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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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를 키울 명분이 없어.”
그 사람이 나를 고아원에 두고 간 날 (정확히는 버린 날), 원장님이 아이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냐는 물음에 한 말이었다. 내 나이 여덟.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모를 나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며 이혼 사유가 내가 그 사람의 핏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는 것쯤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 사람이 던지듯 준 나의 생일 선물, 그니까 아주 작은 곰인형만 만지작거렸다. 곰인형 등에 놓인 지퍼를 열면 보이는 나의 돌잔치 사진. 그 사진 속에는 그 사람도, 엄마라는 사람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축복을 받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아닐까. 그 사람이 원장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웃고 있었던 그 과거의 기억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으련만. 머리를 붙잡고서 기억을 더듬어봤자 내게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그 사람과 엄마라는 여자의 고함소리밖에 없었고. 그 고함소리의 내용들은 나는 이 애가 내 애인 줄 알고 키웠어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화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어깨를 씩씩거리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손을 뻗으면 안아주지 않던 그 모습에서, 그리고 오늘 어디 좀 가자고 말하며 내게 자장면을 사줬다는 그 사실에서. 나는 알았다. 오늘이 이 사람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매번 풍기는 술 냄새가 싫긴 했지만, 그 사람이 술로 인해 기절하듯 잠든 밤,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내고는 했었지만. 그게 헤어지고 싶다는 뜻을 나타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떠나려는 그 사람의 셔츠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웃음 한 번 짓고선 나와 함께 자장면을 먹자고 말할 줄 알았다. 그 사람은 내게 미안한 일이 생기면 자장면을 먹자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자장면을 두 끼 연속 먹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장면 먹자는 말 대신, 안 돼 라는 단 두 글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건 미련 없다는 듯이 내 손을 때리는 손길. 찰싹, 경쾌하면서도 구슬픈 소리가 그 빈 공간을 울렸다. 손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나를 안아주고 있던 원장님은 이어, 그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나를 떠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내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 호칭이 역겹고 불쾌하며 듣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라는 아주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왜? 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뇌 속에 진득하게 남아 나를 콕콕 건드려댔지만 그 사람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를 떠나갔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눈물이 갑작스럽게 나왔다. 원장님이 내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주며 내 눈물을 그 주름 진 손으로 닦아줄 때까지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 나는 왜 눈물이 나왔지?
내 나이 여덟. 내 물음에 답해줄 어른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쯤은 알았음에도 뇌 속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물음에 밤마다 울어댔다. 나 태어났을 때는 이렇게 축복해 줬으면서 왜 지금은 나를 미워해? 나를 왜 여기다 두고 갔어? 나는 왜 그 사람이 떠났을 때 눈물부터 나왔지? 어린 나이에 중얼거렸지만 육학년 형들이 시끄럽다며 소리 지르는 통에 입술만 짓물어댔다. 입술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깨물다가 내 몸이 쓸쓸하다고 느껴지면 그 작은 곰인형을 끌어안았고. 그 곰인형이 그 사람의 유일한 흔적이라 너무 미우면서도 때때로 지퍼를 열어 돌잔치 사진을 보았다. 내가 여섯 살 때, 술에 취한 그 사람의 지갑에서 훔쳤지만 내가 여덟이 될 때까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그 사진. 그 사진 속 내 얼굴과 똑같은 여자의 미소와 비슷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면 나도 그 사진 속의 나처럼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 탓에 아홉 살 때 그 사진을 껴안고 중얼거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그 중얼거림은 나 행복해 보이고 싶어요, 행복하게 해 주세요 등등... 신이 보면 매우 건방지다고 칭할 만한 말들이 다였지만.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매일 우울해 하다가 원장님께서 나를 소아우울증으로 상담 받게 할지도 몰랐기에. 행복해지고 싶었다. 고아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정성껏 사랑을 쏟으며 웃는 원장님을 보아서라도. 꼭, 행복해지고 싶었다.
*
여덟 살 때는 죽도록 싫었던 고아원 생활은 꼭 행복해지겠노라는 아홉 살 때의 다짐을 하고 난 후부터는 그리 나쁘진 않았다. 비록 초등학교에서 몇몇 아이들이 나를 애미, 애비 없는 새끼라고 놀려댔지만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들어 던지니 그러한 원색적인 괴롭힘은 사라졌다. 친구도 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열 넷이 되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 다르게 말하자면 사춘기. 그 시기에 나와 동갑이라던 남자애 한 명이 고아원에 들어왔다. 그 나이가 되어서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는 흔치 않았다. 성별, 나이, 심지어 다니게 될 중학교도 같으니 원장님은 친해져보라는 뜻으로 그 아이와 같은 방에다 나를 밀어 넣었다. 애의 간단한 사정 같은 것 따위를 이야기해주면서. 뭐, 예를 들어 그 애의 엄마가 출산을 하다 곁을 떠나게 되어 아빠라는 놈이 고아원에다 애를 두고 도망갔다는 것 따위에. 그런 우울한 내용을 말이다. 사정을 들으면서 이 놈도 참 복잡한 사정을 가진 놈이구나, 생각했지만 그 사정에 걸맞게 그 놈은 완전 미친놈이었다. 그 애는 정말로, 나를 미워했다. 그니까 사랑하면 미움이 생기고 미워하다보면 사랑이 생긴다는, 그런 의미의 미움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의 미움. 그 애는 내가 무슨 원수가 되는 것 마냥 미워했다. 고아원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후원 물품들 중 내 몫의 것들은 숨기거나 부순다던가, 학교에서 나를 볼 때마다 넘어뜨린다던가. 홧김에 복도에서 야 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 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아니, 시발. 내가 네 아빠냐? 너한테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나한테 그러냐? 뭐라 말하고 싶지만 그 뒷모습이 정말 그 사람과 닮아 있어서. 그 애가 먼저 나를 미워한 거였지만 아마 그 애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그 애를 미워했을 거라 그냥 꾹 참았다. 그래서 맨 처음에 원장님이 말해주었던 그 애의 특징 같은 건 이미 기억 너머로 묻어버린 지 오래였다. 같은 방에서 지낸지 어느 덧 칠 개월. 중학교에 입학한 지는 약 오 개월이 다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그 애의 이름을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 애가 원장님의 속을 썩이는 많은 애들 가운데 최고로 가장 말썽을 부린다는 애라는 것. 그리고 그 애는 늘 꽃무늬의 피어싱을 끼고 다닌다는 것. 그 뿐이었다.
그 애의 이름을 알게 된 사건은 다소 사소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원장님이 돌아다니시면서 방 불이 꺼졌는지 확인하셨고, 나는 낡은 휴대폰을 켜 학교 앞에서 나눠주던 미술 노트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애는 새벽 시간이 되면 잠이 들었기에 그 때도 분명 자고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한 것이, 아마 나의 가장 큰 잘못이지 않을까. 하필이면 낡은 휴대폰 주제에 손전등 기능은 왜 좋았으며 그 눈부심에 눈을 왜 뜬 것이며, 그리고 그 애가 눈 뜨자마자 보인 것이 왜 내 미술 노트였을까. 누군가라도 붙잡고서 따지고 싶었지만 결국 모든 잘못의 책임은 나였다. 그니까, 그 애한테서 미술 노트를 빼앗긴 것의 원인은 나였다는 소리였다.
“이게 뭐냐?”
“내놔.”
“이게 뭐냐고. 곰인형?”
“달라니까!”
그 애의 시선은 슬쩍 침대 맡에 놓인 곰인형으로 향했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었다. 왜 걔는 손이 빨라서. 그렇게 내 곰인형을 짓뭉개고, 뒤에 지퍼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서. 그 속에서 튀어나온 내 돌잔치 사진을 본 걸까. 그리고 그걸 그렇게 찢어버려야 했던 걸까. 여덟 살 때부터 진작에 기억나지 않는 나의 모습은 그 애의 손에서 반갈죽이 되었다. 웃고 있는 여자도, 나를 미련 없이 떠났던 그 사람의 모습도 그렇게 갈라졌다. 현실에서처럼, 그 사진도. 나는 여자가 있는 곳도,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도 떨어지지 못한 채 정확히 내 몸통이 반으로 갈렸다. 내 몸통이 갈라져서 아팠다기보다 내 마음이 갈라진 것만 같아서 아팠다. 속에서 부글부글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니? 이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던 거니.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목이 아파왔다. 이상하게도 눈이 시큰해졌다. 볼을 타고 내려오는 무언가. 그 무언가는 뜨거웠다. 웃기게도 지금 가장 화가 나는 사람은 나인데, 흐릿하게 보이는 너머로 그 애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우스웠다. 그 모습에 또 화가 났다.
무턱대고 그 애의 머리끄댕이를 잡았다. 뭐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그 물건이 고장 난다던가 박살나면 다시 후원이 들어오기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건 맨몸 박치기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더 화가 났던 점은 나보다 그 애의 몸뚱이가 더 컸다는 점이고 그래서 내가 먼저 덤벼 든 주제에 내가 더 맞았다는 것이고. 원장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콱 깨문 채 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님께서 나와 그 애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는 점이었다.
“명아, 훈아! 새벽부터 왜 싸워. 떨어져, 떨어져!”
명. 성은 모르겠지만 이름은 명. 그게 그 애의 이름이었다. 나를 더 때린 주제에 명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파. 심지어 네가 날 더 때렸잖아. 그리고 왜 네가 화를 내지? 네가 내 물건들을 다 망친 주제에? 원장님이 오자 아파오던 목이 뚫리기라도 했는지 쏟아지는 폭포처럼 그 애에게 말을 뱉어냈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의문투성이인지. 여덟부터 주어진 의문이 다 해결이 되기도 전에 명이라는 애는 내게 의문을 더 던져준다. 아니, 애초에 너는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하는 거지? 저 명뿐만 아니라 나까지 혼내는 원장님의 고함에 억울해졌다. 나라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의자를 던지고 난 뒤에는 친구라는 존재가 없었던 터라 같은 처지에 있는 애와 친구가 되는 것은 더 공감대가 형성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근데 저 명이라는 애가, 처음부터 나를 미워하는데. 나를 싫어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지?
원수를 사랑하라. 그건 신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랑하긴 개뿔.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현자라는 사실은 저 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네가 나를 싫어하면 나도 너를 싫어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나는 아마 평생 현자는 되지 못할 것이고. 신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하지 못한 나를 신은 크게 싫어할 것이다. 그 결과로 명이라는 애를 내게 보낸 게 아닐까. 젠장, 신이 계신다면 묻고 싶었다. 저를 왜 이렇게 싫어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신은 답하겠지. 니 인생 꼬라지를 보렴. 내가 너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인데? 라고. 그리 답하겠지. 납득이 갔다. 내 인생 꼬라지는 겨우 열넷 주제에 버거운 모양새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 신이시여.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 원장님께 반성문 양식의 종이를 받아오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명과 내가 받은 처벌은 반성문 다섯 장. 똑같은 분량과 장수였다. 시비는 쟤가 먼저 걸었는데요? 라고 딴지를 거니 그렇다고 폭력으로 맞서는 게 옳은 선택이었니, 훈아 라는 원장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할 말이 없었다. 더 개 같은 건 그 애와 같은 방에서 같이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는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상 하나를 같이 써야 했으므로. 그 말은 즉, 그 애와 마주 앉아서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름, 최훈. 장소, 내 방. 싸운 이유, 저 새끼 아니 명이가 시비를 걸어서... 아, 이게 아닌데. 볼펜으로 직직 그어댔다. 내가 입술을 씹어대며 줄만 계속 긋는 사이, 명은 벌써 세 장 째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슬쩍 반성문을 훔쳐보았다. 이름을 독특하게도 한자로 쓰고 있었다. 음, 그니까 이름이.
“무, 명?”
한자 시간에 배웠던 한자 무無가 적혀 있었다. 학교 공부에 별 뜻이 없는 나도 알고 있는 한자였기에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저 한자가 왜 이름 칸에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니까, 쟤 성이 무인가? 무? 저 한자는 명일 텐데 뭐지. 모르겠다. 그래, 만약 그 애가 평소처럼 그 말을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저런 성도 있네,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명이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내 반성문까지 적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갔을 터였다.
“야, 왜 울어?”
눈물이 뚝뚝. 일정한 속도로 떨어졌다. 지가 먼저 울기 시작했으면서 꼴에 말은 하기 싫은지. 명은 고개만 도리도리 저어댔다. 정말이지, 저 애의 감정변화를 따라가기 버거웠다. 분명 더 속상한 건 나이고, 내가 더 짜증나야 하는 상황인데 늘 우는 건 쟤였다. 비아냥거리고 싶었지만 훌쩍거리는 그 소리가 영 초라한 모양새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내게 보일 것이라는 건 상상치도 못했다.
아,
아,
아.
.
.
.
핥고 싶었다.
아니,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울 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울 때. 그 눈물을 핥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너무 변태적인가? 다시 한 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차차. 혀도 깨물었는지 쌉쌀한 피 맛이 났다. 인중에서 씁쓸한 피 향이 느껴졌다. 그 애의 얼굴을 따라 피로 붉게 물드는 입술을 숨긴 채 그 애에게 손을 뻗었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그 눈물을 핥고 싶기보다는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을 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뻗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늘 매섭게 치고 가던 그 몸뚱이는 가만히 있었다. 항상 뒷모습만 봐서 그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까지 내 손길을 거부한 그 사람과는 다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그 애의 뺨을 만지작거렸는지도 모른다. 왜 울어. 다시 물었다. 말하기 싫어. 명이는 답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우니 통쾌할 법도 했지만 한 쪽 구석이 무거웠다. 물에 돌을 떨어트리면 생기는 파동이 생각보다 멀리까지 퍼지듯, 걔의 입술이 꿈틀거리더니 그 속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미안하다는 말이 뒤섞여서는, 바보야. 내가 잠들어 있는 줄 알았니. 전혀 아니란다. 네가 새벽에 곰인형을 껴안고 사진만을 본다는 걸, 내가 모르면 그건 병신이라는 말이라고 하며. 전에 지녔던 의문에 대한 답장을 해준다. 바보. 안 알려준다고 했으면서. 넌 병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병신이었다. 부러워서, 내 사진을 찢었다고 울부짖듯 말하는 너를 보면 그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원수가 우는 일은 오히려 웃기거나 행복한 일이라고 하던데. 아, 이런 걸 보면 앞에 했던 말은 취소다. 어쩌면 나는 현자가 될 수 있는 거일지도 모른다. 아니, 신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판자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죄인마냥 무언가를 토해내는 너의 눈가를 세게 눌렀다. 붉은 색으로 물든 피부가 말랑하다. 명이는 한 쪽 눈을 슬그머니 감기만 할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로 그 애가 쓴 명이라는 한자를 뇌 속에다 새겼다. 달 월月 자가 비스듬하게 그려진데다 그 밑에 네모 口가 그려진 한자. 상자 위에 달이 뜬 것 같은 한자. 여덟 살, 물 마시려고 나갔다가 후원으로 들어온 여러 상자들 위로 뜬 초승달을 떠올리며. 그렇게 그 한자를 머릿속에다 새겼다.
*
그 날 이후로 명이는 날 괴롭히지 않았다. 복도에서 날 만나도 오히려 어깨를 접은 채 지나갔으며 나를 때렸던 주먹은 내 앞에서 손을 쥐려는 행동조차 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았다. 그건 내게 있어서도 즐거운 변화였다. 명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지 않던 친구들이 지금은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래, 그 말은 즉 내게도 친구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기간제 친구. 너는 생각이 많아서 문제야 라고 말씀하시던 내 특징에 걸맞게 애들과 즐겁게 웃다가도 내 머릿속에선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내게 잘 해주는 이 친구들이 과연 내가 고아원에 지니고 있으며 의식주 모두를 후원으로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여전히 친구로 대해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명쾌했다.
아니.
여덟 살 때부터 쌓인 의문들이 많은 나의 인생들 중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은 깔끔하다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답답했다. 얼마나 답답한지,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느낌. 그 숨 막히는 느낌이 싫어서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벽을 짓게 되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 했던 주제에 막상 생기니 벽을 만든다는 내 모습이. 그리고 그러면서 나를 그토록 미워했던 명이라는 녀석을 떠올린다는 게. 나는 변태인 걸까? 아니면 현자인 걸까? 혹은 신인 걸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한자 선생님께 명이라는 이름의 뜻이 名, 이름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그 애의 이름의 뜻이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날을 기점으로 명이가 눈에 밟혔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내 어깨가 아릴 정도로 나에게 일부로 시비를 걸었던 녀석을, 결국에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을 반쪽으로 찢어서는 내 몸뚱이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아프게 만들었던 그 녀석을. 그리고 밤마다 곰인형을 껴안고 자는 내가 거슬리고 부러워서 그랬다는 그 애를. 내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 대신에 내 뇌 속에 새겨 넣은 내 모습이 우스웠다. 아, 너는 내가 이렇게 될 것을 알았나? 같은 성별인 녀석이 지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그 사실이 소름 끼쳐서 먼저 나를 미워한 걸까. 그렇다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지.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라고. 무책임한 변명을 속으로만 해댔다.
변명만 해대며 명이를 떠올리기를 반복하길 수차례. 지퍼가 너덜너덜해진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려고 누운 어느 날. 명이는 나를 불렀다. 그러곤 아주 구석진 곳에서 명이는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전에 스쳐지나가듯 닿았던 그 입술은 그 눈가만큼이나 말캉했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명이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이 방에는 명이와 나밖에 없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볼에 잠시나마 남아있던 온기가 그리워 잠깐 쓰다듬다 다시 명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그러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 너 하마터면 경찰한테 잡혀갈 뻔했어. 할 뻔했다는 말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진 않을 거지만 조심하라는 의미였다. 남들에게도 이러냐는 명이의 가벼운 행동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자 명이가 말하길, 전에 있던 고아원에 있던 원장님은 용서를 빌고 싶을 때나, 칭찬을 받고 싶을 때 뽀뽀하라고 시켰다고 했다. 입술 사이로 공기가 지나갔다. 새어나온 공기가 눅진하다. 진짜, 이건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직접적으로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했냐고 물으니 누구한테 사과하고 싶은 일이 지금껏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답변이 첫 날부터 싸가지가 없었던 명이를 나타내주고 있었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키득키득. 그 성격을 제일 욕했던 주제에 크게 웃음이 공기마냥 새어나왔다. 이 짓거리들을 시켰던, 전에 있었던 고아원 원장한테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번 회초리를 맞았다고. 잘했다고 칭찬하면서도 지금쯤 감옥에 있을지 지옥에 있을지 모르는, 애초에 얼굴조차 모르는 그 망할 놈을 욕했다. 감옥보다는 지옥에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당신이 내 볼에 잔상처럼 남은, 그 따스함을 모른다는 사실에 신께 감사를 드리면서. 너의 투박한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네 손의 살결은 딱딱했다.
*
열여덟. 청춘의 과도기. 사춘기를 시작하여 청춘으로 오기까지 명이와 나는 여전히 같은 방에서 지내고 있다. 어떨 때는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으며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개 같이 싸우더니 결국 친해졌구나 라며 좋아하시는 원장님께 명이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저 녀석이 저랑 닮아있다고 생각해서요 라고. 그리 말한 뒤에는 우리는 한 이불을 덮었다. 우리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내 몸은 차갑고 네 몸은 따뜻한 거에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인가. 하자가 있는 사람들은 하자가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연이자 운명이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왜 중학교 친구들을 끝까지 사귈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너에게서 발견한다. 너는 나의 이유 그 자체인가.
내가 명이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그리 말하니 네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들꽃이 잔뜩 핀 것 같은 그 귀를 만지고 있다 보면 내 투박한 손에서도 꽃향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걷다 명이의 피어싱과 닮은 꽃을 보면 꺾어서 걔의 귀에 꽂아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명이는 흰 들꽃을 가장 좋아했다. 무명無名이라는 이름은 아마, 매번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 너는 어쩔 땐 들꽃이 되었고 어떨 때는 하늘이 되었고. 어느 날에는 내 전부가 되었다. 명아, 명아. 라고 부르다 보면 너는 환하게 웃었다. 내 귓가를 계속해서 가득 채우는 너의 그 웃음소리에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의 이름 무명을 좋아했지만, 너는 너의 이름 무명을 싫어했다. 명아, 너는 왜 네 이름이 싫어? 라고 물으니 이름인데 이름이 없다는 건 자기 존재를 부정 당하는 것 같아 싫다고 말했다. 명이가 학교 컴퓨터로 검색하길, 무씨가 한국에서 열 댓 명밖에 없다는 것을 보면 아마 자기의 진짜 성은 무씨가 아닐 거라고. 그건 맞았다. 너의 성은 전에 있었던 원장의 성을 그대로 받은 것이라고 했으니까. 김이박최 중 하나일 것이라고 쓸데없이 진지한 너의 시덥지 않은 그 말투에도 나는 꺄르륵 웃어댔다. 이왕이면 최 씨였으면 좋겠어. 왜? 그러면 너랑 가족이 될 수도 있잖아. 나는 잠시 침음을 흘리다 그래도 네 이름이 독특해서 좋아 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명이는 네가 그렇다면 나는 내 이름도 나쁘진 않아 라고 답했다.
하지만 명이는 그런 자신의 이름이 어지간히도 미웠던 모양이었다. 점점 그 애의 곁으로 쌓인 흰 들꽃의 개수는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 들꽃 위에 누워 그 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어싱을 긁은 흔적들이 얼룩덜룩. 손을 갖다 대자 피가 묻어져 나왔다.
“명아.”
“왜.”
“이렇게 하면 우리 신고 당해.”
“뭐라고.”
“그 뭐냐, 환경 훼손? 그런 걸로.”
명이는 말한다. 그럼 엄마를 죽인 나는 왜 신고 당하지 않았냐고. 말문이 막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였다. 엄마를 죽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명이는 살인자 같은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세상이 명이를 살인자로 만든 거였다. 엄마를 죽인 놈. 명이는 자신을 설명할 때 가끔 그런 표현을 썼지만 그건 옳지 못한 말이라고 늘 지적했다. 네가 신이야? 네가 뭐 이 세상의 창조자야? 속상해서 그렇게 비아냥대니 너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네 옆으로 가 본능적으로 네 손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너의 손은 여전히 딱딱했다.
네가 無名이라는 단어를 내가 직접적으로 언급했을 때 왜 눈물부터 터져 나왔는지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 것도 같았다. 너는 억울했을 거다. 처음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인생이, 그리고 이름조차 주지 않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자신의 처지가. 그 와중에 처음 갔던 고아원 원장은 미친 소아성애자 변태였고 겨우 도망쳤더니 생긴 룸메이트가 매번 가족사진을 보는 음침한 놈이라고 한다면. 나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의 죽음을 태어나면서 맞이한 아기의 인생은 그 인생 자체가 무덤이 된다. 무덤에는 꽃을 줘야 한다는 내용을 어렴풋이 익혔던 명이는 그렇게 피어싱을 달았다고 한다. 꽃무늬의 피어싱은 명이가 보지도 못한 채,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를 어찌나 그리워하는지를 나타내는 증표 같은 거였다. 피딱지가 덕지덕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네 귀는 여전히 꽃향기가 나는 피어싱이 달려 있었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꽃향기가 나던 이유가 그 피어싱 때문이 아닌, 명이. 너 그 자체에서 나는 향기라는 거였다. 그러면, 그냥 내가 흰 들꽃을 달아주면 안 되나? 네 피어싱, 떼버리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명이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 되는 것도 참 많지. 이유를 물으니 너한테 곰인형이 있듯, 나에겐 이 피어싱이 있단다.
왜 우리를 버린 가족들이라는 사람은 우리를 이렇게 평생 못살게 구는 걸까. 너덜너덜해진 곰인형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꽃 모양 피어싱은, 꽃향기보다 피냄새가 더 짙게 났다.
우리는, 왜 우리를 버린 사람들을 그리워해야 할까.
아기가 울면서 깨어나는 이유는 저를 이 세상 밖에 나오게 하는 이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 사람에게 처음으로 정체성을 만들어준다는 그 이름값마저 하지 못하게 도망간 그 사람들을, 우리가 왜 기억해 줘야 하나. 솔직히 말하면 그 도망간 사람들 중 한 명인, 그 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건 맞았다. 술을 마시긴 했어도, 내게 놀이공원을 데려다 주는 그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며, 나에게 어부바를 해준 그 기억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영원히 내 뇌 속에 달라붙을 걸 알지만.
“내가 있잖아.”
이제 나는 곰인형을 안고 자기보다 명이의 넓은 등짝을 안고 자는 걸 더 좋아했다. 너에게 내가 있듯, 나에게도 네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였다. 나를 등진 채 누운 너에게로 기어가 이마를 맞대며 그리 속삭이니 훌쩍이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우리, 한강으로 가자. 응. 거기서 이것들을 다 버리는 거야. 응. 그리고 원장님께 받은 용돈으로 다른 피어싱 맞추자. 응...
문득 그 사람이 내 이름의 뜻은 석양曛이 아닌, 엄마라는 작자가 좋아하는 훈제오리에서 따왔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훈제 오리가 이름이라니. 이건 거의 이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너는 이름 자체가 무명이었지만 알고 보면 우리 둘 다 無名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가 삐뚤어져서 괜히 모든 것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닌,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이 무명이라 그렇다. 행복해지고 싶다. 아홉 살 때 고아원에 와서 내가 했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건이 하나 더 붙은 게 있다면 이왕이면 너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 벗어나자.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자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명이와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한참을 머뭇거린 너의 대답은 응.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족이 되기로 했다. 우리는 가족 없이 태어났으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그것 하나는 주지 않았으니까. 우리 둘이 가족이 되자. 세상이 주지 않으면 우리가 만들자. 너의 어깨에 기댄 채로 그렇게 말했다. 가족이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가족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너는 숨소리만 살근살근 내다가 좋다고 말했다. 근데 우리가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어? 우리 뭐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뭣도 없었다. 돈도, 가족도, 이름도. 하지만 날 두고 갔던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거는 다름 아닌 피였다. 내 피가 너에게도 있는 것. 그게 뭐가 중요한지는 모르겠어도 그 사람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니까, 명이와 내게 기억나는 어른은 그 사람밖에 없어서. 그래서 나는 네 입술 옆 생채기를 핥았다. 송글송글 맺힌 피를 열심히도 빨아마셨다. 그렇게 너의 침과 섞이고 나의 침과 섞여서. 내가 모기 새끼 마냥 쪽쪽 빨아먹은 네 피가, 내 위장에 눅진하게 달라붙길 기도했다. 아주 적은 양이라도 좋으니까, 위액과 섞이든 뭐든 간에 내 몸에 니 흔적이 남아있으면. 그럼 내 몸 속에 네 피가 있는 거니까, 그걸로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커터칼로 손가락에 작은 생채기를 내 너에게 먹으라고 했다. 네 혀가 내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쌌다. 우리의 입술은 빨갛게 물들었다. 전에 보았던 우리들의 피가 아닌 서로의 피들로 물든 입술은 더더욱 새빨갰다. 우리들의 첫키스 맛은 쌉쌀한 피 맛. 그리고 눈물 맛.
“어른들은 바보야, 아니 병신이야.”
“우리, 2년 후에 어른 되는데. 우리도 그럼 병신인가?”
“우린 날 때부터 병신이었잖아.”
그 말에 우리는 서로의 볼을 잡고 웃었다.
어른들은 병신이었다.
가족이 되는 것은 이렇게나 쉬웠는데 모두 떠나가 버린다.
어른들은 병신이다.
우리는 결국에 가족이 되었는데 모두 그렇게 포기해 버린다.
어른들은,
그니까 우리는.
나는 명이의 어깨에 기대 반질반질해진 입술을 옷으로 닦았다. 닦은 소매에서는 네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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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망할 반지하 방에는 물이 스며들어왔다. 비는 멈춘 지 오래이건만. 이미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을 푸는 와중에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며 숨이 턱 끝까지 막혔다. 역시 이 놈의 가난은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물줄기인지, 아니면 내가 흐르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 망할 가난은 물줄기와도 같아서 퍼내고 퍼내어도 끝이 없이 쏟아지고. 결국엔 이 방을 무슨 어항처럼 만들고는 우리를 다 익사시키지는 않을까, 하고. 창문 바로 밑에 주전자를 두고 다시 테이프를 덧붙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동생이 풀어야 한다고 떼를 썼던 문제집과 내 소설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위 선반에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은 동생의 교복이 쫄딱 젖었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그러면 불행이 너무 큰가? 알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또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마 아빠가 지어주신 민주라는 이름은 총명할 민慜에 모일 주輳가 아닌 망할 민泯에 살 주住겠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아니지. 주는 살 주住가 아닌 젖을 주澍인가? 물에 빠진 쥐새끼마냥 쫄딱 젖은 내 꼬락서니를 보면 말이야. 사실 잘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시궁창 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별로 상관할 필요도 없긴 했다. 어떨 때는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도 옛말. 지금은 시궁창 인생에라도 머무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물론 어렸을 때부터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고는 했었다. 태어나 보니 집은 반지하에 어머니라는 사람은 빚을 잔뜩 진 채로 내 나이 열하나에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다는 사실은 어지간히 운이 더럽게 없지 않고서야 일어나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나마 민환이와 나를 챙겨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세상을 뜨셨다. 사인은 영양실조. 현대 사회에서 웬 영양실조가 사인인 경우도 있냐고 하지만 그 경우가 우리 가족이었다. 30대 청년이 아사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요즘 누가 영양실조나 아사로 죽냐는 댓글을 바라보며 그래, 그 경우 여기 있더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인사할 때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던, 삐쩍 말라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손으로나마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지 못했다. 엉엉, 또 울면서 아빠, 아빠 가지 마요, 라고 떼를 썼다. 내 나이 열아홉, 민환이 나이 아홉. 영장사진을 겨우 드는 민환이의 손을 꾹 붙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네 손에는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누나가 민환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라고. 엉엉 우는 민환이의 귓가에 손을 대고 다짐과 같은 말을 뱉었다. 그 다짐, 아직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교복을 말리러 밖에 나선 이 순간에도 민환이
- 난바다
- 2024-06-15
너는 도로 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같았다. 그것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이 도시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하필 도로 중앙에 피어난 꽃이라 차들이 한 번쯤은 밟고 지나갈 법도 한데 용케도 이 도로에서 너는 꺾이지 않고 제 모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떨어졌니?-떨어졌어.-속상하지 않니?-속상하지 않아.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말들 속에서 슬쩍. 너의 노트북에 비춰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대상 - 박규혁, <네가 없는 밤에>최우수상 - 이세영, <여름 날, 우리>박이현, <너는 내가 너라는 한 글자 때문에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모른다>우수상 - 김소연, <울지도 웃지도 마>김예령, <너는 내게 파도처럼 밀려와>최이준, <여우>장려상 - 성준, <우리의 일기장이 소설이 되면>이화, <너는 웃었고, 나는 울었지>이바다, <언젠가의 당신의 죽음으로부터>최예림, <죽으려고 했으나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총 열 명. 열 명이나 되는 이 명단들 중에서 너의 이름 세 글자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의 글은 남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심오하며 낯설고 복잡했다. 그걸 너에게 말할 때마다 너는 그저 알아, 라는 두 글자로 말을 일축할 뿐. 너의 글은 여전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곧 고치길 마련인데. 여전히 너의 소신을 밀고 나가며 글을 쓰는 네가 신기하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도로 한 가운데에 핀 들꽃 같았다. 아무도 손 댈 수도 그리고 손대지도 않은 그런 꽃. 그래, 흔히들 사람들이 아는 장미, 민들레, 안개꽃. 그런 꽃들도 아닌 그저 이름 모르는 들꽃 말이다. 그래서 한 편으론 네가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의 글은 정말 완벽했다. 그래, 남들이 원하는 그런 진부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글. 그런 글을 쓴다면 너는 단숨에 인기를 많이 받을 것이 뻔했다. 근데 너는 왜 쓰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너라면 진부하지 않고도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머리도 좋으니 금방 좋은 소재를 찾아 막힘없이 쓸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려고 했다. 좋게 말하자면 모험심이 있으며 줏대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세며 돈을 벌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런 네가 답답했다. 너의 재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그런 네 모습이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개 같은 편의점 알바도 때려치우고 너는 오롯이 글만 바라보며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는 그게 더 싫다는 양 말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애정결핍과 피해망상으로 똘똘 뭉친 내 입장에서 너를 보자면 너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가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술성을 논하는 너의 모습이란. 애초부터 글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내게 있어 상처로 돌아왔다. 자격지심이라는 것은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재능이 너에게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질투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가도 네가 쓴 글이 황홀하여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
- 난바다
- 2024-01-30
언젠가부터 이 세계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도 현실은 개 같은 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나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꼬이고, 우울하며 히스테리 역시 많이 부렸지만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다는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이 개 같다고 느낀 것은 그저 내 성격이 남들보다 꼬인 것이 이유일 것이며 그럼에도 일상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살기 나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슬픔도 느낄 줄 알았지만 사소한 행복도 감사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근데 지금은 정말 개 같았다. 너무나도. 정말, 정말. 너무나도 개 같았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접었다. 저번 달에만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간 숫자였다. 총 셋. 한 명은 나의 어머니였고 한 명은 나의 친우였으며 한 명은 나의 은인 격이 되는 선생님이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휴대폰 메모 앱을 켜 천천히 지난달의 그 비극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번 달, 첫 주.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심. (의식이 있으셨음.) > 그러나 하루가 지난 후에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 > 새벽,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정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등산을 즐겨 하시는 등 운동도 많이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죽음이 생길 수 있고 그것 역시 비극이나 한 번쯤은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채 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거신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그만...” 이라는 말과 함께. 검은 옷이 어색해지기도 전에 나는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반평생을 함께한 친구이건만. 이것 역시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 삼일 전만 해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날 달래준 자식이었는데. 착한 놈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구석에서 엉엉 울다가 결국 진정되었다가. 다시 울다가를 반복하며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죽음이란 무게가 내게 너무나도 무거워 곧 나를 압사시키듯 날 덮쳤다. 하지만 이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번 달이 다 끝날 무렵, 생들에게서 받은 카톡이 뭐였더라? “선생님께서 암 투병 하시다 돌아가셨대.”였나. 아, 시발. 그 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절로 욕이 입 끝까지 차올랐다. 급히 휴대폰 앱을 끄고 내 입부터 틀어막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며 우주로 보자면 나는 얼마나 작은 미물이겠는가. 그럼에도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가에 대하여 울분을 감추긴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꼬이고 개 같고 히스테리도 부렸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신?,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여쭙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 난바다
- 2024-01-03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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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런 내용을 쓰자 쓰자 생각해놓고 요즘 영 바빠서 못 쓰고 있었는데 막상 쓰니 하루만에 다 썼네요 명이도 훈이도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그리고 이 글 내용 자체를 제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지라 그런지 묘하게 시원섭섭하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명이와 훈이가 서투르게 보이겠지만 저는 이 둘이 그 서투른 모습을 계속해서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서툰 것에서 시작한 이 인연이 서툰 과정들 속에서 더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에게 서툰 사랑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명이와 훈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