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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 작성자 지로
  • 작성일 2007-09-23
  • 조회수 120

 

 “여보세요?”


 “언니? 나 소정이.”


 “그래, 이 밤중에 무슨 일이니?”


 묻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 밤중에 전화벨이 울렸을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엄마가 위독하셔.”


 그래서인지 생각만큼 충격이 크지도 않았다.


 “……. 지금 갈게. 오빠 집으로 가면 돼?”


 “응.”


 전화를 끊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남편도 전화소리에 깼는지 어느새 일어나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바쁘게 옷을 챙겨 입는 내게, 같이 갈까? 하고 물어봤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애들 돌봐줘. 아직 어리잖아. 안 돌아가실는지도 모르고.”


 이런 일은 전에도 몇 번 있었으니까. 그저 바람인지도 모를 변명을 속으로 삼키며 오빠 집으로 향했다. 오빠 집은 성남에 있어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택시에 몸을 싣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새벽이라 창밖을 봐도 어둠속에 불빛만 점점이 보일 뿐이었고 눈을 붙이자니 사경을 헤매실 엄마를 생각하면 죄스러워서 잘 수조차 없었다. 그렇긴 해도 곧 돌아가실지 모르는 엄마를 떠올렸을 때 두려움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펑펑 눈물이 쏟아져 나올 만큼 애틋함이 존재하는 것 같진 않았다. 칠남매의 넷째. 게다가 여섯인 딸 중 하나일 뿐인 내가 엄마와 단둘이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만큼 엄마와 연결된 혈육의 정은 엷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오늘 엄마가 돌아가신다 해도 잠깐 슬프다 말뿐일 런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택시는 오빠 집에 도착했고, 나는 곧장 엄마가 누워계실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생각보다 괜찮으신 듯 곤히 주무시고 계셨고 곁에는 아버지와 큰 언니만 앉아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흩어져 자고 있는 듯 했다.


 “소희 왔니?”


 큰언니가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아버지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계시길래 엄마는 내가 지킬 테니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시라고 안방에 모셔드렸다. 큰언니는 졸고 있진 않았지만 피곤에 절은 빛이 역력했다.


 “언니도 가서 눈 좀 붙여.”


 “그래야겠다. 벌써 새벽 4시네. 엄마 좀 잘 봐줘.”


 “걱정 마.”


 이렇게 아버지도 큰언니도 가버리자 익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 단둘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좀체 있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엄마는 내가 오고 나서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는 바람에 시끄러우셨는지 잠에서 깨어나셨다.


 “소희 왔구나.”


 “응, 엄마.”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으시고 한참 말이 없으시길래 잠드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금세 눈을 뜨시더니 요새 사는 건 어떠냐고, 외손주는 잘 크고 있냐는 둥 내 일상에 대해 물으셨다. 난 모든 게 괜찮게 돌아가고 있다고, 엄마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니야, 난 이제 죽을게다.”


 단정적으로 말하시는 엄마한테 조금 서운해서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하려다가 어쩌면 이제는 정말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이상한 질문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러면 엄마. 엄마 죽으면 어디 가?”


 내뱉고 나서야 내가 호기심 많고 눈치 없는 애들이나 물을 법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못 들은 셈 치시라고 말하려고 했다.


 “천국.”


 그러나 뜻밖에도 엄마는 대답해주셨다. 천국. 이라고 짧은 말이지만 조금은 천천히 늘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대답해주셨다. 일순 멍해졌다. 천국? 얼떨떨한 마음에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려나하고 보았다. 엄마는 어느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셨는데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평화에 잠겨계셨다. 엄마는 분명 행복해보였지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리도 분명하게 대답하신 걸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오늘 엄마는 돌아가신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 잠든 가족들을 하나둘 깨웠다. 곧 온 가족이 모여들었다. 다들 주무시는 엄마 주변으로 다가갔다.


 “곤히 잘만 주무시는데 왜 그래?”


 둘째언니가 투덜거리며 모두를 깨운 나를 책망했다. 나도 내가 틀렸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틀릴 것 같지 않았다. 틀리기에는 예감이 너무 안 좋았다.


 “곧 돌아가실 것 같아서.”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는지 둘째언니는 뭐라고 더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큰언니가 가로막았다. 그때부터 다들 숨죽인 채 엄마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지만 엄마의 숨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점점 다음 숨을 내쉬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이번 숨은 특히나 더.


“엄마.”


 다음 숨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함을 참지 못한 막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다행히 엄마는 약하나마 또 숨을 내쉬셨다. 그렇지만 모두들 엄마 앞에 내려앉고 있는 죽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의 숨이 완전히 멈춰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대답할 수 없겠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이번 숨이 엄마의 마지막 숨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는 엄마와 말할 수 없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그 사실이 못 견디게 텅 빈 느낌을 주었다. 내 안에서 커다란 일부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그런 참을 수 없는 공허감이었다.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 다른 형제들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버지가 어떤 표정으로 엄마를 보내드렸는지 몰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의 기억은 그저 내가 멍했었다는 것밖에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내 자신의 존재감도 불분명해진 것 같았다. 그냥 나도 이 땅에 붙어있는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몇날 며칠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엄마가 돌아가셔도 이런 식의 괴로움이 찾아오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담담히 보내드릴 수 있겠거니 했다.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울 만큼 친한 모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돌아가시면 잠깐 슬프고 말 줄 알았다. 그냥 딸로서의 이름이나 지킬 만큼, 딱 그만큼만 슬플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슬픔은 컸다.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작은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간절한 소망이 하늘까지 닿았는지 며칠 뒤 엄마의 꿈을 꾸었다.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다. 무슨 이야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엄마와 나는 그냥 나란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냥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만가 시간이 흘렀고 지하철은 점점 속도를 낮추면서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하철이 완전히 멈추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내가 어엇 하는 사이에 역으로 나가버리셨다.


 “엄마! 여기가 아니잖아!”


 이번 역은 아니다. 꿈속의 나는 그 생각만큼은 확실해서 엄마에게 외쳤지만 엄마는 빙그레 웃으실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열차의 문은 닫히었고 그렇게 웃고만 서 계신 엄마를 뒤로 하고 열차는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창 너머로 이번역이 천국이라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깨자 나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천국에 가셨다.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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