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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지

  • 작성자 지새는달
  • 작성일 2007-03-12
  • 조회수 386


죽으려고 했다. 어짜피 삶도 죽음이라면, 그보다 더 나빠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옥상의 난간 밖으로 몸을 뺐다. 바람이 얼굴을 칼처럼 뱄다. 그래도 아프지 않았다. 차라리 구원처럼 느껴져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저 아래에 떨어질 내 모습, 내가 보지 못할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일초가 하루처럼 흐르고. 
밖으로 더 고개를 뺐다. 꿈처럼 몸은 가벼웠다. 그대로 떠날 수도 있었다. 끝일 수도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아주 오래된 사진처럼 빛 바랜 색으로 머릿속에 흩어졌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끝이라면….

 

그 순간 몸에 온기가 닿았다. 다리 옆으로 기대오는 따듯한 기운. 난간에서 몸을 떼고 옆을 봤다. 아래에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길게 늘어진 하얀 털, 그마저도 군데 군데 빠지고 누렇게 되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하얀색인지도 잘 알 수 없는 강아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내 다리에 부볐다. 짖었다. 꼬리를 흔들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걸까, 주인은 없는걸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따듯한 혀가 손을 핥았다.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첫눈에 반해서….
떠날 수 없었다.

 

 


아빠는 그 날도 술에 취해 들어왔다. 아지는 이제 겨우 우리집에 적응하고 잠이 들어 있었다. 불안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지를 가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말을 하기엔 지금은 타이밍이 별로다. 술을 먹은 아빠는 어떤 것에나 화를 내니까. 걱정하고 있는 사이, 일이 터졌다. 잡을 새도 없이 문소리와 동시에 아지가 튀어나갔다. 급히 쫓아갔지만 이미 한번 발로 걷어차인 뒤였다. 아빠의 입에서 욕이 이상한 발음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아지를 꼭 끌어안았다. 등 위로 아빠의 발이 마구 떨어졌다. 항상 그랬듯 신경질적이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새어나오는 어줍잖은 말들과 함께 주먹세례가 이어졌다. 그래도 나는 아지를 놓지 않았다. 끝까지 놓칠까 꼭 잡고 있었다. 등을 구부려 누구든 손을 댈 수 없게 안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십분, 아니면 그보다 더? 아빠는 휘청휘청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강아지가 있다는 것 신경도 안 쓴다는 태도. 그냥 언제나처럼 화풀이 뿐이다. 나는 겨우 일어서 아지를 안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났다. 다른 날처럼 울거나 화를 삭히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이제는 아빠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 발길질이 두렵지도 않았다.
 
내 손으로 지켜야 할게 있으니까.

 

아지의 가슴에 귀를 댔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내 곁에도 살아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걸로 충분했다.

 

 


" 학생, 이미 너무 많이 아픈 강아지여서 어쩔 수가 없네. "

 

의사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지가 며칠이나 그렇게 앓았다는데 약도 지어주지 않았다. 나는 아파하는 아지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꼭 껴안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어쩌면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해줘야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랑 같이 오지 않아서 그런 것들을 설명해주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다 똑같으니까. 내가 돈이 없어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지가 죽을리 없었다. 아지는 겨우 며칠을 함꼐 보냈는데도 나와 계속 같이 살아온 것처럼 말도 잘 듣고 똑똑했다. 죽을 거라면, 그렇게 똑똑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지는 또 한번 먹은걸 전부 토했다. 피가 섞여 있었다. 무서웠다. 그제야 정말 떠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에 물어봐야 좋을지 알 수도 없었다. 한참을 끙끙 앓다가 엄마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지난번 통화를 기억해냈다. 전화하지마.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 자꾸 열이 나고 아파. 그래도 전화하지마.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아지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아지를 꽉 껴안았다. 아빠에게서 보호하듯이 꽉. 떠난다고 해도 놓아주지 않을 거였다. 그러면 아지도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지의 몸이 이상하게 너무 차가운 것 같아 더 걱정스러웠다. 아지가 내게 온기를 나눠주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잠이 든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주변이 까마득히 하얗다. 생전 처음 보는 곳에 누워 있다. 아지와 함께 죽은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괜찮았다. 나는 이미 며칠전에 한 번 죽었다. 그런 것 따위는 무섭지 않다. 주변에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저 쪽 문 앞에 엄마가 보인다. 그럼 그냥 꿈일지도 모른다. 나는 굳이 깨어나려고 애쓰지 않았다. 엄마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다. 목소리가 희미하다.

 

" 아무래도 정신과까지 상담하고 돌아가시는게 좋으시겠어요. "
" 아이 몸은 괜찮은 건가요? "

" 예. 그치만 강아지가 품에서 부패한걸 보면 죽은 걸 알고도 몇 시간이고 껴안고 있었던거 같은데…. 소아 정신과가 삼층이에요. 상담이라도 하고 가세요. "
" …한게 아마 …하고…. "

 

다시 눈을 감았다.

 

" 다영아. "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나는 그것도 꿈인줄만 알았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지가 너무 오래되서 이게 진짜 엄마 목소리인지 확신도 없었다. 아까 그 곳 그대로다. 엄마가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엄마, 아지는…. "

 

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엄마에게 무서운 대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 밑에서부터 길고 뜨거운 것이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목이 따끔따끔했다. 눈물이 날 만큼 아팠다. 엄마는 아지의 존재를 알리 없다. 안다고 해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아지를 기억할 수 있는건 나 뿐이다. 나를 사랑해 주던게 아지 뿐이었듯, 아지를 사랑한 것도 나 뿐이었으니까. 등부터 가슴 왼쪽까지 뭔가가 직선으로 관통한 것만 같다. 따갑고 아프다.

 

" 다영아. "

 

엄마가 있다는 것도 전혀 기쁘지 않다.

 

" 이제 엄마랑 살자."

 

거짓말.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는 아지를 알지도 못했잖아. 내가 그렇게 사랑했는데 지켜주지도 못했잖아. 나는 표정 하나 제대로 지을 수 없다. 멍한 얼굴로 대답도 할 수가 없다. 엄마의 손이 내 손을 감싸쥔다. 이상하게 따듯하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지 않는다.

 

엄마가 따듯한 눈을 하고 있을 것 같아 무서워서….

지새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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