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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넣는 기계 간호사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6-22
  • 조회수 168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오늘도 우리 병원에는 손님이 많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갑고 힘들다는데 아마 코로나 19가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듯 했다. 요즘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단순 우울증도 있지만 딜루전과 가성치메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다들 정신이 약해서야."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연두쌤이 엑팅아웃이 온 환자를 말리고 휴개실에 잠시 들어왔다.. "수쌤 요즘 환자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파 미치겠어요."라고 말을 한다. "잡소리는 일 끝나고 하자 연두쌤아" 나는 잡소리 하는 연두쌤을 뒤로 하고 섹션에 들어가 사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연두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환자를 감정으로 보면 안되는데:::그렇다고 감정 없이 다루는 것도 않되고 참:::"라며 말을했다. 이를 들었는지 보호사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일이 끝나고 퇴근 할라고 옷을 갈아 입고 준비할 때 연두쌤이 휴개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연두쌤 의 말이 신경쓰여서 그녀에게 작게 말을 했다. "연두쌤아 환자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마 , 너만 피곤해져. 나이팅게일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위인이 됬지만 그녀의 좋은 판단력이 동력이 되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거야." 연두쌤은 이런 내가 당황스러운지 땀을 삐죽 흘리며 연두 쌤은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빨리 보내기 바빴다. 역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어린 것 같다.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내가 말한 말을 알게 되겠지.

 집에 들어오면 아들놈이 우리 집에 와 공부하고 있다. "민찬아, 엄마 왔어, 밥 먹자." 그러자 민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보고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저렇게 우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무시했다. "수민찬 너가 좋아하는 피자 사 왔어." 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아들의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민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이나 먹어놓고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니 참 이기주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피자 2조각을 접시에 담아서 2층 방 문 앞에 살며시 뒀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니 치즈가 늘어남에 따라 내 빈 자리가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젤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방에 잠을 자러 갔다.

 오늘도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 밀려왔다. 내가 전담으로 맞고 있는 민지 씨는 딜루전을 가지고 있는 환자시다. 민지 씨는 나를 본인의 아들을 괴롭힌 천하의 못되고 싸이코 같은 년이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면 계속 손을 빌고 "우리 아들에게 제발 사과 해 주면 않되요? 아이가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는 그 말들을 듣고 흘렸다. 흘리지 않으면 내 정신력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내가 엄마였어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든다. 아이가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무슨 조짐이 보이는데 그것을 케치하지 못한건 부모의 잘못이니까. 그리고 아이를 생각하면 끝까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 보호자니까. 그래서 난 민지 씨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우면서도 한심하다 느끼지만 이 감정을 오랜시간 동안 가두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약간 기운이 없는 날인가 보다. 민지 씨가 요법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엑팅아웃 증상을 보이며 나의 머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약간 찝찝했지만 똑같이 머리를 잡으면 똑같이 못된 년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호사님을 불렀다. 그리고 조심히 민지 씨를 진정시키고 방으로 대려가 안정재를 맞췄다. 그러니 민지 씨는 조용해졌고 나는 한숨을 쉬며 병실을 나왔다. 연두쌤이 이런 나를 보고 "선생님 괜찮아요?"리 물었다. 또한 보호사님도 "역시 수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잘 대처했어."라고 말을 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괜찮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섹션에 가서 차트 정리를 했다.

 차트 정리가 거의 끝까지 다가왔을 때였나? 내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바로 학교 담임교사의 전화였다. 나는 손에 땀을지며 그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팠다. 민찬이가 친구를 때리고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호흡을 쉬며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괜찮은가요? 민찬이 상태는요?" 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약간의 타박상이 있을 뿐이었고 민찬이 또한 치료를 빨리 받아서 괜찮으며 지금 성출병원에 부담임 교사와 함께 있다고 말을 했다. 나는 수간호사 민경 선생님에게 가서 반차를 요구했고 사연을 들은 수간호사 민경쌤은 날 빨리 병원에서 내보내 줬다.

 오늘은 시간 시간마다 괴로운지 모르겠다. 엑팅아웃 환자부터 아들일까지 모두 터지니 내 마음은 답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민찬이에 대한 분노가 설그머니 올라왔다. "저 새끼는 내가 혼자 얼마나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저 지랄을 하고 있어."나는 답답한 마음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왔다.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지만 내 아들이 자살 시도를 했고 학폭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나고 분해서 눈물이 흘려져 나왔다.

 성출병원에 도착했을 때 민찬이의 팔은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커터갈로 밴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손이 위로 올라갔지만 때릴 수는 없었다. 이를 본 부담임이 "어머니 진정하세요. 여기 책임은 어머지도 약간 있으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는 민찬에게 "너 똑바로 있어."라고 말하고 부담임과 함께 병원 커피숍에 갔다. "어머니 사실:::" 부담임의 말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사실 민찬이는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려도 민사 소송이 들어갈 경우 인정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이 분노를 다스리며 선생님께 민찬이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민찬이와 동행하고 싶다 말을 했다. 선생님은 말렸지만 나는 "싸우지 않을 겁니다. 사과하러 가야죠." 그러자 선생님이 위치를 알려주고 나와 민찬이는 그 곳으로 갔다.

 나와 민찬이는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에게 나는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이를 본 민찬이는 "엄마 뭐하는거야?" 라고 말을했다. 그러자 난 눈치를 주며 무릎을 꿇라고 눈으로 말했다. 그러나 민찬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자 한 아이의 엄마가 "아비 없이 자란 티 막 나네요. 격 떨어져."라고 말했다. 민찬이는 그 여자에게 달려갔다. 나는 달려가려는 민찬이의 얼굴을 쌔게 때렸다. "입 닥쳐! 지금 넌 가해자야."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민찬이는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민찬을 가만히 바라 봤다. 그러자 한 여자가 혀를 치면서 아이와 함께 커피숍을 떴다. 나는 가슴 모를 씁쓸함이 들이 닥쳤고 민찬이를 찾으려고 밖으로 나갔다.

 "민찬아." 나는 소리지르며 아들을 찾았다. 아들은 정자 위에서 가녀리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비에 젖은 고양이 같았다. 나는 민찬이를 차까지 대리고 와서 한소리를 했다. "민찬아, 그 자리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 합의는 해야지. 그 새끼들이 미워도 때리면 안되고 엄마에게 말을 했어야지. 너도 똑같은 새끼야." 라고 민찬에게 외쳤다. 민찬이는 이런 말을 듣고 흐느끼며 "엄마 정신과 간호사 맞아? 환자는 잘 보살피면서 나는 왜 못 보살펴? 내 감정은 적어도 엄마가 보살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엄마는 적어도 내 편이어야지." 집까지 가는 차 안은 민찬의 외침 이후 흐느낌만 자리 잡았다. 나는 민찬의 어느 말에도 답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니 민찬이의 방 앞에 다 식은 고르곤졸라가 있었다. "어제 안 먹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민찬이는 발로 차게 식은 피자를 차고 방으로 들어기 방문을 잠갔다. 나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방 키를 열었다. 역시 불안한 생각은 틀리지 않는다. 커튼이 민찬이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민찬이를 말리고 한 동안 울었다. "민찬아, 뭐가 널 그리 망가트렸니? 엄마로는 빈 자리를 채울 수 없었니?" 라고 묻자 민찬이는 울기만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정신과 진료를 예약 잡았다. 그리고 당분간 민찬이의 방을 보호병동처럼 날카로운 것을 없에고 자해를 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지웠다. 

 민찬이 방을 치우니 민찬이의 어린시절 사진이 나왔다. 아빠를 코로나 19 때 잃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말도 못했을까? 나는 그 때 연두 쌤이 말했던 질문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이성적인 간호사라 환자들에게도 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나는 사진 속 아들의 얼굴을 스다듬었다.

 아들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나고 나는 병원에 다시 들어갔다. 아들과 함께 말이다. 자해를 막으려면 이곳 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나를 다시 본 민지 씨는 나를 죽일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민지 씨에게 먼저 다가가 "자식 지키기 위해서 빨리 나아야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러자 엑팅아웃 증상을 보일라고 했던 민지 씨는 가만히 날 보며 울었다.  그 때 내 안의 빈칸이 흔들리며 날 바라보는 민찬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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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괴물

엄마가 오늘도 코를 훌쩍인다. 요즘들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비염 다시 생겼나보다."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그런가봐"라 말하고 나를 피해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한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붉어지고 나를 외면한 것도 아마 내 몸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여느 가족의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 좋은 부모, 좋은 시부모, 좋은 조부모였다. 나는 이런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호감이 계속 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자 꼬셨다. 그 당시 엄마도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고 아빠 사업도 확장이 되고 있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 준비하고 빠르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서는 매일이 꽃날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길은 나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근사한 노인이었다. 행복한 가정,돈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할머닌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본인 손에서 놀아나야 속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이사 1주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내게 "이거 입어."라고 옷을 주셨다.그러나 이 옷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이어서 할머니에게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할머닌 "싫음 입지마."라 하시며 옷을 쓰래기통에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할머니!"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버렸다. 이를 본 엄마가 할머니에게 "반품해 올까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직도 거지근성 못 버려가지고 그러니 집안이 그 꼴이지"라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할머니에게 나는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엄마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엄마는 "그만하고 참아. 할머니에게 무슨 말 버릇이야."라고 날 말렸지만 할머닌 나에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라며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그리고 손에 방망이를 드시고 내 다리를 때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해서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를 보고 "그만해요."라 말하고 문을 크게 닫고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이 상화이 재미라도 있는지 막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박수무당이 굿하는 것 같았다. 신이 들어온 것일까? 악귀에 빙의된 것일까? 할아버지는 마냥

  • 송희찬
  • 2024-06-2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소금 아이

" 난 소금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형식이가 진로 발표 수업 시간에 말한 내용이다. 선생님은 이 말을 듣고 형식이에게 "직업을 말하렴."이라고 말을 했다. 그 때 형식은 한숨을 푹 쉬었다. 깊고 진한 그런 소리가 교실 내부에 스며들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귀도, 코도, 눈도 모두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른 친구 말 할 때까지 생가하렴." 이라 말을 했다. 그러더니 형식은 무거운 발을 들어서 자리로 앉아 얼굴을 숙였다. 아무도 얼굴을 숙인 형식을 보지 않았다. 그저 발표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의 꿈에 집중을 했다. 그러나 형식을 집중해서 보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제 꿈은 상담가 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라고 나는 발표했다. 나름 좋은 발표인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난 후 선생님은 아무 피드백도 하지 않고 나를 자리로 보냈다. 나는 모든 것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선생님들 눈에는 내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중간한 재능에서 어중간한 노력을 하는 그런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 형식에게 작게 "얼굴들어. 그래야 친구들이랑 친해지지."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형식은 무표정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며 그저 숙인 고개를 더 땅 바닥으로 떨굴 뿐이었다. 나는 이런 형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새학기라면 누구나 말을 많이 하고 친구를 사귀고 싶을탠데 형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발표들이 끝났다. 다시 형식의 차례가 돌아왔다. "형식, 네 꿈을 말하렴." 선생님이 형식을 불렀다. 그러나 형식은 어느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형식에게 "어서 답을 해."라고 말을 했지만 형식은 침묵을 지향했다. 선생님이 할 수 없이 그에게 "그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물었다. "소금, 소금, 소금" 소금 삼창을 작은 소리로 형식이 외쳤다. "뭐라고? 크게 말하렴." 선생님이 짜증이 약간 뒤흔든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소금이란 말만 대풀이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소금이라 말해요.""알겠어. 복례는 고마워." 선생님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때 종이쳤다. 어색한 침묵의 흐름이 약간 금이 가는 듯했다. 선생님은 책을 살짝 치며 큰 목소리로 "앞으로 진로 시간에는 발표 위주의 수업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발표 하는 연습을 함께 해요." 라고 말을 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쉬는 시간에 모든 아이의 시선은 형식에게 쏠렸다. 물론 나도 형식에게 관심을 가졌다. "우리 친구 하는 것 어때?"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형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말을 무시하는 그를 보며 화를 느꼈지만 새학기 새학년이라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때 나의 친구인 경술이 교실에 찾아왔다. "복례야 우리 교정 둘러보자."라는 소리가 크게 교실을 울렸다. 나는 교실에서 친구를 더 사귀고 싶었지만 기존 친구와의 우정도 지키고 싶어서 교실

  • 송희찬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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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오랜만에 소설 쓰신 게 반가워서 댓글 남겨요 전부터 엄청 성장하신 게 느껴져서 괜스레 제가 뿌듯하기도 하고요 글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만큼 완성도가 나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네요 늘 응원할게요

    • 2024-06-26 19:12:04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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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난바다님 안녕하세요~^^ 저도 난바다님 소설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러나 제가 몸이 요즘 좋지 않아 실수할까 댓글을 못 남겼는데 먼저 다가와 주셔서 고마워요^^ 사실 저도 작년 1일 1작 했던 제가 그리워요. 요즘은 그 때 비하면 활발하게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요.(체력적으로 힘들더라구요^^;)ㅎㅎ 항상 따뜻한 댓글 고마워요~^^ 앞으로 더 노력해서 좋은 소설을 만들어 볼게요.^^ 요즘 여름감기가 진짜 죽을 맛이니까 조심하세요~^^(제가 지금 여름 감기로 몸이 이상해서 TMI가 계속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 2024-06-26 19:20:39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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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래솔

    작가님도 민찬이처럼 굴곡진 삶을 살으셨나요내용이 좀 슬프네요

    • 2024-06-24 01:00:22
    도래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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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도래솔님 안녕하세요~^^ 나름 평탄한 삶은 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소설은 주인공들이 기쁜 내용보다 슬픈 내용이 많아요.(기쁨을 경험한게 적으니 그런 것 같아요.)

      • 2024-06-24 07:08:24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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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오랜만에 소설 게시판에 왔네요. ^^ {소설 한 편 더 있는데 이는 아직 자료 조사 단계라 언제 올려질지 모르겠네요.ㅎㅎ}

    • 2024-06-22 16:32:13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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