기까지 사용했다. 이정도면 적어도 무책임하게 행동한 건 아니라고 믿었는데.   이 길다란 흰색 막대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두 줄짜리 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책임한 행동의 무책임한 결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지유는 그 날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할 터였다. 퀴퀴했던 화장실의 공기와 온갖 오물과 뭉쳐져 버려져 있던 휴지뭉치들, 쉬는시간이라 웅성이는 말소리가 복도를 타고 화장실까지 닿았던 것과 낙서로 뒤덮인 학원 화장실에서 하얀 막대를 응시하던 자신의 손 따위를.  그때 지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고스란히 기억할 것이었다.   -   "나 임신 했어. 네 아이야." 지유는 준성에게 희미한 두 줄이 뜬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내밀어 보였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준성은 할 말을 잃었다.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언제? 왜? 의식의 흐름은 현지유의 생일날로 김준성을 이끌었다. 준성은 곧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기억해내고는 고개를 어정쩡하게 끄덕였다.

  • 사즈
  • 2021-02-25
2020 ver.2

김아윤과 이아윤은 대학교 일 학년 때 처음 만났다. 민지나 지영 같은,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님에도 둘은 이름이 같았다. 그래서 더욱 신기해했다.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몇 번 학식을 같이 먹고 대화를 나누다 아윤들은 서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김아윤이 재수를 해 이아윤 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김아윤이 만난 자리에서 말 놓는 것을 허락한데다 김아윤이 반년 정도밖에 일찍 태어나지 않았기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졸업식 날까지 딱 붙어 다니던 아윤들은 아예 대학 졸업 후에는 같이 학원을 차렸다. 대출을 좀 많이 받긴 했지만, 한 달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달이 일 년에 절반 이상이었지만 행복했다. 몇몇 부모들이 항의 전화를 걸어와 두통약을 삼키는 날이 늘었지만, 서로가 있어서 행복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아침 일곱 시 기상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핸드폰으로 뉴스 보기인 김아윤이 핸드폰 화면을 이아윤에게 들이밀었을 때만 해도   -중국에서 그런 적이 한두 번이니?   하고 고작 그거 보여주려 깨운 거냐며 짜증을 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속보란을 뒤덮어 버리더니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첫 감염자가 나왔다.    -중국인이네. 한국에서 감염은 없나 보다.   그렇게 말하며 온갖 맛집과 전시회를 순회하는 이아윤의 팔을 붙든 것은 김아윤이었다.   -제발 돌아다니지 좀 마. 학원 끝나면 그냥 집에 있어.. 곧 있으면 국내에서 환자들이 속출할 거야. 메르스 겪고도 그런 말이 나와 넌?   -뭐 어때. 그냥 심한 감기처럼 잠깐 앓고 지나가는 거겠지. 나 얼마나 건강한지 알면서.   이아윤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아윤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한 번도 감기를 앓은 적이 없었고, 그 흔한 염증 하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등산 모임에 참석하는 데다 꾸준히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다 오는 게 이아윤이었다.    그렇지만 김아윤은 뭔가 불안했다. 약간 촉이 그랬다. 김아윤은 그날 꼭 에버랜드에 가야겠다고 뻗대는 이아윤을 막아섰다.    이아윤은 태평하게 누워 '중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고 말한 첫 번째 환자를 욕했다. '코로나'는 자살 폭탄 테러나 아파트 화재처럼 나와는 관계없는 일처럼 보여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태평하게 누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지. 김아윤은 생각했다.   -아니 남의 나라에 병 옮겨 와 놓고 고향 음식? 지랄하네. 의료진들 고생하는 거 알면서 저러는 거야 뭐야?   옆에서 과도로 감을 깎던 김아윤은 이아윤의 허벅지를 때렸다.    -너는 애가 어쩜 그리 공감 능력이란 게 없니? 너도 고작 일주일 미국 갔다 온 거면서 김치가 먹고 싶었다, 라면이 그리웠다 별 지랄을 떨었으면서.   -아니, 이거랑 그거는 다르지.. &n

  • 사즈
  •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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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문체가 엄청 매력적이에요...

    • 2024-06-26 19:13:30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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